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11.03.28 14:56
2011 / 02 / 10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이 글은 미의회의 금융위기조사위원회가 제출한 <금융위기조사보고서>를 요약정리한 글입니다. 원문은 www.fcic.gov/report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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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융위기조사위원회 설립과 주요 활동 내용


- 금융위기조사위원회(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는 "미국에서 발생한 현 금융, 경제 위기의 원인을 검토”하기 위해 설립
* 2009년 5월 의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이 서명한 Fraud Enforcement and Recovery Act(Public Law 111-21)에 따라 설립
* 10명의 독립 패널들은 주택, 경제학, 금융, 시장규제, 은행, 소비자 보호 부문에서 경험이 풍부한 민간 전문가로 구성; 6명은 민주당, 4명은 공화당에 의해 지명


- 금융 시스템과 경제를 절망으로 빠뜨린 원인에 대해서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고, 정책담당자와 대중이 이번 재앙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1월27일 발표)
*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이 일어났고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규명

- 잡한 금융시스템의 작동, 위기 진행 방식 등을 규명하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과 증권화, 파생상품, 기업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등 난해한 주제들을 분석하기 위해 특정 금융회사에 대한 사례 연구를 진행
* AIG, Bear Stearns, Citigroup, Countrywide Financial, Fannie Mae, Goldman Sachs, Leman Brothers, Merrill Lynch, Moody's, Wachovia 등을 조사

- 의회와 행정부가 조치를 위한 관련 정책 등을 검토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정책담당자와 규제당국을 조사
*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준비위원회(FRB), 뉴욕연방은행, 주택도시개발부, 통화감독관(OCC), 연방주택금융청(FHFA), 저축은행감독청(OTS), 증권거래위원회(SEC), 재무부 등을 조사



2. 금융위기조사위원회의 핵심 결론


* 위원회가 제기했던 핵심 질문: 2008년에 어떻게 다음과 같은 냉혹하고 고통스러운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는가? “수백만의 미국인이 일자리와 저축, 그리고 집을 잃고 있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과 경제를 총체적인 붕괴에 빠트리도록 놔둘 것인가, 아니면 금융시스템과 기업에 수조달러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을 투입할 것인가?”


* 위원회가 검토한 바에 따르면, 금융시스템은 우리 부모세대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과거 30 여년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음. 금융시장은 점점 더 세계화되고, 기술은 금융상품과 거래의 효율성, 속도, 복잡성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음.


* 1978~2007년 기간, 금융부문의 부채는 3조 달러에서 GDP 대비로는 비중이 두 배 증가한 36조 달러로 급상승. 2005년에 10대 상업은행은 1990년 수준의 두 배 이상인, 산업 총자산의 55%를 보유. 2006년 위기 직전, 금융부문의 이윤은 1980년 기업 총이윤의 15%에서 27%까지 증가.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위원회의 주요 분석과 검토 사항.



※아래는 보고서가 밝힌 주요 내용과 결론.

 

1) 금융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

 

위기는 자연이나 고장 난 컴퓨터 모델 탓이 아니라, 인간 행위와 무대책(inaction)의 결과였다. 금융 CEO들과 금융시스템의 공적 관리인들은 수차례 경고를 무시하고, 미국인의 후생에 중차대한, 시스템 내부에서 자라나는 위험에 대하여, 의심도, 이해도, 관리도 하지 못했다. 경기변동은 제거할 수 없지만, 이런 정도의 대규모 위기는 발생할 필요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이 위기는 예측되거나 회피될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경고 사인은 있었다. 비극은 경고가 무시되고 평가절하 된 데서 발생하였다.

 

위험한 서브프라임 대출과 증권화(securitization)의 폭발적 증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정도의 주택가격 폭등, 광범위하게 진행된 약탈적 대출관행, 가계 주택담보대출의 놀랄 만한 증가, 금융회사의 자기 계정 매매와 규제받지 않은 파생상품, 단기 ‘repo' 시장의 폭증 등 수많은 위험 신호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호에 매우 관대했고, 적시에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은 거의 취해지지 못했다. 일례로 유해한 모기지(toxic mortgage)의 증가를 제어하는데 연준은 치명적인 실패를 저질렀는데, 모기지 대출에 건전성 기준만 적용했어도 방지할 수 있었다. 연준은 그러한 힘을 가진 유일한 기관이었지만 집행하지 않았다.

 

 

2) 금융 규제와 감독의 광범위한 실패는 금융시장의 안정에 치명적임을 입증

 

시장이 스스로 교정하는 성질과 스스로 효과적으로 규칙을 감시하는 금융회사의 능력에 대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신념 때문에, 보초는 초소에 있지 않았다.

 

주로 전 연준 의장 그린스펀이 옹호하고, 의회와 행정부 관료들이 계속적으로 지지하고, 어디에서나 강력한 금융 산업이 적극적으로 밀어 부친, 지난 30여 년 이상 진행된 탈규제와 금융회사의 자기 규제에 대한 의존은, 재앙을 피하는데 기여했을 주요 세이프가드를 제거해 버렸다. 이러한 [시장주의적] 접근법은 그림자 금융시스템이나 장외 파생상품 시장과 같은 수조 달러의 위험이 내포된 핵심 영역에 대한 감독에서 간극(gap)을 만들었다. 또한 정부는 금융회사가 선호하는 가장 느슨한 감독기관을 선택하는 것을 용인하였다.

 

하지만 감독기관이 금융시스템을 보호할 힘(power)이 부족했다는 관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감독기관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충분한 힘을 지녔었다. 다만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한 예들 중 세 가지만 들면 다음과 같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하고 거대 투자은행의 위험한 관행을 중단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뉴욕연방은행과 다른 감독기관은 위기 확대 과정에서 시티그룹의 방종을 단속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책당국과 감독기관은 모기지 증권화 열차의 탈주를 멈출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환경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집행할 정치적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을 따름이다.

 

금융시장이 변모함에 따라 많은 영역에서 규제 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금융 산업 자체가 금융 기관, 시장, 상품에 대한 규제적 제약을 약화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보고된 로비 행위에만 27억 달러를 지출하였고, 선거 기부금으로 1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였다.

 

 

3) 위기의 핵심 원인은, 체계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에서 기업지배구조와 위험 관리의 실패

 

주요 금융회사는 규제는 혁신을 질식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지속적인 규제 관리에 대한 필요가 없어도 내부의 자기 보존 본능이 치명적 위험 부담 행위로부터 기업을 보호할 것이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기업의 상당수가 너무도 적은 자본으로 단기 자금조달에 치중하면서 너무도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등 부주의하게 행동하였다. 수조 달러를 파생금융상품을 포함하여 모기지 관련 증권을 만들고, 묶고, 다시 묶고, 팔았으며, 서브프라임 대출기업을 인수하고 지원하면서 막대한 위험을 노출시켰다. 이카루스(Icarus)처럼, 태양에 점점 더 다가갈수록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시티그룹의 CEO는, 등급이 높은 모기지 증권에 40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은 “전혀 내 관심을 자극하지 못했다”고 위원회에 증언하였다. 시티그룹 투자은행의 공동 책임자는 모기지 증권 상품에 시간의 “1%밖에 안 되는 매우 작은 비중”만 지출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예로 볼 때, 대마불사(too big to fail)는 ‘너무 커서 관리할 수 없는 문제(too big to manage)'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지배구조 붕괴와 책임성 부재의 충격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사례들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모기지 관련 증권에서 790억 달러 상당의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과 계약 조건에 대한 AIG 고위 관리의 무지; 주택시장이 정점으로 치달을 무렵, 패니메이(Fannie mae)의 시장점유율, 이윤, 보너스에 대한 탐욕으로 위험한 대출과 증권 상품 확대 등.

 

 

4) 과도한 차입, 위험한 투자, 투명성의 부족이 결합하면 위기 시 금융시스템의 붕괴 과정을 초래함

 

위기에 이르는 수 년 간, 너무도 많은 금융회사와 가계들은 투자가치가 조금만 하락해도 금융 경색(financial distress)에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도로 차입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면, 2007년에 5대 투자은행들은 극도로 낮은 자본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레버리지 비율은 40대 1로로 높았는데, 자산 40달러에 손실을 충당할 자본은 단지 1달러에 불과하였다. 자산가치가 3%만 하락해도 기업을 쓰러뜨릴 수 있는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부분의 차입은 오버나잇(overnight) 시장에서 단기로 운영되었다.

일례로, 2007년 말 베어스턴스는 자본금 118억 달러에 3836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었는데, 오버나잇 시장에서 700억 달러 상당을 차입하고 있었다. 이것은 5만 달러의 자본금을 지닌 소기업이 160만 달러를 차입하여, 296750 달러를 매일 상환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과 동일하다. 그리고 레버리지 비율은, 파생 포지션, 장부 외 자회사, 그리고 투자자만이 알 수 있는 금융리포트의 ‘윈도우 드레싱’ 등을 통해서 종종 은폐되었다.

레버리지 왕은 두 거대 정부보증기관(GSE)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었다. 두 기업이 소유하고 보증한 부채를 포함하면 레버리지 비율은 75대 1이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국가의 모기지 부채 총액은 거의 두 배로 상승하고 임금은 거의 정체되어 있었지만, 가계 당 모기지 부채 규모는 91,500달러에서 149,500달러로 63% 이상 증가하였다. 그러한 부채로 위험한 자산을 인수하여 위험은 더욱 확대되었다. 모기지와 부동산 시장은 점점 더 위험한 대출과 증권을 대량으로 찍어냄에 따라 많은 금융기관들은 위험한 금융상품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2007년 말 리먼브러더스는, 불과 2년 전보다 두 배로 폭증하고 총자본금의 네 배나 많은 1110억 달러를 부동산 증권 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러나 투명성이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시스템 내부에서 부채의 위험성은 더욱 가중되었다. 19세기에 미국의 은행 시스템을 주기적으로 괴롭혔던 금융패닉에 맞서 방어벽을 만들기 위해 최종대부자로서 연방준비은행, 연방예금보험공사와 같은 일련의 금융 보호기관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전통적 은행 시스템의 규모를 능가하는 그림자 은행 시스템의 성장을 용인하였다. 금융시스템은 21세기 최첨단이었지만, 방어막은 19세기에 불과했다. 우리는 우리가 뿌린 씨앗을 수확했을 뿐이다.

 

 

5) 정부는 위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으며, 일관적이지 못한 대응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패닉을 증폭시킴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을 감시할 최적의 책임자들인 재무부와 연준, 뉴욕연방은행과 같은 주요 정책당국은 2007~8년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정책당국은 실제로는 위험이 집중되었음에도, 분산되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금융시장에서 위험과 상호 연계성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위기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이 전혀 없었다. 적어도 주택 버블에 대한 논쟁이나 인지가 있었지만, 고위 관료들은 버블의 붕괴가 전체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2007년 여름, 연준 의장 버냉키와 재무부장관 폴슨은 서브프라임 시장의 혼란은 차단될 것이라며 장담하고 다녔다.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가 2007년 6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연준은 파산의 함의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펀드들이 베어스턴스와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어스턴스 펀드는 “상대적으로 유별난(relatively unique)”것으로 평가 절하할 따름이었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붕괴되기 불과 몇 일 전, SEC 의장 Christopher Cox는 거대 투자은행은 “충분한 자본금 대비책”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부보증기업을 인수하기 불과 몇 주 전인 2008년 8월이 되어서야, 재무부는 두 기업의 금융 상황의 심각한 정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리먼브러더스가 붕괴되기 한 달 전이 되어서야, 뉴욕연방은행은 리먼브러더스가 만든 90만 개의 파생상품 계약의 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또한, 위기 동안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조치들 -베어스턴스 구제 결정,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정부인수 조치, 리먼은 구제하지 않고 AIG는 구제한 결정-은 시장의 불확실성과 패닉을 증폭시켰다.

 

 

6) 책임성과 윤리의 총체적인 붕괴

 

금융시스템과 경제의 건전성과 지속적 번영은 공정한 거래, 책임성, 투명성 등의 개념에 근거한다. 우리는 기업과 개인이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함께, 질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금융위기를 확대한 책임성과 윤리 기준의 침식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대출을 받은 후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주택담보대출에서 디폴트가 발생한 차입자의 비율이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말까지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보고서는 대출 기준이 무너지고 규제가 느슨한 환경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많은 주택대출 사기 사건을 목록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택대출 사기 사건과 관련한 수상쩍은 금융범죄 행위에 관한 규모가 1996년과 2005년 사이 20배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2005년과 2009년 사이 또 다시 두 배 넘게 증가하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5년과 2007년 사이 주택대출 사기가 초래한 손실은 112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차입자의 상환 능력이 부족하고 모기지 증권 투자자에게 대량 손실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서도 대출을 진행하였다. 2004년 9월에, Countrywide 임원들은 자신들이 실시한 대출의 상당수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특정 고위험 대출에서 압류가 발생하고 기업의 “금융과 평판 부문의 재앙”이 초래될 수 있음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과 개인적, 사회적 책임성의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선, 이번 위기를 탐욕과 자만심과 같은 도덕적 결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은 이번 위기와 관련한 인간의 약점을 설명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둘째, 이번 위기는 체계적 실패를 초래한 인간의 실수, 오판, 그리고 비행(misdeed)의 결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특정 기업과 개인이 무책임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위기의 규모로 볼 때 일부 나쁜 경제주체의 행위로만 모든 것을 돌릴 수는 없다.

 

위기로 몰고 간 기업의 CEO, 금융시스템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적 관리인들에 주요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도 ‘no'라고 말하지 않았다.

 

 

7) 주택담보대출 기준과 증권 파이프라인의 붕괴는 전염과 위기의 불꽃을 점화하고 확산시킴

 

2005년 상반기에 진행된 주택담보대출의 25% 가량은 이자만 상환하는(Interest-only) 대출이었다. 같은 해에, Countrywide와 Washington Mutual이 발행한 “Option-ARM" 대출의 68%가 서류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부실 대출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결코 비밀이 아니었다. 약탈성, 사기성 대출을 포함한 무책임한 대출이 만연함에 따라, 연준과 다른 규제 당국은 오래전부터 경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의 은행과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건전성을 보장하고 소비자의 신용 권리를 보호할” 임무를 무시하고 말았다. 너무 늦기 전에 방화벽을 구축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통화감독위원회와 저축기관감독위원회는 영역 다툼에 매몰되어, 주 규제당국이 금융남용 행위를 억제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주택 투기꾼, 모기지 브로커, 모기지 대출기업, MBS, CDO, CDO2, 합성 CDO등을 만든 금융회사에 이르기까지, 악성 모기지 파이프라인에 있던 모든 당사자가 자신이 지고 있는 위험이 옆 사람에게 순식간에 이전될 수 있다고만 믿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틀렸다. 가계가 모기지 상환을 중단했을 때, 파생상품에 의해 증폭된 손실이 통째로 파이프라인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판명된 것처럼, 금융 손실은 체계적으로 중요한 몇몇 금융회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효율적으로 수백만 개의 주택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시스템은 위험을 해소하는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주택대출 증권화 과정이 너무도 복잡하여 가계가 자신의 주택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대출 조건을 수정하는데 장벽을 만들었고, 주택시장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확대시켰다.

 

 

8) 장외파생상품 시장은 이번 위기에 상당한 기여를 함

 

장외(OTC) 파생상품에 대한 연방-주 정부의 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2000년 법안의 발효는 금융위기로 가는 행진의 주요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었다. 어떤 감독조치도 없는 상황에서, 장외파생상품은 통제와 감독에서 벗어나 명목 금액으로 673조 달러로 급증하였다. 다음 세 가지 부문에서 장외 파생상품은 위기 확대에 기여하였다.

 

첫째, 신용부도스왑(CDS)은 모기지 증권화 파이프라인에 불을 붙였다. CDS는 모기지 관련 증권의 디폴트나 가치하락에 대비하여 투자자에게 판매되었는데, AIG의 경우 790억 달러 상당의 상품을 판매하였다.


둘째, CDS는 합성 CDO 상품의 개발에 핵심적으로 작용하였다. 합성 CDO는 모기지 관련 증권상품의 수익률에 베팅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같은 증권상품에 복수로 베팅하는 것조차 용인하였고, 금융시스템 전체로 확산되도록 일조함으로써, 주택버블 붕괴로부터 손실이 증폭되도록 만들었다. 골드만삭스에서만 2004년 7월1일부터 2007년 5월31일까지, 730억 달러 상당의 합성CDO를 만들어 판매하였다.


마지막으로, 주택버블이 터지고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파생상품은 폭풍의 한 가운데에서 작동하였다. AIG가 붕괴하면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체로 손실을 폭포처럼 확대시킬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정부는 구제금융으로 18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였다. 거대 금융기업 간 체결된 수백만 건의 파생상품 계약은 불확실성을 확대하고 패닉을 증폭시켰으며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을 촉발시켰다.

 

 

9) 신용평가기관의 실패는 금융붕괴의 바퀴에 핵심 톱니바퀴로 작용

 

3대 신용평가회사는 금융붕괴의 주요 enabler(남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망치고 있는 사람)로 작용하였다. 위기의 중심에 있는 모기지 관련 증권은 신용평가회사의 보증 없이는 판매될 수 없었다. 신용등급 상향은 시장이 폭등하는데 일조했으며, 2007~8년 동안 등급 하향은 엄청난 금융 피해를 초래하였다. 2000~7년 사이, 무디스는 45000여 개의 모기지 관련 증권에 AAA 등급을 부여하였다. 무디스는 2006년에만 매일 30여 개의 모기지 증권에 AAA를 매기고 있었다. 그러나 AAA를 받은 모기지 증권의 83%는 그 해 결국 등급이 하향되었다. 



3.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대립하는 관점


- 초과유동성, 정부보증기관의 역할, 정부의 주택정책

* 첫째, 초과유동성 문제: 저금리, 광범위하게 이용 가능한 자본, 미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려고 하는 국제투자가 등은 신용버블 창조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러나 초과유동성이 반드시 금융 위험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위원회는 결론을 내렸다.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은 주로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다. 실제로, 자본이 생산적 방향으로 흐르도록 장려된다면, 경제적 성장과 확장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 둘째, 정부보증기관(GSE)의 역할: 2005~6년 주택시장이 정점에 다다를 때, GSE는 위험한 모기지의 구입과 보증을 늘리기로 결정하였다. 1999년에서 2008년까지 1640만 달러를 로비 금액으로 지출하는 등 정부의 규제와 감독을 방어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권력을 활용하였다. 2010년 3분기까지, 재무부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1510억 달러를 공급하였다. 위원회는 두 기업이 위기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원인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GSE는 서브프라임 등 위험한 모기지 확대에 참여했지만, 바보들의 골드러시 행진에서 월스트리트를 추동하기보다는 추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정부보증기관이 구매하고 보증한 대출의 성과를 조사한 결과, 상당한 손실을 입었지만 연체율이 다른 금융회사가 증권화 시킨 대출보다는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신용점수 660점 이하 차입자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2008년 말 GSE의 모기지는 다른 민간 모기지의 중대 연체율보다 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6.2% VS 28.3%)

 

* 셋째, 정부 주택정책 문제: 수십 년 동안, 정부의 주택정책은 인센티브, 보조금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주택소유(homeownership)을 장려하는 방향이었다. 주택도시개발부의 주택시장 목표와 공동체 재투자 법안(CRA) 등을 주의 깊게 검토하였다. CRA는, 신용능력에 관계없이 특정 개인과 기업의 신용을 거절하는 은행들의 redlining(대출 거절) 관행을 없애기 위해 1977년에 발효되었다. 은행의 안정성과 건전성에 부합하면서, 개인과 기업이 예금을 한 지역공동체에 대출과 투자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위원회는 서브프라임 대출이나 위기에 CRA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대부분의 서브프라임 대출회사는 CRA 적용을 받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대출의 불과 6%만이 CRA 법안과 연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정부 주택 정책은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전에는 금융시장에 접근이 거절되었던 가계에까지 신용을 확대하도록 공격적인 주택소유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목표가 실제 현실과 조응되도록 보장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무책임한 대출을 억제하는 데서 중앙은행과 다른 규제당국은 실패하였다. 2004년 봄 주택소유 비율은 정점에 다다른 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정부가 제시한 기회의 담론은 금융재앙의 현실과 비극적으로 상충하게 되었다.



4. 금융위기조사보고서의 시사점


- 1997년 IMF 외환위기, 2002~3년 신용카드사태, 2008년 금융위기 등 수차례 주기적인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공론장과 역사적 기록이 사실상 전무한 우리 현실에 비추어 교훈적 자료라고 평가
* 금융위기 해소를 위한 임시방편적 단기 처방에 치중했을 뿐, 위기의 원인, 전달 및 확산 메커니즘, 정책 대응 실패, 그리고 위기 이후 금융규제 및 감독 강화 방안 등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차원의 조사나 역사적 기록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함.
* 금융위기에 대한 교훈이 대중적으로 공유되고 제도 개선이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빈도나 강도가 갈수록 확대되고 금융 및 국민 경제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증대함.


- 660여 페이지에 달하는 광대한 보고서는 금융위기의 작동 및 확산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미국의 금융시스템 및 제도에 대한 이해의 증진에도 적지 않은 기여
* 주요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에 대한 사례 조사를 통해 미국의 금융 제도의 역사와 그 변화 과정의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
*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 과정, 금융파생상품의 작동 원리에 대해 구체적 사례분석과 원리 설명을 통해 이해가 용이하고 생생한 현실 전달력을 발휘함.


- 보고서가 밝힌 금융위기의 핵심 원인은, 시장의 자정 능력과 자기 감시 능력에 대한 감독당국과 시장참여자의 맹신 때문
* 지난 수십 년 간 진행된 탈규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신자유주의적 환경을 강화.  감독당국 또한 그러한 정치적 환경에서 시장만능을 맹신하였고, 금융 감독과 규제를 집행할 의지와 용기가 전혀 없었음. 금융회사의 경제적 책임성과 윤리성 또한 총체적 붕괴를 초래함.
*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대립되는 관점, 특히 정부보증기관이나 공동체 재투자 법안에 책임을 돌리는 보수적 관점을 의회의 공식적 보고서를 통해 기각함.

 

- 최근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부동산버블 등 문제 해결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함
* 최근 정부는 주택시장 부양을 위해 DTI 규제완화를 추가 연장할 의도를 보이고 있음.
*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는 규제완화를 통한 주택가격 버블의 지탱 및 부양. 이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의 교훈과 상반되는 것으로, 여전히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입증함. 미국 금융당국에 총체적 감독 실패의 책임이 있지만, 위기 과정에서 “빚내서 집 사라”며 부실 촉진 혹은 확대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음.
* 특히 부시 행정부의 자가소유(Homeownership) 확대 정책이 정책실패의 주요한 부분이었음을 인지하고, 주택시장에서 자가소유 중심 정책을 재검토해야 함. 또한 가계부채와 부동산버블의 취약성과 위험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연착륙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시행해야 함. 아울러 금융위기 작동 시 대응 매뉴얼 작성 등 위기 대책 방안도 체계적으로 구축할 것을 권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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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12.24 10:04

서브프라임 사태로 일국을 넘어 전 세계로 경기침체를 수출한 월가의 베일이 낱낱이 벗겨지고 있다. 이윤은 사적으로 향유되고 손실과 위험은 사회적으로 부담되는 것을 넘어, 이제 사기와 부도덕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는 넓고 사기 칠 곳은 많았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사기 치기에는 세계가 너무 좁았을까. 수십 년에 걸친 사기 행각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현금’이 필요한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결국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법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와 매도프 폰지 사기사건은 너무도 흡사하게 타락한 월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닌자 대출(Ninja: No income, no job, asset)로 알려진 약탈적 대출을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미끼로 유혹하여 엄청나게 팔아댔고, 이러한 대출들은 금융 연금술이라 알려진 파생상품으로 각색되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수천 개의 MBS(주택저당증권) 중에서 우량 등급을 받지 못한 채권들을 한데 묶어 신용부도스왑과 같은 신용파생상품의 ‘신용보강’ 기법을 통해 각색된 것이 바로 CDO(채권담보증권)다. BBB 등급 채권이 AAA로 바뀌었기 때문에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지만, 안전한 채권으로 순식간에 둔갑한 것이다.

             [그림1] 시장변동과 상관없는 꾸준한 수익률

이론적으로 채권 등급이란 디폴트의 확률, 즉 안정성을 반영하므로 동일한 채권 등급은 동일한 수익률을 보여야만 한다. AAA 회사채 수익률보다 AAA CDO 수익률이 2~3퍼센트 높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몰렸고 결국 천문학적인 부실을 초래하였다. 기실, 다른 펀드보다 "더 안전하면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광고하는 펀드들은 대부분 ’사기’이거나, 다른 펀드매니저가 ‘바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도프의 돈줄이 되었던 십여 개의 ‘자(子)펀드’ 중 최대의 금액을 투자했던 센트리 펀드의 경우 왼쪽 그림에서 보듯, 나스닥 붕괴 이후 S&P 500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던 시기에도 10퍼센트에 육박하는 꾸준한 수익률을 올렸다. 심지어 서브프라임 사태로 헤지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수십 퍼센트의 마이너스 손실을 보이던 올해에도 적지 않은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이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희대의 사기꾼의 행적을 통해, 최근 온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부동산, 펀드의 광풍 혹은 재테크의 신화에 대해서 되씹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금융사기의 재구성, 무덤에서 폰지를 불러낸 매도프...1920년 찰스 폰지

매도프
사기 사건의 앞에 통상 ‘폰지(Ponzi)’ 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보스턴으로 건너간 찰스 펀지는 1919년 스페인에서 온 국제우편 한 통을 받는다. 답장에 동봉된 국제우편쿠폰(International Reply Coupon)을 바꾸러 우체국에 갔다가 폰지의 머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통화가치가 떨어진 나라에서 쿠폰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통화가치가 오른 나라에서 현금으로 바꾸면 큰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생각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환차익을 노린 차익거래(arbitrage) 방식이다. 헤지펀드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국제우편쿠폰은 미국을 비롯한 60여 개 나라가 맺은 국제협약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쿠폰을 보낸 사람이 회신우편 요금을 미리 대신 치르게 하였다. 협약 초기에는 쿠폰 가치가 비슷했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통화가치는 폭락하고 미국의 통화가치는 상승했기에 쿠폰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미국에서 달러로 바꿀 수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당시 쿠폰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 불법이었으며, 수십억 장의 우표를 매집해야 했기 때문에 현실이 될 수 없는 공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폰지는 1919년 12월, 쿠폰 사업을 통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45일간 투자에 50퍼센트 수익 보장”이라는 현란한 광고와 함께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사업 구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던 사람들도 실제로 높은 수익을 올려주자 그의 사무실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20년 2월 5,290 달러, 4월 14만 달러, 5월에는 44만 달러로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6월에는 급기야 250만 달러로 불어났다.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투자금액이 500배 정도 증가하였다. 7월에는 650만 달러로 불어났고 7개월 만에 3만 여명의 사람들이 천만 달러를 투자하기에 이르렀다. 최종 투자금액은 1,5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억 6,000만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폰지는 사실 소득을 창출하는 어떠한 사업도 벌이지 않았다. 단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챙겨주는 것이 그가 한 일의 전부였다. 수익 모델이라고 알려진 쿠폰 거래는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도록 유인하는 미끼투자, 즉 윈도우 드레싱(Window dressing)에 불과했다.

수학적으로 폰지 수법은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는 사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 달 내에 100만 원을 투자하면 두 배의 수익을 안겨준다는 다단계 폰지 사기의 경우, 최초에 두 명의 투자자로부터 200만 원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 달에는 최초의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안겨주기 위해 네 명의 투자자가 필요하며, 그 다음 달에는 여덟 명의 투자자를 모아야만 약속을 이행할 수 있게 된다. 10개월 후에는 1,024명의 투자자가 필요하며, 18개월 후에는 25만 명의 투자자를 모아야만 사기가 지속될 수 있다. 즉 투자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야만 사기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에, 다단계 사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투자자가 원리금을 인출하지 말고 더 높은 수익률을 줄테니 재투자하라고 유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튼, 매도프 사기사건은 지속성, 범위, 강도 등 역대 그 어느 사기사건보다 강력하면서도 고객들이 환매를 요구하기 전까지 발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기에 전 세계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금융기관과 펀드매니저들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금융혁신가가 폰지 사기꾼으로

1960년대에 22살 청년 매도프는 전통적 주식거래 외곽에서 장외 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을 창립했다(<뉴욕타임스> 2008.12.19, “Madoff Scheme Kept Rippling Outward, Across Borders”). 이 조그만 기업이 1989년에는 나스닥 투자의 5퍼센트를 거래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채권 왕 밀켄, 헤지펀드 투자가 조지소로스와 함께 최고 수익을 올린 투자자로 등극되기도 하였다. 창업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배경으로, 1990년에는 나스닥 비상임 회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만 해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전자거래’ 기법을 현실로 옮긴 혁신적 기업가의 마인드를 가졌다.

이러한 마인드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반, 당시 거래하고 있었던 신시내티(Cincinnati) 주식 거래소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여, 최초로 컴퓨터로 증권을 거래하는 방식을 창안하였다. 또한 새로운 전자거래 기술을 도입하여 주식 거래의 비용 절감과 거래 속도 상승으로 거대 증권회사로부터 사업을 따내어 명성을 점차 얻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업 확장을 배경으로 1990년대에 뉴욕 지방의 유태계 자선단체에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며 부유층 시장으로 파고들면서 사기꾼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뉴욕의 유태계 공동체의 고급 골프클럽, 자선단체, 사교클럽을 통해 은밀하게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한 매도프의 명성은 ‘입소문’을 타고 부유층이 모여드는 여러 사교단체에 퍼져 나갔다.

                                    [표1] 매도프에 투자한 주요 금융기관 목록

뉴욕 지방의 유태계 부유층의 한계를 벗어나 매도프의 명성을 더욱 날리게 된 계기는 에즈라 머킨(Merkin)을 만난 이후다. GM의 자회사인 GMAC 회장이기도 한 머킨은 Yeshiva, Tufts 대학, 그리고 카니지 홀을 비롯한 여러 비영리단체의 이사로서 활동한 유명인이었다. 머킨의 명성이라면 투자를 믿고 맡기기에 충분했으며, 그는 Ascot Partners를 통해 매도프에 자금을 공급했을 뿐이다. 통상 자산을 실제로 운용하는 헤지펀드인 모계펀드(master fund)에 투자하므로 이러한 펀드를 子펀드(feeder fund)라고 한다. 국내 운용중인 상당수의 재간접펀드(fund of fund) 또한 실제 운용방식은 이러한 子펀드와 같으며, 대부분 국외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유태계 부유층에서 시작한 사기는 머킨을 낚으면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한 사기행각이 국제적으로 확대된 결정적 계기는 페어필드(Fairfield)를 운용한 노엘(Noel) 가문을 만나면서 부터다.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는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독보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아이콘 펀드를 ‘창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페어필드는 센트리(Sentry) 펀드를 내세웠다. 센트리 펀드는 지난 15년 동안 연평균 11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렸으며 뉴욕에 본사를 두었지만, 외국인 투자자가 자금의 95퍼센트(유럽 68퍼센트, 아시아 6퍼센트, 중동 4퍼센트)를 제공한 글로벌 펀드였다.

세계는 넓고 사기 칠 곳은 많다

페어필드를 운영한 노엘(Noel)은 네 명의 사위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첫째 딸과 결혼한 콜롬비아 사람인 Piedrahita는 스페인과 영국에서, 나머지 사위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매도프를 위해 열심히 펀드를 팔았다. 노엘의 네 명의 사위들이 유럽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결과, 스페인의 산탄테르(Santanter), 오스트라아의 메디치(Medici) 은행을 비롯한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매도프의 사기술에 걸려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Madoff was looking for new money as scandal hit" 2008.12.22)에 따르면, 이들 유럽 은행들은 매도프에 투자한 대가로 연간 2퍼센트 정도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에서 최대 금액인 23억 유로(32억 달러)를 투자한 스페인의 산탄테르 은행의 경우 최대인 2.15퍼센트의 수수료를 챙겼는데, 펀드를 판매하여 연간 5,0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 메디치 은행의 경우, Herald USA 펀드와 Herald Luxemburg 펀드를 설립하여 은행, 보험회사, 연기금에서 자금을 끌어모아, 2004년 이후 21억 달러를 매도프에 투자하여 연 7퍼센트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Herald USA 펀드는 지난 달 독일에서 “혼란스러운 기간에 꾸준한 수익률을 입증”했다는 이유로 올해의 헤지펀드 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정성과 수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까지 100억 달러 이상을 날린 것으로 알려진 유럽 금융기관들 전부가 매도프의 사기에 농락당한 것은 아니다. 매도프는 헤지펀드의 여러 투자기법 중 하나인 ’Split-strike conversion’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우량주 중심으로 구성된 S&P 500 주식을 구입하면서 풋옵션과 콜옵션 전략을 동시에 사용하여 손실을 줄이는 헤징 전략에 불과하다. 따라서 위험과 변동성을 줄일 수 있기에 안정성은 높지만, 수익률은 S&P 500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 헤지펀드들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다른 헤지펀드의 투자기법을 모방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비슷해지는데, 다른 헤지펀드에 비해 꾸준하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헤지펀드는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롱텀캐피털처럼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한 은행은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너럴이었다. 2003년 매도프에 투자한 Zurich Capital 인수를 검토하던 소시에테 제너럴의 회계 팀은 뉴욕을 방문한 후 매도프 기법을 직접 검증하였고, 실제 매도프가 달성한 결과를 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소시에테 제너럴은 운영 중인 펀드들이 매도프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Zurich Capital은 라이벌인 BNP 파리바에 인수되었다(<뉴욕타임스> 2008.12.17, “European Banks Tally losses linked to Madoff”).

또한 HSBC나 BNP 파리바 등은 직접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매도프에 투자한 헤지펀드에 자금을 빌려주어 손실을 입기도 하였다. 자금을 빌려준 대가로 담보를 받긴 했지만, 대부분 헤지펀드의 지분으로 구성되었으므로 헤지펀드가 청산한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다.

2004년부터 매도프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금융사기가 대서양을 건넌 것도 모자라, 아시아에 상륙한 곳이다. 처음 건너간 곳은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수익률 경쟁에 애가 타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싱가포르의 Lion Capital과 합작으로 Lion Fairfield를 설립하여, 한국의 대한생명, 대만의 Cathy 생명, 일본의 스미모토 생명 등 주로 보험회사와 연기금을 통해 자금을 끌어 모았다. 2005년 초에는, 7,000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 아부다비투자청마저 센트리 펀드를 통해 4억 달러를 투자하기도 하였다.

세계적 금융사기의 붕괴와 교훈

매도프와 그에게 자금을 공급한 금융기관들의 명성과 능력에 견주어 볼 때,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20여 년간 지속된 그의 사기행각은 최소 10여 년은 더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기행각이 들통 나게 된 계기는 투자자들이 갑자기 환매, 즉 현금을 요구하면서 부터다. 자신의 원래 사업이었던 주식 중개기업을 물려받은 아들조차 속일 정도로 완벽한 사기행각이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공황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500억 달러를 사기 친 매도프 투자회사(헤지펀드)에는 소규모의 인력과 컴퓨터가 전부였다고 한다.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전달만 하면 되었기에 굳이 많은 인원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최소비용의 최대효과라는 경제적 극대화 이론이, 최소비용의 최대사기라는 사기 극대화 이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펀드 환매 요구에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매도프는 Kallisto라는 새로운 펀드를 설립하여 자금을 모으고자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고, 아들들에게 “기본적으로, 거대한 폰지 사기”라고 털어 놓고서야 체포되고 말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 증권거래소(SEC)가 그의 폰지 사기에 대한 제보를 9년 동안 묵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전직 투자회사 직원이었던 마르코폴로스가 지난 1999년부터 9년 동안 SEC측에 제보를 했지만, SEC는 이를 묵살해 왔다. SEC가 지난 2006년 자체 조사를 진행하여 일부 법률 위반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지만, 폰지 사기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벌이지 않고 개인적인 보복 행위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매도프가 주가의 등락과 관계없이 매년 12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올리자, 투자회사 사장으로부터 “왜 당신은 매도프처럼 못 하느냐”는 질책을 받은 후 동료와 함께 그의 투자를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금융공학자와 함께 동일한 자료를 넣어 검증해 보았지만 그와 같은 수익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지난 9년 동안 메일을 통해 제보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월가가 썩을대로 썩은 것이다.

우리는 이번 매도프 사기행각과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번 사건은 앞서 말했듯이 서브프라임 사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즉 고수익을 미끼로 끊임없이 신규 투자자들을 모집했다는 점이다. 단지 전자는 ‘사기’를 유지하기 위함이었고, 후자는 ‘버블’을 지탱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차이만 있을 뿐이다. 부동산, 자산 버블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MB 정권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둘째, 금융규제와 감독, 그리고 투자자 보호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또한, 투자은행, 구조화 투자회사, 헤지펀드 등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금융회사들이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농락했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셋째, 금융 이윤의 사유화, 금융 손실의 사회화를 넘어, 이제는 금융사기가 세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기의 마수는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미쳤으며, 고수익을 좇은 부유한 개인투자자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도 사기를 당할 정도로 수법이 진화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화가 세계 인민의 정보와 교류, 소득의 창출에 기여하기보다는, 버블과 사기, 손실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면 이 또한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것이다.

넷째, “채권처럼 안정적이지만, 주식처럼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간접투자란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는 점도 철저히 깨닫고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강남 부유층을 상대로 한 ‘다복회’ 사건,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3만 여명의 서민들을 농락한 국내 최대 다단계 사기사건 등 수많은 금융사기 행각이 드러나고 있다.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고 환매 요구가 늘어날수록 이러한 사기 행각들의 베일은 갈수록 노출될 것이다.

초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로 투자자들을 유혹한 후, 초기 투자자들 속에서 퍼진 ‘입소문’으로 사업이 문어발처럼 확대되고, 더 많은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해 목표수익률을 높인다던지 재투자를 요구하는 방식 등은 모든 다단계 사기에 공통된 수법이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대박 혹은 재테크 신화의 일그러진 단면을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3억 원 아파트가 불과 몇 년 만에 10억 원이 되고, 작년 두 배가 넘던 중국펀드의 수익률 등은 우리 사회에 재테크 신화를 만들어 놓았다. 가계의 고용과 소득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준거집단 혹은 여론주도층이 재테크의 허상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뒤떨어질세라 뒤늦게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이 자산디플레 상황에서 현재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뉴타운을 대가로 민주주의를 버린 결과, 거대여당의 횡포와 전근대적 통치 방식으로 사회는 짓눌리고,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후퇴하고 경제는 곤두박칠치고 있다.

재테크의 신화가 기업에까지 확대된 것이 바로 중소기업을 농락한 키코 사건이다. 펀드 판매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린 은행들이 외국에서 키코 상품을 수입하여 수수료를 챙긴 대가로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울리고 있다. 부동산과 파생상품이 노동력과 생산설비에 투자한 것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면 생산적 자본조차 투자할 유인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신용을 매개로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여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데 기여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자본이 버블을 매개로 생산자본이나 인적자본보다 고수익을 올린다면 모든 경제 활동과 자원은 거기에 집중되고 기업의 투자나 가계의 소비, 자기계발 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재테크도 생산적 투자나 노동자의 소득 창출에 기초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가계의 소득 증가율이 주택가격 상승률보다 낮은 부동산 버블, 생산적 기업의 수익성 보다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이는 주식버블 등은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

앞과 뒤가 바뀌고 배보다 배꼽이 큰 경제, 그것이 미국경제를 몰락으로 몰고 간 주범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마저 4분기 영업적자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주식에 투자하면 부자가 된다는 무식하고 천박한 대통령이 있는 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1996년 GDP의 50퍼센트에 달하는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으로 정권이 붕괴되고 급기야 내전으로 치달아 2천 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알바니아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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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0일 저녁에 있은 <새사연 월례강좌> 1강 영상입니다.

1시간 분량의 강의로, 금융의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한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파생상품으로 인해 미국 부동산 부실이 전 세계로 확산돼가는 경로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 한권 읽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자부합니다.
강사는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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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해법, 달러 무제한 공급이라는 초강수까지 등장


미국을 필두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가는 금융위기를 수습하고자, 선진 각국들이 각자 자국에 필요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에서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직접 기업어음(CP)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는 부실은행 국유화 방침을 내놓는가 하면 독일을 중심으로 국가가 예금자 예금보호를 전액 보장한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부도위기에 몰린 아이슬란드는 러시아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조용하기만 했던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나서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나 시점이 서로 어긋나면서 이들 대책의 효과는 반감되었고, 이미 금융위기는 개별 국가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금융위기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연방정부의 통제를 넘어서, 개방된 금융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급격히 전이되었고, 이제는 문자 그대로 지구적 범위의 해법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왔다.

10월 8일, 오랜만에 주요 선진 7개국(G7)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인하하는 ‘공조’를 취했지만 그 효과 역시 하루를 가지 못했다. 그러자 10월 10일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담, 11일 우리나라와 BRICs 등을 포함한 G20 재무장관 회담, 12일 유로존 15개국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고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책을 논의했다.

부실 자산 인수를 넘어 금융회사에 직접 자금투입을 하는 방안, 은행 간 자금거래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방안 등의 강력한 국가 개입 대책이 쏟아져 나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가 사실상 국가자본주의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더니 13일 미국, 일본, 유럽, 영국, 스위스 등 5개 중앙은행이 “상업은행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달러 무제한 공급 선언을 하기까지 이른다. 심장이 멎어버린 상태를 한시도 지연시킬 수 없어 일시적인 전기충격 요법을 사용해야 할 국면에 이른 것이다.

단지 교통경찰의 태만과 운전과실 때문에 금융대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기충격 요법으로 이미 실물경제까지 전이된 세계 경제위기가 얼마나 회복될지는 여전히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자본시장 통합법과 함께 금융규제완화 논쟁의 초점이었던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미루고 미룬 끝에 13일 전격 발표하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되어 전 세계 금융공황국면까지 치달은 최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 바 있다.

“교통사고(금융위기)의 원인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운전과실(경영자의 모럴헤저드)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감독시스템), 또는 과속을 막지 못한 교통경찰(감독기관)의 책임일 수도 있다” (<아시아투데이> 10월 10일)

금융정책 수장다운 대단히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광우 위원장 발언의 취지는 ‘금융자본주의 그 자체나 규제 시스템이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소홀이나 금융회사의 과욕이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나라는 향후에 ‘금융산업 혁신을 그대로 강행하고 규제완화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금융감독을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접촉사고도 아니고, 전 세계가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해야 하는 ‘전 국가적 교통마비 사고’라고 표현해야 할 지금의 금융위기가 과연 교통경찰의 근무태만과 운전자의 과실 때문에 발생했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미국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30년 동안 부실 위험성을 누적시켜 왔는지를 추적해 보면서 전광우 위원장 발언의 타당성을 가려보자.

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고.

미국 금융 고속도로에는 신호등도, 보안관도 없었다

1980년 이후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금융시스템 엔진에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대량 살상무기’ 수준의 위험성이 있는 파생상품, ‘시한폭탄 결함’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투자자와 기업의 자금 중개 수수료를 넘어서 자기자본의 몇 십 배의 차입(leverage)까지 동원해서라도 고수익을 좇으려는 ‘급가속 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금융시스템에 내재한 근본 결함을 고치려 하거나 문제발생을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어떤 사전적인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반대로 “파생상품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사람들에게 넘길 수 있는 놀라운 수단”,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003년)이라며 시장이 위험성을 자율적으로 정화시킬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미국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면서까지 고수익을 추구하도록 금융에 가해졌던 각종 규제를 오히려 풀어버렸고, 금융회사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규제도 피해나갔다. 1929년 대공황의 교훈을 근간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했던 은행법(Glass-Steagall Act)은 1999년 은행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으로 대체되면서, 금융지주회사라는 이름아래 사실상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이 사라졌다.

이들 금융지주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연방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전문 자회사와 모기지 전문회사를 세워, 이제는 악명 높아진 서브프라임 대출을 남발했다. 특히 투자은행들은 상업은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부터 과다 차입 등에 대해 전혀 규제를 받지 않았고, 미국 증권선물거래소(SEC)로부터도 그 어떤 강제적이고 명시적인 규정도 받지 않아,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느슨하기 그지없는 규제 틀에서 마음껏 대규모 차입과 자기자본 투자를 강행했다.

더욱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파생상품을 주업으로 하는 헤지펀드와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를 허용하여 이들이 금융고속도로를 폭주하도록 했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규제마저 없었고 최소한의 정보공개의무조차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상품에 투자를 하든, 얼마나 과도한 차입을 동원하든 규제는 없었다.

말하자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가 과속주행을 하고 신호위반을 일삼고 중앙선을 침범하는 극히 ‘위험한 주행’을 해도 그들만 다치고 만다면 보안관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가드레일만 들이박고 끝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인명 살상을 했으며 전체 교통을 마비시키고야 말았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장이 자율적으로 통제하리라 믿었던 파생상품, 그리고 점점 더 풀려나가는 규제 속에서 위험도 높은 파생상품과 모기지 대출을 자유롭게 일삼았던 금융기관들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 금융 감독의 최종 보안관이라고 할 재무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월가 출신들이었고 시장주의 추종자들이다. 자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전력을 가진데다가, 위반을 저지른 운전자와 친분이 두터운 이들 보안관에게 감독을 더 잘하라고 한들 감독이 제대로 되겠는가.

신자유주의 금융 엔진의 과열과 폭발

그뿐이 아니다. 미국 금융상품의 불량 여부를 판단해왔던 기관이 바로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Fitch)인 3대 신용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은 공적기관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었다. 이들의 수익원은 바로 불량여부를 판단해야할 그 금융상품을 제조, 유통하는 투자은행들이다. 애당초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책임자들도 문제를 비켜가지 않는다. 이제 94년 역사의 메릴린치를 파산시켰다는 오명을 안게 된 전 CEO 스탠리 오네일의 경우, 부채담보부증권(CDO) 자산의 위험성을 경고한 임원들을 해고하면서까지 오로지 고수익을 추구했다.

도대체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미국 서민 가구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 문제가, 어떻게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세계 경제를 흔들면서 첨단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규제 풀린 월가의 전통적 금융회사들과 규제 없는 신종 금융조직들이 주택 담보대출 채권을 모기지담보부증권(MBS)나 부채담보부증권(CDO)와 같은 파생상품과 접목시켜, 고위험을 안은 채 고수익을 무제한 추구하면서 위험을 내부에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적되는 위험성은 ‘시장이 스스로 치유’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월가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가의 신념은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고 자유시장 금융시스템이라는 자동차 엔진은 과열로 폭발되었다. 이번 금융위기가 시장주의의 파산임을 고백한 파이낸셜타임즈 마틴 울프는 결국 지난 3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시장 자본주의(global free-market capitalism)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주도의 금융 시스템(market-driven financial system)을 추구해왔다.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국 통화정책 책임 기관이자 시장자율의 선전가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제 월가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규제체계에도 결함이 있었으며 감독조차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월가의 금융가들과 펀드매니저들은 수익에 대한 극단적인 과욕을 멈추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규제’가 없다면 ‘구제’도 없어야 하지 않나

지금 섣불리 신자유주의 종언을 주장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이라는 엔진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규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할 필요가 있는 곳에 규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규제라는 것이 비용이 들지만 미리미리 규제했다면 이처럼 더 큰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것”(장하준 교수, <이코노믹리뷰> 10월 9일)이라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 자율규제의 신화를 철석같이 신봉했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조차도 “지금 세계의 금융시스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정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금융산업이 자율규제를 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지금의 위기는 정부가 손을 놓고 아무 규제도 없이 방임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빚은 위기가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가 빚은 위기이다. ‘규제 자본주의(regulated capitalism)’만이 해법”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규제를 받지 않거나 규제를 피해 그동안 승승장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대신에, 저소득층에게 그만큼의 부채를 안겨주고 이들을 거리로 내몬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규제를 받지 않았던 만큼 구제도 스스로 하는 것이 사실 논리적으로 맞다.

브레이크 없는 미국 금융자본주의 앞길에 미국 정부가 알아서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신호등마저 없애주고 보안관도 철수시킨 상황에서 교통대란과 대규모 인명 살상이 났는데, 오히려 인명 피해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 미국 시민들에게 돈을 걷어서 금융회사라는 자동차 수리비에 쓰겠다니 누가 찬성을 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거액의 세금을 쏟아 부어 상황을 수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최소한 수습 후 교통사고 책임 추궁과 재발방지를 위한 규제책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11월 4일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당분간 금융혼란을 쉽게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지만, 당분간 계속될 금융회사 파산이 한계점에 이르고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 국면으로 돌입하면 각종 의회 청문회를 통해 제도적인 수습방안들이 모색될 것이다. 사실 우리 정부가 굳이 미국 모델을 따라 하려거든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뚫어준 고속도로, 무슨 차로 달리지 고민하는 행복한 삼성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월 13일 미국발 금융위기로 몇 차례 미루어 왔던 금산분리 완화(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방안을, 전 세계가 금융파국을 막고자 비상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용감하게(?) 발표했다.

예고되었던 대로 금산분리 완화는 1)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을 산업자본이 종전 4퍼센트에서 10퍼센트까지 소유하도록 확대하고, 2) 종전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까지 산업자본이 출자한 사모펀드(PEF)도 은행소유를 가능하게 하며, 3) 해외에서 산업자본을 보유한 외국은행에게도 국내은행의 인수를 허용하고, 4)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는 증권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산하에 둘 수 있게 하며, 5) 보험지주회사도 자회사로 제조업체를 지배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보너스로 재벌들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돕기 위해 각종 제한 규정마저 최장 7년을 유예하기로 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6) 일반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거들고 있다.

월가의 금융인들보다 더욱 확고한 규제완화, 시장 자율규제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삼성생명이나 삼성증권 등 금융회사를 안고 있는 삼성그룹은 이제 명동 한복판에 정부가 만들어 놓은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셈이다. 그것도 어떤 차를 타고 갈지 골라야 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공한 제조업 금융 자회사 허용을 선택하여 그룹사를 재편할지, 금융위원회가 제공한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로 갈지, 아니면 삼성생명을 주축으로 하는 보험지주회사를 세울지 고민하면서 삼성이 가장 편한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초보 운전자가,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엔진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몰면?

결국 우리 정부는 여전히 끝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결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된다. 규제 체계 역시 금융산업의 고속성장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신호등 정도로 여겨서 가급적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 정부가 얻은 교훈은 경찰관을 잘 세워서 감독 잘하고 운전자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것 정도인 듯하다.

심지어 미국 금융위기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라는 표식을 내기 위해서, “금산분리의 모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최근 금융위기에 따른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주식 보유규제를 종전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완화”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금융위원회 10월 13일 보도자료) 놀라운 해석이다. 지금 미국은 은행 부실로 인해 연방정부가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 어디서라도 자금을 동원하여 은행에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극단적인 처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마치 자동차 사고로 망가진 차를 어쩔 수 없이 도색하고 있는 미국을 흉내 낸다면서, 우리는 방금 나온 신차인데도 자랑스럽게 새로 도색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할까.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이미 엔진 구조에 결함이 있다고 검증된 자동차를 수입하면서도, 인파로 뒤덮여 있는 명동 대로에 고속도로를 내려고 하고 있다. 신호등도 모두 없애고 오직 교통경찰만 세워놓겠다는 것이다. 신호등도 없이 초고속으로 질주할 미국산 금융시스템이 앞으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성장 동력임을 믿어달라고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금융시스템이 폭발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극히 조심해서 엔진을 과열시키지 않고 기술적으로 운전을 하면 엔진이 폭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굳세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금융시스템 전문가들로 구성된 월가도 엔진 과열과 폭발을 막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이제 막 면허시험에 통과한 한국에게 이런 자동차를 주고 조심해서 운전하면 사고가 안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아니면 아예 문제가 있는 엔진 결함을 근본적으로 고친 후에 운전을 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은행들이 그나마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받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이) 월가의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일본의 경우도 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후 금융기법을 체득하지 않고 후퇴적인 경영을 하면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규제 때문에 ‘촌놈’ 행세를 한 것이 맞았다” (<이데일리> 10월 9일)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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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요즘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는 미국발 외신은 한마디로 상상초월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재정 부족으로 학교, 경찰, 소방서 공무원들에게 두 주째 급여를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영화배우로 알려진 주지사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매국 재무부에 70억 달러 자금지원을 긴급히 요청했다. 캘리포니아주를 한 국가로 보면 그 규모는 상위 8번째에 이른다. 한마디로 세계 8위의 국가가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셈이다.

도대체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채권을 발행하려고 해도 이를 소화해야 하는 자본시장이 빙하기처럼 얼어붙어 있다.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엄청난 금리를 보장해야 한다. 기업들의 자금줄이 막혀버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황’의 문턱을 넘는 것과 다름없다. 금융회사 구제만으로도 정신이 없던 미국 정부가 드디어 일반기업 구제에까지 나섰다.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금융회사의 파산만 중요하고 국민의 파산은 괜찮은가

그러나 경제주체들 사이의 철저한 불신을 넘어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산된 탓에 신용경색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공조해서 전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단순한 유동성 부족을 넘어 거래와 교환이 막혀버린 난국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백약이 무효하고 오직 시간만이 약이라는 소리가 나올법하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미국 생활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실상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미국 국민들에 대한 대책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부실 정도와 생존 가능성 정도를 평가하는 자료들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실업과 주택 차압에 내몰린 미국 국민들의 처지와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지난 9월 20일, 최초로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이 발의되자 미국 국민들은 금융위기의 주범인 금융회사만 구제해주고 정작 피해를 입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구제책이 없다면서 법안 통과를 격렬히 반대했다. 지역구 의원들에게 이메일과 전화로 반대투표를 요구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피해자의 돈을 뺏어 가해자를 구제해주는 셈이니, “월가에서 금융위기를 자초했으니 월가 돈을 모아 구제금융에 쓰라”라는 불평이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1200만 가구는 집 팔아도 대출 못 갚아

그 결과 겨우 예금자 보호 한도를 확대하고 주택소유자들에게 1,490억 달러의 세액 공제를 해주는 조항을 법안에 끼워 넣었다. 한편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금융회사는 경영진 스톡옵션과 연봉을 제한하고 부실채권 매입 대신 해당 금융회사 주식 매입권을 확보한다는 ‘상당히 약한’ 제재 조항도 삽입했다. 차압 위기에 몰린 주택소유자들의 주택을 정부가 사들이는 등의 직접적인 조치는 아직 없다.

2006년까지 전 세계 금융자본이 모기지업체를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방출한 대출 금액은 약 11조 달러에 이른다. 특히 모기지업체들은 이자 상환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가격의 거의 100퍼센트에 해당하는 대출을 무차별하게 시행한다. 심지어 금융 최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후진국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약식 서류(Low doc) 대출이나 무서류(no doc) 대출이 횡행했다. 더 나아가 위장대출(liar doc)에서 이른바 소득도 수입도 자산도 없는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닌자대출(Ninja; no income, no job, no asset)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무분별한 대출이 거침없이 풀려나간 결과,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13조 8,400억 달러였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100퍼센트에 달하며, 미국 국민 가처분소득의 136퍼센트에 달하는 규모다.

그 결과 집을 소유하고 있는 7,500만 가구 중에서 무려 5,000만 가구가 모기지 대출로 집을 샀다. 즉, 5,000만 가구가 모기지 부실과 주택가격 폭락에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은 가구가 750만 가구, 그리고 현재 한달 이상 이자가 연체되었거나 차압된 가구가 자그마치 500만 가구를 넘어섰다.

집도 잃고 직장도 잃고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미 1,200만 주택소유자는 당장 주택을 팔아도 모기지 대출금을 상환할 금액이 나오지 않는다. 실상 구매자가 없어서 집이 팔리지도 않는다. 지난 2년 간 이 비율은 두 배씩 늘어났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주택가격이 최소 10~20퍼센트 이상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1,200만을 훨씬 넘는 미국의 가정이 집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이미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연말부터 미국경제는 침체상태로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일자리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실물경기 침체가 발생한 지 1년 만에 실업자가 무려 216만 명이나 늘어나 현재 공식적인 실업자 신세에 빠진 사람만 940만 명이나 되고 한계실업자와 임시취업자를 포함하는 실질실업률은 이미 10퍼센트를 넘어선 상태다.

그러다 보니 2007년 3월까지만 해도 4.4퍼센트였던 실업률이 줄곧 상승해서 9월 기준 6.1퍼센트에 이르렀다. 여기에 소비자 물가까지 상승하기 시작했으니 미국 국민들과 노동자들은 지난 1년 동안 실질소득 정체, 실업률 증가, 물가 상승의 부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금융이 비대해지자 투기-버블-소비의 부실 경제로 변질

차압 당한 집에서 쫓겨날 생각을 하며 한숨짓는 미국 서민들,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르는 월가의 금융회사 직원들이 매일 흉흉한 소문에 귀 기울이며 일손을 놓고 있는 광경들, 이미 일자리를 잃고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 이것이 우리가 생각했던 '기회의 땅' 미국의 현실이다.

사실 내면적으로 보면 미국사회의 양극화와 서민들의 생활은 전성기였던 90년대에도 그리 화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적 가수요 때문에 마치 소비여력이 있고 자산이 많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인해 금융비중이 점점 커졌고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에 집중한다. 이러다보니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방식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예금-대출-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투기-버블-소비의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미국 전체 기업의 수익 가운데 10퍼센트에 불과하던 금융부문의 수익은 2000년 기준 40퍼센트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금융회사의 시가 총액도 6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러나 고용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코노미스트)

30년 간 하위 20% 소득 1% 증가, 상위 1% 소득 111% 증가

이 결과 미국에서도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1퍼센트 성장한 데 반해 상위 1퍼센트의 실질소득은 111퍼센트나 늘어났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한다. 1970년에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이 2000년에 접어들면서 41퍼센트로 하락한 것이다. 잔인한 것은 이렇게 양극화로 인해 소득이 전혀 늘지 않아 고통스러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약탈적인 대출행위를 자행하면서 월가의 금융가가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대다수 미국 시민들에게 대출 부담이 씌워질 동안 금융회사들은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차지할 만큼 성장을 구가했고, 월가의 최고 펀드매니저들은 고급 주택에 요트를 사서 즐기면서 고급 호텔에서 여가를 즐겼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 상위 25명의 평균 보수는 5억 7,000만 달러였다.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5,000만 원 이하의 연봉을 받는 사이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훨씬 넘는 6,000억 원의 연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이들 초고액 연봉자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계층이 바로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아니었던가?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은, 부채를 통한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 거품이 꺼지면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는 것을 미국의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월가 출신의 경제 관료, 월가의 정부

카지노에도 나름대로 룰이 있고 자연의 정글에도 법칙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금융자본주의라는 정글은 자연의 정글을 초월하는 자본 특유의 과욕과 잔혹함을 보여주면서 미국 시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구제’는 이들 미국 시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월가의 대형은행들을 구제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는 너무 당연할 수 있다. 지금 미국 정부의 경제관련 요직은 대부분 월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월가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무너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 정작 미국 시민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재무장관 헨리 폴슨도 월가 1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출신이고, 앞으로 구제금융을 관리하기 위해 신설된 재무부 산하 금융안정국 책임자인 35살의 닐 캐쉬카리 역시 전 골드만삭스 이사가 아니던가. 이들과 구제금융 투입계획을 세우게 될 자산운영회사들도 온통 월가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는 시민의 정부가 아닌 월가의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과연 이번 금융 위기의 뇌관이라고 할 파생상품과 헤지펀드, 투자은행에 규제의 족쇄를 채울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정부 관리와 월가는 부실에 빠진 대형 금융회사들을 먼저 살려야 미국경제를 살릴 수 있다며 ‘대마불사’를 밀어붙일 것이 뻔하다.

국민을 위한 정부는 어디에 있나

이제 월가의 금융 부실은 차고 넘쳐서 실물경제로 흘러들고 있다. 그 속에서 미국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 미국 국민들만 볼모로 잡았으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지만,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가 미국발 태풍에 휩쓸려가기 시작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국수적 애국주의로 똘똘 뭉쳤던 미국인들, 그래서 결국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는 데 찬동했던 미국인들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월가와 월가에 유착된 미국 정부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긴 우리도 월가에 희생되고 있는 미국 시민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환율 폭등과 주가 폭락, 금리 폭등으로 한국의 개미투자자들도 올해 이미 주식 60조 이상, 펀드 40조 이상을 날렸다. 자영업과 중소기업은 파산의 끝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 역시 미국 정부와 다름없이 대기업과 강남 부유층 감세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닌가. 무너져가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에 정부가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살려야 하건만 시중은행들에게 자율적으로 대출을 완화하라는 독촉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가 연일 치솟는 환율로 채산성이 맞지 않아 수입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른다고 한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금융 위기와 환율 폭등이 저지해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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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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