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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3 일본 원전에 우리는 안전한가?
  2. 2011.03.31 중앙집중식 전력 체제의 전환을 위해 (1)
2011.04.13고병수/새사연 이사

일본 원전에 우리는 안전한가?

 지난 3월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고 근처에 있던 원자력발전소가 문제를 일으키자 우리는 TV 화면으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무감각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엄청나게 긴장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어느 날인가 진료 중에 간호사가 급한 외국 전화라고 하면서 전화 연결을 해줬다. 미국 LA에 사는 교민이었다.

  “저희 어머니가 지금 제주도에서 살고 계신데, 병원에 가면 요오드를 처방 받을 수 있나요?”

  “무슨 일이죠? 요오드는 갑상샘 질환 때나 특별한 경우 아니면 치료에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지금 한국은 괜찮아요? 일본 원자력발전소 폭발 때문에 요오드를 사느라고 지금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난리랍니다.”

 일본 원전의 사고 정도가 아직은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고, 바람의 방향이나 조류 등을 고려할 때 너무 염려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래도 그 분은 반드시 어머니를 위해서 요오드를 구해드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거듭 물어왔다. 일본말로 아까징기(요오드팅크)라고 하는 빨간약이나 몇 개의 요오드 관련 약들을 본 적은 있으나 처방으로는 한 번도 써본 일이 없는 요오드를 어떻게 소개시켜 줄 방법이 없어서 약국으로 알아보라고 얼버무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우리도 가만있는데, 왜 저 멀리 미국에서 그 야단법석을 치는지 모르겠다.

일본 원전 사고에 과연 우리는 안전한가?

며칠 전 전국에 비가 내렸다. 그 중에는 방사능 물질이 함유된 비도 있었을 것이지만, 정부에서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연일 발표하고 나섰다. 아마도 국민들이 혼란해 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으리라.

요즘 언론에서는 방사능 관련 보도를 계속 하고 있고, 심지어 6일 청와대에서 ‘원전·방사능 관련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물통이나 곡식, 과일 등은 비에 젖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조치를 이미 각 지역에 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문제가 없더라도 사전에 대처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부는 너무 안일하게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항상 그렇듯이 조류 독감이 유행할 때나 이번 구제역 파동이 일었을 때도 뒷북만 치다가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불쌍한 짐승들을 땅에 생매장하는 것뿐이었다.

정부에서 관련 기관 대책회의를 한 것도 일본 원전 사고 이후 거의 한 달만에 생겼다. 멀리 있는 나라도 아니고 가장 인접한 국가로서는 너무 늦은 대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무관심했지만 점점 환자들이 자꾸 물어오고, 비까지 오면서 방사능 오염 농도가 높아진다고 하니 우려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료들을 들춰보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방사능 오염 농도가 그다지 염려할 정도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과연 정부나 기상청의 발표가 맞느냐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나중에야 정확한 정보를 내놓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불신을 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정부의 불감증이다. 정부는 북한의 문제나 안보에 관한 문제가 있으면 재빨리 국민들에게 선동하지만, 정작 그 외의 분야에서는 느리기가 달팽이같다.

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안전에 관한 문제, 국민들의 건강에 관한 문제들은 항상 먼저 준비하고 재빠른 대처를 해줘야 한다. 무조건 말로만 안심하라고 하지 말고. 결국 난리가 나면 고관대작들이나 부자들은 피할 구멍들이 다 있지만 다치고 힘든 사람들은 모두 서민들뿐이지 않는가?

우리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이번 일본 원자력발전소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원전도 대처를 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모든 원전을 없애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 효율성에서 만족할 수준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두더라도 안전성과 원전 확대 계획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일본 원전 문제도 다소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방사능 오염은 단기간 강한 피폭도 문제지만 오염된 공기, 혹은 어패류, 곡식들을 통해서 시간이 한참 지나서라도 우리 몸에 들어오게 되는 것도 문제이다.

그리고 방사능 물질의 특성이 수 년, 혹은 수 십 년 동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체내에 머물면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며 기형아를 낳게 하거나 암을 유발하는 것이 더 심각하다.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할 것 없이 항시적인 원전 관련 대책팀을 꾸리고, 늘 방사능 오염 상황을 점검하면서 국민들에게 시시각각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농산물이나, 가축, 어장들에 대해서 주의를 하도록 하고, 위험이 감지되면 재빨리 각 학교에 야외활동을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준다든지 해야 한다.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정보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항상 상황을 알려주면서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한 대처를 교육하고 홍보한다면 왜 불안해하겠는가? 지금은 괜찮더라도 혹시나 후쿠시만 원전에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방사능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방상성 물질 피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치이면 괜찮다고 규정해 놓은 것들이 있다. 대부분 차단되지만 태양으로부터 방사선이 오고 있고, 병원에서는 X-ray 등을 찍고 있다. 사실 이 정도로는 우리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웃기는 것은 관련 국제기구들이 인체에 영향을 끼치는 방사능 오염 정도를 규정해 놓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에 의한 추측일뿐이라는 것이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 규정한 1년에 노출되는 방사선량 1밀리시버트(mSv)가 안전한 범위라는 것도 사실은 안심할 수치라고 장담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그 기준이 더 높았었는데,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괜찮다고 하는 수치가 몇 년이 지나면 문제가 있는 수치로 바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방사능 오염은 태아에게 해로운데 그 양도 아직은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2~18주 내에 있는 태아인 경우 그 위험성은 아주 크기 때문에 되도록 주의에 주의를 더하는 것이 좋다. 임산부의 경우 방사능 오염이 우려될 때에는 외출을 삼가고, 혹시 노출되었을 경우에는 따뜻한 물로 헹궈내면서 비누로 씻어주도록 한다. 보통 사람들도 새삼 손씻기가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다시 한번 국민들의 ‘안전’이나 ‘건강’에 관한 문제만큼은 책임 있는 관계자라면 많이 걱정하고, 미리 많은 준비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하고 싶다. 그리고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 말하는 그들의 생각을 옮기면서 글을 마치겠다.

 “방사능 오염은 아무리 그 양이 적을지라도 이익(의학적 이득 등)이 되지 않는 한 피해야 한다”

(Any radiation dose should be avoided unless there is some benefit from that dose.)

 이 글을 쓰면서도 참 한심한 것은 저 멀리 있는 미국도 누리집에서는 도배하다시피 방사능 오염과 주의할 것에 대해서는 온갖 경고와 자료를 올려놓고 있는데,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누리집에는 눈 씻고 보려고 해도 방사능 관련 소식은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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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3.31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원전 이슈, 안전성에서 발전 체제로

 

이제 원자력 발전의 전환을 이슈화하자. 일본 동북부의 참사가 방사능 공포로 이어지면서 원전의 ‘안전신화’가 산산이 깨지고 있으나 우리의 관심은 ‘안전 그 이상’에 있어야 함을 감히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가, 경제적으로 원전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평가와 경제적 평가의 내용이 틀렸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 자체가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본질은 거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위험사회’에 있으며, 경제 이해의 관성에 따라 가속화되는 ‘불평등 사회’에 있다. 위험사회, 불평등사회의 질적인 수준은 아무리 정교한 것일 지라도 수치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다.

보다 적절한 평가 방식은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는 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을 달성한 국가라 할 만하다. 발전규모가 세계 6위의 선진국이며 추가 건설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인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갈등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전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은 왜일까? 그것은 현재의 에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이해당사자들이 있고 이러한 체제에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적응해 있기 때문이다. 원전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원전에 얽힌 이해(利害)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달리 갈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평가 방식은 문화적 가치, 제도적 조직 그리고 권력적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사회 과학’과 관련되어야 한다.

 

경성(hard) 에너지 체제의 황태자, 원자력 발전

 

모리슨과 라드윅(Morrison and Lodwick, 1981)은 사회과학의 (진정한) 과제는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들에게 크게 영감을 준 라빈스(Lovins, 1976)는 일찍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의 세계 에너지체제는 ‘경성 에너지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경성 에너지 경로(hard energy path)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바탕으로 거대자본과 거대기술로 구성되는 공급위주의 대규모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이용방식’을 말한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경제성장의 관건이라는 믿음 하에 에너지원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채택되고 통제권은 권위주의적 관료에 주어지며 운영 및 관리는 기술엘리트와 사적기업에 의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의해 황당하게도 녹색성장의 에너지원으로 지목된 원자력은 이상의 경성 에너지 경로의 결정판이다.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은 환경친화성, 공급지속가능성, 형평성과 민주성 등에 커다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예컨대 환경친화성의 문제점은 최근 일본 원전 사고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고 공급지속가능성은 자원의 고갈가능성에 의해 의심받고 있다. 에너지 과잉소비는 다음 세대의 선택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세대간 형평성을 훼손시키고 가격 부담의 차이는 동시대 저소득층에게도 생계비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에너지 빈곤층은 전력공급 인프라의 사각지대에서 구조화되고 값싼 공공전력 대신에 값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데로 내몰린다.

원자력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보다 훨씬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 의사결정의 중앙집중, 생산 및 소비 공간집중 수준-우리나라는 이 수치에서 세계 1위이다-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제한되는 것이다. 발전시설, 폐기물처리 시설은 지방의 일부 지역에 밀집되지만 전력소비는 대도시지역에 밀집된다. 이는 위험부담이 불평등하게 분배됨을 의미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투표권의 격차에 의해 무위로 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필자는 전력체제의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산은 산업부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규모에 있어 그러하다. 최종 소비부문에 있어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약 60%로 가정용의 약 3배에 이른다. 둘째로, 산업부문이 현재 에너지경제체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원의 변화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산업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변화가 동반해야만 새로운 소비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전과 산업부문의 관련성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산업부문은 그 특성상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기초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데(전체 발전량의 약 40%) 이는 한번 가동하면 멈추지 않고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원자력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자력을 기초 전력으로써 대규모 산업전력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원전 확대에 현실적 정당성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원자력이 기초 전력이 됨에 따라 전력소비가 적은 시각이나 계절에 막대한 잉여전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성 경로를 벗어나 연성 경로로 진입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이른바 ‘자원 안보’의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문제는 한층 국내외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수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생활 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원자력의 공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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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얻은 논문 윤순진(2009), “한국의 에너지체제와 지속가능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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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