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국내외 우수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새사연의 시각으로 해당 보고서의 한국정 함의를 찾고자 [추천보고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는 새사연의 2013년 연간 연구 과제인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어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2013 / 03 / 20 이은경/새사연 연구원

추천 보고서(8) 불평등의 잣대, 사회 이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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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사회 불평등과 사회적 이동성
2. 미국은 과연 기회의 땅인가
3. 불평등과 밀접한 사회 이동성의 감소
4. 미국 세대간 경제 이동성 보고서
5. 재분배 가로막는 사회 이동성에 대한 환상 : 복지국가의 정치학
6. 고착화되는 한국의 사회계층

 

 

[본  문]

 

1. 사회 불평등과 사회적 이동성

 

사회 불평등에 대한 입장은 매우 다양하다. 사회 불평등은 문제인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가? 사회적 개입의 목표와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상이 불평등에 대한 핵심 질문들이며 한 사회가 이 질문들에 어떤 합의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경제사회구조가 결정된다.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에서부터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효율에도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결과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지만 기회 불평등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우연적 요소나 개인의 불운이 아닌 개인 노력의 결과로 발생하는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기회의 평등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 역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기회의 평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기회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개입해야할 정책 수단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문제들은 논란 중에 있다.

 

기회의 평등은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 여부로 측정할 수 있다. 경제 이동성, 탈빈곤률 등의 지표에 근거해 개인의 일생에서 다른 계층 및 다른 소득수준으로 이행할 수 있는지, 부모와 다른 계층으로 이동하는 세대간 이동성이 있는지 등이 사회적 이동을 측정하는 주된 방식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성장으로 인한 경제성장은 인류에게 개인 일생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의 이동의 가능성과 부모세대보다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들어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심각하게 축소되기 시작했다. 많은 연구결과들은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 소득 불평등을 제일 큰 원인으로 제시한다. 미국은 스스로 세계에서 사회 이동성이 가장 크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사회이동성은 매우 낮은 독특한 나라이다.

 


2. 미국은 과연 기회의 땅인가

 

미국에서 이미 계층간 이동은 어려워지고 있다. 존 랜드리(John T. Landry)는 한 때 기회의 땅이었던 미국이 지금은 유럽보다 사회 이동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790년 미국 경제에 획기적 생산성 증가가 일어난 이유를 식민통치가 끝나고 계급사회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은 높은 교육비와 일자리 부족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게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계층간 이동의 역동성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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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01.23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드라마광이다. 특히 토요일, 일요일엔 어지러운 술자리 때문에 놓친 드라마 재방송을 보느라 어린 딸과 신경전을 벌이다 참다못한 딸이 “아빠가 아줌마야?”, 소리를 지를 정도다. 그래선지 드라마 1~2회를 보면 그 성패를 알아맞히는 경지에 이르렀다.

SBS <청담동 앨리스>. 요즘 내가 연구원에서 공부하다 말고 밤 9시경부터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때 맞춰 짐 챙기도록 하는 드라마다. 두 회를 남겨 놓고 스토리는 지지부진하고 ‘청담동’의 벽을 절감하도록 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도 이젠 식상해졌지만 마지막 회는 시청률 20% 언저리까지는 올라가지 않을까.

청담동은 말하자면, 새로운 귀족사회이다. 인화(김유리)의 말대로 디자인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해도 그들의 ‘안목’은 흉내 낼 수 없다. 인종이 다르다. 하지만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사회였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완전히 몰락했고 교육은 신분상승의 통로였다. 이런 역동성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지배계급이 생겨났고 이제 교육은 신분상승을 가로막는 벽이 됐다.

이때부터 세경(문근영)의 아버지 세대에게 부동산이나 주식 거품은 새로운 사회이동의 통로로 여겨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평생 흘린 땀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로 남았을 뿐이다. 이제 가난한 연인은 헤어지고 ‘청담동 앨리스’가 유일한 신분 상승의 길이 됐다.

▲ SBS <청담동 앨리스>

더구나 공부를 잘 못 했던 윤주가 보란 듯이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 있으니 세경에겐 결코 못 올라갈 나무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겨우 두 세대에 걸쳐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다 보니 아직 체념에 이르지 못한 절망은 더욱 더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이 상황은 한국에만 특유한 건 아니다. 지난 30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나라나 수출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그럼 수출이 잘 되지 않으면(모든 나라가 모두 무역흑자를 볼 방법은 없다) 국내수요가 줄어들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다.

그 탈출구는 당시 모든 규제를 풀어버린 금융이 제공했다. 돈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은행이 대출을 해 주고 신용카드를 뿌리면 된다. 저금리 상황, 그리고 저임금으로 남아도는 부자들의 돈은 집과 주식으로 향했다.

집값과 주가는 부풀어 오르고 이제 당장 빚을 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이 대열에 참여한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괜히 부자가 된 것 같으니 소비가 늘어난다(‘자산효과’). 소비를 무한정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지위재’(position goods)가 개발됐다.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고가의 상품이 그것이며 바로 아르테미스 장띠엘 샤 회장의 전략이기도 하다. 무슨 무슨 ‘캐슬’이 등장하고 명품 열풍이 불었으며 커피자판기는 전문점으로 대체됐다.

이런 소비의 유토피아가 지속 가능할까.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빚이 영원히 늘 수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게 비극이고 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만은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다는 허망한 자기 기만극은 2008년 금융위기로 막을 내렸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데도 청년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고, 청담동 바깥에 사는 노인들은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한다. 우울한 장기침체는 10년 이상 갈지도 모른다.

<청담동 앨리스>는 과장되었을지언정 현실이다. “줄푸세”의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으니 정책이 이런 현실을 바꾸지도 못할 것이다. 청담동과 그 바깥은 점점 더 벌어지고 언론이 이런 개인주의/소비주의를 계속 부추기는 한(이 드라마의 간접광고를 보라), 이미 붕괴된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아마 <청담동 앨리스>는 순수한 사랑의 승리를 답으로 제시할 것이다. 절망적인 벽을 뛰어 넘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드라마 속 대리만족으로 허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청담동이 아닌 곳에서도 앨리스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웅다웅 싸움도 하면서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다.

*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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