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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6 '찌라시 저격수'들의 박원순 공격 성공할까
  2. 2011.08.17 21세기 민족언론의 길
2011.10.25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몇 해 전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손석춘 선생에게서 들은 이야기. 손 선생이 연구소를 구상할 무렵 박원순 선생에게 함께하면 어떨지 의논했던 모양이다. 구상을 들어본 박원순 선생이 그러더란다. ‘손 선생이 하시려는 건 민중 기반의 운동이고 제가 하는 건 시민 기반의 운동이니 따로 하는 게 효율적이지 싶습니다.’ 민중 기반의 운동에 속한 나는 박원순 선생과 견해가 종종 달랐고 두어 번 직접적인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박 선생이 매우 양식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급좌파’를 자처함으로써 숱한 ‘윤똑똑이 좌파’들을 민망하게 한 김규항이 올해 초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의 들머리다. 사석에서 나눈 말이 활자화 된 신문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이들에게 사실을 확인해주고 싶어서다. 여기서 딱히 내 성향까지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 <100분토론>에서 말했듯이 나는 ‘친북좌파’가 아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바로 나 같은 사람과도 함께 일하는 데 ‘부담’을 느낄 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의 황당한 극우논리

지금 나는 박원순의 그 선택에 전혀 유감이 없다. 그 뒤 희망제작소와 새사연은 각각 고유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았다. 의심 많은 이들을 위해 밝혀두거니와 새사연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저명 목사’에 이어 언론인들까지 곰비임비 박원순을 ‘친북좌파’로 저격하는데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우리는 수도 서울을 이렇게 지켰다” 제하에 쓴 <조선일보> 선임기자의 칼럼이다. 그는 한국전쟁의 참극을 길게 늘어놓은 뒤 끝자락에서 자신이 해병대 전 사령관에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자유가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넘어갈지도 모를 서울을 왜 그렇게…”라는 질문을 던졌고 “노병은 침묵했다”고 썼다. 어떤가. 김대중과 류근일을 뺨치는 극우 논리다.

저들의 황당함은 ‘친북 좌파’타령에 그치지 않는다. ‘검증’ 명분 아래 한국 사회가 낳은 탁월한 시민운동가를 “병역 기피자”와 “학력 위조범” 더 나아가 “대기업을 겁박한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 심지어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며 강남에 사는 위선자로, 마음고생 컸을 박 후보의 아내는 부당한 이익을 추구해 온 사업가로 마구 써댔다. 그들의 주장은 박 후보의 재산이 ‘마이너스’로 나올 때까지, 아니 밝혀진 다음에도 여기저기 퍼져가 적잖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했다.

정치에 입문한지 7년 만에 18억 재산을 40억원으로 불렸으면서도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해왔노라고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언죽번죽 자부하는 국회의원 나경원과 대기업으로부터 수백 억 원의 기부금을 받아 서민들을 도우면서 자신은 월세로 빚진 채 살고 있는 변호사 박원순을 검증하는 저들의 잣대는 굽을 대로 굽어있다.

물론, 기자도 칼럼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주관을 드러낼 수 있다. 더구나 나경원은 ‘사학 재단’의 딸로서 재단만 비호한 게 아니라, 조선·동아·중앙일보에 결국 종합편성 채널을 하나씩 ‘선물’해 준 미디어법 ‘날치기’에도 오지랖 넓게 앞장섰다. 세 신문사로서는 ‘확실한 보답’의 신호를 정치권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날 수 있다.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그나마 언론

다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최소한의 금도는 지켜야 옳다. 그런데 조선·동아·중앙일보 기사를 톺아보면 ‘찌라시’라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서울대 사회계열과 법학과 사이에 무슨 ‘심연’이라도 있는 듯이 보도하는 행태는, 시위로 제적된 당사자가 얼마든지 법대로 복학할 수 있었지만 단국대 졸업에 만족할 만큼 학벌에 개의치 않은 보기 드문 미덕을 원천적으로 가리고 있다.

가만히 따져볼 일이다. 정치 활동 중에 부동산을 사고판 것만으로도 13억의 차익을 챙긴 후보에 견주어 박원순의 경제생활에 도덕성을 들이대는 ‘저격수’는 얼마나 해괴한가. 박원순이 대기업 모금에 나선 걸 비판하려면 마땅히 ‘아름다운 재단’의 설립 자체를 시비 걸어야 옳다.

만일 극좌가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이해할 수 있어도 재벌과 유착한 정권의 모리배들이 들먹이는 풍경은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다. 13살 소년에게 병역 기피 의혹을 날마다 내뱉는 ‘병역 기피정당’의 얼굴은 또 얼마나 느끼한가.

세 신문에 묻고 싶다. 참으로 박원순이 ‘병역기피자’라고 생각하는가? 학력을 부풀릴 의도로 위조했다고 판단하는가? 박원순은 대기업과 유착했는가? 아니라면 최소한 언론으로서 품격을 지켜가길 권한다. 대체 언제까지 ‘찌라시’로 대한민국을 망칠 셈인가?

말살에 쇠살임에도 왜 저들은 여론몰이에 몰두할까. 이른바 ‘보수 결집’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와 투표 불참이 목적이다. 유권자들의 슬기가 참 절실한 오늘이다.

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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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8.1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민족언론. 어느 새 그 말은 대다수 사람에게 촌스럽게 다가온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낡은 시대의 상투어쯤으로 치부된다. ‘21세기 민족언론의 길’이라는 칼럼 제목을 보며 시들방귀로 넘기는 독자들도 적잖을 성싶다.

하지만 나는 오늘 기꺼이 촌스럽고자 한다. 낡은 시대의 상투어에 시퍼렇게 담긴 뜻을 나누고 싶다. 굳이 민족언론을 성찰하는 까닭은 다시 8월15일이 다가와서만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겨레의 운명이 암담하다 못해 깜깜해서다.

찬찬히 짚어보라. 남쪽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화자찬이 넘쳐나지만 바로 그들이 이상으로 좇는 나라, 미국의 유력 일간지에서 ‘정신병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곧 이뤄질 듯했던 ‘북미 국교 정상화’가 마냥 늦어지면서 연평도까지 포격하는 군사적 모험주의를 감행하고 있다. 그 남과 그 북 사이에 소통은 꽉 막혀있다.

EBS강사·민족21에 들이댄 ‘색깔 공세’

명토박아둔다. 남과 북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오늘을 살고 있는 민족 구성원만이 아니라 겨레의 내일을 위해서도 정신병동과 군사적 모험주의는 반드시 넘어서야 옳다. 바로 그래서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언론의 시대적 요구는 크다.

하지만 어떤가. 들머리에서 강조했듯이 민족언론, 아니 민족이란 말조차 홀대받고 있다. 더 생게망게한 일은 자칭 ‘민족언론’을 부르대던 신문들이다. 그들은 자기 논리에 갇혀 여전히 남북 갈등을 부추기는 데 눈이 빨갛다.

교육방송(EBS)에서 수능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는 교사에게 조선일보가 저지른 ‘색깔 공세’를 보라. “관점 있는 역사 수업,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가슴 뭉클한 멘트로 학생들을 열정의 도가니에 빠뜨린 열정쌤”으로 조선일보 스스로 추어올린 교사를 갑자기 ‘친북 반미세력’으로 몰아가는 작태는 단순히 ‘제 버릇 개 못 준다’ 차원에 그칠 일이 아니다. 교사가 강의한 내용을 앞뒤 문맥을 자르고 자극적으로 기사화 한 뒤 그것이 ‘사실 보도’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과연 저들이 민족언론 이전에 언론인가를 묻게 한다.

무엇보다 압권은 월간지 민족21의 전·현직 편집국장에게 ‘간첩의 색깔’을 짙게 덧칠하는 보도다. “민족21, 천안함 폭침 주도한 북 정찰총국의 지령 받아”라는 큼직한 통단 제목 아래 ‘지령체계’를 갖춘 도표와 함께 편집한 자극적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민족21 전·현직 편집국장이 일본에서 북의 정찰총국 공작원을 ‘접선’해 지령을 받고 남한에서 수집한 정보를 보고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들을 상당수 확보했다고 썼다. 기사는 또한 “압수물 분석 등 증거확보 작업을 거쳐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난 민족21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어떤가. 올해로 창간 10돌을 맞은 민족21은 남북 언론교류의 새 지평을 연 언론사적 의미를 지닌 월간지다. 만일 민족21이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제작한 언론이라면 남과 북의 정보당국자들은 모두 줄줄이 사표를 써야 한다. 남은 10년 동안 민족21의 ‘암약’을 방치해왔다는 점에서, 북은 민족21을 창구로 한 ‘공작’에 무능했다는 점에서 모두 그 자리를 물러나야 옳지 않겠는가.

국가정보원이 민족21을 지난해부터 내사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그 시점에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웠던 발행인 명진 스님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정치적 탄압의 의혹을 짙게 해준다.

국가정보원의 황당한 수사에 감시를 할 섟에 그들이 흘린 기사에 용춤 추는 조선일보의 모습은 ‘국정원 기관지’라는 명진 스님의 비판이 되레 점잖을 정도다. 교육방송에서 근현대사를 강의한 수능 교사를 ‘친북반미’로 몰아가는 행태와 맞물려 있어 더 그렇다.

남과 북의 소통, 언론인이 가야 할 길은

‘민족의 웅비’를 들먹여오던 언론이 정작 21세기 두 번째 10년대를 맞아서도 국정원과 으밀아밀 정보를 나누며 다른 언론에 ‘간첩’의 색깔을 물들이는 행태는 결코 일회적 사안이 아니다. 그 신문만 보는 영남 독자들에게 민족21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풍부한 자료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떻게 비춰지겠는가.

바로 그렇기에 민족21은 한국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남아야 할 월간지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혐의로 이를 말살하려는 권력과 그것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받아쓰는 신문을 보면 새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정권이 재생산 가능성이 높고 ‘국정원 기관지’로 비판받은 신문은 종합편성 채널까지 거머쥐고 있기에 더 그렇다.

조선일보의 모든 기자들이 저 천박한 야만에 동의하진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더구나 이 땅에는 조선일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진실을 열어가려는 젊은 언론인들이 언론현장 곳곳에서 커나가고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촌스러운 나는 ‘들판’에서 다시 설렘으로 쓴다. 남과 북을 소통하고 그 소통을 남과 북의 겨레들과 나누는 데 앞장서는 길, 21세기 남과 북의 언론인들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을 정성들여 쓴다. 민족언론.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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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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