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성'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12.14 신뢰의 정치인
  2. 2012.08.10 협동조합을 꿈꾸는 그대에게 (2)
  3. 2012.03.29 인간 협력의 다섯 가지 조건②
  4. 2011.09.09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2)

2012.12.13정태인/새사연 원장

 

여태까지 ‘착한 경제학’을 읽은 독자라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낱말인지 잘 알 것이다. 한마디로 신뢰는 협동의 기초다. 신뢰는 양의 상호성(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을 촉발시킨다. 일반 신뢰(generalized trust)란 잘 아는 사람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믿는 것을 말한다. 일반 신뢰의 사회는 협동이 사회규범으로 뿌리 내린 사회다. 신뢰와 협동이 개인에게 내면화한 이런 사회는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그 모범 사례이며 그 반대쪽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퍼트넘의 저 유명한 ‘나 홀로 보울링(bowling alone)’은 미국의 경우이다.
 
하지만 남을 믿는다는 건 매우 위험한 행위다. 자신을 무장해제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사랑을 떠올려 보라. 사랑에 제대로 데었던 사람은 웬만해선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여 오직 가족과 몇몇 사람만 신뢰하게 될 텐데, 이를 특수 신뢰(particularized trust)라고 부른다. 특수 신뢰는 강력하지만 폐쇄적이기 십상이다.
 
박근혜 후보의 최근 캠페인은 ‘위기-신뢰-통합’이라는 세 낱말로 요약된다. 프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잘 구성된 조합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해 한국 경제가 어렵고, ‘신뢰의 정치인’을 따라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며, 그것이 곧 국민통합이라는 메시지다.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 가지만 경험 많고 유능한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박 후보 홍보영상)는 문구는 그의 결기를 잘 보여준다. 노년층은 아마도 아버지 박정희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과연 그는 ‘신뢰의 정치인’일까? 그가 신뢰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7일자 경향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 “(청와대를 나온 후) 뒤돌아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지켜본 박 후보는 약속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배신에는 질색한다”. 아뿔싸, 그가 말하는 신뢰란 배반에서 비롯된 신뢰, 즉 위에서 언급한 특수 신뢰다. 그것은 폐쇄 집단의 신뢰이다. 따라서 “일단 믿기로 한 사람은 여러 번 기회를 주지만 정말 한 번 안 되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아웃시키는 특징”(같은 신문)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특징은 선거에서 유별난 힘을 발휘했다. 그의 카리스마는 특정 집단 내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한 종합편성 TV가 개국 기념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으로 내보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TV 조선, 2011년 12월 1일). 그가 보수집단을 결집시켜서 한나라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착한 경제학’의 ‘일반 신뢰’는 대화와 소통에 의해 형성되고 쌓인다. 반대로 특수 신뢰는 내부의 암호와, 외부와의 불통에 의해 더욱 견고해진다. 그의 말투, 예컨대 박지만씨에 대한 의혹에 대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방식, “참 나쁜 대통령”과 같은 단말마 방식은 특수 신뢰의 특징이다.


문제는 그의 ‘특수 신뢰’가 대한민국 전체,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통할 것인가이다. 그의 경제정책 기조인 ‘줄푸세’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한국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했다(경제 논리는 경향신문의 7일자 정동칼럼을 보시라).
 
케인즈 경제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돈이 아래로 흘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착한 경제학’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는 노동조합 지도자를 만나 “당신의 말이 옳다. 거리로 나가서 외쳐라. 내가 그 주장을 실현시키겠다”고 말하고, 국민연금법(보편복지의 확대)과 와그너법(노조의 단결권 보장)을 통과시켰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루스벨트와 같은 일반 신뢰요, 개방적 참여민주주의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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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협동조합 전문가가 아니다. 몇 번이고 X를 눌러도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인터넷 광고마냥 되풀이하는 얘기다. 평생을 생협운동, 공동체운동, 자활운동을 하신 분들 눈으로 보면 논문 몇 개 읽고 전문가로 대접받는 내가 괘씸할지도 모른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현재의 협동조합 운동에 내가 좁쌀만큼이라도 도움을 드린다면 그건 내가 추상적인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다행히 나라 정책을 직접 다뤄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이 지면에서 소개한 것처럼, 상호성이라는 인간 본성이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주장,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내수를 확대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회적 경제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원래 우리의 천성에도 맞고 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께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이럴 때는 오랜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분들을 만나야 한다. 지역의 각종 시민단체나 생협의 교육에 참가하면 더 일반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용어로 ‘중간조직’이 있다면 조금 더 체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해당 분야의 특성, 금융이나 기술, 관련 정책에 관한 컨설팅이 필요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는 CNA(중소기업과 수공업자 연합회)나 레가, 그리고 리얼 서비스 센터가, 캐나다의 퀘벡지역에서는 데자르댕 같은 금융기관과 샹티에(chantier)라고 불리는 연합조직이 그런 역할을 했다. 이런 중간조직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의 접속점(node)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첫 번째 전략으로 손꼽히는 네트워크화가 창업자에게 갖는 의미는 그런 접속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어떤 일을 선택하고 누구와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있다. 현재의 협동조합 붐이 성과를 거두려면 지역공동체의 발전전략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지역주민들이 그런 전략 수립에 참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떼돈을 벌 생각만 아니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 해야 할 일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 예컨대 동네 어르신의 집을 에너지 절약형으로 수리하는 일부터 마을 전체를 재개발하는 일까지 사회적 경제가 담당하면 효율과 평등, 연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모든 사회적 수요는 곧 사회적 경제의 사업 대상이다. 이것이 두 번째 전략이다.

지역공동체에 뿌리박은 사회적 경제는 지난 번에 제시한 인간 협동의 조건들 중 상당수를 일거에 만족시킨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의 보편복지 요구와 연관시켜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서구에서는 1980년 말 이후 재정위기로 인해 많은 복지 프로그램을 민영화했다. 공공성을 지닌 사업을 시장에 맡기면 당연히 요금이 폭등하고 값싼 서비스가 사라진다거나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의료, 보육, 교육, 문화, 교통 등 사회서비스 분야가 그러한데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은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지사업을 설계해야 할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사회적 경제를 마지막 복지 전달의 주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은 ‘협동조합을 꿈꾸는 그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먼저 동네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서 주민들과 해법을 모색하라.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사업 중에 해당 항목을 찾아서 담당부서와 의논하라. 정부가 하는 일 중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절대로 정부 공무원의 머릿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업들도 수없이 튀어나올 것이다. 여러분이 이 글을 볼 때쯤이면 나는 캐나다의 퀘벡에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꿈이 주민들의 에너지로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바글바글한 에너지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 아닌가?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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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7)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간 협력의 조건 3 : 평판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이다. A가 B를 도와주고, B가 C를 도와주면 D가 A를 도와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평판(reputation) 때문이다. 상대를 도와주면 나의 평판이 좋아져서 훗날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대를 배신하면 이기적 인간이라는 평판을 받게 되어 훗날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실제 이론과 실증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는 사람이 더 많은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직접 상호성은 협력을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제한적이다. 우선 똑같은 두 사람이 반복적으로 만나야 하며, 서로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얻게 되는 혜택이 커야 한다. 하지만 때로 사람들은 낯선 이를 돕기도 하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을 돕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은 반드시 쌍방 대칭적으로 일어나지만은 않는다.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간접 상호성이다. 직접 상호성에 의한 협력이 물물교환이라면, 간접 상호성은 돈이 발명된 후의 교환과 같다. 평판이 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잘,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평판은 결국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소위 말하는 뒷담화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퍼지는 사회일수록 협력이 잘 일어나는 셈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q는 다른 사람의 평판을 알 수 있는 확률이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q > b/c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나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보다 평판이 확산되는 확률이 클 경우, 즉 잘 확산될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 협력의 조건 4 :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

네 번째는 네트워크 상호성(Network Reciprocity)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협력하는 사람과 배반하는 사람이 골고루 섞여 있고, 모든 사람과 가리지 않고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공간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가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라도와 경상도의 분리, 그리고 정치적 지지 정당의 선명한 차이가 그렇다. 내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같은 동네에 살거나 같은 종교를 믿거나 같은 학교를 다녔거나 혹은 같은 정치적 견해를 보유한 사람들일 것이다. 무엇이든 나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협력과 배반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협력하는 사람들은 협력하는 사람과 어울리고 배반하는 사람들은 배반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협력하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협력의 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배반하는 사람 주변에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배반으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때문에 협력하는 사람 주변으로는 사람이 모이지만, 배반하는 사람 주변에서는 사람이 멀어진다. 유유상종이다.

만약 협력하는 사람과 배반하는 사람이 아주 골고루 섞여 있는 상황에서, 그 둘이 만난다면 협력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이것이 반복되면 협력하는 사람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하면 도태되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서로 이득을 주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배반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 이것이 네트워크 상호성이다. 국지적 상호성이라고도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k를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수라고 하고,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b/c > k 인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나타난다. 이익 대비 비용의 비율이 주변사람의 수보다 클 경우, 즉 내가 만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협력은 잘 일어난다. 주변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커지므로 유유상종의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간 협력의 조건 5 : 착한 애들이 뭉치면 세다

다섯 번째는 집단선택(Group Selection)이다. 집단선택이란 어떤 집단이 어떤 특성을 갖는가 혹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집단들의 생존 가능성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그 속성이 전체로 퍼져나가게 될 지 아니면 없어지게 될지가 결정되는 과정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을 중심으로 협력과 배반의 선택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협력자끼리 모여 있는 협력자 집단과 배반자끼리 모여 있는 배반자 집단이 있다. 협력자들은 서로를 돕지만, 배반자들은 돕지 않는다. 협력과 배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득만큼 자손을 남길 수 있으며, 자손들은 부모의 집단과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게임이론으로 살펴본 사회적 딜레마 상황에서 보았듯이, 서로 협력할 때가 서로 배반할 때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협력자 집단이 배반자 집단보다 더 많은 이득을 거두게 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반면 자손 수 증가에서 뒤처지는 배반자 집단은 소멸하게 된다. 만약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는 혼합집단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는 경우 배반자가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 집단은 배반자 집단으로 변하게 되고, 협력자 집단에 의해 밀려난다. 이 경우 두 가지 차원에서 선택이 일어난다. 집단 내에 있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배반자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 차원에서 보자면 협력자 집단이 유리하다. 때문에 집단 내에서는 협력자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해도, 협력자 집단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전체적으로는 협력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집단선택을 다층선택(Multilevel Selection)으로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많이 있는 집단, 집단 내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집단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국가 스파르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쟁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희생전신이 강한 투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스파르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n을 한 집단의 최대 크기, 다시 말해 한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 수라고 하고 m을 집단의 수라고 한다. c는 협력할 때 지불하는 비용이고, b는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라 한다면 b/c > 1+(n/m) 이다. 따라서 한 집단 내의 사람 수가 적을수록, 그리고 집단의 수가 많을수록 협력이 잘 일어난다. 한 집단 내의 사람 수가 적다는 것은 유유상종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뜻으로 협력자끼리 모여 있을 경우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협력자와 배반자가 섞여 있을 경우 협력자가 불리하기 때문에 협력자끼리 모여 있을수록 협력자의 수가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집단의 수가 많다는 것은 협력자 집단이 배반자 집단을 이기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집단의 차원에서는 협력자 집단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혈연선택,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이라는 인간 협력의 조건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다. 를 정리해보자면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질수록, 만나는 주변 사람이 적을수록, 집단의 구성원이 적고 집단의 수가 많을수록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활용하고 반영하여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 규범, 법률, 제도를 만들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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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정태인/새사연 원장

요즘 강연에서 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인간은 이기적일까요?” 대부분의 청중이 그렇다고 시인한다. 그건 정말로 우리 사회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나 손해를 보는 바보가 될 뿐이다. 앞으로 하나 하나 설명하겠지만 이런 태도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의 두 가지 행동 중 하나(공포, 상대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경우 나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이다.

실로 우리 사회는 극도의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우리의 일반적 신뢰, 즉 “당신은 얼마나 남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은 세계의 중간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신뢰가 떨어지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나라이다. 더구나 15살짜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세계 최하위로 나타났으니 지금도 팍팍한 세상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일까? 나는 “여러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호언한다. 내 무기는 이른바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독자 여러분도 스스로 해 보시면 안다.

청중들이 두 사람씩 짝을 짓게 하고 임의로 한 사람은 A, 다른 한 사람은 B를 맡도록 한다. A에게 하늘에서 1만원이 떨어졌다고 하자(실제 실험에서는 실험자가 1만원씩 나눠 준다. 물론 내 강연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횡재를 한 A는 B에게 얼마를 줄지 제안한다. B가 할 역할은 예스, 또는 노이다. 만일 예스라고 대답하면 A가 제시한대로 분배가 이뤄지고 게임은 끝난다. 예컨대 A가 3000원을 주겠다고 제시했는데 B가 예스하면 A:7000원, B:3000원이 되는 것이다. 한편 B가 어떤 이유로든 노라고 대답하면 둘 다 한푼도 챙기지 못하게 된다. 여러분이라면 A의 처지에선 얼마를 제시하고 B의 처지라면 어떻게 대답할까?(실제로 옆 사람과 해 보시기 바란다.)

경제학이 가정하는대로, 그리고 청중들이 대답한 것처럼 인간이 모두 호모에코노미쿠스(자신의 이익만 신경쓴다)라면, 즉 A도 B도 이기적이라면 답은 A:9999원 대 B:1원이다. 이기적인 B는 무일푼(노라고 대답했을 경우)보다는 1원이 낫기 때문에 예스를 택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A는 1원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수천, 수만번 행해진 이 실험에서 이 정답을 맞춘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거의 대부분이 4000원에서 5000원을 제시했고 2500원 미만인 경우에는 B가 노를 택한 경우도 꽤 많이 나온다.

즉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은 언제나 남을 생각하며(other regarding), 상대방이 현저하게 불공정하게 행동할 때는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한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행동한다. 학자들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상호성(reciprocity)라고 부르는데 앞으로의 연재는 이 속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상호성에 맞춘 행동과 규범, 제도가 우리 사회를 훨씬 더 따뜻하게 만들 것이고, 신뢰와 협동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첩경임을 보일 것이다. 적어도 인간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이 글은 '주간 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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