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스마트폰 3천만대가 보급됐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이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단연 으뜸은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이다. 쌍방이 모두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미국 법원에서 압도적으로 애플의 손을 들어준 것을 가지고 말들이 많다. 실제로 얼마나 특허를 침해했는가 하는 기술적인 엄밀성 문제를 떠나 보호무역주의 같은 정치경제적 관점의 지적들이 우세하다.

애플과 삼성의 분쟁을 보고 있노라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도요타 리콜사태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강경한 태도가 연상된다. 쓰러져 가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빅3 자동차 회사들인 GM·포드·크라이슬러를 살리기 위한 의도된 미국 정가의 행위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어찌 됐든 그 후 지금까지 도요타는 북미시장에서 고전하고 있고 GM은 세계 1위의 지위를 되찾았다. 그 무대가 2012년에 스마트폰 시장으로 옮겨 갈 만큼 스마트폰 시장의 무게가 커진 것일까.

또 다른 분쟁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서 발생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모바일 선거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올해 1월 전당대회에서 50만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모으면서 엄청난 정치적 흥행의 성공을 가져다준 모바일 선거가 운영 미숙으로 인해 이번에는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 통합진보당의 인터넷 선거나 이번의 모바일 선거 모두 온라인 선거가 갖는 특성을 충분히 예견하고 기술적 준비를 미리 하지 못한 부분들이 발견된다. 분명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정치참여는 정치에서의 상당한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적 혁신이다. 다만 이를 도입하고 적용하려는 정치권의 준비가 문제일 것이다.

이처럼 기술혁신은 그 과정에서 기업의 이윤논리나 국가의 보호무역주의 논리들의 장벽을 만나기도 한다.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 애국주의 분위기로 흐를 필요는 없다. 또한 기술혁신이 경제와 정치·사회적 적용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역효과나 심각한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술혁신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스마트폰은 우리나라에서도 3년 미만 시기 동안 3천만대 이상이 보급될 만큼 이미 압도적인 생활수단이 되지 않았는가.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확산, 그리고 모바일과 SNS에 이르기까지 최근 20년 동안 이룩된 기술혁신의 중심은 정보통신산업이었고 한국은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정보통신산업 비중의 급격한 팽창에 이어 인터넷 이용 정도와 초고속 통신망 환경, 무선 환경 등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사람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생활 방식을 크게 바꿔 놓은 정보통신혁명 흐름의 중심에 한국사회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이슈와 논쟁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통신 기술혁신 자체를 너무 과대하게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나오는 네 번째 꼭지다. 장하준 교수는 세탁기의 발명이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극적으로 해방시킴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사회적으로도 여성의 역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물론 인터넷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여러 면에서 바꿔 놓고 있지만 “인터넷이 생산 분야에서도 그렇게 혁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짚어 냈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특히 현재의 시장여건에서는 상당 정도 정보통신혁명이 ‘생산’을 촉진하고 ‘고용’을 확대하는 방향에서가 아니라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스마트폰이 라이프 스타일과 직장생활 스타일을 크게 바꾸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예전에 없었던 더 다양한 상품을 사고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도록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활이 편리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소비할 돈, 소득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술은 그 자체로 제도를 바꿀 수 없다. 오히려 기성 제도를 더 나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제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지렛대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를 선두로 우리의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미국의 보호주의를 초래할 만큼 위력적이지만 그만큼 우리 국민의 고용이나 소득여건에도 위력적으로 영향을 줬을까.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모바일을 정치참여에 활용하고 있는 중인데, 정치개혁의 내용이나 쟁점도 첨단을 달리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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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8고병수/새사연 이사

최근에 휴대전화기를 스마트폰이란 걸로 바꿨다. 하지만 전화 이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바빠서 기능들을 다 섭렵하지 못해서 첨단기기를 그저 휴대전화 정도로만 이용하는 부진함을 보이고 있다.

나의 관심사도 요즘은 나를 괴롭히는 스마트폰인데, 오늘은 그 얘기를 할까 한다. 휴대전화기든, 스마트폰이든 공공장소나 회의석상에서는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 진료실에 있으면 환자나 보호자들의 휴대전화기 혹은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과 관련된 여러 양상들을 볼 수 있다. 실제 있는 모습들을 여러 장면으로 그려보자.

(장면 1)

이런 모습은 주로 중고등학생들에게서 보이는데…

감기에 심하게 걸렸다고 하면서 의자에 앉더니만 내가 증상을 물어보는 중에도 자기는 두 손 모아 계속 문자질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요즘은 그것을 ‘카카오 톡’이라고 한다는데… 눈과 손은 스마트폰에서 놀고 있으면서도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을 잘 한다.

“언제부터 아팠는데?”

(계속 문자를 누르며) “어제요.”

(못마땅하지만 금방 그만 둘 거라 여기면서) “기침이나 콧물이 심하니?”

“예..... 아, 아니오. 기침만 좀 해요.”

잠깐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짧게 대답을 하자마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놀린다. 더 못 참아서 나는 핀잔주듯이 그 학생에게 그만 두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그만두는데, 어떤 녀석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탁자위에 자기 스마트폰을 ‘탁’ 소리 나게 놓고는 전혀 미안한 마음도 없이 빤히 쳐다본다.

더 가관인 것은 내가 그렇게 핀잔을 주거나 그만하도록 얘기를 할 때, 옆에 있는 부모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행동이다. 많은 경우에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어떤 부모는 상관하지 말란 말을 하며 기분 안좋게 만들기도 한다.

“얘는 말해도 안 들어요. 어서 진료나 해주세요.”

어서 진료나 하라고? 부르르르… 여기서 더 말하면 싸움이 난다. 기분 나쁜 나는 그 때부터는 진료 모니터만 보면서 처방을 간단히 하고 보내버린다.

(장면 2)

가끔은 이런 경우도 있다. 부부이거나 연인들에게서 생기는 경우인데…

얼마 전, 20대 초반인 여대생이 아파서 왔다. 남자 친구는 흑기사처럼 자기 여자 친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진료실에 같이 들어와서 보호자 의자에 앉았다. 나는 보통 때 젊은 여자가 들어왔을 때에는 웬만하면 남자들은 밖으로 보내버린다. 그 이유는 여자의 경우에 비밀스럽게 해야 할 얘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냥 둬보기로 하고 남자 친구인 듯한 청년의 입장을 허하기로 했다.

내가 여자에게 문진을 하면서 살짝 남자 친구 모습을 보니 참, 어이없다. 자기 여자 친구가 열 펄펄 나면서 아픈 상태이고, 같이 들어왔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는 게 진정한 친구이거늘, 이건 오자마자부터 계속 문자질이다. 뭐, 카카오 톡인지, 야자수 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의 문진과 진찰을 마치고 처방을 주는 순간까지도 계속 똑같은 자세.

나는 또 성질을 못 이기고 한 마디 하였다.

“여자 친구가 아파서 왔으면 남자 친구로서 쳐다보고, 어떻게 아픈지 궁금해 하는 게 도리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니 그 남자 친구는 급히 스마트폰을 끄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나도 괜한 말을 한 건 아닌가 후회가 되어,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들으라는 소리였다고 말해주고는 보냈다. 하지만 그 때 마음 속으로는 ‘아픈 사람 두고 딴짓이나 하는 남자 친구와는 헤어지는 게 좋지 않겠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친구나 연인이라는 사람들은 의무감이나 형식적으로만 자기 친구와 동행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같이 와주면 친구라는 인증을 받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이런 모습들은 연인이 아니라 가족 간에도 가끔 볼 수 있다. 부인이 아파서 진료 받는데, 남편은 저 쪽에 앉아서 문자질이다. 의사가 아이 아픈 곳을 물어보면서 진찰 중인데, 정작 엄마는 아이를 앉혀놓고 옆에 서서 문자질이다. 정말 너무 예의가 없고, 분별이 없는 경우들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모습들을 보이는 걸까? 사람들이 예의에 대해서 무신경해진 걸까? 아니면 내가 고리타분한 ‘꼰대’가 되어서일까?

그 후 어느 날인가, 아내가 아이 학부모 모임에서 나누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보, 동동이 친구 OO가 아파서 엄마와 병원엘 갔는데, 의사가 기분 나쁘게 해서 진료 받다가 나와버렸데요.”

“왜?”

“아, 글쎄. OO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문자 몇 개 주고받고 있었는데, 진료하던 의사가 아이 아픈데 옆에서 그런 거 할 생각 나세요 하면서 빈정댔다네요.”

“혼날 짓 했네, 뭐.”

“아니, 그러면 안돼요. 고객인데..... 그러다가 환자 끊기면 어떡해요? 당신은 절대 그런 거 보고도 모른 채 해야 해요.”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꼴 보기 싫어도 눈 꼭 감으라고 신신당부한다. 순간 뜨끔했다. 사실, 그런 이유로 몇 번 환자들과 안 좋은 일도 있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되는 것은 좋은데, 우리가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르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스마트폰의 복잡한 기능과 사용법 말고, 인간적인 것이 강화되는 스마트폰 사용법이나 서로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사용법 말이다. 이런 거는 공익광고로 방송 안 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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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 앱의 하나인 카카오톡이 이른바 ‘국민 앱’으로 부상하면서 최근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그 눈부신 성장속도가 놀랍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1천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지금도 매달 170만명이 새로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카카오톡을 통해 주고받는 메시지도 2억3천만건에 이른다고 한다. 30대 경영자가 40여명의 직원들과 이룩한 성과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앱스토어와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형성되면서 크고 작은 벤처기업들이 신규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그 가운데 단연 카카오톡이 돋보인다.

카카오톡이 화제가 된 이유는 또 있다. 국내 주요 통신기업들이 카카오톡으로 인해 발생하는 망 과부하를 문제 삼으면서 서비스를 제한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 2억건이 넘는 메시지 송수신 트래픽이 카카오톡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니 네트워크 부하가 커질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사용자가 공식적으로 발생시키는 트래픽 이외에도 카카오톡 앱과 메시지 서버 사이에 자동으로 주고받는 송수신 트래픽까지 감안하면 부하는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통신사업자는 카카오톡 사용자들로부터 데이터 사용료를 받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와이파이(WiFi)를 이용할 경우 그조차도 받을 수 없다. 통신사들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단문 메시지와 카카오톡은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통신사들의 단문 메시지 서비스 수익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 통신사의 단문 메시지 서비스 사용료를 건당 20원으로 산정할 경우 하루 카카오톡 사용건수가 2억3천만건임을 감안하면 매달 1천380억원의 통신사 수입이 증발해 버린다는 단순한 계산이 나온다. 이 숫자는 카카오톡의 예상대로 올해 말까지 카카오톡 사용자가 2천만 명을 넘어서면 두 배로 커지게 될 것이다. 카카오톡이 단지 메시지 서비스와 경쟁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음성통화 서비스와도 대체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억울할 법도 하다.

일각에서는 통신사들이 카카오톡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카카오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네트워크 사용료는 이미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스마트폰 보유자가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카카오톡에게 사용료를 부과한다면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인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에도 마찬가지로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타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KT와 SKT로 대표되는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은 모두 순이익이 1조원을 넘는 거대기업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기 전인 2009년까지만 해도 통신망에 대한 독과점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모바일 기기 제조사는 물론 모바일 소프트웨어 시장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면서 고수익 행진을 누려 왔다. 그 결과 모바일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낮은 납품 단가와 협소한 시장구조로 인해 영세성을 면치 못하게 됐고 사용자들은 통신사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지극히 제한된 기능 이외에는 모바일 기기의 활용도를 높일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시장구조는 2009년 11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시판되면서 무너졌다. 모바일 소프트웨어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그와 같은 환경에서 부상한 것이 바로 카카오톡이다. 이제 통신 대기업들은 과거의 일방적 고수익 행진에 대한 향수를 버리고 통신사와 제조사, 그리고 소프트웨어 업체, 더 나아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국민들과 함께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통신사와 제조사, IT 서비스 사업자가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며 모바일 생태계 조성에 일조하겠다는 카카오톡 측의 주장은 이런 측면에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노동자,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만들고 서로 이익을 공유하려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얼마 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제’ 제안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격한 반발을 쏟아낸 한 대기업 총수를 보면 대기업의 공존과 공유의식이 아직 한참 멀어 보여 우려스럽다. 대기업의 힘의 논리에 유망한 벤처기업이 또다시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 이글은 매일노동뉴스 2011년 4월 14일자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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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앱(App)의 등장과 스마트폰 정치의 출현

애플의 앱스토어에서는 지금 ‘오바마 앱(App)’이 큰 화제다. 지난 6월에 등장한 ‘오바마 앱’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뉴스를 소개하고 토론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치기부금 모금에도 동참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정치 어플리케이션’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 ‘오바마 앱’을 활용해 새로운 전자정부를 실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만든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단 오바마 대통령다운 발상과 시도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스콧 브라운’ 상원의원은 공화당이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선거에서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워킹에지’라 불리는 이 앱은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의 주소를 스마트폰 지도에 표시해줌으로써 선거운동원들이 효율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에서도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네티즌들이 자신의 투표를 증명하는 이른바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투표를 독려하는가 하면, 선관위도 후보자의 약력과 공약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방선거용 앱을 개발해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정치실험들과 함께 바야흐로 ‘스마트폰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인터넷과 정치영역의 관계의 발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에 인터넷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인터넷의 확산이 산업과 경제영역 나아가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은 많았지만 그것이 대중의 정치참여 확대와 민주주의의 진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에 반신반의했으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러한 뉴 미디어와 대중의 온라인 정치참여가 현실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고 여긴 탓이다. 게다가 수십년 전 TV라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던 뉴 미디어와 기술의 출현이 오히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가중시켜 대중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는 평가가 내려지면서 ‘인터넷 정치’는 기껏해야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든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경제와 산업영역 이상으로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이후 나타난 몇몇 극적인 사건들만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이처럼 오프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드러내지 않던 대중은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 논쟁과 토론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새로운 정치참여의 다양한 모델들이 실험되는가하면 실제로 예상을 뛰어넘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인터넷 확산 초기의 온라인 정치실험은 지나가고 다시 웹2.0 시대가 열리게 된다. 쌍방향의 소통과 참여ㆍ공유ㆍ개방이라는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다시 정치영역에서 새로운 변화와 신화들을 만들어 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이번엔 모바일 웹2.0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혁명의 변화속도와 파급력이 이전의 어떤 정보통신기기가 낳은 변화보다 빠르고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정치영역에서 얼마만큼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는 경우 그 기술이 경제와 산업 측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발 빠른 분석과 전망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 정작 정치ㆍ사회적 영역에 대해서는 깊이 사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 공간에서 대중의 정치참여가 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나서야 뒤늦게 사후해석이 난무하는 경향이 반복되곤 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기술이 출현한다고 해도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한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또 어떤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의 모바일 웹2.0화, 모바일 웹2.0의 정치화

스마트폰 혁명이 정치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두 가지로 구분해서 본다면, 하나는 스마트폰 혁명이라는 새로운 기술 변화, 또는 트렌드가 기존의 정치영역에서 활용되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정치영역 안팎에 있던 다양한 정치행위자들이나 구조들이 스마트폰 혁명을 통해 정치영역 안에서 재구성되는 측면이다.

전자의 경우는 스마트폰 보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자 기존의 정치인들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입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 정당이나 정부가 스마트폰용 앱을 개발하고 이를 배포해서 국민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것 등이 해당된다. 이로 인해 정치인들은 실시간으로 시민들과 토론하고 자신들의 일상생활과 고민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민들 역시 지금까지는 정당이나 시민단체를 통해서만 정치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직접 정치인들과 토론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구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단순히 유행을 좇아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정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제공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결국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시키는 정치 콘텐츠의 발전과 확산 없이는 모바일 웹2.0의 ‘정치적 활용’은 정치인들의 패션 트렌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소셜미디어나 스마트폰을 잘 활용한다고 평가받는 정치인들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이나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물론, 기존 정치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진솔한 고민들을 토로하는 등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정치인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후자다. 즉 기존에 정치영역에 포함돼있지 않던 것들이 스마트폰과 모바일 웹2.0 기술을 통해 정치의 영역으로 재구성되고 기존 정치영역의 주체들이 완전히 변화하는 경우다. 더불어 새로운 정치참여 방식이 등장하는가 하면 권력과 정치 정보의 이동방식이 변하면서 정치영역의 구조를 아예 뒤바꾸는 경우마저 발생한다.

가령, 웹2.0 시대의 인터넷 정치는 유선 인터넷망을 통해 단일 의제에 접속한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는 형태였다면 모바일 웹2.0 시대의 정치는 개인들의 관심사와 의제가 더욱 주목받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의제들이 실시간으로, 언제 어디서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이것이 통합적으로 전개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웹2.0이 가지고 있는 실시간성과 이동성이라는 특징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생활적 의제들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고 이것이 거꾸로 기성 미디어나 정당, 정부 등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디어와 정치영역의 관계도 변할 수 있다. 알다시피 정치와 미디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미디어는 정치의 매개자 역할을 함으로써 대중에게 정치적 이슈나 의제를 이해시키고 결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일례로 전국적인 범위로 배포되는 신문의 발전과 정당의 발전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기존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으로 기존의 정치영역과 미디어의 결탁관계를 거치지 않고 대중이 직접 정치영역에 접속하고 소통하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정치인들도 기존 미디어와의 결탁ㆍ공모를 통해 정보를 통제하고 특정 이미지나 의제를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정치정보가 이동하는 흐름과 통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로 인해 대중이 실시간으로, 언제 어디서나 정부와 정당의 정책, 활동을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반응 역시 실시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난 웹2.0 시대에 논의되었던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민간 전문가나 시민단체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에게 직접민주주의 수준의 참여를 보장하는 모바일 웹2.0 시대의 새로운 정치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와 정당, 미디어의 고민도 더 깊어져야 한다. 과거 웹2.0 시대에는 권력의 흐름이 중요해졌다면 실시간성과 이동성이 추가된 모바일 웹2.0 시대에는 “흐름이 바로 권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이재열·송호근, 2007).

모바일 웹2.0 시대의 직접민주주의 정치를 가로막는 장애물들

스마트폰이 낳은 모바일 웹2.0 혁명이 정치영역에서 더 많은 시도와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정치실험들이 전개되었는데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시도들은 향후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더 넓게 확산되면서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오프라인, 즉 현실 정치에서 제도적 개선과 발전이 이러한 변화에 상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모바일 웹2.0 혁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면서 광범위한 변화를 낳는다고 해도 현실에서 법ㆍ제도적 변화와 인프라가 뒷받침되고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추동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정치참여 확대와 같은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 연예인이 투표 후에 이른바 투표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린 것에 대해 선관위가 선거법상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사건이다. 이미 대중은 스스로 다양한 정치참여 방식을 개발하고 실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법ㆍ제도의 개선 또는 인프라의 정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선인터넷, 또는 스마트폰판 정보격차도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 상당수의 정치정보가 디지털화되고 실시간 소통과 감시, 모니터링, 토론과 의견개진 등 스마트폰으로 인한 새로운 정치행위의 발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여기에서 소외되는 계층도 빠르게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특정계층과 집단만 정치정보에 빠르게 접속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정치영역에서의 정보격차를 확대하고 사회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정부와 정당을 비롯한 정치영역의 행위자들은 이제 정치정보와 참여에 대한 양극화, 격차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스마트폰의 확대가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참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발전에 뒤따르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정치참여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한때 세계 언론은 지금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터넷이 만든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확산을 기반으로 한 정치영역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대중들의 열성적인 참여를 통해 한국정치는 한 단계 성숙하고 발전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가 만든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2008년 당시 대통령선거에서 소셜미디어의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실험을 단행했고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스마트폰 혁명을 필두로 모바일 웹2.0 시대가 정치영역에서의 새로운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스마트폰이 만든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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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IT 산업은 한국의 효자산업이었다. 97년 외환위기 직후에 한국의 수출을 주도한 것도 IT산업이었고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IT버블 붕괴 이후에도 오히려 한국의 IT산업은 세계에서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며 한국의 성장을 주도해왔다. 매년 기업들의 분기실적이 발표될 때면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얼마를 벌었는지, 엘지전자가 세계 휴대폰시장에서 얼마를 점유하고 있는지 등이 화제가 되곤 해왔다. 그런데 2009년부터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되고 전세계의 산업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한국의 IT산업이 위태롭다느니 지나치게 하드웨어에 집중된 산업구조가 문제라느니 하는 불안감 섞인 이야기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순식간에 변하는게 여론이고 분석이라지만 잘 나가던 한국 IT산업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아니면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한국 IT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스마트폰 혁명으로 재조명된 걸까?

스마트폰 혁명이 재조명한 한국 IT산업의 문제점

스마트폰 혁명은 앱스토어(Appstore)라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또한 애플과 대만의 전문 제조업체 팍스콘의 수평분업형 모델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인해 주목받게 된 소프트웨어 산업과 새로운 IT제조업 모델은 거꾸로 기존 한국 IT산업의 문제점들을 재조명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동안 지적되어왔던 한국의 IT산업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IT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 산업에 비해 ‘소프트웨어’ 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문제다. 일부에서는 IT제조업에서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양극화라는 것이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서 현재 IT제조업에 있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지만 사실 크게 변한 상황은 없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는 것이 경향이다.

원래 IT산업은 네트워크 효과를 지니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로 초기에는 사용자의 증가 추세가 느리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산업의 경우 일정정도 성장하고 나면 산업 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게 되는데 이를 적절히 규제하는 것이 정부정책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정부정책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수출에만 지나치게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대기업에만 자원이 집중되었고 IT 중소기업들은 정부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대기업들의 하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IT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자본투입이 절대적으로 낮아 오로지 노동에만 의존하는 문제가 있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다시 드러난 IT 제조업의 문제점을 짚어보면 전체 IT 제조업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일부 수출 중심의 최종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수출효자 노릇을 하는 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핵심부품에 대한 자립도가 낮은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부품소재산업이 일본, 대만 등에 비해 취약한 지점도 곧 잘 지적되는 문제다. IT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는 결국은 경제 주체들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게 되고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결과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IT제조업 고용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IT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대한 낮은 협상력과 불공정한 거래 관행으로 충분한 설비투자나 연구개발투자를 하지 못하고 오로지 노동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IT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들이 제아무리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을 많이 팔아도 중소기업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나날이 높아져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더구나 최근 스마트폰 혁명으로 부품소재산업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의 발전 없이는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 되면서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 모델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나치게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의 IT산업 구조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실 이미 세계의 IT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오고 있었다. 세계 IT시장은 전체 규모 3.4조 달러(‘08)에서 정보통신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46.6%, 소프트웨어 산업이 30.7%에 이르고 있고 하드웨어 산업은 22.7%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전체 IT산업 생산액 중 하드웨어 산업이 73%를 차지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은 8%에 불과하다. 한국의 언론들이 매년 삼성이나 엘지의 반도체, 휴대폰 판매량을 대서특필하는 동안에도 세계 IT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주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부에서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한국의 무선인터넷 정책 등을 두고 이동통신사들이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갇혀있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사실 재벌대기업들의 화려한 판매실적과 이를 마치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기게 조장한 언론들의 호들갑 뒤에서 한국 IT산업 전체가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갇혀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러다보니 스마트폰 혁명이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되자 급기야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도 하드웨어 산업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중심으로 구조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대기업과 하드웨어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의 IT산업이 지금까지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과실을 대기업만이 독점하다시피 해왔고 더구나 이런 과실이 IT제조업과 콘덴츠 개발 등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소기업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서 IT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와 괴리되는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성장의 과실을 얻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은 오로지 노동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밖에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자 이로 인해 정작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개발자들은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게 되었고 IT산업이 신종 3D산업이라는 취급을 받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한국에서 반복되는 애플과 팍스콘 노동자들

이러한 한국 IT산업의 고질적 문제점들이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를 실시간으로 전파한다는 스마트폰 혁명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국민들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게 개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세계적인 산업의 변화가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의 경영전략 등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크다. 아마 한국의 대기업들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시하게 되고 부품소재산업을 강화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곧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개발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스마트폰 혁명을 세계적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애플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자사의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고 대만의 혼하이그룹 자회사인 팍스콘이라는 전문 제조업체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팍스콘의 노동자들은 유례 없이 열악한 노동시간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최근 몇 달새 무려 열두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플 아이폰의 세계적인 성공이 중국의 팍스콘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비례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과 팍스콘 노동자들의 관계는 한국의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 노동자들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이 스마트폰 열풍에 동참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부품소재산업 등을 혁신시킨다고 해도 이는 중소기업,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 대한 노동강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애플이나 구글과 같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앞서가는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제품단가 하락을 통한 시장지배력 확대를 목표로 중소기업에 단가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이미 휴대폰 시장에서 재벌대기업들이 세계 휴대폰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할수록 국내 부품생산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은 이익률이 하락한 2005년, 2006년의 기존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

더구나 ‘앱스토어’등의 성공으로 주목받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 콘덴츠 산업 등의 경우도 대기업들이 나서서 이를 단독으로 수직계열화할 경우 자본도 투자여력도 부족한 중소기업들이나 개발자들이 이에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개발이나 콘텐츠 개발도 일정 규모 이상의 데이터의 대량 축적이나 인프라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거대한 변화라해도 초창기에는 늘 빛나는 성공을 거둔 개인들이 주목받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재벌대기업들의 위용만 주목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초반 IT중소벤쳐기업들의 몰락과 대기업들의 독점화 현상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따라서 현재 한국 IT산업의 바람직한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정부정책과 함께 기업들의 경영방식도 변해야 한다. 정부정책은 그동안 수출효자산업으로 인식해온 IT대기업들의 하드웨어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부품소재산업 강화를 위한 각종 지원이 더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하드웨어 중심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기업들에게 그냥 맡겨둬서는 안 된다. IT중소기업들이나 콘덴츠 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노력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정책은 정부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현재 정부가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의 경우만해도 87.8%가 공공기관이나 정부가 지적재산권을 소유하는 등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그간 수출주도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대기업들도 이제 변화된 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덴츠 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과 공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스마트폰 혁명, 모바일 웹2.0 혁명이 그대로 대기업, 중소기업의 관계 변화, 개발자 등을 포함해 중소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애플도 삼성도, 구글도 결국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생산의 고리에서 최종점을 차지하기 위해 플랫폼 전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을 가져다 혈투를 벌이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노동의 문제, 고용의 문제, 국민생활의 변화와 개선 등을 고려하기보다는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이 단순히 새롭게 열린 시장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존의 방식대로 중소기업과 개발자들의 노동과 노력을 빼앗아가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이것은 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변화에 대한 얕은 고민과 시야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바일 웹2.0 혁명의 근본가치인 ‘참여, 공유, 개방’은 기업의 변화에 앞서 국민들의 의식에 변화를 낳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의 소비자로서 머물지 않고 정치, 사회, 경제적인 문제에 실시간으로 참여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거대기업들의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이나, 공존을 외면하는 독점과 편법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참여와 공존을 거부하는 낡은 질서를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웹2.0 혁명의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는 국민들의 의식에 이미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의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보다 먼저 국민의식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을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스마트폰 혁명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수용하는 국민들의 대중적 요구가 주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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