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3 / 29 새사연

민주정부 10년 동안 왜 경제 민주화를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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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환란으로 사라진 내수기반 경제의 희망
2. 금융시장이 개방된 한국경제
3. 선출되지 않은 절대 경제권력 재벌
4. 벼랑 끝까지 온 불평등과 한국의 99%
5.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 함께 가야한다.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환란으로 사라진 내수기반 경제의 희망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금융개방은 재벌 대기업의 팽창 욕구와 결합하여 외환위기라는 한국경제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물론 그 뒤에는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주도해온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들, 이를 지배해온 미국이 있었다. 외환위기는 한국경제를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개방과 자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기업들은 단기 수익성을 목표로 경영전략을 바꾸고 노동유연화 정책을 속속 도입하였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고용불안은 확대되었으며, 전반적인 실질 근로소득이 하락하고 실질 구매력이 약화되었다. 중산층은 곧 붕괴되었고 본격적인 사회 양극화가 시작되었다. 기업 금융은 줄고 가계를 대상으로 한 소매 금융이 크게 확대되었다. 실물경제는 4%대의 성장률에 머무르는 대신 자산시장 거품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가파른 상승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와중에 정부 도움으로 살아남은 절반의 재벌 대기업은 부채 축소와 수익성 개선을 내걸고 신자유주의 단기 수익추구에 성공적으로 편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고용을 축소하면서 내수 시장 대신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했고 철저히 수출위주의 성장 전략을 구사했다. 국내 경제와 재벌 대기업의 성장이 단절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시기 재벌 대기업 주도하면서 성장과 고용이 동시에 달성되는 한국형 발전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은 우리 경제와 국민들의 삶을 파괴했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민주개혁정부 10년 동안 이루어졌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개혁정부는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생산적 복지,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을 정책기조로 삼아 일정하게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를 확충하려는 노력을 했고 성과도 있었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또한 규제완화와 금융 자유화가 세계적 추세로 진행되면서 한국만 단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민주개혁정부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금융자유화와 개방화를 추진했고, 재벌 대기업 집단이 경제력 집중을 가속화하여 경제권력화 되도록 방치했던 측면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로 인해 1차분배 영역인 시장에서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특히 10년 동안 민주정부가 큰 비판 없이 추진한 자본시장 개방과 자유화 정책은 해외 자금이 증권시장으로 자유로이 유입되도록 했고, 부동산과 건설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항시적 금융 불안과 신용카드 대란, 부동산 거품을 자초했다.

요약하자면 민주개혁정부는 한편으로는 강력한 양극화 경향을 갖는 시장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보완하는 사회복지를 확대했지만, 지배계층의 강력한 저항과 투기경제에 발을 담근 시민세력의 소극적지지 속에서 전자가 후자를 압도해버렸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인 이명박 정권이 당선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개혁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한국경제에 이식시킨 금융개방경제, 수출주도경제, 자산거품경제의 뿌리는 향후 한국사회가 사회적 역량을 집중하여 근절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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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3 / 29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재벌개혁 최후수단,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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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유실될 위기에 몰린 재벌개혁 의제

2. 재벌규제법과 재벌개혁 시민연대, 계열분리 명령제

3. 계열분리 명령제란 무엇인가.

4. 계열분리 명령제의 '잠재적 규율효과'가 중요하다.

5.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체급을 올려주자.

 

[본 문]


1. 유실될 위기에 몰린 재벌개혁 의제

3월 29일부터 4.11 총선이 본격적인 선거운동 국면에 돌입했다. 한국사회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집중시켰던 2012년 양대 선거의 첫 총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역사의 기록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우리 연구원은 이번 양대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보편 복지’와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노동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와 함께 ‘부자 증세’와 ‘공공 복지 서비스’, ‘노동자 경영참여’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편 복지는 지난 지방 선거에서 이미 최대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치열한 논쟁으로 부상하지 않고 있고, 노동 민주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미약하기 때문에 쟁점의 전면에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총선 중심 쟁점이 될 수 있는 것은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그리고 부자증세’라고 판단된다.

일단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 모아진 각 당의 총선 정책 10대 공약 자료를 보더라도 모든 정당들이 공식적으로는 ‘경제 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배치하고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연초에 뜨겁게 가열되었던 재벌개혁 의지와 경제 민주화 공약 경쟁에 비하면, 총선을 앞두고 이에 대한 정책 경쟁의 강도는 매우 떨어졌고 의지도 상당히 약해져서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이번 선거 역시 이데올로기 공세나 후보 신상 털기 등으로 집중되면서 정책선거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개혁 의지가 이미 상당히 후퇴한 인상이 짙다. 특히 새누리당의 경우 재벌개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내용이 삭제되고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민주 통합당도 구체적 실행계획은 주요 사전 규제 장치 3년 유예를 포함하여 대단히 약화되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2012년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재벌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의제로 부상한 재벌개혁 기회를 이대로 흘려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재벌 규제법과 재벌개혁 시민연대, 그리고 계열분리 명령제

어쨌든 지금 위기에 몰린 것은 재벌이 아니라 재벌개혁 의제임에 틀림없다. 출발부터 재벌개혁의 목표와 방법을 재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재벌개혁의 출발은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규제 풀린 재벌 권력이 해외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시장에서도 중소기업, 자영업, 노동자, 소비자들의 이익을 잠식하면서 ‘나 홀로 성장’함으로써, ‘적하 효과’대신 ‘빨대 효과’만 작동했다는 현실에 기초한다. 따라서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의 정점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으므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살고, 노동자가 살고 내수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벌개혁”이라는 원칙아래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무소불위의 재벌 권력을 규제의 틀 안에 묶고 경제력 집중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면서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여 각 경제주체들의 살 길을 열자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① 법과 제도적 수단 ② 강력한 독립 감독기구 ③ 조세 수단이라는 3대 정책 수단을 “포괄 패키지로 구성”하여 재벌개혁을 해야만 한다. 혹자는 법만 제대로 집행해도 재벌개혁을 상당부문 할 수 있다거나 하나의 제도라도 실효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 만큼 재벌개혁이 어렵기 때문에 각종 정책수단과 제도를 수 없이 나열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바로 재벌개혁이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필요하다면 역사의 박물관 속으로 잊혀간 모든 방안들을 되살려서라도 재벌개혁 대안을 찾아내야한다. 특히 이번에는 무너진 재벌 규제 체제를 총괄적으로 정비하고 향후 미래적인 고려까지를 포함하여 재벌규제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차원에서 ‘재벌 규제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자고 제안했다.

동시에 모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개혁이 그렇듯이 개혁 동력과 힘이 최종적으로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④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키워서 지금부터라도 재벌과의 사회적 힘과 세력의 균형을 이뤄가도록 해야 한다. 기존에서는 주주자본주의 틀 안에서 소액주주를 동원하여 지배주주인 총수를 견제하는 방식들이 주로 제시되었지만 이는 한계가 너무 많다. 이해관계자의 범위를 대폭 확장하여 노동자뿐 아니라, 골목상권 잠식으로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 부당납품가로 어려움을 겪는 하청기업, 독과점 가격 횡포로 피해를 받는 소비자를 포함하는 민생연대 성격의 재벌 개혁 시민연대를 형성하여 상설화된 시민적 견제세력을 만드는 한편, 제도적인 견제 장치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제안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재벌에 대한 최후의 견제 수단으로서 우리 국민들에게 “계열분리 명령제”를 쥐어주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3. 계열분리 명령제는 무엇인가.

다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버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규제의 틀을 복원하기 위해서, 이미 과거부터 수차례 검토되었던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의 주요 세 가지 사전 장치들이 있다. 출자총액 제한 제도를 2002년 수준으로 복귀시키는 것, 변형된 상호출자에 다름 아닌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는 것, 그리고 지주회사 자회사 최소 지분 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를 재벌 규제의 출발로 삼을 수는 있다. 느슨한 형태지만 현재 민주통합당에서 재벌개혁 안에 포함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 수단은 재벌 집단이 주로 자금 여력이 부족했던 과거에 설계되었고 유효했던 수단들이다. 또한 사전 규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미 기업결합이 과도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독과점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경우에 막을 방법이 없다. 사후적으로 단순히 가격규제와 같은 ‘행태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구조적으로 되돌리는 수단과 장치가 있어야 한다. 바로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 분할 명령제’를 공정거래법 안에 신규로 포함시켜 개정하는 것이 그 수단과 장치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다소 낯선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분할 명령제란 무엇인가. 정부의 명령만으로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인가? 물론 계열분리 명령제는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독점과 확장을 억제하자는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독점을 규제하는 두 가지 방법, 원인 금지주의와 폐해규제주의가 있다. 원인 금지주의는 “독과점 그 자체를 위법한 것으로 보아 그 형성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일단 독과점이 발생한 경우에도 기업분할 명령, 시장구조 개선 등을 통해 독과점 시장을 경쟁시장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폐해규제주의는 “독과점 그 자체를 당연히 위법한 것으로 보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여 폐해를 초래하는 경우, 그 독과점 사업자의 남용행위만을 규제하는 입장이다.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분할 명령제는 원인금지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다. 사실 이미 역사적으로 2003년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3년 당시 국책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완화된 형태로 도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낸 바가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민주당도 경제특위에서 계열분리 명령제를 검토했고 지금도 재벌개혁 정책 범주에서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계열분리 명령제는 재벌집단에서 지배주주가 주로 ‘금융계열사’를 이용하여 시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교란하는 행위가 적발되거나 또는 그럴 우려가 있을 때, 정부(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집단 지배주주에게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명령(또는 법원에 청구)하는 제도로서 구상되었다. 참여청부 초기에 시행을 준비했으나 반발로 좌절된 바가 있다.

그런데 계열사 지분 매각 처분 명령으로 계열사를 떼어내는 방식은, 현재의 경우에는 꼭 금융계열사로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 최근 MRO사업의 사례 등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중소기업 영역에 무분별하게 침투하여 해당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계열분리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지 독과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금융, 보건, 사회복지 서비스 등 공익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재벌 계열사의 영향이 미칠 때"라는 식으로 '공익'을 명시하면서 동시에 금융을 포함하되 거기에 한정하지 않고 의료나 사회서비스, 중소적합업종서비스로 확장한다는 것을 지정할 수 있다.

아울러 계열분리명령제가 재벌집단의 계열사를 해당 기업의 지분매각을 명령하여 분리해내는 제도라고 한다면, 기업분할 명령제는 단일 거대 독점기업을 쪼개는 명령을 하는 제도다. 거대 독점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과 독점 폐해를 구조적으로 막기 위해 미국, 일본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서 낯설지 않다. 기업분할(또는 계열분리)을 공정위가 직접 행정명령으로 실행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분할을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게 할 것인지에 따른 방법상의 차이에 따라 ‘명령제’냐 ‘청구제’냐로 나눌 수 있지만 지금은 핵심 쟁점이 아니다.

 

4. 계열분리 명령제의 “잠재적 규율 효과”가 중요하다.

매우 직접적으로 기업집단의 경제 집중도를 분산시키는 과감한 방법이라고 할 계열분리 명령제나 기업분할 명령제는, 한국에서는 재벌집단이라는 존재의 특수성 때문에 하나의 맥락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데, 특히 지금처럼 이미 너무 높은 수준으로 진행된 독점화와 집중화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방법으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반독점법처럼 비록 명령제 자체가 실제 시행되는 것이 매우 드물다 하더라도 이 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재벌 집단이 규율되는 “잠재적 규율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분할, 분리 명령제도는 “비록 수십 년에 한두 차례의 조치가 발동된다 하더라도 ‘잠재적 규율효과’는 엄청날 것”인데, “미국에서도 법원에 의하여 실제로 기업분할 명령이 내려진 경우는 과거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몇 건에 불과하였지만 그 잠재적 규율효과는 매우 컸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할, 분리할 것인가. 재벌의 분할, 분리는 ‘지분관계 해소’의 방식이 기본이 될 것이고 일시적으로 ‘의결권만을 제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미국 스탠더드 오일 그룹이나 AT&T의 기업분할 사례에서는 지주회사와 자회사 관계에 있던 기업 집단의 분할이 주식교환과 매각을 통해 이루어 졌다. 또한 2차 대전 이후 해체된 독일의 콘체른은 원칙적으로 콘체른을 다수의 기업으로 분할하고 기존 주주들의 권리는 분할 된 개별 기업 중 하나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의 재벌 해체 역시 먼저 재벌에 대한 친족 지배력을 배제한 가운데 일본 재벌의 기본 구조였던 지주회사의 지분정리를 했다. 구체적으로 순수 지주회사는 완전 해체하고 사업지주회사는 자회사 증권을 양도시키고 대신 원래 사업부문은 계속하게 했다. 지주회사정리위원회라고 하는 기구를 만들어 재벌해체과정에서 주식을 인수 받았는데, 이때 양도 받은 막대한 주식에 대하여, 종업원에게 우선적으로 매각할 것, 지주회사 및 재벌 동족에 대해 매각하지 않을 것, 지주회시의 자회사 등에도 매각하지 않을 것 등의 원칙에 따라 주식을 처분했던 경험이 있다.

분리, 분할 명령제에서 특히 쟁점이 될 사안은 바로 어떤 상황과 국면에서 명령제 시행을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에 대한 예로서 “특히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성이 근본적으로 재벌 구조 및 집단적 행태에 기인하는 경우에, 개별 계열기업의 분리가 문제될 수 있으며, 재벌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것만이 당해 시장에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동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또한 법적 근거로서 입법화가 요구되지만, 당해 계열 기업의 형태가 독점 규제법 제 3조의 2에서 규정한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 동 규정에 의한 시정조치로서 계열기업의 분리를 명령할 수 있는지도 고려될 수 있다. 즉, 충분히 법률적인 요건을 정의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하다 하더라도, 과연 일정한 기업 집단을 이뤄서 경제활동을 하는 재벌 그룹사를 쉽게 쪼개거나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기업 활동이 유지되고 생산 활동을 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이 이런 우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우려할 필요 없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기업들의 분할과 합병은 지금도 기업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고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분할이나 계열분리가 매우 과격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사실 기업세계에서는 사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거의 일상적으로 기업 결합과 기업 분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공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도 제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계열분리의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1년 상반기, 그 동안 주로 중소업체들이 사업해오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사업 규모를 재벌계열사들이 팽창시키자 재벌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해당 분야에서 업계 1위는 엘지 계열사이고 (주)엘지 지분이 100%인 서브원이 매출 2.5조원이었고, 다음으로 삼성 계열의 아이마켓코리아(IMK)(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이 58.7%)인데 매출이 1.5조원이었다.

국민의 비판여론이 거세고, MB정부도 “대기업이 이런 일을 하라고 출총제를 푼 것이 아니다”면서 압력을 가하자, 2011년 8월 1일, 삼성그룹은 IMK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수순을 밟아가면서 해당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자진하여 계열사 지분 정리를 통한 계열분리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연말에 지분을 처분했다. 계열분리 명령제 등은 재벌그룹이 위와 같이 중소기업과 자영업, 소비자의 경제활동에 크게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시장 지배력을 팽창시켜갈 때, 그러고도 위의 사례와 달리 자진해서 계열 분리할 의사가 없을 때,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막는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5.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체급을 올려주자.

마지막으로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여 이토록 막강한 권한인 계열분리 명령제를, 그토록 막강한 재벌집단에게 들이댈 수 있는, ‘더 막강한 기구’이어야 하는 ‘명령 조직’은 누구인가. 공정거래위원회다. 과연 공정거래위원회가 할 수 있을까.

현재 재벌규제가 ‘법치주의’만 확립되어 있어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안 되는 이유는 정치, 관료, 검찰, 언론이 모두 재벌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재벌 감독기관이자 ‘재벌의 검찰’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을 감독할 수단과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더욱 문제이다. 1981년 이후 재벌은 놀라운 변화를 겪으면서 권력을 키웠는데 재벌의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의 힘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 공정성과 독립성, 권한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형식상 “중앙행정기관으로써 합의제 행정 관청”이고 “독립된 규제위원회로서 각종 고시, 규정. 규칙 제정권을 갖는 준 입법기관이자 이의신청에 대한 재결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준 사법기관”이다.

우선 위원장 포함 9인 위원회 모두가 대통령 임명으로 되어 있는 현행 구조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임명 위원 외에 정당 추천과 국회 동의로 지명되는 위원을 추가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정부 기관인 공정위에 상응하는 국회 차원에서의 ‘재벌 규제위원회제도’를 한시적으로 두는 것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필요하다.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감독과 조사 권한을 대폭 보강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에서 제기된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은 폐지하여 일반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전속 고발제도라는 것이 당초에 “고발권의 남발로 기업인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전문 기관의 판단에 따라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를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1996년부터 도입된 것인데 지금의 성숙한 사회문화 환경을 감안할 때 오히려 국민들의 고발권을 제약할 소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대신 공정위는 ‘강제 조사권’을 부여 받아 재벌집단에 대한 실효적인 조사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상의 ‘준 사법권’적 권한도 보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공정위는 강제력이 없는 ‘자료제출 요구권’만을 가지고 있다. 엄청나게 커져버린 재벌집단의 권력에 맞게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과 권력을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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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을 찌푸리며 읽었다. 집중해야 하므로. 그러자 도서관에 온 개나리아파트 통장, 하영 엄마가 옆에서 넌지시 말한다.

"힘드시겠어요. 그 책." 

아마도 겉표지를 본 모양이다. ’이명박 시대’라는 선명한 글자를 봐서 그런지 나를 사뭇 안쓰럽게 쳐다보는 듯하다. 나는 얼결에 웃으며 말했다.
 

"안 힘들어요. 이 책."
 

왜냐면 난 이명박 시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난 도대체 뭘 알고 아는 척을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동네 몇몇 사람들이 "그래도 경제를 살려준다잖아요, 이명박이!"라고 말하는 이를 볼라치면 얼굴에 푸르르 냉기가 돌며 팽하기만 했지, 내가 과연 그들에게 뭘 얘기했는지.

이명박 시대, 난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08년 3월에 갓 구워 나온 이 책을, 나는 결이 좋은 따뜻한 식빵을 찢어먹듯 야금야금 먹어보았다. 제목은 다소 찢어먹기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내용은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뀐 5년의 전망,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이 펴낸 이 책은 현상을 넘어서 본질을 꾀하는 진중한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구성은 갖가지 도표와 분석자료, 구체적인 분야별 대안 제시들로 채워져 있다. 새사연 연구원 이외에도 다양한 객원 필자들을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을 짜려고 한 노력이 돋보였다.

책은 우리가 그토록 눈살을 찌푸리는 17대 대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내용은 ’17대 대선- 그 표심으로부터 찾는 진보의 희망’이다. 글을 쓴 새사연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우리 사회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세간의 평가에 의문을 던지며 국민의 진보적 지향과 기대를 진보세력이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새사연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을 지지했던 유권자 30%보다, 투표를 하지 않았던 유권자 37%에 주목했다. 500만 표가 넘는 표차로 이명박이 당선되었지만, 그 못지않게 역대 선거 가운데 투표하지 않은 표가 당선자의 표보다 훨씬 많았던 선거임을 잊지 말자는 얘기다. 더불어 17대 대선이 반독재에서 반신자유주의로 정치구도가 전환된 점, 2, 30대가 반신자유주의적 개혁 진보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보냈다는 점 등을 본질적인 변화로 보았다.  

진보의 근원적 성찰, 전환 그리고 실천

책은 17대 대선을 시작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달러 기축통화 역할 약화,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고유가 시대, 2008년 한국 국민경제 동향과 전망 등을 다룬다. 나라 안팎의 주요 의제를 통해 고용, 통일, 동아시아 주요 이슈까지 아주 알찬 연구 자료들이 가득하다. 다양한 도표 자료와 보론, 주석을 통해 내용은 신뢰성 있고 명료했다.

책의 첫 번째 큰 흐름이 나라 안팎의 주요 의제 전망이었다면, 두 번째 큰 흐름은 분야별 주요 의제 전망이었다. 분야별 주요 의제는 경제, 통일, 금융, 농업, 교육, 보건의료,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자에게 보다 실물적인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달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제 부분의 ’이명박 정부 노선의 특징과 전망’이다. 새사연은 이명박 정부가 그 어떤 요식적인 서민정책 없이 오직 기업이나 부자들만을 위한 경제정책을 펼 것이라는 가정과 이명박 경제가 단순개발주의식 ’시멘트 경제’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며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요체는 이명박 경제가 시장지상주의-신자유주의의 어느 지점을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가속화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전체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새사연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대안적 가치 창출과 그를 위한 실천에 나서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신을 진보라고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김명인 인하대 교수의 지적을 인용하며 따끔한 말을 던졌다. 진보의 근본적인 전환과 성찰을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논지는 사뭇 공감이 간다.

현실성이 부여하는 선동력

책을 통한 새사연의 전망 분석과 대안 제시는 남다르다. 남다르다는 것은 신선해서가 아니라 유독 바른 말이기 때문이다. 선언적인 구호와 외침이 아닌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요목조목 지적하고, 제시하는 것이 희한하게 선동적이다. 한 귀로 흘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들려준다.

책을 덮고 표지를 들여다보자, 묘하게 4일 동안 보이지 않던 이명박의 얼굴 실루엣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표지마저도, 선동적이다. 전의를 불태우게 하니 말이다.  

* 이 글은 춘천시민광장 부설 <꾸러기어린이도서관> 관장으로 일하며 지역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이선미씨가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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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상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 결여된 대표적인 집단이다. 특히 정치적 입장을 자신들의 계층이해에 입각해 표명해본 적이 없는 기이한 집단이다. 오히려 타인들, 특히 권력집단이 자신들에게 기울이는 관심조차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그런 소극성을 하나의 중요한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무엇이 흩어진 상인들을 뭉치게 했나


상인들의 역사적 형성과정이 자본의 발전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진행된 점과 개별적 노력에 의해 성패를 보장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낳은 상대적 독립성이 상인들의 사회적, 집단적 소극성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그렇게 해방 이후 상인들의 운명은 ‘홀로’, ‘알아서’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아무도 이 세력이 집단화되거나, 나아가 정치세력화 할 잠재적 계층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10년 전에 출몰하여 현재 전국의 재래시장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대형마트로 인해 그전까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몰락의 위기로 상인들은 급격히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를 개별 상인 또는 특정지역 상인집단의 정신적 안일에서 찾는 것으로 해명하려는 주류 경제 주체들의 논리에 상인들은 그동안 그저 주눅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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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대형마트 규제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소속 상인들이 부평 문화의 거리에서 진행한 집회에서 한 나이든 상인이 연설을 듣고 있다. ⓒ 김갑봉 재래시장 상인


그러나 최근 상인들의 일단에서 이런 류의 논리를 주류 지식인들의 혹세무민이라 주장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지만, 상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벼랑으로 내모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전 카드재벌들의 부당한 카드수수료체계에 대한 전국적 문제제기를 통해 그들의 부당성을 드러내는 상인들의 실천적 일성은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또한 작년 말부터 인천 부평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전국적 조직화 사업은 상인들의 의식이 사회와의 연관성 찾기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인들의 이런 노력은 아직은 파편적이고, 시간과 지역적 분절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인들의 바둥거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상인들의 의식과 조직 그리고 실천력에 비례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인 세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특히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인 또는 자영업자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며, 과연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한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우리 상인들이 안고 있는 위기적 상황과 몰락의 현실화를 시민사회를 향해 알리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은 예기치 못한 지면을 내 앞에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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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새로운 대안과 화두를 던지며 주목을 받아온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2008년 3월에 내놓은 희망 보고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새사연 희망보고서, 중소 자영업인을 보듬다


이 책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인은 누군인가?”를 이러저러한 형태로 설명해냈던 두서없던 개념들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자영업 종사자 특히 600만 명의 도시 자영업 종사자에 대한 세분화된 분류를 접하면서, 이 책은 단지 학자들의 지적 탐구의 영역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서민 대중의 하나로 상인들을 성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단지 분석의 영역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공간과 영역에서 주체를 화두로 대안 중심의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충만감을 주었다. 물론 대안이 구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거론된 주체들의 참여도와 숙성이 필요하겠으나, 일단 상인 문제에 관한한 나와 동료 상인들이 현재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방향과 신기할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도시화된 사회로 규정지어, 대안 실현 주체의 압도적 다수를 도시, 도시생활 속에서 세우고자하는 개념은 우리 상인들의 공간적 배경과 그로인한 정치적 입지를 기막히게 포착하고 있다. 모든 논리의 전개와 맥락을 쉽고, 알아먹게 써내려간 것도 이 책의 미덕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 논리의 전개이다.


수많은 분석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과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주류 유통학자들의 논리에서는 상인들의 의지박약과 불성실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재래시장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형유통재벌의 자본횡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삶을 통계를 통해 드러내지만, 그것이 기존의 숫자놀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마치 오래된 벗이 나의 마음을 하나하나 헤아려 그 고통을 나누고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혹시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발바닥으로 현장을 누빈 흔적이 나타난다. 상인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과 방향성이 신뢰할 만한 것은 한편으로 대형마트, 카드문제 등에서 재벌과의 적대적 성격을 규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상인 내부의 다양한 생존방식의 문제를 균형있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는 재래시장과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한 두 개의 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껏 대부분의 분석가들과 투쟁가들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자영업자들의 생존조건을 명확히 하지 못해왔으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분석들과 대비된다. 게다가 재래시장의 존재 자체를 비단 경제적 문제로 바라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향토문화와 공동체 문화의 기반으로 바라보면서, 대형마트의 시장독과점화가 이런 문화를 질식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가치를 파괴한다고 지적한 점은 상인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깊은 인식의 단면이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점은 조직의 문제이다. 주로 학계에서는 대안주체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노력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국민들 속에 존재하는 대안실현 의지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적극적인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형재벌집단에 대적할 수 있는 전국적 조직의 필요성과 이를 전제로 한 지역상인조직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제기한다. 이미 이 작업을 시작한 나와 일부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벗들의 힘찬 격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재 업종 중심으로 구성된 상인 조직의 한계에 대한 지적 역시 수긍하는 바다.


나아가 상인들의 지역과의 연대, 공적 사회단체와의 연대, 기층 민중 집단과의 연대 등 역시 상인들의 사회적 인식과 행위의 지평을 넓히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을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상인들의 입지가 결국 공공성의 편에 서야 함은 당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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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경기도 광명시 한 대형마트 개점날 인근 광명시장 상인들과 마트측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인의 운명은?


그러나 이책에서 지적했듯이, 아직도 잔존해있는 과거의 중산층적인 정서와 몰락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 상인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남아 있다. 이점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증가할수록 그리고 그 피해가 재래시장과 중소 자영업자들의 영역을 뒤덮어 가면서, 다른 한편 이와 맞서는 상인 조직 또는 도시 자영업자 조직이 공고해지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난제이다. 세상에 내딛는 첫발자국은 항상 새롭고, 고통이 따른다.


특히 개별성이 강한 상인 집단의 정치세력화는 그 과정자체가 정신적 소모를 감당해야만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곳에 답이 있다면, 헤집고 들어가 일으켜 세우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상인의 운명이다.


“신자유주의는 국민 내부의 차이를 확대하고, 갈등관계를 조성함으로써 국민을 끝없는 분열로 몰고가는 토대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체제다”라고 이책은 말한다.


“따라서 ‘적대적 대립’ 관계를 한국사회 진보의 핵심전선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연대’를 위한 조정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결론은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이다. 상인들의 조직화와 연대조직이야말로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조직적 출발점인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상인들이 지역에서 이미 진행중인 사업이다. 상인들의 문제를 지역문제로 환원하여 지역대책위를 만들어 운영중이며, 이곳에 포함된 지역단체의 도움이야말로 현재 우리 상인단체의 갈 길을 단단히 다져주는 커다란 후광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승자 독식 사회로 급발진하고 있다. 모든 것은 상품이고, 따라서 상품화된 숭례문은 불타 사라졌다. 미친듯이 밀어붙이는 ‘효율성’의 논리는 기실 자본가들의 효율성일 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숨가쁜 생존 본능만이 남아 자신을 하염없이 소진시키는 부조화의 논리일뿐이다. 세상은 상품과 소비자만 존재한다고 거짓을 유포하는 신자유주의자들과 세상은 가치와 인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실의 세력이 대한민국에서 격돌할 것이다. 모든 가치가 불타버릴 것 같은 이런 절망스러운 세상이야말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처연하게 빛나는 것이다.


이때 여기 희망을 이야기 하는 한권의 책이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희망의 조건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벗을 만난 기쁨, 우리 상인들이 가야할 길을 함께 나서줄 든든한 후원자를 대면하는 따뜻함이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준 이 친구에게 우정 어린 마음을 보내며, 연구의 결과가 현실에 녹아 새로운 세상을 여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무기로 작동하길 바란다.



* 이 글은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이시며 현재 의류 대리점을 운영하고 계신 '인태연'씨가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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