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9                                                                                   이상동 / 새사연 부원장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총리 후보가 “소득과 부, 그리고 지식의 공정한 분배”라는 가치를 내걸고 전국의 대학에 ‘과학상점(science shop)’을 설립할 것을 공약한 바 있다. 참고로 네덜란드의 모든 대학은 등록금을 걱정하지 않는 국립이므로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과학상점’은 과학을 파는 곳이 아니다. 주민들이 마실 나가듯이 상점에 나가서 필요한 과학을 의뢰하는 곳이다. 대학과 공공기관, 민간연구소에 있는 전문 연구자들은 주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연구를 무료로 수행해 준다. 예컨대, “우리 동네에 흐르는 하천에 냄새가 나요. 분명히 근처에 있는 공장 때문인 것 같아요.” 라고 주민들이 과학상점에 의뢰를 한다. 과학상점의 코디네이터들은 기초 조사를 거쳐 ① 해당 의뢰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② 과학상점 이외에는 연구를 수행할 가능성이 없는지 등의 기준에 부합하면 의뢰를 수락하고, 대학과 정부가 마련해 놓은 재정을 활용하여 관련 분야 연구자들을 섭외한다.

과학상점은 속된 말로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여가를 활용해서 수행한 단순한 ‘재능기부’가 아니다. 과학상점은 하나의 운동이었고, 이 운동을 주도한 활동가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체득한 68세대들로, 이들은 68혁명 당시의 경험과 베트남 전쟁이 빚어 낸 파괴적 지식의 성찰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과학상점의 연구 결과가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지식은 사회 안에 있을 때 결코 홀로 객관적일 수 없으며,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상점 연구 의뢰를 수락하는 세 번째 기준이 ‘③ 그 결과를 활용할 주체적인 집단과 역량이 있는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기 과학상점 코디네이터들과 그를 지원한 연구자들이 연구가 종료된 이후에 벌어지는 각종 소송과 활동에 조력자로만 참여한 이유는 지식의 위력과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과학상점의 활동가들은 당대 지식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었으나 동시에 다수 시민들에 의한 사회혁신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4월 30일 대전에서는 ‘과학기술 + 사회혁신’포럼의 주최로 ‘리빙랩(living lab)’을 추진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린다. 리빙랩은 21세기에 과학상점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유력한 모델 중 하나다. 다른 점이라면, 과학상점이 생산하고 난 지식을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 반면 리빙랩은 진일보하여 지식의 생산 자체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취한다. 리빙랩은 초기 단계인 연구개발 소재 선정에 주민이 참여한다. ‘생활밀착형 주제’, ‘사회문제해결형 주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전문가가 연구개발 주제를 선정하면 전문성은 자연스레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걱정하지마시라. 문제를 가장 오랫동안 접하고 있는 자야말로 그 문제의 핵심을 가장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이들은 그것을 체계화하여 표현할 훈련을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범할 수 있는 사소한 해석의 오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므로, 스스로 주체가 되기를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바야흐로 ‘사회혁신’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혁신이 추구하는 바를 한 마디로 딱 잘라 정의하는 것은 고도로 추상화되어 있는 ‘사회’를 정의하고자 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회혁신이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 등등에 대하여 어느 것 하나도 손에 잡히는 질문-대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혁신이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 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과학상점 운동의 전통과 최근 리빙랩 설치 움직임 등은 연구집단이 해야 할 본연의 임무는 무엇인지, 사회혁신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혁신을 꿈꾸는 연구 집단이라면 응당 시민들을 주체로, 시민들을 위하여,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hwbanner_610x114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04.18김병권/새사연 원장

새 정부 임기 초반인데도 도대체 ‘비전’이 안 보인다. 취임 두 달이 가깝도록 장관 인선이 제대로 안 된 탓도 있을 것이다. 당 강령을 개정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던 경제민주화가 오리무중에 빠진 원인도 보태졌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제시된 ‘창조경제’의 실체가 더 불투명하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비전 실종’을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으로 가는 길이 미로가 돼 버린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IT와 과학기술을 지렛대로 한 ‘기술혁신’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자연 자원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 더 긴요하다는 사실은 수십 년 동안 반복됐던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난제를 기술혁신으로만 풀 수는 없다. 특히 지금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수요가 제약돼 있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창조경제’라고 명명하면서 비전을 제시했지만 국민에게 공감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혁신 이외에 지금까지 당연시 됐던 제도와 규칙을 바꾸려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당연시 됐던 관행들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였다. 발전이 지체되면 시장에 맡겨 경쟁을 촉진하자고 한다. 부실이 생기면 시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자고 한다. 고용이 문제가 되면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하자고 했다. 그것을 ‘구조개혁’이라고 하고 ‘경영혁신’이라고 했으며 선진화라고 불렀다.


그런데 십수 년 동안 의심 없이 추진됐던 일련의 ‘시장개혁’의 최종 도달점이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고 지금의 장기침체다. 이제는 시장에 모든 문제를 맡기는 개혁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의 실패를 통제하는 방향의 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시장이 초래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부채를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을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바로 시장을 향한 맹목적 개혁에서 벗어나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개혁이다.

 

과거에 이 과정은 오직 중앙권력을 지렛대로 해 국가적 수준의 사회구조와 제도를 전면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방식으로만 추진됐다. 진보세력이 사회변혁을 선호했던 것도 중앙권력에 의한 제도적 변화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지향이나 생활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은,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루기 어렵게 되었다.

 

21세기는 사람들의 일상 곁에서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이를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것이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과 결합되어야 한다. “생활 저변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고 사회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며 과거와 다른 해법으로 풀어내려는 실험과 시도”를 바로 ‘사회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기술 창안으로 이끄는 기술혁신이나, 경영과 관리 방법을 바꿔 기업의 능률과 생산성을 비약시켜내는 기업혁신과 비견된다. 다만 동기와 목표 추진 주체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영국의 유명한 사회혁신가 제프 멀건(Jeoff Mulgan)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동기로 유발되고, 1차 목표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런 조직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혁신적인 행동과 서비스”를 사회혁신으로 정의하고 있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실험됐던 참여예산제, 서민에 대한 소액 금융의 모델을 성공시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그라민은행 등이 대표적인 사회혁신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공정무역운동이나 오픈소스 운동 등도 사회혁신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혁신학교’ 확대 정책이 단연 사회혁신의 최고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공유 도시’ 개념도 사회혁신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모든 혁신이 그런 것처럼 혁신 양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혁신은 특히 ‘시장의 경쟁’을 대신해 ‘공동체’에 밀착되고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혁신이다. 특히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혁신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정점을 향해 달리던 지난해 10월에 박원순 시장이 던졌던 화두다. 기술혁신이나 경영혁신 등이 아니라 사회혁신을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혁신정책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하며 다산선생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민생을 돌보며 대안적 사회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 지금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만이 미래의 전망을 열어줄 시점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떤 혁신인가 하는 점이다. 기술혁신인가 사회혁신인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