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4.02 11:50


 

① 중소기업인

② 자영업인

③ 대학생

④ 농민

⑤ 노동자

⑥ 한국경제의 구조변화


18대 총선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의 화두는 역시 ‘민생’이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올해 들어 우리 경제에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한 미국발 금융 위기와 원자재․곡물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안정론과 견제론의 대립이나 경부대운하를 둘러싼 논란 등 각 정당은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적 이슈들을 내세우지만 국민의 관심은 여전히 ‘경제’에 집중돼있다.


온화한 미소로 재래시장을 돌며 서민들의 거친 손을 감싸 쥐는 각 후보들이 당선 뒤에도 국민의 고단한 삶을 보살피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이 선거운동 기간 동안 만이라도 국민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주길 기대하며 이 글을 쓴다.

이 글의 내용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중소기업인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파른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극적인 추락을 경험했으면서도 관심 밖에 몰려있는 집단의 하나가 바로 중소기업인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물론 이들의 처지가 가장 열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목표를 향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진행된 일련의 ‘개혁’은 우리 사회의 경제 구조 뿐 아니라 우리들의 삶 전체를 근본부터 바꿔 놓았다. 과연 그 10년 사이 우리 이웃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고용의 89% 책임지는 중소기업들, 이익률은 대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쳐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회사법인(기업) 27만 개 가운데 300명 이상이 고용된 대기업은 230여 개로 1%에도 못 미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전체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이 99%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 종사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는 전체 고용의 88.8%(1990년대 70% 수준)에 해당하는 규모다. 생산액 비중으로도 중소기업은 이미 대기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렇듯 기업의 수와 고용 비중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역시 2006년 기준으로 3%에 불과해 최대 7%대인 대기업의 절반에도 채 못 미친다.


주목할 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 1997년 이후라는 사실이다. 외국 금융주주자본을 필두로 재벌, 민영화된 공기업 그리고 은행들이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구조로 변하는 사이(마지막 편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되는 수익에 허덕이면서도 대량 구조조정으로 방출된 고용을 떠안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2000년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71.3%였으나 2006년에는 대기업의 62.5%수준으로 떨어졌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양극화가 자연스럽게 중소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의 양극화로 이어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환율이나 일시적인 경기변동 탓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또한 이러한 격차는 비단 영업이익률 뿐 아니라 설비투자, 임금, 생산성, 혁신기반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은행의 외면 속에서 자금줄은 말라가고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투자자금, 납품단가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이미 1,000조 원을 돌파했지만 이는 코스닥에 등록된 극소수의 중소기업과 관련된 이야기일 뿐이다.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주식시장이 아닌, 은행이나 사채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6년 기준 중소기업의 외부자금 차입 가운데 은행자금이 72%를 차지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는 무척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설사 대출을 받는다 해도 무리한 담보와 높은 금리가 족쇄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2007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자금 사정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가량이 자금 사정이 ‘나쁘다’고 답했고 ‘좋다’는 응답은 13%에 그쳤다. 현재 좋지 않은 자금 사정이 언제쯤 호전될 것으로 보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42%가 ‘기약 없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중소기업인들은 금융기관에 대한 가장 큰 불만으로 ‘과도한 담보 요구’(44.7%)를 꼽았고 그 다음으로 ‘대출 한도 축소’(27.8%)와 ‘신용대출 기피’(23%) 등을 꼽았다.


또한 최근 중소기업들의 영업 이익률이 계속 감소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은행에서 빌려 쓴 돈에 대한 이자율인 차입금 평균 이자율은 2004년 5.9%에서 2005년 6%, 2006년 6.3%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부담이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시중 은행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중소기업 대출을 통해 얻은 이익”이라고 꼬집으며 “대기업에는 금리를 낮춰주지만 중소기업에겐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각종 수수료까지 부담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주식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좁고,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은 은행의 단기 수익성 위주 경영 때문에 과거보다 더 높은 장벽에 막혀 있으며, 사채시장의 고율 이자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이다.


대기업 횡포 속에서 말라가는 중소기업들


이번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얼마 전 중소기업 사장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구하며 벌인 시위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중소기업들을 얼마나 쥐어짜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주물업체에 이어 아스콘 업체들이 납품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납품을 할수록 오히려 손해만 더해가는 현실에서 이들이 택한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중소기업-대기업간 납품 거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극소수의 대기업에게 오랫동안 전속되어 거래를 해오고 있어 한두 개의 대기업을 상대로 다수의 중소기업이 서로 가격 경쟁을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연히 중소기업의 교섭력은 절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이 원하는 마케팅, 연구개발, 생산 등의 과정의 보완적 협력구조는 고사하고, 대기업이 전속 거래를 고집하는 한 중소기업 자체의 힘만으로 다른 판로를 개척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불공정한 납품단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납품단가는 평균적으로 인항되어왔다. 2001년의 납품단가를 100으로 했을 때 2003년의 납품단가는 평균 97로 나타났다. 단일부품이나 중간부품, 완제품을 막론하고 2년 사이에 납품단가가 2~3% 정도 인하된 것이다. 또한 2007년 중소기업의 생산원가는 한해 전과 비교해 평균 13.2% 증가했지만 반대로 납품가는 오히려 평균 2.0% 감소했다. 생산원가의 인상에 납품가의 인하가 더해져 중소기업은 이중의 어려움을 감수해온 셈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은 주주수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대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소기업들에게 갖은 비용부담을 떠넘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소기업인들은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이유에 대해 임금인상 전가(10.2%), 운자재 상승분 전가(17%), 환차손 전가(11.3%) 등의 이유를 꼽았다.


중소기업중앙회 서병문 부회장은 2007년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남기면서도 중소기업에게는 계속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넣고 있다. 주물업계 사정을 예로 들어보면, 지난 3개월 동안 원자재 가격이 30% 이상 올라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0년간 선철과 고철이 각각 115%와 130% 올랐지만 제품 가격은 26%만 인상되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수요 업체인 대기업에서는 4~7% 인하를 고집한다. 상생론이 등장한 뒤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 때 공문도 보내지 않고 직접 중소기업 경영자를 불러서 압박한다. 정부에게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려는 목적이다”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60%에 불과


앞서 밝힌 것처럼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을 계속 줄여왔고 이렇게 방출된 인력들은 중소기업으로 인입되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고용 증가율은 1993~2003년 연평균 8%를 유지했다.(1997, 1998 제외) 그 결과 1998년부터 7년간 중소기업의 고용은 310만 명이 늘어난 반면 대기업은 76만 명이 줄었다. 수익성과 기술 수준이 뒷받침되는 대기업이 오히려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에게 고용의 책임을 떠넘겨온 것이다.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중소기업의 고용 확대가 결코 매출 증가에 따른 투자 확대의 결과가 아니라, 영세 중소기업들이 새롭게 창업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한때 코스닥의 호황을 타고 IT분야의 창업이 활발하기도 했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 얘기다. 사업체 수를 기준으로 영세사업자 구성비가 증가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근무조건 역시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2000년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71.3%에 달했으나 격차가 점점 벌어져 2006년에는 6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양극화가 곧바로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양극화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영세한 중소기업이 늘어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가 확대되고 이것이 곧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확대시키는 한편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의 질을 떨어뜨려 혁신능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임금 격차 확대 -> 고급인력 유입 감소 -> 기술개발 능력 약화 -> 저생산성 -> 저수익성 -> 저임금 -> 저기술력 유입 -> 저기술’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등의 자구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중소 제조업체들의 해외 투자는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여 금액이나 투자 건수 기준으로도 대기업을 능가하는 규모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일시적으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중국 등 저임금 국가들의 비용이 상승하면 곧바로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중국으로 진출한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야반도주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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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상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 결여된 대표적인 집단이다. 특히 정치적 입장을 자신들의 계층이해에 입각해 표명해본 적이 없는 기이한 집단이다. 오히려 타인들, 특히 권력집단이 자신들에게 기울이는 관심조차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그런 소극성을 하나의 중요한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무엇이 흩어진 상인들을 뭉치게 했나


상인들의 역사적 형성과정이 자본의 발전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진행된 점과 개별적 노력에 의해 성패를 보장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낳은 상대적 독립성이 상인들의 사회적, 집단적 소극성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그렇게 해방 이후 상인들의 운명은 ‘홀로’, ‘알아서’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아무도 이 세력이 집단화되거나, 나아가 정치세력화 할 잠재적 계층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10년 전에 출몰하여 현재 전국의 재래시장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대형마트로 인해 그전까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몰락의 위기로 상인들은 급격히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를 개별 상인 또는 특정지역 상인집단의 정신적 안일에서 찾는 것으로 해명하려는 주류 경제 주체들의 논리에 상인들은 그동안 그저 주눅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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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대형마트 규제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소속 상인들이 부평 문화의 거리에서 진행한 집회에서 한 나이든 상인이 연설을 듣고 있다. ⓒ 김갑봉 재래시장 상인


그러나 최근 상인들의 일단에서 이런 류의 논리를 주류 지식인들의 혹세무민이라 주장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지만, 상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벼랑으로 내모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전 카드재벌들의 부당한 카드수수료체계에 대한 전국적 문제제기를 통해 그들의 부당성을 드러내는 상인들의 실천적 일성은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또한 작년 말부터 인천 부평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전국적 조직화 사업은 상인들의 의식이 사회와의 연관성 찾기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인들의 이런 노력은 아직은 파편적이고, 시간과 지역적 분절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인들의 바둥거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상인들의 의식과 조직 그리고 실천력에 비례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인 세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특히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인 또는 자영업자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며, 과연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한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우리 상인들이 안고 있는 위기적 상황과 몰락의 현실화를 시민사회를 향해 알리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은 예기치 못한 지면을 내 앞에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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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새로운 대안과 화두를 던지며 주목을 받아온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2008년 3월에 내놓은 희망 보고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새사연 희망보고서, 중소 자영업인을 보듬다


이 책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인은 누군인가?”를 이러저러한 형태로 설명해냈던 두서없던 개념들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자영업 종사자 특히 600만 명의 도시 자영업 종사자에 대한 세분화된 분류를 접하면서, 이 책은 단지 학자들의 지적 탐구의 영역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서민 대중의 하나로 상인들을 성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단지 분석의 영역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공간과 영역에서 주체를 화두로 대안 중심의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충만감을 주었다. 물론 대안이 구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거론된 주체들의 참여도와 숙성이 필요하겠으나, 일단 상인 문제에 관한한 나와 동료 상인들이 현재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방향과 신기할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도시화된 사회로 규정지어, 대안 실현 주체의 압도적 다수를 도시, 도시생활 속에서 세우고자하는 개념은 우리 상인들의 공간적 배경과 그로인한 정치적 입지를 기막히게 포착하고 있다. 모든 논리의 전개와 맥락을 쉽고, 알아먹게 써내려간 것도 이 책의 미덕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 논리의 전개이다.


수많은 분석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과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주류 유통학자들의 논리에서는 상인들의 의지박약과 불성실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재래시장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형유통재벌의 자본횡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삶을 통계를 통해 드러내지만, 그것이 기존의 숫자놀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마치 오래된 벗이 나의 마음을 하나하나 헤아려 그 고통을 나누고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혹시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발바닥으로 현장을 누빈 흔적이 나타난다. 상인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과 방향성이 신뢰할 만한 것은 한편으로 대형마트, 카드문제 등에서 재벌과의 적대적 성격을 규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상인 내부의 다양한 생존방식의 문제를 균형있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는 재래시장과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한 두 개의 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껏 대부분의 분석가들과 투쟁가들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자영업자들의 생존조건을 명확히 하지 못해왔으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분석들과 대비된다. 게다가 재래시장의 존재 자체를 비단 경제적 문제로 바라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향토문화와 공동체 문화의 기반으로 바라보면서, 대형마트의 시장독과점화가 이런 문화를 질식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가치를 파괴한다고 지적한 점은 상인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깊은 인식의 단면이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점은 조직의 문제이다. 주로 학계에서는 대안주체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노력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국민들 속에 존재하는 대안실현 의지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적극적인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형재벌집단에 대적할 수 있는 전국적 조직의 필요성과 이를 전제로 한 지역상인조직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제기한다. 이미 이 작업을 시작한 나와 일부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벗들의 힘찬 격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재 업종 중심으로 구성된 상인 조직의 한계에 대한 지적 역시 수긍하는 바다.


나아가 상인들의 지역과의 연대, 공적 사회단체와의 연대, 기층 민중 집단과의 연대 등 역시 상인들의 사회적 인식과 행위의 지평을 넓히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을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상인들의 입지가 결국 공공성의 편에 서야 함은 당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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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경기도 광명시 한 대형마트 개점날 인근 광명시장 상인들과 마트측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인의 운명은?


그러나 이책에서 지적했듯이, 아직도 잔존해있는 과거의 중산층적인 정서와 몰락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 상인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남아 있다. 이점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증가할수록 그리고 그 피해가 재래시장과 중소 자영업자들의 영역을 뒤덮어 가면서, 다른 한편 이와 맞서는 상인 조직 또는 도시 자영업자 조직이 공고해지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난제이다. 세상에 내딛는 첫발자국은 항상 새롭고, 고통이 따른다.


특히 개별성이 강한 상인 집단의 정치세력화는 그 과정자체가 정신적 소모를 감당해야만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곳에 답이 있다면, 헤집고 들어가 일으켜 세우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상인의 운명이다.


“신자유주의는 국민 내부의 차이를 확대하고, 갈등관계를 조성함으로써 국민을 끝없는 분열로 몰고가는 토대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체제다”라고 이책은 말한다.


“따라서 ‘적대적 대립’ 관계를 한국사회 진보의 핵심전선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연대’를 위한 조정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결론은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이다. 상인들의 조직화와 연대조직이야말로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조직적 출발점인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상인들이 지역에서 이미 진행중인 사업이다. 상인들의 문제를 지역문제로 환원하여 지역대책위를 만들어 운영중이며, 이곳에 포함된 지역단체의 도움이야말로 현재 우리 상인단체의 갈 길을 단단히 다져주는 커다란 후광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승자 독식 사회로 급발진하고 있다. 모든 것은 상품이고, 따라서 상품화된 숭례문은 불타 사라졌다. 미친듯이 밀어붙이는 ‘효율성’의 논리는 기실 자본가들의 효율성일 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숨가쁜 생존 본능만이 남아 자신을 하염없이 소진시키는 부조화의 논리일뿐이다. 세상은 상품과 소비자만 존재한다고 거짓을 유포하는 신자유주의자들과 세상은 가치와 인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실의 세력이 대한민국에서 격돌할 것이다. 모든 가치가 불타버릴 것 같은 이런 절망스러운 세상이야말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처연하게 빛나는 것이다.


이때 여기 희망을 이야기 하는 한권의 책이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희망의 조건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벗을 만난 기쁨, 우리 상인들이 가야할 길을 함께 나서줄 든든한 후원자를 대면하는 따뜻함이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준 이 친구에게 우정 어린 마음을 보내며, 연구의 결과가 현실에 녹아 새로운 세상을 여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무기로 작동하길 바란다.



* 이 글은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이시며 현재 의류 대리점을 운영하고 계신 '인태연'씨가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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