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10.1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삼성재벌과 다른 재벌은 다르다.

지금 대선국면에서 재벌개혁이 가장 뜨거운 쟁점이지만, 사실 재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체급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총액은 273조 원으로 2위 현대차 그룹 매출 156조 원의 두 배에 가깝다. 재계 순위 10의 두산그룹이 약 20조 원 매출을 올리고 있으니 삼성그룹 매출 규모의 1/10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 30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정도를 등급으로 매긴다면 1위 삼성, 그리고 10위권 이하 쯤에 현대차, SK, 엘지 순서를 보이다가 다시 30위 권 미만에 다른 재벌들이 서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삼성그룹이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삼성의 거대화는 두드러졌다. 당연히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여타 재벌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최근 경제 민주화 2030연대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청년들은 한국 10대 재벌 중 한국사회에 가장 긍정적 기여를 한 재벌로 24.8%가 삼성을 꼽았다. 물론 ‘없음’이 36.9%로 가장 많지만 이를 제외하면 삼성 선호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동시에 가장 부정적 기여를 한 재벌 역시 압도적으로 삼성이었다. 삼성에 대한 청년들과 국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삼성 재벌은 왜 침묵하고 있나?

이미 1년 넘게 우리사회에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부상해왔고,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선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치열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의 대표재벌 삼성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도 들리지 않는다. 특히 시의성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시류 자체를 주도해 나가고자 했던 삼성의 ‘이데올로기 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 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된 지금, 그야말로 세파에 무관심하다는 듯이 대선 경제 쟁점과 담을 쌓고 있다. 놀라운 모습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그저 미국 재정정책의 문제나 유럽위기 진단과 같은 해외 동향 브리핑 정도가 그나마 시의성을 담고 있다. 여기에 기껏해야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이 세간의 화제가 된 가운데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눈에 띄는 정도다. 지금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하는 글들 속에서는 특유의 시의적 민첩성이란 찾아 볼수가 없다. 대선 국면은 피해가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다.

'안철수 생각' 말고 '삼성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월 15일, 안철수 후보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암에 걸린 노동자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 후보는 "직업병에 대한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근로복지공단에서 노동현장이 직업병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이며 타당한 주장이다. 안 후보 측은 이어 "법이 공정하려면 정보가 비대칭일 때 공정한 조건들을 만들어 줘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고쳐져야 할 법체계의 문제점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삼성이 그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고 한다.(뉴스1 2012.10.15일자)

한편 삼성전자의 산재문제를 지속적으로 추적해온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런 문제를 아무리 얘기해도 특별한 대책을 내놓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정부, 삼성, 사회가 답을 해야 할 차례“라고 주장했다. 그렇다. 이제 삼성이 운을 떼야 한다. 당장 산재인정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재벌개혁에 대해서 대표재벌로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국민들이 사태를 회피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 / 03 / 23      정태인/새사연 원장

참척(慘慽)이라는 게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 고통을 이렇게 토로했다. “자식을 앞세우고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전쟁 영웅 이순신 장군도 다를 바 없었다. “하늘이 이다지도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것은 이치가 잘못된 것이다.…내가 죄를 지어서 그 화가 네 몸에까지 미친 것이냐?” 전 세계를 뒤흔든 서양의 천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은 휑하고 황폐해졌다. 아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이 집의 생명이고 영혼이었다.” “내 아이의 죽음은 나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나는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예리하게 아픔을 느낀다. 내 불쌍한 아내는 완전히 무너졌다.”(카를 마르크스)


여기 또 하나의 참척이 있다. 지난 월요일 김명복씨는 아이를 냉동고에 둔 채 49재를 맞았다. 잊어야만 할 고통을 외려 부여안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리도 모질게 만들었는가.

 

삼성전자 근로자 2조 2교대에 14~16시간씩 근무

 

키가 186㎝나 되는 스물여섯의 고 김주현씨는 1월11일 6시44분 흑빛 새벽에 자살했다. 그가 근무하던 삼성전자 탕정기숙사 13층에서 떨어졌다. 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우울증으로 2개월의 병가 뒤 복귀한 바로 그날이었다. 주치의는 5개월의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회사는 병가 휴직이 최대 2개월이라고 대답했다. 새벽 6시14분, 창문턱에 걸터앉아 있던 그를 발견한 안전요원은 그저 방에 데려다주었을 뿐, 1분 만에 바로 철수했다.

 

바로 일주일여 전인 1월3일에도 투신자살자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탕정공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가 줄을 이었다. 이들은 ‘12시간 근무=기본’이라고 노트에 썼다. ‘1년은 나 죽었다’라는 메모도 있다. 사실상 2조 2교대 아래서 14시간에서 16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설비 엔지니어가 없어서 퇴근할 수도 없었고 밥도 제때 못 먹었다. 자다가도 부르면 나가야 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나 북한의 어느 공장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매출 153조7600억원, 영업이익 17조2800억원에 빛나는 세계적 기업 삼성 이야기다. 아마도 죽어간 이들이 합격 통지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을, 바로 그 기업 이야기다.

 

삼성 계열사에서 백혈병 등 희귀병 사망자 46명 발생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은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이 지나도록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휴먼 삼성’은 김명복씨를 근처 모텔로 데려가서 “1년 연봉 2760만원과 퇴직금, 그리고 위로금을 주겠다”라고 했다. 함께 울고 웃었을 김주현의 동료들은 인솔자를 따라 조를 짜서 조문을 왔고 금세 돌아갔다. 경찰은 사망한 지 5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수사 중이라는 말만 내세우고,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 위반 내용을 조사만 하고 있다. 취업규칙이 영업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을 정도이니 ‘글로벌 삼성’에 노조가 없는 건 불문가지다.

 

‘초일류 삼성’은 참척을 양산했다. 클린룸에서 방진복을 입고 화학약품을 다루던 김주현씨는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삼성전자·삼성LCD·삼성전기에 근무하던 젊은이 중 46명이 백혈병 등 암이나 다른 희귀병으로 사망했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이나 유해 요인도 ‘기업의 영업 비밀’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니 역학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모든 산재 신청을 기각했고, 가족들이 억울해서 제기한 행정소송에 피고 보조 참가인으로 삼성 쪽 변호사들을 불렀다.

 

김명복씨의 요구는 단 하나다. “과실 책임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라”는 것이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 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이 눈곱만큼의 예의도 없다는 말인가.

 

역시 참척의 고통을 당한 에릭 클랩턴은 이렇게 흐느꼈다. “천국에서 너를 만나면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니? 언제나처럼 변함없을 거니?”(‘천국의 눈물’) 우리 아이들이 천국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참척이 계속되도록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글은 시사인182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2.28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똥물을 먹였다. 옹근 33년 전 오늘이다. 1978년 2월 21일은 동일방직의 노동조합 선거 날이었다. 스무 살 안팎의 청순한 여성노동자들은 대의원을 뽑으려고 곰비임비 모여 들었다.


그 순간, 어깨 벌어진 사내들이 악취를 풍기며 살천스레 다가왔다. 손에 고무장갑을 낀 그들은 여성노동자들의 맑은 얼굴과 몸에 서슴없이 똥오줌을 퍼부었다. 한 여성노동자가 진저리치며 절규했다. “너희도 인간이냐?” 불량기 가득한 그들은 그 여성에게 몰려가 똥오줌 가득한 양동이를 뒤집어 씌웠다. “건방진 년, 입 닥쳐!” 곧이어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그 엽기적 야만이 벌어지는 현장엔 당사자만 있지 않았다. 동일방직 사무직 직원들은 물론, 정사복 경찰이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노총 섬유노조 본부에서 나온 노조간부도 버젓이 ‘참관’하고 있었다.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이었다. 경찰은 물론 상급 노조 간부조차 “말려 달라”고 울부짖는 노동자들에게 합창으로 퍼부었다.


“야! 이 쌍년들아! 가만있어.” 독자에게도 <미디어오늘> 편집자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그 처절한 순간을 에둘러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증언하고 싶다. 섬유노조 소속의 ‘조직 행동대’란 이름의 깡패들은 노조 사무실을 아예 점거했다.


똥오줌 양동이 씌우고 “입 닥쳐” 주먹


경찰이 수수방관한 이유는 있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가 똥물의 배후였기 때문이다. 충격으로 50여명이 졸도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1명은 정신분열 증세로 6달 넘도록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똥물로 범벅된 여성노동자들을 줄줄이 연행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론이다. 어떤 신문도 방송도 그 야만을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여성 노동자들은 ‘먹물’들처럼 쉬 굴복하진 않았다. 곳곳에서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며 애면글면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기자들은 죄다 침묵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이 마침내 한 방송사를 찾아가 방송국장 면담을 요청했을 때다.


“배우지 못한 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기자들이 내뱉은 말이다. ‘기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개 쫓듯 내몰았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처럼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 퍼 먹이는 공작을 이명박 정권조차 감히 벌일 수 없다. 내놓고 똥물 뿌릴 기업인도 더는 없다. 상급 노동조합도 바뀌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 누구일까. 바로 언론이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그 야만을 바꿔온 사람들에게 줄곧 ‘마녀 사냥’을 했다. 그나마 목소리를 내던 <동아일보>조차 1990년대 들어 사냥에 가세했다. ‘늦게 배운 도둑’으로 요즘은 한 술 더 뜬다.


보라. 삼성의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림프종 따위의 희귀 질환에 걸려 숨진 노동자가 공식 집계로만 15명에 이른다. 희귀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는 89명이다. 자살자도 많다. 2011년 들어서도 두 달 동안 삼성전자에서 두 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이 “3교대 근무라지만 8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14시간, 15시간 일한다며 힘들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집에 왔는데 발부터 다리까지 피부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어보니 약품 얘기를 했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어떤가.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모르쇠다. <한국방송><문화방송><서울방송>의 저녁 ‘간판 뉴스’에 자살 관련 보도는 없었다. 다른 나라 기업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은 사뭇 진지하게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이 정작 이 땅의 자칭 ‘세계 일류기업’에서 일어난 참극을 모르쇠 하는 풍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미 나라밖에서도 삼성전자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침묵했던 33년전 언론, 오늘도 삼성에…


내 또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을 때, 대학 강의실에서 철학을 배우던 나는 똥오줌을 사람에게 먹인 야만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언론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자가 되어 언론을 바꾸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동아일보>와 <한겨레>를 거치며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해왔지만 어느새 나는 언론사 밖에 있다. 회한이 드는 까닭은 무슨 미련 따위가 아니다. 젊은 날의 다짐에 견주어 현실이 냉엄해서다. 33년 전 그때 현직 기자로 살아가고 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고문, 주필, 편집인, 대기자로 여전히 대한민국 언론을 좌우하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 기자로 언론의 한 모퉁이에 서 있으려던 촌지마저 접은 채, 저들이 지배하는 한국 언론을 지켜보는 심경은 고백하거니와 착잡하다.

      
그래서다. 젊은 언론인들의 깨끗한 눈에 충정으로 호소하고 싶다. 33년 전 시민사회는 성명서를 내어 기자들에게 물었다. “폭도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퍼 먹인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한들 아니, 똥물을 퍼 먹인 것이 나쁘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한들 그것이 현행 법규에 어긋나는 것인가? 그 사실을 단 1단의 기사로라도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 또는 조치가 있단 말인가?”


다시 그 물음을 2011년 오늘의 현직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독재정권도 긴급조치도 없는 지금 삼성의 야만을 보도했다한들 어긋나는 법규가 있는가를. 아니, 정말이지 정중하게 묻고 싶다. 왜 삼성 자본의 문제점을 보도하지 않는가? 혹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그래도 지금은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먹이지 않는다고?



*이 글은 2월24일 미디어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