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7 / 19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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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거시경제정책 없이 복지국가도 없다.

그러면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거시경제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흔히들 복지국가가 되려면 진보정당과 노조가 강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복지국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진보정당과 노조가 강력하지 못해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니계수는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데, 가장 불평등한 상태가 1이고 완벽하게 평등한 상태가 0이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1986년경부터 개선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나빠진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도 지니계수는 계속 악화되었다. 다만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의 차이가 벌어졌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시장에서 소득이 배분된 그대로를 의미하며,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세금을 걷고 보조금을 지급해서 어느 정도 재분배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에는 복지를 통해서 시장소득에 비해 가처분소득이 좀 더 평등한 상태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지니계수 자체는 여전히 상승하였다. 불평등은 계속해서 심화되었다.

복지국가는 결국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그대로 둔 채, 복지 재정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지니계수가 이를 보여준다. 결국 초기의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자체가 높지 않아야 한다. 시장에서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이 바로 거시경제정책이다. 따라서 진정한 복지국가 건설을 꿈꾸는 이라면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계획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 중 거시경제정책을 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세계 경제는 대침체(Great Recession)에서 장기침체(Long Recession)으로 변화하고 있다. 장기침체란 일본경제와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2%대이고, 특히 선진 경제권인 미국, 유럽, 일본 등이 모두 침체 상태이다. 이런 상태가 앞으로 10년 이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간 수출에 의존해서 경제를 이끌어왔던 한국은 세계 경제의 침체에 바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도 올해 2%대의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위의 그래프는 위기가 발발한 후 고용 수준이 위기 발발 전으로 회복되는 시기를 그린 것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는 회복되는데 18개월 그러니까 1년 반이 걸렸다. 1981년 위기는 2년이 걸렸다. 그런데 2007년 위기는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가 장기침체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거시경제정책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거시경제정책은 수출주도 정책이다. 수출주도 정책은 한 축은 임금을 중심으로, 다른 축은 환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우선 수출을 할 때 국내 임금은 낮을수록 좋다. 그래야 생산비용이 줄어들면서 수출에서 가격졍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인 생산측면에서의 비용인 동시에 수요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아서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 입장에서는 우리 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비용이니까 낮추고 싶지만, 남의 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수요이니까 높아지기를 바란다.

또한 수출을 할 때 환율은 높을수록 좋다. 환율이 높다는 것은 원화가치가 낮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달러가 1000원일 때보다는 1달러가 2000원 일 때가 원화가치가 낮으며, 같은 상품을 수출해도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대신에 수입 물가는 높아지게 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에는 부담이 된다. 우리나라의 환율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11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유입된 돈이 많았다. 국내에 자본이 들어오면 한국 채권이나 주식을 사야 하므로 원화의 수요가 증가하고, 원화가치가 높아지면서 환율은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일정 수준의 환율을 유지했다는 것은 수출에 유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달러를 매입하면서 환율에 개입했다는 뜻이다.

수출대기업에 유리하도록 환율은 높이고 임금은 최대한 낮추는 것, 이게 우리의 거시경제정책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세계 경제의 침체로 수출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전 세계의 제품을 수입해주던 미국마저 수출로 돌아서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환율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상대국가가 환율을 조작한다고 판단될 때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는 법이다. 한마디로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이 환율법은 중국을 겨눠 제정했겠지만, 막상 중국을 향해 시행하기에는 부담이 될테니 만만한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가장 먼저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환율은 절상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 절상하면 환율의 가변성이 너무 커져 불안정하다. 적절히 규제해서 환율이 서서히 절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통제가 필수적이다. 자본통제는 국경을 넘는 자본에 대한 규제를 뜻한다. 자본통제에서 중요한 것은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다. 이제까지는 해외자본이 국내에 들어오면 투자가 늘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해외자본이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투자를 하기보다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스며들어 주가와 부동산 가격에 거품을 형성했다. 무리한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토빈세, 외환가변유치제 등의 제도를 통해서 유입되는 자본을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하면 아무 실효성이 없다. 해외 자본 입장에서는 자본통제를 하지 않는 다른 국가로 이동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차원에서 함께 자본통제를 실시하여 안정적인 환율과 거시경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안 하면 우리 경제는 뭘 먹고 살아야 할까? 임금을 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요를 늘려서 내수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임금을 올리면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지만, 사실 우리보다는 중국의 임금이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 약화는 심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도 내수가 늘고 임금이 올라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80년대 중반이다. 당시에는 재벌이 현재처럼 중소기업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던 시기였으며,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생산성 증가가 임금 증가로 이어져, 소비와 저축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던 때이다. 다시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

원하절상과 임금인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산업 구조조정도 이루어진다. 원화절상과 임금인상은 내수 중소기업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내수 중소기업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산업정책의 내용이 될 것이다. 결국 핵심은 앞서 보았던 에밀리아 로마냐와 같은 산업지구를 10년 안에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갉아먹고 있는 하청단가 문제나 높은 부지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산업정책을 계획할 때 고려해야 할 점 몇 가지 꼽자면, 우선 여전히 제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융허브론이나 서비스선진화론 등 다양한 주장이 있었지만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았다. 우리 경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동아시아 국제분업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제조업에서 첨단제품을 시험하는 지역, 중국 수출의 관문과 가튼 역할을 맡아야 한다. 두 번째로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해야 하며, 동아시아 내에서 기술 선도자로 역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기술 학문과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자본통제와 자산세를 통한 자산가격 안정화

복지국가 건설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거시경제정책은 자산가격 안정화이다. 현재 한국에서 대표적인 자산은 부동산과 금융이다. 그리고 사실 부동산과 금융은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동산 시장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건설경기부양 정책으로 겨우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자산가격의 거품이 심해지면 자산소득에 따른 양극화가 심해진다. 또한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라는 점에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안정적인 복지국가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

이제 한국은행은 핵심 목표를 물가 안정에서 자산가격안정으로 잡아야 한다. 자산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앞서 지적했듯이 국내에 과다한 자본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본유입통제를 실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부동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시키고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재분배하기 위해 자산세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중산층 이하 가정은 부동산 대출 부담과 함께 높은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 대출과 함께 사교육비는 가계가 저축을 하거나 넉넉하게 소비하지 못하는 최대 요인이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평등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하는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사실 부동산, 금융, 교육비는 확장하여 생각하면 토지, 돈, 인간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이는 폴라니가 상품이 되어서는 안되는 세 가지 요소 사람, 자연, 돈이  상품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던 부분과 상통한다.

내수중심, 임금주도 경제로의 전환과 자산가격 안정화라는 거시경제정책을 토대로 하지 않은 채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시장에서의 양극화를 교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부어도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정 돈을 쏟아 부으면 재정적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경제로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대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다른 경제성장, 경제유지 방식을 찾아야 한다.


보편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원칙

흔지 복지논쟁이라 불리는 것의 쟁점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편복지냐 잔여복지냐의 문제이다. 둘째, 재원조달을 위한 증세가 필요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셋째, 증세를 한다면 부장증세이냐 보편증세이냐의 문제이다.

첫째 쟁점은 무상급식에서 출발했다. 보편복지는 복지의 주체가 국가이며 전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잔여복지는 가정과 시장이 복지의 중심이며, 가정과 시장에서 감당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만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잔여복지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 절차가 바로 자산조사이다. 보편복지는 사회권을, 잔여복지는 재산권을 강조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잔여복지를 선호한다. 가장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중해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본다. 또한 보편복지의 경우 공유자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무임승차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여복지의 문제는 가장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한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낙인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보편복지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거를 보편복지화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 국민에게 똑같은 집 혹은 돈을 주는 것인가? 의료의 보편복지는 무엇일까? 의료수당을 똑같이 주면 되나? 교육의 보편성은 무엇인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일까? 대학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일까? 사실 보편복지는 간단하지 않다. 하나하나 제공되는 서비스에 따라서 경제학자와 사회복지학자들이 모여 고민해야 한다. 앞서 공공성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재화를 하나씩 살펴보았던 것처럼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이기적이고 단기적 인간이라면 만들 수 없는 엄청난 것이 보편적 복지이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보편적 복지를 위해 돈을 낼까? 이 문제는 이전에 살펴보았던 공공재게임과 똑같다. 공공재게임이란 각자 공공계정에 돈을 모았다가, 모인 돈이 일정 수준으로 증가하면 공평하게 돌려받는 게임이었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남들이 공공계정에 돈을 내도록 기다리고, 자신은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나중에 불어난 돈을 분배받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기적 인간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면, 점차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공공계정에 돈을 내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결국 기본적으로 조세의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모두가 세금을 공정하게 내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공짜로 복지를 제공받는다는 사실보다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것에 더 많이 분노한다.

세부적으로는 첫째, 복지목적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열심히 세금을 냈는데 엉뚱한 곳에 돈이 쓰인다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복지목적세를 도입하여 세금을 내면 반드시 복지에 쓰이도록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약속이 정권이 바뀌면 바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을 위한 세금을 만들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이것이 4대강 세금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가 필요하며, 장기적 정책을 위해서는 내각제 개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세금은 올바른 곳에 쓰일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둘째, 공평과세를 실시해야 한다. 무작정 세율을 높이는 것보다 탈세를 막아서 모두가 공평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무임승차자를 방지해야 한다. 이는 사회규범이 어떻게 확립되어 있느냐의 문제이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펼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무임승차를 줄여가야 한다. 넷째, 복지 전달의 주체로 지자체를 잘 활용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국가가 담당할 필요는 없다. 국민들에게 직접 전해지는 복지의 말단 부분은 지자체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 간의 경쟁을 통해 복지 전달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지자체와 지역의 사회적 경제가 결합하여 좀 더 지역 주민들과 친근한 관계 속에서 복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20)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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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16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8)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복지국가, 국가에 의한 공공성 실현

오늘은 지난 시간의 공공경제에 이어서 보편 복지국가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앞서 공공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공의 가치(public value)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현존하는 철학자들을 모두 동원해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공공의 이성(public reason)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공공의 가치가 무엇인지 합의되고 나면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공공의 가치로 모두의 건강을 위해 1인당 하루 사과 두 알을 먹는 게 좋다고 합의되었다면, 이제 사과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사과 두 알씩 사먹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만약 사과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보조금을 주고, 사과 물량이 부족하다면 과수원에 보조금을 주면 된다. 사실 많은 문제들이 시장에서 해결하고, 국가가 세금이나 보조금을 주어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해결 방식이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생산력을 무한히 발전시켰다. 이를 가장 많이 칭송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력 발전이며, 이는 경쟁, 끊임없는 무한의 욕구, 화폐의 축적, 자본의 탄생을 통해 가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가 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맡길 것인지, 둘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등이다. 공공경제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 학문은 행정학인데, 이 분야에서 80년대 이후 주류로 등장한 이론이 신공공관리론이다. 이는 결국 관료나 정부기구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되도록 민영화하고 규제완화를 해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신공공관리론이 퇴조하고 공공가치행정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공공의 가치를 민주주의 방법으로 실현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이다. 공공성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이 시장실패의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해결책도 다르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용이다.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뜯어보기

이런 공공성을 국가단계에서 가장 잘 실현한 것인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가장 성공한 보편적 복지국가는 스웨덴이다. 사실 스웨덴 모델은 한 번 실패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스웨덴 병 또는 복지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90년대 초반에는 스웨덴 뿐 아니라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외환위기를 맞는다. 93년에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설계자인 마이드너(Meidner)가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95년경부터 다시 부활해서 지금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로도 불린다. 렌과 마이드너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LO(노동조합연맹)의 경제이론가이다. 이들은 직접 임금중앙교섭에 들어가며 LO의 경제정책을 만든다. 스웨덴은 LO와 사민당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LO는 한 때 노조조직률이 93%에 이르렀고 지금도 70~75%에 이른다.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LO와 관련된 셈이다. 이런 LO를 기반으로 하여 사민당은 지금까지 약 90년 정도를 집권해왔다. 현재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사민당이 얻는 득표수는 약 35% 정도라 언제나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한다. LO과 정책을 만들면 대부분을 사민당이 정책에 반영한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참 기가 막힌 모델인데 한 마디로 연대임금정책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경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경제의 문제는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서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직장이 함께 임금협상을 하는 중앙교섭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체 자본가 대표와 전체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산업별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표로는 LO가 나온다.

이렇게 조정했을 때 제일 손해를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노동자이다. 이 정책이 관철된 이것이 관철되던 60년대 스웨덴의 수출대기업은 자동차, 철강, 조선업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대자동차, 포스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제일 이익을 보는 쪽은 수출대기업 자본가이다. 생산성 보다 낮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이익 보는 것은 수출대기업 노동자로부터 임금을 이전받은 내수중소기업 노동자이다. 반면 내수중소기업 자본가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므로 손해를 본다.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 기금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먼저 그래프 오른쪽의 빗금 친 부분은 내수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내수중소기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고용 인력을 줄이고 혹은 파산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래프 왼쪽의 빗금 친 부분은 수출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의미한다.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준 결과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스웨덴은 역시 기가 막힌 해법을 냈다. 첫 번째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요즘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도입되었지만 스웨덴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굉장히 관대한 실업보험을 기초로 하며, 모든 노동자를 재교육 시켜서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기업 노동자로 이직시키는 것이다. 이를 전부 노동조합이 관리한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하기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지역별, 산업별 실업보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겐트(Ghent)라 했는데, 이미 존재하던 것을 국가가 통합했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노조에게 맡겨놓았던 것이다. 스웨덴 노조의 가입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LO 소속이 되면 실업보험에 가입되고, 퇴직하면 LO의 관리 속에서 재교육과 이직을 할 수 있다. 노조가 실업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이라 불렀다. 이는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임노동자 기금이 도입되었다. 이는 초과이윤의 20%를 신주로 발행하여 노조가 소유하도록 한 제도이다. 신주의 20%를 노조가 계속 소유할 경우, 2~30년 지나면 모든 기업이 노조의 소유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매우 창의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가들의 반대가 격렬했고, 이 제도에 대한 입장을 놓고 사민당도 3개파로 찢어지고 말았다. 결국 LO와 사민당의 관계는 서먹해졌으며 끝내 사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하여 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과 임노동자기금을 바탕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실현한 것이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스웨덴 경제는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을 수 있었으며 사회주의로의 장기 전망도 세울 수 있었다.

흔히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을 따른다. 렌과 마이드너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완전고용과 함께 렌과 마이드너가 신경썼던 것은 임금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전후 유럽의 부흥사업을 통해 수출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고 임금도 상승했다. 그런데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완전고용과 물가는 상충함을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존재한다. 즉, 물가가 상승하면 완전고용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연대임금을 생각해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모습인데,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면서까지 거시경제정책을 고려한 것이다. LO의 경제학자로서 매번 중앙교섭에 참여했던 렌과 마이드너의 경험은 독특한 물가상승이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부흥사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수출대기업의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산업과 기업의 노동자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전반적인 임금과 물가 상승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20여년 후에 효율임금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론이다. 이렇듯 스웨덴 모델은 처음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었다. 또한 세금을 많이 걷어서 재정흑자를 유지했다. 소득과 자산에 따라 차등적 세금을 부과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했다. 모든 사람이 비용을 내고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재정흑자를 유지하며 물가상승 억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 때 렌-마이드너 모델은 순수한 케인즈주의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스웨덴 모델의 붕괴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스웨덴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국 등과 비교해서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떨이지고, 외환위기 등까지 겪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류경제학자들은 스웨덴 병을 운운하며,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의 노동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업수당으로 월급의 80%가 지급되고, 특별한 절차 없이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사실 보편복지국가는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세금을 내는 문제에서는 공공재 게임이 그대로 적용된다.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도 어느 정도 복지병이 나타난다. 독일과의 축구 중계가 있는 다음 날이면 직장인들의 병가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그런 사례이다. 하지만 이는 미시적 요인일 뿐이다. 이것만으로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사실 스웨덴이 위기를 겪었던 근본 원인은 거시경제정책의 문제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고환율 정책이다. 수출의 비중이 컸던 탓에 경기가 나쁠 때마다 환율을 조정했다. ‘1달러=1000크로나’일 때와 ‘1달러=2000크로나’일 때를 비교한다면 후자의 경우가 수출할 때 더 유리하다. 따라서 통화가치 하락 정책을 편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금리자유화, 개방, 조세개혁이 실시된다. 이 중에 가장 큰 요인이 금리소득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준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 자본은 늘어나고 규제와 세금은 줄어들면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면서 90년대에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규제 강화에 나선다. 최저임금법을 법제화하고 임노동자기금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륙의 노동규제, 노동자 보호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실제 법과 제도 상으로는 약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권을 거의 늘 사민당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를 경직적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노사타협으로 운영되던 중앙교섭이 깨진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금속노조이다. 이제까지 수출대기업이 희생해왔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더 이상 희생을 견디지 못하고 교섭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보편복지도 어려워진다.

마이드너는 이런 상황을 반성하며 “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글을 쓴다. 그는 통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계속되면서 이윤은 급증했으나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결국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애써 희망을 찾으며 “노동계급을 동원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이데올로기적 힘과 지도자의 능력, 그리고 다른 계급과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스웨덴 노동운동의 힘이었으며, 이를 다시 회복할 때 복지국가도 부활할 것이라고 보았다.

 

스웨덴은 어떻게 부활했나?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은 부활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EU에 가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고정환율제가 되었고,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긴축을 단행한 덕분이었다. 세부적으로는 결렬되었던 중앙교섭이 산업별, 지역별로 분권화되어 부활했으며, 연대임금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본가들의 요구가 컸다. 기업별 교섭이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임금이 인상되고 돌발적인 파업이 일어나면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서비스에 의한 고용율 회복도 경제 회복에 큰 힘이 되었다. 스웨덴의 완전고용이 위협받을 때 가장 강력히 버텨준 것이 사회서비스 분야이다. 스웨덴의 복지는 보편현물복지로 교육, 의료, 보육, 돌봄 등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모두 공무원이다. 사회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공무원도 늘어나고, 고용율도 올라갔다. 또한 현재 LO의 주축세력 역시 공공노조이다. 우리의 경우 현물복지가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수당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간시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이 보육비의 증가, 보육원의 수입 증가로만 이어진다. 아동수당이란 결국 수요 쪽에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수요곡선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즉, 시장에만 맡기고 보조금을 주면 가격이 올라간다.

성평등 정책과 평등교육을 강화하여 여성 고용율을 높이고 IT와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높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보편복지가 가능하려면 고용율이 높아야 하고, 여성 고용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안정적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경제가 안정되어야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 세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안정, 물가 안정 등을 통해 경기가 증폭되는 것을 억제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위기로 그 중요성이 대두된 자본통제나 금융규제, 투기억제, 자산가격 안정 정책들은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복지국가의 성패는 안정적 거시경제정책의 마련에 달려있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이다. 여기에 더불어 보편적 복지국가가 공유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무임승차를 줄여갈 수 있는 신뢰와 협동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9)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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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0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와 경제성장도 양자택일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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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경제 민주화 없는 복지국가는 가능한가?

2. 사회 세력 간 힘의 균형이 중요

3. 장기침체 시대, 어떤 성장을 말해야 하나?

4. '민주적 성장'을 추구하자

 

[본 문]

1. 경제 민주화 없는 복지국가는 가능한가?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킬 때만 해도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담론과 성장 담론이 우리사회를 지배했다. 2008년 촛불시위로 민영화 담론에 금이 가고,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규제 완화나 감세 담론이 타당성을 잃어갔지만 결정적인 의제 전환의 분수령은 2010년 지방선거와 보편복지 의제의 확산이었다. 순식간에 신자유주의와 성장 의제 틀이 깨지고 복지 의제가 압도를 하게 된 것이다. 2011년 10월 보궐 선거는 그 정점이다.

보건, 보육, 교육, 주거, 소득 등 사회정책 차원에서 보편 복지는 여전히 진보의 중심 의제이어야 하며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보편 복지에 이어 경제 민주화 요구가 우리사회에서 급격히 확산된 것은 ‘시장에서의 불평등 개혁’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말할 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현실적인 힘의 관계, 사회세력 사이의 역학관계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롭고 참신한 정책의 여부도 아니고, 각 정당들의 정책수용 여부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이 시점에서 헌법 119조 2항 경제 민주화 조항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조항에서는 대략 4가지 ①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②적정한 소득 분배 유지, ③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그리고 ④ 경제 주체들 간의 조화를 경제 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명기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의 실현”이란 대목은 경제 민주화가 경제 주체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즉 경제 민주화란 원래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경제 주체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 복지와 함께 시장영역에서의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초래한 경제 주체들의 권력 불균형을 개혁하여 ‘경제 주체들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경제 민주화운동이다. 한국경제의 정점에 있는 재벌 대기업 집단의 과도한 권력을 억제하는 한편 노동자와 시민, 소비자의 무권리를 개혁하여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운동이고 또한 보편 복지운동인 것이다.

 

2.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경제 민주화도 복지도 무너진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형식으로 관철되지만 내용적으로는 경제 주체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서 복지 정책도 완전히 동일하다. 흔히들 선진국 경제사에서 복지국가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1950~60년대에는 사회의 권력 균형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노동자와 대중의 힘이 시장의 힘을 견제할 만한 상황이 되었던 시기다.

반면 자본의 파워는 제한을 받게 되었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통해 경쟁은 완화되었다. 자본 통제가 도입되고, 금융자본은 엄격히 규제되었다.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시장에서 떨어져나가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되었던 시기다. 이처럼 해당 사회에서의 사회세력(주로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힘의 관계에서 노동의 힘이 커지면서 복지 정책을 제대로 적용할 ‘정책 공간’이 열리고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성취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신속하고 체계적인 규제철폐에 이용되었다. 고정 환율제가 폐지되고, 자본통제가 해제되고, 시장에서 규제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에 따라 이번에는 아래서 위로의 부의 역 재분배가 이뤄졌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보편 복지의 실현이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한다면,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 세력 관계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우리 헌법에서도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의 실현” 이라고 되어 있다. 무슨 말인가. 경제 민주화란 원래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경제 주체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원천적인 불균형 관계를, 국가의 정책적 개입에 의해 최소한 ‘조화’가 가능한 균형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세계경제에서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랬다. 그 결과 경제 민주화도 심각한 후퇴를 맞게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금융자본과 재벌 대기업의 힘이 압도적으로 우리 경제 질서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출되지 않는 경제권력, 3세로 승계되고 있는 재벌권력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 되어야 할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복지의 확장을 위해서나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 노동자와 시민, 99%의 힘과 권한을 다시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키우고 대자본의 힘을 제약하는 각종 정책과 법률을 통해서 힘의 재 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복지이고 경제 민주화다.

 

3. 장기침체 시대, 어떤 성장을 말해야 하나.

이제 보편 복지와 함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일시적 구호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구조적 문제 누적과 시대적 전환의 산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2010년대 내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경제 민주화는 금융 민주화로, 노동 민주화로 그 내용을 더욱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우리사회가 경제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가 ‘정치 민주국가’이자 ‘경제 민주국가’, 그리고 ‘보편 복지국가’가 되려는 긴 도정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동안 불필요하게 이념적 갈등이 두드러진 경제정책 논쟁들이 있었다. 그 하나가 바로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이다. 또 하나는 시장이냐 국가냐 하는 논쟁이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는 성장과 분배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융합해주고 시장과 국가 역시 함께 수렴해주는 의제 틀을 가지고 있다. 경제 민주화 의제를 활용해 성장과 분배, 시장과 국가의 불필요한 대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이 ‘스스로’ 성장 담론을 부활시키려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든 ‘진보적 성장’이든, ‘사람이 성장 동력’이든 의제의 틀을 성장론으로 삼는 것보다는, 경제 민주화의 틀 안에서 성장론을 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 관점에서 성장론은 금융이 주도하는 부채 의존형 성장이나 재벌이 주도하는 수출 의존형 성장노선을 모두 반대한다. 그리고 이들 두 성장노선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미 파산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에서 작동하던 부채 의존 성장, 수출 의존 성장 모델이 모두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부채주도 성장모델이 이미 임계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가처분소득의 150%가 넘을 정도로 커진 가계부채 1000조 원은 가계의 소비여력을 제약할 뿐 아니라 현재 통화와 금리정책, 부동산 정책 등 모든 정책 수단들을 제약하고 있다. 불패 신화의 부동산 시장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4년 이상 실질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민간소비 성장률이 경제 성장률을 훨씬 밑돌고 있는 이유다. 부채 의존 성장은 고사하고 부채 폭탄 얘기가 연일 언론에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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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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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라고 했다. 앞서 상호강제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신뢰의 네트워크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네트워크는 개인 간 관계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한 소통 채널 구조이다. 일종의 통로이다. 이 통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나누면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가족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부터 자발적 조직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한 채로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네트워크에 들어가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연결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집단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에는 사람과 시간을 비롯하여 다양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통로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늘어나지만 이익은 줄어든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친구의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의 외부성을 창출하여 유지비용을 상쇄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가 형성되고, 신뢰가 다시 신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이런 장점을 경제모델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생산함수는 노동(L)과 물적자본(K)을 투자하여 생산물(Y)을 만들어내는 함수인데, 여기서는 노동 대신에 인적자본(H)을 대입한다. 그리고 생산함수에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A)이 있다. 이는 지식이나 기술, 제도의 발전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Y=AF(K,H) (A>0)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이 늘어날수록 생산물의 양은 늘어난다. 이 때 네트워크를 통한 협동은 인적자본이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확대되는 범위가 좁아서 협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인적자본이 증가할 것이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경제전체로 확대된다면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결국 생산물의 증가로 이어진다. 늘어난 생산물을 다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에 투자하면 더 빠른 성장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실증연구로는 퍼트넘이 이탈리아 20개 행정구역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퍼트넘은 1900년대 초 시민참여지표와 1970년대 초 고용, 소득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시민사회라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의 나라얀(Narayan)과 프리체트(Pritchett)는 탄자니아의 50개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을의 사회조직에 많이 참여하는 곳일수록 가계의 평균 1인당 소득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네트워크의 문제점 : 배제성과 불평등

하지만 네트워크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네트워크에서의 활동은 구성원 사이에 유대, 애정을 형성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때로는 이런 정체성이 네트워크를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정 네트워크에서 편안함과 이익을 얻을수록 배타적이기 쉽다. 이를 잠김효과(Lock-in effect)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소속될 수밖에 없는 가족, 민족, 인종 등의 네트워크나 종교적 네트워크의 경우 특히 잠김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특수한 네트워크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협동의 네트워크에는 언제나 잠김효과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협동하는 네트워크라 해도 그 내부에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매킨(Mckean)은 지역 엘리트들이 공동체가 소유한 자원의 이익을 부적절하게 획득하고 있는 사례를 밝혔다. 이 외에도 많은 실증연구들에서 협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 상태일 때에 비하면 협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은 게 사실이지만, 공동체적 관계에서도 착취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네트워크와 시장

공동체적 제도인 네트워크와 달리 시장은 익명의 교환이다. 모든 사회는 비인격적 시장과 공동체적 제도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보완적이어서 함께 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적이어서 서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와 시장이 보완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네트워크를 통한 상품의 생산과 교환은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경제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왔던 지점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바로 내부의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비용 감소라는 것이다. 기업 내의 교환은 기업 간의 관계와는 달리 공동체적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공동체적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파월(Powell)과 브랜틀리(Brantley)는 바이오산업에서 경쟁기업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비밀로 유지하는 정보도 있었다. 공개와 비밀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존재했다. 만약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자는 배제당했다. 경영자들 역시 이런 정보 공유의 네트워크를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정보의 공유를 통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네트워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면 시장과 네트워크가 대체재라면 둘은 적대적이다. 시장이 공동체적 제도를 대체하는 경우 반드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네트워크가 시장의 원활한 작용이나 존재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혈연적 유대가 매우 강력한 전통사회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개인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기능이 있지만, 개인의 투자동기를 저하시킨다는 부정적 기능도 있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규범이며, 이 규범을 지키기로 구성원들끼리 상호강제하는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흔히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 동료애와 신뢰는 촉진되기 쉽다. 선거에서 승리한다거나 정부가 효과적으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뢰 형성 방식이다. 또한 퍼트넘이 강조한대로 자발적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일반적 신뢰와 협동을 제고한다. 특히 그 자체가 오랜 신뢰와 협동의 결정체인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일반적 신뢰를 높이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도자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신뢰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역사적 집단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신뢰와 협동을 이루어냈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험이 없다. 대신 폭발적 경험의 기억은 생생하다. 87년 민주항쟁, 97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2002년 월드컵과 그해 대선에서의 노풍, 이후 수많은 촛불집회 등을 겪었다.

이런 경험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제도가 모든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신뢰와 협동까지 제도에 의존하도록 되어서는 안 되지만, 무임승차를 막고 신뢰와 협동의 정체성을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네트워크가 배제성과 불평등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내부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내부의 이견을 억압하고, 외부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유발하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공동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사회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거나 진전된 남북관계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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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13 새사연

부상하는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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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협동조합의 발전은 네트워크에 달렸다.

2. 지역 공동체를 강화해주는 협동조합

3. 복지국가의 전달체계로서 사회경제

4. 두 개의 네트워크와 숙의 민주주의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 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리셋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 원래 원고들을 가지고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2007년 사회적 기업법 제정, 그리고 2011년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으로 한국에서도 사회경제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사회경제는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이래 각광을 받고 있다. 사회경제란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에 기초해서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라는 가치를 달성하려는 경제다. 따라서 집단소유와 민주적 결정,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자율, 개방 등이 사회경제의 특징이다. 협동조합은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의 형태이다. 이름 자체에 들어 있듯이 사회경제의 효율성은 협동에서 비롯된다. 특히 인간의 이기성에 기초해서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달성하는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즉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사회경제의 역할이 크다.

사회적 딜레마란 사회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문제는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경우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전 인류의 생명이 걸려 있는 기후변화문제는 지금 맞닥뜨린 가장 큰 규모의 사회적 딜레마이다.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협동이다. 협동은 심리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근년에는 경제학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박의 ‘협력 진화의 5가지 규칙’을 대표로 하여 협력이 일어나는 조건이 밝혀지고 있다.

협력의 조건이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는 협동이 사회규범(social norm)이 되고 협동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집단 정체성를 갖게 된다. 협동하는 사회에서는 상호적 행동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협동하는 사람에게는 협동하고 사회규범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스스로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하거나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상호성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두가 서로 협동하게 된다. 즉, 협동의 전제는 신뢰이다. 그런데 신뢰라는 사회자본은 쌓아 올리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배반할 것이라고 믿는 순간 신뢰는 깨지고 협동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경제에서는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사회경제가 실현되는 서로 신뢰하고 협동하는 집단이 형성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위험도 수반한다. 강력한 집단 정체성은 흔히 외부에 대한 폐쇄성과 공격성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의 공동체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탈리아 출신 사회학자 감베타(Diego Gambetta)는 마피아나 거리의 갱단도 협동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협동하는 집단은 외부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내부의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기술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잠금현상이 발생하면 그 집단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반사회적일 수 있다. 즉 민주주의의 원리가 없는 집단, 특정 가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가진 집단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협동조합 역시 이를 조심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7원칙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적,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차별 없이 열려 있다.

2.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해 관리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서, 조합원들은 정책 수립과 의사 결정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선출된 임원들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단위 조합에서는 조합원마다 동등한 투표권(1인 1표)을 가지며, 연합 단계의 협동조합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하고 운영한다.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조합원은 협동조합에 필요한 자본을 조성하는데 공정하게 참여하며 조성된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금의 일부분은 조합의 공동재산이다. 출자 배당이 있는 경우에 조합원은 출자액에 따라 제한된 배당금을 받는다.

조합원은 다음과 같은 목적에 따라 잉여금을 배분한다.

(1)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해 잉여금의 일부는 배당하지 않고 유보금으로 적립

(2) 조합원의 사업 이용 실적에 비례한 편익 제공

(3)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여타의 활동을 위한 지원

4.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 의해 관리되는 자율적인 자조 조직이다.

협동조합이 정부 등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거나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때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5.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된 임원, 경영자, 직원들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 지도층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6. 협동조합 간의 협동

협동조합은 지방, 전국, 지역 및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협동조합 운동의 힘을 강화시키고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한다.

7.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정책을 통해 조합이 속한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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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