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민주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1.20 이해타산적 인권외교로는 안 된다
  2. 2007.11.20 버마인의 ‘국민 주권’을 지지하자
주제별 이슈 2007.11.20 20:56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일어선 승려와 시민들, 그리고 이들과 맞서고 있는 군사독재정권의 장래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군사정권이 무기를 들지 않은 승려와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며 무력으로 진압해 국제적인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10월 2일 유엔인권이사회는 버마 당국의 시민집회에 대한 무력 진압에 “강한 유감”을 표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세계 각 도시에서는 해외 거주 버마인 활동가나 버마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집회가 전개되고 있다.


버마 사태 두고 헤매는 국제사회

앞으로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버마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버마 사태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유엔이나 동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세안은 대 버마 민주화 촉진에 대해서 제재나 압력보다도 건설적인 대화가 효과적이라며, 강경한 대응을 원하는 구미국가들과는 그 노선을 분명히 그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아세안의 방식이 버마 정권의 자세를 변화시키는데 유효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11월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채택될 예정인 ‘아세안 헌장’에는 지역 인권침해 감시기관 설치가 목표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그리고 소극적인 버마의 대립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권침해의 인정 방식이나 제재 조치 유무에 대해서도 가입국가간 합의가 없는 상황이다. 인권을 위한 지역적 틀을 마련하고 있는 아세안으로서는 버마 사태를 둘러싸고 지역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안보리에서도 버마 정권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구미국가와 중국.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다. 특히 버마 군사정권에 강경한 대처를 주장하는 영미국가들과 안보리의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 차이는 뚜렷하다. 올해 1월에 영미국가는 버마 인권문제 결의안 채택을 안보리에 제출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해 저지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버마 안건은 안보리에서 결의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인권이사회 등 다른 유엔 조직에서 논의해야할 과제라고 주장해왔다. 그 배경으로 영미국가가 유엔 안보리를 이용해 인권을 중시하는 흉내를 내고 있지만, 사실 이들의 이권을 확대하려고 유엔에 의한 제재나 무력행사를 시도해온 경위를 지목하고 있다. 영미국가의 ‘인권외교’가 전쟁 등 더 심각한 인권유린 사태를 일으켜 온 게 사실이며, 이라크 사례에서도 생생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버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국의 이권에 얽매인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무기수출 등 군사적으로도 버마 군사정권을 지원해왔고, 그 대가로 버마의 지하자원을 수입해왔다. 버마에게 중국은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양국 간의 이런 관계를 볼 때 중국이 버마 정부에 보이는 온화한 자세를 마치 악명이 높은 영미국가 식 ‘인권외교’를 거부하기 위해, 아니면 버마의 민주화나 인권상황을 개선하려는 태도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국가 이권이 걸린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국 이외에도 버마 군사정권은 러시아한테도 무기를 제공받고 있을 뿐 아니라 핵개발 시설 지원도 러시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영향력에 대비해 버마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립화시켜줄 인도와의 관계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이처럼 버마 정권은 주변 대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얻어낸 결과, 건설적인 대화를 추진하려는 아세안보다도 이들 대국과 가까워져 문제 해결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아시아지역 인권감시 및 보장 기구의 필요성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버마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좀처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국가주권과 인권이 상충되는 지점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지역인권보장 기구의 창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동아시아 내에서 지역적 과제를 논의할 기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현 단계에서 동아시아의 지역인권보장에 대해 논의할 정부 간 기구는 아세안 이외에는 사실 없다.


아세안은 2015년 아세안공동체 출범을 앞두고 있으며, 지역 내 가치관 공유의 노력으로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을 이미 제안하고 준비를 해오고 있다. 아세안이 책임 있게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을 설치하려고 했던 것은 유엔인권회의가 개최된 1993년의 아세안 국가연합 의회기구(AIPO)가 채택한 인권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의 인권위원회가 모여서 비공식 대화의 장을 마련해왔고, 회원국가의 공통과제인 여성. 어린이의 인신매매, 인권과 테러리즘, 이주노동자, 인권교육, 경제 사회 문화권 등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해 지역인권보장의 틀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방식이 내정간섭 등으로 비춰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이외의 국가에서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최초의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은 유럽주평의회에 의해 설치되었고, 평의회는 1950년에 유럽주인권조약을 채택했다. 이 조약은 세계인권선언의 소위 자유권의 집단적 확보를 보장할 최초의 수단으로 작성되어, 집행기관으로 유럽주인권위원회와 유럽주인권재판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미주에서도 1959년에 미주기구에 의해 미주인권위원회가 설치되어 1969년에는 미주인권조약도 제정되었다. 이 조약은 자유권과 사회권을 동일한 조약 안에 보장하고 이것을 적용하고 해석할 독립사법기관으로 미주인권재판소가 설치되었다. 유럽주, 미주인권조약도 애초의 시민권, 정치권 중심의 조약으로부터 경제권, 사회권, 문화권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신식민지주의와 싸울 목적으로 발족된 아프리카 동일기구에 의해 1981년 아프리카인권헌장이 제정되었고, 2006년에 아프리카인권재판소도 설치되었다. 아프리카인권헌장에는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면서도 가족이나 사회, 국가, 기타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이 과거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 일어난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인민학살이나 군사탄압에 맞서는 적합한 구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인권 메커니즘은 국제인권규약의 세계 보편성을 강화하고 재규정하는 데는 의미 있게 평가받는다.


아래로부터의 인권보장 메커니즘 구상


이상의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 사례는 인권의 보편성을 지역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개별국가가 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나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을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감시 혹은 평가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국가가 모여서 만든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은 언제나 특정 국가의 이권에 좌우되는 조직으로 변질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의 과도한 힘을 배제하고 사회전체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주체는 지금으로서는 특정 국가의 이권을 넘어 초국가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 비정부기구(NGO)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이 확립되지 않은 반면에 지역 NGO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이니셔티브가 발휘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군부가 동티모르 시민을 무력 탄압하고 인권을 침해한 문제에 대해 지역NGO는 이를 규탄하고 보다 본질적인 인간 존엄의 실현을 국제사회에 제기해왔다. 또한 지역 NGO는 독재정권이 자기 정당성을 내세워온 ‘아시아적 가치’의 허구를 고발하고, 아세안의 내정불간섭 방식이 지역 인권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이제까지 NGO의 노력은 아세안의 의사결정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아시아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지역 NGO의 네트워크 조직인 ‘아시아포럼(Asia Forum for Human Rights and Development)’이나 아세안 정책입안자와 지역 NGO의 연합체로 구성된 아세안인민회의(ASEAN People’s Assembly; APA)가 형성되었다. 특히 APA는 정부관계자와 NGO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아시아지역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인권침해를 저지른 각국 정부에 권고를 주거나 정책제안을 하고 있는 NGO인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가 있다.


아시아인권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여명이 넘는 아시아지역의 인권 NGO와 전문가가 논의를 거쳐 시민 수준의 인권헌장인 아시아인권헌장(Asian Human Rights Charter)을 작성했고, 1998년 5월에 광주에서 발표했다. 이 헌장은 “국가주권을 국제규범의 회피나 국제제도를 무시하는 핑계로 이용할 수 없다. 국가주권은 국가가 자국민의 권리를 완전히 보호했을 때 우선 정당화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법적 인권기준이 아닌 아시아지역의 인권존중을 달성하려는 정부, NGO 그리고 시민이 따라야할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NGO를 중심으로 한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 설립을 위한 노력은 국가 대 국가 구조로 희생되어 온 개인의 인권을 실현할 길도 열어준다. 국가주권이 아닌 인권침해 피해자 입장으로부터 보다 객관적인 논의를 지역 NGO나 시민사회단체가 심화시킨다면, 동아시아의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도 더욱 의미 있는 구도를 갖출 것이다. 영미국가나 아시아국가 지도자들의 ‘아시아적 가치’와 같은 인권을 내거는 더 심각한 인권침해에 맞설 힘을 가질 것이다. 아시아의 시민사회도 아시아 인권헌장과 같은 지역인권보장 메커니즘을 설립하는 데 나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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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7.11.20 20:54
 

우리 국민이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 독재의 기반을 무너뜨린 이듬해 8월 8일 버마(미얀마)에서도 한국과 동일하게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국민 항쟁이 일어났다. 수천 명이 희생된 이 8888 항쟁을 짓밟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탄 슈웨 등 현재의 버마 군부다. 정치 주권 실현 기회를 빼앗긴 버마 국민이 19년간의 독재에 저항하여 시위를 벌이자 9월 26일 군사 정권은 또다시 시위대에게 무차별하게 총을 난사하고 곤봉을 휘둘러 적어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살상했다.


부패한 정권과 해외 자본에 국민 주권 빼앗겨


버마의 이번 9월 시위는 정부의 급격한 에너지 및 교통비 인상이 도화선이 되었다. 에너지 산업을 독점한 정부가 천연가스와 휘발유값을 기습적으로 올린 탓에 체감 물가 상승률이 500퍼센트에 이르렀고 버스 요금이 2.5배나 뛰어올랐다. 하루 일당의 절반 이상을 출퇴근 교통비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버마인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놀라운 것은 버마는 마르타반만과 벵갈 해안 등에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자원 부국이라는 사실이다. 천연가스에서만 향후 40년간 매년 20억 달러씩의 수입이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에너지 자원을 노리고 주변국들이 버마의 부도덕한 군사정권과 협조 관계를 유지한다. 세계의 공장으로 팽창하면서 에너지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국이 가장 큰 이해관계를 걸고 있다. 이번 사태로 자국 기자를 잃은 일본은 버마에 대한 최대 원조 공여국이다. 한국은 버마 A-1 가스전 개발에 대우인터내셔날 60퍼센트, 한국가스공사 10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중이다.


차베스 집권 이전의 베네수엘라가 그랬듯이 풍부한 천연 자원이 부패한 정권과 그에 결탁한 국내외 독점 자본의 배를 채워줄 뿐, 버마 국민의 생활 처지 개선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전혀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버마 국민은 경제 주권 역시 철저히 박탈당한 상태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로라 부시의 인권 타령


버마 사태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가 버마 군사 정권의 퇴진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아무리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라지만 외교 문제에 관여하여 한 나라의 정권 퇴진까지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유엔총회 연설에서 버마 인권을 거론하며 경제 제재를 압박하고 있는 남편 부시를 뒷받침하는 부창부수다.


그러나 로라 부시가 언론에 버마 정권 퇴진을 요구한 바로 그 다음날 이라크에서는 미군의 헬리콥터 공습으로 어린이 9명과 여성 6명이 또 숨졌다. ‘또’ 라는 것은 이런 일이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미군은 ‘무장 세력이 일부러 데려다 놓았다’는 발언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헬리콥터 공격이 일반 공습과 달리 목표물에 근접해 조준 사격을 위주로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까지 희생당한 이라크 민간인 수가 100만 명에 이른다. 이라크 민간인의 피를 낭자하게 묻히고 있는 부시 부부가 다른 나라의 생명 존중과 인권을 논하는 장면은 역겨움 그 자체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환기할 사실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이유로 ‘대량 살상무기’를 내세웠다가 낭패를 겪자, 다시 수정해 내건 명분이 ‘후세인 독재 청산과 이라크인의 인권’이라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인권’은 미국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다시없는 좋은 명분이다. 많은 인권 운동가들조차 그 이면을 직시하지 못한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을 약탈할 때 ‘미개인에 대한 선교’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래로 패권 국가들이 약소국을 침략할 때는 항상 명분을 내세웠다. 20세기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 명분은 ‘문명화와 통상’이었고 2차대전 이후 한국을 포함한 모든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공산주의 저지’를 구실로 삼았다. 냉전 해체 이후 그 명분은 ‘반 테러’ 또는 ‘인권’으로 바뀌고 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패권주의 시각


버마 사태에 미국이 방방 뜨는 데는 ‘지금 못 먹는 감 일단 찔러나 두자’는 고약한 심리도 존재한다. 중국과 2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을 맞댄 버마는 경제,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에 강하게 편입되어 있다. 남미가 미국의 뒷마당이었다면 버마는 중국의 앞마당 격으로 서방 국가들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버마의 정권 교체를 거론하고 한때 버마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영국의 데이비드 밀리번드 외교장관이 ‘수치 여사가 버마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 사태를 당장에는 중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카드로, 향후 언젠가 버마가 민주화될 경우 친서방 정권 수립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남겨두자는 군사외교적 판단이 깔려 있다.


미국은 추악한 중남미 군사 독재 정권들을 지원하며 단물을 빼먹다가 남미 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자 전략을 바꾸어 새로 수립된 민선 민간정부를 경제적으로 포섭하여 잇속을 차렸다. 독재를 무너뜨린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민간 정부가 ‘인권 친구’라고 여긴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포획되어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것이다.


연대의 기준을 ‘인권’에서 ‘주권’으로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다. 그러나 남미와 이라크, 버마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 소중한 인권조차 주권이 전제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뜻하는 주권은 정치적으로는 국민이 정부와 통치 체제를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 경제적으로는 국민의 경제적 생존과 처지 개선, 일할 권리를 포함하며 나아가서는 국가적으로 다른 나라의 침략과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번 버마 사태는 세계인의 공분을 자아냈다. 더구나 80년대에 한국과 동일한 궤도 선상에서 목숨을 걸고 군부독재 퇴진 투쟁에 나섰던 버마인들에 대해 우리 국민은 많은 안타까움을 지닌다. 버마인들을 지원하고 연대해 나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지원과 연대의 기준이 침략과 패권에 익숙한 국가들이 내세우는 그들 식의 ‘인권’일 수는 없다.


우리는 버마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정부를 세우고 그들의 국부를 국민경제를 위해 쓸 권리, 대외적으로 어느 나라의 간섭과 침공도 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 즉 버마인들의 ‘국민 주권’을 지지하며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87년 6월항쟁과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상황을 두루 경험한 우리 국민은 부시 부부의 알량한 인권 타령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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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