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9.25 ‘안철수 경제 민주화’의 세 가지 도전 (1)
  2. 2012.09.25 협동조합은 왜 위기에 강할까 (1)
  3. 2011.03.28 진보, 민주화세력의 가면?
2012 / 09 / 2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안철수 경제 민주화’의 세 가지 도전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됩니다.

 

대선 참여 자체 여부가 불확실했던 장외의 안철수 원장이 지난 9월 19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비로소 18대 대선구도가 확정적으로 짜여졌다. 21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발표에 의하면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49.9%로 44.0%의 박근혜 후보를 오차범위를 넘어서 앞서기 시작하면서 하락하던 지지율을 만회했다. 이로써 향후 5년 동안 나라살림을 누가 책임지게 될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과 함께 가장 논쟁이 되는 지점이 그의 경제정책 비전과 경제 민주화 의지다. 출마 회견장에서 기자들에게 경제 민주화 설명을 한 부분을 두고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에 몸담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에게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안 된 사람"이라며 비하하기도 했다. 다른 일부에서는 출마 회견장에 노동자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이른바 ‘모피아 사단’의 대부로 알려진 이헌재 전 장관이 안철수 후보 캠프에 결합하면서 비판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물론 안철수 후보의 재벌개혁 방안과 경제 민주화 공약의 세부 내용은 차차 구체화될 것이고 그의 경제 팀도 더 윤곽이 뚜렷해 질 것이다. 이를 감안하여도 지금 시점에서 드러난 것 기준으로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개혁 저항세력에 맞설 결단과 용기가 중요

안철수 후보는 12월 19일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경제 민주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주로 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개혁이다. 그리고 또 민주당 쪽에서는 시장개혁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재벌 지배구조 쪽을 바꿔야 결국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영속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기본적 원칙은 그렇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주의적 접근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거기에 따라서 어떤 부분은 민주당과 같은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민주당보다 더 근본적인 처방을 내가 얘기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논의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을 느낀 건 경제민주화나 복지도 성장 동력을 가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둘은 자전거가 바퀴가 두 개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쪽 편에서 성장 내지는 일자리 창출되면서 동시에 그 재원이 경제민주화나 복지로 가고 다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사람들의 혁신적 창의성을 자유롭게 불어 넣어주면서 다시 혁신구조를 만드는 선순환이 중요하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가 말한 대목 중에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주로 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한 부분과, “경제민주화나 복지도 성장 동력을 가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하는 부분에 대해 김종인 박근혜 캠프 위원장이 거칠게 비판하여 관심을 모았다.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안 된 사람", "경제 민주화가 성장 동력과 상충하는 것처럼 설명하는데 그 사람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라는 비하발언이 그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가 기업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경제 민주화에 ‘성장 동력’을 얹어서 말을 했다는 김종인의 지적 자체는 제대로 안철수 후보의 맥락을 확인해보지 못한 오버다. 안철수 후보는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부자국가이어야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해야 부자 국가가 되며, “복지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가 경제 회복과 성장을 추동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분배와 보상을 해줘서 구매력을 키우는 것이 결국 내수시장 활성화를 가져와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면서 경제 민주화가 진척되면 국민의 소득 증가와 내수확대로 연결되어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지점은 특히 우리 경제가 2%대로 주저앉아질 전망이 점점 확실해 지면서 연말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철수 후보의 경제 민주화에서 아직 확인이 안 된 부분은 김종인이 지적한 부분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적한 “안 후보의 성공 여부는 재벌의 저항과 관료의 왜곡을 극복하고 일관적인 정책을 시행할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 점일 수 있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는 그냥 나라곳간 국민에게 퍼주면 되는 것 아니다. 국민들 얘기 들어주고 위로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권력을 주었으면 그 권력을 지렛대로 개혁저항세력에 맞서야 한다. 개혁 저항세력은 재벌과 보수언론, 모피아 관료들, 사법권력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 가장 힘 있는 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의 저항을 이기고 국민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 이후 정부에 맞서 한미 FTA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주저 없이 밝혔던 사례나, 민자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시도에 단호하게 맞섰던 경우가 있다. 그리고 주거문제나 등록금 문제 등에 대해서 저항세력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관되게 복지 확대의 태도를 관철시키려는 태도는 서울시민들로 하여금 박원순 시장을 신뢰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실제 저항세력에 맞서 개혁을 관철시키기가 가장 어려운 영역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다. 아직 안철수 후보는 저항세력에 맞서 국민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경제 민주화에 맞는 경제 정책팀이 구성되어야

사실 김종인이 걱정해야 할 것은 다른 후보가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선거본부의 후보인 박근혜 후보다. 김종인 자신의 경제 민주화 구상은 개혁적일 수 있다.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이 주도하여 발의한 1,2,3호 개혁 입법안도 평가해줄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박근혜 후보는 5년 전 자신이 발표한 신자유주의적 줄.푸.세 정책과,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는 경제민주화를 '같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해도의 저열함이 심각한 수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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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9정태인/새사연 원장

 

2009년 2월, 유럽의회는 89%의 찬성으로 ‘사회적 경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은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모델을 요구”하는데 “사회적 경제는 산업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실제 성과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협동조합이 곧 경제민주주의라는 얘기다.

한국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 됐다. 박근혜 후보마저도 경제민주화와 재벌의 지배구조를 문제삼기에 이르렀고,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엉뚱하게도 장하준 교수와 나를 영입할 생각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새누리당 내에선 ‘헌법 119조의 김종인’과 ‘재벌 출신 이한구’의 설전이 벌어졌다. 결국 박 후보가 “김종인과 이한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최종 심판을 내렸는데도 김종인이 “동의할 수 없다”고 감히 반발하는 등 말 그대로 코미디 시리즈가 연출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시민들의 저력이다. 유권자들의 요구가 바야흐로 재벌-경제관료-보수언론 3자 동맹을 뒤흔들고 있다. 2010년부터 시민들은 보편복지,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이라고 차례로 선언했고, 지금 전국 각지에서는 협동조합 열풍이 일고 있다.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세계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급증한 바 있다. 그러면 협동조합은 왜 위기에 강한 것일까? <주간경향>의 독자들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사회적 경제라는 범주 자체가 사회적 딜레마 해결의 오랜 지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한다거나 품앗이로 모내기를 한다든가, 스스로 강물이나 공동 숲을 관리하는 규칙을 만들고 지켜온 것이 모두 사회적 경제에 속한다.

자본주의 단계의 사회적 경제인 협동조합은 주기적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특히 이 연재에서 여러 번 언급한 몬드라곤(스페인)과 에밀리아 로마냐(이탈리아)는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서 과연 온전할까?

양쪽 모두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 안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지극히 평온하다. 이 곳 협동조합 네트워크에는 실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몬드라곤은 2009년 600명의 노동자를 재배치했고 2000명은 신축 근로에 동의했다. 모든 부문이 똑같은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나은 부문에서 더 어려운 단위 조합의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전직에 필요한 교육훈련도 협동조합 네트워크 내부에서 이뤄진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가(Lega·협동조합 총연합)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데, 이 지역 인구가 440만명인 점을 생각해보면 핀란드나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에서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전략적 방침도 조합원 총회에서 1인 1표로 결정한다. 바로 신뢰와 협동의 힘이다.

또한 각 지역의 금융기관, 예컨대 몬드라곤의 ‘노동금고(Caja Laboral)’나 에밀리아 로마냐의 ‘조합기금(Coopfond)’ 등은 어려운 조합에 추가 대출을 해준다. 즉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여느 은행과 달리 이들은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제 막 ‘협동조합을 꿈꾸는 그대’들에겐 꿈 같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협동조합의 광범한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곳에서나 가능한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개별 협동조합이라도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여서 고용을 유지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관찰된다. 서로 신뢰하기만 한다면 다 같이 살아갈 방법은 언제나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협동조합은 지배적 범주가 되지 못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상황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더 많은 단기적 이익을 약속하는 자본주의 기업을 선택해 왔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유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고 자체의 금융기관이나 교육기관을 갖춘 곳에서는 따뜻한 공동체적 경제가 지배적이다. 각 지역이, 나아가서 한국 전체가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어느 후보가 사회적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렇게 저렇게 다 해주겠다’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네트워크를 건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겠다고 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대선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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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상대를 이중인격으로 몰아세우는 무례한 언사다. 2011년 3월 <동아일보> 주필은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는 이 땅의 이른바 진보 민주화세력”을 겨냥해 그렇게 썼다. 그는 무람없이 정죄한다. “당신들은 더 이상 민주화세력도, 진보세력도 아니다.”


그 칼럼을 읽으며 새삼 세월의 변화를 실감했다. 어느새 아득한 추억처럼 빛바랬지만 한 때 그 신문은 한국 언론의 희망이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용기 있게 맞섰던 기자들 130여 명이 대량 해직 된 사건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동아일보>는 전두환 정권과 맞서기 시작했다.


신문 지면에 ‘김중배칼럼’이 나오는 요일이면, 독자들은 감동에 젖어 읽었다. 다른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도 그 신문을 찾았다.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해직사태 이후 해마다 들어온 수습기자들 가운데 민주언론의 의지가 또렷한 젊은이도 많았다. 그 시기 <동아일보>는 전두환 정권이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해 죽인 사건을 집요하게 보도해갔다. 김중배 논설위원이 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제하의 칼럼은 민주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들였다.


대북 비판 칼끝 ‘종북 색깔씌우기’로


그런데 어떤가. 작금의 <동아일보>는 전혀 다르다. 언론의 본령이 ‘권력 감시’에 있다는 언론학 원론을 새삼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을 정도다. <조선일보>보다 한 술 더 뜬다는 말은 이미 언론계 안팎의 상식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그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 대다수 기자가 1980년대 중반에는 적어도 지금처럼 글을 쓰진 않았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변했을까. 언론계의 ‘명가’로 불리던 신문사와 그 속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조락한 모습은 언론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깊이 성찰해볼 사안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여기에는 가장 큰 원인이 똬리틀고 있다. 신문사 내부의 봉건적 구조가 그것이다. 뜻있는 언론인들과 민주시민들이 언론개혁운동을 벌여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사주의 ‘황제식 경영’은 바뀌지 않았고, 언론개혁은 여러 이유에서 명백히 후퇴하고 있다. 다만 구조적 문제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기사를 쓰는 기자 개개인의 책임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자시절 초기의 글과는 달리 진보·민주세력에게 날 선 칼날을 휘두르는 칼럼을 노상 쓰는 언론인들의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진보·민주세력=친북·종북세력’이라는 등식이다. 들머리에 소개한 <동아일보> 주필이 쓰는 칼럼은 거의 모든 주제가 ‘김정일 체제’ 비판이다. 언론인으로서 그의 거주지가 서울이 아니라 평양인가 싶을 정도다. 물론, 그의 대북 비판이 국내 상황과 무관하진 않다. 비판의 칼끝은 진보·민주세력을 겨누고 있다. 그는 2011년 3월 현재 “한국의 민주화세력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며 “북한이다”라고 단언한다. 이어 “그럼에도 남한의 진보라는 사람들은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어떤 행동도 할 생각이 없다”고 개탄하며 공격한다.


<동아일보> 주필은 물론, 진보세력을 ‘훈계’하는 칼럼을 즐겨 쓰는 <조선일보><중앙일보>의 언론인들에게 명토박아 둔다. 대한민국의 모든 진보·민주세력이 ‘김정일 체제’를 찬성한다는 판단은 너무 거칠고 사실도 아니다. 터놓고 말하면, 기자로서 공부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무지에 지나지 않는다.


무릇 무지는 만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종북세력’으로 몰아친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그런 식의 황당한 딱지붙이기는 신자유주의를 거론하는 어느 언론인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가령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세력을 겨냥해 ‘주체사상이 더 좋은가, 신자유주의가 더 좋은가’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솔직히 궁금하다. 과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만 보기엔 젊은 시절에 본 그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새삼 말할 가치도 없지만, 신자유주의와 주체사상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다. 수많은 대안들이 있다. ‘멸공’ 아니면 ‘종북’이라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색깔을 들씌우는 반민주적 사고의 연장이다.


극우수준 논리의 논객들 자성의 거울 보라


더러는 그 또한 ‘표현의 자유’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현실이 너무 엄중하고, 언론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보라. 휴전선 앞에서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선동하는 유인물을 대량으로 풍선에 실어 보내고, 대규모 화력을 집중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곰비임비 이어지면서 북은 ‘불바다’를 위협하고 나섰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민주화를 위한 어떤 행동’을 마구 선동하는 행태가 과연 성숙한 자세인가?


저마다 언론사를 ‘대표’하는 논객들이 극우단체 수준의 거친 논리를 칼럼으로 써대는 모습을 보며 혹 그들이 ‘알리바이’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 재벌의 비리나 비정규직의 고통,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양극화를 거론하지 못하거나 짚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 이유를 한국 사회에 ‘발호하고 있는 종북 세력’탓으로 돌리려는 ‘합리화 심리’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지금 여기서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문제를 애면글면 의제로 설정하며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앞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겸손한 자세를 보이기를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다. 진보·민주세력을 싸잡아 ‘종북주의’ 따위의 색깔을 살천스레 들씌우거나 가면을 벗으라며 부르대는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거울에 비춰보라. 누가 보이는가? 젊은 날의 순수한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그만하면 많이 누렸다.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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