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베네수엘라와 엘 시스테마

2010년 9월 한 언론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상일동 주민센터는 3일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바이올린 교실’ 을 개강했다. 이 프로그램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예술적 재능을 길러주고 음악으로 희망을 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개설되었다. 그간 접수 기간을 거쳐 어린이 예술학교에 10명의 초등학생들이 교육을 받게 되었으며 꿈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바이올린 교실은 무료로 운영되며 강사료 20만원은 구의 지원과 상일동 주민자치위원회의 후원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주민센터 관계자가 “엘 시스테마처럼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 학생들이 좌절하지 않고 음악으로 꿈을 갖고 아름다운 감성을 기를 수 있도록 예술학교를 개설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엘 시스테마(El Sistema)란 무얼 말하는 것일까. 베네수엘라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라는 사람이 마약과 폭력, 포르노, 총기 사고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협동·이해·질서·소속감·책임감 등의 가치를 심어 주기 위해 만든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물론 최근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엘 시스테마는 1975년에 창설되었고 35년이 지난 2010년 현재 190여 개 센터, 26만여 명이 가입된 조직으로 성장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011년 10월에 내한공연을 하였다. 앞서 상일동에서 이를 본딴 시도를 했다고 기사를 인용했지만, 최근 부천, 성남, 대전 등 전국의 수많은 자치단체에서 유사한 시도가 줄을 잇고 있는 중이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이 사례를 확대하려는 정부 차원의 계획이 있었다. 2007년 차베스 대통령이 미션 뮤지카(Mission Musica)라는 이름으로 베네수엘라 어린이들에게 악기와 음악 교육을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미의 석유 부국, 또는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차베스 독재자(?)라는 정도의 이미지만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이처럼 훌륭한 주민 자치의 시도가 오래전에 있었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는 훨씬 더 다양한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그 이유는 차베스 정권이 미국과 적대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요인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 달리 오히려 차베스 정부 들어서면서 대단히 풍부한 주민자치와 참여 민주주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엘 시스테마보다 훨씬 더 내용을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참여 민주주의

주민자치운동은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단지 지역의 작은 단위에서만 가능하고 영향을 미치는 제한된 방식으로만 이해할 뿐, 한 국가 전체의 제도, 규범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국지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언정 광역과 국가 단위로는 의연히 ‘대의제 민주주의’를 당연시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2011년 전 세계를 흔들면서 타임지가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시위자(Protesters)들의 세계적 저항운동은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얼마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11년 벽두부터 세계의 뉴스가 되었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주화운동은 아랍의 독재자들에 의해 대의제 민주주의조차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접어두자. 그러나 비교적 대의제가 잘 발달한 스페인에서도 2011년 5월 이른바 ‘분노하는 자들’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광장시위가 한 달 내내 계속된다. 45%라는 엄청난 청년 실업률을 외면한 정부와 정당들에 분노해 청년들이 광장에 텐트를 치면서 저항운동을 하였던 것이다. 광장에서는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모으는 수평적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가 구현되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시위의 정점은 2011년 9월 17일 불과 30여 명의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월가 점령운동’이었다.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중심부에서 비롯된 작은 규모의 월가 시위는, 불과 수주 뒤에 수 만 명으로 불어났고 전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면서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랍과 스페인, 월가, 그리고 영국과 인도, 이스라엘 등에서 벌어진 이들 시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현재의 정부와 정당, 의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청년들을 중심으로 소셜 네트워크라는 소통수단을 통해 서로 의견을 공유하면서 거리로 나가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것이었다. 거리에서도 과거처럼 조직된 노동자나 사회단체가 단체가 아니라, ‘익명’의 다수들이 나와서 특정한 지도부도 없이 수평적으로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가면서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 한계를 정면에서 비판하면서 13년 전에 집권한 베네수엘라 정부가 바로 차베스 정부다. 1999년 차베스 집권 이전의 베네수엘라는 수 십 년 동안 양당체제가 지속되면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사회는 개혁되지 못했고 빈민층은 계속 늘어가기만 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들도 관료주의에 젖어 민생을 제대로 돌보는데 실패했다. 1998년 집권한 차베스 정부는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엘리트적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불평등한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관료나 대의제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사회 경제적인 과제들을 해결해가기 시작한다.

 집권 초반기에는 교육미션, 의료 미션, 주거와 토지개혁 미션, 상점과 물품 조달 미션 등 다양한 이름의 미션(Mission)을 만들어낸 후, 거기에 시민들을 참여시키고 중앙정부가 각 지역의 미션 조직들에게 자금을 직접 제공한다. 특히 이런 방법으로 빈민지역과 이른바 비공식 경제부문(노점상 등)에서 문맹을 타파하고,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고 도로와 주거 환경을 바꾸며,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유통망을 넓히는 등의 중요한 사회개혁을 단행한다. 이와 함께 낙후한 산업구조와 높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대대적으로 창설한다. 단순히 소비자 협동조합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부족한 생필품 생산을 담당하게 하는 한편,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2000년대 중반에는 그 수가 15만 개에 달하고 여기에서 일하는 조합원이 15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협동조합이 늘어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의 상징 주민평의회(Communal Council)

각종 사회개혁 미션, 엄청나게 팽창한 협동조합과 함께 베네수엘라 주민자치 실험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주민평의회(Communal Council)다. 2000년대 초 중반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것은 교육, 의료, 주거, 치안 등 각 사회개혁과제 별로 주민들을 참여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적, 물적으로 중복과 혼란이 발생하고 지역 단위에서 효율적이고 통일적으로 사회개혁이 진행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주민 평의회는 이런 중복과 혼란을 방지하고 지역에서 주민들의 통일적인 참여조직을 만들자는 취지로 2005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브라질의 지역 참여예산제 등에서 영감을 얻어 비교적 넓은 지역단위에서 자치조직을 만들려고 했지만 곧 실패한다. 범위가 넓으면 주민들 전원이 참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의 정당 지역조직이나 지역 유지 등에 의해 민의가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나타나는 모습과 유사하다. 실패를 교훈으로 베네수엘라는 주민 전원의 참여가 가능한 아주 작은 단위, 도시에서는 대략 200~400가구를 묶어서 주민평의회를 만들게 된다. 우리나라로 보면 중간 규모의 아파트 단지 정도가 되는 셈인데, 만 15세 이상 성인 전부를 대상으로 최소 20%이상이 참여하는 주민총회를 열고 도로건설, 주거, 수도, 전기, 치안 등 주민생활문제 관련 위원회를 만들고 대표를 뽑는다. 일종의 서민은행 겪인 주민은행도 만든다.

정부는 주민평의회가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컨설턴트를 파견하고, 요건을 갖춘 주민 평의회를 등록해주고, 지역 현안에 대해 스스로 의사결정권을 갖게 해주고 이를 법적으로 보장해준다. 공동체 주민들이 수평적이고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동네의 각종 현안들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6년 4월 주민평의회 법을 제정해 법률적 조직으로 지위를 격상시킨다. 특히 등록된 주민평의회에게 지자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데, 주민 평의회가 조직된 1년 후 중앙정부가 지방자치 단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주민평의회에 약 5조 원을 제공한다. 이는 중앙정부의 지방 자치단체 전체 교부금의 30%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큰 것이다.

각종 사회개혁 미션을 만들어 본 경험과 중앙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주민평의회는 2006년 1년 동안 1만여 개를 넘을 정도로 빠르게 만들어졌고 이후 대략 3만 여개가 만들어진다. 베네수엘라 인구 기준으로 대략 3~400가구 당 1개가 만들어진 셈이다. 2009년에는 주민평의회법이 개정되면서 그 규모를 확장시키는데, 특징적인 것은 여러 개의 주민평의회가 모여서 코뮤나스(Comunas)라고 하는 것을 만들고 좀 더 큰 규모의 지역 공동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200~400가구 단위로 할 수 있는 과제는 매우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도 카라카스의 한 외곽지역에서는 5개의 주민평의회가 공동으로 사회적 기업 형식의 생필품 유통시장(일종의 중형 수퍼마켓)을 만들고 주민평의회 공동소유로 운영하는 실험을 했다. 상품은 농촌 지역과 직거래 하는 방식으로 조달하면서 유통마진을 줄이고 수익금이 발생하면 지역의 또 다른 공동사업에 투자하기로 한다. 그런 방식으로 지역 라디오 방송국, 독거노인을 위한 요양시설, 그리고 지역 공동체를 위한 교육시설을 단계적으로 만들어 나갈 구상을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분야에 거대 유통기업이 기업형 수퍼와 같은 방식으로 동네 상권에 진출하거나, 아니면 영리적인 자영업 형태로 보육, 요양시설 등이 난립할 것인데, 베네수엘라는 주민 자치조직이 스스로 공동체의 이름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주민평의회 운동이 6년째 이어오면서 늘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목표한 대로 주민의 열성적인 참여를 보장해온 것만은 아니다. 최근의 조사 자료를 보면 짧은 시간 동안 수만 개의 주민평의회가 급조되면서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운영 방법이 미숙해 실패한 것도 대단히 많다고 알려졌다. 특히 2007년 이후 베네수엘라 전역에 생필품 부족이 계속되고 세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중앙정부는 지역 주민자치 조직보다는 중앙의 대기업들이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탓에 주민평의회에 대한 자금 지원이 절반가량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 주민들의 참여 열의가 떨어지고 주민평의회도 상당부분 동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주민평의회운동은 유럽이나 다른 지역의 풀뿌리 운동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갖는다. 무엇보다 특정 지역의 자발적 소규모 자치운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민평의회 운동은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위한 운동이기는 하지만,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정치적 기획이자 전국적으로 동시에 추진된 운동이었고, 지역의 자생력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법률적 지위 인정과 직접적 자금지원을 받아 조직된 운동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절대적 장점과 함께, 주민들의 착실한 참여 경험과 시행착오를 축적하지 못해 내실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특이한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운동은 아직 성공과 실패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 참여와 주민자치에 대한 실험에 있어서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은 분명하다. 엔리케 두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교수(77) 베네수엘라 주민 평의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도이며, 세계 정치의 새로운 경험”이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3만여 개의 주민평의회가 각각의 의제를 심의하고 제안하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발견”했으며,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시도 자체가 가치 있고 깊이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21세기 정치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운동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글은 월간 주민자치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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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9.12.31 09:45
국가 부도 가능성 1위 베네수엘라?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http://saesayon.org에서 PDF파일 다운로드

1. 미국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두바이가 국가채무나 다름없는 두바이 월드의 채무상환을 일시 중지하고, 그리스가 부채 문제로 신용등급이 A-에서 BBB+로 강등되면서 국가 디폴트 사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의 언론 매체들이 베네수엘라가 디폴트 가능성 1위에 랭크되었다고 대대적인 보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서도 <프레시안>이 미국 의 보도를 인용해 베네수엘라가 향후 5년에 걸쳐 국가파산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뽑혔다는 기사를 전했다.

이들 보도의 원천은 영국에 기반을 둔 CMA Datavision이란 회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 회사는 신용평가와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선물/옵션 거래소인 CME그룹의 자회사이다. 데이터비전은 2009년 4분기 “국가 신용 위험도 평가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평가 지표를 기준으로 베네수엘라의 국가 파산 가능성은 57.7퍼센트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밝혔다. 2위에는 54.6퍼센트의 우크라이나, 3위에는 49.1퍼센트의 아르헨티나가 각각 랭크되었다.

데이터비전의 국가 디폴트 가능성 계산은 금융 시장에서 5년 만기 국채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중간값을 누적적으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계산방법이 얼마나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데이터비전뿐만 아니라,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 회사들이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한 ‘역할’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위기가 폭발하기 직전까지도 빚을 갚을 능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제공된 모기지 대출을 근거로 만든 파생 담보부증권에 최고 등급을 부여하였었다. 또한 한국의 경우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뚜렷한 근거도 없이 동유럽 국가보다 높은 CDS 프리미엄을 물어야 했다.

2. 객관적 근거보다는 금융시장 큰손들의 정치적 행동

여러 관련 정보를 종합해 보면 베네수엘라의 파산가능성은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근거하고 있다기보다는 차베스가 진행하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프로젝트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반감과 우려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최근 2개월 동안 베네수엘라의 CDS 프리미엄이 상대적으로 많이 급등하였는데, 그 이유는 차베스 정부가 소규모 은행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실행한 데 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11월과 12월에 8개의 은행이 폐쇄되었다고 한다(2009.12.11).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의 국유화 조치가 국내예금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소규모 은행에 국한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부자들의 자금이 몰려있는 주요 은행까지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CDS 프리미엄 가격의 상승을 낳았고, 여기에 근거한 계산으로 베네수엘라가 향후 5년 내에 국가부도를 겪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것이다.

위의 그림은 베네수엘라의 실질GDP, 소비자 물가지수의 변화율, 국민총소득에 대한 총외채 비율의 장기적 변화를 시계열로 나타낸 것이다. 그림은 소비자 물가가 여전히 높긴 하지만 차베스 정권이 권력을 확립한 이후 상대적으로 크게 안정되었고, 국민총소득 대비 외채의 비율도 엄청나게 낮아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높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실질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2008년 하반기부터 이런 추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런 변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유가격의 변화이다. 베네수엘라의 GDP에서 원유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8퍼센트 이상을 유지해 왔었는데 11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상당 정도 그 여파로 인해 GDP증가율이 둔화되었고,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물가는 2008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현재 전년 동기에 비해 30퍼센트 가까운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의 상승률이 높긴 하지만 베네수엘라 가계소득에 큰 타격을 주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임금이 물가에 연동되어 움직여 왔다.

3. 인플레이션과 성장

인플레이션 문제는 차베스 정부가 베네수엘라 방식의 사회주의 개혁을 원만하게 진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위의 그림은 1990년대 베네수엘라가 겪은 초고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통화량이 증가와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이후 차베스 정부가 권력을 안정적으로 확립을 한 이후에도 통화량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같은 초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또한 1990년대의 초고인플레이션 국면과는 성격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 당시는 GDP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높은 실질 경제성장률이 달성되면서 중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그의 책 『Growth with Stability』에서 성장 없는 저인플레이션보다는 성장이 있는 중고-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주장한다.

스티글리츠와 그의 동료들은 남미, 동유럽, 중동의 여러 국가들의 장기적인 거시경제 지표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아래 표2의 자료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이들은 분석을 통해 각국의 경제주체(정부, 기업, 가계)들이 저/중/고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어떤 경제적으로 어떤 경험들을 하는가를 살펴본 뒤 중위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 다른 두 상황보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힌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흔히 접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악마 같은 이미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융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장된 결과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돈놀이를 하는 주체들은 인플레이션을 저주하게 되어있다. 차베스 정부가 초고인플레이션으로 물가문제가 확산되는 것만 막는다면 신용평가 기관들의 ‘바람’처럼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박형준/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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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9.02.18 15:33

한국만큼 정치적으로 역동적인 나라도 없다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지난 2007년 12월 대통령 임기조항을 포함한 ‘사회주의 개헌’이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차베스는 개헌안을 기어코 통과시켰다.

베네수엘라 국가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2월 16일 새벽 4시 18분 현재 99.57퍼센트의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임기제한 폐지에 동의하는 표가 631만 482표(54.85퍼센트), 반대하는 표가 519만 3,839표(45.14퍼센트)로 집계됐다.

                                  [그림1] 베네수엘라 선거 지지투표율 비교



* 2007년 친/반차베스 득표는 불록 A(차베스안과 국회안 중 차베스안)에 대한 찬반 표
* 2008년 친/반차베스 득표는 친차베스 후보, 반차베스 후보 표의 총합(가늠치)
* 2009년 친/반차베스 득표는 개헌 찬반 표

이번 결과는 차베스에게 선거 첫 패배라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던 지난 2007년 개헌 투표 때에 비해 그의 지지율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6년 대선에서 700만 표가 넘는 지지를 받았던 차베스는 2007년 개헌 투표에서 300만 지지층의 ‘투표 포기’로 패배했으나, 지난 해 지방선거와 이번 개헌 투표에서 지지 세력을 재규합해 유리한 결과를 이끌었다.

반차베스 진영은 비록 이번 투표에서 500만 표 이상의 지지를 받아 차베스 집권 이후 가장 많은 표를 결집했지만, 세력을 확대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친차베스 진영의 인사들 사이에서도 개헌 반대 의사가 표출되어 왔기 때문에 반대표를 모두 ‘반차베스표’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차베스 없는 차베스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건 친차베스 진영의 개헌 반대 움직임은 “영속되어야 할 것은 차베스의 임기인가, 혁명인가?”라는 물음으로 맞서왔다.

2002년 반차베스 진영의 쿠데타 당시 차베스 구출을 담당한 전 국방장관 바두엘이 2007년 개헌 논쟁 와중에 반대 진영으로 옮겨 간 것만 보더라도, 임기 문제가 친혁명 진영 내부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슈라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임기제한 폐지 논란

이번 개헌을 둘러싼 외형적 논란은 ‘무엇이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임기제한 폐지를 ‘독재’를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에는 전통적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통상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에 방점이 찍혀 있는 대통령중심제 체제에서는 임기제한이 거의 ‘상식’으로 자리해왔고,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장기집권과 독재를 위한 야욕으로 인식해 왔다.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차베스의 강력한 리더십과 군인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흔히 박정희와 비교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개헌은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외형상으로 유사한 면이 있어 차베스의 혁명 내용에 동의하더라도 정서적인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야당의 참여를 배제하거나 국민투표 직전에야 비상계엄을 해제한 박정희의 경우를 베네수엘라의 국민투표와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박정희의 경우 투표 내용에 관한 국민적 합의나 국민과의 소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했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투표 찬반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과 집회, 시위가 보장되었고 또 벌어졌다.

연임제한 폐지를 지지했던 이들은 임기제한과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대통령의 임기제한은 어떤 ’외적 규제’가 아니라 국민의 의사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임기를 연장하려고 해도 국민들이 허용해야만 하며, 설령 다시 당선되어도 국민에 의해 임기 중에라도 소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영국 마가릿 대처(비록 그녀 개인에게 투표한 것은 아니었지만)는 총선에서 4번 승리해 4번의 임기를 수행했고, 토니 블레어도 잇따른 총선 승리로 3번의 임기를 수행했다는 점을 예로 든다. 내각책임제 국가에서는 동일 지도자가 3번 이상의 임기를 수행하는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누구도 ‘반민주적’, ‘독재’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기제한에 대한 문제의식은 베네수엘라만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오바마 미 대통령도 “나는 임기 제한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임기 제한에는 한 가지 형식만 있다고 믿는다. 바로 선거에 의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미국의 해석도 180도로 달라졌다. 미국무부 대변인은 17일 최종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논평을 내어, “베네수엘라 국민 다수가 투표라는 민주주의 권리를 행사한 것을 환영한다. 다양한 계층의 베네수엘라 구성원들도 다양성을 지닌 투표라는 권리 행사를 존중했으면 한다. 이것이 다원 민주주의의 강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권력연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재체제를 강화한 이승만과 박정희의 유산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베네수엘라 개헌에 대한 거부감은 피하기 어렵겠지만, 무엇이 더 민주적인가에 대해서는 분명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차베스의 리더십

그러나 무엇이 더 민주적이냐는 논쟁과 별개로 이번 개헌을 둘러싼 대립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 혁명 과정에서 차베스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다. 얼마 전 차베스 집권기간 동안의 경제성과를 분석해 발표한 워싱턴의 ‘경제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차베스가 국영석유회사를 완전히 장악한 2003년 1사분기 이후 베네수엘라의 실질GDP는 94.7퍼센트나 상승했다.

석유부문의 수입을 다른 분야의 산업으로 돌린 덕분에 비석유 부문과 사적 분야의 성장이 두드러졌고, 빈곤세대는 2003년 54퍼센트에서 2008년 말 26퍼센트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또한 지니계수도 2003년의 48.1에서 2008년 41로 떨어졌고, 유아 사망률도 1/3로 줄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비율은 2000년에 비해 두 배나 늘었으며, 실업률은 10년 동안 11.3퍼센트에서 7.8퍼센트로 낮아졌다. 최근 31.4퍼센트까지 오른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하고 있고,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압력 때문에 지속적인 하락세가 예측되고 있다.

세계 4위 석유 생산국이었지만, 소수에게 나라의 부가 집중되어 있던 전형적인 친미국가 베네수엘라가 이런 변화를 일궈낸 이유를 말할 때, ‘차베스’라는 변수를 빼고 설명이 가능할까?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드러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대답은 ‘NO’였다. 차베스 지지자들은 차베스 말고도 다른 지도자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이제까지의 혁명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된 대통령을 왜 굳이 교체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림2] 베네수엘라 실질 GDP와 정치적 사건

베네수엘라 혁명과정에서 차베스가 차지하는 의미는 비단 경제적 업적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차베스가 등장하기 전에도 베네수엘라 역시 다양한 ‘진보’세력이 서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었고, 지금도 차베스의 독보적인 리더십 아래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개헌 논란에서 차베스가 반차베스 진영의 폭력성과 함께 급진 좌파 진영의 폭력 성향에도 우려를 표하고 강력한 법적 대응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만일 차베스가 없다면 베네수엘라의 정치과정이 지금처럼 흘러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굳이 일 잘하고, 개혁 진영에게 능력을 두루 인정받고 있는 차베스 리더십을 다수 대중이 원하지 않는데도 단지 임기제한 조항 때문에 버려야 하느냐는 친차베스 진영의 한탄은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차베스 또한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지지그룹을 모아 창당한 것이 통합사회주의당(PSUV)이다. 혁명 정당을 통해 자신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베네수엘라 신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렇지만 한 때 포기의사를 밝혔었던 임기제한 철폐 개헌을 밀어붙인 것은 정당을 통한 새로운 리더십 창출이라는 과제가 쉽지 않은 것임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권력 창출보다 더 중요한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

어쨌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변질될지 더 확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임기제한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하거나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럴 가능성에 대한 조치일 뿐이다. 한 예로, 아버지 부시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들 부시의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더 크게 위축되었다는 것을 볼 때, 형식적인 연임제한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어떻게 통치하고 있는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 점은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역대 대선 중 어쩌면 가장 민주적으로 치러졌다고 할 수 있는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정권창출의 정당성’만 볼 때,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1년 간 느꼈던 불편함은 권력 행사 과정에서 실종된 민주주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우리가 베네수엘라의 연임제한 폐지에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듯,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권력 창출과정만 고려한 민주주의 사고를 해왔다. 그러나 권력 창출의 정당성은 민주적 권력행사의 전제가 될 뿐, 민주주의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베네수엘라의 개헌결과를 보고 ‘종신집권’ 가능성만 강조하는 주류 언론의 시각도 협소한 틀 안에 갇힌 제한적인 시각일지도 모른다.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평가할 때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차베스가 어떻게 통치하느냐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아마도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정치이행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민중권력’과 ‘위로부터의 국가권력’이 조응하는 형태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될 수 있는가의 여부다.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나 지역 생산공동체까지 포괄하는 코뮨의 ‘자기결정적 형태’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 계속 유지되고 통치권자에 대한 대중의 통제권, 즉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나 소환, 발안제가 유지된다면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권력만 강화하고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수동화 시킨다면 이번 개헌이 독재를 향한 권력욕의 표출이었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둘째는 차베스의 존재가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계속 유의미한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 전 세계 금융위기에도 베네수엘라의 경제침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생필품 부족 등 해결해야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임기제한 폐지 결정이 차베스 리더십이 계속 필요하다고 느낀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이었다면, 그는 자신의 필요성을 계속 증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점은 객관적인 수치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투표결과 발표 이후, 지지자들에게 ’신사회주의로 함께 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차베스는 투표결과에 대한 승리감보다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향한 책임감을 더 크게 느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손우정/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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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12.10 09:28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로 주목을 받아온 베네수엘라 혁명은 여러 고비를 넘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총 327명의 시장과 22명의 주지사를 뽑는 베네수엘라 지방선거가 일제히 치러졌다. 그동안 ‘선거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차베스가 지난 2007년 12월 대통령 임기제한조항 철폐를 포함한 개헌안 투표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후 치러진 첫 선거였다. 그래서 더 큰 관심을 모은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결과를 분석해보고,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볼리바리안 혁명을 추진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이후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묘한 변화


▲ 베네수엘라 자치시 선거결과. 이번시장선거에서 차베스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가장 많은 시장을 당선시켰다. 붉은색이 PSUV의 시장 당선인 수, 푸른색이 반차베스 후보의 시장 당선자 수다. ⓒ Defense of Marxism 이번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결과는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 베네수엘라 지방선거 결과는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2007년 말 연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개헌 투표에서 처음으로 패배했던 차베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화려한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전체 327명을 뽑는 시장선거 중 265개 지역에서 승리했다(81퍼센트).

2000년 친차베스 후보가 114개 시장선거에서 승리했고, 2004년에는 226개에 이르렀던 것에 이어 ‘차베스 열풍’은 또 한 번 재현됐다.

더구나 PSUV 후보들의 총 득표수는 550만 표(58퍼센트)로, 지난 개헌 투표 때 찬성표보다 120만 표가 많았다. 반면, 반차베스 진영의 총 득표수는 400만 표(41퍼센트)로 지난 개헌 투표의 반대표보다 50만 표가 줄었다. 차베스는 선거 직후 “볼리바리안 혁명은 지난해 개헌 투표 패배 이후 다시 제 궤도에 올라섰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주지사 선거의 양상은 좀 다르다. PSUV는 선거주기가 다른 아마조나스 주를 제외한 전체 22개 주 중 17개 주에서 승리했지만, 2004년 선거에서 20개 주에서 승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수는 줄었다. 더구나 반차베스 진영이 승리한 미란다, 술리아, 누에바 에스파르타, 카라보보, 타치라 주는 하나같이 전략적 요충지이다. 미란다, 타치바, 카라보보 주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 시(Greater Caracas)는 차베스 지지 지역에서 반차베스 지역으로 옮겨간 경우다.

전략적 요충지 빼앗긴 주지사 선거

차베스가 빼앗긴 주들을 좀 더 톺아보자. 우선 미란다 주는 수도 카라카스가 속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미란다 주의 시장 선거에서 PSUV는 반차베스 진영이 5개를 차지하는 동안 15개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반차베스 진영은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를 포함해 수도의 5개 자치지역 중 4개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가장 가난한 지역인 카라카스 동부의 수크레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이전까지 반차베스 진영은 카라카스에서 가장 부유한 차카오, 바루타, 엘 하틸로 세 개 시만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선거 결과 차베스 진영은 전 부통령이었던 로드리게스가 당선된 리베르따도르 시만 수성했다.


▲ 붉은색 지역은 차베스의 PSUV가 승리한 주다. 푸른색 지역은 반차베스 진영이 승리한 주이며, 화살표 모양은 차베스 지지 지역에서 반차베스 지역으로 바뀐 주를 표시했다. 하얀색 지역은 선거 주기 불일치로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 AFP
전통적인 반차베스 지역인 술리아 주는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의 40퍼센트를 담당하는 곳으로, 미국이 자치독립운동을 부추기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대선에서 차베스의 경쟁자였던 로살레스는 술리아 주지사였다. 그는 2002년 차베스 추출 쿠데타 직후 헌법 무효를 비롯한 정권교체 문서에 가장 먼저 서명한 인물 중 한 명이다.

타치라 주는 마약 밀반출과 반군 척결을 빌미로 미군이 개입해 있는 콜롬비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민병대나 마약 밀반입자들이 출입하고 있어 안보상 중요성이 매우 크다.

이외에도 카리비안 해역에 위치한 누에바 에스파르타 주는 차베스 정부가 새로운 해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으며, 카라보보 주는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차베스와 PSUV로서는 지방선거 결과를 마냥 자축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구도는 다양한 조건과 맞물려 베네수엘라 정국을 또 한 번 혼란스럽게 할 개연성이 높다.

발판 다진 반차베스 진영의 노골적인 공세

우선 반차베스 진영의 공세가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차베스 진영이 공을 들인 전략적 요충지가 반차베스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이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 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2년 쿠데타 실패 이후 2003년 사장들 파업, 2004년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 등 차베스에 대한 도전에서 줄줄이 패배를 맛보았던 반차베스 진영은 이제 다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제까지와 다른 방향의 정국운영을 추진하기에는 집권 초기가 가장 유리할 수 있다. 이미 미란다 주에서는 선거 직후인 11월 25일, 미션 리바스(중등 무상교육 프로그램)와 수크레(고등교육-대학)의 강의실로 이용되던 공공장소가 폐쇄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지난 11월 28일 차베스 미션 운동의 수혜자들인 교사, 학생, 장애인, 노동자들이 새 주지사에게 위협받고 있는 중앙 정부의 사회적 미션과 프로그램을 방어하기 위한 시위를 벌였다.

11월 25일 밤 아라구아 주에서는 친 혁명적인 전국노동조합(UNT)의 좌파 지도자 세 명이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들의 사망은 암살방식과 그들이 관여했던 업무 등을 고려했을 때 콜롬비아 식품회사가 개입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하루 전날에도 이들이 아라구아 주지사와 연계된 경찰들의 공격을 받았었기 때문에 반차베스 세력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곧 퇴직하는 아라구아 주지사는 원래 차베스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작년 개헌 국민투표 와중에 우파 진영으로 옮겨간 인물이다.

아라구아의 살인사건은 지난 11월 23일 지방선거 이후에 분출되기 시작한 베네수엘라의 계급갈등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벌써부터 미국의 후원을 받는 반차베스 진영이 노동조합원, 풀뿌리 공동체 조직, 친 혁명적 사회 운동 등에 본격적인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육과 보건 관련 미션 사업이 위협을 받으면서 의료 미션에 참가하던 쿠바 의사가 반차베스 진영의 공격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기의 네오콘, 잠자코 있을까?

오바마가 취임하기 전, 미국의 대외 정보·공작 기관의 활동이 강화될 가능성도 크다. 차베스를 ‘남미의 후세인’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미국은 그동안 CIA, NED, OTI, USAID, DAI, IRI 등을 통해 베네수엘라 정치에 적극 개입해 왔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내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지난 대선 직전에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반차베스 진영이 사회혼란을 부추기기 위해 학생과 군인들로 위장한 반정부 시위대를 조직하고 대학생을 암살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추진하려다 술리아 주 마라카이보 시장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일방주의 정책을 폈던 부시와 다른 대외정책을 천명하고 있고, 차베스 또한 오바마 당선인에게 “부시가 남겨놓은 문제들을 풀기 위한 열린 대화”를 제안하고 있어 양국관계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부시가 남겨 놓은 대외 공작의 유산들은 자신의 효용가치를 증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이들은 오바마가 취임하기 전에 최대한 베네수엘라의 혼란을 부추겨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하고, 오바마의 베네수엘라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혁명에 독 될까?

한편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베네수엘라가 부딪힐 문제들도 변수로 남는다. 대체로 베네수엘라는 국제 금융위기를 충분히 방어할 메커니즘을 가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02년 말에서 2003년 초까지 이어진 석유파업 이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이 재국유화 되면서 외환보유고는 남미 국가 최대 수준으로 높아졌고, 통화 교환에 대한 통제력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은 여전한 골칫거리이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GDP 성장률은 1분기에 4.9퍼센트를 기록했고, 2분기에 7.1퍼센트를 기록해 상반기 전체를 통틀어 총 6퍼센트를 성장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22.5퍼센트에서 올해 32.2퍼센트로 급격히 상승했다. 물론 이런 인플레이션 증가는 차베스 집권 이전 두 정권 하에서의 증가율(59.4퍼센트, 45.3퍼센트)보다 낮지만, 차베스 집권 기간 동안 평균 인플레이션 증가율인 20.9퍼센트보다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오랜 기간 고정되어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식료품 등 기초적인 생필품을 해결하는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이다. 올 1월 24.7퍼센트까지 치솟았던 식품 부족율은 7월 들어 12.1퍼센트로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저소득층의 불만을 이용한 반차베스 진영의 공격거리가 되고 있다. 빈민이 많은 카라카스 시의 수크레 지역에서 반차베스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빈민들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 베네수엘라의 GDP성장률은 차베스 정부 등장 이후 마이너스에서 반등되었다가 2002년 쿠데타와 석유파업 이후 -26.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석유파업이 종료된 이후 매년 높은 수준으로 성장해왔다. ⓒ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베네수엘라가 올 한해를 ‘경제주권의 해’로 정하고 균형적인 국내 발전을 노동자들의 자주 경영과 꼬뮨 등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금융위기의 파급효과가 생필품 가격의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올해 상품 수입이 크게 늘어(10.8퍼센트) 110억 달러를 지출했다. 주요 수입 품목은 의약품, 화학품, 기계설비, 오일, 유지, 고기, 우유, 시리얼, 핸드폰 등이다. 석유를 제외한 수출은 16억 달러로 작년 동기에 비해 5.8퍼센트 줄었다.

국제유가 하락 또한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수출의 94퍼센트를 차지하고 국가예산 수입의 절반을 감당하고 있는 원유 가격이 연일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신사회주의 개혁 동력은 힘에 부칠 수 있다. 올 10월, 베네수엘라 국회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로 778억 달러에 이르는 2009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11월 24일 현재 베네수엘라 원유는 54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이런 상황들이 민심이반을 노리는 반대세력의 좋은 공격거리가 될 수는 있다.

차베스가 다시 꺼내든 헌법 수정 카드

이런 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반혁명’ 가능성에 대해 차베스가 꺼내든 카드는 연임제한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하는 ‘헌법 수정’ 국민투표다. 선거 직후 차베스는 “나는 어떤 개헌도 제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민중들이 그렇게 한다면 난 피할 수 없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지만, 점차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차베스는 수도 리베르따도르 시장 당선자를 위한 공식 행사에서 “나는 2019년까지 당신들과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연설했다. 두 차례의 연임만 허용하는 현 헌법에 의해 차베스의 임기는 2013년에 종료된다는 점에서, 이 말은 3선을 허용하는 개헌 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연설에서 차베스는 “지난 (개헌)투표에서의 패배는 나에게 더 이상 연임에 관한 헌법 수정을 강조하지 말라는 신호였다고 봤고, 내가 5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나 대신) 책임을 떠맡을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파시즘과 함께 등장한 커다란 위협을 목도하고 있으며, 언론은 민중에 대한 공격을 다시 개시했다. 당신들이 옳았다. 차베스는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헌법 수정 국민투표는 곧 제안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5일 차베스는 헌법 수정이 내년 2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지방선거 운동에 나섰던 지지자들에게 조직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PSUV 또한 국민청원을 받기보다 국회에 헌법 수정안을 발의하는 방법으로 국민투표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킨다는 방침을 이미 결정했다. 헌법 수정 문제를 년 초에 매듭지어 개헌 문제로 일 년 내내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지금 당장 투표하면 수정안 통과 가능성 높아

지난 해 12월 2일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개헌 투표를 다시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지방선거를 거치며 지난 개헌 과정에서 잃어버린 지지자들의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7년 출범 초기 PSUV가 제대로 조직정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헌 투표에 패배했지만, 이제 PSUV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정상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헌법 투표 승리는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다. 친차베스 진영은 애초부터 이번 지방선거를 PSUV의 시험무대로 보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작년 개헌 투표에서의 패배가 반차베스 진영의 승리라기보다 혁명지지 세력의 결집 실패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나온다. 차베스는 2006년 대선에서 730만 표를 획득했지만 지난 개헌 투표 때는 약 300만 표 적은 430만 표를 득표했다. 반면, 최근 몇 년간 반차베스 진영이 획득한 표는 항상 400만 표에서 450만 표 사이에 머물렀다. 반차베스 진영은 주로 전략 주의 득표에 온 역량을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PSUV가 정상적인 활동을 펼쳐 지지자를 결집해낸다면 차베스의 승리 가능성은 지난 개헌투표 당시보다 높다. PSUV는 지난 개헌 투표가 부결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나치게 복잡한 개헌안에 있었다고 보고, 개헌이 아니라 하나, 혹은 몇 개 조항만 고치는 ‘헌법 수정’ 국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개헌 시 수정 대상에 오른 조항은 69개에 달했고 일부사항을 못마땅하게 여긴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했다는 내부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략 주를 반대파에게 넘겨준 것은 반대파의 승리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친차베스 정부들이 민중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몇몇 지방 정부는 부패와 관료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여전히 반노동자적인 경찰은 차베스 정부와 민중 간의 거리감을 넓히고 있다.

혁명진영 내부에서 직접적인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전 국영방송국의 사장이자 외교부 차관이었던 빌리가스는 한 인터뷰에서 “(헌법 수정의) 목적이 뭔가? 차베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가, 혁명과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가?”라며 “최고 지도자 없이 혁명과정을 진행한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없는가?”라고 물었다. 2002년 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차베스의 영원한 동지일 것 같았던 바두엘 전 국방장관이 2007년 개헌 투표 와중에 반차베스 진영으로 옮겨 간 상처도 아직 깊다.

차베스 리더십의 딜레마와 민중들의 선택

이처럼 베네수엘라 내·외적인 요인들이 복잡스럽게 얽혀 있는 베네수엘라 정국은 매우 혼란스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역습의 발판을 다진 반차베스 진영과 연임 제한 철폐로 반전을 노리고 있는 차베스 진영은 헌법 수정안 투표를 두고 또 한 번 격돌을 예고하고 있고, 이것은 이제까지 베네수엘라 정치가 그랬듯 제도화된 정치적 수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혼란은 차베스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바로 리더십의 딜레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장송곡이 울러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모델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를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구현하고자 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가 리더십 부재에 있다. 특히 2008년 대중의 폭발적인 정치참여와 함께 정치적 리더십의 공백을 절감했던 우리에게는 차베스와 같은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아쉽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체제의 건설과정에 리더십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는 논쟁거리다. “지도자의 장기집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암묵적 전제를 지키기 위해 차베스의 헌법 수정을 반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혁명세력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혁명의 수호와 전진을 위해 리더십을 보존해야 하는가?” 이것은 베네수엘라 정치상황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성과는 차베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들이다.

지난 개헌 투표에서 투표를 포기한 300만 명의 차베스 지지자들도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지난 1년 동안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따라서 만일 베네수엘라 혁명이 리더십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문제는 헌법 수정안의 통과 여부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딜레마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베네수엘라 혁명과정에서 리더십이 갖는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국민투표 과정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내년 2월 이내로 논의되고 있는 투표 일정에 이런 과정이 기획되어 있는지는 아직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혁명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반혁명 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불신과 동요, 그리고 갈등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기억한다면, 차베스는 혁명을 지지하는 대중들과 좀 더 깊은 민주적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내년 초 헌법 수정 국민투표가 통과된다고 해서, 딜레마에 대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혼란이 깨끗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풀어야할 가장 크고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손우정/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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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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