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5 / 08 새사연/부동산 정책모임 번역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부동산 정책 모임은 유럽연합사회주택위원회(CECODHAS Housing Europe)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주택분과(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Housing)가 함께 발간한 Profiles of a Movement: Co-operative Housing Around the World"를 통해 세계주택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새사연이 직접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주택분과로부터 저작권 이용허가를 받아 번역한 본 자료는 총 22개국의 주택협동조합들의 사례들을 담고 있다주택협동조합이 이 국가들에서 왜 필요했고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주택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어 왔으며이에 대한 정부와 시민 사회의 역할은 어떠했는지그리고 이들 국가들에서 주택협동조합은 어떤 긍정적 혹은 부정적 유산들을 남겼는지에 대해 본 자료는 잘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를 가진 진정한 의미의 주택협동조합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우리에게 있어서 본 자료는 좋은 지침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본 자료를 통해 약 1세기 전부터 있었던 주택협동조합 운동의 역사를 접하면서 협동조합이라는 우리에게는 아직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한다.(편집자 주)

 

 


스웨덴 협동조합 역자 요약


스웨덴에서 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지분 소유를 통한 거주권 보장에 중점을 두고 발전하였다. 조합원은 시장에서의 지분거래를 통해 주택을 판매할 수 있고, 전대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허락되었다.

 

초기에 정부는 주택협동조합이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제공하였지만, 이러한 정부의 지원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은 일반 조합원들이 조합 개발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부족한 부분은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충당하는 구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극적이었던 정부와 대조적으로 주택협동조합들이 스스로 조직한 HSB와 Riksbyggen 등의 전국 연합들은 연대의 기치 아래 적극적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사실상 비영리 건설회사의 역할을 한 이 두 연합 조직은 개별 주택협동조합들을 위한 주택 개발에 앞장섰다. 그리고 개인이 조합지분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입주자 저축과 유사한 저축 시스템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는 다른 국가의 주택협동조합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제도적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또 미분양 조합주택을 구입해주는 등 개별 조합에 대한 재정적 보호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런 토대 위에서 스웨덴 주택협동조합들은 시장화의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대안적 주거형태로서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이는 무려 22%에 달하는 총 주택 대비 협동조합주택 비율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역사

스웨덴에서 주택협동조합은 극심한 주택 부족 문제 해결과 투기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서 나타났고, 주로 소유형 주택협동조합(a tenant ownership co-operative)의 형태를 띠었다. 스웨덴의 임차인 조직들은 1923년 주택협동조합의 개발을 촉진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HSB Riksforbund라는 연합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의 목적은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양질의 주택을 제공하고, 주거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스웨덴의  협동조합주택 소유 시스템은 이른바 ‘부모-자녀 개발 모델(mother-daughter develop model)’을 통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 시스템 하에서 협동조합 연합조직(부모 혹은 2차 협동조합)은 주택을 건설하였으며, 이를 개별 협동조합(자녀, 1차 협동조합)에게 판매한다. 주택 관리 서비스에 있어서도 개별 주택협동조합은 주로 HSB 지역조직을 통해 행정 및 관리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이런 방식에 의해 각각의 주택협동조합은 그들의 상부단체와 지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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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1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복지국가, 국가에 의한 공공성 실현

오늘은 지난 시간의 공공경제에 이어서 보편 복지국가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앞서 공공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공의 가치(public value)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현존하는 철학자들을 모두 동원해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공공의 이성(public reason)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공공의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되고 나면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공공의 가치로 모두의 건강을 위해 1인당 하루 사과 두 알을 먹는 게 좋다고 합의되었다면, 이제 사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사과 두 알씩 사먹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만약 사과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보조금을 주고, 사과 물량이 부족하다면 과수원에 보조금을 주면 된다. 사실 많은 문제들이 시장에서 해결하고, 국가가 세금이나 보조금을 주어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해결 방식이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생산력을 무한히 발전시켰다. 이를 가장 많이 칭송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력 발전이며, 이는 경쟁, 끊임없는 무한의 욕구, 화폐의 축적, 자본의 탄생을 통해 가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가 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맡길 것인지, 둘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등이다. 공공경제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 학문은 행정학인데, 이 분야에서 80년대 이후 주류로 등장한 이론이 신공공관리론이다. 이는 결국 관료나 정부기구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되도록 민영화하고 규제완화를 해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신공공관리론이 퇴조하고 공공가치행정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공공의 가치를 민주주의 방법으로 실현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이다. 공공성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이 시장실패의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해결책도 다르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용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뜯어보기

이런 공공성을 국가단계에서 가장 잘 실현한 것인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가장 성공한 보편적 복지국가는 스웨덴이다. 사실 스웨덴 모델은 한 번 실패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스웨덴 병 또는 복지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90년대 초반에는 스웨덴 뿐 아니라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외환위기를 맞는다. 93년에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설계자인 마이드너(Meidner)가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95년경부터 다시 부활해서 지금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로도 불린다. 렌과 마이드너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LO(노동조합연맹)의 경제이론가이다. 이들은 직접 임금중앙교섭에 들어가며 LO의 경제정책을 만든다. 스웨덴은 LO와 사민당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LO는 한 때 노조조직률이 93%에 이르렀고 지금도 70~75%에 이른다.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LO와 관련된 셈이다. 이런 LO를 기반으로 하여 사민당은 지금까지 약 90년 정도를 집권해왔다. 현재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사민당이 얻는 득표수는 약 35% 정도라 언제나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한다. LO과 정책을 만들면 대부분을 사민당이 정책에 반영한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참 기가 막힌 모델인데 한 마디로 연대임금정책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경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경제의 문제는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직장이 함께 임금협상을 하는 중앙교섭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체 자본가 대표와 전체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산업별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표로는 LO가 나온다.

이렇게 조정했을 때 제일 손해를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이다. 이 정책이 관철된 이것이 관철되던 60년대 스웨덴의 수출대기업은 자동차, 철강, 조선업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대자동차, 포스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제일 이익을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자본가이다. 생산성 보다 낮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이익 보는 것은 수출대기업 노동자로부터 임금을 이전받은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이다. 반면 내수중소기업 자본가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므로 손해를 본다.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 기금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먼저 그래프 오른쪽의 빗금 친 부분은 내수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내수중소기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고용 인력을 줄이고 혹은 파산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래프 왼쪽의 빗금 친 부분은 수출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준 결과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스웨덴은 역시 기가 막힌 해법을 냈다. 첫 번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요즘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도입되었지만 스웨덴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굉장히 관대한 실업보험을 기초로 하며, 모든 노동자를 재교육 시켜서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기업 노동자로 이직시키는 것이다. 이를 전부 노동조합이 관리한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하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지역별, 산업별 실업보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겐트(Ghent)라 했는데, 이미 존재하던 것을 국가가 통합했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노조에게 맡겨놓았던 것이다. 스웨덴 노조의 가입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LO 소속이 되면 실업보험에 가입되고, 퇴직하면 LO의 관리 속에서 재교육과 이직을 할 수 있다. 노조가 실업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 불렀다. 이는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임노동자 기금이 도입되었다. 이는 초과이윤의 20%를 신주로 발행하여 노조가 소유하도록 한 제도이다. 신주의 20%를 노조가 계속 소유할 경우, 2~30년 지나면 모든 기업이 노조의 소유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매우 창의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가들의 반대가 격렬했고, 이 제도에 대한 입장을 놓고 사민당도 3개파로 찢어지고 말았다. 결국 LO와 사민당의 관계는 서먹해졌으며 끝내 사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여 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기금을 바탕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실현한 것이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스웨덴 경제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을 수 있었으며 사회주의로의 장기 전망도 세울 수 있었다.

흔히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을 따른다. 렌과 마이드너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완전고용과 함께 렌과 마이드너가 신경썼던 것은 임금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전후 유럽의 부흥사업을 통해 수출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고 임금도 상승했다. 그런데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완전고용과 물가는 상충함을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존재한다. 즉, 물가가 상승하면 완전고용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연대임금을 생각해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모습인데,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면서까지 거시경제정책을 고려한 것이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했던 렌과 마이드너의 경험은 독특한 물가상승이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부흥사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수출대기업의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전반적인 임금과 물가 상승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론이다. 이렇듯 스웨덴 모델은 처음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세금을 많이 걷어서 재정흑자를 유지했다. 소득과 자산에 따라 차등적 세금을 부과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했다. 모든 사람이 비용을 내고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재정흑자를 유지하며 물가상승 억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 때 렌-마이드너 모델은 순수한 케인즈주의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스웨덴 모델의 붕괴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스웨덴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국 등과 비교해서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떨이지고, 외환위기 등까지 겪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류경제학자들은 스웨덴 병을 운운하며,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의 노동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업수당으로 월급의 80%가 지급되고, 특별한 절차 없이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사실 보편복지국가는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세금을 내는 문제에서는 공공재 게임이 그대로 적용된다.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어느 정도 복지병이 나타난다. 독일과의 축구 중계가 있는 다음 날이면 직장인들의 병가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이는 미시적 요인일 뿐이다. 이것만으로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사실 스웨덴이 위기를 겪었던 근본 원인은 거시경제정책의 문제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고환율 정책이다. 수출의 비중이 컸던 탓에 경기가 나쁠 때마다 환율을 조정했다. ‘1달러=1000크로나’일 때와 ‘1달러=2000크로나’일 때를 비교한다면 후자의 경우가 수출할 때 더 유리하다. 따라서 통화가치 하락 정책을 편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금리자유화, 개방, 조세개혁이 실시된다. 이 중에 가장 큰 요인이 금리소득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준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 자본은 늘어나고 규제와 세금은 줄어들면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서 90년대에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규제 강화에 나선다. 최저임금법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륙의 노동규제, 노동자 보호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실제 법과 제도 상으로는 약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권을 거의 늘 사민당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를 경직적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노사타협으로 운영되던 중앙교섭이 깨진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금속노조이다. 이제까지 수출대기업이 희생해왔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더 이상 희생을 견디지 못하고 교섭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편복지도 어려워진다.

마이드너는 이런 상황을 반성하며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쓴다. 그는 통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계속되면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애써 희망을 찾으며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과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스웨덴 노동운동의 힘이었으며, 이를 다시 회복할 때 복지국가도 부활할 것이라고 보았다.

 

스웨덴은 어떻게 부활했나?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은 부활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EU에 가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고정환율제가 되었고,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긴축을 단행한 덕분이었다. 세부적으로는 결렬되었던 중앙교섭이 산업별, 지역별로 분권화되어 부활했으며, 연대임금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본가들의 요구가 컸다. 기업별 교섭이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임금이 인상되고 돌발적인 파업이 일어나면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서비스에 의한 고용율 회복도 경제 회복에 큰 힘이 되었다. 스웨덴의 완전고용이 위협받을 때 가장 강력히 버텨준 것이 사회서비스 분야이다. 스웨덴의 복지는 보편현물복지로 교육, 의료, 보육, 돌봄 등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모두 공무원이다. 사회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공무원도 늘어나고, 고용율도 올라갔다. 또한 현재 LO의 주축세력 역시 공공노조이다. 우리의 경우 현물복지가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수당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간시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이 보육비의 증가, 보육원의 수입 증가로만 이어진다. 아동수당이란 결국 수요 쪽에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수요곡선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즉, 시장에만 맡기고 보조금을 주면 가격이 올라간다.

성평등 정책과 평등교육을 강화하여 여성 고용율을 높이고 IT와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높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보편복지가 가능하려면 고용율이 높아야 하고, 여성 고용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안정적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경제가 안정되어야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 세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안정, 물가 안정 등을 통해 경기가 증폭되는 것을 억제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위기로 그 중요성이 대두된 자본통제나 금융규제, 투기억제, 자산가격 안정 정책들은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복지국가의 성패는 안정적 거시경제정책의 마련에 달려있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이다. 여기에 더불어 보편적 복지국가가 공유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무임승차를 줄여갈 수 있는 신뢰와 협동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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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0  정태인/새사연 원장 

"결국 문제는 남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북유럽은 그런 신뢰가 쌓여서 사회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규범을 내면화 했다."

지난번에는 납세자 쪽의 무임승차를 얘기했지만 경제학자들이 툭하면 들먹이는 것은 ‘수혜자’ 쪽의 무임승차다. 만일 실업급여로 이전 월급의 80%를 받는다면 툭하면 회사 그만두고 일하지 않는 베짱이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독일과 스웨덴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 또는 그 다음날에 병가(스웨덴에서는 병가는 유급이며 진단서를 낼 필요가 없다)가 대폭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무임승차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영미형에서는 잔여복지 또는 선별복지(‘맞춤형 복지’라는 말도 다분히 잔여복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를 시행한다. 국가는 생존권을 보장하는 수준의 복지만 제공해야 한다는 ‘경험적 자유주의’(프리드만, 하이예크)가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는 철학이다. 이들 나라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얻는 수입, 그리고 가족에 의해 삶을 누려야 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복지를 받으려면 이런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철저한 자산조사(means test)가 필수적이며,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낙인효과(stigma effect)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각각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인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이 두 번째 무임승차 문제를 훌륭하게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히 실업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고용률(15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뚜렷이 높다. 어떻게 이런 신통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북유럽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불운을 당했다면 기꺼이 그를 도우려고 한다. 반면 노력할 여지가 충분한데도 도움을 청하면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스웨덴의 노동조합(LO)이 연대임금제도를 시행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파산하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실업자가 된 이들이 재교육·훈련을 거쳐 다른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완전고용도 달성하고 산업구조도 고도화될 테니 일석이조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인 셈인데, 고용률이 높아져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어서 이 정책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동력이 되었다.
 
치열한 시장경쟁은 언제나 패배자를 낳으며 누구나 판단 실수로, 또는 단순한 불운으로 패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으로 누구나 재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으랴. 결국 문제는 남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북유럽은 그런 신뢰가 쌓여서 사회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규범을 내면화했다. 이런 사회에서 남들이 낸 돈으로 그저 놀고 먹는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정부의(또는 국민 스스로 선택한) 적절한 정책과 사회적 신뢰, 이것이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두 번째 무임승차를 막는 첩경인 것이다.
 
반면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전제한다면, 따라서 무임승차가 필연이라면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전에 그런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이렇게 상대가 자신을 나쁜 놈 취급하면 사람들이 딱 그 수준에 맞춰서 행동한다는 것을 거듭 증명했다. 예비군복만 입히면 남자들이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기적 행동이 당연한 것이 되고 착한 사람은 오히려 바보(sucker) 취급을 받게 된다. 퍼트넘이 ‘나 홀로 볼링하기’(Bowling alone)에서 집어낸 미국 사회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북유럽처럼 신뢰로 가득찬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극도의 경쟁만 가득찬 현재의 한국에서 보편복지를 시행하면 무임승차가 만연하지나 않을까? 다음번에 다룰, 정말 고민스러운 주제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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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정태인/새사연 원장 

‘보편적 복지국가’가 내년 총선·대선의 화두 중 하나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서 각 당은 복지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내 보기에 ‘진보개혁진영’이 썩 유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란 기여(돈을 대는 사람과 액수)와 급부(복지 수혜자와 액수)가 서로 무관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착한 경제학’의 핵심 주제인 사회적 딜레마에 속한다.

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어긋나는 경우를 말한다. 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 ‘집단행동의 함정’, 그리고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는 ‘공공재의 딜레마’가 모두 사회적 딜레마이다. 이미 얘기했듯이 사교육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이며, 현재 인류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그것이 ‘공유지의 비극’에 속하기 때문이다.

개인(또는 한 나라)의 이익만 좇는다면 무임승차(free riding)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회적 딜레마의 핵심이다. 예컨대 그래도 품격 있는 나라로 보였던 캐나다가 최근에 일방적으로 교토 기후협약에서 탈퇴한 것도 공유지의 비극을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

모든 나라가 노력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이것이 전 세계의 이익이지만, 우리나라만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자동차를 덜 타야 하고, 각 공장은 탄소를 줄이는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무임승차에 의해 최대의 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다. 하여 각 나라가 얼마나 의무를 져야 할 것인지 자체가 교토 기후협약의 핵심 쟁점인데, 미국과 중국이 그 의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국 바로 옆에 있는 우리 국민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면 뭐 하나. 중국에서 이산화탄소가 한반도로 다 날아올텐데….” 그래서 우리도 탄소배출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예컨대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사회적 딜레마인 ‘집단행동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뻔히 알면서도 인류는 멸망으로 일로매진하게 된다.

보편적 복지국가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1990년대 초반에 스웨덴이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경제학자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로 ‘스웨덴 병’을 진단했다. 한 마디로 “일하지 않아도 그럴 듯하게 살 수 있다면 누가 일할 것인가?”이다. 나아가서 그렇게 ‘배부른 돼지’들을 늘상 본다면 어느 누구도 세금을 더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지를 축소해서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도록 해야 한다. 즉 대안은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시장 만능의 미국은 끝도 없는 위기에 빠졌고,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성장과 복지, 즉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 스웨덴은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으로 간단하게 입증했듯이 ‘신뢰와 협동’이 그 답이다. 20년 넘게 매년 하고 있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의 ‘일반적 신뢰’(generalized trust·‘당신은 남을 얼마나 믿는가’) 항목에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언제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일반적 신뢰는 중상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더 끔찍한 것은 15살가량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압도적 꼴찌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극단적 경쟁교육을 생각해보면 이 결과는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하겠다는 건 언어도단일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려면 앞으로 한국에 신뢰와 협동이 흘러넘치도록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과연 그럴 방법이 있을까? 있다! 다음 호를 보시라.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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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

스웨덴 복지정책의 초석인 ‘렌 마이드너 플랜’으로 잘 알려진 마이드너가 비통한 마음으로 위 제목으로 글을 쓴 때는 1993년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내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노정하던 스웨덴은 1991년 통화위기를 맞았다. 1984년에서 94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0% 증가한 반면 스웨덴은 1.4% 증가에 머물렀다. ‘스웨덴 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미국과 스웨덴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앞다퉈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이 일할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에 물들게 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웨덴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1% 성장해서 미국의 2.8%보다 높은 성장률을 거둠으로써 부활하게 된다. 임금격차 등 각종 평등 지표에서 스웨덴은 여전히 수위를 달리는 반면 미국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웨덴의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특히 85년의 대출상한규제 철폐), 그리고 조세개혁(특히 91년 이자에 대한 조세감면)은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넘어 폭발적인 거품경제를 불러일으켰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평가절하 정책에 따라 수출·내수부문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수출분야의 남아도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더 쏠리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외국 자본(외자)이 빠져 나가면 바로 외환위기이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자를 붙잡기 위해 이자율을 무려 500%까지 올렸어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스웨덴이 다시 살아난 것은 1997년 분권화된 중앙임금교섭이 부활되고, 여전히 GDP의 25%를 차지하는 전통의 보편적 사회서비스(교육, 보육, 의료)가 복지와 고용을 동시에 지지했기 때문이다. 협력과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 성 평등정책에 의한 높은 고용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또 한 번의 산업구조조정을 성공시켰다.

요컨대 위기의 원인은 거시정책이었고 동시에 노동자 연대의 붕괴였다.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는 거시 정책을 쓰면서 복지를 유지하거나 확대한다는 것은 스웨덴에서조차 불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이유(자본자유화와 금융규제 완화)로 경제위기를 맞았던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부활 역시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아메리카 복지국가 캐나다의 비극

이 땅에서 정말 살기 힘들어 이민을 택하고자 할 때 우리 국민의 머리에 떠오르는 제 1순위 나라 중 하나가 캐나다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캐나다는 1989년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고 1994년에는 이 협정을 확대해서 멕시코까지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발효시켰다.

과연 당시 세 나라 정부의 주장대로 성장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 복지도 확대되었을까. 지난 20여년간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소득 양극화 현상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 그리고 3~4위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아예 검토 대상도 아니다. 아메리카의 유럽, 캐나다는 15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다행히도 캐나다는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의 전통에 따라 일반적인 예금 및 대출 업무에 종사했고 파생상품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바젤II보다도 더 강한 자본규제와 유동성 규제에 따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택가격의 버블도 존재하지 않았다. 개방과 민영화, 규제완화에 적극적이었던 멕시코가 2009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본 및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캐나다 사례는 다시 한번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경제성장, 고용, 그리고 실질임금은 NAFTA의 약속과 달리 지난 15년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2.25%(1인당 GDP는 1.2%) 정도로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전인 80년대의 3%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실질임금은 96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고작 4%가량 증가했으며, 캐나다 정부가 NAFTA를 맺으면 따라잡을 거라고 장담했던 미국과의 생산성 격차는 오히려 증가했다. 전 산업 부문의 생산성이 1% 이상 증가해서 매년 5% 이상의 추가 성장이 일어날 거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그 결과 2000년대 10년간의 중간 지점에서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나쁜 쪽에서 13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은 물론, 놀랍게도 14위를 차지한 한국보다도 캐나다의 불평등지수가 더 높았다. 1990년대 초반 이래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캐나다의 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지출의 비율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NAFTA 이후 캐나다 정부는 ‘노동복지’(workfare), ‘의무국가’(duty state), ‘사회투자국가’ 등의 구호를 내세워 노동의 의무를 강조하며 복지를 축소했다. 특히 실업급여 제도에서 수급자격의 강화, 급여의 축소, 수급기간의 단축을 통해 현격한 후퇴가 일어났다. 앞에서 본 스웨덴 비판의 핵심인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한 정책을 실제로 수행한 것이다.

클락슨 등 캐나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NAFTA는 외부헌법, 또는 초헌법의 역할을 했다. 일반적인 복지정책, 특히 공공성 강화정책은 나프타의 여러 독소조항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특히 투자자-국가 제소권(ISD)은 캐나다의 공공정책을 가로막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94년에서 2010년 7월까지 캐나다는 알려진 것만 해도 28건의 제소를 당했다.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예외조항이 NAFTA에도 유사하게 존재하지만 자연자원 관련 10건, 환경보호 7건, 심지어 우편서비스 2건 등 핵심적인 공공정책이 그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소송이 진행된 사건보다 돈을 주고 타협한 사건이 더 많을 것이고 소송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지레 포기한 정책 또한 숱하게 많을 것이다.

한국이나 멕시코처럼 복지제도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양극화 세력, 즉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FTA의 위력은 배가된다. 멕시코의 전화나 철도 민영화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위기의 엄청난 폐해를 보면서도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야 한다”(박병원 전 경제수석)며 여전히 메가뱅크-투자은행을 추진하는 대통령 측근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위기 때문에 주춤하고 있지만 물 민영화, 가스 및 철도 민영화, 특히 의료민영화를 여전히 호시탐탐 노리는 곳에서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복지 확대는커녕 복지 축소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협상에서 미래유보로 빠졌다고 하더라도 자발적 민영화와 FTA가 결합하면 ISD의 대상이 됨으로써 어떤 비극이 발생해도 되돌아갈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복지국가 되려면

스웨덴이나 캐나다에 비한다면 복지에 관해서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에 불과하다. 연부역강한 청장년의 경우에도 금융규제 완화와 투기, 그리고 시장주의 정책기조를 따랐을 경우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양극화 시대에 우리 국민의 의식을 사로 잡은 구호는 “부자 되세요”라든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따위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심각한 양극화 속에서 “나와 내 아이만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 비로소 다 함께 사는 길, 즉 복지를 요구하게 되었다. 지난 2008년의 총선과 지난해의 6·2 지방선거를 비교해 보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 복지국가는 험난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식 FTA를 맺고, 자발적인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함으로써 양극화를 촉진하면서 복지로 그 구멍을 메운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홍수방지책을 만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만 늘리면 필경 재정이 악화되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적반하장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부동산투기와 사교육 등 투기를 근절해야 하고 금융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학력과 성에 따른 양극화를 시정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금융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경제정책기조를 확 바꿔야만 복지동맹이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 아이들 대에 이르면 아시아의 모범적인 복지국가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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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