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9 / 2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이 여러 번 강조해온 것처럼 지금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불평등(inequality)'이다. 불평등에 저항한 세계적인 운동이 바로 월가 점령운동이었다. 불평등의 한국 버전은 '재벌 독식' '재벌 나 홀로 성장'이었으며,  불평등 저항운동과 월가 점령운동의 한국 버전이 경제 민주화 운동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불평등과 경제 성장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경련은 토론회에서 ‘경제성장은 소득불평등을 개선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면서 ‘선 경제 성장 - 후 불평등 해소’라는 도식을 내놓기도 했다.(오정근, “경제성장이 소득분배구조 개선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방향”, 전경련이 요청한 연구용역 보고서)

그러나 세계적인 석학들은 반대의 결론을 주장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해야 불평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해소해야 성장이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스티글리츠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

“불평등은 낮은 성장률과 비효율을 가져온다. 기회의 부족은 가장 중요한 자산인 사람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많은 빈곤층과 심지어 중산층들까지 그들의 잠재력을 펼치면서 살고 있지 못하다. 상위층은 공공 서비스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며, 정부가 소득 재분배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서 세금이나 정부지출을 삭감하기를 원한다. 이는 교육, 기술, 사회기반시설과 같은 곳의 투자를 줄이면서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다.”(새사연 번역 소개 : http://bit.ly/Osyp8q)

이탈리아의 경제분석가 카를로 밀라니(Carlo Milani) 역시 소셜유럽저널(Social Europe Journal) 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미국 뿐 아니라 유럽도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지금 유로 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이 가장 불평등 정도가 높다는 사실을 간명하게 주장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남유럽 국가들의 문제를 재정적자나 국가 채무, 실업률이 아니라 불평등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핵심 메세지는 ‘불평등을 줄여야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언어로 표현하면 경제 민주화를 해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18대 대선 과정에서 과연 우리는 경제 민주화와 경제 성장에 관한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가장 큰 후과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불평등이 미국의 가치와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극단적 수준에 도달하면 통화 정책부터 예산 배분까지 모든 공적 결정에 있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모두를 위한 정의”가 숨 쉬는 나라가 아니라 부자를 위한 정의가 숨 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유럽에서의 불평등,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Income Inequality in the Eurozone: What are the effects on Growth?)

 

2012년 9월 26일

소셜 유럽 저널(Social Europe Journal)

카를로 밀라니(Carlo Milani)

 

스티글리츠(Stiglitz)의 최근 저서(『The Price of Inequality』)에 따르면, 불평등 확대는 지난 20세기 미국경제와 금융 불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2007년에 미국인 0.1%의 소득이 90%미국 시민들 평균보다 무려 220배나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가정들의 표준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두 가지 거품을 허용했는데 닷컴 거품과 주택 거품이 그것이다. 미국 가정들은 은행에서 신용을 얻기 위해 (주택이라는) 담보를 제공했지만 주택거품이 붕괴되면서 금융위기가 터져나왔다. 금융위기 이후 2011년까지 미국에서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단적인 빈곤층 가구는 1996년과 비교하여 두 배가 늘어 150만 가구에 달했다.

그러면 유럽은 어떨까? 유럽의 가정은 미국 보다는 좀 더 분별 있게 표준적인 생활을 하고, 사회 안전망이 강력하며 소득 불평등도 훨씬 덜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소득 불평등의 표준 지표로 사용하는 지니계수를 고려해보자. 그림 1(Figure 1)은 2005년과 2008년, 그리고 가장 최신 년도인 2010년의 유로 지역 주요 국가들 지니계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남유럽 국가들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지니계수가 악화된 최상위 국가들이다. 반면 핀란드, 네덜란드,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불평등 정도가 훨씬 적음을 알 수 있다. 벨기에와 독일, 그리고 프랑스는 중간 수준이다.

불평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그림 2(Figure2)에서 2005년의 지니계수와 2006~2011년 동안의 누적 경제성장률사이의 분포도를 표시해보았다. 지니계수와 성장률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성립함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여 불평등이 증가하면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0.69의 상관도)

우리는 북유럽 국가들이 그림의 왼쪽 위에 분포하는 반면, 남유럽 국가들이 오른쪽 아래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 남유럽에서 국가 부채가 늘고 성장률이 악화되었으므로 이 그림은 더 극단적으로 나빠졌을 것이다. 이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과 정책적 함의는 무엇일까. (남유럽 구제 금융에 개입하고 있는) 트로이카(ECB, EU, IMF)가 남유럽 국가들에서의 소득 재분배 프로그램을 고려하지 않고 긴축정책에만 매달릴 경우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 성장률을 올리고 세금징수를 늘리며 사회적 혼란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Aizenman Joshua and Yothin Jinjarak (2012), “Income inequality, tax base, and sovereign spreads”, VoxEU.org, 30 June.

● Stiglitz Joseph E. (2012), “The Price of Inequality”, Allen Lan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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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8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를 두고 채무국가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주장했던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의 글을 소개한다. 그는 워릭대학교의 정치경제학부 명예교수이며 영국 아카데미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국내에서도 출판된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케인즈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0~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특히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예로 1970년대 미국 CEO들과 노동자들의 소득 격차가 30배였으나 오늘날에는 263배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이를 옹호하는 논리도 강화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쟁 시장의 완벽함이며, 임금은 개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류경제학의 논리이다. 즉, CEO의 한계생산성은 일반 노동자보다 263배나 많기 때문에 그 만큼의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키델스키는 개인의 한계생산성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현실에서 임금은 비슷한 직종의 임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우선 도덕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 때문에 문제이며, 현실적으로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문제라고 보았다.

 

나쁜 사회

(Bad Society)

 

2012년 7월 19일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불평등은 어느 정도나 용인될 수 있을까? 세계 경제위기가 일어나기 전에는 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용인되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랬다. 신노동당의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은 지난 30년 간 “더러운” 부를 모은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대해졌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신 경제”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전부였다. 새로운 부자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점점 늘려갔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도록 세금은 줄었으며, 파이를 더 공정하게 나누기 위한 노력은 사라졌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1970년대 미국 CEO의 세전수익은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익보다 30배 많았다. 오늘날은 263배 많다. 1970년대 영국 최고 CEO들의 수당을 제외한 기본금은 노동자들보다 47배 많았다. 2010년에는 81배 많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상위 20% 부자의 세후소득은 하위 20%보다 5배 빠르게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4배 빠르게 증가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평균 소득과 중위 소득 사이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평균 소득 이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난 30~40년 동안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80년 이후 한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은 물론이며 국가 간 불평등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불평등 정도가 횡보하다가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약화되었다. 개발도상국이 가속화되면서 선진국의 성장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흔들리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경쟁 시장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최고 CEO들은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보다 미국 경제에 263배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도 정부와 노동조합에 의해 인위적으로 경제적 격차가 줄어든 덕분에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더 빠르게 트리클 다운 하는 부를 갖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한계세율을 깎는 것뿐이다. 아니면 가난한 이들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켜서 그들의 고용주에게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득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계산 방법이다. 하지만 여럿이 협동하는 생산활동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의 한계 생산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최고 급여는 그저 유사한 직업의 다른 최고급여와 비교하여 결정될 뿐이다.

과거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바탕으로 임금 격차가 결정되었다. 일에 필요한 지식, 기술, 책임감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높은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와 최하 사이의 격차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유지된다. 상위 기업의 월급이 평균 임금보다 20~30배 이상 많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의사나 변호사의 소득은 제조업 노동자보다 5배 정도 많았을 뿐이다. 오늘 날처럼 10배 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 활동의 가치에 대해 계산하는 상식적이고 비경제적인 방식이 깨지면서, 오늘날과 같이 임금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식이 등장했다.

가격으로부터 가치를 구별하는데 실패하여 만들어진 이상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것이 타당할 수 있다. 나눌 만한 충분한 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전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소득을 1% 올려주려면 경제는 3%씩 증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일반 대중의 인적 자본이 막대한 부, 유리한 가족 환경과 인맥 등에 의해 더 많은 교육적 혜택을 얻는 소수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방법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더 광범위한 소비의 기반을 얻기 위한 안전한 길이 바로 재분배이다. 또한 재분배 자체가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다.

소득 재분배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부자, 더 부자, 슈퍼 부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부를 얻는 식으로 진행되는 끝없는 경제적 성장의 반증이다. 이는 도덕적으로도 잘못이며, 실질적으로도 좋지 않다. 도덕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은 삶이란 저멀리에 있어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결합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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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4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 사례로 돌아보는 ‘주택 소유 정책’의 결말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4.11 총선의 여파- 마지마 남은 규제 풀기

2. 소득 불평등을 가계 대출로 은폐하라.

3. 2008년 금융위기와 물거품으로 돌아간 소유의 꿈

 

[본 문]

1. 4.11총선의 여파 - 마지막 남은 규제 풀기

4.11총선이 야당의 패배와 보수 집권 여당의 승리로 결론나면서 웃었던 것은 여당의 대선후보 박근혜의원만이 아니었다. 우선 재벌들이 희색이 되었다고 각 언론매체들이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벌들이 야당의 패배를 반긴 것은 공인된 분위기다. 물론 야당이 이겼다고 한들 이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강도 높게 재벌개혁을 추진했을지, 그리고 그에 대해 과연 당사자인 재벌들이 두려워 하기는 했을지는 미지수다.

재벌과 함께 총선 결과를 크게 반긴 세력은 부동산 부양에 이해관계가 큰 집단이 아닐까 싶다. 총선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4월 12일,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주택협회가 19대 국회에게 1) 분양가 상한제 폐지 2)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금융규제 완화 3) 투기지역 해제 4) 다주택자 양도세 일반세율 적용 5) 매입임대주택사업 규제완화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키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투표결과가 미처 정리되기도 전에 차기 국회에게 이런 보내는 요청을 언론에 내보낼 정도이니 얼마나 이들의 요구가 간절했던 것인가?

기업 친화적일뿐 아니라 지독히 건설업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가 무려 6차례를 통해 부동산 규제완화를 해주어 거의 다 풀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격규제, 금융규제, 조세규제, 제도규제들마저 최종적으로 풀어달라는 것이다. 규제라고 이름붙이기도 민망한 마땅히 기초적인 시장질서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현재 인구학적 주택 수요로 보나, 가계부채와 같은 금융여건을 보나, 소득수준 등 어떤 측면을 보아도 과거 10여 년 동안의 과잉 거래, 과도한 가격, 과도한 차입을 지속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수준으로 복귀하려는 부질없는 열망을 담고 있다. 지금은 자산 투기장 노릇을 해온 주택시장을 마감하고 다수 국민들의 주거를 위한 복지정책으로 전환하려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런데 건설업자와 다주택 소유자들, 투기세력과 금융업자들이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다시 이를 되돌리려는 것이다.

사실 6월에 개원하는 19대 국회를 기다릴 것도 없다. 임기를 1년도 남지 않은 현 정부가 5월 안으로 건설업자들이 바라는 강남 투기지역 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완화, 매입 임대주택 규제완화 등을 발표할 준비를 서두른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 남은 규제를 푼다고 해서 시대를 되돌릴 가능성이 많아보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거래 활성화’라는 명목이, 위에서 사례를 든 부동산 규제완화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른바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우리 국민의 염원인가, 아니면 안정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국민의 바램인가?

주택 소유가 염원이라면 어떻게 해든 많은 국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주택거래시장에 넉넉한 주택을 공급해야 하며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각종 정책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소유가 아니라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주거복지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주택 소유’를 정책적으로 극점에까지 밀어붙인 결과 전대미문의 부동산 시장 붕괴와 가계 파산, 그리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사례를 돌이켜보고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인 시카고대학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교수가 금융위기를 다룬 2010년 저작『폴트라인( Fault Lines)』에서 이 문제를 실감나게 다루고 있어 일부 논지를 확인해 보겠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금융시스템 문제 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주택 소유정책과 연계시키면서 잘 풀어나간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하의 인용 글들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라잔 교수를 인용한 것이다.

 

2. 소득 불평등을 가계대출로 은폐하라.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가 소득 불평등을 주택 소유로 은폐하고자 했던 미국 정치의 유혹이 작동했음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시카고 대학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교수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이기도 한 그는 금융위기를 다룬 2010년 저작『폴트라인( Fault Lines)』에서 소득 불평등과 주택 소유를 조장한 정치세력, 그리고 이를 지원하며 고수익을 올린 금융회사들의 행위를 상당히 실감나게 묘사해주고 있다.

우선 1980년대 이래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라잔 교수가 지목한 것은 ‘소득 불평등’이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소득 불평등이 경제위기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이 위기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기도 하고, 또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훨씬 더 광범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라잔 교수가 풀어냈던 논지는 이렇다. 미국 정치권은 심화되어가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처럼 세금을 걷어 소득 재분배를 시행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금융 대출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소득 불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미국의 중산층 가구들은, “원래 하던 소비 패턴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몇 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꾸고 외국으로 가끔 휴가를 떠날 수 있다면, 월급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눈치 챘다. 그리하여 정치권이 소득 불평등 심화 대응책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저소득 가구에 대한 신용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 대응책이 주는 소비증대와 고용 증가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 반면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미래로 미룰 수 있다.”

“가계 대출 확대야말로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치인들은 믿었다. 가계 대출을 확대하게 되면 집값이 상승하고, 집값이 상승하면 국민은 자신들이 더 부자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소비가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가계 대출 확대는 금융 산업 뿐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 주택 건설 분야의 수익과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효과도 유발할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안전한 방법으로 보였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클린턴 정부가 선택한 것이 ‘저소득 계층위한 서민용 주택 건설’이었다. 저소득 계층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집을 살 자금이 있을 턱이 없으니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대적인 대출 규제완화 방안들이 강구되었고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의 정점에 2000년대 부시행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주택소유사회(Ownership Society)'가 있었다. 2002년 행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보면 주택 소유사회라는 환상을 미국 시민들에게 어떻게 심어주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무엇인가를 보유한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일부이기도 하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국민 누군가가 내 집을 마련한다면,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현실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어제 아틀랜타에서 새롭게 집을 마련한 주민들의 신규 주택단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 주인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와 같은 자부심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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