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1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마침내 2012년이 밝아옵니다. 새해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입니다. 고백하거니와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사연과 저는 무력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부익부빈익빈이 구조화하면서 정권을 교체하자는 여론은 거셌지만, 진보세력은 대안으로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독재와 언론권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뿌려놓은 경제 성장의 환상은 기어이 이명박을 대통령 자리에 앉혔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은 결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며 수십여 편의 글을 이곳에도 올렸습니다만,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새사연 이사회에서 저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중운동이 오히려 살아날 가능성을 강조하고 5년 뒤 진보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데 무기가 될 대안을 치밀하게 벼려가자고 당부했었습니다. 지난 5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노동중심경제와 통일민족경제’의 학습을, 새로운 사회의 꿈과 그 나눔을, ‘주권혁명’을 호소해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새사연 회원 여러분.

1년 전 저는 신년사에서 두 가지 확고한 전망을 보고 드렸습니다.

첫째, 진보적 경제학자로서 눈부신 활동을 벌여온 정태인씨를 원장으로 초빙한 사실을 알려드리며 정태인-김병권 체제가 기존의 상근 연구진과 더불어 새사연의 내일을 괄목상대할 만큼 키워 나가리라 확신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새사연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가 선정하는 국내 싱크탱크 순위에서 5위로 올라섰습니다. 저희가 그에 값하는 연구 성과를 내놓고 또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가를 겸손하게 짚어보아야 마땅하겠지만, 새사연의 책무가 더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둘째, 시민운동-노동운동을 이끌어 오신 분들과 함께 <진보대통합시민회의>에서 제가 상임 공동대표를 맡은 사실을 보고 드렸습니다. 회원님들께서 보시다시피 통합진보당은 2011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와 달리 진보신당과 진보적 시민운동 세력이 조직적으로 합류하지 못해 미완의 통합이 되었고, 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보대통합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 자리에서 곧바로 물러났습니다. 진보신당은 독자적 길을 걷고 진보적 시민운동은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면서 대통합은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지형이 변화하는 흐름은 또렷합니다.

물론, 저는 오늘의 상황을 낙관하진 않습니다. 더구나 2011년에 우리는 많은 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선생이 운명할 때까지 진보대통합을 촉구했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 학습에 앞장서 온 서울노동광장의 이춘자 대표도 갑작스레 떠났습니다. 이 대표는 새사연 창립에 함께 한 박세길 부원장의 평생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향을 피워 그 분들의 명복을 빌며 저는 살아남은 자의 책무는 고통 받는 민중이 희망으로 반길 대안을 마련하고 그 대안을 실현할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다짐했습니다.

새사연은 정태인 원장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진보의 대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완의 진보대통합 또한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이뤄질 터입니다. 더디어도 이 땅의 민중은 아래로부터 다시 힘차게 단결의 깃발을 들어 올리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쉬움은 크지만 절망은 금물입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데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로 뭉쳐 뜨거운 열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현해갈 그 길은 적어도 5년 전에 견주면 훨씬 나아갔습니다. 미완의 그 길을 열어갈 임무가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사연은 새해 3월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체제로 새 출발 할 예정입니다. 늘 자랑스러운 새사연 회원님들께 성심으로 절 올립니다. 새해 회원님과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깨끗한 뜻 이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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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몇 해 전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손석춘 선생에게서 들은 이야기. 손 선생이 연구소를 구상할 무렵 박원순 선생에게 함께하면 어떨지 의논했던 모양이다. 구상을 들어본 박원순 선생이 그러더란다. ‘손 선생이 하시려는 건 민중 기반의 운동이고 제가 하는 건 시민 기반의 운동이니 따로 하는 게 효율적이지 싶습니다.’ 민중 기반의 운동에 속한 나는 박원순 선생과 견해가 종종 달랐고 두어 번 직접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박 선생이 매우 양식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급좌파’를 자처함으로써 숱한 ‘윤똑똑이 좌파’들을 민망하게 한 김규항이 올해 초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의 들머리다. 사석에서 나눈 말이 활자화 된 신문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이들에게 사실을 확인해주고 싶어서다. 여기서 딱히 내 성향까지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 <100분토론>에서 말했듯이 나는 ‘친북좌파’가 아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바로 나 같은 사람과도 함께 일하는 데 ‘부담’을 느낄 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의 황당한 극우논리

지금 나는 박원순의 그 선택에 전혀 유감이 없다. 그 뒤 희망제작소와 새사연은 각각 고유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았다. 의심 많은 이들을 위해 밝혀두거니와 새사연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저명 목사’에 이어 언론인들까지 곰비임비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저격하는데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우리는 수도 서울을 이렇게 지켰다” 제하에 쓴 <조선일보> 선임기자의 칼럼이다. 그는 한국전쟁의 참극을 길게 늘어놓은 뒤 끝자락에서 자신이 해병대 전 사령관에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자유가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넘어갈지도 모를 서울을 왜 그렇게…”라는 질문을 던졌고 “노병은 침묵했다”고 썼다. 어떤가. 김대중과 류근일을 뺨치는 극우 논리다.

저들의 황당함은 ‘친북 좌파’타령에 그치지 않는다. ‘검증’ 명분 아래 한국 사회가 낳은 탁월한 시민운동가를 “병역 기피자”와 “학력 위조범” 더 나아가 “대기업을 겁박한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 심지어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며 강남에 사는 위선자로, 마음고생 컸을 박 후보의 아내는 부당한 이익을 추구해 온 사업가로 마구 써댔다. 그들의 주장은 박 후보의 재산이 ‘마이너스’로 나올 때까지, 아니 밝혀진 다음에도 여기저기 퍼져가 적잖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했다.

정치에 입문한지 7년 만에 18억 재산을 40억원으로 불렸으면서도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해왔노라고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언죽번죽 자부하는 국회의원 나경원과 대기업으로부터 수백 억 원의 기부금을 받아 서민들을 도우면서 자신은 월세로 빚진 채 살고 있는 변호사 박원순을 검증하는 저들의 잣대는 굽을 대로 굽어있다.

물론, 기자도 칼럼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주관을 드러낼 수 있다. 더구나 나경원은 ‘사학 재단’의 딸로서 재단만 비호한 게 아니라, 조선·동아·중앙일보에 결국 종합편성 채널을 하나씩 ‘선물’해 준 미디어법 ‘날치기’에도 오지랖 넓게 앞장섰다. 세 신문사로서는 ‘확실한 보답’의 신호를 정치권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날 수 있다.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그나마 언론

다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옳다. 그런데 조선·동아·중앙일보 기사를 톺아보면 ‘찌라시’라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서울대 사회계열과 법학과 사이에 무슨 ‘심연’이라도 있는 듯이 보도하는 행태는, 시위로 제적된 당사자가 얼마든지 법대로 복학할 수 있었지만 단국대 졸업에 만족할 만큼 학벌에 개의치 않은 보기 드문 미덕을 원천적으로 가리고 있다.

가만히 따져볼 일이다. 정치 활동 중에 부동산을 사고판 것만으로도 13억의 차익을 챙긴 후보에 견주어 박원순의 경제생활에 도덕성을 들이대는 ‘저격수’는 얼마나 해괴한가. 박원순이 대기업 모금에 나선 걸 비판하려면 마땅히 ‘아름다운 재단’의 설립 자체를 시비 걸어야 옳다.

만일 극좌가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이해할 수 있어도 재벌과 유착한 정권의 모리배들이 들먹이는 풍경은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다. 13살 소년에게 병역 기피 의혹을 날마다 내뱉는 ‘병역 기피정당’의 얼굴은 또 얼마나 느끼한가.

세 신문에 묻고 싶다. 참으로 박원순이 ‘병역기피자’라고 생각하는가? 학력을 부풀릴 의도로 위조했다고 판단하는가? 박원순은 대기업과 유착했는가? 아니라면 최소한 언론으로서 품격을 지켜가길 권한다. 대체 언제까지 ‘찌라시’로 대한민국을 망칠 셈인가?

말살에 쇠살임에도 왜 저들은 여론몰이에 몰두할까. 이른바 ‘보수 결집’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와 투표 불참이 목적이다. 유권자들의 슬기가 참 절실한 오늘이다.

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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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9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선물과 눈물.

취재기자와 편집기자가 작심을 하고 만든 지면의 굵은 활자다. 인천지역 두 기업의 ‘엇갈린 운명’으로 문패를 단 사회면 머리기사는 ‘14년 무파업 선물’이라는 기사와 ‘7년 파업의 눈물’ 기사를 나란히 사진과 함께 올려놓아 지면의 극적 효과를 높였다. 맞물린 사진으로도 강조했듯이 ‘선물’기사는 14년 파업을 하지 않은 동국제강 인천제강소는 초고속 성장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반면에, ‘눈물’ 기사는 ‘전기-통기타 매출 세계 1위’ 기업인 콜트악기가 파업으로 공장 문을 닫는다는 기사다.

‘콜드악기 피멍울’ 3년 만에 정정보도

동아일보가 사회면 머리기사로 돋보이게 편집한 지면의 의도는 또렷하다. 공연히 파업하지 말라는 ‘훈계’와 더불어 노동운동에 대한 살천스런 ‘공격’이다. 이를테면 ‘7년 파업의 눈물’기사를 읽었을 대다수 독자는 울뚝밸이 솟을 수밖에 없다. “노조의 강경 투쟁 때문에 직원 120여명이 평생직장을 잃고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됐다”거나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수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해외 바이어들이 고개를 돌렸다”는 대목은 독자들에게 노동조합이 해도 너무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더구나 바로 옆에 소개된 같은 지역의 무파업 회사에서 노사가 축배를 나누는 모습은 노동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을 한층 강화해주었을 터다.

동아일보 2008년 8월2일 11면.

그런데 어떤가. 콜드악기 노동자와 가족들의 가슴을 피멍들게 하고 노동운동에 혐오감을 마냥 부추겼을 그 기사를 내보낸 동아일보는 옹근 3년만인 2011년 9월19일자에 정정보도를 실었다. 물론 지면의 크기는 2면 하단의 1단으로 사회면 머리기사(2008년 8월2일자 11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정정보도에서 동아일보는 “콜트악기 부평공장의 폐업은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용자 측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의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노조의 파업은 대부분 부분 파업이어서 회사 전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간결하게 썼다.

이 신문이 정정보도를 낸 이유는 법원 판결 때문이다. 9월9일 서울고등법원은 “회사의 폐업을 노조의 잦은 파업 때문이라고 보도한 것은 허위로 봐야 한다”면서 정정보도와 위자료 500만원을 판결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다른 도리 없이 낸 짧은 정정에서 나는 그냥 지나칠 수없는 대목을 발견했다.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가 그것이다. 곧장 동아일보의 취재기자와 담당 데스크, 편집국장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한때는 그 신문사 앞에 ‘대’자가 붙었던 동아일보가 법원의 판결로 “사실이 밝혀졌다”고 써야 했는가?

괜스레 던지는 시비가 아니다. 보라. 법원은 판결문에서 “기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콜트악기 및 관련 회사들의 자산상황과 매출, 당기순이익 등 경영 상태에 대한 자료들만이라도 객관적으로 인용했더라면 이 기사에 나타난 오류는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문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다시 정색을 하며 묻는다. 항소심까지 기다려야 했는가? 판결문 앞에서 결국 ‘사실이 밝혀졌다’고 정정보도를 냈어야 옳았는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동아일보 기자들은 판결이 있고 나서야 인지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다. 나는 그 짧은 정정보도문에서 어떤 성찰도 읽혀지지 않는다. 사회면 머리기사로 콜트악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 보도는 물론, 3년이 더 지나 ‘사실이 밝혀졌다’는 1단 크기 정정에서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자로서 양식의 문제다.

평기자비판 삼갔으나 ‘재생산’구조에…

언론인으로 10여년 넘게 칼럼을 써오며 알다시피 나는 평기자들에 대해 비판을 삼가왔다. 이유는 명백했다. 언론사 내부의 구조 때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실명으로 비판해온 주필과 논설주간들이 곰비임비 재생산되는 풍경을 보며 모든 것을 구조로 이해하고 넘어갔던 과거의 잘못을 새삼 깨달았다. 실제로 노사관계에 대한 일방적 보도는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과연 그 모든 게 구조의 문제일까? 언론사 사주나 고위간부들이 그렇게 보도하라고 ‘지시’라도 했단 말인가?


고등법원이 콜트악기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됐다는 판결을 내린지 2년이 지나도록 이 회사는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통상 3개월에서 1년을 넘기지 않는 대법원 판결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명토박아둔다. 항소심 판결 이전에 자신의 기사가 진실이 아니었음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기자로서 자질의 문제다. 알고도 항소심까지 버텼다면, 그것은 신문사 편집국 전체의 건강 문제다.

터무니없이 적은 위자료와 작은 정정보도 앞에서 나는 굳이 이름을 적시하고 싶지 않은 그 취재기자가 법원의 판결을 자신이 앞으로 걸어갈 ‘기자 인생’에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길, 자신의 보도에 서러움의 피눈물 쏟았을 사람들 앞에 자성의 눈물 머금길 진심으로 바란다. 세간에서 ‘조중동’으로 비판받는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이 진지하게 한번쯤 자신의 글을 톺아보길 권하는 뜻에서 저 살천스런 지면의 제목을 다시 쓸쓸하게 옮긴다.

선물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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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민족언론. 어느 새 그 말은 대다수 사람에게 촌스럽게 다가온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낡은 시대의 상투어쯤으로 치부된다. ‘21세기 민족언론의 길’이라는 칼럼 제목을 보며 시들방귀로 넘기는 독자들도 적잖을 성싶다.

하지만 나는 오늘 기꺼이 촌스럽고자 한다. 낡은 시대의 상투어에 시퍼렇게 담긴 뜻을 나누고 싶다. 굳이 민족언론을 성찰하는 까닭은 다시 8월15일이 다가와서만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겨레의 운명이 암담하다 못해 깜깜해서다.

찬찬히 짚어보라. 남쪽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화자찬이 넘쳐나지만 바로 그들이 이상으로 좇는 나라, 미국의 유력 일간지에서 ‘정신병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곧 이뤄질 듯했던 ‘북미 국교 정상화’가 마냥 늦어지면서 연평도까지 포격하는 군사적 모험주의를 감행하고 있다. 그 남과 그 북 사이에 소통은 꽉 막혀있다.

EBS강사·민족21에 들이댄 ‘색깔 공세’

명토박아둔다. 남과 북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오늘을 살고 있는 민족 구성원만이 아니라 겨레의 내일을 위해서도 정신병동과 군사적 모험주의는 반드시 넘어서야 옳다. 바로 그래서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언론의 시대적 요구는 크다.

하지만 어떤가. 들머리에서 강조했듯이 민족언론, 아니 민족이란 말조차 홀대받고 있다. 더 생게망게한 일은 자칭 ‘민족언론’을 부르대던 신문들이다. 그들은 자기 논리에 갇혀 여전히 남북 갈등을 부추기는 데 눈이 빨갛다.

교육방송(EBS)에서 수능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는 교사에게 조선일보가 저지른 ‘색깔 공세’를 보라. “관점 있는 역사 수업,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가슴 뭉클한 멘트로 학생들을 열정의 도가니에 빠뜨린 열정쌤”으로 조선일보 스스로 추어올린 교사를 갑자기 ‘친북 반미세력’으로 몰아가는 작태는 단순히 ‘제 버릇 개 못 준다’ 차원에 그칠 일이 아니다. 교사가 강의한 내용을 앞뒤 문맥을 자르고 자극적으로 기사화 한 뒤 그것이 ‘사실 보도’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과연 저들이 민족언론 이전에 언론인가를 묻게 한다.

무엇보다 압권은 월간지 민족21의 전·현직 편집국장에게 ‘간첩의 색깔’을 짙게 덧칠하는 보도다. “민족21, 천안함 폭침 주도한 북 정찰총국의 지령 받아”라는 큼직한 통단 제목 아래 ‘지령체계’를 갖춘 도표와 함께 편집한 자극적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민족21 전·현직 편집국장이 일본에서 북의 정찰총국 공작원을 ‘접선’해 지령을 받고 남한에서 수집한 정보를 보고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들을 상당수 확보했다고 썼다. 기사는 또한 “압수물 분석 등 증거확보 작업을 거쳐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난 민족21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어떤가. 올해로 창간 10돌을 맞은 민족21은 남북 언론교류의 새 지평을 연 언론사적 의미를 지닌 월간지다. 만일 민족21이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제작한 언론이라면 남과 북의 정보당국자들은 모두 줄줄이 사표를 써야 한다. 남은 10년 동안 민족21의 ‘암약’을 방치해왔다는 점에서, 북은 민족21을 창구로 한 ‘공작’에 무능했다는 점에서 모두 그 자리를 물러나야 옳지 않겠는가.

국가정보원이 민족21을 지난해부터 내사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그 시점에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웠던 발행인 명진 스님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정치적 탄압의 의혹을 짙게 해준다.

국가정보원의 황당한 수사에 감시를 할 섟에 그들이 흘린 기사에 용춤 추는 조선일보의 모습은 ‘국정원 기관지’라는 명진 스님의 비판이 되레 점잖을 정도다. 교육방송에서 근현대사를 강의한 수능 교사를 ‘친북반미’로 몰아가는 행태와 맞물려 있어 더 그렇다.

남과 북의 소통, 언론인이 가야 할 길은

‘민족의 웅비’를 들먹여오던 언론이 정작 21세기 두 번째 10년대를 맞아서도 국정원과 으밀아밀 정보를 나누며 다른 언론에 ‘간첩’의 색깔을 물들이는 행태는 결코 일회적 사안이 아니다. 그 신문만 보는 영남 독자들에게 민족21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풍부한 자료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떻게 비춰지겠는가.

바로 그렇기에 민족21은 한국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남아야 할 월간지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혐의로 이를 말살하려는 권력과 그것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받아쓰는 신문을 보면 새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정권이 재생산 가능성이 높고 ‘국정원 기관지’로 비판받은 신문은 종합편성 채널까지 거머쥐고 있기에 더 그렇다.

조선일보의 모든 기자들이 저 천박한 야만에 동의하진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더구나 이 땅에는 조선일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진실을 열어가려는 젊은 언론인들이 언론현장 곳곳에서 커나가고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촌스러운 나는 ‘들판’에서 다시 설렘으로 쓴다. 남과 북을 소통하고 그 소통을 남과 북의 겨레들과 나누는 데 앞장서는 길, 21세기 남과 북의 언론인들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을 정성들여 쓴다. 민족언론.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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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30손석춘/새사연 이사장

권영길의 눈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그가 기자간담회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권영길이 회견문을 읽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한 순간은 앞으로 건설될 통합 진보정당에서 어떤 당직과 공직도 맡지 않겠다며 사실상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대목이 아니었다. 서울 “삼선교 쪽방의 국민승리21 시절부터, 2004년 총선승리의 영광, 분당의 상처까지 모든 고난과 영광의 세월동안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은 권영길의 영혼”이었다고 회고할 때였다.

왜 권영길은 그 대목에서 눈시울 적셨을까. 민주노동당과 더불어 걸어온 그 길이 가시밭이었고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기실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기자 출신의 정치인 권영길은 물론, 진보정당의 정치 활동이나 정책을 보도하는 데 내내 인색했다. 흔히 진보언론으로 꼽히는 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복지’ 쟁점화, 진보정당 없었다면…

단적인 보기가 최근 퍼져가고 있는 ‘복지’ 의제다. 권영길은 진보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백의종군을 밝힌 간담회에서 현재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은 한국사회 최대 쟁점”이라고 지적한 뒤 그 쟁점들은 “진보정당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랬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이후 줄기차게 ‘무상 의료’와 ‘무상 등록금’의 단계적 실현을 주창해왔다. 생활 현장에서 무상급식 운동을 애면글면 벌여온 사람들도 대체로 진보정당의 당원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신문도 방송도 진보정당의 정책이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진보정당의 복지정책 공약을 구색맞추기식으로 보도했을 때도 “비현실적”이라는 꼬리표를 살천스레 달았다. 가장 오랫동안 복지정책을 지며리 제기해온 원내 진보정당에 언제나 소홀했던 언론이 2010년 들어 ‘복지’를 의제로 설정하는 모습을 탓하자는 게 전혀 아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고 의미 있는 편집으로 마땅히 평가할 일이다. 다만 뒤늦게 복지를 의제로 부각하면서도 시민사회 중심으로 보도하는 반면, 진보정당의 정책을 보도하는 데 여전히 인색한 풍경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전혀 내키진 않지만 명토박아둔다. 미디어오늘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에도 정파적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윤똑똑이들을 위해서다. 심지어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사설과 칼럼을 쓸 때도 당시 논설주간은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 아니냐고 물었다. 사실 여부를 답하고 싶지 않아 웃어넘겨서일까. 그는 확신을 한 듯이 다른 사설을 썼을 때도 그 말을 불쑥 꺼냈다. 참으로 씁쓸했지만 그가 해직 기자로 걸어온 길에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고 싶어 사실이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미묘한 웃음을 보내며 “그럼 비밀당원이겠지”라고 혼잣말처럼 단정했다.

흘러간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럴 뜻은 전혀 없다. 다만 대한민국 언론계에서 진보적 생각을 표현하는 일조차 쉽지 않고 바로 그만큼 진보정당이 커나가기는 더 어렵다는 진실을 동시대의 언론인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권영길의 눈물은 민주·민중의 슬픔

물론, 이제 나는 더 이상 직업적 기자가 아니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기자직을 그만둔 뒤 제법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언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언론 보도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은 실현 불가능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짚고 싶다. 아울러 자신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편향의 칼럼을 노상 써가는 현직 언론인들이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편에 서서 시민정치운동이나 주권운동에 참여한 지식인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현실에 조금이라도 성찰을 권할 따름이다.

권영길은 간담회를 정리하는 발언에서 취재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은 진보진영만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읍소했다.

가만히 묻고 싶다. 진보대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한국 정치에 절실하다고 판단하는 언론이 대한민국에 있는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칭 보수든 진보든 한국 언론은 진보정당이 내부 갈등으로 쪼개질 때 비로소 돋보이게 편집했다. 권영길이 아픔을 들먹이며 울먹인 바로 그 시점이다. 진보언론의 지면조차 분당을 부추기는 칼럼들을 곰비임비 편집하지 않았던가.

두루 알다시피 40대 후반 나이에 언론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권영길은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에 이어 민주노동당 창당에 나섰다. 오랜 냉전으로 얼어붙은 박토에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렸다. 그 자신 지역구 당선을 비롯해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새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로 키워왔다. 그의 노고에, 어느새 일흔이 넘은 그의 서러움에 경의와 위로를 보내는 까닭이다.

아울러 현직 언론인들, 특히 진보언론의 현역들에게 쓴다. 권영길의 눈물은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눈물이다. 동시에 진보대통합의 눈물이다. 그 슬픔은 맞닿아 있다, 더 깊은 민주주의의 눈물, 지금 이 순간도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눈물과.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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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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