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06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⑦>『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착한 경제학은 가능한가?-

 

추천도서 7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이정전, 2012, 토네이도)

대한민국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수요와 공급의 X 모양의 그래프. 우리가 공부하는 경제 교과서의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그래프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나타내지 못한다. 이제 우리가 따져야 할 좌표는 수요와 공급을 넘어 선 관계와 미래, 그리고 환경과 행복이다.

이런 사실을 경제학의 변방에서 홀로 개혁의 깃발을 흔드는 독립투사가 아닌, 서울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가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제 대한민국 경제학의 큰 방향이 바뀌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대 해 보며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를 추천한다.

 

곧 출간될 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신간 <협동의 경제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경제학이 싫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학자들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이와는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요즘은 사위나 며느리를 고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을 한다. 단 전공 학점이 나쁜 경우는 괜찮을 수도 있으므로 성적증명서를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경제학자들은 어쩌다가 저런 평을 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수능 선택과목으로 경제학을 선택했던 인연으로 어찌어찌 지금까지 경제학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다.  

고등학교 때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 한 점을 이루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그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칠판에 그려진 X자 모양의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가격이 오를 때도, 생산량이 줄어들 때도 결국은 한 점으로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몰랐던 진짜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그리고 사실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래프를 따르자면 실업이 발생하는 건 순전히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 때문이며,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킬 뿐이었다. 또한 이기적 인간과 효율적 시장을 가정하는 탓에, 현실에서는 불법인 성 매매, 장기 매매, 마약 거래 등을 허용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적절하다는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학문이란 것이 결국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때, 현실의 많은 부분은 생략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진짜 답답한 것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와 그것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관한 논의가 경제학 수업 시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주류경제학의 논리들이 무너지는 한편, 경제학에 철학과 윤리학을 접목시키려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대학 밖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소모임에서야 접할 수 있다. 강단에서 그래프와 수식을 넘어서, 경제학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경제학이 발전해온 역사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해주는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가 반가웠던 첫 번째 이유는 경제학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 교수님이 직접 ‘실은 경제학에 이런 문제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니 뭔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저자 이정전 교수는 이전에도『시장은 정의로운가』, 『경제학을 리콜하라』 등의 저서를 통해 꾸준히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저자는 서문에서 “경제학 교수들이 현실에 대해 강의실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내용들을” 담았다고 밝히며, 우선 경제학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시장과 현실의 시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다. 경제학에서 시장은 어떤 재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도구이다. 이 때 그 사람이 재화를 필요로 하는 정도는 그가 지불하는 금액, 즉 가격으로 표현된다. 결국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만 이야기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의 수요는 시장에서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은 시장의 근원적 한계이며, 모든 것을 시장의 방식으로 굴러가게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자는 경제학에 대한 이런 비판적 관점을 정부, 부동산, 환경 등으로 확대시키며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과 경제학 이론을 접목해서 설명한다. 특히 경제학이 비용편익분석을 통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실은 이 분석 방식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사업의 효과를 계산할 때, 간척사업 후 생산되는 쌀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쌀을 국제가격으로 계산하느냐, 국내가격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3배 정도 차이가 나며 쌀을 단순 재화가 아니라 안보재로 상정할 경우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식의 경제학적 손익 계산이 아닌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저자는 정치는 “사람들이 공익을 생각하면서 공적인 마음으로 행동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며, “평등의 원칙”을 으뜸으로 삼는 영역으로 시장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으로 ‘행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행복에 관한 경제학 연구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연구들에 의하면 행복의 가장 높은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인은 “가정의 화목, 좋은 인간관계,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소득 수준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인데, 평균적으로 소득 수준이 연간 1만 5000달러를 넘어가고 나면 소득증가가 행복지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행복의 역설’이라 한다. 우리나라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으니 이런 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또한 소득이 주는 만족감은 소득의 절대액수보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우리사회가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바는 더 높은 성장률, 더 많은 소득 수준이 아니다. 가정, 인간관계, 일을 통해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각종 자생적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타인과의 소득 수준 비교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구성원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는 <국부론>외에 또 다른 저서가 있다. <도덕감정론>이다. 이 책은 인간의 도덕심, 인간의 심리를 주제로 하는 책이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였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이 철저하게 인간의 일상행태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미래의 경제학의 아담 스미스의 정신을 온전히 살린 경제학이요, 철학이 앞에서 이끌고 심리학이 뒤에서 밀어주는 경제학이다.”고 말한다.  

이기심, 효율성, 경쟁,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경제학이 이제는 좀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행동경제학에서 진행된 여러 실험들에 의하면 경제학 전공자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이기적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었던 지난 30여 년 동안은 일반인들도 경제학 전공자만큼이나 경제학적 가치관들을 주입받았다. 이기심, 효율, 경쟁, 성장은 현실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기에는 좋은 도구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뢰를 좁히고, 공동체와 미래세대까지 포괄하는 경제학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그런 문제제기들이 국내에서도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저자 이정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 환경 경제 학회이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프레시안등에 행복경제학 및 세계 경제 위기, 부동산 정책, 환경정책 등을 망라한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활발한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 정진기 언론문화상 경제경영 도서 대상을 수상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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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8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를 두고 채무국가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주장했던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의 글을 소개한다. 그는 워릭대학교의 정치경제학부 명예교수이며 영국 아카데미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국내에서도 출판된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케인즈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0~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특히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예로 1970년대 미국 CEO들과 노동자들의 소득 격차가 30배였으나 오늘날에는 263배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이를 옹호하는 논리도 강화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쟁 시장의 완벽함이며, 임금은 개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류경제학의 논리이다. 즉, CEO의 한계생산성은 일반 노동자보다 263배나 많기 때문에 그 만큼의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키델스키는 개인의 한계생산성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현실에서 임금은 비슷한 직종의 임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우선 도덕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 때문에 문제이며, 현실적으로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문제라고 보았다.

 

나쁜 사회

(Bad Society)

 

2012년 7월 19일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불평등은 어느 정도나 용인될 수 있을까? 세계 경제위기가 일어나기 전에는 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용인되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랬다. 신노동당의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은 지난 30년 간 “더러운” 부를 모은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대해졌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신 경제”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전부였다. 새로운 부자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점점 늘려갔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도록 세금은 줄었으며, 파이를 더 공정하게 나누기 위한 노력은 사라졌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1970년대 미국 CEO의 세전수익은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익보다 30배 많았다. 오늘날은 263배 많다. 1970년대 영국 최고 CEO들의 수당을 제외한 기본금은 노동자들보다 47배 많았다. 2010년에는 81배 많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상위 20% 부자의 세후소득은 하위 20%보다 5배 빠르게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4배 빠르게 증가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평균 소득과 중위 소득 사이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평균 소득 이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난 30~40년 동안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80년 이후 한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은 물론이며 국가 간 불평등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불평등 정도가 횡보하다가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약화되었다. 개발도상국이 가속화되면서 선진국의 성장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흔들리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경쟁 시장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최고 CEO들은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보다 미국 경제에 263배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도 정부와 노동조합에 의해 인위적으로 경제적 격차가 줄어든 덕분에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더 빠르게 트리클 다운 하는 부를 갖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한계세율을 깎는 것뿐이다. 아니면 가난한 이들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켜서 그들의 고용주에게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득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계산 방법이다. 하지만 여럿이 협동하는 생산활동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의 한계 생산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최고 급여는 그저 유사한 직업의 다른 최고급여와 비교하여 결정될 뿐이다.

과거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바탕으로 임금 격차가 결정되었다. 일에 필요한 지식, 기술, 책임감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높은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와 최하 사이의 격차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유지된다. 상위 기업의 월급이 평균 임금보다 20~30배 이상 많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의사나 변호사의 소득은 제조업 노동자보다 5배 정도 많았을 뿐이다. 오늘 날처럼 10배 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 활동의 가치에 대해 계산하는 상식적이고 비경제적인 방식이 깨지면서, 오늘날과 같이 임금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식이 등장했다.

가격으로부터 가치를 구별하는데 실패하여 만들어진 이상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것이 타당할 수 있다. 나눌 만한 충분한 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전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소득을 1% 올려주려면 경제는 3%씩 증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일반 대중의 인적 자본이 막대한 부, 유리한 가족 환경과 인맥 등에 의해 더 많은 교육적 혜택을 얻는 소수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방법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더 광범위한 소비의 기반을 얻기 위한 안전한 길이 바로 재분배이다. 또한 재분배 자체가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다.

소득 재분배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부자, 더 부자, 슈퍼 부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부를 얻는 식으로 진행되는 끝없는 경제적 성장의 반증이다. 이는 도덕적으로도 잘못이며, 실질적으로도 좋지 않다. 도덕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은 삶이란 저멀리에 있어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결합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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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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