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이 글을 이건희 회장에게 건넬 용기 있는 인재가 과연 삼성에 있을까? 칼럼을 쓰며 슬그머니 묻고 싶다. 삼성과 이건희를 시나브로 망치는 사람들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과 직접적 연관성을 맺고 있는 <중앙일보>를 보라. 초과이익공유제 소동 때와 똑같이 다시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사설 제목으로 삼았다.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사설 제목(2011년 4월23일자)이 그렇다. 이건희 회장이 보기엔 <중앙일보> 논설 책임자가 일을 참 잘한다며 흐뭇했을 성 싶다.

하지만 과연 저널리즘으로 보아도 그럴까. 아니다. 비단 <중앙일보>만이 아니다. 어떤 언론인은 애플의 소송제기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던진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발언을 두고 “짧으면서 핵심을 찌르는 이건희 식 화법은 마치 화두를 던지듯 빠르고 날카롭다”고 썼다. 민망하다.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 이건희 발언 찬양

어떤가.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발언이 정말 탁월한 화법일까? 심지어 <중앙일보>가 사설 제목으로 올릴 정도일까?
상식으로 짚어보자. 그 말은 날카로운 화법이긴커녕 대단히 잘못된 비유다. 스스로 삐죽 나온 못을 자임하고 있지 않은가. 굳이 냉철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못이 나오면 때려야 한다. 그래야 모두 안전하다. 나온 못은 잘못 아닌가.
물론, 나는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화법을 두고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희는 화법 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참모들과 들꾀는 언론인들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건희의 잘못된 비유를 사설 제목으로 삼아 짐짓 위엄을 떤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활약이 돋보이자 사방에서 때리기가 시작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며 ‘전 세계에서 우리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으로 한국 기업이 잘하면 잘할수록 시샘과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게 분명하다.”

사설 논리 전개로 보아도 ‘튀어나온 못’의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튀어나온 못을 때리는 것은 시샘이나 견제가 아니다. 응당 해야 할 옳은 일이다. 회장 이건희에게 아첨을 늘어놓다 보니 그 잘못된 비유가, 그 품격없는 화법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별히 할 일 없어서 집무실에 처음 나온 그룹 총수

더 큰 문제는 단순한 화법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 집무실에서 처음 나온 그에게 기자들이 출근한 이유를 묻자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왔다”고 답했단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할 일이 없어 집무실에 나왔다? 묻고 싶다. 그 말살에 쇠살을 비판하는 언론은 왜 없는가? 삼성전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품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애먼 젊은이들이 곰비임비 숨져 원혼이 되어가는 데도 그 ‘총수’는 “할 일이 없어” 집무실에 처음 나왔단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그의 화법을 찬양한다. 사설 제목으로 삼는다. 그들은 누구인가? 명토박아둔다. 삼성을, 이건희를 망치는 사람들이다.
새삼 궁금하지 않은가. 이 글을 이건희 회장에게 건넬 용기 있는 인재가 과연 삼성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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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0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줄임말 언론연대다. 언론연대가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 때문이다. 언론연대가 곰비임비 내고 있는 성명서를 보면 언론연대의 고민이 뚝뚝 묻어나온다. 안쓰러울 정도다.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당의 잇따른 ‘헛발질’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민주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 ‘방송노조 탄압’에 앞장선 김택곤 전 JTV 전주방송 사장을 내정했다. 언론연대가 지적했듯이 김택곤은 전주방송 사장으로 노조간부를 해고하고 파업 노동자들을 징계했던 인물이다. 방송사 가운데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최초로 해지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언론연대는 물론, 전국언론노조와 시민사회 단체들은 그가 방송통신심의 위원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방송 노조 탄압 인사를 버젓이 방통심의위원에 내정

문제는 민주당의 헛발질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 데 있다. 이미 방송통신위원 임명 때도 시민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뿐이 아니다. 민주당은 한국방송(KBS) ‘김인규 특보체제’가 주동하고 있는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서도 줏대없는 모습을 보여 언론연대의 거센 반발을 샀다. 언론연대는 민주당이 ‘조중동 종편’을 위한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고 공언했으면서도 지난 2월 임시국회에 한나라당과 함께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시킨 사실, 지난 4월8일에는 공청회를 비롯해 수신료 인상의 구체적 논의 일정을 한나라당에 먼저 제시한 사실을 들어 강하게 압박했다.

문제는 현 상황이 4월재보선 정국이라는 데 있다. 언론연대와 시민사회가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자칫 ‘이적행위’가 아닐까 ‘자기 검열’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하지만 보라. 시민사회에서 민주당 낙선운동까지 거론되자 민주당은 수신료인상의 4월 말 국회 처리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교훈은 무엇일까?

민주당은 ‘압박’ 없이 결코 변할 수 없다는 진실 입증

민주당은 압박 없이 변할 수 없다는 새삼스런 진실의 확인이다. 더러는 선거가 끝나면 수신료 인상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냉소도 서슴지 않는다.
오해없기 바란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뜻은 없다. 다만 선거연합으로 민주당이라는 ‘블랙홀’에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빨려들어 간다면, 민주당의 변화는 물론 현실의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상식을 새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진보세력의 대통합이 절실한 이유도 기실 여기 있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 올곧은 비판을 벅벅이 병행해야 할 이유, 선거국면에서 민주당 비판은  ‘이적행위’가 아님을 ‘수신료 소동’은 생생하게 입증해주었다.

그렇다면 어떨까. 방송노조를 탄압한 사장을 방송통신심의위원에 내정한 ‘황당 사건’은, 민주당이 ‘권력’인 전북지역의 버스노동자들이 애면글면 벌이고 있는 생존권 투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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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2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다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포탈 전면에 “전북도지사 딸 결혼식에 민노총 집회 비난” 기사가 올라오면서였다. 네티즌들은 비난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누구에게든 결혼식은 존중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 뿐일까? 차분히 톺아보면 네티즌들의 폭발적 비난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른 뜻이 아니다. 포탈에 뜬 뉴스를 보자. <뉴시스>의 기자가 쓴 다음 기사는 들머리부터 기자의 주관적 가치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이 김완주 전북도지사의 딸 결혼식 당일 식장에서 버스파업 해결을 촉구하며 김 지사의 지인들에게 물리적 행동을 벌여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집회는 120일 넘게 전주버스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민노총이 해당 광역단체장를 상대로 압박 카드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되지만, 도지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여론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노총(전국공공운수노조연맹)은 9일 낮 12시부터 서울시 서초구의 한 교회 앞에서 진행된 김 지사의 딸 결혼식에서 10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민노총은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김호서 전북도의장과 도내 일간지 회장, 일부 하객들에게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이하 생략)”

첫 기사부터 버스 노동자 비난하도록 선동

이 기사는 첫 문장부터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고 썼고 두 번째 문장에선 “비난여론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 된다”라고 썼다. 차분히 짚어보라. 선동이다. 이 기사를 포탈에서 읽은 사람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다. 왜 전북지역 버스기사들이 전북도지사 딸의 결혼식에 와서 집회를 하기에 이르렀을까를 냉정하게 짚어볼 수 없게 한다. 칼럼이 아니라 기사인 데도 그렇다.

만일 인터넷으로 문제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진실을 총체적으로 안다면 지금처럼 격한 반응을 보였을까. 전북도와 전주시는 버스기사들의 정당한 파업을 처음부터 “불법”으로 규정지었다. 사법부가 ‘불법 파업’이 아니라고 판결했음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년의 버스 노동자들이 애면글면 석 달 동안 파업을 벌여도 신문과 방송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버스사업자와 전북도-전주시를 두남둔다면, 민주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과연 결혼식장 앞에서 집회를 열만큼 절박했던 저 가난한 버스노동자들에게 돌만 던져도 옳을까?

재벌신문 <중앙일보>는 “남의 혼사 재 뿌리는 노동운동” 제하의 사설을 내보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다”로 거창하게 시작한 사설은 “불만이 있더라도 남의 혼삿날에 재 뿌릴 권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남의 딸 결혼식장에 떼로 몰려가 막가파식 행패를 부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르댔다.

재벌언론이 버스노동자 꾸짖을 자격 있나?

사설은 이어 “노조는 이번에 금도를 한참 벗어나고 말았다. 거창한 도덕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윤리적 무례와 망동은 최소한의 예의마저 무시했다. 우리 노조운동이 상식 이하의 ‘떼법’에 매달리는 수준에 아직도 머물고 있다니 부끄럽다”고 결론 내렸다.

묻고 싶다. <중앙일보>는 버스노동자들의 파업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불법으로 몰아치고 대화를 거부한 저들을 얼마나 보도해왔는가. <중앙일보>가 노동자들을 비난한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언론의 “금도를 한참 벗어난”게 아니던가. 상식 이하의 저널리즘 아니던가.
생존권 위협에 시름으로 가득한 버스노동자들을 “막가파식 행패”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재벌언론의 모습이야말로 기실 얼마나 부끄러운가. 그래서다. 마녀 사냥을 접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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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슬픔과 울분이 넘친다. 대통령부터 거침없이 토로한다. 언론은 맞장구친다. 울분이 묻어난다. 2011년 봄의 대한민국 풍경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국가원수 이명박의 슬픔부터 짚어보자. 대통령이 슬픔을 고백한 자리는 천안함 사건 1주기를 앞두고 열린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다. 그는 천안함 침몰로 운명한 46명의 군인에 대해 ‘억울한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회의 중에 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잘못이 있다면 여러분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나에게) 있다”고 썼다. 그가 더욱 슬펐던 순간이 눈길을 끈다. 대통령은 “1년 전 우리는 가해자인 적들 앞에서 국론이 분열됐었다. 가슴 아픈 일”이라며 “당시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용기 있게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고 언죽번죽 말했다.

 

“국론분열” “맹북주의” 쏟아낸 말·말

 

어떤가. 궁금하지 않은가. 대통령은 “여러분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을까. 정부 주장처럼 이북의 ‘기습 어뢰공격’이라면,  어떻게 했어야 옳았다는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천안함 1년을 맞아 종합일간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세 신문은 특집보도와 논평을 집중 쏟아냈다. 그들이 드러낸 ‘울분’의 정체는 사설에서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내부에 “대한민국보다 북한 김정일 체제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앙일보>는 한국의 진보·좌파 야당·시민단체가 “북한에 대해 깊은 미망에 빠져 있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다.

 

사설은 남쪽이 ‘맹북주의’를 버리고 이성의 편에 섰다면 북쪽은 남쪽의 단결이 두려워 연평도 도발을 벌이지 못했으리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슬픔을 언급한 뒤 “아직까지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며 북한을 계속 비호하는 친북세력은 국민의 추모 열기를 똑똑히 봐야 한다”고 울뚝밸을 치밀었다. 

굳이 말살에 쇠살인 사설들을 짧게나마 인용한 까닭은 간명하다. 한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우리가 함께 직시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통령의 슬픔을 바라보는 세 신문의 고위간부들이 부럽다. 무엇보다 그들의 용기 때문이다. 굳이 언론인이나 언론학자가 아니더라도 언론보도에 가장 중요한 게 ‘사실 확인’임은 상식이다. 바로 그래서다. 세 신문에서 기자 생활만 30여년 해온 논객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천안함이 북의 어뢰공격임을 사실 확인 했는가?

 

명토박아두거니와 지금 나는 천안함이 이명박 정권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북의 공격인지 아닌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데 있다. 전문가들이 포함된 시민사회단체가 의혹을 제기하는 까닭은 그들이 친북이어서가 아니다. 진정으로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옳기 때문이다.

 

세 신문은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친북세력’ 딱지를 붙여대며 정부에 강경책을 촉구해왔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세 신문은 천안함이 북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됐다고 확신하는 데 우리가 모르는 어떤 근거라도 갖고 있는 걸까? 과연 연평도 포격사태는 그들이 주장하듯이 우리 내부의 분열 때문에 일어났을까? 혹 천안함 침몰 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한 대북 강경책이 연평도 포격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기자라면 마땅히 짚어야 할 의문들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서해 공동개발에만 나섰더라도, ‘나들섬’을 만들겠다는 그의 공약에만 충실했어도 천안함은 물론 연평도 포격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 아닌가?

 

천안함의 실체적 진실 아는가

 

바로 그래서다. 대통령과 세 신문사의 슬픔과 울분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사실 확인이 절실하다. 혹 확인할 길이 없다거나 정부가 주도한 발표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셈인가?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문법이 결코 아니다.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질서가 전환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 갈라진 겨레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다. 시민사회 단체가 참사 직후부터 의혹을 말끔히 씻을 공동 조사를 줄기차게 제안해온 이유도 여기 있다.

 

차분히 짚어보라. 만에 하나 북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 아니라고 판명된다면, 오늘 대통령의 슬픔과 신문의 울분은 무엇이 될까. 물론, 북의 어뢰공격이 진실로 판명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언론이 할 일은 진실 규명이다. 사실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북 강경책을 선동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에 차고 넘친다. 저널리즘은, 책임 있는 저널리스트의 자세는 달라야 옳다. 남북화해 정책을 파탄시킨 권력자에 부닐며 그의 경망한 언동을 맞장구치는 언론을 보면 하릴없다. 슬픔과 울분이 넘쳐온다.

 

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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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이명박과 이건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력자다. 누가 더 권력이 센가를 묻기란 이미 철없는 짓이다. 아직도 이명박의 권력이 세다고 혹시 생각한다면, 2011년 현재 누가 권력을 한껏 누리고 있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보라.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권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를  취재하는 기자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서슴없이 ‘낙제’라는 말을 들먹였다. 물론, 이건희는 경제 정책을 낙제라고 명토박지는 않았다. 짐짓 노회하게 “흡족하다기 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어떤가. ‘낙제’라고 한 말보다 더 비위 상할 성싶다.

실제로 그의 말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원한 소리’는 없었다. ‘총대’를 멘 것은 청와대가 아니었다. 나흘 뒤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이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건희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건희  발언에 장관 “수정하겠다” 꼬리말

신문과 방송은 윤증현의 비판을 간단히 보도하거나 모르쇠 했다. 비교적 길게 보도한 한 신문은 윤 장관이 “강하게 비판했다”고 기사화 했다. 하지만 정작 보도 내용을 짚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윤 장관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극복에 정부 역할이 상당했다는 건 국내뿐 아니라 외국 석학과 언론, 국제기구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장관의 말에선 어딘가 ‘아랫사람’의 억울함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더 있다. 이건희에게 정부 정책 중 어떤 면이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인지 묻고 싶다는 발언까진 강경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곧이어 “지적하면 수정 하겠다”고 말했다. 얼핏 자신감 넘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장관이 굳이 ‘지적’이나 ‘수정’이라는 말까지 쓸 필요가 있었을까? 전형적인 아랫사람의 화법이다.

 

대한민국이 ‘이건희의 세상’임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어서일까. 정부의 경제정책에 낙제점만 거론한 게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정운찬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를 살천스레 비판했다.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나 경제학 공부를 해 왔으나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원색적 발언에 이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 어떤 국가에서 쓰는 말이지 모르겠다”며 빨간 색깔까치 칠하고 나섰다. 이건희가 삼성의 황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황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재계’에선 “시원하다”거나 “할 말을 제대로 했다”고 반겼다.

 

물론, 서울대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경제학 교수 정운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이익공유제를 제안하게 된 가장 직접적 계기가 바로 삼성이라고 말했다. 색깔론이나 이념 잣대로 매도하는 언행에 발끈한 심기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공부한 책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의미를 평가절하 하시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며 사뭇 ‘예의범절’을 지켰다.

 

기실 정운찬의 제안은 스스로 설명했듯이 경영자, 노동자, 협력업체가 공동의 노력으로 달성한 초과이익이라면 협력업체에도 그 성과의 일부가 돌아가도록 하자는 성과공유제의 일종이다.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정운찬의 제안은 기업의 이익 잉여금이나 주주들 몫을 강제로 빼앗겠다거나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물론, 이 신문이 정운찬을 두남둔 것은 전혀 아니다.

 

양비론을 폈을 뿐이다. <중앙일보>는 더 나아갔다. “초과이익공유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건희의 발언을 아예 사설 제목으로 삼아 정운찬의 제안이 자본주의와 헌법 정신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란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부르댔다. <동아일보> 사설 또한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기업의 자율적 상생 실천에도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지금 <중앙일보> 고위 언론인들에게 이건희가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고 있거나 <동아일보>가 이건희 가문과 사돈을 맺은 사실을 몰라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다만,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거침없이 행세하고 있는 한 기업인 앞에 언론의 본령은 어디에 있는가를 함께 성찰하고 싶을 뿐이다.

 

시각차 아닌 사실의 문제… 언론 할 일은

만일, 정운찬이 제시한 초과이익공유제가 참으로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면, 헌법정신을 뒤흔드는 사안이라면 저들이 벌이는 색깔론이나 양비론에 굳이 비평을 하고 나설 이유는 없을 터다. 하지만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다. 이정우 교수(경북대·경제학)도 지적했듯이 초과이익공유제는 엄연히 경제학 책에 나오는 개념이다. 그 제도의 효시 또한 미국이다. 제퍼슨 정부 시절에 이미 도입했다. 과거의 제도만이 아니다. 2011년 현재 삼성전자보다 더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애플사는 협력업체와 3:7로 이익을 나누고 있다.
 
사실관계가 그렇다면 언론이 할 일은 무엇인가? 마땅히 한 기업인의 오만한 언행, 사실과 다른 색깔 선동을 비판해야 옳다. 정치권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이건희에게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으로 삼성을 비롯한 수출대기업들이 얼마나 큰 이익을 챙겼는지를, 반면에 서민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일러주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1인 사면’으로 이건희가 얼마나 큰 혜택을 누렸는가도 새삼 깨우쳐주어야 옳다. 대통령 이명박의 ‘억울함’을 위해서가 아니다. 새삼 강조하지만 모든 권력의 감시가 저널리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11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자리에 있든 스스로에게 한번 쯤 진지하게 묻고 정직하게 답할 때다. 나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온전히 저들을 감시하고 있는가를, 이명박과 이건희를.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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