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30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올해는 지구촌이 대선의 계절인 것 같다. 특히 한반도 이해관계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많이 선거를 치른다. 지난해 12월, 북한 지도자의 사망으로 지도부 교체가 시작되더니 올해 1월에 대만 총통선거가 있었고 3월에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11월 6일에는 미국 대선이 있고, 11월 8일부터 중국 18차 당대회가 열린다. 11월에 이른바 G2 국가의 지도자를 다시 확정하는 행사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2월 19일 우리 대통령 선거가 있다. 2013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경제적 지형이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하거나 곡절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상당한 환경변화가 예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새로운 정책 비전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어 유감스럽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4대 성장론 안에 ‘평화적 성장’이라는 화두를 넣어 놓고 있고, 안철수 후보도 ‘복지, 정의, 평화’라는 가치를 자신의 비전으로 제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있다. 이 와중에 기껏 논쟁으로 부각되고 있는 한반도 이슈가 북방한계선(NLL) 관련 ‘선거용 북풍’이라는 것이 한심스럽다.

지난 1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새 천년을 열면서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남북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크게 신장한 것도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아시아가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일단 남북한이 그러하다. 10년 전만 해도 절반이 안 되던 북한의 대중무역 의존도는 2010년 처음으로 80%를 넘어섰고 작년에는 무려 89.1%를 기록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숫자다. 남쪽도 예외가 아니다. 10년 전까지는 수출의존도가 10%정도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홍콩을 포함하여 30%가 중국수출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을 합친 숫자보다 많다. 지금 한국경제 성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수출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경제가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 전체도 마찬가지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나 유로 통화권처럼,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공식적인 경제 공동체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역내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다. 한국의 경우도 중국 수출 30%에 아세안 수출 15%이상 등을 합치면 절반의 수출은 동아시아에서 소화된다. 또한 이미 3조 달러가 넘어선 중국 외환보유고와 일본의 1조 달러, 그리고 우리의 3천억 달러 외환 보유고 등 5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외환도 동아시아에 있다. 사실상의 위력적인 자연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협력과 통일을 향한 길은 이제 미국 이상으로 중국과의 관계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고립적인 남북 경제협력과 통일로의 발전은 이제 점점 더 비현설적 전망이 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의 형성과, 남북 경제 공동체의 형성이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경제 협력과 중국을 핵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 협력이 상호 보완적으로 동시에 추진될 때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실행 전략들이 도출 될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의 남북경제 협력 구상이나 동아시아 협력 구상을 다시 재검토해서 새로운 구상과 전략 틀을 짜야 함을 암시해준다. 그러나 아직 대선 후보들이나 정당들에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새로운 전략 틀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서 최근 유로 통합과 위기는, 21세기의 국가 간 공동체 형성과 연방 구성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상당히 다양한 시사를 던져준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짚어보자. 첫 번째는 민주주의 문제다. 각 국가 사이에 경제, 정치, 사회적 통합과정을 밟아가면서 얼마나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것인가와 함께, 각 국가의 시민들이 유럽의회나 유럽 집행위원회와 같은 통합된 대의기구를 통해 민주적 의사를 수렴하는가 하는 문제다. 특히 독일 시민과 프랑스 시민, 그리고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시민들의 민주적 의사를 어떻게 유럽연합 차원으로 수렴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유럽위기 상황에서 그리스나 스페인 등 남유럽 시민들의 민주적 의사는 철저히 무시되고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나 유럽 중앙은행이 일방적으로 남유럽 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유럽에서는 재정적자가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유럽 통합이 아니라 각 국가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유럽 통화동맹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비판적인 안목으로 세계화를 접근해온 선두주자이자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인 대니 로드릭(Dani Rodrick)은 유로 존이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세계화와 민주주의, 주권의 트릴레마’로 분석하고 세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다양한 시사를 주는 내용인데 그의 주장을 조금 길게 인용해보면 이렇다.

“미국의 사례가 말해주는 것에 따르면,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그리고 다른 미국의 주정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장통합을 하면서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면 (미국 연방정부처럼) 대표성과 책임성이 담보된 초국가적 정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가 각 국가의 국내적 정책을 우선 시행하는 권한을 제한하면서도 그를 보완할 수 있도록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민주적 공간을 확장해주지 않을 때, 민주주의와 세계화 사이의 갈등은 심화된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이 말해주듯이 유럽에서는 이미 이런 한계를 넘어서 잘못 접어들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정치적 트릴레마가 착목하려는 지점이다. 우리는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국가 주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셋 중에 두 개를 선택해야 한다.

유럽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정치적 동맹이냐 경제통합 해체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들이 명시적으로 경제 주권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자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경제주권을 사용하든지 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주권을 유로 차원으로 위임한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고, 민족국가 수준을 넘어선 유로 차원의 민주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을 수반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각 국가들이 통화와 재정 정책을 펴도록 하기 위해 유로 통화 동맹을 포기하는 것이다.”(대니 로드릭, “주권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Sovereignty”, 2012.10.8)

우리의 경우라고 예외가 될까? 남북한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남과 북의 각 정치 지도자들이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고 민주적 의지를 수렴해서 협력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직 남남 갈등을 조성하는 유치한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 모습이지만 향후에 통일기구와 같은 것이 만들어지게 되면, 그런 기구가 남과 북의 민주적 의사를 어떻게 공평하게 반영할 것인지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임을 지금 유럽의 경험에서 읽을 수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국가 사이의 공동체 형성에는 민주주의와 주권의 문제가 민감하게 다가온다.

두 번째로 신자유주의와 경제 공동체에 대한 문제다. 효율적 시장가설에 따라 오직 시장의 원리와 수익의 원리만을 가지고 사회를 조직하고 경제 공동체를 조직하려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이미 체결된 한.미 FTA, 그리고 추진 중인 한.중 FTA가 전형적으로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른 경제 협력 모델이다. 그런데 사실 유로 통화동맹 형성도 이런 맥락의 산물이었다. 물론 지금의 유로 통합 구상은 2차 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오래된 것이었다. 그 동안 유럽의 경제 공동체나 통화협력, 그리고 정치 군사적 차원에서의 다양한 실험들을 축적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후 추진된 유로 통화동맹 형성 자체는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발상의 산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통화체제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인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은 유로 통화동맹이 기본적으로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라는 구호아래 상품,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었다고 평가한다. 실제 1980년대 이래 약화되어온 경제를 부흥시키고자 유럽은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을 결성하기로 하고 1999년 통화동맹을 만들면서 유로화 체제를 출범한다. 그 결과 현재 27개국이 유럽 연합에, 17개국이 유로 통화동맹에 가입했다.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라는 구호아래 상품,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는 ‘유럽 연방주의’ 이상을 실현하여 전쟁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자유 시장’을 통해 경제를 도약시키려는 의도가 컸다.

그러나 규제 없는 자유시장과 시장의 자기조절 메커니즘이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서 붕괴된 것처럼, 상품과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유로 회원국가들 사이의 경제력 격차를 줄이고 하나의 통화로 경제권을 묶으려던 유럽식 자유 시장 실험도 기본적으로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유럽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향후 남북 경제협력이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모두에 있어서, 시장의 효율 논리만을 앞세운 접근법에서 기본적으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한.미 FTA나 한.중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적이고 구시대적 통상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리고 “공공경제와 사회경제에서의 교류도 함께 일어나야 한다. 각국의 공공성과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국가 간의 소득격차, 기술격차, 문화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사연, 『리셋 코리아』, 350쪽)

남과 북의 민의를 잘 수렴하는 협력과정, 그리고 시장 논리보다는 양자의 공익적 논리를 존중하는 협력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너무 상식적일 수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서 각 국가가 민주적 절차를 밟아서 동아시아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럽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실제 과정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이런 원칙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유럽 통합의 위기를 여러 모로 살펴서 교훈을 얻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글은 통일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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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20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20)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생태문제는 전형적인 공유자원의 비극을 안고 있다. 또한 집단행동의 딜레마가 작용한다. 이는 집단 공통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인은 나서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보통 나 혼자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 보호에 나서보았자 변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생태문제를 포용하지 못하는 경제학

우선 기존의 경제학이 생태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고 하는 사적유물론의 기본이다. 생산력이라는 것은 요새 경제학에서 얘기하듯이 함수로 정확하게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 측면과 물적 측면이 강하다. 생산관계는 사회적 관계이다. 물적 관계인 생산력과 사회적 관계인 생산관계는 언젠가는 충돌한다. 일본 사람들이 마르크스경제학을 도입하면서 흔히 했던 비유가 사람의 몸과 옷이었다. 몸이 커버리면 옷이 안 맞게 되어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생산력이 커지면 생산관계가 바뀌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생산이 재생산되면, 그것을 생산할 때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인 생산관계도 재생산되고 그 둘이 부딪히면 혁명이 도래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생산관계가 제약조건이 된다.

그러나 생태문제, 환경문제는 단순히 생산관계의 한계를 넘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생산력의 과도한 발달로 자연자체가 붕괴하는 것이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사고 속에서는 생태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도 생태문제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속류적인 해석을 많이 하기도 하고, 마르크스 자본론의 구절을 이용한 생태마르크스주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마르크스 자체로는 생태문제를 다룰 수 있는 틀은 없다. 사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자연 자체가 문제가 되던 시대는 아니었다.

마르크스 이전에 자연문제를 다룬 사람으로는 인구론을 이야기한 맬서스(Malthus)가 있다. 맬서스는 토지는 한계가 있지만 인구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위기가 온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거나 위생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열악한 채로 두어서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지식인들은 이에 환호했다. 하지만 맬서스의 우울한 예언은 붕괴했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돌파한 것은 기술, 결국 자본이었다. 자본이 맬서스의 우울한 예언을 극복했다는 사실은 경제학자들의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한계를 믿지 않는다. 계속해서 기술적 발전이 진행되면 한계를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두 번째는 케인즈 경제학이다. 케인즈는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소책자를 낸 적이 있는데, 우리 손자 세대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살 수 있을 것이므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케인즈가 1946년에 죽었으니, 이미 케인즈의 손자 시대는 도래했지만 지금 우리의 삶과는 매우 다른 상상이었다. 어쨌든 케인즈는 미래에는 생산력이 발전해서 노동시간을 줄어들 것이가고 보았다. 단 하나 총수요 감소가 가장 큰 문제로 남을 것인데 이는 국가가 나서서 거시경제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케인즈가 우려했던 총수요의 문제는 지금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환경이라는 새로운 문제도 등장했다.


 

생태문제도 외부성의 하나로 취급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의 해결책은 간단하면서도 최악이다.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애로우의 일반균형이다. 자연자원이 희소해지면, 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 소비는 줄고 생산은 늘어나서 다시 균형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맞을 때도 있다. 실제 70년대 석유파동이 생겼을 때 유가가 상승하자 에너지 절약 기술이 많이 등장했고, 경차가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통해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시장을 통한 해결이다. 더 극단적인 방법은 아예 자연자원을 거래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물과 공기는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재(free good)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물도 다 판매하고 있다. 공기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아니, 공기도 판매상품으로 만들어 환경문제를 해결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자연조차 제공되지 않는 심각한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주류경제학에서 환경문제는 외부성의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것, 시장 밖에 있는 것이 외부성이다. 외부성을 해결하는 대표적 해법은 피구세이다. 공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확한 공해의 양,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공해의 양, 공해로 인한 피해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환경문제가 가져올 피해와 비용은 측정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가져올지 아무도 측정할 수 없다.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적절한 실행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은 인천공항철도이다. 비용은 건설비가 대부분이니 측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편익은 예상 승객수이므로 측정이 어렵다. 초기에 승객을 100명이라고 예상하고 건설했다면, 실제로는 9명 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4대강 건설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은 어떠할까? 이는 인천공항철도보다 더 어렵다. 측정하기 어려운 환경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장실패론, 정의론, 엔트로피 이론의 결합

앞서 공공경제는 시장실패론에 정의론이 결합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생태경제는 역시 시장실패론에 정의론이 결합되는데, 특히 세대간 정의가 추가된다. 환경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세대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동시대를 살고 있는 노인과 아동 세대간의 정의라면 민주주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민주주의 중에서도 단순히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해결한다면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아동 세대가 불리하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공동체 내에서 충분한 토론을 진행하는 숙의민주주의를 통한다면 아동세대까지 고려한 적절한 자원의 배분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래세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도 없다. 따라서 투표든 토론이든 진행할 수가 없다. 부모가 제 자식을 사랑하고, 제 손주를 사랑한다 해도 아주 먼 미래의 후손들까지 완벽히 고려할 수는 없다. 어떻게 세대간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생태경제를 논할 때 등장하는 큰 문제 중 하나이다.

생태문제를 다룰 때는 세대간 정의를 포함한 정의론에 이어 또 한 가지가 추가되는데 바로 엔트로피 이론이다. 생태문제란 자연의 한계에 봉착하여 발생하는 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열역학을 통해 물질의 흐름을 다루는 엔트로피 이론이 추가된다.

이를 경제학의 생산함수에 반영한 이가 제오르제스쿠 로에겐(Georgeseu Rogen)이며 저서로는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 과정>이 있다. 경제학의 생산함수는 간단한다. 노동(L)과 자본(K)을 투입해서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Y=f(K, L)

제오르제스쿠는 여기에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열역학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추가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열은 한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즉, 뜨거운 것은 차가워지지만 차가운 것이 뜨거워지지는 않는다. 투입물로 노동(L), 자본(K)과 함께 자연자원(R)을 집어 넣는다. 산출물로는 생산물(Y)과 함께 쓰레기(W)도 나온다고 보았다. 그래야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열역학 법칙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Y+W=f(K, L, R)


 

기술과 자본이 자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시스템은 중요한 두 가지 흐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생산과 소비를 통해 가격이 재생산되는 화폐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활동자체의 기반으로 생태계에서 경제계로 투입되어 물질이 재생산되는 엔트로피의 흐름이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은 전자만 주목하고 후자는 무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생태학자 댈리는(Daly)는 주류경제학이 생물체의 신진대사과정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혈액순환과 같은 순환기관만 연구하고 외부환경과 연결되는 투입과 배설에 해당하는 소화기관에 대한 연구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맬서스의 우려를 극복한 기술, 자본으로 돌아간다. 생산요소 간에는 대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자원을 자본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지는 비옥하지 못해도 농기구나 농약을 통해서 생산력을 높이는 경우이다. 이는 솔로우(Solow)와 스티글리츠(Stiglitz)가 제시한 것으로, 주류경제학의 환경문제 해결방법이다. 생산함수를 Y=f(L, K, R)로 하되 결국에는 최적화된 노동(L), 자본(K), 자연자원(R)의 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L)과 자본(K) 같은 다른 투입요소가 충분히 커지면 자연자원(R)의 최적량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금까지의 기술진보는 이러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에 대해서 댈리(Daly)는 다시 비판한다. 첫째, 자연자원은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 기술이나 자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자연자원이 존재한다. 공기와 같은 것이 그렇다. 이렇듯 자원 간의 대체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y)의 특징이다. 이를  강한지속가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주류경제학의 한 분야인 환경경제학(biological economy)은 대체가능성, 약한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환경경제학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을 주장한다면, 생태경제학에서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도 실은 재생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재생가능한 에너지인 풍력 발전을 하기 위해 풍력발전소를 짓는 과정에서 또 많은 재생불가능한 자본과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그 어떤 것도 완벽히 재생가능하지 않다.


 

미래세대를 얼마나 아끼는가? 할인율 논쟁

대체가능성 여부와 함께 주류경제학에서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할인율이다. 생태경제의 중요 개념 중 하나로 지속가능성이 있다. 이는 UN의 환경과 발전에 관한 세계위원회(WECD: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에서 1987년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위원장이었던 노르에이의 여성 수상 브룬트란트(Brundtland)의 이름을 따서 브룬트란트 보고서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애로우는 이 보고서에 서술된 지속가능성을 구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든다. t 시점에서 현재세대의 효용과 할인율을 적용한 미래세대의 효용을 구하여 그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총효용을 구하는 수식이다. 효용은 소비함수를 통해서 구했다. 할인율이란 쉽게 말해 미래세대의 효용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이다. 할인율이 작을수록 현재세대의 효용만큼 미래세대의 효용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할인율이 클수록 미래세대의 효용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의 할인율은 100%이다. 따라서 이 수식을 계산함에 있어서 과연 미래세대를 얼마나 고려해야 할 것인가라는 할인율의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브룬트란트 보고서와 함께 생태경제학에서 또 하나 중요한 보고서로 꼽히는 것이 2007년에 나온 스턴보고서(Stern Review)이다. 2006년 영국 정부는 수석 경제학자 스턴에게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고서를 부탁했다. 보고서에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함께, 지금 당장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1%에 불과하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그 비용은 5~20%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보고서에서도 위의 수식을 계산하는데, 할인율을 1.5%로 잡았다. 이는 매우 낮은 수치로 미래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당장 줄여야 할 소비의 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할인율을 놓고 논쟁하고 있다. 학자마다 그 수치가 매우 달라서 1.5%에서 90%까지 이른다.

경제학자들이 논하는 효용함수는 너무 매끄럽다. 그 매끄럽게 잘 닦인 세계 속에서 경제학자들은 할인율 구하기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거의 자연의 한계에 직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식의 계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방우선의 원칙과 다중심적 접근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예방우선의 원칙이다. 어차피 우리는 환경문제가 가져올 정확한 피해와 비용을 측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선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다. 환경문제, 건강문제와 같이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일수록 이런 원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예방우선의 원칙과 반대되는 것이 사전증명의 원칙이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문제가 발생할 것임을 증명해야만 그것이 결정과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FTA에 적용되고 있는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인지를 증명해야만 그것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다중심적 접근이다. 이는 공유자원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하여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이 제시한 방법이다. 기후변화 같은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 세계가 힘을 모으는 것이다. 도쿄협약과 같은 것을 체결하고 모든 나라가 이를 준수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한 토론과 협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전 세계적 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두 손 놓고 앉아서 기다린다면 인류는 진짜 망한다. 개인, 가족, 학교, 마을, 도시, 국가, 세계로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층에서 저마다의 실천이 진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작은 단위일수록 실천이 쉽다. 그 실천에 의해서 상위단위가 기존의 정책을 바꿔나갈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를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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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19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거시경제정책 없이 복지국가도 없다.

그러면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거시경제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흔히들 복지국가가 되려면 진보정당과 노조가 강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복지국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진보정당과 노조가 강력하지 못해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니계수는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데, 가장 불평등한 상태가 1이고 완벽하게 평등한 상태가 0이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1986년경부터 개선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나빠진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도 지니계수는 계속 악화되었다. 다만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의 차이가 벌어졌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시장에서 소득이 배분된 그대로를 의미하며,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세금을 걷고 보조금을 지급해서 어느 정도 재분배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에는 복지를 통해서 시장소득에 비해 가처분소득이 좀 더 평등한 상태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지니계수 자체는 여전히 상승하였다. 불평등은 계속해서 심화되었다.

복지국가는 결국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그대로 둔 채, 복지 재정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지니계수가 이를 보여준다. 결국 초기의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자체가 높지 않아야 한다. 시장에서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이 바로 거시경제정책이다. 따라서 진정한 복지국가 건설을 꿈꾸는 이라면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계획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 중 거시경제정책을 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세계 경제는 대침체(Great Recession)에서 장기침체(Long Recession)으로 변화하고 있다. 장기침체란 일본경제와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2%대이고, 특히 선진 경제권인 미국, 유럽, 일본 등이 모두 침체 상태이다. 이런 상태가 앞으로 10년 이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간 수출에 의존해서 경제를 이끌어왔던 한국은 세계 경제의 침체에 바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도 올해 2%대의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위의 그래프는 위기가 발발한 후 고용 수준이 위기 발발 전으로 회복되는 시기를 그린 것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는 회복되는데 18개월 그러니까 1년 반이 걸렸다. 1981년 위기는 2년이 걸렸다. 그런데 2007년 위기는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가 장기침체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거시경제정책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거시경제정책은 수출주도 정책이다. 수출주도 정책은 한 축은 임금을 중심으로, 다른 축은 환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우선 수출을 할 때 국내 임금은 낮을수록 좋다. 그래야 생산비용이 줄어들면서 수출에서 가격졍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인 생산측면에서의 비용인 동시에 수요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아서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 입장에서는 우리 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비용이니까 낮추고 싶지만, 남의 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수요이니까 높아지기를 바란다.

또한 수출을 할 때 환율은 높을수록 좋다. 환율이 높다는 것은 원화가치가 낮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달러가 1000원일 때보다는 1달러가 2000원 일 때가 원화가치가 낮으며, 같은 상품을 수출해도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대신에 수입 물가는 높아지게 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에는 부담이 된다. 우리나라의 환율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11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유입된 돈이 많았다. 국내에 자본이 들어오면 한국 채권이나 주식을 사야 하므로 원화의 수요가 증가하고, 원화가치가 높아지면서 환율은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일정 수준의 환율을 유지했다는 것은 수출에 유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달러를 매입하면서 환율에 개입했다는 뜻이다.

수출대기업에 유리하도록 환율은 높이고 임금은 최대한 낮추는 것, 이게 우리의 거시경제정책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세계 경제의 침체로 수출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전 세계의 제품을 수입해주던 미국마저 수출로 돌아서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환율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상대국가가 환율을 조작한다고 판단될 때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는 법이다. 한마디로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이 환율법은 중국을 겨눠 제정했겠지만, 막상 중국을 향해 시행하기에는 부담이 될테니 만만한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가장 먼저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환율은 절상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 절상하면 환율의 가변성이 너무 커져 불안정하다. 적절히 규제해서 환율이 서서히 절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통제가 필수적이다. 자본통제는 국경을 넘는 자본에 대한 규제를 뜻한다. 자본통제에서 중요한 것은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다. 이제까지는 해외자본이 국내에 들어오면 투자가 늘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해외자본이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투자를 하기보다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스며들어 주가와 부동산 가격에 거품을 형성했다. 무리한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토빈세, 외환가변유치제 등의 제도를 통해서 유입되는 자본을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하면 아무 실효성이 없다. 해외 자본 입장에서는 자본통제를 하지 않는 다른 국가로 이동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차원에서 함께 자본통제를 실시하여 안정적인 환율과 거시경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안 하면 우리 경제는 뭘 먹고 살아야 할까? 임금을 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요를 늘려서 내수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면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지만, 사실 우리보다는 중국의 임금이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 약화는 심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도 내수가 늘고 임금이 올라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80년대 중반이다. 당시에는 재벌이 현재처럼 중소기업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던 시기였으며,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생산성 증가가 임금 증가로 이어져, 소비와 저축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던 때이다. 다시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

원하절상과 임금인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산업 구조조정도 이루어진다. 원화절상과 임금인상은 내수 중소기업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내수 중소기업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산업정책의 내용이 될 것이다. 결국 핵심은 앞서 보았던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산업지구를 10년 안에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는 하청단가 문제나 높은 부지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산업정책을 계획할 때 고려해야 할 점 몇 가지 꼽자면, 우선 여전히 제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융허브론이나 서비스선진화론 등 다양한 주장이 있었지만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았다. 우리 경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동아시아 국제분업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제조업에서 첨단제품을 시험하는 지역, 중국 수출의 관문과 가튼 역할을 맡아야 한다. 두 번째로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해야 하며, 동아시아 내에서 기술 선도자로 역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기술 학문과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자본통제와 자산세를 통한 자산가격 안정화

복지국가 건설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거시경제정책은 자산가격 안정화이다. 현재 한국에서 대표적인 자산은 부동산과 금융이다. 그리고 사실 부동산과 금융은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동산 시장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건설경기부양 정책으로 겨우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자산가격의 거품이 심해지면 자산소득에 따른 양극화가 심해진다. 또한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라는 점에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안정적인 복지국가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

이제 한국은행은 핵심 목표를 물가 안정에서 자산가격안정으로 잡아야 한다. 자산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앞서 지적했듯이 국내에 과다한 자본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본유입통제를 실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부동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시키고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재분배하기 위해 자산세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중산층 이하 가정은 부동산 대출 부담과 함께 높은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 대출과 함께 사교육비는 가계가 저축을 하거나 넉넉하게 소비하지 못하는 최대 요인이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하는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사실 부동산, 금융, 교육비는 확장하여 생각하면 토지, 돈, 인간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이는 폴라니가 상품이 되어서는 안되는 세 가지 요소 사람, 자연, 돈이  상품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던 부분과 상통한다.

내수중심, 임금주도 경제로의 전환과 자산가격 안정화라는 거시경제정책을 토대로 하지 않은 채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시장에서의 양극화를 교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부어도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정 돈을 쏟아 부으면 재정적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경제로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대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다른 경제성장, 경제유지 방식을 찾아야 한다.


보편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원칙

흔지 복지논쟁이라 불리는 것의 쟁점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편복지냐 잔여복지냐의 문제이다. 둘째, 재원조달을 위한 증세가 필요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셋째, 증세를 한다면 부장증세이냐 보편증세이냐의 문제이다.

첫째 쟁점은 무상급식에서 출발했다. 보편복지는 복지의 주체가 국가이며 전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잔여복지는 가정과 시장이 복지의 중심이며, 가정과 시장에서 감당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만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잔여복지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 절차가 바로 자산조사이다. 보편복지는 사회권을, 잔여복지는 재산권을 강조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잔여복지를 선호한다. 가장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중해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본다. 또한 보편복지의 경우 공유자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무임승차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여복지의 문제는 가장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한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낙인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보편복지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거를 보편복지화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 국민에게 똑같은 집 혹은 돈을 주는 것인가? 의료의 보편복지는 무엇일까? 의료수당을 똑같이 주면 되나? 교육의 보편성은 무엇인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일까? 대학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일까? 사실 보편복지는 간단하지 않다. 하나하나 제공되는 서비스에 따라서 경제학자와 사회복지학자들이 모여 고민해야 한다. 앞서 공공성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재화를 하나씩 살펴보았던 것처럼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이기적이고 단기적 인간이라면 만들 수 없는 엄청난 것이 보편적 복지이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보편적 복지를 위해 돈을 낼까? 이 문제는 이전에 살펴보았던 공공재게임과 똑같다. 공공재게임이란 각자 공공계정에 돈을 모았다가, 모인 돈이 일정 수준으로 증가하면 공평하게 돌려받는 게임이었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남들이 공공계정에 돈을 내도록 기다리고, 자신은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나중에 불어난 돈을 분배받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기적 인간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면, 점차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공공계정에 돈을 내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결국 기본적으로 조세의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모두가 세금을 공정하게 내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공짜로 복지를 제공받는다는 사실보다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것에 더 많이 분노한다.

세부적으로는 첫째, 복지목적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열심히 세금을 냈는데 엉뚱한 곳에 돈이 쓰인다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복지목적세를 도입하여 세금을 내면 반드시 복지에 쓰이도록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약속이 정권이 바뀌면 바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을 위한 세금을 만들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이것이 4대강 세금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가 필요하며, 장기적 정책을 위해서는 내각제 개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세금은 올바른 곳에 쓰일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둘째, 공평과세를 실시해야 한다. 무작정 세율을 높이는 것보다 탈세를 막아서 모두가 공평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무임승차자를 방지해야 한다. 이는 사회규범이 어떻게 확립되어 있느냐의 문제이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펼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무임승차를 줄여가야 한다. 넷째, 복지 전달의 주체로 지자체를 잘 활용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국가가 담당할 필요는 없다. 국민들에게 직접 전해지는 복지의 말단 부분은 지자체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 간의 경쟁을 통해 복지 전달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지자체와 지역의 사회적 경제가 결합하여 좀 더 지역 주민들과 친근한 관계 속에서 복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20)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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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1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복지국가, 국가에 의한 공공성 실현

오늘은 지난 시간의 공공경제에 이어서 보편 복지국가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앞서 공공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공의 가치(public value)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현존하는 철학자들을 모두 동원해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공공의 이성(public reason)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공공의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되고 나면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공공의 가치로 모두의 건강을 위해 1인당 하루 사과 두 알을 먹는 게 좋다고 합의되었다면, 이제 사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사과 두 알씩 사먹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만약 사과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보조금을 주고, 사과 물량이 부족하다면 과수원에 보조금을 주면 된다. 사실 많은 문제들이 시장에서 해결하고, 국가가 세금이나 보조금을 주어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해결 방식이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생산력을 무한히 발전시켰다. 이를 가장 많이 칭송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력 발전이며, 이는 경쟁, 끊임없는 무한의 욕구, 화폐의 축적, 자본의 탄생을 통해 가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가 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맡길 것인지, 둘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등이다. 공공경제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 학문은 행정학인데, 이 분야에서 80년대 이후 주류로 등장한 이론이 신공공관리론이다. 이는 결국 관료나 정부기구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되도록 민영화하고 규제완화를 해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신공공관리론이 퇴조하고 공공가치행정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공공의 가치를 민주주의 방법으로 실현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이다. 공공성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이 시장실패의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해결책도 다르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용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뜯어보기

이런 공공성을 국가단계에서 가장 잘 실현한 것인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가장 성공한 보편적 복지국가는 스웨덴이다. 사실 스웨덴 모델은 한 번 실패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스웨덴 병 또는 복지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90년대 초반에는 스웨덴 뿐 아니라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외환위기를 맞는다. 93년에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설계자인 마이드너(Meidner)가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95년경부터 다시 부활해서 지금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로도 불린다. 렌과 마이드너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LO(노동조합연맹)의 경제이론가이다. 이들은 직접 임금중앙교섭에 들어가며 LO의 경제정책을 만든다. 스웨덴은 LO와 사민당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LO는 한 때 노조조직률이 93%에 이르렀고 지금도 70~75%에 이른다.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LO와 관련된 셈이다. 이런 LO를 기반으로 하여 사민당은 지금까지 약 90년 정도를 집권해왔다. 현재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사민당이 얻는 득표수는 약 35% 정도라 언제나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한다. LO과 정책을 만들면 대부분을 사민당이 정책에 반영한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참 기가 막힌 모델인데 한 마디로 연대임금정책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경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경제의 문제는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직장이 함께 임금협상을 하는 중앙교섭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체 자본가 대표와 전체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산업별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표로는 LO가 나온다.

이렇게 조정했을 때 제일 손해를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이다. 이 정책이 관철된 이것이 관철되던 60년대 스웨덴의 수출대기업은 자동차, 철강, 조선업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대자동차, 포스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제일 이익을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자본가이다. 생산성 보다 낮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이익 보는 것은 수출대기업 노동자로부터 임금을 이전받은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이다. 반면 내수중소기업 자본가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므로 손해를 본다.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 기금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먼저 그래프 오른쪽의 빗금 친 부분은 내수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내수중소기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고용 인력을 줄이고 혹은 파산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래프 왼쪽의 빗금 친 부분은 수출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준 결과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스웨덴은 역시 기가 막힌 해법을 냈다. 첫 번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요즘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도입되었지만 스웨덴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굉장히 관대한 실업보험을 기초로 하며, 모든 노동자를 재교육 시켜서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기업 노동자로 이직시키는 것이다. 이를 전부 노동조합이 관리한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하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지역별, 산업별 실업보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겐트(Ghent)라 했는데, 이미 존재하던 것을 국가가 통합했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노조에게 맡겨놓았던 것이다. 스웨덴 노조의 가입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LO 소속이 되면 실업보험에 가입되고, 퇴직하면 LO의 관리 속에서 재교육과 이직을 할 수 있다. 노조가 실업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 불렀다. 이는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임노동자 기금이 도입되었다. 이는 초과이윤의 20%를 신주로 발행하여 노조가 소유하도록 한 제도이다. 신주의 20%를 노조가 계속 소유할 경우, 2~30년 지나면 모든 기업이 노조의 소유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매우 창의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가들의 반대가 격렬했고, 이 제도에 대한 입장을 놓고 사민당도 3개파로 찢어지고 말았다. 결국 LO와 사민당의 관계는 서먹해졌으며 끝내 사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여 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기금을 바탕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실현한 것이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스웨덴 경제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을 수 있었으며 사회주의로의 장기 전망도 세울 수 있었다.

흔히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을 따른다. 렌과 마이드너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완전고용과 함께 렌과 마이드너가 신경썼던 것은 임금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전후 유럽의 부흥사업을 통해 수출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고 임금도 상승했다. 그런데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완전고용과 물가는 상충함을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존재한다. 즉, 물가가 상승하면 완전고용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연대임금을 생각해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모습인데,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면서까지 거시경제정책을 고려한 것이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했던 렌과 마이드너의 경험은 독특한 물가상승이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부흥사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수출대기업의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전반적인 임금과 물가 상승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론이다. 이렇듯 스웨덴 모델은 처음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세금을 많이 걷어서 재정흑자를 유지했다. 소득과 자산에 따라 차등적 세금을 부과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했다. 모든 사람이 비용을 내고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재정흑자를 유지하며 물가상승 억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 때 렌-마이드너 모델은 순수한 케인즈주의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스웨덴 모델의 붕괴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스웨덴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국 등과 비교해서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떨이지고, 외환위기 등까지 겪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류경제학자들은 스웨덴 병을 운운하며,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의 노동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업수당으로 월급의 80%가 지급되고, 특별한 절차 없이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사실 보편복지국가는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세금을 내는 문제에서는 공공재 게임이 그대로 적용된다.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어느 정도 복지병이 나타난다. 독일과의 축구 중계가 있는 다음 날이면 직장인들의 병가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이는 미시적 요인일 뿐이다. 이것만으로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사실 스웨덴이 위기를 겪었던 근본 원인은 거시경제정책의 문제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고환율 정책이다. 수출의 비중이 컸던 탓에 경기가 나쁠 때마다 환율을 조정했다. ‘1달러=1000크로나’일 때와 ‘1달러=2000크로나’일 때를 비교한다면 후자의 경우가 수출할 때 더 유리하다. 따라서 통화가치 하락 정책을 편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금리자유화, 개방, 조세개혁이 실시된다. 이 중에 가장 큰 요인이 금리소득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준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 자본은 늘어나고 규제와 세금은 줄어들면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서 90년대에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규제 강화에 나선다. 최저임금법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륙의 노동규제, 노동자 보호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실제 법과 제도 상으로는 약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권을 거의 늘 사민당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를 경직적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노사타협으로 운영되던 중앙교섭이 깨진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금속노조이다. 이제까지 수출대기업이 희생해왔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더 이상 희생을 견디지 못하고 교섭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편복지도 어려워진다.

마이드너는 이런 상황을 반성하며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쓴다. 그는 통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계속되면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애써 희망을 찾으며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과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스웨덴 노동운동의 힘이었으며, 이를 다시 회복할 때 복지국가도 부활할 것이라고 보았다.

 

스웨덴은 어떻게 부활했나?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은 부활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EU에 가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고정환율제가 되었고,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긴축을 단행한 덕분이었다. 세부적으로는 결렬되었던 중앙교섭이 산업별, 지역별로 분권화되어 부활했으며, 연대임금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본가들의 요구가 컸다. 기업별 교섭이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임금이 인상되고 돌발적인 파업이 일어나면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서비스에 의한 고용율 회복도 경제 회복에 큰 힘이 되었다. 스웨덴의 완전고용이 위협받을 때 가장 강력히 버텨준 것이 사회서비스 분야이다. 스웨덴의 복지는 보편현물복지로 교육, 의료, 보육, 돌봄 등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모두 공무원이다. 사회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공무원도 늘어나고, 고용율도 올라갔다. 또한 현재 LO의 주축세력 역시 공공노조이다. 우리의 경우 현물복지가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수당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간시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이 보육비의 증가, 보육원의 수입 증가로만 이어진다. 아동수당이란 결국 수요 쪽에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수요곡선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즉, 시장에만 맡기고 보조금을 주면 가격이 올라간다.

성평등 정책과 평등교육을 강화하여 여성 고용율을 높이고 IT와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높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보편복지가 가능하려면 고용율이 높아야 하고, 여성 고용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안정적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경제가 안정되어야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 세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안정, 물가 안정 등을 통해 경기가 증폭되는 것을 억제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위기로 그 중요성이 대두된 자본통제나 금융규제, 투기억제, 자산가격 안정 정책들은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복지국가의 성패는 안정적 거시경제정책의 마련에 달려있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이다. 여기에 더불어 보편적 복지국가가 공유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무임승차를 줄여갈 수 있는 신뢰와 협동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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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12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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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공공선택이론과 사회선택이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공공성은 각 집단 고유의 ‘정의’ 관념에 입각하여 사회적 공론에 의해 결정된다. 공공성은 시장실패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에서 인정하는 시장실패로는 외부성, 공공재, 독점의 3가지가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실패에 대해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해결책은 시장과 유사한 방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공공재에 대해서는 린달균형(Lindahl equilibrium)이란 것을 통해 해결한다. 린달은 스웨덴 경제학자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 수요 곡선은 개별 수요 곡선을 합하여 구한다. 예를 들어 음료수 한 병의 가격이 500원일 때 각 사람마다 원하는 개수를 구한 후 다 더한다.  하지만 공공재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비배재성과 비경합성이라는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화가 공급되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소비가 가능하다. 즉,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린달이 내놓은 해법은 수량이 정해져 있을 때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을 더해서 가격을 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공공재의 경우 사람들이 자신의 선호, 자신이 필요한 재화의 양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린달균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물론 이 경우 정부실패의 결과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독점의 경우, 경쟁을 도입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독점의 경우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 자연독점이란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한계비용이 계속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IT산업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경우 복제비용은 0원이다. 그렇다면 최대로 생산하여 0원에 파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가장 이로운 상태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지적재산권 등을 도입해서 가격을 상승시킨다. 이 외에도 네트워크 산업이라 불리는 전기, 철도, 수도, 가스, 운편 등도 모두 자연독점이다. 이 같은 자연독점은 그 자체를 분할시켜서 독점을 해결하려고 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가격규제를 한다.

외부성의 경우, 피구라는 영국의 경제학자가 해법을 제시했다. 긍정적 외부성을 창출하는 외부선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고, 부정적 외부성을 창출하는 외부악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서도 설명한 바 있었던 피구 해법이다. 그에 비해 코즈는 재산권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비용과 편익을 계산할 수 있다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개인들끼리 거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코즈 정리를 내놓았다. 코즈 자신이 그렇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자들은 코즈 정리를 국가 개입 배제의 원리로 사용해왔다.

위의 세 가지 해결책을 종합한 것이 주류경제학의 공공경제학에서 가르치는 공공선택 이론이다. 대표적 학자는 뷰캐넌(Buchneon), 털럭(Tullock)이 있다. 공공경제학의 내용은 결국 시장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학도 사회선택이론에서 애로우(Arrow)와 센(Sen)이 정의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선택이론이란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사회전체적인 복지와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원배분 절차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개인이 모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려도 사회 전체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후생경제학자이며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로우는 일관성, 만장일치, 비독재성, 보편성, 독립성 등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5개 기본조건을 충족시키는 절차는 없다는 불가능성의 원리를 내놓았다. 이는 다시 말해 인류가 이성으로 사회 전체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체제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1998년 아시아인으로서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센은 정교한 수리모형을 개발하여 앞의 5개 조건을 계량화하여 사회전체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개개인의 효용의 합이 가장 크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후생을 극대화하면 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와 함께 센은 그동안의 경제학이 주로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주된 목표로 삼았으나 앞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 정의라는 정치사회학적 요소도 함께 고려해 분배정의 실현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성을 갖는 재화의 종류

구체적으로 공공성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를 분류하고, 그 성격에 맞는 공급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공공재와 공유자원

공공재와 공유자원은 사회적 딜레마에 속하므로 명백히 공공성을 지닌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는 공급할 수 없거나 자원 고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공공경제나 사회경제에서 공급하거나 관리해야 할 분야이다.

2) 필수재(necessary goods)

식량, 의료 등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나 서비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 이상이 공급되어야 한다고 합의하는 재화이다. 수요곡선의 균형가격 아래에 생기는 수요, 다시 말해 돈이 없어 소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시장의 근원적 한계이며 이는 아담 스미스와 마샬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재화의 공급에는 국가재정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3) 네트워크재(network goods)

네트워크재는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한계비용은 감소하고 한계효용은 증가하는 산업을 말한다. 이에 따라 기술적 자연독점이 발생한다. IT산업이나 전기, 철도, 수도, 가스, 우편 등 네트워크를 가진 산업들이 이런 성질을 가진다. 우리가 흔히 공공서비스라고 부르는 산업이 여기에 속한다. 대부분의 네트워크재는 필수재에 속하므로 평등의 요구가 강해서 교차보조금을 주어 지역별, 계층별로 고른 공급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또 초기 설립비용이 커서 국가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4) 가치재(merit goods)

머스그레이브(Musgrave)는 예방 의료, 의무 교육 등 개인에게 맡겨 둘 경우 과소소비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가치재로 정의했다. 최근 행동경제학이 밝힌 것처럼 인간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 대단히 높거나 자신에 대한 낙관이 과도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재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의료, 교육 등은 국가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음의 가치재는 똑같은 이유로 과잉소비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음주, 흡연이나 도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각 가치재의 성격에 따라 국가가 공급하거나 사회적 보험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 사적 공급을 하되 규제하는 방식(예컨대 죄악세를 부과하는 경우). 사회적 유도와 권장 등이 제시된다.

5) 안보재(security goods)

안보재란 식량, 에너지, 국방 등 국가나 공동체의 안보에 필수적인 재화를 말한다. 시장이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가격의 변화와 함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데, 안보재의 경우 이 같은 불안정한 상태를 허용할 경우 개인이나 공동체, 국가가 존립의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국가나 공동체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6) 체제재(system goods)

금융, 언론 등 사회경제 체제를 구성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체제는 그 자체로 공공재이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최근의 세계금융위기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이라는 규제 대상을 설정하여 금융이 체제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거시 건정성 규제(macro prudential regulation)라는 새로운 규제수단을 채택하도록 했다.

한편 언론의 경우 민주주의는 공공재이며 언론은 민주주의의 존립에 필수적인 재화라는 점에서 체제재에 속한다. 그러나 언론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므로 공공성이 강하다 하더라도 국가가 소유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공공성을 관철시키는 방식은 시민의 참여와 협동이 되어야 한다.

7) 기타

공공성은 사용가치의 특성에 주목하며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폭넓고 다양하게, 또 구체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공공성을 지닌 재화의 목록은 상식에 기초한 아주 소박한 설명이다. 더구나 시장실패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므로 미래에 새롭게 등장할 공공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검토해 볼만한 이론을 몇 가지 더 소개하면 우선 사회철학자 테일러(Taylor)가 제시한 환원할 수 없는 사회재(irreducibly social goods)라는 개념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런 사회재는 시장 밖의 조직인 국가나 공동체, 협동조합 등 사회경제, 자선단체 등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 효율과 평등을 높일 수 있다.

다음으로 이탈리아 경제학자들이 강조하는 지위재(position goods)와 관계재(relational goods)가 있다. 지위재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되는 재화이다. 소위 말하는 명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사회적 분리와 질투를 유발하여 자신의 만족감을 높이는 재화나 서비스들이다. 반면 관계재란 사람들 간의 관계, 공유 속에서 효용이 더 높아지는 재화를 말한다. 사회서비스 중에서도 돌봄 노동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즉, 지위재가 부정적인 외부성을 발생시킨다면 관계재는 긍정적인 외부성을 창출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지위재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관계재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면세를 해줄 수 있다.

공공성이란, 사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공적 가치를 공론장에서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합의하여 공공가치 행정의 방식으로 조달하고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공성의 대상이 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관해 어떤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이후 시장실패론 등 산업구조를 분석하여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공공성의 특징을 파악하여 적절한 해결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공공성이라고 해서 언제나 공공경제 혹은 국가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재화나 서비스, 산업분야에서 공공경제와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경제의 최적 조합을 의식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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