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8.04 18:43

정부의 부적절한 경제정책에 적극 대응해야  



한국이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기업과 가계의 소비, 특히 내수 지표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기업의 경우에는 제조업 생산과 설비투자의 하강 추세가 이미 상반기부터 시작되었고, 가계의 소비지출은 내구재와 준내구재를 중심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평상시 경제는 통상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반대로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실업률이 하락하면) 수요가 늘어나서 물가가 오르고,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면(실업률이 증가하면) 물가가 내려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정책이 크게 실패하거나 외부에서 큰 충격이 오면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상승하기도 한다. 1970년대의 석유 파동이 그 예이다. 2008년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 역시 정확히 그렇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에 노동자들은 저고용-고물가-저성장의 3중고에 시달릴 전망이다.

정부의 긴축통화정책은 양극화 심화시킬 것

주류경제학에서는 이런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표현보다는 이른바 '총공급 충격에 의한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수요 확대로 촉발되는 인플레이션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짧게 줄여 '비용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의할 것은 ‘비용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물가억제정책으로 흔히 사용되는 긴축통화정책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긴축통화정책은 ‘수요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유용하지만, ‘비용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부적절하다. 물가억제의 순기능보다는 경기침체의 역기능이 훨씬 큰 것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정부가 시사하고 있는 금리인상 정책은 금융시장의 불안정,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경착륙,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이자비용 상승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정부가 임금억제 등의 ‘소득정책’을 펼치는 것은 노동자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주시해야 한다.

노동계, 재분배와 양극화 해소 정책 적극 요구해야

이렇듯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에서 정부는 계속해서 부적절한 경제정책을 펼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보 진영, 특히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노동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우선 노동계는 임금억제를 통한 소득정책에 대해 ① 임금 때문에 ‘비용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억제가 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② 중앙-산별 교섭체제가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정부의 강압적 임금억제 정책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차별적으로 고통분담을 집중시킬 것이며 ③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경기하강을 장기화시키게 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대응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임금, 저소득층의 소득확대에 초점을 둔 재정정책이 경기침체 기간을 줄일 수 있음을 적극 주장해야 한다. 예컨대 지난 6월 발표된 정부의 세금환급(tax refund) 방침에 대해 총론에서는 찬성할 수 있지만, 각론에서 드러나는 형평성의 문제나 수혜대상에서 최하위 소득층이 배제된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계가 강한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노동계에 주는 교훈

특히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스태그플레이션 이후에 보다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섰다는 역사적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약 40년 전인 1970년대에 대부분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닉슨 정부가 베트남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임금 및 가격 통제 정책을 펼쳤으나 물가억제에 실패하고 연이어 1, 2차 석유 위기를 겪으면서 기나긴 침체의 길에 들어섰다.

이 기간 동안 노동운동은 후퇴했으며, ‘자유방임 시장’을 앞세우는 통화주의 경제학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공화당 내에서도 우파였던 레이건(재임기간 1981-1989)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한국경제의 취약한 구조적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 등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원자재 가격의 폭등, 그리고 이런 외부 요인이 그대로 한국경제에 전이되도록 만든 ‘외환 및 주식 시장의 완전 자유화’에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의 문제점들은 노동계에서 줄곧 지적해 온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그 문제가 드러나 위기를 가져왔지만, 위기를 잘 활용한다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상동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연구원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7.29 15:21

<2008년 스태그플레이션의 주범은 신자유주의> 보고서 원문 보기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 인플레이션(inflation)인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지가 공존해 있는 상태이다.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상태라고 볼 수 있다.” 1965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영국 의회의원 매클리오드의 말이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현재 방향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는 게 맞다" 2008년 7월 28일 한국의 경제정책 수장인 강만수 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수십 년 만에 자본주의 경제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부활했고, 재정부 장관의 발언으로 한국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사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그런 현상이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되어야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7월 23일, “2008년 하반기 이후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Mild Stagflation)’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는데, 한국경제의 구조가 세계경기뿐 아니라 유가에도 민감한데다 외부충격에 의한 내수의 완충역할도 거의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평균적인 세계경제 상황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술 더 떠서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주장을 실은 보고서를 7월 27일 발표했다. 연구원은 과거 일본 경제기획청에서 사용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지수를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OECD국가들 평균보다 무려 5배가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보수적 집단인 기업경제연구소와 가장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재정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인정하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된 셈이다.

물가 급상승과 더 심각한 고용 하락, 내수 침체

사실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음을 판단하는 것이 그리 복잡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4.5~5%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보이고, 소비자 물가는 한국은행의 관리 상한선인 3.5%를 벗어나 뛰어오르고 있다면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봐야 했다. 소비자 물가는 2008년 1월에 이미 3.9%를 기록하면서 높아져 있었고, 성장률도 3월부터 대부분 기관들과 국제 투자은행들이 4.8% 미만으로 낮추기 시작했다. IMF와 OECD는 아예 4.5% 미만으로 잡았다. 그렇다면 2008년 상반기에 이미 상황은 결정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장 단순하게 확인할 수 있는 두 개의 지표는 소비자 물가와 실업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업률은 통계청도 인정하듯이 현재의 고용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므로 취업자 증가수로 살펴보자.

[그림1]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단 소비자 물가는 6월 5.5%까지 치솟았고 석유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 역시 올해부터 빠르게 치솟고 있다. 그런데 이들 물가 급등은 경기활황에 따른 수요확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압박 때문이었다.

반면 취업자수 증가는 2006과 2007년 30만 명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던 것에서 빠르게 하강하여 2008년 6월에는 14만 7천명까지 추락했다. 이와 같은 물가상승과 고용사정 악화 추세는 올해 하반기 내내 확대되며,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데 거의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경제는 확실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진단해야 옳을 것이다.

더욱이 [그림2]에서 보는 것처럼, 그나마 올해 경제성장률 1분기 0.8(전기 대비), 2분기 0.8(전기 대비)마저 주로 두 자리 수를 넘는 수출호조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데, 외환위기 이후 약화된 내수경기가 올해 들어 더욱 둔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경기침체 강도는 배가된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부동산 가격은 불안정하고 주식과 펀드는 폭락하는 등 자산가치 하락조짐이 심상치 않은 대목도 현재 상황의 위험도를 가중시키고 있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과 폴 볼커식 해법

역사상 자본주의 경제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공인된 시기는 1970년대뿐이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부터 1981년 사이에 인플레이션은 15%까지 뛰어오르고 동시에 실업률도 9%로 높아졌으며 시차를 두고 세 번의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했다.

이때 스태그플레이션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이 폴 볼커(Paul Volker)이다. 카터대통령에 의해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지명되어 1987년 그린스펀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연준 의장을 맡았던 폴 볼커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초고금리, 초긴축을 강행하여, 당시 금리가 무려 20%까지 올랐다. 그린스펀과 마찬가지로 폴 볼커도 역시 “인플레이션만 잡으면 경제성장과 고용증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는 믿음에 기초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집중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림3]에서 보는 것처럼 1981년 13.5%에 달했던 미국의 물가는 1983년 3.2%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한 볼커의 금리인상과 초긴축,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와 규제완화가 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초창기인 1981년 7월~ 1982년 11월 경제성장은 -2.0%로 다시 추락했고, 실업률은 10% 수준으로 치솟아 미국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다.

결국 신자유주의를 탄생시켰던 폴 볼커와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대처법은 미국 국민의 지독한 고통을 볼모로 한 것이었다. 그 조차도 물가 진정 외에는 1980년대 미국 경제를 제대로 회생시키지는 못하고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양산하여 1985년 플라자 합의에까지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이들이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경제의 전성기인 1990년대에는 동구사회주의 붕괴와 미국 단일패권의 형성, 동유럽과 러시아와 중국 등 신흥시장의 급부상, 그리고 금융과 IT산업의 부흥이 결합되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즉, 볼커와 레이건의 경제정책의 효과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특히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에도 영향을 준 고금리, 긴축정책은 1998년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에 고통을 안겨준 실패한 정책이다.

그러나 고금리, 통화긴축, 규제완화, 감세 등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미국과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 경제로 전환시켜간 것은 확실하다. 나아가 노동운동의 붕괴,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소득 하락과 양극화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분기점이 되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림4]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폴 볼커와 레이건의 경제정책이 시작되던 시점부터 노동자의 분배몫이 생산성 상승속도와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에게는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분배악화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약하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폴 볼커의 해법, 신자유주의 해법은 다수 노동자와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었으며, 그나마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은 이후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인플레이션만 잡으면 성장도 되고 고용증대도 될 것이라는 폴 볼커의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을 보면서 금리인상과 초긴축, 감세 정책 등을 동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정책결정자들이 과감하게(?) 국민의 희생과 고통을 요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2008년 한국 상황에 폴 볼커식의 국민희생을 압박하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일정한 세금인상과 정부지출 증대 등을 배합하고 기술혁신을 추진하는 등 미국, 영국과는 다소 다른 대책을 세웠던 일본이 1980년대에 성장률과 물가안정에서 더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는 주장은 그나마 좀 나아 보인다.

2008년 스태그플레이션은 다르다

최근 상황에 가장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영역은 아무래도 증권투자자들인 듯 싶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주식투자법’이 언론지상에 빈번하게 오르내리고 있는데 대략 현금과 상품, 실물을 확보하라는 따위의 주문들이 주종을 이룬다. 여전히 노동보다는 자본의 순발력이 뛰어난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선 2008년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즉,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수습했던 신자유주의 경제가 바로 지금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80년대 이후 경제의 금융화와 금융규제 완화는 각종 첨단 파생상품기법을 만들어냈고, 이들을 취급하는 헤지펀드를 키웠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전 세계로부터 거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금융시장을 키웠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미국 국내 주택금융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금융문제로 전환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편에서는 미국과 세계의 실물경기 침체를 불러일으켰고, 다른 편에서는 달러가치 하락과 금융자본의 실물시장 이동을 부채질하여 석유와 원자재, 곡물시장에 거대한 투기적 수요를 일으킴으로써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다.

이렇게 해서 2008년 판 스태그플레이션이 30년 만에 재현된 것이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최근 1년 동안 무려 아홉 차례에 걸쳐 금리를 3.25% 내린 것은 인플레이션 때문이 아니라 금융위기를 막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월가가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으라고 훈수를 두면서도 막상 미국에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결국 30년 전에는 신자유주의 해법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잠재웠는지 몰라도, 지금은 신자유주의 자신이 스태그플레이션 발생의 원인이며 주범인 처지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식 규제완화, 감세, 긴축, 고금리 따위로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한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오히려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응했던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해법을 역적용해야 한다.

금융 규제 강화, 재정정책을 통한 내수회복이 필요

지금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현재의 금융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특히 금융감독 강화로 전환하고 있다.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금융 불안정성과 얽혀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와 다르며, 금융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금융에 대한 감독과 규제의 강화밖에 없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완전고용과 복지확대를 이어가던 끝지점에서 발생한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과는 달리, 수십 년 동안 양극화 확대와 복지 축소가 심화되던 상황에서 맞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지금 상황의 특징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폴 볼커식으로 물가 상승을 막는다면서 극단적인 경기침체와 국민의 고통감수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사고다.

자본주의가 이미 한 번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하더라도, 양극화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물가 안정이 될 때까지 지금 이상의 경기침체를 견뎌낼 수 있는 내성을 갖고 있지 못하며 정책결정자들이 이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무조건 긴축을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며, 지금은 정부가 한편에서 적극적 재정정책을 구사하고, 이를 위해 감세조치를 중단하여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요약하면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발생된 것이며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와 연동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점에서 70년대의 그것과 다르다. 현재는 규제완화, 감세, 긴축 등의 정책적 수단들을 동원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금융을 중심으로 한 규제와 감독강화로 금융 불안정성을 통제하면서 일정한 재정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내수회복을 촉진시켜야 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경제정책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도 전혀 이 지점에 대한 자성이나 문제점에 대한 인정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히려 다시금 국민들에게 물가를 잡을 테니 경기침체의 고통을 감수하라는 요구를 한다. 규제완화와 감세확대를 주장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며 자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수 국민과 진보도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만 하고 있을 시점이 아니다. 조만간 모든 고통의 책임이 국민들에게 넘어올 수도 있다.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원인 진단에 기초하여 적극적 대응을 요구해야 하며, 특히 신자유주의에 의해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 타개를 기점으로 한국경제 구조전환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치 40여년 전 케인즈주의 경제시스템이 스태그플레이션 대처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으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지금은 신자유주의를 벗어나는 구조 전환을 시작할 때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7.23 15:19

중소기업에까지 전파된 스태그플레이션

글로벌 경제와 함께 한국경제도 2008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에 진입했다. 물론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조차 수출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아직 큰 충격 없이 나홀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오히려 상반기 정부의 고환율 정책 덕택에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더 증가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은 (1) 일차적으로 임시, 일용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감소에서 나타나고 있고 (2) 특히 자영업자수가 1년 전에 비해 약 10만 명이 줄어드는 등 내수 부진과 물가상승은 자영업을 한계상황에 내몰고 있으며 (3) 일부 소기업들이 줄어들고 고용인원이 감소하는 등 중소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임시, 일용노동자 → 자영업인 → 소기업으로 전달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은 하반기에 광범위하게 중소기업 생산 기반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기업들에게 특히 강화되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미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업황 실적이나 전망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 상승한 것을 제외한다면 중소기업의 경기는 2007년 4/4분기를 정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특히 5,6월부터 급격히 꺾여가고 있는 추세다. 7월 업황 전망치 78.2는 2005년 2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다.

원자재가격 폭등, 이를 가중시킨 고환율 정책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는 급격한 달러 약세를 초래했고 월가에 집중된 과잉 금융자본을 원자재, 식량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2007년 4/4분기부터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였고 이는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수입원자재 가격의 급등은 중소기업들에게 제조원가 상승의 부담을 주었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납품원가에 반영시켜주지 않았고 일부는 오히려 생산성 향상을 들어 원가를 인하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원자재인 철스크랩(고철)과 선철(쇳덩어리) 가격이 각각 190%, 121% 올랐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주물제품 가격은 20~30% 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2월 29일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회원들이 납품단가 현실화를 내걸고 납품중지 등의 파업을 하는 상황에 이른다.

여기에 추가부담을 얹어준 것이 이명박 정부 초기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인 3월 고환율 정책을 표방하면서 최대 950원대에 머물던 환율은 3월 18일 1,021원대까지 치솟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이후 환율은 980원선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고 상반기가 끝나는 6월 30일 1,043원을 기록하며 상반기를 마감한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통상 달러로 표시되는 계약통화기준 수입가격보다 원화 표시 가격 증가율이 더 낮았다. 그 이유는 환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즉 당시까지는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을 환율이 완충시켜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3월부터 고환율이 시작되면서 달러표시 수입가격보다 원화표시 수입가격 상승률이 7% 이상 더 오르더니 6월에는 환율에 의해 수입가격 추가 상승분이 무려 17.5%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미 32.5% 오른 달러표시 수입가격 상승률을 49%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고환율이 담당한 것이다. 즉, 환율이 수입가격 상승분을 완충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대시키고 있다.

고환율 기조로 증폭된 수입물가는 6월에 49%까지 치솟았고, 수입 원자재 가격은 무려 92%까지 상승한다. 중소기업의 경영에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가장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유가 폭등은 중소기업의 물류비 상승 부담까지 크게 높였다.

중소기업인들 원자재 가격 반영 명시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요구

정부의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는 실효성 없어원자재 가격 부담이 계속 높아지자 중소기업인들은 지난 5월 ‘납품단가현실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대처강도를 높였다.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게 된 공정거래위원회는 6월 12일, 절충안으로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은 7월 11일 정부의 안을 거부하고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 100만인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법제화 방안은 대략의 구조로 볼 때 다음과 같다 (1) 납품단가 조정협의 조건과 방법을 하도급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의무화 한다. (2) 중소기업은 계약서에 따라 원자재 가격 등이 인상되면 대기업에게 납품가격 조정협의 신청을 하고, 대기업은 이를 응해야 한다. (3) 구체적 단가 조정은 여전히 원사업자-수급사업자의 자율결정으로 한다. (4) 대기업이 단가 조정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에 따라 제제조치를 취한다.

중소기업인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정협의제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1) 하도급계약서 작성이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대기업들이 하도급 계약서 자체를 안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하도급 계약서에 납품단가 조정 방법을 명시하도록 하는 것은 큰 실효가 없다. (2) 현재에도 납품단가 분쟁 조정 신청을 하면 거래가 단절되는 경우가 무려 82%에 달한다. 워낙 교섭력 격차가 크고 거래단절이 빈번하여 50% 이상의 중소기업이 납품단가 인상 사유가 발생해도 참고 넘어간다는 것이 조사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과 교섭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현재 중소기업인들의 반응을 보면 “원자재 가격이 급변했을 때 이를 납품단가에 ‘연동’될 수 있도록 하지 않고 ‘조정’하도록 규정하면 실제로 조정에 나설 중소기업이 어디 있겠나”,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교섭력 격차로 인해 실효성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납품 중소기업의 거래단절을 촉발하고 가격 협상의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 “이제는 곪을 대로 곪아 터졌기 때문에 연동제의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산업 자체에 엄청난 파장이 있을 수 있다”, “세계에서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라는 게 드물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관계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인들이 요구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는 다음과 같다. (1) 우선 하도급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반영을 명시한다. (2)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부당한 하도급 대금의 결정 유형’에 ‘원자재 가격 변동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를 추가하여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한다. (3) ‘중소기업 원가계산 센터’를 설립하여 원자재가격 변동에 따른 가격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납품단가와 관련된 분쟁조정 기능을 부여한다.

환헤지 파생상품(KIKO)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 분산 능력이 비교적 취약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은행들(주로 외국계 은행들)은 상당규모의 통화옵션 상품, 즉 환헤지 파생상품을 판매했다. 환헤지 파생상품이란, 주로 외화 결재를 하는 수출기업들이 급격한 환율변동에 대처하고자 달러와 같은 외화 통화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설계된 통화옵션(KIKO, Snowball), 통화선도거래, 통화선물거래 상품 등을 말하며, 여기에 환변동보험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들이 은행과 계약한 통화옵션상품, 특히 그 가운데 하나인 KIKO 상품으로 인해 심각한 손실을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통화관련 파생상품계약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은행들과 개별적으로 맺는 금융상품 거래이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알기가 쉽지 않다.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 후 공정거래위원회는 7월 16일 이후 상장기업 공시에서 올해 사업연도의 정기보고서에 통화 관련 파생상품 계약내역을 명시하도록 규정했으므로 향후 공시 보고서에서 구체적인 내역이 밝혀질 것이다. 현재까지 추산된 바로는 2007년 KIKO를 포함한 통화옵션 상품 거래는 외국계 은행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거래 규모는 한국씨티은행이 65조 1천억 원, 신한은행이 43조 5천억 원, 산업은행이 30조 7천억 원, 우리은행이 18조 원, 그리고 SC제일은행이 16조 원인 것으로 추산된다.

대표적인 통화옵션 상품인 KIKO를 보면 환율이 일정범위 안에서 오르내리면 미리 정한 계약환율로 달러 환전을 할 수 있지만, 정한 범위의 최고한계를 넘어갈 경우에는 시장 환율보다 훨씬 낮아진 계약환율에 계약금액의 2~3배 이상의 달러를 팔아야 한다. 특히 “계약금액 정도의 손실은 환손실로 취급할 수 있지만 물량이 2배로 늘어난다는 규정 때문에 나머지 외화는 직접 시장에서 매수해 은행에 매도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 폭이 훨씬 커지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손실액은 1조 6천억 원2008년 2월까지 KIKO 상품 계약을 맺은 대부분의 경우 환율상한선을 950원선으로 보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3월 이후 새 정부의 고환율정책으로 인해 환율이 일시적으로 1,020선까지 폭등하는가 하면, 2/4분기에도 좀처럼 980선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Knock-In 범위에 걸린 중소기업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4분기 KIKO 손실액은 총 2조 5천억 원으로 추산되고 이 가운데 중소기업 손실액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1조 6천억 원, 그리고 대기업이 9천억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환율변동추이를 보면 1/4분기 손실액은 오히려 적을 수 있고 2/4분기 손실액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와 업계에서는 2/4분기 환율급등으로 인한 평가손실 규모가 1/4분기의 2배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KIKO 손실을 제일먼저 시장에 공개한 제이브이엠은 1/4분기 손실 100억 원에 이어 2/4분기 손실이 130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되고, 디에스엘시디는 지난 1/4분기 KIKO 손실 160억 원에 이어 2/4분기 95억 원의 손실을 발표했다. 우주일렉트로닉스는 2/4분기 손실이 1/4분기보다 무려 10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5월 27일부터 중소기업중앙회가 피해 사례를 접수한 결과 6월 4일 현재 114개 업체가 접수를 했다.

은행에 유리하고, 기업에 불리한 KIKO

KIKO 이외에도 수출보험공사에서 발행하는 ‘환변동 보험’ 상품을 구입한 중소기업들도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환변동 보험은 계약환율보다 환율이 떨어지면 보험공사로부터 환차손을 보상받지만, 환율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차익은 수출보험공사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2008년 들어 6월말까지 수출보험공사가 기업에 지급한 보험금은 357억 원이지만, 반대로 기업으로부터 환수한 금액은 2,222억 원이나 되었다. 환수금에서 보험금을 뺀 금액인 1,865억 원은 결국 기업의 손해 금액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약 1,100여개 중소기업이 환변동 보험에 가입했고, “환율 인상으로 수입 단가는 올라간 반면 수출에서 거둔 환차익은 모두 환수 당해 일부 영세업체는 파산하기도 했다”는 것이 중소기업 중앙회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중소기업 손실은 1/4분기 코스닥 기업들의 순익감소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1/4분기 유가증권 시장의 기업들은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모두 증가했는데 반해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영업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환손실로 인해 순이익이 33.98%나 감소한 것이다.

이처럼 수출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확산일로에 있지만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은 가입한 기업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고, 금융당국도 당사자 분쟁이라며 불개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일부 기업들의 경우 투기목적으로 수출대금을 훨씬 웃도는 과도한 금액을 여러 은행들과 KIKO 통화옵션 거래를 하는 ‘오버헤지’에 나서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은행이 환헤지 상품의 장점만 강조하고 위험은 거의 알리지 않은 채 가입을 종용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6월 중소기업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가 KIKO 거래 약관이 가입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약관심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7월 14일 열린 약관심사자문위원회에서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이월시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중소기업인들이 KIKO 등 환헤지 파생상품의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1) 은행과 중소기업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통화옵션 상품의 성격이나 위험을 잘 모르고 은행의 일방적인 권유에 의해 가입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2) 상품설계가 자동해지 권한이 없는 등 은행보다는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으며 (3) 특히 수출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하여 방치할 경우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KIKO가 작년 하반기에 붐을 이룬 만큼 1년 만기가 도래하는 올 하반기에는 상당수 기업들이 KIKO 관련 환차손으로 경영난을 겪을 것이 예상된다. 이미 KIKO 환차손 대금을 납입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발생하고 있고 이를 은행이 대신 납입해주고 있다. 중소기업이 납입을 하지 못하면 일부 대출전환을 하거나 압류 등의 조치를 취하며 회수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기업도산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구제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공정계약 여부를 떠나 은행 역시 최소한 공동 부담을 한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부담 가중

고환율로 가중된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과 환헤지 파생상품의 손실로 이미 상반기 중소기업의 실적은 심각히 악화된 상태이다. 여기에 대출금리 마저 오르고 있어 이자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하던 은행들은 2002~2003년 신용카드 대란 여파로 일시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더니, 2006년 하반기 참여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억제정책으로 대출길이 막히자 다시 2007년 일시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대거 확대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는 원자재가격 상승과 재고 증가로 인해 운전자금이 필요해진 중소기업들이 대출 확대를 꾀하게 된다. 그 결과 올해에도 대출은 꾸준히 늘어서 대출 증가율이 7.7%(1월) → 3.2%(2월) → 4.2%(3월) → 7.4%(4월) → 5.8%(5월) → 6.1%(6월)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한다. 2008년 6월말 잔액기준 중소기업 대출은 398.8조 원으로 전체 기업대출의 89%를 차지하며, 전체 가계 대출 376.7조 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포함해서 시중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고 있다. CD 금리는 5.36%(5월) → 5.37%(6월) → 5.59%(7월 22일)까지 인상되었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4.88%(4월) → 5.46%(5월) → 5.90%(6월) → 6.02%(7월 8일)로 높아졌다.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대기업과의 금리 격차를 벌리면서 2008년 5월에는 7.14%를 기록하며 상승일로를 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대출 확대와 금리 인상은 곧바로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키고, 수익성이 나쁜 기업부터 연체를 가중시키게 된다. 특히 지난 수년간 대기업은 단기 차입금 상환 능력과 이자 상환 능력이 계속 개선된데 반하여 중소기업은 거꾸로 계속 악화되었다. 그 결과 2007년 말 기준 중소기업의 단기 차입금 상환 능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자 상환 능력 역시 2001년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더욱이 현금 수입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현금흐름 이자보상 비율이 100%미만)이 31.3%로 늘어났는데, 거의 3개 기업 가운데 한 개 기업은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이자상환 능력 저하는 당연히 금융 연체 확대로 이어질 개연성을 갖게 되고, 더 심화되면 금융 부실로 이어지게 된다. 대기업의 경우 연체율은 2007년 말 이후 0.3% 수준으로 하향 안정화되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다시 1%를 넘어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유가 급등 등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은행 건전성이 저하될 소지”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부에서는 정부 당국이 금리를 인상하여 시중 통화량을 흡수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현실을 인플레이션 국면으로만 보고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발상이다. 자산가치 하락과 경기침체가 인플레이션과 동시에 오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은 급격히 늘어나 경영수지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정부, 대기업, 금융기업의 책임이 명백히 존재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경제정책운용의 핵심은 물가관리 이외에도 내수기반을 안정시켜서 경제회복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있다. 사실상 물가인상이 상당정도 국외적인 요인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물가상승 억제 자체보다는 국내적으로 물가상승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도 내수기반 안정은 핵심이다.

그런데 내수기반 안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경기의 활성화이다.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중소기업 경기 활성화는 취약한 기업에 대한 보호, 지원의 차원이 아니라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핵심과제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대기업이 살아야 중소기업이 산다’는 접근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살아야 고용도 살고, 국민경제도 살고, 대기업도 산다’는 접근법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21일 인크루트에 따르면 중소기업 192개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시장 전망을 설문한 결과 60.9%가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호전될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6.3%에 불과했다. 이들이 하반기 채용시장의 걸림돌로 지목한 것은 ’경기침체’(60.9%)와 ’원자재값, 유가 등 외적 요소’(29.7%)다.

중소기업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원자재가격 폭등, 환헤지 파생상품 손실, 이자부담 가중이라는 3대 악재에 대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중소기업인들이 요구하는 납품가 원자재가격 연동제 법제화와 환헤지 상품 불공정계약 무효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가 그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중소기업인들이 제시한 해법을 진지하게 논의하는데서 시작한다.

고환율을 조장해 원자재가격 폭등과 환헤지 상품 손실을 가중시킨 정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납품가에 반영해주지 않고 있는 대기업, 그리고 환헤지 상품 판매에만 매달린 채, 중소기업에 대한 사후관리나 관계 형성에 무관심한 은행들은 각각 국민경제를 위해 중소기업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과 역할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정부와 대기업, 은행이 나서면 사실상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환율정책의 실책에 책임을 지는 한편 대기업과 은행으로 하여금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는 출총제 규제나 법인세 부담을 풀어줄 생각보다는 지금 중소기업을 규제하고 있는 세 가지 덫을 시급히 풀어주어야 한다. 대기업은 지금도 충분히 자유롭다. 지금은 대기업을 풀어줄 때가 아니라 대기업과 은행으로부터 중소기업의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때다.

대기업 노동조합들과 민주노총 등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들도 중소기업 회생이 노동자의 최대 현안인 고용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중소기업들의 납품가 연동제를 푸는 데 동참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김병권 연구센터장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