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새사연 이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림으로써 촛불시민혁명이 마침내 승리의 마침표를 찍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직감하고 있듯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대변혁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마련된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진정한 위대성은 바로 그 대변혁을 위한 에너지를 풍부하게 충전했다는 점이다.


국회가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던 2016년 12월 9일 전후 상황을 비교해 보면 문제의 본질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12월 9일 이전 보수 세력은 박근혜를 탄핵시키더라도 보수 정권 재창출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 반기문이라는 카드가 있었고 ‘신보수연합’의 무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3지대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선일보> 등 보수 매체는 마치도 촛불시민혁명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갔다. 박근혜 지지 세력은 극소수로 내몰린 채 숨을 죽여야 했다. 박근혜 반대 분위기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박근혜가 자신의 공약대로 국민대통합에 기여했다는 역설적 표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보수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대신 진보로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반기문은 중도하차했고 제3지대는 신보수연합 무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극우 보수 세력은 심각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위기의식은 촛불집회에서 사드 배치 반대 등의 구호가 터져 나오면서 한층 격화되었다. 극우 보수 세력이 대거 태극기 집회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태극기 집회는 한 때 서울 숭례문에서 세종대로까지 가득 메울 정도로 기세를 올렸다.


<조선일보> 등 보수 매체는 국론이 두 동강 났다며 비명을 질렀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이 낮에는 반탄(탄핵반대), 밤에는 찬탄(탄핵 찬성)으로 갈라졌다고 묘사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독자층이 두 패로 갈라진 상태에서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둘러싸고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대체로 그 중간에 있던 세력 특히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심하게 동요를 일으키기 쉽다. 그런데 놀라운 현상이 발생했다. 박근혜 탄핵 지지 여론이 75퍼센트에서 80퍼센트 사이에서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이 내려지면서 탄핵 지지 여론은 더욱 높아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티에 따르면 86퍼센트가 헌재 결정에 대해 잘했다고 평가했으며, 92퍼센트가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승복할 수 없다는 의견은 6퍼센트에 그쳤다.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두 측면을 동시에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촛불시민혁명은 참가자 수에서도 공전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광범위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데서 특유의 능력을 발휘했다. 공감의 리더십에서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반면 태극기 집회 측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거꾸로 태극기 집회가 보여준 극단적인 수구 색체는 보수 세력 내부에 심각한 정서적 균열을 일으켰다. 헌재 탄핵 결정 직후 군가 합창을 하고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모습은 그러한 균열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특검 조사를 시종 거부한 채 책임 떠넘기기 발언으로 일관한 박근혜의 모습은 극우 보수 세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키웠다. 법리 논쟁은 제쳐 둔 채 시간끌기와 트집 잡기로 일관한 대통령 대리인단들의 모습 또한 그러한 반감을 키우는데 톡톡히 한 몫 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극우 보수 세력은 진보 보수를 떠나 나머지 국민들이 정치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박영수 특검이 거침없는 공격적 수사로 일관하고 헌재가 전원일치로 박근혜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다분히 이러한 배경에서 가능했다.


보수가 다시 하나로 결집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반면 검증된 대로 박근혜 탄핵으로 뭉쳤던 국민들의 정치적 유대는 진보 보수의 경계선을 넘어 상당히 강력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대변혁을 뒷받침할 가장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변혁을 선도할 강력한 힘이 만들어졌다.


그간 청년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실패와 좌절, 패배만을 반복해서 경험했다. 그들에게 승리의 경험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런 청년세대 입장에 입장에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청년세대의 세상을 향한 불신과 냉소를 극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청년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지옥의 땅이었다. 청년세대에게 가장 호소력 있게 다가간 것은 이 나라가 하루 빨리 망하는 것뿐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청년세대의 40퍼센트 이상이 우리 미래와 관련해 ‘붕괴 후 새로운 시작’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시민혁명은 청년세대의 의식에서 액면 그대로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청년세대는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처음이자 역사에 기록될 의미심장한 승리를 경험했다. 이 경험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승리는 자신감을 회복한 노동자 대중의 광범위한 진출을 촉발시켰다. 그 유사한 현상이 청년세대에게 나타날 것으로 확신한다.


청년세대의 의식변화는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관심이 비상하게 높아졌다. <중앙일보>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92퍼센트가 다가오는 대선에서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2016년 4.13총선 대의 투표율 52.7퍼센트에 비해 비겨할 수 없이 높은 수치이다. 열성적 투표 층인 5060세대보다도 10포인트나 높은 것이었다.


촛불시민혁명은 박근혜 탄핵 추진을 통해 정치 지형을 뒤바꾸어 놓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거대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세상을 바꾸는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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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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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새사연 이사 



마냥 잘 나가던 사회단체나 기업, 국가 등이 몰락의 길을 걷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중 하나로 ‘자만’을 꼽을 수 있다. 자만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한 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절대 지존들의 운명은 이 점을 생생하게 입증한다. 소니와 노키아 두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였던 소니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소니는 1950년대 자신들이 최초로 개발한 트랜지스터 소형 라디오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소니는 불과 5년 만에 미국 트랜지스터 라디오 시장을 평정했다. 1960년대 이르러 소니는 독자 개발한 브라운관을 내세워 컬러TV 시장까지 석권했다. 1980년대에 와서는 이동하면서 들을 수 있는 휴대용 음향기기 워크맨을 출시해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워크맨은 오랫동안 경영학에서 기존 시장 판도를 뒤바꾸어 놓는 ‘와해성 제품’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었다.


소니가 1983년 필립스와 공동 개발한 CD는 기존 LP를 퇴출시키며 음향 매체의 새로운 표준으로 떠올랐다. 자신감을 가진 소니는 1991년 CD마저 대체할 미니디스크(MD)를 출시하는 면모를 과시했다. MD는 여러 가지 점에서 CD를 압도하는 장점이 있었다. 먼저 MD는 크기가 CD의 절반도 안 되었다. 이는 MD를 장착한 휴대용 음향기를 더욱 소형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MD는 CD에 없는 녹음 기능까지 있었다. 사용자가 원하는 음악을 녹음한 뒤 이동하며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작비용도 CD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MD의 대박 성공은 확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MD플레이어는 시장에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결정적 요인은 음악 시장이 급속하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했다는 데 있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PC가 일반화되고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음악을 듣는 형태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LP나 CD, 카셑 테이프 등 아날로그 매체를 재생해 듣던 것에서 음악 파일을 재생해 듣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출시됨으로써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소니의 MD는 아날로그 관점에서 보면 분명 최고의 기술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네트워크 기능이 없었다. MD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물딱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요즘은 기억에 가물가물할 정도로 존재가 희미해 있었지만 노키아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IT업계의 절대 강자였다. 1989년 미국 모토로라를 재치고 1위 자리에 오른 노키아는 1990년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을 점유했다. 초창기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노키아의 심비안 플랫폼은 40퍼센트 이상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노키아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바로 그 자신감이 노키아의 발목을 잡았다. 노키아는 휴대전화는 싸고 잘 터지기만 하면 잘 팔릴 것이라고 하는 사고에 푹 젖어 있었다. 그 결과 스마트폰으로 대세가 전환되는 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심비안 기반의 스마트폰으로 초기 기세를 올렸으나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마트폰의 경쟁력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플랫폼 기반에 있음을 충분히 파악 못한 것이었다. 노키아의 약점은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낡은 심비안은 터치식 UI에는 맞지 않았고, 자체 앱 시장인 오비(OVI)스토어는 애플 앱스토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플 플랫폼의 강력한 대항마로 구글 안드로이드가 등장했으나 삼성처럼 안드로이드로 재빨리 갈아타는 민첩성도 발휘하지 못했다.


노키아의 구식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에 밀려 일거에 시장을 상실했다. 심비안 플랫폼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2009년 4분기 44.4페센트에서 2011년 2분기 22퍼센트로 내려앉았다. 다급해진 노키아는 플랫폼을 MS의 윈도로 전환했으나 도리어 치명타가 되었다. 결국 노키아는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MS에 매각했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해 왔던 대로 하려고 하는 관성을 낳는다. 관성은 급격히 방향이 바뀌는 시기에 기존 방향을 고수하게 함으로써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소니와 노키아가 바로 그런 운명을 겪었다.


자만이라는 병에 걸려 몰락 위기에 직면한 가장 최근 사례로서 한국의 보수 세력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열악한 조건에서 산업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하는 강한 자부심을 품어 왔다. 그러한 자부심은 조선, 전자 등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섬으로써 한층 증폭되었다.


조선 분야는 일본이 50여 년간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켰던 분야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가전 시장은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 등이 한손에 쥐고 흔들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업체들이 그러한 일본 업체들을 넘어선다는 것은 상상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 한국 업체들이 일본을 넘어선 것이다. 한 때 세계 조건업계 1위에서 7위까지를 한국 기업들이 독차지하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휴대전화, TV 등 핵심 가전분야에서 한국 업체들이 일본을 재치고 세계 1위를 질주하기도 했다. 덩달아 일본에 주눅 들어 살던 한국 사회 분위기가 일본쯤이야 하는 것으로 확 바뀌었다. 외신 기자들 눈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로 비쳐졌다. 보수 세력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한국 경제는 정점을 찍는 바로 순간부터 고강도 혁신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가령 한국은 2010년대 접어들어 R&D투자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생산성은 33위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무언가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둔감했다. 그 이상 어려운 시절도 다 헤쳐 나왔는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매사를 대했다. 보수 정치권은 새로운 비전을 찾기보다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의 의지해 연명하려 했다.


결국 경제는 보수가 강하다는 통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보수 세력 전반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최순실 사태가 엄습해 오자 흔들리던 보수는 급속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과연 진보개혁 세력은 이러한 보수의 붕괴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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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정/ 새사연 연구원,  2017.02.08




지난 2월 2일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는 JTBC <썰전>에서 기획한 ‘2017 대선주자 릴레이 썰전’에 출연하여, 안보, 복지, 경제 분야에 대한 그의 주장을 풀어냈다. 이후 2월 5일에 ‘『혁신성장』 1호 공약 : ‘창업하고 싶은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보내고, ‘창업’에 관한 세부 공약을 발표하였다. 본 칼럼에서는 유승민 대선후보가 내세우는 공약들을 살펴보고, 만약 그가 당선이 된다면 어떤 대한민국이 그려질지 예상해보고자 한다.


유후보가 <썰전>에 출현한 이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유후보 뿐 아니라 가족과 공약이 오르내렸다. 또한 지지율이 높지 않았던 유후보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시청 후기들이 올라오는 등 보수정당에서 적절한 대선후보를 찾지 못했던 유권자들에게는 목마름을 적셔줄 단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후보는 방송에서 ‘대선 후보 중 유일한 경제 전문가’ 프레임을 강조하며 이를 ‘개혁 보수’로 끌어가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이러한 경제전문가의 창업정책은 기존의 정책들과 어떻게 다를까? 유후보가 내세운 여섯 가지 약속을 들여다보자.


▲ 창업에 실패해도 개인의 빚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회생할 수 있는 ‘혁신안전망’의 구축 ▲ 안 되는 것 빼고 모두 다 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를 대폭 없애고, 이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벤처 및 창업에 관련한 법을 하나로 모아 통합적으로 운영 ▲ 창업이 자수성가의 통로가 되어 자신의 재능과 열정으로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기. 특히 중소기업의 특허에 법인세 인하 및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 약속 ▲ 벤처캐피털 설립요건을 완화, 투자의 용이성 제고를 위한 투자 자금 소득공제 혜택 제공 ▲ 초등학생부터 창업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는 창업교육 비중 증가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고자 소프트웨어 코딩교육을 강화 ▲ 산업정책의 중심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으로 옮기고,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를 주도적으로 참여 유도


이 여섯 가지의 공약을 종합하면, 지원 강화와 규제 완화로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의미로는 보도 자료에서 언급했듯이 연못에 적은 수의 큰물고기가 아닌 호수에 수 만 마리의 크고 작은 물고기를 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세부 정책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전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들에서 ‘대기업’을 ‘민간 전문가’로 대체한 것 외에 새롭거나 획기적인 공약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창업의 궁극적인 목표를 현재 부실화된 대기업을 대체할 차세대 ‘대기업’의 모색으로 잡은 것 또한 아쉽다.


나아가 이전 정부들에서 실시한 창업정책 전반에 대해 청년창업가 당사자들의 비판이 이미 상당히 보도 되었는데, 그 중 규제 완화 외에는 의견이 많이 반영되지 않은 모습 또한 우려스럽다. 유후보의 공약에서 혁신 안전망에 대한 부분은 투자 및 세금우대를 골자로 짜여 있고, 한국형 실리콘밸리 조성을 목표로 한 이공계 창업을 위주로 교육의 목표가 세워져 있다. 투자 중심의 환경을 만들고자 이전 정권은 대기업에게 의존하지 않았나? 민간 투자의 기반이 어디인지 정확히 조준하지 않은 채로 투자 생태계를 논하는 것은 안개 속에서 아무 방향으로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창업의 테두리 안에 이공계열의 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창업을 사회경제 혁신의 시작으로 잡았다면 인문계 및 사회계열의 창업 또한 함께 생각해야한다. 4차 산업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이 펼쳐질 것을 예고하는데 로봇과 AI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산업 또한 융성할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유승민 후보가 내세운 공약들을 보았다. 수 년 간의 정치경험과 경제를 심도 있게 전공한 유능함으로 ‘개혁 보수’라는 대표 타이틀 아래에서 차분하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만약 이대로 당선이 된다면 우선적으로 사드가 배치 될 것이고 세금이 인상될 것이다. 또한 청년 일자리 정책들이 이전보다 더욱 창업으로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안보의 확충, 복지 기금 확보, 그리고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그 이유는 이상적인 것이 아닌 개혁과 보수라는 단어처럼 전혀 다른 방향의 주장들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단순명료해 보이는 타이틀 아래에 상충되는 개념들을 추스르지 않는다면 공약은 허황된 약속으로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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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새사연 연구이사 


보수! 너무나 익숙한 용어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던 세력의 호칭이다. 어느 학자는 보수는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든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맞다. 이런 식이라면 보수는 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수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 다수를 차지하면서 큰 소리 쳐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데가 있다. 보수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는 대표적 단어들은 친일, 분단, 독재, 부패 등이다. 모두 부정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보수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온 유일한 업적은 산업화 성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엄밀하게 따지면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교육열, 높은 저축률, 중소기업들의 왕성한 투자 열기 등을 원동력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없었다면 그 누가 나섰어도 산업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보수의 위기1. ‘독재세력이라는 낙인


30년 전 보수 세력은 존폐 위기에 내몰린 적이 있었다. 민주화투쟁의 승리 여파로 청산되어야 할 독재 세력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당시 보수 세력은 숨을 죽인 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보수 세력을 기사회생시킨 일이 벌어졌다. 민주화투쟁을 이끈 김대중․김영삼 양김씨가 갈라선 것이다.


양김씨의 분열은 1987년 대선에서 군부 출신 노태우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보수 세력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반전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어서 3당합당을 통한 민주자유당(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이르렀음)이 출범했다. 보수 세력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자유당을, 경제 영역에서 재벌을 구심으로 가까스로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3당합당 과정을 통해 보수는 이질적인 세력의 동맹을 구조화함으로써 그 외연을 크게 넓일 수 있었다. 동맹은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과거 군부독재의 주요 기반이었던 대구경북 (TK)과 민주화투쟁의 기지였던 부산경남(PK)이 같은 ‘영남’이라는 카테고리로 지역동맹을 결성했다. 두 번째로 산업화에 몸 바쳤던 지금의 60대와 어느 정도 민주화투쟁의 세례를 받았던 50대가 나이 들면 보수적인 된다는 단순한 이유를 바탕으로 세대동맹을 결성했다. 마지막으로 박정희식 국가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주의라는 이질적인 이념을 지닌 두 세력이 보수라는 끈 하나로 묶어 이념동맹을 형성했다.


보수의 위기2. 경제관리의 무능함


3대 동맹을 바탕으로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던 보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보수가 자랑하던 경제관리 능력에서 치명적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 정권을 내주어야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보수는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보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했다. 보수 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문제는 대안이었다. 바로 그 때 이명박이 급속히 부각되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공사와 대중교통 혁신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보수 세력은 이명박의 두 가지 사업 성공을 통해 과거 박정희 시대를 관통했던 높은 효율성을 발견했다. 보수 세력은 이명박이 바로 그 효율성을 바탕을 한국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고 믿었다. 보수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경제 회생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이명박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보수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잘못 해석했다.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공사 성공에 대한 보수의 지지를 과거 1970년대 식 개발주의에 대한 지지로 착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청계천 공사의 전국판이라고 할 한반도 대운하였다.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4대강 살리기로 슬쩍 우회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전면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할 중대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할 정부는 4대강에서 삽질만 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회생에서 완전 실패했다. 보수는 실망하지 않고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정희 딸 박근혜였다. 보수는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 시대의 정신으로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박근혜는 경제 회생의 비책으로 창조경제를 앞세웠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조차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박근혜 정부가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사이 한국 경제는 하릴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앞선 김대중․노무현에 비해서도 형편없이 저조했다. 장하성 교수가 어느 신문 칼럼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 경제 성적표를 조사 발표한 적이 있는데 대략 이렇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누적 경제 성장률은 60퍼센트 정도 된다. 그에 반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누적 경제 성장률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8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김영삼 정부가 초래한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4천 달러 이상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만 1천 달러 늘어났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1인당 국민총생산은 4100달러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민의 살림살이는 어떠한가? 가계소득은 김대중 정부 시절 1998년 외환위기로 크게 감소했지만 이후 4년 동안 19퍼센트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 5년을 거치며 10퍼센트 증가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가계소득은 누적 경제성장률의 3분의 1 수준인 10퍼센트 증가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가계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자. 해당 수치는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에는 97퍼센트,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는 105퍼센트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125퍼센트로 크게 증가했고 박근혜 정부 4년째인 2016년에는 150퍼센트를 넘어서고 말았다. 액면 그대로 국민부채시대가 열린 것이다. 빡빡해진 것은 가계살림만이 아니었다. 나라살림 사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정부 재정은 6.8조 원 흑자였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을 거치며 매년 재정적자를 기록해 누적 재정적자가 무려 166조 원에 이르렀다.


보수 세력은 당면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비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보수가 축적해온 노하우는 새로운 상황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음이 명확해졌다. 경제는 보수가 유능하다는 신화는 맥없이 깨져 나갔다. 보수 세력 내부에서 심각한 동요와 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수의 위기3. 동맹의 균열


다급해진 박근혜 진영은 4.13총선을 앞두고 전가의 보도였던 좌우 대결 구도를 재현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한국사 교과서의 검인정을 폐지하고 국정교과서로 단일화시키는 역사전쟁 불을 지핀 것이다. 좌우 진영이 한국사 그중에서도 근현대사를 두고 첨예한 입장 대결을 보여 온 점을 주목한 것이다. 역사전쟁을 계기로 우파가 총결집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념동맹의 한 축을 형성했던 자유주의 세력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들의 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개인의 선택권을 억압하는 획일화의 극치였던 것이다.


4.13총선은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뒤엎고 새누리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4.13총선 결과는 세력을 떠받쳤던 각종 동맹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음을 드러냈다. 지역동맹의 한 축인 부산경남 지역과 세대동맹의 한 축인 50대에서도 이탈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보수의 위기4. 국가의 사유화


심각한 균열로 인해 한없이 위태로워져 있던 보수 세력 위로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덮쳐 왔다.


최순실 사태는 보수 세력을 힘겹게 유지해 주던 정치적 끈을 가차 없이 절단시켜 버렸다. 최순실 사태는 최고 통치자의 무식과 무능,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의심을 받아 왔던 유능한 보수라는 신화는 완벽하게 깨져 나갔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국가라는 공적 기구가 어떻게 사유화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국가관을 중시했던 보수 진영의 가치 체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보수가 안겨다줄 수 있는 권위와 안정감마저도 환상에 불과했음에 드러났다.


보수 세력은 일제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 보수를 보는 사회적 시선도 싸늘해졌다. 스스로 보수라고 말했다가는 일거에 왕따 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올해 초 한 일간지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가 원하는 대통령 리더십은 진보가 64퍼센트, 보수가 26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비슷했던 수치가 확 달라진 것이다. 이 와중에서 추진된 박근혜 탄핵은 보수 세력을 산산 조각냈다.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보수가 사분오열된 것이다.


보수 세력은 붕괴되었다. 물론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쉽게 끝날 일도 아니다. 보수 세력 붕괴의 파장은 꾀 길게 이어질 것이다. 보수의 붕괴는 한국 정치 나아가 사회 전반을 혁신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기회이다. 과연 그 답은 무엇일까? 정치권부터 먼저 나서서 응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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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정치2013.01.09 15:32

2013.01.0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 결과 보수 세력의 10년 집권이 굳어지자, 역사의 퇴행이 심화되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노동권 회복이라고 하는 선거 공약 틀이 신자유주의적인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 금융화를 대체했다는 것 또한 중대한 역사적 변화다. 진보는 다수 국민과 호흡하면서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도 이 의제들을 진보적 내용으로 확장시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상식은 바뀌고 있다.

특히 보편 복지와 경제민주화, 노동권 회복의 구체적 내용들을 국민과 공유하면서 ‘과거의 당연한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상식들 대신에 진보적 전망과 정책을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당연한 상식’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은 이제 보편 복지의 상징으로서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무상급식이 상식이 되면서 중등교육까지 무상 의무교육 실시, 대학 등록금 절반으로 인하 등 다양한 교육복지가 전파되고 있는 중이고 이를 박근혜 정부도 회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이 ‘투자자산’이며 ‘매매차익’을 기대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살아왔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 문제가 ‘주거 가치’, ‘주거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고, 점점 더 주거복지가 주택 문제를 대하는 새로운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 소유나 매매시장보다는 공공 임대주택의 중요성이 함께 커져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과거의 상식을 유지하기 위해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취득세 감면 연장 등 얼마 남지 않은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세력도 존재하지만.

전 세계의 경제가 적자와 부채문제로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특히 가계부채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인식하고 있는 가계의 신용위험 정도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서 카드 대란 시절의 위험도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10대 공약 중 첫 번째가 가계부채 대책이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상식의 전복’은 일어나고 있다. ‘빚진 죄인’이라고 부채의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 덮어씌우고, 온갖 고금리 연체이자에 채권추심과 압류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관행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사연의 과제는 진보 정책을 국민의 상식으로 바꾸는 것

채무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권과 생존권과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약탈적 대출과 터무니 없는 고금리 수익을 추구한 금융회사도 일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새로운 상식’이 확립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부채의 노예로 삶이 속박된 최근의 신자유주의 금융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빚을 진다는 것은 오늘날 사회적 삶의 일반적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빚을 지지 않고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학자금 대출, 주택 구입을 위한 담보대출, 자동차 신용대출, 의료비를 위한 대출 등등. 대출이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주요한 수단이 됨에 따라, 사회적 안전망은 복지 체계에서 채무체계로 나아갔다.”(안토니오 네그리,2012,『선언(Declaration)』50쪽)

대안은 다수 국민들의 생활과 생각 안에 진보의 ‘새로운 상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반대로 길어야 2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 규제완화와 시장 자율, 금융혁신과 신용거품, 자산투기 등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 동안 진보에서 만들어진 참신하고 진취적인 정책들을 ‘새로운 상식’의 이름으로 국민 곁에 다가서도록 하는 집요한 노력이 쌓이고 또 쌓이면 시대는 결국 바뀐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새사연은 진보 정책들이 국민 생활의 저변에서 새로운 상식으로 확립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비록 정권은 일시적으로 역사를 역행하더라도 국민의 생각은 의연히 미래를 바라보며 진보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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