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고서2011.03.28 15:41
2011.03.28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정치권력과 신문권력이 서로 부추기며 젊은 세대를 호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만든 <중앙일보>는 신문 1면에 다음과 같이 P세대를 정의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실체를 인식하고, 애국심(Patriotism)을 발휘하고 있는 20대 젊은 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중앙일보가 만든 말이다. 애국적인 태도 외에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실용(Pragmatism)적인 자세를 보인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Power n Peace)는 신념을 지녔고 국방의 의무를 유쾌하게(Pleasant)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개성(Personality)세대다.”


물론, 어떤 신문이든 말을 만들 ‘자유’가 있겠지요. 실제로 너무 많은 말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요. 문제는 그 말이 얼마나 보편타당성을 지니는가에 있습니다. 보편성도 타당성도 없으면서 어느 신문사가 자신이 만든 말을 여론으로 만들어간다면 ‘직권 남용’ 아닐까요.

 

2003년과 2011년의 P세대와 삼성

 

P세대 이야기는 처음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못지않게 삼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일기획이 이미 2003년에 젊은 세대에게 쓴 말입니다. 당시 P는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힘(potential power), 패러다임 변화(paradigm-shifter)를 뜻했습니다. 알다시피 그 시기는 월드컵의 ‘붉은 악마’ 열기가 뜨거웠지요. 노무현 바람이 불어 ‘참여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성이 정치기류에 따라 젊은 세대를 호명하는 게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굳이 기회주의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겠지요.


기실 우리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숱한 호명을 들어왔습니다. 한결 같이 이윤을 목적으로 한 자본의 논리나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짙었지요. 2003년의 P세대와 2011년의 P세대가 대표적 보기입니다.


아마도 정치적 판단이었겠지요. 이명박 대통령까지 적극 가세했더군요.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1주기를 맞아 “P세대라고 하고 G20세대라고도 하는 젊은이들이 매우 합리적으로 또 진정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며 “이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가요. 아직 진실이 온새미로 규명되지 못한 사건을 두고 저들이 몰아가는 여론은 너무 얄팍하지 않은가요? 과연 무엇이 진정한 ‘애국’이고, ‘평화’를 지키는 길이고, ‘실용주의’인지 ‘유쾌한 개성’을 지닌 젊은 세대에게 새삼 말 건네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 강조해온 말이니까요.


다만 2030세대에게 R세대라는 말을 다시 상기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세대 규정과 달리 R세대라는 말은 자본이나 권력의 호명이 아니지요. 2000년이 열릴 때 젊은 세대 스스로 그렇게 호명했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판에 뛰어들어(rush) 저항하고(resistance) 마침내 혁명(revolution)을 이루겠다”는 그 다짐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해 오월 을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했지요. 지금 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뉴스레터로 매주 발행되고 있습니다(http://www.saesayon.org).


2030 스스로 규정한 세대 이름―R세대

 

저는 R세대가 단순히 2000년 시점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월드컵 열기 때 붉은 물결을 두고 자본 쪽에서 R세대라는 호명이 나온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에 뛰어들어 비판하고 변화를 일궈내는 R세대의 정신은 젊음의 영원한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P세대와 R세대의 호명 가운데 실제 젊은 세대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P세대 뒤에는 막강한 삼성자본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 스스로 밝힌 R세대는 그렇지 않지요. P세대와 R세대 사이에 PR할 수 있는 힘의 차이가 큽니다.


저는 PR의 차이를 젊은 세대가 벅벅이 넘어서리라 믿습니다. 2000년 그때처럼 정치판은 부패하고 무능하기 때문이지요. 썩고 구린 정치로 젊은 세대가 살아갈 객관적 조건은 무장 열악해져가고 있습니다.


2000년 R세대는 2002년의 촛불, 2008년의 촛불로 곰비임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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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8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청년실업이 해결할 과제랍니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수장’을 맡고 있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입니다.


윤 장관은 2011년 3월16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최근 경기 회복과 함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지만 고용시장에는 몇 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서 “청년층 고용부진”을 꼽았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청년실업이 해결할 과제라는 장관의 말에 반가운 사람들이 참 많을 듯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황당하지 않은가요?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해결할 과제라고 짐짓 강조하는 장관의 모습은 ‘입발림’이 아닌지 의문까지 듭니다.

 

청년실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 한가한 소리

 

제가 이명박 정권이 모처럼 청년실업을 언급한 말을 두고 입발림이라거나 한가하다고 비평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회의에서 윤 장관은 “서비스업 선진화와 신성장동력 육성 등 다각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거시적 정책 아젠다 외에 미시적 측면에서도 고용지원 체계의 효용성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얼핏 대책을 고민해왔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닙니다. 윤 장관의 말을 분석해보면 정부가 거시적 정책을 할 만큼 했지만 효과가 없으니 이제 미시적 측면에서 접근하겠다는 뜻이 읽혀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전혀 아닙니다. 당신이 체감하고 있듯이 청년실업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온통 피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같은 날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5%로 2010년 12월(8.0%) 이후 3개월째 8%대를 기록했습니다.

 

대책이 없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청년실업을 ‘청년고용할당제’로 풀자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당장 민간 싱크탱크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은 2006년 창립 이후 줄곧 청년고용할당제 도입을 촉구해왔습니다. 새사연만이 아닙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청년유니온도, 복지국가와진보대통합을위한시민회의(진보통합시민회의)도 청년고용할당제를 곰비임비 제안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쇠귀에 경 읽기로 일관해왔습니다. 윤증현 장관이 미시적 대책을 운운하던 바로 그날 새사연은 <계속되는 청년고용문제―2011년 2월 고용시장 분석 : 월간 고용시장 모니터>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청년고용할당제도 제안 왜 모르쇠 하나?

 

보고서(http://www.saesayon.org)에 따르면 20대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을 뿐만 아니라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청년층의 경우 30대나 40대 임금 노동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는 청년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책임있는 정책이 요구”된다며 청년고용할당제의 도입과 함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실업상태에 직면할 수 있는 청년층을 보호하기 위한 실업부조 도입”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층의 숙련을 높일 수 있는 교육훈련 정책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외면 당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입니다. 새삼 젊은 당신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결할 정책은 있는데, 그 정책을 줄기차게 제기해도 저들이 채택하지 않고 언구럭만 부릴 때 민주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옳을까요?  언제까지 청원만 해야 할까요?


저들이 킥킥대는 조소가 메아리쳐 울리는 듯합니다.


“능력있으면 정권 잡아 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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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9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악마.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에게 악마는 살아있었다. 장자연이 죽은 뒤에도 살아있다. 지금 이 순간도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서민의 딸과 누이, 아내들에게 탐욕의 눈길을 번득이고 있다.


장자연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악마의 정체를 찾는 뉴스가 줄을 잇는다. “일간지 신문사 대표”를 명시해 “복수”를 당부한 젊은 망자의 편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도 무겁게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다.


썩고 구린 저들에게 대한민국은 천국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상하이에서 일어난 한국 외교관들의 행태 또한 장자연의 악마들 못지않게 역겹다. 대한민국의 방귀 깨나 뀌는 자들이 나라 안팎에서 얼마나 추한 작태를 저지르고 있는지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그래서다. 자칫 잊어버리기 싶지만 오늘 아침 내 가슴을 울린 작은 기사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세계일보> 전상후 기자가 쓴 “장애인 엄마의 안타까운 모성” 제하의 기사(2011년3월9일자)는 썩고 구린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 아기의 운명을 있는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제대로 먹이지 못해 죽은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묻나요.”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30대 여성이 갓 태어난 뒤 영양결핍으로 숨진 자식을 20여일 동안 품에 안고 부산 지하상가에서 노숙한 사실이 밝혀져 상가주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7일 오후 8시40분쯤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백화점 인근 지하상가 내 분수대 옆에서 A(32·여)씨가 담요를 껴안고 배회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확인한 결과 숨진 영아를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상가경비원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강하게 저항하는 A씨에게서 겨우 담요를 빼앗아 안을 들여다보고 숨진 지 20일이 지나 보이는 심하게 부패한 영아의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경찰조사 결과 경기도 안양 출신인 A씨는 6년 전 친구의 소개로 건설노동자인 O(32)씨를 알게 돼 동거해 오던 중 지난해 5월 동거남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A씨는 동거남과 함께 여관과 고시텔을 전전하다 지난 1월 중순 부산 부전동 S여관에서 임신 7개월 만에 미숙아를 낳았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돼 남편이 빈 커피캔을 반으로 잘라 예리하게 만든 날을 이용해 탯줄을 잘랐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한 달 만인 지난달 17일쯤 숨을 거뒀다. 이 부부는 지난 수년간 남편 O씨가 건설현장 일용근로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 일자리를 잃으면서 고시텔에서 쫓겨나와 부산역과 서면 지하상가 등을 떠돌며 노숙생활을 해 왔다. 남편은 아이를 묻어주자고 했으나 A씨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죽은 아기가 너무 불쌍하다”며 아이를 품에서 떼어놓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영양결핍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사망시기 등 정확한 사망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8일 오후 부검을 하기로 했다.


기사를 읽은 뒤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그 아기는 마지막 몸마저 부검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어린 천사의 영혼에, 그 가여운 삶과 죽음 앞에 스멀스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장자연의 몸을 더럽힌 악마들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복지’를 도입하자는 사람들에게 살천스레 ‘포퓰리스트’로 몰아치는 청와대와 국회, 부자신문사의 기름진 사람들은 저 어린 천사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아니,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에 늑장 부리는 나는 어떤가. 진보대통합에 온 몸을 던지지 않는 나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저 악마의 대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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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똥물을 먹였다. 옹근 33년 전 오늘이다. 1978년 2월 21일은 동일방직의 노동조합 선거 날이었다. 스무 살 안팎의 청순한 여성노동자들은 대의원을 뽑으려고 곰비임비 모여 들었다.


그 순간, 어깨 벌어진 사내들이 악취를 풍기며 살천스레 다가왔다. 손에 고무장갑을 낀 그들은 여성노동자들의 맑은 얼굴과 몸에 서슴없이 똥오줌을 퍼부었다. 한 여성노동자가 진저리치며 절규했다. “너희도 인간이냐?” 불량기 가득한 그들은 그 여성에게 몰려가 똥오줌 가득한 양동이를 뒤집어 씌웠다. “건방진 년, 입 닥쳐!” 곧이어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그 엽기적 야만이 벌어지는 현장엔 당사자만 있지 않았다. 동일방직 사무직 직원들은 물론, 정사복 경찰이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노총 섬유노조 본부에서 나온 노조간부도 버젓이 ‘참관’하고 있었다.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이었다. 경찰은 물론 상급 노조 간부조차 “말려 달라”고 울부짖는 노동자들에게 합창으로 퍼부었다.


“야! 이 쌍년들아! 가만있어.” 독자에게도 <미디어오늘> 편집자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그 처절한 순간을 에둘러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증언하고 싶다. 섬유노조 소속의 ‘조직 행동대’란 이름의 깡패들은 노조 사무실을 아예 점거했다.


똥오줌 양동이 씌우고 “입 닥쳐” 주먹


경찰이 수수방관한 이유는 있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가 똥물의 배후였기 때문이다. 충격으로 50여명이 졸도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1명은 정신분열 증세로 6달 넘도록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똥물로 범벅된 여성노동자들을 줄줄이 연행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론이다. 어떤 신문도 방송도 그 야만을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여성 노동자들은 ‘먹물’들처럼 쉬 굴복하진 않았다. 곳곳에서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며 애면글면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기자들은 죄다 침묵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이 마침내 한 방송사를 찾아가 방송국장 면담을 요청했을 때다.


“배우지 못한 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기자들이 내뱉은 말이다. ‘기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개 쫓듯 내몰았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처럼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 퍼 먹이는 공작을 이명박 정권조차 감히 벌일 수 없다. 내놓고 똥물 뿌릴 기업인도 더는 없다. 상급 노동조합도 바뀌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 누구일까. 바로 언론이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그 야만을 바꿔온 사람들에게 줄곧 ‘마녀 사냥’을 했다. 그나마 목소리를 내던 <동아일보>조차 1990년대 들어 사냥에 가세했다. ‘늦게 배운 도둑’으로 요즘은 한 술 더 뜬다.


보라. 삼성의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림프종 따위의 희귀 질환에 걸려 숨진 노동자가 공식 집계로만 15명에 이른다. 희귀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는 89명이다. 자살자도 많다. 2011년 들어서도 두 달 동안 삼성전자에서 두 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이 “3교대 근무라지만 8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14시간, 15시간 일한다며 힘들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집에 왔는데 발부터 다리까지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어보니 약품 얘기를 했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어떤가.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모르쇠다. <한국방송><문화방송><서울방송>의 저녁 ‘간판 뉴스’에 자살 관련 보도는 없었다. 다른 나라 기업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은 사뭇 진지하게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이 정작 이 땅의 자칭 ‘세계 일류기업’에서 일어난 참극을 모르쇠 하는 풍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미 나라밖에서도 삼성전자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침묵했던 33년전 언론, 오늘도 삼성에…


내 또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을 때, 대학 강의실에서 철학을 배우던 나는 똥오줌을 사람에게 먹인 야만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언론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자가 되어 언론을 바꾸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동아일보>와 <한겨레>를 거치며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해왔지만 어느새 나는 언론사 밖에 있다. 회한이 드는 까닭은 무슨 미련 따위가 아니다. 젊은 날의 다짐에 견주어 현실이 냉엄해서다. 33년 전 그때 현직 기자로 살아가고 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고문, 주필, 편집인, 대기자로 여전히 대한민국 언론을 좌우하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 기자로 언론의 한 모퉁이에 서 있으려던 촌지마저 접은 채, 저들이 지배하는 한국 언론을 지켜보는 심경은 고백하거니와 착잡하다.

      
그래서다. 젊은 언론인들의 깨끗한 눈에 충정으로 호소하고 싶다. 33년 전 시민사회는 성명서를 내어 기자들에게 물었다. “폭도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퍼 먹인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한들 아니, 똥물을 퍼 먹인 것이 나쁘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한들 그것이 현행 법규에 어긋나는 것인가? 그 사실을 단 1단의 기사로라도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 또는 조치가 있단 말인가?”


다시 그 물음을 2011년 오늘의 현직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독재정권도 긴급조치도 없는 지금 삼성의 야만을 보도했다한들 어긋나는 법규가 있는가를. 아니, 정말이지 정중하게 묻고 싶다. 왜 삼성 자본의 문제점을 보도하지 않는가? 혹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그래도 지금은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먹이지 않는다고?



*이 글은 2월24일 미디어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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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3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못살겠다, 갈아보자.”

옹근 55년 묵은 정치 구호다. 인터넷 시대에 반세기 전의 낡은 구호라면, 누군가 만지기만 해도 먼지로 폴폴 흩날릴 만하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1956년, 이승만의 독재를 겨냥했던 그 구호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낡은 구호에 붉은 생기를 돌게 한 이는 이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간 3주년 기념으로 출입기자들과 가진 뒷산 산행에서 “나는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는 생각이 없다”고 언죽번죽 말했다. 재임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준한 발언이다. 전임 대통령의 비극적 자살에 정치적 책임을 느껴야 마땅한 현직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고인을 욕보이는 언행도 문제이지만 접어두자.

 

흉흉한 민심에 ‘55년 전 구호’ 등장

 

더 남세스러운 일이 있다. 대통령은 곧바로 자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 순간이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낡은 구호가 흉흉한 민심에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무엇보다 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찬찬히 톺아보길 제안한다. 자랑스럽다? 과연 그게 지금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 날마다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를 보라. 뛸 만큼 뛴 전세는 또 어떤가. 서민들의 삶은 바닥모를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청년 자살이 곰비임비 불거지는 까닭도 그 맥락이다.

 

그렇다. 330여만마리, 비명에 간 저 가여운 가축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서민이 피눈물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자랑스럽다는 말이 나오는가. 7%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내걸며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고 흰소리 떠벌린 정치인이 바로 이명박 아니던가. 상식을 갖춘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국민 앞에 옷깃 여미며 언행을 조신할 때 아닌가.

 

여기서 이명박 집권 3년의 실정을 새삼 나열할 뜻은 없다. 경향신문 독자의 품격 때문이다. 민생 경제의 파탄은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굴욕적 재협상, 국민 불법 사찰과 은폐, 정권의 시녀로 다시 전락한 검찰 따위를 굳이 적시하지 않더라도 애독자라면 이미 개탄하고 있을 성싶다. 다만, ‘MB-한나라당 심판 정당, 시민사회 연석회의’가 이명박 취임 3년을 맞는 2월25일,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예고하며 내건 구호가 ‘못살겠다 MB 3년’임을, 이어 “찾아오자 민생예산, 철폐하라 비정규직, 중단하라 4대강, 취소하라 조·중·동 방송, 해결하라 구제역, 잡아라 생활물가”를 호소하고 있음을 독자와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다.

 

그래서다. 이명박 정권 3년을 맞아 민주시민들이 더 깊이 성찰할 대목은 “못살겠다”가 아니다. “갈아보자”이다. 칼럼 제목에 물음표를 붙인 까닭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어서다. 기실 민주당이 그 구호를 내건 선거에서 자유당은 재집권했다. 신익희 후보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진보당 조봉암 후보로 자연스럽게 ‘단일화’를 이룰 수 있었고, 진보당 부통령 후보가 자진 사퇴했는데도 민주당은 외면했다. 신익희가 유세할 때 야권 단일화를 부르대던 민주당은 정작 그가 죽어 후보가 없으면서도 조봉암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언하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진보당은 “이것저것 다 보았다 혁신밖에 살길 없다”고 외쳤지만, 결국 “갈아봤자 더 못산다”며 언구럭 부리던 이승만이 재집권했다.

 

물음표 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55년이 흐른 오늘,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박근혜가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한나라당 재집권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과연 누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구현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애면글면 벌어지고 있는 시민정치운동에 민주시민들이 다사로운 눈길을 보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진보대통합이든, 민주대통합이든 새로운 시대를 벅벅이 열어가려는 움직임을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소통하며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물음표 빼고 진솔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 글은 2011년 2월 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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