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8                                                                                                                  이상동 / 새사연 부원장



지방정부새로운 패러다임의 청년정책 제기

최근 몇몇 지방정부에서 독자적인 청년정책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오랫동안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청년정책은 많은 논의와 검토, 그리고 일부 시행이 이루어진 바 있으나 그 실효성은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월 1일의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과 11월 5일의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정책은 기존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담고 있는 청년정책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청년문제를 다루는 중앙정부 정책을 열거하자면 무수히 많겠으나 고용의 측면에서는 ‘창업•보육 정책’과 ‘단기 일자리 정책’의 두 가지 범주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기존 중앙정부 청년정책의 실효성이 의심받는 것은 이 두 가지 범주의 정책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이전에는 딱히 청년정책이라고 호명될 만한 정책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청년이 주 대상자가 되는 직업교육 정책이 존재하였을 뿐이다. IMF 시대가 닥치기 전에는 국가가 청년들에게 직업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고민이 없었던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고용정책의 재원과 제도의 근간은 ‘고용보험’ 제도인데,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각종의 고용보험 프로그램에서 청년실업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직업교육과 관련되어 있다.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았던 오래 전 시대의 정책이나 일자리를 시장에만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책과 비교했을 때,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차별화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서울시와 성남시로부터 새로운 청년 정책의 실험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신 청년정책의 의미와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작성되었다. 이 같은 실험들이 성공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논의,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최초로 본격적인 청년 정책이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선별적조건부 활동수당’ vs 보편적무조건 소득 보장

아래의 표는 서울의 청년(활동)수당과 성남의 청년배당을 간단히 비교한 것이다. 두 정책은 수당 또는 배당이라는 현금을 청년에게 지급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측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이는 정책들이 기반하고 있는 근거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의 청년수당은 지방정부의 재량 사업으로써 시행된다. 서울시 청년기본조례는 ‘청년정책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토록 하고 있는데, 청년수당은 이 계획을 시행하는 사업으로써의 지위를 갖게 된다.

그러나 성남의 청년배당은 시민권으로의 기본소득이라는 철학을 정책의 근거로 삼는다. 비록 조례-성남시 청년배당 지급조례-가 이러한 철학을 명시적으로 적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청년배당 정책은 정부의 규범적 의무 사업으로써의 지위로 이해할 수 있다.

정책 대상과 집행 방식 등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서울은 수급대상자를 선별하여 지급하지만(수급률 0.6%, 연 3,000명) 성남은 수급대상자를 선별하지 않는다(수급률 78~83%). 수급자격을 획득한 청년들은 서울의 경우에는 자신의 활동사항을 보고하여야 하지만, 성남의 경우에는 보고 등의 의무가 전혀 없다.

 

위클리표1

 

청년들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불평등 연구에 50여년을 바친 경제학자 앳킨슨(Atkinson, A. B.)은 현재의 자본주의는 ‘보상(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가 제시한 불평등 완화 정책 가운데에는 모든 성인들에게 최소한의 기초자본(endowment)를 제공하자는 주장이 있다. 아직 소득획득의 경험을 갖지 못해 최소한의 기초자본을 가질 수 없는 청년들에게는 상속세를 재원으로 정부가 현금(또는 현금성 자산)을 지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세계적인 학자의 주장대로라면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에게 최소 수천만원이 일시불로 지급되어야 한다.

21세기의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상당수 청년들과 국민들이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수준에 이르러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상황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향후 우리나라의 청년정책은 ‘과감한 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울의 청년수당은 보다 시급한 정책대상에 초점을 두고 있고 성남의 청년배당은 보다 근본적인 가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어떤 것이 더 낫다거나 효과적이라거나 하는 등 판단의 기준과 그 기준에 따른 평가는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과감성’에 있어서는 갈 길이 한참 멀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이 우리가 처해져 있는 정치의 현실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청년들이 청년정책에 대해서 스스로 정책 결정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해관계자들의 적절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청년들이 직접 참여하기 전에는 ‘과감한 정책’이 시행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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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정태인/새사연 원장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걸음 뗄 때마다 이 땅 위의 수많은 고통에 눈을 맞췄다. 특히 아직 원인조차 알 수 없어 참척의 아픔을 추스를 수 없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서는 각별했다.

교황은 한국에서도 ‘복음의 기쁨’(2013년 11월, 교황 권고문) 이래 그가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사회 비판을 다짐하듯 되풀이했다. 현재의 사회구조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 곧 새로운 독재’다. 한국에서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로, 그리고 다른 강론과 글에서는 ‘무한경쟁과 이기주의의 세계’ ‘배제의 모델’ ‘쓰고 버리는 문화’ ‘죽음의 문화’ 등으로 묘사된 바로 그 사회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자는 착취와 억압의 대상을 넘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말 그대로 ‘잉여’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코 경제성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교황은 낙수경제학(trickle-down economics)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과 금융 투기를 거부함으로써, 또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이 세계적 문제에 대한 해법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경제정책은 개인의 존엄성과 공동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국가가 정당한 재분배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사유재산은 그것이 공동선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정당하다.” 이런 주장은 물론 곳곳의 비판을 불러왔다. <폭스 뉴스>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물론이고 <이코노미스트>마저 그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 다음으로 빈번한 비판은 교황의 얘기를 아르헨티나의 사례로 국한하려는 것이다. 국내의 교황 비판에도 곧잘 인용되는 미국의 가톨릭 신학자 마이클 노백의 논지가 대표적이다. 페론주의와 정실주의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심해진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와 달리 미국에서는 노백의 할아버지처럼 무일푼 이주민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낙수경제학이나 규제 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확실히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험은 노백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자본주의 초기에는 빈부격차가 심해지지만 노동자 계급의 처지가 향상되면서 격차가 완화될 것이라는 가설)이 나온 것 아니겠는가?

규제 없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독재’는 전 세계 일반의 현상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부당한 낙인이 찍힌 또 한 사람,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특수한 경험에 입각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낙수경제학 또는 쿠즈네츠 가설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 것은 20세기 초 두 차례 전쟁에 의한 대규모 파괴,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 개혁이라는 예외적 사건들 때문이었고 1970년대 이후 선진국 경제는 줄곧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장기 통계로 실증했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 즉 새로운 독재’는 이제 전 세계의 일반적 현상인 것이다. 아르헨티나 등이 1970년대 이래 반복되는 위기를 겪은 것은 오히려 한 번도 빈부격차를 극적으로 해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대로 대지주가 제조업을 소유한 동시에 금융자본가였으며 또한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교황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조건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도 생생히 목격했을 것이다.

마이클 노백이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례로 든 한국도 마찬가지다. 광복 이후의 일본인 재산 몰수, 농지개혁과 6·25전쟁은 한국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의 통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빈부격차가 심해진 나라이다. 

재·보궐 선거 압승으로 자신을 얻은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로 일로매진하는 군사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9월 초면 피케티도 방한한다. 토마 피케티 역시 민주주의의 질식이야말로 경제적 불평등이 초래하는 가장 큰 해악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 슈퍼스타 두 사람이 똑같은 경고를 하는 것을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본 글은 시사IN Live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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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냐고 물어보기가 무색한 요즘, 잘 지내시는지요?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분노의숫자" 책이 오랜 산고 끝에 나왔습니다. 

'세 살 불평등, 여든까지' 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국사회 불평등에 관한 총체적인 보고서 입니다. 

'설마? 정말이야?' 라고 생각하다가도 책 곳곳에 있는 숫자들이 우리의 자화상 같아

다 읽고 나면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2014 대한민국을 정확히 바라보는 '개안'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구매가능한 곳 : 알라딘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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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 2014 > [신간] 분노의숫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의숫자] 트레일러  (0) 20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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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9 / 16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최근 상위1% 소득 연구에 권위 있는 젊은 두 학자(Saez & Piketty)가 작년 미국의 소득분포 분석 결과를 새롭게 발표하였다. 놀랍게도 최근의 경기회복 국면(2009~2012)에서, 상위1%가 전체 소득증가의 9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전체 소득에서 상위10%가 차지하는 비중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작년 상위10%, 상위1%, 상위0.1%는 각각 전체 소득의 50.4%, 22.5%, 11.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10%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역사상 최고치인 49.7%(2007년)를 넘었다. 또한 상위1%와 상위0.1%도 역사상 최고치[각각 23.9%(1928년), 12.3%(2007년)]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이에 Saez와 Piketty는 2008년 세계경제 대침체(Great Recession)는 상위소득 비중을 일시적으로 하락시켰을 뿐, 1970년대부터 시작한 상위소득 비중의 급격한 확대를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1928년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빈부격차는 두드러지게 완화되었는데, 당시에는 뉴딜(New Deal) 정책에 따라 엄격한 금융규제와 진보적 누진세제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금융규제와 소득세 개편은 뉴딜정책에 비해 매우 온건한 수준의 정책변화에 불과하다. 따라서 저자들은 “미국의 소득 집중은 가까운 시기에 완화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예측하였다.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의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5년이 지났다. 당시 금융위기에 대한 개혁적인 설명은 금융시장의 과도한 규제 완화, 그리고 금융당국의 감독 부족에서 찾는다. 또한 시카고학파를 필두로 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과도한 저금리와 글로벌 불균형에서 위기의 원인을 설명한다. 반면 좌파 경제학자들은 표면적인 경제적 현상의 배후에 지난 30년 동안 누적적으로 진행된 실질임금의 정체와 양극화 확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비록 미국의 정치권력이 교체되고 800페이지가 넘는 금융개혁 법안을 새로 만들었지만, 5년 동안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양극화는 다시 확대되었다. 오히려 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28년 대공황의 위기는 뉴딜정책을 통해 양극화 해소, 경제적 안정과 성장의 자본주의 황금기를 만든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경제적 지표들로만 보면,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위기의 규모와 폭이 다른가? 정치적 리더십의 부족인가? 아니면 케인즈와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가 없어서인가? 


두 젊은 학자의 새로운 분석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미국 상위소득의 진화

(Striking it Richer: The Evolution of Top Incomes in the United States)


2013년

Saez & Piketty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한 경기회복


위의 표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 기간 가구 당 평균소득은 6% 늘어났다. 그러나 상위1%는 31.4% 증가한데 비해, 하위99%는 불과 0.4% 증가하는데 그쳤다. 최근 3년의 경기회복 기간 상위1%가 소득증가의 9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에 상위1%의 소득은 19.6% 늘어났지만, 하위99%는 단지 1% 증가하는데 그쳤다. 경기회복의 열매를 상위1%가 독차지한 것이다. 


따라서 경기침체는 상위소득 비중을 일시적으로 하락시켰을 뿐, 1970년대부터 급격히 증가한 양극화 추세를 되돌리지 못할 것이다. 실제 2012년 상위10% 소득비중은 50.4%로, 데이터가 집계되기 시작한 191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역사적 데이터를 기초로 판단하건대, 금융규제와 세제정책이 급격히 바뀌지 않으면 경기침체에 따른 상위소득 비중의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대공황 이후 뉴딜 기간 동안 실시된 급격한 정책전환은 1970년대까지 소득격차를 상당히 완화시켰다. 반면 2001, 2008년의 경기침체는 일시적으로 상위소득 비중을 하락시켰을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금융규제와 세제정책은 뉴딜에 비해 매우 온건한 수준의 정책 변화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소득집중 현상이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위1% 소득비중이 전체 소득집중 추세를 결정한다.


2012년 기준 연소득 39만 달러가 넘으면 미국 상위1%에 속한다. 흥미롭게도, 위 그림에 따르면 상위10% 소득비중의 변동은 상위1%가 결정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상위1%의 소득비중의 변화는 20세기들어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1913년 근대적 의미의 소득세 제도가 시작될 때 18%에서 출발하여 1920년대 말 대공황 직전에 24%까지 상승하였다. 그러나 대공황,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자본주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동 비중은 1970년대에는 9%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2007년 금융위기 직전 동 비중은 다시 23.5%까지 치솟았다. 따라서 미국에서 상위1% 소득비중의 추세는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 추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1993~2012년 19년 동안, 가구당 평균소득은 17.9% 증가하였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0.87%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위1%를 제외하면 평균소득은 6.6% 증가하는데 그쳤다. 연평균 0.34%에 불과한 미미한 수치다. 반면 상위1%는 같은 기간 소득이 86.1% 증가하였다. 연평균 3.3% 늘어난 것이다. 상위1%가 지난 20년 간 경제성장 수혜의 압도적 비중(68%, 표1 참조)을 가져간 것이다. 


지난 20년간 두 번의 경기회복 기간이 있었다. 상위1%의 소득은 각각 98.7%, 61.8% 증가하였다. 반면 하위99%는 1993~2000년 회복기에는 20.3% 늘어났지만, 부시 행정부의 회복기에는 불과 6.8% 늘어나는데 그쳤다. 또한 2009~2012년, 가구당 평균소득은 6% 증가하였다. 그러나 상위1%는 31.4% 늘어났지만, 하위99%는 불과 0.4% 증가하는데 그쳤다. 따라서 상위1%는 경기회복의 수혜를 95% 독차지하였다. 


위의 분석 결과는 최근 두 차례의 경기회복 기간 견고한 거시경제 지표와 대중이 체감하는 경기가 괴리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클린턴 행정부 시기, 상위1% 소득비중이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대중의 분노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왜 2005년 이후 언론, 학계, 그리고 대중 담론 등에서 상위소득과 양극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지도 설명해주고 있다. 


소득불평등 현상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합되어 있다. 기술적 변화뿐만 아니라, 뉴딜과 2차 세계대전 기간 발전한 제도(진보적 세제정책, 강력한 노동조합, 기업 복지 등)의 부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소득불평등 확대가 효율적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와 세제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 원문 게재 사이트: 

http://emlab.berkeley.edu/users/saez/saez-UStopincomes-2012.pdf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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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9 / 09 최정은/새사연 연구원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내 운명이 결정되어 태어난다면? 슬프게도 최근에 나온 여러 보고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가 펴낸 <<불평등한 어린시절>>(에코리브르, 2012)은 빈곤층, 노동층,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일상 생활, 언어습관, 가정이나 학교생활 등을 지켜본 결과를 담았다. 이 책에서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자원들을 자녀가 물려받고 있음을 재확인하며, 부모의 계층이나 환경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을 보고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상대적 빈곤율이 17%에 이르고 아동 빈곤율은 21%에 달할 정도로, ‘아메리칸 드림’과는 멀어지고 있다. 즉, 미국은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운명이 결정될 확률이 높은 불행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선진국 영국에서도 유사한 보고서가 나와 사회적 파장이 크다. 영국의 국립아동국(National children's bureau)이 설립 50주년을 맞아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이라는 새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의 아동 빈곤 수준은 지난 50년간 나아진 게 없다고 경고해 그간 애써온 정치권에 일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영국 아이들이 불평등과 곤란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를 12개 핵심지표로 검증하고 있다. 현재 영국 아동 4명 중 1명이 상대적 빈곤층에 머물고 있다. 1969년과 비교해서 전체 아동 수가 크게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동 빈곤층은 200만 명에서 350만 명으로 확대되었다.


사실 영국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아동 빈곤 문제다. 영국에서는 다른 연령층보다 아동 빈곤율이 높고, 빈곤에 처한 아동의 연령이 어릴수록 그 빈곤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위험이 커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영국 아동의 상대적 빈곤율은 멕시코와 미국에 이어 14%로 높은 수준이다. 유니세프가 2007년 아동 삶의 질을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아동의 물질적 복지와 건강 및 안전수준, 교육복지와 가족과 또래관계 수준, 행동 및 위험 수준과 주관적 복지의식 등 6개 부문을 종합한 결과 영국이 세계 최하위국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영국이 그동안 아동과 가족에 대한 지원을 등한시해온 것은 아니다. 1999년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본격적으로 아동 빈곤에 관심을 뒀다.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아동빈곤 퇴치 전략을 가장 시급하게 시행하면서, 2020년까지 아동빈곤율을 1/4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아동 빈곤법을 만드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다. 영국은 아동가족복지에 GDP 대비 3.24%(2007년)로, 복지국가 스웨덴, 덴마크 다음으로 이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아동 빈곤 상황은 정부가 목표한 수준만큼 쉽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이 아동과 가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 게 최근이라 정책 효과가 발휘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북유럽의 보편복지와 다르게 미국이나 영국은 ‘빈곤’아동만을 대상으로 한 잔여적 복지 형태로, 빈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정과 아동은 물론 전체로까지 복지 혜택이 돌아가지 못해 정책의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도 크다. 이런 한계들로 인해, 국립아동국이 1958년에 태어난 1만6천 아동을 대상으로 펴낸 1973년 ‘뻔한 미래?(born to fail?)’라는 보고서의 내용대로, 오늘날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과 부유한 아동 간의 영유아기 발달, 학업성취, 건강 등에서 더 큰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영국이 경기 악화를 이유로 복지혜택을 축소한 정책은 오히려 60만 명 이상의 빈곤 아동을 더 양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점점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이 고착화되고 있다. 빈곤의 대물림을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린다면, 영국 사회의 불평등과 계층 간 갈등은 해소될 길이 없어진다. 새 보고서는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복지 ‘축소’가 아니라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최근 이 내용을 보도한 가디언지의 기사를 옮겨본다.

  

2013년 영국: 빈곤 가정의 아이들은 여전히 뒤쳐져있다

(Britain 2013: children of poor families are still left behind)


2013년 8월 24일

제이미 도워드와 타튤라 버크(Jamie Doward and Taytula Burke)

가디언(the gurdian)



영국 국립아동국의 1973년 보고서 '뻔한 미래?(Born to Fail?)'는 영국 아동빈곤의 심각성을 말했다. 이후 정부의 대응에도 아동 빈곤은 더욱더 악화되었다. 


아이들은 리즈 비스턴 거리에서 함께 놀고 있다. 새로운 수치는 이 도시가 영국에서 가장 아동빈곤 수준이 높은 지역임을 말해준다. 


1969년은 달 착륙의 해이자, 콩코드의 첫 비행과 북부 아일랜드의 시민갈등의 시작시기이기도 하다. 비틀즈는 런던의 애플 레코드 옥상에서 즉석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평균 영국 집값은 4500파운드를 약간 상회했고, 영국의 200만 아이들은 빈곤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국립아동국에서 발표한 '뻔한 미래?(born to fail?)' 보고서에는 60년대 말 아동 삶의 경험을 검증해줄 수치가 담겼다. 1973년에서야 언론을 통해 이 보고서 내용이 타임지 전면에 공개되면서 정치권에 일대 충격을 안겨줬다. 이는 고든브라운에 영향을 줘, 후에 노동당 정부의 핵심 목표로 2020년까지 아동빈곤 근절안을 만들었다. 


40년 세월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누구도 달에 가지 않고, 콩코드는 더 이상 날지 않는다. 비틀즈와 트라블은 역사 속 주제들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가장 큰 관심에도, 아동빈곤과 불평등은 수백만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영국 빈곤을 새롭게 조망한 국립아동국에 따르면, 어떤 면에서 아동빈곤은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한다. 수십 년간 번영해오면서 평균 집값은 거의 17만1000파운드로 올랐지만, 상대적 빈곤에 처한 아동은 현재 3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아동국의 새 보고서‘위대한 유산(greater expectations)’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운의 2020 아동 빈곤 근절 목표는 달성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명된다. 2005년 1분기까지 아동 빈곤수를 줄이기 위한 중간목표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정당의 지지를 받고 승인된 아동빈곤법 2010은 2020년까지 상대적 빈곤 아동 비율을 10% 이하로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새 보고서의 저자는 그러한 목표가 충족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모든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관계없이 동등한 삶의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인가? 만일 어린 시절이 불평등하고, 성장의 경험이 양극화된 게 문제인가? 지구상에 가장 부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더 열망을 가져야 하냐?”고 묻는다.


분명히 정치인들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해야 한다. 2008년에 데이비드 카메론이 “우리 모두는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떤 나라든 가장 큰 시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새 보고서의 연구결과는 영국이 그 실험에서 실패했고, 정치인들은 더 큰 야망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아동 빈곤이 개선되지 않았고, 오늘날 상황은 거의 50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보고서 안의 수치에는 다음의 주요 주장을 담고 있다.

-상대적 빈곤 아동 수는 주거비를 반영한 중위소득 60% 이하 평균 소득 가정으로 정의하고, 1969년부터 150만명으로 증가했다. 

-불리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부유한 가정의 자녀보다 16세에 GCSE(중등 교육 자격 검정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빈곤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부유한 지역의 아이들보다 비만 가능성이 높다.

-불우한 배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집에서 사고로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빈곤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녹색공간이나 놀 장소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더 낮다.


국립아동국은 전 사회에 걸친 이 같은 분열이 결과적으로 “‘그들과 우리’라는 더 긴장된 사회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2011년 여름 폭동은 이런  긴장이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왜 우리가 아이들의 이 같은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경제적 이유들이 있다”며, “간단히 말해, 우리는 표류할 많은 미래세대를 위해 복지법안을 추가하는 등 이를 무한정 감당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아동 수는 1300만 명으로, 1969년 이래로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에 처한 아동수는 1969년 200만명에서 오늘날 350만명으로 증가했다. 다르게 말하면, 영국 아동 4명 중 1명이 상대적 빈곤층이다.  


자료에 의하면, 불우한 배경의 아이들은 유복한 배경의 아이들과 비교해 4세 발달상태, 11세 학교생활, 16세 GCSE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 이 보고서는 열악한 지역에 사는 소년들은 여전히 부유한 지역에서 자라는 소년들보다 비만이 될 확률이 3배 이상 높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저체중일 가능성이 더 많다.


앞으로 아동 빈곤율과 그 수준이 더 증가 및 심화될 수 있다는 증거들도 있다. 최근 재정 연구 분석에 의하면, 세금이나 혜택축소 변화가 2015년까지 60만 명 이상의 아동 빈곤을 양산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2020년까지 그 수는 470만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예측에 반발했으나, 20만 아동이 복지 혜택의 변화로 빈곤층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같은 흐름은 최근 몇 년간 이룬 성과를 위협하고 있다. 1969년에 불우한 아동의 14%만이 놀이학교나 돌봄의 혜택을 입었으나, 지금은 20%로 높아졌다. 오늘날 영국 3-4세아의 96%가 유아교육을 받는다. 이 수치는 이전 정부나 현 정부가 얼마나 유아교육의 장기적인 복지혜택을 수용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이미 영국 사회에 너무 많은 불평등이 존재한다. 4세아의 2/3가 초기교육과정 동안 좋은 발달성과를 이뤘음에도, 무료급식 대상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우한 아동과 친구들과의 격차는 GCSE 수준에서 나타나는데, 영어와 수학에서 불우한 아이들의 성과는 낮았다.


국립아동국은 그 격차를 더 좁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동과 청년 이사회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새 전략을 계발하고, 예산책임국은 각 예산이 아동빈곤과 불평등에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주문한다.  


영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데이터에 근거해 최상의 성과를 내고 있는 덴마크 수준으로 아동빈곤을 낮춘다면, 거의 100만 아동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지적한다. 아동건강 면에서 아이슬란드 수준에 맞추려면,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아이는 2만7천 이하로 낮추고, 영유아기에 더 건강해지도록 개선하고, 학교생활을 더 잘 하도록 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주택체계 사례를 따르려면, 가난한 환경에 살고 있는 5세 이하의 아동 수를 77만400만 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은 실현될 것 같지 않다. 새 보고서 “위대한 유산”은 아래와 같은 결론으로 경고하고 있다. “50년 전처럼 빈곤과 불평등을 경험한 아동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며, “서비스와 복지혜택을 삭감하면, 저임금 가정의 아이들은 더 고통스럽고, 이들과 다른 이들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 원문 게재 사이트: 

http://www.theguardian.com/society/2013/aug/24/child-poverty-britain-40-years-failure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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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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