2013.01.24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에서 정치는 매우 중요하다. 다소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시장실패’라는 추상적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1950년대 초에 저 유명한 케네스 애로는 ‘일반균형의 존재’를 증명했다. 즉 이 세상 모든 시장을 동시에 균형상태로 만드는 가격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으로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균형이론은 동시에 시장실패론의 출발점이었다. 이 균형의 존재조건인 완전경쟁, 완전정보 등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아름다운 세계도 그저 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뮤얼슨이나 애로 같은 학자들은 시장에서 아예 공급될 수 없는 공공재 이론이나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할 수는 있지만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의료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 국가 개입의 미시경제학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그 반대 쪽에서는 시카고학파 중심의 경제학자들이 이런 국가 개입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데 몰두했다. 부캐넌의 ‘정부실패론’은 관료나 정치가 역시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부에 모든 걸 맡기면 안 된다는 주장이며, ‘코즈 정리’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도 시장실패(외부성)를 민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용되었다(코즈 본인은 떨떠름해 했지만). 나아가서 이런 주장은 현실에서 실천됐는데 1980년대 이래의 민영화, 규제완화, 개방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착한 경제학은 이런 시장만능론을 근본부터 부정한다. 인간은 경제학이 가정하는 대로 이기적이지 않을 뿐더러 즉각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계산해낼 계산능력도 없으며, 시장 또한 대단히 느리고 곧잘 고장이 나는 기계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시장실패론조차도 인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로 시작하고, 경제학에는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가 제일 먼저 나온다. 시장실패론은 우선 시장이 우리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되 그게 실패로 판명나는 경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대단히 강력해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 틀에서 얘기를 시작해야 했다. 예컨대 왜 의료는 시장에서 실패하는지, 농업을 시장에 맡기면 안 되는지부터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논의는 정교해 보이지만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경제논리와 실증 싸움에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시장이 인간관계를 대변한 건 지난 300년뿐이다.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는 수많은 방법 중 시장이 제일 먼저 나와야 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왜 사랑이 먼저 나오면 안 되는가? 물론 시장은 가격이라는 변수만으로 인간관계를 빈약하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원거리의 익명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진화한 신판 교류방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른 관계를 무시해도 좋다는 경제학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경제학이 자랑하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나 우애와 같은 다른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근거도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건 모두 합의하는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예컨대 이제 우리는 최소 수준의 의료나 교육, 심지어 식량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시장의 균형가격을 치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치료나 교육을 못받거나 굶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어떤 가치를 우리는 흔히 ‘공공의 가치’(public value), 또는 ‘공공성’(publicity)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공공성의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롤즈가 ‘기본재’라고 부른 것, 그리고 센의 ‘능력’이 그런 기준의 예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정하자면 꽤나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즉 공공성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공이성(public reason)을 사용해서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 또는 그런 걸 원하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무엇인지에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바로 정치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합의 이후에 그걸 공급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즉 태초에 있어야 할 것은 시장이 아니라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가 최우선’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그런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 즉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다뤄야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10.1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 사이에서 벌이는 가장 뜨거운 경제논쟁은 이론의 여지없이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독과점으로 인한 자유로운 시장경쟁의 제한’, 즉 시장실패 때문일 것이다.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 해당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대기업들이 자유경쟁을 제한하고 독과점 가격 등으로 초과이윤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시정하고 다시 자유로운 경쟁시장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독과점 억제를 목표로 하는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과점적 시장을 자유경쟁 시장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의 자발적 협조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일정한 시장개입과 규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 한국의 재벌개혁도 이런 측면이 있다. 특히 보수세력은 재벌개혁에서 이 측면만을 강조하고 ‘부의 재분배’ 등은 외면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과연 ‘독점적, 비경쟁적 시장’을 다시 ‘비독점적, 경쟁적 시장’으로 되돌려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기업들은 자본과 시장의 집중을 통해 끊임없이 독점을 추구하고, 국가는 지속적으로 특정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억제하는 게임을 반복하는 것이 과연 경제민주화란 말인가. 물론 아니다. 이는 철저히 자유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시장이 실패하거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적 방법이 아닌 다른 제도와 다른 운영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하나의 대안이 바로 공공경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다양한 인간의 생활방식을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시장 영역에 편입시켜 온 것이다. 수도·전기·가스·철도 등 에너지와 SOC 산업 분야가 대표적이고, 교육과 보건 같은 사회서비스 부문이 또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민영화를 ‘재공공화’시키는 경제개혁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중요한 경제민주화다.

그럼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소리 높여 합창하고 있는 3명의 유력 대선후보들은 민영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우선 박근혜 후보는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문제의식이 없다고 판단된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범위가 얼마나 좁은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러면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어떨까. 문 후보는 지난달 24일 국민명령1호 타운홀 미팅에서 “공공연구소 연구원의 60%가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져 왔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저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기관도 경쟁과 효율을 평가지표로 삼아 너무나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왔다”는 평가를 한 바 있다. 특히 ‘경쟁과 효율’만을 평가지표로 삼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히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5년 동안 무모하게 추진해 온 민영화 후과를 어떻게 수습하고 ‘공공성’에 기반한 경제민주화를 펼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야권의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안철수 후보는 민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안 후보는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이제는 더 이상 공기업의 민영화가 만병통치는 아니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차이나 텔레콤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데 민간기업 이상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죠”라고 밝혔다. 또 “모든 공기업의 민영화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기업의 성격에 따라 달리 봐야 하는데, 특히 국민의 생활과 관련해서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있는 철도·공항 등은 민영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부분이다.

이처럼 시장 실패를 극복하고 과도한 시장화를 교정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하게 공공경제 영역을 복원하고 확대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경제민주화 과제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하나 더 있다. 최근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경제도 시장경제·공공경제와 함께 우리 경제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해 줄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들이 많다. 경제위기에 사회적 경제가 강한 특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결국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독과점과 시장 실패를 ‘자유경쟁 시장’으로 바꾸는 개혁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시장 단일 경제구조에서 시장경제와 공공경제, 그리고 사회적 경제로 경제의 소유와 운영구조를 다양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시장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조금 확대된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후보들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1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복지국가, 국가에 의한 공공성 실현

오늘은 지난 시간의 공공경제에 이어서 보편 복지국가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앞서 공공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공의 가치(public value)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현존하는 철학자들을 모두 동원해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공공의 이성(public reason)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공공의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되고 나면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공공의 가치로 모두의 건강을 위해 1인당 하루 사과 두 알을 먹는 게 좋다고 합의되었다면, 이제 사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사과 두 알씩 사먹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만약 사과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보조금을 주고, 사과 물량이 부족하다면 과수원에 보조금을 주면 된다. 사실 많은 문제들이 시장에서 해결하고, 국가가 세금이나 보조금을 주어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해결 방식이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생산력을 무한히 발전시켰다. 이를 가장 많이 칭송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력 발전이며, 이는 경쟁, 끊임없는 무한의 욕구, 화폐의 축적, 자본의 탄생을 통해 가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가 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맡길 것인지, 둘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등이다. 공공경제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 학문은 행정학인데, 이 분야에서 80년대 이후 주류로 등장한 이론이 신공공관리론이다. 이는 결국 관료나 정부기구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되도록 민영화하고 규제완화를 해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신공공관리론이 퇴조하고 공공가치행정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공공의 가치를 민주주의 방법으로 실현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이다. 공공성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이 시장실패의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해결책도 다르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용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뜯어보기

이런 공공성을 국가단계에서 가장 잘 실현한 것인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가장 성공한 보편적 복지국가는 스웨덴이다. 사실 스웨덴 모델은 한 번 실패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스웨덴 병 또는 복지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90년대 초반에는 스웨덴 뿐 아니라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외환위기를 맞는다. 93년에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설계자인 마이드너(Meidner)가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95년경부터 다시 부활해서 지금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로도 불린다. 렌과 마이드너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LO(노동조합연맹)의 경제이론가이다. 이들은 직접 임금중앙교섭에 들어가며 LO의 경제정책을 만든다. 스웨덴은 LO와 사민당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LO는 한 때 노조조직률이 93%에 이르렀고 지금도 70~75%에 이른다.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LO와 관련된 셈이다. 이런 LO를 기반으로 하여 사민당은 지금까지 약 90년 정도를 집권해왔다. 현재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사민당이 얻는 득표수는 약 35% 정도라 언제나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한다. LO과 정책을 만들면 대부분을 사민당이 정책에 반영한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참 기가 막힌 모델인데 한 마디로 연대임금정책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경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경제의 문제는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직장이 함께 임금협상을 하는 중앙교섭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체 자본가 대표와 전체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산업별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표로는 LO가 나온다.

이렇게 조정했을 때 제일 손해를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이다. 이 정책이 관철된 이것이 관철되던 60년대 스웨덴의 수출대기업은 자동차, 철강, 조선업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대자동차, 포스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제일 이익을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자본가이다. 생산성 보다 낮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이익 보는 것은 수출대기업 노동자로부터 임금을 이전받은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이다. 반면 내수중소기업 자본가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므로 손해를 본다.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 기금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먼저 그래프 오른쪽의 빗금 친 부분은 내수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내수중소기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고용 인력을 줄이고 혹은 파산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래프 왼쪽의 빗금 친 부분은 수출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준 결과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스웨덴은 역시 기가 막힌 해법을 냈다. 첫 번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요즘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도입되었지만 스웨덴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굉장히 관대한 실업보험을 기초로 하며, 모든 노동자를 재교육 시켜서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기업 노동자로 이직시키는 것이다. 이를 전부 노동조합이 관리한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하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지역별, 산업별 실업보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겐트(Ghent)라 했는데, 이미 존재하던 것을 국가가 통합했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노조에게 맡겨놓았던 것이다. 스웨덴 노조의 가입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LO 소속이 되면 실업보험에 가입되고, 퇴직하면 LO의 관리 속에서 재교육과 이직을 할 수 있다. 노조가 실업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 불렀다. 이는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임노동자 기금이 도입되었다. 이는 초과이윤의 20%를 신주로 발행하여 노조가 소유하도록 한 제도이다. 신주의 20%를 노조가 계속 소유할 경우, 2~30년 지나면 모든 기업이 노조의 소유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매우 창의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가들의 반대가 격렬했고, 이 제도에 대한 입장을 놓고 사민당도 3개파로 찢어지고 말았다. 결국 LO와 사민당의 관계는 서먹해졌으며 끝내 사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여 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기금을 바탕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실현한 것이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스웨덴 경제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을 수 있었으며 사회주의로의 장기 전망도 세울 수 있었다.

흔히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을 따른다. 렌과 마이드너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완전고용과 함께 렌과 마이드너가 신경썼던 것은 임금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전후 유럽의 부흥사업을 통해 수출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고 임금도 상승했다. 그런데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완전고용과 물가는 상충함을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존재한다. 즉, 물가가 상승하면 완전고용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연대임금을 생각해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모습인데,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면서까지 거시경제정책을 고려한 것이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했던 렌과 마이드너의 경험은 독특한 물가상승이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부흥사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수출대기업의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전반적인 임금과 물가 상승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론이다. 이렇듯 스웨덴 모델은 처음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세금을 많이 걷어서 재정흑자를 유지했다. 소득과 자산에 따라 차등적 세금을 부과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했다. 모든 사람이 비용을 내고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재정흑자를 유지하며 물가상승 억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 때 렌-마이드너 모델은 순수한 케인즈주의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스웨덴 모델의 붕괴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스웨덴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국 등과 비교해서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떨이지고, 외환위기 등까지 겪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류경제학자들은 스웨덴 병을 운운하며,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의 노동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업수당으로 월급의 80%가 지급되고, 특별한 절차 없이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사실 보편복지국가는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세금을 내는 문제에서는 공공재 게임이 그대로 적용된다.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어느 정도 복지병이 나타난다. 독일과의 축구 중계가 있는 다음 날이면 직장인들의 병가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이는 미시적 요인일 뿐이다. 이것만으로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사실 스웨덴이 위기를 겪었던 근본 원인은 거시경제정책의 문제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고환율 정책이다. 수출의 비중이 컸던 탓에 경기가 나쁠 때마다 환율을 조정했다. ‘1달러=1000크로나’일 때와 ‘1달러=2000크로나’일 때를 비교한다면 후자의 경우가 수출할 때 더 유리하다. 따라서 통화가치 하락 정책을 편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금리자유화, 개방, 조세개혁이 실시된다. 이 중에 가장 큰 요인이 금리소득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준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 자본은 늘어나고 규제와 세금은 줄어들면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서 90년대에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규제 강화에 나선다. 최저임금법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륙의 노동규제, 노동자 보호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실제 법과 제도 상으로는 약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권을 거의 늘 사민당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를 경직적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노사타협으로 운영되던 중앙교섭이 깨진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금속노조이다. 이제까지 수출대기업이 희생해왔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더 이상 희생을 견디지 못하고 교섭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편복지도 어려워진다.

마이드너는 이런 상황을 반성하며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쓴다. 그는 통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계속되면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애써 희망을 찾으며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과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스웨덴 노동운동의 힘이었으며, 이를 다시 회복할 때 복지국가도 부활할 것이라고 보았다.

 

스웨덴은 어떻게 부활했나?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은 부활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EU에 가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고정환율제가 되었고,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긴축을 단행한 덕분이었다. 세부적으로는 결렬되었던 중앙교섭이 산업별, 지역별로 분권화되어 부활했으며, 연대임금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본가들의 요구가 컸다. 기업별 교섭이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임금이 인상되고 돌발적인 파업이 일어나면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서비스에 의한 고용율 회복도 경제 회복에 큰 힘이 되었다. 스웨덴의 완전고용이 위협받을 때 가장 강력히 버텨준 것이 사회서비스 분야이다. 스웨덴의 복지는 보편현물복지로 교육, 의료, 보육, 돌봄 등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모두 공무원이다. 사회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공무원도 늘어나고, 고용율도 올라갔다. 또한 현재 LO의 주축세력 역시 공공노조이다. 우리의 경우 현물복지가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수당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간시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이 보육비의 증가, 보육원의 수입 증가로만 이어진다. 아동수당이란 결국 수요 쪽에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수요곡선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즉, 시장에만 맡기고 보조금을 주면 가격이 올라간다.

성평등 정책과 평등교육을 강화하여 여성 고용율을 높이고 IT와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높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보편복지가 가능하려면 고용율이 높아야 하고, 여성 고용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안정적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경제가 안정되어야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 세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안정, 물가 안정 등을 통해 경기가 증폭되는 것을 억제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위기로 그 중요성이 대두된 자본통제나 금융규제, 투기억제, 자산가격 안정 정책들은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복지국가의 성패는 안정적 거시경제정책의 마련에 달려있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이다. 여기에 더불어 보편적 복지국가가 공유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무임승차를 줄여갈 수 있는 신뢰와 협동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12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7)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공공선택이론과 사회선택이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공공성은 각 집단 고유의 ‘정의’ 관념에 입각하여 사회적 공론에 의해 결정된다. 공공성은 시장실패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에서 인정하는 시장실패로는 외부성, 공공재, 독점의 3가지가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실패에 대해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해결책은 시장과 유사한 방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공공재에 대해서는 린달균형(Lindahl equilibrium)이란 것을 통해 해결한다. 린달은 스웨덴 경제학자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 수요 곡선은 개별 수요 곡선을 합하여 구한다. 예를 들어 음료수 한 병의 가격이 500원일 때 각 사람마다 원하는 개수를 구한 후 다 더한다.  하지만 공공재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비배재성과 비경합성이라는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화가 공급되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소비가 가능하다. 즉,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린달이 내놓은 해법은 수량이 정해져 있을 때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을 더해서 가격을 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공공재의 경우 사람들이 자신의 선호, 자신이 필요한 재화의 양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린달균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물론 이 경우 정부실패의 결과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독점의 경우, 경쟁을 도입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독점의 경우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 자연독점이란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한계비용이 계속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IT산업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경우 복제비용은 0원이다. 그렇다면 최대로 생산하여 0원에 파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가장 이로운 상태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지적재산권 등을 도입해서 가격을 상승시킨다. 이 외에도 네트워크 산업이라 불리는 전기, 철도, 수도, 가스, 운편 등도 모두 자연독점이다. 이 같은 자연독점은 그 자체를 분할시켜서 독점을 해결하려고 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가격규제를 한다.

외부성의 경우, 피구라는 영국의 경제학자가 해법을 제시했다. 긍정적 외부성을 창출하는 외부선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고, 부정적 외부성을 창출하는 외부악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서도 설명한 바 있었던 피구 해법이다. 그에 비해 코즈는 재산권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비용과 편익을 계산할 수 있다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개인들끼리 거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코즈 정리를 내놓았다. 코즈 자신이 그렇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자들은 코즈 정리를 국가 개입 배제의 원리로 사용해왔다.

위의 세 가지 해결책을 종합한 것이 주류경제학의 공공경제학에서 가르치는 공공선택 이론이다. 대표적 학자는 뷰캐넌(Buchneon), 털럭(Tullock)이 있다. 공공경제학의 내용은 결국 시장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학도 사회선택이론에서 애로우(Arrow)와 센(Sen)이 정의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선택이론이란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사회전체적인 복지와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원배분 절차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개인이 모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려도 사회 전체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후생경제학자이며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로우는 일관성, 만장일치, 비독재성, 보편성, 독립성 등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5개 기본조건을 충족시키는 절차는 없다는 불가능성의 원리를 내놓았다. 이는 다시 말해 인류가 이성으로 사회 전체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체제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1998년 아시아인으로서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센은 정교한 수리모형을 개발하여 앞의 5개 조건을 계량화하여 사회전체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개개인의 효용의 합이 가장 크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후생을 극대화하면 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와 함께 센은 그동안의 경제학이 주로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주된 목표로 삼았으나 앞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 정의라는 정치사회학적 요소도 함께 고려해 분배정의 실현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성을 갖는 재화의 종류

구체적으로 공공성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를 분류하고, 그 성격에 맞는 공급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공공재와 공유자원

공공재와 공유자원은 사회적 딜레마에 속하므로 명백히 공공성을 지닌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는 공급할 수 없거나 자원 고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공공경제나 사회경제에서 공급하거나 관리해야 할 분야이다.

2) 필수재(necessary goods)

식량, 의료 등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나 서비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 이상이 공급되어야 한다고 합의하는 재화이다. 수요곡선의 균형가격 아래에 생기는 수요, 다시 말해 돈이 없어 소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시장의 근원적 한계이며 이는 아담 스미스와 마샬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재화의 공급에는 국가재정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3) 네트워크재(network goods)

네트워크재는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한계비용은 감소하고 한계효용은 증가하는 산업을 말한다. 이에 따라 기술적 자연독점이 발생한다. IT산업이나 전기, 철도, 수도, 가스, 우편 등 네트워크를 가진 산업들이 이런 성질을 가진다. 우리가 흔히 공공서비스라고 부르는 산업이 여기에 속한다. 대부분의 네트워크재는 필수재에 속하므로 평등의 요구가 강해서 교차보조금을 주어 지역별, 계층별로 고른 공급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또 초기 설립비용이 커서 국가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4) 가치재(merit goods)

머스그레이브(Musgrave)는 예방 의료, 의무 교육 등 개인에게 맡겨 둘 경우 과소소비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가치재로 정의했다. 최근 행동경제학이 밝힌 것처럼 인간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 대단히 높거나 자신에 대한 낙관이 과도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재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의료, 교육 등은 국가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음의 가치재는 똑같은 이유로 과잉소비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음주, 흡연이나 도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각 가치재의 성격에 따라 국가가 공급하거나 사회적 보험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 사적 공급을 하되 규제하는 방식(예컨대 죄악세를 부과하는 경우). 사회적 유도와 권장 등이 제시된다.

5) 안보재(security goods)

안보재란 식량, 에너지, 국방 등 국가나 공동체의 안보에 필수적인 재화를 말한다. 시장이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가격의 변화와 함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데, 안보재의 경우 이 같은 불안정한 상태를 허용할 경우 개인이나 공동체, 국가가 존립의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국가나 공동체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6) 체제재(system goods)

금융, 언론 등 사회경제 체제를 구성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체제는 그 자체로 공공재이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최근의 세계금융위기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이라는 규제 대상을 설정하여 금융이 체제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거시 건정성 규제(macro prudential regulation)라는 새로운 규제수단을 채택하도록 했다.

한편 언론의 경우 민주주의는 공공재이며 언론은 민주주의의 존립에 필수적인 재화라는 점에서 체제재에 속한다. 그러나 언론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므로 공공성이 강하다 하더라도 국가가 소유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공공성을 관철시키는 방식은 시민의 참여와 협동이 되어야 한다.

7) 기타

공공성은 사용가치의 특성에 주목하며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폭넓고 다양하게, 또 구체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공공성을 지닌 재화의 목록은 상식에 기초한 아주 소박한 설명이다. 더구나 시장실패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므로 미래에 새롭게 등장할 공공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검토해 볼만한 이론을 몇 가지 더 소개하면 우선 사회철학자 테일러(Taylor)가 제시한 환원할 수 없는 사회재(irreducibly social goods)라는 개념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런 사회재는 시장 밖의 조직인 국가나 공동체,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 자선단체 등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 효율과 평등을 높일 수 있다.

다음으로 이탈리아 경제학자들이 강조하는 지위재(position goods)와 관계재(relational goods)가 있다. 지위재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되는 재화이다. 소위 말하는 명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사회적 분리와 질투를 유발하여 자신의 만족감을 높이는 재화나 서비스들이다. 반면 관계재란 사람들 간의 관계, 공유 속에서 효용이 더 높아지는 재화를 말한다. 사회서비스 중에서도 돌봄 노동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즉, 지위재가 부정적인 외부성을 발생시킨다면 관계재는 긍정적인 외부성을 창출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지위재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관계재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면세를 해줄 수 있다.

공공성이란, 사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공적 가치를 공론장에서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합의하여 공공가치 행정의 방식으로 조달하고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공성의 대상이 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관해 어떤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이후 시장실패론 등 산업구조를 분석하여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공공성의 특징을 파악하여 적절한 해결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공공성이라고 해서 언제나 공공경제 혹은 국가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재화나 서비스, 산업분야에서 공공경제와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경제의 최적 조합을 의식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0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6)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공공경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시장경제, 사회경제, 공공경제의 의미를 한 번 정리해보자. 이제까지 우리의 머리속에서 가장 일반적이었던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달성하며, 이기적 인간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를 전제로 한다. 사회경제는 협동을 통해 연대를 달성하며, 상호적 인간인 호모 리시프로컨(Homo-reciprocan)을 전제로 한다. 공공경제는 국가라는 권력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평등을 달성한다. 여기서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호모 퍼블리쿠스(Homo-publicus)를 전제로 한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공공성은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많이 쓰이지만 학계에서 제대로 정의된 바는 없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서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굵직한 의제로는 국민연금개악 저지, 의료 민영화 저지, 신자유주의 교육 반대, 한미FTA 반대 등이다. 각 의제에서 공공성은 모두 시민의 삶의 질이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시장에 맡기면 삶의 질을 보장받지 못하는 영역, 따라서 시장에 맡기면 안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가 맡아야 하는 영역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전히 애매하다.

영어로도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굳이 번역하자면 publicness나 publicity가 되겠지만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이기도 하며, 무엇인가 부족하다. 서구 문헌에서 우리의 공공성에 해당하는 용어들을 찾아보면 일반이익서비스(services of general interest), 공공의 가치(public value), 공공의 목적(public objectivity), 공익(public interests), 공공규범(public norm), 집단이익(collective interest) 등이 있다. 위의 용어들은 모두 사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 사적인 것을 넘어서 하나의 총체로 집계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면 공(公)과 사(私)의 구분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맹자나 공자 시대의 '공'은 국가, '사'는 주로 개인이나 가족을 의미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은 국가를, '사'는 시장을 의미한다. 나아가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사'는 시장에서의 자유, 결국 재산권이 된다. 그리고 '공'인 국가는 ‘사’인 재산권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공공성과 관련된 용어들은 매우 폭넓게 선함(goodness)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르겐센(Jorgensen)과 보즈만(Bozeman)이 230개 논문을 조사한 결과 공공성과 관련된 가치들은 크게 인간의 존엄성, 지속가능성, 시민참여, 개방성, 안전성, 타협, 진실, 견고함이 있었다. 이 가치들마다 또 세부적인 가치들이 매우 다양하게 포괄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공성이 추구하는 이런 가치들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다. 예컨대 중세시대에는 주요 도로변의 여인숙은 손님을 거부할 수 없었다. 사적 소유물이지만 공공성을 가졌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사적인 것과 대립되는 공공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는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공적인 영역이란 개방과 소통의 광장이라 표현했던 하버마스(Habermas)의 개념과 시민으로서 개인이 공동의 관심사를 다루는 곳이라 표현했던 아렌트(Arendt)의 개념이 적절하다. 최근에는 롤스(Rawls)와 센(Sen)의 정의론이 더해져서 공공이성(public reason)에 기초한 숙의민주주의에 의해 합의되는 것이 공공성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공공성이란 공동의 가치 혹은 공익이라는 목표가 있고, 공공이성이 공론의 장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결국 공공성은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규범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는 훌륭한 이론이 정의론이다. 한 사회가 어떤 정의론을 택하느냐에 따라 공공성의 내용은 달라진다. 공공경제는 시장실패의 상황에 정의론을 결합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정의론은 크게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자유주의(Liberalism), 공동체적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자유지상주의는 자연권적 자유지상주의(Natural-rights libertarianism)와 경험적 자유지상주의(Empirical libertarianism)으로 구분된다. 노직(Nozick)과 같은 자연권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사적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강탈하지 않았다면 부를 상속받거나 보유하거나 거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정의이다. 단, 부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부는 재분배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개입은 매우 제한된 상황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국가는 거래질서 및 재산권을 보호하고, 기본적인 공공재 공급에만 개입해야 한다.

하이예크(Hayek)나 프리드먼(Friedman)과 같은 경험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기구라 생각한다. 따라서 시장이 존재하는 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전체주의를 초래해서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생존권 보장 차원의 공공재 공급과 빈곤구제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진보주의로 번역되기도 한다. 자유주의는 공리주의와 롤스의 사상을 토대로 하는데, 자본주의가 효율적인 제도이지만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정부가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세부적으로 마샬(Marshall)과 에지워드(Edgeworth)가 발전시킨 평등주의적 공리주의와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평등적 공리주의는 사람들 간 소득의 한계효용이 균등하지 않다면 정부가 재분배에 나설 수 있다고 보았다. 모두의 한계효용이 균등할 때 전체의 효용도 최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 간에는 효용의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서수적 효용이론에 의해 폐기되었다.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정의를 찾아내는 일반원칙을 만들어 냈다. 첫 번째는 자유의 원칙으로 각각의 개인들이 타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적극적 기회의 평등 원칙이다. 같은 능력,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롤스는 이 원칙을 생산수단 소유의 평등으로까지 적용하였다. 세 번째는 차등의 원칙이다.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이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롤스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본재, 필수재는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롤스의 이런 주장은 사실 사회주의보다 급진적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잘 만나서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다면 이는 롤스의 관점에서는 정의롭지 못하다. 그럼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차등의 원칙에 따라 무조건 약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롤스는 차등의 원칙을 공평하게 적용하기 위해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태어나질 모르는 상태에서 정의 원칙을 합의하자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통해 개인적 이해를 떠난 정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동체적 자유주의자는 대표적으로 센(Sen)을 꼽을 수 있다. 센은 정의라는 개념은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서 논의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어느 사회에도 논리적인 상황만을 따져서 정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무지의 장막을 동원한 롤스의 정의를 비판했다. 정의란 공동체와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롤스의 생각처럼 모두에게 다 똑같은 기본재가 지급되는 것이 평등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능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과 장애인에게 필요한 기본재가 동일한가 혹은 장애인에게 기본재만 지급되면 그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분배를 결정하는 기본이다. 따라서 평등하기를 원한다면 생산수단을 공유하면 된다.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공황의 필연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정부는 항상 지배계급을 우대한다고 본다. 복지국가 역시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에 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정 정도 혜택을 분배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본다.

 

경제학의 가치는 오로지 효율

그런데 공공성이나 정의는 둘 다 경제학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치이다. 사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수없이 많지만, 경제학에서는 가치를 다루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효율성이다. 우리사회에서 경제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무가치는 굉장히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가치가 없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자연과학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효율성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특히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제학의 효율성은 파레토 효율을 뜻한다. 파레토 효율은 파레토 개선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파레토 개선은 누구 한 사람의 효용도 떨어지지 않은 채로 다른 한 사람의 효용이라도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아무도 현 상태에서 나빠지지 않으면서 누군가는 더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다면 파레토 개선이다. 그리고 더 이상 파레토 개선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이 파레토 효율이다.

이는 누구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파레토는 분배 상태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사회에 독재자가 1명 있고, 현재 독재자와 일반 국민 사이의 자원의 분배 상태가 9:1이라고 하자. 독재자 한사람이 9를 갖고 나머지 국민이 1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독재자의 몫만 증가해서 10이 되었다고 하자. 나머지 국민들의 몫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1을 유지했다. 이는 분명 파레토 개선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태인가?

파레토 효율은 상대성이 없다. 이는 경제학의 특징인데,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효용은 비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1을 얻었을 때의 효용과 일반국민에게 1을 돌려주었을 때의 효용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엄격하고 과학적인 정의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인간적인 정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는 파레토 효율만을 인정하며, 이는 완전경쟁시장에서 달성된다고 본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이다. 후생경제학의 제1명제는 시장경쟁균형은 파레토 효율적이라는 것이며, 제2명제는 어떠한 배분적 효율성도 시장경쟁균형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시장에 맡기면 파레토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파레토 효율은 정당한가?

이를 그림으로 살펴보자. 경제학에서 파레토 효율은 주어진 투입 요소로부터 최대의 생산물을 획득하는 생산의 효율성, 주어진 생산기술과 소비자의 기호를 감안하여 가장 최적의 생산물 조합을 선택하는 생산물 조합의 효율성, 소비자들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소비의 효율성을 모두 만족한다. 이렇게 세 가지 효율성이 모두 만족되는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에지워드 상자(Edgeworth Box)이다.

위 그림의 에지워드 상자는 승연과 다연 사이에 배분되는 옷과 음식을 나타낸다. 옷의 총생산량은 100이고, 음식의 총생산량은 200이다. 이 상자 안에서 결정되는 모든 점은 생산가능곡선과 무차별곡선이 만나는 점으로서 생산의 효율성과 생산물 조합의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한다. 그리고 상자를 가로지르는 굵은 선분 GH에서는 승연과 다연의 옷과 음식에 대한 한계대체율이 같아서 소비의 효율성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즉, 선분 GH 위의 점들은 모두 파레토 효율이다.

A점은 균등 분배점으로 승연과 다연이 각각 옷과 음식을 절반씩 나눠 갖는 경우이다. 하지만 선분 GH 위에 있지 않으므로 A점은 파레토 효율이 아니다. 승연에게 D점은 A점과 동일한 효용 R2를 준다. 하지만 다연에게는 D점의 효용 M4가 A점의 효용 M2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A점에서 D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파레토 개선이다. 다연에게 B점은 A점과 동일한 효용 M2를 준다. 하지만 승연에게 B점의 효용 R4는 A점의 효용 R2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A점에서 B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파레토 개선이다. 종합하면 회색의 볼록렌즈 모양의 안쪽에 있는 선분 BD위의 점은 A점보다 파레토 우월한 점들의 집합이다.

에지워드 박스를 통해서 정해진 점은 모두 파레토 효율을 만족하므로 경제학에서는 정의로운 점이다. 이렇듯 시장은 언제나 파레토 효율을 만족시킨다. 이것이 앞서 본 후생경제학 제1명제이다. 또한 재분배 정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 여기서의 함정은 초기 분배 상태가 공평한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레토 효율과 정의론

앞서 살펴본 네 가지 정의론을 에지워드 상자를 이용해서 비교해보자. 먼저 자유지상주의 중 노직이 주장한 자연권적 자유주의는 초기 분배점이 어떤 점이든지 상관없이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다른 점을 이동했다면 정의롭다. 예를 들어 초기 분배점이 C점이라면 선분 BD 중 어느 점으로 이동하더라도 최적의 분배상태가 된다. 정의로운 상태로 재분배는 필요하지 않다. 하이예크와 프리드먼이 주장한 경험적 자유주의의 경우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재분배를 인정하므로, 다연과 승연의 최적 생계수준이 각각 E점과 F점이라면 선분 EF 위의 점은 모두 최적 분배상태이다.

자유주의의 경우 기수적 효용이론을 선택해서 두 사람의 효용이 동일할 때 사회 전체의 효용이 최대가 된다고 판단한다면 A점이 바로 최대가 되는 점이다. 선분 BD 중 어느 점으로 이동하더라도 파레토 개선이 일어난다. 서수적 효용이론을 채택하는 경우 사람들 간의 ?은 비교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선분 GH 위의 모든 점이 파레토 효율을 만족한다. 롤스의 정의는 최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배분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초기 분배점이 다연이 불리한 상황일 때 다연의 효용이 증가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정의롭다. 승연의 효용이 줄어들더라도 정의롭다.

사회주의는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기 때문에 A점이 최적 분배상태가 될 것이다. 시장이 존재하는 시장 사회주의라면 A점에서 C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효용을 증가시키므로 이는 사회주의에서도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의 재분배는 롤스의 재분배보다 더 급진적일 것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7)편으로 이어집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