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3.25 09:32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물의 날은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의 건의로 유엔총회에서 지구상의 물 부족과 오염을 방지하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선포되었다. 물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다. 따라서 물을 관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국가의 역할이자 공공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2004년부터 지방상수도에 대한 위탁관리가 시작된 이후 시민사회에서는 공공재로서의 물이 상품화 되는 문제를 비판해 왔다. 이에 새사연은 지난 해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와 함께 <상수도 위탁과 광역관리계획 비판>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상수도 위탁 연구 내용을 요약, 보완하여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난 번 글에서 우리는 수공의 위탁사업 성과가 수공의 초기 적자 전략에서 비롯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수공은 초기에 적자를 감수하고 많은 재정을 시설투자비로 지출하지만, 일정 시점 이후에는 위탁대가를 급격히 높여 투자 없는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을 빌미로 위탁을 권유하지만, 결국 수공의 수익은 주민의 수도요금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직영은 비전문적, 위탁은 전문적?

이런데도 상수도 위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위탁은 곧 전문화’라는 막연한 환상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수공으로의 위탁과 위탁 초기의 성과가 수공의 ‘전문성’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한 초기의 적자 전략 때문인가? 만일 지자체가 수공이 초기에 투자하는 것 정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면, 수공으로의 위탁보다 성과가 낮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상 지금 지방자치단체가 겪고 있는 시설 낙후 등의 문제는 전문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예산부족’에서 기인한 부분이다. 만일 수공과 민간기업이 정말 지자체에 비해 ‘전문성’이 뛰어나다면 동일한 예산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증명되고 있지 않다.

직영의 비전문성을 반박할 수 있는 사례도 존재한다. 위탁을 추진하다 철회하고 지자체 직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마산시 칠서 정수장의 사례는 ‘지자체=비전문적’, ‘위탁=전문적’이라는 공식이 별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체 기술력이 매우 뛰어난 편에 속했던 마산시 칠서 정수장은 2001년부터 수공으로의 위탁이 추진된 바 있다. 당시 수공은 세계적인 프랑스 물기업인 비벤디사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마산시 유수율 제고사업 시행을 위한 기본 협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결국 위탁시도였음이 드러난 이후, 마산시 공무원노조와 시민단체는 ‘마산시 상수도 위탁관리저지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결과 시의회에서 위탁계획을 철회했다.

수공으로의 위탁이 철회된 이후 칠서 정수장은 2003년 10월 27일 ISO14001(국제표준화환경경영체제) 인증을 취득한 데 이어 2006년 국립환경과학연구원이 주관하는 정도관리 테스트에서 ‘올해 먹는 물 분야 숙련도 시험평가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정도관리 검증서(Certificate of Environmental Laboratory)를 받기도 했다. 또한 2008년 6월에는 마산시 수도사업소에서 근무하는 7급 공무원이 수돗물공급용 강압밸부의 압력제어 장치와 방법을 개발하고 특허를 받아 상수도 사업 분야에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방식은 하루 정수생산량이 40만톤에 이르는 마산시의 경우 연간 17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례는 직영체제에서도 상수도 시설 공무원들의 현장경험과 연구여건, 성과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가 결합되면 충분히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수공의 위탁은 훗날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초기에 예산투입을 집중하는 전략 이외에 별다른 전문성의 근거를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끊임없이 수공으로의 위탁과 민간기업 참여를 의도하는 광역관리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책이라기보다 ‘시장을 통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보는 정치적 환상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해외 여러 나라들에서 시도되었다가 큰 낭패를 경험한 것이기에 충분한 재고되어야만 한다.

지방의원들의 무책임한 위탁 결정

이런 상황에서 수도사업 위탁이 갖는 또 하나의 문제는 ‘위탁 실패’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수도 위탁을 최종 결정하는 지자체의 선출직 공무원은 임기가 4년에 불과하지만 수도 위탁 기간은 20~30년으로 되어 있어, 계약 체결 이후 선출된 공무원들이 위탁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특히 수공의 전략이 초기에는 적자를 보더라도 시설비 등을 적극 투자하지만 점차 비용 대비 수익을 늘려 나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실제 위탁상의 문제가 드러나게 될 시점은 계약을 체결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임기가 이미 종료된 이후가 될 것이다. 결국 위탁계약을 체결한 선출직 공무원들은 위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도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까?

더구나 고령군과 금산군, 동두천시의 경우는 임기를 불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자체 의원들이 위탁문제를 날치기 처리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임기 문제로 위탁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없다기보다,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 경우다. 이런 상황을 두고 지자체 의사결정권자들과 수공과의 ‘모종의 거래’ 의혹이 제기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위탁 결정의 중도 철회는 가능한가?

물론 계약기간 도중에 이를 해지할 방법이 있긴 하다. 수도법 시행령 제40조에는 ‘수탁자가 위탁받은 수도관리업무의 운영이 부진하여 위탁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 경우’나 ‘주민투표법에 따른 주민투표의 결과 위탁계약을 해지하기로 한 경우’ 위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자세히 밝혀 놓을 것을 명시해 놓았다.

그러나 더 이상 위탁을 실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실제 위탁계약을 해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계약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08년부터 위탁실시 된 지자체들의 경우 중도 해지 시 지자체는 해지지급금을 해지 효력 발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산정하도록 되어 있다.

수공에 의한 책임일 경우 기존에 투입된 자금에 대한 지급 잔액을 수공에게 지급해야 하며 지자체의 귀책사유나 불가항력으로 인한 경우에는 기투입 자금에 대한 지급잔액과 미래기대수익현가(해지 시 실적치에 근거한 미래 기대수익 흐름을 불변수익률로 할인한 금액)를 잔여운영기간을 고려하여 가중 평균한 금액으로 지급해야 한다.

수공이 초기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지관리비 정도만 지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자체의 입장에서 중도해지란 꿈도 꿀 수 없다. 위약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민투표에 의한 중도 해지도 지자체 귀책사유와 동일한 지급금 산정 공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민 다수가 위탁운영에 반발하더라도 실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상수도 위탁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몇 가지만 살펴보자.

위탁은 제대로 된 정보로 주민이 결정해야

상수도 위탁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역주민의 의사이다. 수도법 시행령에서도 관련 조항이 있다. 위탁계획서의 작성과 의견수렴에 대한 조항은 2006년 6월 30일부터 시행된 ‘수도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22조의 5에 도입되었다. 여기에는 위탁심의위원회에서 위탁관련 사항의 의견을 들은 후 20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고 설명회를 개최하도록 했다.

또한 위탁계약서를 주민에게 공람할 때는 미리 위탁계획서의 개요와 공람기간, 공람장소, 의견 제출시기와 방법 등을 한 개 이상의 중앙일간신문과 해당지역 지방일간신문에 각각 1회 이상 공고하고, 공람장소에 관계서류를 비치토록 했다.

그러나 모든 지자체의 계약서에는 계약 해지 후 5년까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나 법에 의해 그 공개가 허용되는 정보, 각종 분쟁해결절차에 의한 정보 공개, 정보공개 당사자의 법률자문이나 보험회사, 금융회사 등에 의한 정보공개’를 제외하고, ‘협약의 조건이나 사업을 수행하며 취득한 정보와 자료’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비밀유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주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수도법 시행령에도 위배된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나의 사례에서 대안적인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나주시에서 상수도 위탁문제를 결정할 때 나주시민들은 ‘나주시 상수도 위탁사업 시민검증위원회(이하 시민검증위)’를 조직해 상수도 위탁의 타당성을 검증해 나간 바 있다.

시민검증위는 2007년 7월 나주상가번영회, 나주시요식업협회, 나주실크로드, 나주 풀뿌리 참여자치 시민모임, 나주사랑시민회, 나주시행의정지기단, 나주진보연대, 영강동주민자치위원회 등 8개 단체와 관심있는 시민들을 공개 모집하여 결성했다. 검증위는 위탁 중인 논산시와 위탁을 포기한 전주시를 방문하고 공무원노조, 상수도 사업소 등과 모임을 가졌다.

시민검증위는 물론 몇 가지 한계를 가진다. 당시 검증위 관계자에 의하면 시민검증위에 애초에 기대한 것보다 폭넓은 시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상수도 위탁 반대여론 때문에 마지못해 결성된 것이어서 별다른 적극성을 가지고 활동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실제 조사를 통해 위탁 성과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의견을 청취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내부에 친 시장적 성향의 사람들이 섞여 있어 의견이 합의되지 않는 등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검증위의 활동은 20년 이상의 위탁 기간 모두를 고려한 것이라기보다 수공의 예산이 집중 투입되는 초기 성과만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나주시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어느 정도 보장하고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는 향후 위탁문제를 결정할 때 참고 모델이 될 만하다. 위탁을 앞두고 있는 지자체들과 해당 지역 주민들은 나주시 모델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주민참여형’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탁 기간 전반에 대한 정보의 완전 공개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민간위탁은 수공으로의 위탁 부작용 이상으로 클 것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물사유화 반대 운동이 고려해해야 할 지점도 있다. 현재 물사유화 저지운동은 수공으로의 위탁을 ‘민간위탁’으로 규정하고 반대 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지만, 엄밀하게 구분해서 위탁과 민간위탁, 민(사)영화는 다른 개념이다.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위탁은 ‘각종 법률에 규정된 행정기관의 장의 권한 중 일부를 다른 행정기관의 장에게 맡겨 그의 권한과 책임 하에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민간’위탁은 행정기관 간에 위탁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위탁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현재 우리 상수도 위탁은 민간기업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민간위탁은 아니다. 이미 위탁이 시행 중인 13개 지자체와 협약이 진행 중인 다른 지자체 모두 수탁대상은 공기업인 수자원공사다. 정부가 지난 해 ‘민간위탁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에도 수공으로의 위탁이 계속 추진되고 있는 것은 수공으로의 위탁은 ‘민간위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운동진영의 입장에서는 수자원공사가 공기업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공익적 측면을 별로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위탁과 수공으로의 위탁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운동’을 위해서는 좀 더 수월할 수는 있어도,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즉 비록 수공이 공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수공으로의 위탁 부작용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으로의 위탁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민간기업에게 물 시장을 넘겨주는 부작용은 이제까지 우리가 수공으로의 위탁을 통해 경험한 것 이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공기업으로의 위탁과 민간위탁의 차이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최근 공식문서에까지 이를 ‘민간위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의도가 무엇일까? 이미 수공으로의 위탁은 15개 지자체에서 확정 또는 시행 중이고, 53개 지자체에서는 위탁을 위한 협약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를 민간위탁으로 치부하면 ‘민간위탁은 이미 대세’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음을 기대하는 것 아닐까?

민간위탁의 위험성은 그것이 물의 사유화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수도사업은 그 특성상 위탁기간이 20년으로 매우 길고, 위탁이 종료된 이후에도 계속 위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의미에서 민(사)유화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수탁업체의 입장에서는 계약 종료 후 다른 기업으로 위탁권한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입장에서는 물 관리를 민간기업이 계속 독점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물 공공성 지키기, 2010년 지방선거 계기로 삼아야

그럼에도 수자원공사는 ‘공기업’으로서의 공공성보다 경영효율과 수익창출을 앞세우며 스스로의 공공적 성격을 훼손하고 있다. 물관리의 광역화와 경영효율을 추진하고 있는 환경부 이만의 장관마저 “농촌공사나 수공의 수리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돌려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익성을 지키지 못할 공기업이라면 사라지는 편이 낫다.

지자체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주민의 복리를 위해 애써야할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너무도 쉽게 20년 이상의 상수도 위탁관리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분명하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지방의원을 꿈꾸고 있을 후보들에 대해서도 상수도 위탁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물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지방상수도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 방법이 ‘시장화’밖에 없을까? 지나치게 세분화된 상수도 체계가 문제라면 광역화를 논의할 수는 있으나 그 관리방안에 위탁이나 민간위탁이 전제될 이유는 없다.

재정상의 문제라면 국가차원에서 광역단위별로 순환적인 재정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한꺼번에 낙후된 지방상수도 시설을 개선하기 어렵다면 제한된 제정을 정기적인 순환체계에 맞춰 특정 광역단위 별로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에서는 초기투자예산 확보를 위한 채권 발행 등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 국가는 필수재인 물관리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역할은 사실 선택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미 물사유화를 위한 제도적 여건은 마련되어 있다. 지난 해 3월 일부 개정된 수도법 제12조에 따르면, ‘수도사업은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경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원래 조항에 ‘다만,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신하여 민간 사업자에 의하여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조항이 덧붙여져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민간 물기업이 수도시장이 뛰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제도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고려의 성격이 크다.

달리 말하면 물사유화를 저지할 수 있는 것도 ‘정치적인 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을 가진 엘리트가 유일하게 대중의 눈치를 보는 공간, 즉 내년 선거를 앞두고 물 사유화 반대를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손우정/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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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6.05 19:20

굴욕적인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촉발된 촛불 정국이 한 달여 지속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요구는 쇠고기 재협상에서 국민 주권 전반에 대한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는 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강단이나 국회, 헌법재판소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촛불 정국에서 입증되듯이 국민의 주권의식과 민주주의 역량은 대개 거리에서 발생하고 성장해간다. 그런데 2008년 5, 6월을 관통하는 촛불 정국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에 대한 국민의 안목을 높이는 계기로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경제 이슈가 빈번히 등장하고 기지가 반짝인 촛불 정국의 경제학을 살펴보자.


18원의 비용과 유쾌, 상쾌한 효용


먼저 재치와

풍자가 넘치는 ‘18원 후원’하기다. 후원 대상은 한나라당의 심재철 의원. ‘광우병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해먹어도 안전하다’는 발언이 네티즌의 공분을 자극했다.


항의 및 조롱의 뜻으로 심재철 의원에게 1원 또는 어감이 좋지 않은 18원을 정치자금으로 보내자는 의견이 나오고 네티즌의 반응은 신속했다. 게시판에는 1원이나 18원을 보낸 송금 내역이 갈무리 사진과 함께 연이어 올라왔다. 그런데 아무리 분노를 표시하는 일이라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18원도 쌓이다 보면 심 의원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한쪽에서 제기되었다. 경제적 효과에 갈등이 생기는 순간이다.


그러자 이 문제에 대한 기상천외한 해법이 역시 네티즌 사이에서 속출했다. 18원을 보내고 정치후원금 영수증 교부를 등기속달로 요구하자는 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영수증 등기속달 발송 비용은 1,750원. 만일 대통령 탄핵에 서명한 130만 명이 모두 18원을 보낸다고 할 때, 의원 통장에 2,340만 원이라는 거액이 쌓이지만 영수증 교부를 위해 심 의원은 22억 7,500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보내는 사람은 18원의 비용으로 유쾌, 상쾌, 통쾌한 편익을 얻고 심 의원측은 수입의 백곱절 비용을 지출하므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의 실현성 여부를 떠나서 18원 후원을 둘러싼 아기자기한 논쟁은 경제학에서 다루는 ‘효용’ 개념을 설명하는 사례로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사용가치’가 객관적 개념인데 비해 ‘효용가치’는 주관적이다. 평균재산이 35억 5,000만 원인 사상 최대의 부자 내각이나 지난 한 해 동안 부동산에서만 13억 원 이상 재산을 불린 자산가 심재철 의원에게 18원의 사용가치는 미미할 따름이다. 그러나 18원으로 후원자들이 누리는 효용은 결코 적지 않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한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18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상당히 탁월한 경제적 선택이다.


수돗물 괴담과 민영화


다음으로 수돗물값 하루 14만 원론이다. 한 네티즌이 우리가 하루 사용하는 물의 양을 약 258리터로 계산했다. 이를 시중에서 파는 생수값 리터당 5백 원으로 환산하면 약 14만 원이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그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과장되었다. 그러나 공공재인 수돗물을 이윤 추구가 우선인 사기업에 맡길 경우 벌어질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에 대한 경고라고 읽으면 이걸 괴담이니 뭐니 하면서 호들갑 떨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이를 즉각 괴담으로 몰아붙일 뿐 정작 본질인 물 사업 민영화의 위험성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합리적 설명을 좀처럼 내놓지 않는다.


수도 민영화 후 첫 4년 동안 물값이 매년 50%씩 상승한 영국이나 미국 기업 벡텔사가 물 공급권을 넘겨받은 뒤 수도요금이 최고 200%까지 오른 볼리비아, 민영화 이후 2년 만에 요금이 600% 인상되고 1,000만 명에게 수돗물 공급 중단 사태를 가져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언론에 노출된 해외 사례들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다.


정부가 정책이 아닌 셈법 차원으로 이 문제를 취급한다면, 좋다. 산수를 해보자. 정부의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 계획’에 따르면 “현재 11조 원 정도인 국내 물산업 규모를 오는 2015년까지 20조 원 이상으로 키우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기업을 2개 이상 육성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지금 정부든 민간이든 물 아껴쓰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물을 ‘물 쓰듯’하던 시대는 지났고 일인당 물 소비량은 점차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인당 물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우리나라 인구가 불과 7년 사이에 갑자기 배로 늘어날 것도 아닌 이상 물 산업 규모를 두 배로 키우는 방법이 무엇일까? 지름길은 물값 인상밖에 없지 않은가. 괴담의 근원은 결국 정부가 아닌가?


국민은 경제정책을 논했는데 정부는 산수가 틀렸다며 괴담이라는 말만 한다. 쇠고기 사태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 생명권과 검역주권, 경제주권을 이야기하는데 정부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좋다고 밖에 나갔다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적다’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통계나 읊어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참으로 두루 소통부재의 정부다.


대통령이 궁금해 한 촛불값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다는 대통령의 귀국 일성은 국민들을 여러 가지로 허탈하게 했다. 그토록 촛불을 들어도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닫힌 대통령에 대한 좌절이 가장 먼저다. 부수적으로는 그래도 대기업 CEO를 지내 통이라도 클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라는 실망감도 안겨주었다.


경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또 산수 차원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경제 대통령’이 자꾸 그렇게 만든다. 가게에서 한 개 1,000원 하는 초로 계산을 해보자.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5월 2일부터 대통령이 중국에서 돌아온 5월 31일까지 모두 30번의 집회가 있었다. 집회 참가자 수에 대해 주최측과 경찰의 추산이 매번 다르지만 정부가 산수만큼은 자신있어 하는 것 같으므로 경찰 집계를 기준 삼으면, 집회 참가자는 항상 1만 명 이하다. 그럼 최대 1만 명의 시민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었다고 해도 30회 X 1만 명 X 1,000원 = 3억 원이다. 이 3억 원의 출처가 그렇게도 궁금했을까.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세계 13위 경제대국 아닌가. 평범한 서민들일지라도 자신의 의사 표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지갑에서 1,000원 한 장 꺼내들 용의는 있다. 나도 함께 간 내 딸도 청계광장의 모금함에 촛불값을 냈다. 어떤 거대한 배후로부터 1,000원짜리 초를 받은 게 결코 아니다.


CEO출신 대통령과 장관의 경로 의존성


구태와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고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고 한다. 이미 한번 익숙해진 시스템에 안주하기 때문에 잘못이 드러나도 개선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며 똑같은 과오가 되풀이된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운천 장관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똑같이 “국민 눈높이가 그렇게 높은 줄 미처 몰랐다”는 말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정 책임자가 국민 눈높이를 모른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바로 대통령과 현 정부의 경로 의존성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건설사와 정체가 아리송한 금융회사 사장 출신이고 정 장관은 농업 기업가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CEO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로 환산되는 거래 이익이다. 이를 위한 약간의 편법과 위험 감수는 기업가적 모험심이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시스템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도 경로 의존성에 의해 동일하게 국정에 적용된다는 게 문제다. 광우병은 ‘약간의 위험’일 뿐이고 정 불안하면 안 사먹으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래서 국민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운하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수돗물 민영화도 산업은행 민영화도 다 추진되는 것이다.


앞으로 다른 문제가 또 터지면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국민이 그렇게 눈높이가 높았어?” 경로 의존성이니까.


촛불 정국에서 귀먹은 정부에 국민은 기어코 ‘대통령 하야, 탄핵’ 구호를 꺼내들었다.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그토록 가벼이 여긴다면 대한민국의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오는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의 앞날을 이야기하자는데 자꾸 조그만 거래 이익과 셈법에 집착하는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촛불 정국은 그렇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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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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