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서평은 블로거 카제바람님의 서평입니다. 원문 링크는 http://goo.gl/LrI8a 입니다.

정태인 이수연, 2013

『협동의 경제학 :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시대의 경제학 원론』 레디앙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자

이기적 인간의 실패, 이타적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자크 아탈리의 ‘이타적 사회’라는 문장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 도서관에서였다. 디지털 노마드 개념을 창안하고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미래사회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며 향후 50년, 이타주의자로 구성된 새로운 엘리트집단이 나타날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었던 시기, 그의 말은 예측이라기보다는 꿈이었다.

현재 신자유주의는 실패의 상징,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 받고 있다.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한 ‘자본주의의 종착지’로서 신자유주의는 세계 곳곳에 양극화와 격차사회를 유발했다. 무한에 가까운 이기적 욕망을 ‘자유’로 환치하는 속임수는 이미 끝을 보였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선순환하지 못했고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실험은 실패했다.

 

주류경제학도 민망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파악하며, 책상 머리에 퍼질러 앉아 사회현상을 평면적으로만 살피던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정의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은 않으며 시장 또한 결코 효율적이지 않았다. 실상 이기적인 것은 경제학자들뿐이었다. 그들이 만든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어김없이 국가가 나섰다. 새로운 사회 원리와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외눈박이 주류경제학의 한쪽 눈과 양쪽 귀를 열어주는 시·청각의 확장과 개선이 시급하다.

책의 저자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수연 연구원)은 지금껏 세계를 지배해온 시장경제 유일사상의 극복을 외친다. 주류경제학자들의 ‘이기적 인간론’에 대한 이의제기와 함께 그들의 주장에 대한 불합리함,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주류경제학이 양산한 이기적 인간 혹은 시장만능주의 사상에서 벗어나 이타적 인간과 협력하는 인간을 말한다. 300년간 시장경제의 ‘외눈박이 사상’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왜곡되었으니, ‘사회적 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를 더해 네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4박자 경제학’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협동의 경제학은 ‘반反경제학’이다.

저자는 주류경제학의 문제를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기적 인간’이라는 주류경제학이 ‘돈 놀이’를 하느라 인간사회의 ‘정의’를 외면해버렸다는 것. ‘경제학 제국주의’시대(28p)로서 지난 30년간 다른 학문을 지배한 주류경제학은 합리성이라는 말로 인간의 이기적 선택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택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에는 실업도, 금융위기도 없다는 것이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나 중학교 경제 교과서 역시 주류경제학을 기반으로 쓰여 있다 한국에서도 주류경제학이 아니면 경제학을 배우기란 힘들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실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지금 일자리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가 노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임금이 너무 낮아서 차라리 노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 …거품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더라도 알 수 없으며, 알더라도 사전에 통제할 방법은 없다. 이론은 완벽하다. 다만 시장에서 인간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30~34p)

또한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배경이 이기적 인간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왜곡된 교육을 받고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강요된 사회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현재 시장실패는 ‘이기적 인간’의 실패이므로 ‘이타적 인간’으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동물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이 되자’는 말이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시장경제와 사회적 딜레마’에서는 시장만능주의가 초래한 시장실패와 주류 경제학의 ‘이기적 인간’론에 대한 반박, 사회적 딜레마를 탈출하기 위해 우리가 참고해야할 여러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늘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 있으며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타적 선택을 할 경우 궁극적인 합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체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이 300년 역사 동안 절대적인 가정으로 삼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명제를 기반으로 세워진 경제학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호적이고 따라서 협동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몇 백만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역사 대부분을 인간은 상호적으로 행동했다. 다만 최근 300년 동안만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이 세상을 지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학문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압도했을 때 세상은 파탄이 났다.” (41~42p.)

저자는 자본주의 위기 해결의 대안으로서의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재벌 기업의 독점, 이윤 극대화를 비판하며 경제민주화의 중요성 또한 언급한다. 본문에서는 게임이론을 이용한 다양한 사회적 딜레마 게임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가 ‘합리적’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이기적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 교훈을 주고 있다. 한편 주류경제학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이기적은 것은 결국 경제학자들뿐이었다’는 몇몇 실험 결과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일련의 유쾌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협동하는 이타적 사회가 더 좋은 사회다.

‘보이지 않는 손’이나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었지만 사실 경제학이 가르치는 것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라. 그게 현명한 행동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가 될 뿐이야!”라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경제학 교육에 분명 문제가 있다. (122p)

2부 ‘협동의 경제학’에서는 본격적으로 ‘이타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한다. 인간은 특정 환경 혹은 조건에 따라 협동하게 되며, ‘응징과 보상의 제도화’를 통해 협동의 중요성을 실질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협동을 위해 ‘신뢰’가 필요하며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서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경제라는 기존의 시스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여기서도 경제학자, 경제학과 대학생을 상대로 한 실험은 계속된다. 결과는 마찬가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무임승차·비양심적 성향이 더 강했다. 더 이기적이었다.

사회의 일반적 신뢰에 관하여 본문에서는 교육, 소득, 직업, 건강 등이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소득 불평등은 신뢰를 떨어뜨리고 평등과 다양성의 추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일반적 신뢰, 사회적 공공성의 ‘상향평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3부는 책의 주요 테마라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경제로서 ‘협동조합’의 의미와 현재 여러 협동조합들의 성과, 협동조합의 원칙, 산재된 과제와 문제점들을 두루 살펴본다. 또한 세계의 협동조합 성공 사례를 들며 그들의 성공요인 속에 남다른 역사적 배경과 전통이 있음을 소개한다.

협동조합이란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형태, 노동이 스스로 주인이기 때문에 노동이 원하는 사회적 가치인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 지역사회 발전과 같은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183p.)

저자는 협동조합이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외부적 환경과 협동조합의 조직의 내부적 특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자본 조달에서의 불리함과 금융기관에서의 차별적 대우, 운영 면의 불리함과 평등한 조직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구성원 간의 갈등. 국내에서, 협동조합은 다양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세계의 협동조합 성공사례는 협동조합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해 준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에 비해 임금이 14퍼센트 정도 낮지만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 경기 악화에도 조합원의 77.6퍼센트가 해고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 국가 전체 GDP 평균의 2배에 달한다. 볼로냐에는 주택건설 협동조합과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도 있어 협동조합의 활동영역에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캐나다 퀘백의 ‘태양의 서커스’는 협동조합이 이뤄낸 기적이며 퀘백에는 경제의 모든 곳에 협동조합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협동조합 성공 사례의 소개를 통해 비록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가능성 있는 대안’임을 알리고 있다. 협동조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 실효성과 성장가능성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에게 좋은 대답이 되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주택협동조합’과 같이 한국적 특성에 더 유효한 사례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택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새사연 홈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얻고 있는 바이다.)

 

 

 

 

 

 

보편적 복지국가, 녹색혁명에 대한 꿈

4부 공공경제에서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한 ‘공공성’을 논의한다. 오로지 효율성만 따지는 주류 경제학, 시장만능주의가 해결하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공공성의 중요함에 대해 살펴보고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거시 경제 정책의 시행과 제도적 보완을 촉구한다.

효율성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공공성으로서 의료와 방송을 언급했고 의료와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 보편적 복지국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공공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19장 ‘한국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에서는 제목에서 주었던 기대와 달리 거시경제 정책, 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 자본통제 등 다소 원론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는 기존의 경제, 사회과학 서적과 달리 새롭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이에 대한 욕구가 온전히 충족되지 못했고 평이한 해설에 평이한 아쉬움이 뒤따랐다. 1부에서 3부까지 이어지는, 뜨겁고 즐거운 토론의 시간을 거쳤으나 결론을 내리는 것에 충분한 시간적 배려를 하지 못했다는 인상이었다.

마지막 5부 생태경제에서는 환경경제학을 통해 생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주류경제학의 시각을 벗어나, 경제를 자연 안에 뿌리내린 하위시스템으로 간주하는 생태경제학을 다룬다. 생태경제학은 동시대 사람들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명까지 생각한다. 생태경제학이 추구하는 핵심 목표는 지속가능성이며 경제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제약은 자연법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생태경제 문제는 해결방법이 쉽지 않다. ‘산업’과 ‘노동’에 직결된 생태경제 문제는 해결 과정에서 관련 집단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써는 ‘예방 우선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지켜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협동조합, 시작은 작은 곳에서부터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저자는 주류경제학과 시장만능주의의 전제가 잘못되었고, 우리는 잘못된 경제학 원칙에 따라 사회를 운영해 왔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실패로 촉발된 금융위기, 자본주의 실패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이타적 경제 혹은 협동조합을 제시한다.

저자는 시장경제의 문제점만 지적하거나 사회적 경제 혹은 공공경제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극단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시장경제의 한계를 인식하되, 그 원인이 ‘이기적 인간’이라는 전제에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타적 인간’,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협동의 경제학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현실적 실행방안들이 완벽하지는 않으며 저자 본인도 완성도 높은 해결책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주류경제학에 편중된 교육을 받은 우리가 시장경제,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류경제학의 ‘속임수’를 제대로 파악하고 어떤 선택이 우리 개인과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을 강조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이 화두가 되고 있다.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창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도 많다. 그야말로 협동조합은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기 존재를 되찾는 '웰빙'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버린 선례가 있다. 무엇이든 유행처럼 번지면 그 본질이 호도, 변질되기 십상이다. 사회적 경제 혹은 협동조합이라는 시대의 대안이 열풍처럼 급격히 번지는 현상 또한 조금은 우려스럽다.

저자는 협동조합을 꿈꾸는 이들에게 ‘동네 문제 해결사가 되어라’라고 조언한다.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란 결국 신뢰와 협동이 바탕이 된 ‘협동의 문화’이며 이는 단기간에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협동의 경제학은 인간 개개인의 이타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지역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려 힘을 모으고, 에너지를 축적해가는 것이야말로 협동조합의 정신에 맞닿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우선 주류경제학의 문제점 혹은 모순들에 대한 궁금증들이 해소된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탐욕스러운 손’으로 똑똑히 보이게 된다.

협동의 경제학은 ‘경제학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혹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내용들을 풀어 놓는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러니 이타적 인간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또한 “왜 협동조합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지극히 당위적인 답변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조금은 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뜻밖의 기회에 읽게 된 협동의 경제학. 서평이라기엔 너무 난삽하고 부끄러운 글이다. 그럼에도 글을 남기는 것은 이 같은 양서가 조금이라도 더 알려져서 보다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 시간에 쫓겨 완독까지 시일이 많이 걸렸으나, 향후 다시 읽어도 좋을만큼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높은 책이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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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본 서평은 블로거 으뜸벗님의 서평입니다. 원문 주소는 http://goo.gl/5ErHc 입니다.


지난 5월의 어느 날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http://www.saesayon.org)에서 정태인의 협동의 경제학(이하 ‘협동의 경제학') 서평 단을 모집한다고 하여 평소 글쓰기를 즐기는 나는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얼마 후 선정되었다는 메일과 함께 택배로 ‘협동의 경제학' 책이 배송 되어 왔다. 책을 꺼낸 순간 최근의 출판 시장에서는 드물게 책 표지에 띠지가 없었고(사실 구입할 때는 예쁘게 보이지만 책을 읽을 땐 불편한 부분이다.) 종이도 약간의 갱지 느낌에 읽기 편한 채도를 가지고 있어 특이하다는 첫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대선 전 불교문화회관(종로 조계사 경내)에서 한홍구 선생님과 조국교수님, 정태인 선생님의 토크쇼를 들으며 내가 오해했던(사실 내 머리 속의 정태인 선생님은 FTA갈등으로 참여정부와 척을 지었고, 어쩌면 술로 세상을 잊으려 했던 학자? 물론 나의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한 억측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 경제학자로 새롭게 다가왔다.

이미 여기 저기서 정선생님의 예언처럼 협동조합이 유행이 되었고 어느 순간 협동조합 하면 정태인 선생님이 생각나게 되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결론 부터 말하면 역시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와 같은 비전공자에게 경제학은 수학만큼이나 어려운 개념이다. 물론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처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지거나 경제학자가 쓴 심리학 책이지만 너무나도 쉽고 명쾌하게 다가왔던 '댄 애리얼리, 경제 심리학' 같은 책들도 있기는 했으나 17년 차 (경제 비전공자 출신) 은행원인 필자에게도 대부분의 경제학 서적들은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거나 읽기에 지루했음을 고백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의 경제학'은 읽기에 편했다. 아마도 적절한 비유 또는 예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물론 여전히 A, B로 변경된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산식 들은 가끔은 Skip했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먼저 트위터로 옮겼던 (@Jaehoon_Jang)인용구를 다시 옮겨보면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하는 것, 대가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 남을 돕거나 은혜를 갚는 것,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 이런 것이 친 사회적 태도인데, 당연한 것이 어려운 사회 그래서 우리는 서로 신뢰하지 못한다. (협동의 경제학인용)’
 
‘일반 상식으론 명백한'부정'도 '관행'으로 치부되어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는 그들이 내부의 부정에 대해선 그저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상식적 죄의식과 수치심마저 없어져 버린 것, 그것이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다. (협동의 경제학 수정 인용)’
 
‘핀란드 교육의 가치는 '평등과 협동', 이 아이는 달리기를 잘하고, 애는 수학을 잘 하고, 이 친구는 음악에 발군인데 등수를 어떻게 정하나? 좋아서 공부하는 핀란드 아이들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시간을 공부하는 울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협동의 경제학 중)’
 
등 주로 10장 '네 박자로 굴러가는 경제'이전, 책의 내용을 발췌 인용하였다. 그러나 140자로 트위터에 필자의 감상과 섞어서 정리를 해보려 지속적으로 하려는 시도는 근무시간 중 인터넷 사용이 안 되는 관계로 스마트폰으로 계속 추가적인 정리를 시도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어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며 때론 질문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과감하게 정태인 선생님 페북에 글을 남겨 보기도 했다.
 
(질문)
참여정부의 한미FTA 추진이 그 자체로 신 자유주의 추앙으로 매도 당하는 것이 때로는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물론 2MB에 의해 체결된 한미FTA는 참담합니다만, 85페이지에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한미FTA도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하여 체결되었다. 첫째, 다른 국가가 미국과 FTA를 맺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맺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둘째, 다른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맺고 있는데 우리만 안 할 수 없다. 우리만 뒤처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71페이지에는 '하지만 A와 B는 둘 다 자백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자백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자백하는 쪽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 질문은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가 하려 했던(일부 선의였으나 부족했던 점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FTA는 71페이지의 사례처럼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그러나 틀렸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그 다음날 댓글로 정태인 선생님께서 '원래 죄수의 딜레마가 차선의 선택인 거죠. 최선으로 가지 못하는 게 비극이고요. 문제는 미국 죌릭의 "경쟁적 자유화" 전략이 죄수의 딜레마의 응용인데(사교육에서 설명했지만 이걸 잘 응용하면 지배집단은 힘 하나 안들이고 피지배집단의 경쟁에 의해서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걸 간파한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ㅠㅠ' 라는 답변을 주셨다.

역시 SNS를 통해 저자와 거의 리얼타임에 가까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경험은 신선했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 있었던 부분은 아마도 제3장 사회적 경제의 제12장 협동조합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책에서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는데
1. 조합원의 참여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이다.
2.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3. 경제적으로 공동 소유하고 공동 이용한다.
4.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5. 교육과 훈련 및 정보를 제공한다.
6. 협동조합은 서로 협동한다.
7.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7가지 원칙을 통해 고양/파주에서 준비중인 ‘바보주막(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 하는 여러 사람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려는 주막*)’의 애정과 관심 속에 건강한 협동조합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그 성공에 ‘협동의 경제학'에서 배운 여러 가지 논점들을 잘 녹여 들게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해야 할 새로운 미션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 에드문드 버크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를 인용하며 협동조합이든 좋은 책(협동의 경제학)이든, 마음에 딱 맞는 팟케스트 등을 친한 사람에게 권하는 작은 일이든 우리는 서로 협동하며 선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조금 많이 돌아 바다로 가고 있는 강물 속 돌멩이 하나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며 내 스스로가 대선 이후 스스로 괴로워하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참여의 활동(1) 정의로운 말하기, 글쓰기, 추천하기 2) 정의로운 (정당, 시민단체 등) 가입하기, 후원하기 3) 정의로운 소비하기 4) 정의로운 투표하기 5) 결코 절대로 패배주의,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기)을 늘려가고 있다.
 
좋은 책을 읽게 해주시고 이타적 경제학의 출현을 예고하신 고마운 분들께 으뜸벗(장재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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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블로거 착선님의 서평입니다. 원문 주소는 http://goo.gl/hbt7E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트 리들리나 도킨스 등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이타적인 사회를 형성하며 상호 경쟁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몇십 년 전에 이미 확고한 이론이였고 아직까지도 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주류 경제학의 합리적 선택이론 등으로 구성된 현대의 체제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끝이 있을 수 없는 상대적 지위 경쟁,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경쟁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이기적으로 살라고 조언합니다. 이러한 경쟁의 모습은 과거 격렬한 경쟁 끝에 멸종했던 동물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파괴적이기도 합니다. 


프로 스포츠계의 환경은 극단적이다. 성공하면 대중의 우상이자 갑부로 변신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상처만 잔뜩 안은 채 일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사람들도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1995년 각 분야에서 최고에 속하는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5년 동안 매 경기 이길 수만 있다면 5년이 지난 후 부작용 때문에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약물을 복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치팅 컬처》p.100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사회는 수많은 사회적 딜레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종교 혹은 왕정이 지시와 명령을 통해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근대의 철학자들은 사회계약설이나 보편 계급, 혹은 시장 이론을 통해 이러한 딜레마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사회적 딜레마의 구조를 이해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등장한 게임 이론은 가장 유용한 방법론 중 하나입니다. 게임 이론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게임, 치킨게임과 같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 입니다.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는 죄수의 딜레마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상대방이 협동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적절한 변화를 통해 죄수의 딜레마 구조를 사슴사냥게임 구조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사슴사냥게임은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겠지만, 남이 협동할 때는 나도 협동하는 것이 이득인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에는 협동에는 협동으로, 배반에는 배반으로 대응하는 상호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이타적일 수 있다는 것은 최후통첩게임이나 독재자게임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이끌어내는 것은 환경적 측면, 제도적인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간의 이타성을 입증한 최후통첩게임의 구조에서도 그 조건을 바꾼다면, 예를들어 인터넷을 통해 알지도 못하고 만날 일도 없는 사람간의 관계로 실험을 한다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너프 필름같은 것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지만, 막상 이라크에서 미군의 아파치 헬기가 사람들이 살아있는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폭격하는 장면을 별 혐오감 없이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최근의 행동경제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사회학의 연구들은 협동이 더 이익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 신뢰는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가 아니라, 유형의 재화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파샤 다스굽타는 UN에서 포괄적 부 지수를 개발했는데, 합의된 상호 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는 곧 그 사회의 재산인 것입니다. 이러한 협동은 사람들끼리 더 소통이 잘 될수록,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수록, 혹은 사회가 긍정적인 역사적 집단 기억을 가질수록 잘 이루어집니다. 반면 국가 부패, 소득 불평등, 범죄율 등은 사회의 신뢰도를 저해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세계가치조사 등을 통해 나타난 우리나라 사회의 신뢰도는 매우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5년 조사 결과 10명 중 7명은 타인을 믿을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나이가 어릴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이기적으로 호의적인 행동을 할수록 우리는 사회적 협동의 열매를 더 많이 딸 수 있다. 비합리적인 감정에 의존해 기회주의를 초월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신다윈주의 자연선택 이론의 교훈은 옳지 않을뿐더러 규범적으로도 위험하다. 프랭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선행을 가르칠 때 선행이란 어렵지만 고귀한 것이므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선행은 장기적으로 보답이 있으므로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자는 것이다. -《이타적 유전자》p.200

세계은행의 디파 나라얀과 란트 프리체트는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사회조직에 많이 참여할수록, 협동을 더 많이 할수록 평균 1인당 소득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유대는 더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 뿐 아니라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에도 배제성과 불평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집단 선택에 의한 협동은 집단의 개방성, 가치의 보편성, 구성원의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위험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들을 토대로 이기성과 공공성, 상호성, 자연과의 공존이 조화를 이루는, 경쟁의 사회에서 협동의 사회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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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블로거 apoligia님의 서평입니다. 원문 주소는 http://goo.gl/KOCb8 입니다.



내 첫 경제학 교과서는 "맨큐의 경제학"이었다.


여느 상경계열 신입생들처럼나 또한 이 책으로 "경제학입문수업을 들으며 경제학 이론에 첫 발을 내딛었다곧 그 유명한 수요와 공급 곡선을 마주하고 본격적으로 주류경제학이 설명하는 시장의 작동원리를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특정 다수의 개별적 행동들을 하나로 묶어 수치와 그래프로 나타내는 경제학자들의 지혜에 감탄했다하지만 금세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차츰 깊어지는 의문과 반론 속에서도 책 속의 맨큐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완전)경쟁시장일 경우 이러한 논리가 성립한다'는 답변 뿐이었다온갖 가정으로 뒤덮힌 완전경쟁시장의 정의를 보며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왜 이리 열심히 분석하는 지 궁금했다이러한 의문에 희미하게나마 답변을 얻게된 것은 경제학을 조금 더 공부한 뒤였지만원론 수준의 학습에서는 경제현상을 완전경쟁시장의 논리로 재단하는 것만을 배운 것 같다.

 

'경제학원론'의 폐해

 

문제는 이 논리가 경제 현실을 설명하고 주장하는데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일례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완전경쟁시장과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최저임금제도나 최저임금인상제도를 비난할 때 완전경쟁시장의 공급과잉 개념이 쓰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이와 같은 '들이대기'는 임대료 규제나 조세제도를 반대할 때도 이루어진다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으로부터 빌려온 개념들을 뻔뻔하게 '시장논리' '수요공급의 법칙'이니 하며 공리인 양 포장하여 들이대는 경우가 너무 많다경제학원론이나마 끝까지 공부했으면 말미에 등장하는 외부성(외부효과)이나 시장의 실패 정도는 감안할 듯도 한데시장논리를 열심히 주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그도 아닌 듯 하다.

 

물론 주류경제학에 경쟁시장의 논리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현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니다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현실을 꽤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테지만 그것은 원론을 거쳐 다양한 심화과목들을 학습하고복잡한 수학 모델을 이용한 연구방법론을 깨우치고 난 후이를 활용한 논문이나 텍스트를 학습할 때에야 가능하다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교양으로서 경제학을 배워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데 활용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결국 쉽게 접하게 되는 원론 수준의 경제학은 경쟁시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지언정세계를 해석하는데 쓰이기엔 위험한 도구가 된다.

 

최근에는 주류 경제학계 내에서도 경제학원론 교과서의 편향성에 대해 많은 반론이 제기되면서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는 하다물론 주류 경제학계 바깥에서는 근본인 시장원리에 도전하는 대안 경제학 이론들이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협동의 경제학>(정태인이수연 공저레디앙 펴냄)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두 가지 측면에서 이들과 분명히 차별된다.

 

주류경제학과 대안경제학의 간극을 메우는 '협동의 경제학'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상호성이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다고 설명한다하버드 대학 수학 및 생물학과 교수인 마틴 노박이 주장한 '초협력자'는 너무나 강력해서 전 세계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호적이고 따라서 협동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몇 백만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역사 대부분을 인간은 상호적으로 행동했다다만 최근 300년 동안만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이 세상을 지배했을 뿐이다그리고 그런 학문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압도했을 때 세상은 파탄이 났다." (42)

 

먼저주류 학계의 문제제기 대부분이 여전히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적인 전제와 그에 따른 한계 안에 머물러 있을 때이 책은 그 전제를 직접 마주하고 파헤친다인간을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는 한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시장원리를 반박하기는 무척 어렵다저자들은 그보다는 전제 자체가 얼마나 공허한 가정에 불과했는지 밝혀낸다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을 포함하여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며인간의 이기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은 채 기존 경제학이 내세운 전제를 무너뜨린다.

 

그 과정에서 저자들은 수학적 논증과 과학적 실증을 동원한다이는 그동안 인문학적 관점에서 주류 경제학에 맞서온 대안 경제학의 흐름과 차별된다역사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고찰함과 더불어 각종 실험결과와 도식 등 '주류 경제학의 도구'를 활용하여 주류 경제학에 대한 전면적 반박을 시도하는 것이다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게임이론의 활용이다게임이론은 경제학 안에서도 현상을 가장 단순화도식화 시킨 이론이다개체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위하는 과정을 살피는 게임이론을 통해 오히려 인간이 상호적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매우 '경제학'적인 모습이다따라서 저자들의 주장은 그동안 소위 진보적비판적 경제학자들의 주장 속에서 느껴지는 이론적실증적 공허함을 메우는 동시에 향후 대안경제학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들은 주류경제학이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를 파해하는데 그치지 않고앞으로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책의 중후반부에서는 시장경제공공경제사회적경제생태경제의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사회와 경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이들 각각의 개념과 원리를 설명한다.


이 책이 교과서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다하지만 교양 서적의 얼굴로 주류 경제학의 근간을 분명하게 논박하고나아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모습은 대안 경제학 '원론'이 갖춰야 할 중요한 벽돌을 이미 쌓아낸 느낌이다기존 주류 경제학의 모순에 의문점을 가지면서도기존 대안 경제학으로는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느낀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해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 책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완전경쟁시장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 논리로 경제 현상을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듯, 이 책에서 소개되는 논리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또한 주류 경제학 이론이 현실성을 버려가며까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명쾌하고 단순한 논리를 내세운 반면책에서 소개되는 게임이론을 통한 상호성과 4가지 경제의 조화 부분은 쉽게 이해하기엔 다소 모호하게 얽혀있다물론 저자들은 향후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하여 이를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바람을 밝혔으나이 또한 기존 경제학의 모순을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한편 각종 경제정책을 사례로 들며 이론을 현실과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좋았으나때로는 본래의 논의에서 벗어나 정치적 평가로 귀결되는 모습은 다소 아쉬웠다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들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나책에서 다루지 않은 가치판단을 엮어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책 본래의 성격을 강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저자들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시론을 이야기하기엔 책의 주제가 다소 원론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공공경제사회적경제생태경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입장을 가급적 배제하지 않는 모습은 이 책의 장점과 주제를 극대화시켰다각종 분야와 의견을 하나의 주제로 아우르는 모습은 저자들의 논리가 향후 탄탄한 이론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충분함을 예고한다앞으로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시도는 이 책을 기점으로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최신의 대안 경제학을 다루는 동시에 미래의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훔쳐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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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1 / 24 김수현/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 >『시민의 불복종』

-법 보다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구애-

추천도서 -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강승영 옮김), 이레, 1999

국민이 되기 전에 인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국민과 괴리된 국가, 정부에 시민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사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더 나은 민주국가를 바라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법안을 만들거나, 다수가 뽑은 정부라는 미명 하에 국민의 이익과 상관없는 옳지 않은 정책을 추진하는 행태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넷 매체의 발전 때문인지 아니면 정부나 국회의 문제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요 몇 년 사이 이런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럴 때면 결국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인데 정부인데 왜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혹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처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이런 고민에 대해 150년전 죽은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란 글을 통해 시민불복종이란 답을 내놓았다. 원제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인 비교적 짧은 이 글은 소로우가 죽은 다음 “시민의 불복종”이란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는 제국주의자들과 대농장 소유주들이 요구하는 영토확장을 위한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고, 흑인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미국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했는데, 결국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다행히 하루 만에 친척의 대납으로 풀려나지만,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이와 같은 경험 그리고 국가권력에 대한 성찰은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하는 “시민의 불복종”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수의 불의에 저항하라

본문에서 소로우는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할 때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수를 설득해 법을 개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결론은 저항하며 그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는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고 말하며, 비난받을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그는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며, 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부당한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는 비록 인두세 납부 거부가 당시의 법을 어길지라도 양심을 따르는 자유로운 시민을 인정하는 미국의 헌법, 혹은 그 이상의 양심, 정의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실 단순하다. 짧은 글 속에서 그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양심, 정의에 대한 존경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귀한 인간으로서 이런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정부, 국가를 위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라

이와 함께 소로우는 자신이 택한 불복종의 실천에 대해 정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달리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자신이 순응할 수 있는, 그래서 인두세도 기꺼이 낼 수 있는 정의로운 정부가 되길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개인에 대한 존중을 위해 국가가 진보한 것처럼 국가의 권력과 권위가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주는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 정부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시민들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나은 국가,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처방책을 찾기만을 기다리지말고, 자신이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 반대를 외치며 인두세 거부를 택한 것처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존경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가 아닌 소수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라고 하며,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소수일지라도 다수가 될 때까지 잠자코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거스르는 정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그릇된 행위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다수인가가 아닌 누가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한민국, 시민 불복종은 유효한가?

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 우리나라의 함석헌 등 많은 사상가들이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찬사를 보낸 것은 그의 사상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국가나 정부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불의에 저항하고 양심과 정의를 따라 행동하는 개인이 있어야 한다는 소로우의 생각은 그의 사후 150년 동안 민주주의의 진보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떨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 내리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정부는, 법은 양심적이고 정의로운가?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는가?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이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잘 따르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우리들은 2013년 대한민국에 “시민의 불복종”이 가지는 의미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소로우의 글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150년 전에 죽은 소로우의 생각이 현실에 완전히 부합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았던 그의 생각이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을, 내가 해야 하는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저자 소개

1817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신비주의자, 초절주의자, 자연철학자’로 묘사한 소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에 대한 선호, 사회와 정부에 대한 개인의 저항 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 강연에 이르기까지 시간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 데 할애하며 보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월든』(1854)은 친구이자 멘토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소유한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지은 오두막집에서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홀로 생활하며 보낸 경험을 토대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고 자급자족적인 삶에 대한 내면 성찰을 담은 에세이이다. ‘자발적 고립’이라는 형식을 통해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과의 투쟁을 담은 『월든』은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20여 권이 넘는 다른 저서, 논문, 에세이 등과 함께 생태학과 환경사의 방법론을 제시한 저작으로서, 20세기 환경운동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부당한 시민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한 에세이 『시민 불복종』(1849)은 1846년 7월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투옥을 당한 경험을 생생히 그리면서 노예 해방과 전쟁 반대의 신념을 밝힌 역작이다. 20세기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다 1862년 콩코드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소풍』(1863), 『메인 숲』(1864)이 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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