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고서2015.10.16 11:41

2015-10-16                                                                                     송민정 / 새사연 연구원

‘올바르다’라는 말은 ‘옳고 바르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옳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하고, 그 기준의 당위성이 다수에게 납득되어야 한다. 지난 12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역사(중학교), 한국사(고등학교) 교과서를 정부가 직접 개발하여 2017년부터 보급하겠다고 발표 하였다. 이후 관련 이슈는 국정교과서라는 키워드로 포털사이트, SNS 및 언론을 뒤덮었다. 치열한 논쟁의 주인공인 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이하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지칭하였다. 즉, 현재 중고등학생이 사용하고 있는 역사, 한국사 교과서는 오류투성이의 이념 편향적인 ‘올바르지 않은’ 교과서이며 그것을 종식시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의 기준에 대한 합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장관의 브리핑 내용과 교육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과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혼보다는 놀라운 속도로 산업화를 이루어낸 불도저 같은 기세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존의 교과서들이 북한이 내세우는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서술을 자세히 다루는 것을 두고 ‘분단국가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 판단, 기존 교과서들의 편향성을 바로 잡겠다며 호언장담을 하였다.

문제는 기준에 대한 합의 뿐만이 아니다. 공정한 집필진의 구성의 어려움, 균형 서술에 대한 불확실성, 2017년에 사용될 교과서를 만들기엔 부족한 시간 등을 이유로 사회각계에서 반대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각 대학의 사학과 교수들과 역사학계에서도 국정교과서 집필에 관해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한 주간의 각계 동향을 살펴보면 다수에게 납득된 기준과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중심이 될 기준의 온도 차이가 몹시 큰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국정교과서에 대해 첨예한 논쟁이 있는지 교과서의 발행방법과 국제추세를 통해 살펴보자. 교과서의 발행방법은 국정도서, 검정도서, 인정도서 그리고 자유발행제로 나누어진다. 먼저 국정도서는 국가 단위의 통일성이 필요하거나 경제성이 없는 교과서를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직접 제작하고 발행하여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발행방법이다. 저작권은 교육부에 귀속된다. 검정도서는 발행수요가 많은 교과서를 민간이 제작하여 국가나 공기관이 마련한 기준에 따라 심사를 받는 제도이다. 즉, 저작권은 발행출판사에 있지만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도서이다. 다음으로 인정도서는 국정도서나 검정도서에 없는 교과서나 기존 교과서의 보충 도서를 민간이 제작하여 발행한 도서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교과서로서 인정하게 되면 목록을 만들어 각 학교에 배포된 후 학교별로 채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유발행제는 앞선 세 종류와 달리 교과서가 마치 일반 출판물처럼 취급되어 정부가 교과서의 제작에서 채택까지 관여하지 않는 방법이다.

국제적으로 교과서를 제작하고 채택하는 데에 한 가지 방법만 고수하는 나라는 드물다. 우리나라 중등과정의 경우 과목에 따라 국정, 검정, 인정도서를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북한, 필리핀, 핀란드만 현재 교과서를 국정도서로만 사용하고 있고,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은 국정도서와 검정도서를 혼용하고 있다. 유럽은 대부분 자유발행제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교과서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수록 다양성을 없애는 후진적 움직임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는 집필자의 역사인식이나 역사관이 강하게 반영되는 분야이므로 국정도서로 지정하게 되면 집필진이나 주도기관의 영향이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과목이다.

몇 가지 당시 정부의 영향이 나타난 교과서의 예시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한국 근현대사 중 5.16에 대한 서술이 시기별로 다르다.  1972년 박정희 정권 시기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5.16에 대해 ‘박정희 장군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라 서술하고 있다. 이후 1982년 전두환 정권에서는 ‘장군’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현재 쓰이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서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로 5공화국에 대한 평가이다. 1982년 교과서에서는 5공화국을 두고 ‘정의사회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정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 현재 근현대사 교과서는 전두환 정권에 저항했던 6월 민주항쟁에 대해 다룸과 동시에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5공화국의 강압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그림1. 2차·4차 교과과정의 국정 역사 교과서가 다루는 5.16 군사정변
칼럼2출처 :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

그림2.  2차·4차 교과과정의 국정 역사 교과서가 다루는 제5공화국
칼럼1출처 : 우리역사넷 ( http://contents.history.go.kr)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 한 가지가 드러난다.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편찬위원장인 김정배 위원장이 유신정권과 5공화국에 대해 우호적인 서술을 했던 1982년 국정교과서의 편찬위원 중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새로 만들고자 하는 올바른 교과서가 기준이 정말 ‘올바른 기준’에 의해 집필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E.H.Carr는 그의 대표저서인 “역사는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2014년 1월 교학사의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논란을 기억하는가? ‘친일사관 역사교과서’라고 불리는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사태 직후 여당은 역사교과서를 단일 국정교과서로 돌리는 방안에 대하여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다. 그리고 외신에서는 일본의 아베총리의 교과서 왜곡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움직임은 그들의 아버지의 오점을 지우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Politicians and Textbooks”, the New York Times, 2014.2.13.) 현 정부의 역사교과서 제작 움직임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닌 ‘답정너(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의 준말)’식의 단절이다. 우리는 눈부시고 빠른 산업 발전의 결과, 현재의 사회 및 노동의 병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역사는 일기장이 아닌 후손들에게 남겨줄 ‘실수방지 매뉴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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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정태인/새사연 원장

 

무슨 대단한 지식이나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약간의 경제학 지식과 현실 경제 흐름에 대한 ‘감’, 그리고 시계열 통계만 볼 줄 알아도 금년 성장률이 3% 미만에 머물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사연은 작년 말에 EU가 그럭저럭 위기를 헤쳐나갈 경우 한국 경제는 금년 2% 중반대 성장을 이룰 것이고, 더 나쁘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과 정부, 그리고 재벌 연구소들 모두 3% 후반대의 성장을 장담했다. 6개월이 지나자 EU 상황을 핑계로 3% 정도로 성장률을 끌어내리더니 최근엔 재벌 연구소들이 2%도 어렵다고 징징댄다. 문제는 이어지는 얘기다. 그러므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등 경제개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 후보도 숟가락을 내민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주장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고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김영삼의 ‘세계화’)으로 외환위기를 맞자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개방과 경제자유화를 주장했다. 당시에는 ‘왕초 각설이’ IMF의 요구사항이 그랬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치자.
 
참여정부 초기 경제성장률이 5%에 머무르자 재벌과 조중동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규제완화를 해야 투자를 늘릴 거라고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때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랬고 지금도 각설이 타령은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흥청망청이고 오바마는 고전 중이다.
 
굳이 김빠진 옛 드라마의 ‘다시 보기’를 누른 건 앞으로 6개월 동안 일어날 일이 그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15년 넘게 양극화가 심해지자 ‘성공신화’에 취했던 국민들이 깨어나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외쳤고,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는 끼어들기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이슈는 경제위기의 해법인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후보로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
 
아마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최근의 성과에,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선거가 아니고 지금은 60∼70년대가 아니다. 단언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위의 재벌 연구소의 주장을 따를 것이다. 위기 때문에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나아가 그런 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과 조중동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이며, 보수적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동맹세력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지금 코 앞에 닥친 위기는 구체제의 방식으론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현재 국민이 요구하는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협동조합(사회경제)이야말로 위기 탈출의 묘책이다. 지금 세 정책을 실현하려는 시민 세력이 뭉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희망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의 미적거림에 탄식하고 안철수의 모호함에 불안에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낙선운동, 투표 격려, 그리고 야당과의 야권 단일화를 해 왔다. 이제 사회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뚜렷한 요구가 있는 만큼 더 정확한 정책 목록, 정책을 실현한 내각의 구성 원칙, 그 내각과 시민의 통합 가버넌스를 내세워야 한다.
 
2008년에는 정권을 내주고 나서야 석 달 넘게 광장으로 나왔지만 지금 정권을 만들기 위해 나서면 훨씬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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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2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앞으로 5년 이상의 의미가 있을 18대 대선이 이제 4개월을 채 남겨 놓지 않았다. 지난 20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경선결과 대선후보가 확정됐다. 예상했던 대로 대세론을 등에 업고 83.9%라는 압도적인 경선득표를 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곧이어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장외의 강력한 후보로 인정받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움직임도 더 빨라질 것이다.

첫 대선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는 지난 7월10일 출마선언과 이번의 후보 수락 연설에서 공통적으로 ‘국민행복’을 강조했다. “지금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에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행복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 주장을 받아들이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얘기다. 더욱이 국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했던 박정희시대를 기억하는 우리는, 그 딸이 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개념을 들고 나왔으니 반길 일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정책 결정자들이 국가 안의 살아있는 국민들을 보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지역공동체와 인류를 고려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최근 유럽 합중국을 꿈꾸면서 통화통합을 했던 유로공동체에서도 너무 잘 드러난다. 현재 남유럽국가 중에서도 그리스는 유로통화권 탈퇴를 고려해야 할 만큼 경제위기가 심각하고, 스페인이라는 유로 4위의 경제대국은 국가적 구제금융이 임박해 있다. 구제금융에 얼마가 들어갈지, 국채금리 안정화가 될지, 성장률이 회복될지 등 갑론을박이 벌써 3년째를 이어오고 있는 중인데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그 경제통화권과 그 국가들 안에 살고 있는 국민들과 노동자들의 삶을 살피는 모습은 드물다. 정말 그들의 현실적 삶은 경제위기로 인해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가장 간단한 세 가지 실업지표를 살펴보자. 유로존의 실업률은 2007년 1월의 7.9%에서 올해 5월 11.2%로 높아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독일은 9.4%에서 5.5%로 낮아졌다. 네덜란드의 경우 4.0%에서 5.1%로 약간 높아졌지만 평균의 절반에 그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은 어떤가. 그리스는 같은 기간 8.7%에서 23.1%로, 스페인은 8.2%에서 24.7%로 뛰어 올랐다. 실업률이 3배가 늘어났고 유로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두 번째 실업지표인 청년실업을 보면 더욱 극적이다. 같은 기간 독일은 12.6%에서 7.9%로 낮아졌고 네덜란드도 10% 미만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25.5%에서 53.8%, 스페인은 17.6%에서 52.6%로 뛰었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청년의 절반 이상이 공식적인 실업자인 것이다. 하나의 연방을 지향하는 하나의 통화국가들이라고 보기에는 독일·네덜란드 등과 그리스·스페인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더 문제는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과감한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독일 등의 정치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리스와 스페인 국민들에게 더 내핍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년 이상의 장기 실업률을 보도록 하자. 예상대로 독일은 2007년 4.9%에서 지난해에 2.8%로 줄었고 네덜란드는 1.5%로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데 4.1%로 장기 실업률이 독일보다 낮았던 그리스는 2011년 8.6%로 뛰었다. 스페인은 2007년 1.7%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그리스보다 높은 8.8%다. 이쯤 되면 도대체 그리스·스페인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치권과 유럽 중앙은행·유로집행위원회 등은 그리스와 스페인의 삶이 아니라 채권은행의 손실규모를 따지고 있고 긴축을 통한 부채상환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와 스페인 시민들에게 유로통화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유로 합중국의 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유로존 붕괴 여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보자.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1%가 향후 계층상승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예 모든 국민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산다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더욱이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안정된 삶’과 ‘소득분배의 공평성’을 주요인으로 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행복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는 34개국 가운데 32위로 꼴찌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불행한 우리 국민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반갑기는 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딸로서 보수적 세계에서 단 한발도 나온 적이 없는 박근혜 후보에게 국민의 불행이 과연 어느 정도 공유가 될까. 불행에 대한 공유가 있어야 행복에 대한 진정한 갈구가 함께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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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손석춘/새사연 이사장

방귀가 잦으면? 어떻게 될까? 속담 맞추기 놀이판을 펼치자는 뜻이 아니다. 나름 품격을 갖추려는 성의다. 글 들머리부터 구린내를 폴폴 풍기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지금이 과연 예의를 차릴 때인지 하릴없이 회의가 든다. 대한민국 보수를 보라. 역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저들이 보수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보기가 있다. 무릇 보수 또는 우파의 가치는 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있다. 세계사에 나타난 보수들은 예외 없이 제 민족의 우수성을 부르대며 권력을 누렸다. ‘위대한 프랑스’를 내건 드골이 대표적 보기다. 바로 그렇기에 보수의 가치는 국가보다 사회를, 민족보다 계급을 성찰하는 진보의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는 도무지 경계선을 찾기 어렵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찬찬히 짚어보라. 만일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독립을 위해 몸 던질 섟에 되레 그 제국주의 국가의 장교로 독립군 학살에 앞장섰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민족의 보수세력은 적국의 장교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총을 쏜 그의 반민족행위를 준엄하게 추궁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지금 자칭 보수들이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백선엽을 영웅화하는 작태가 그것이다. <중앙일보>가 그를 한껏 띄우자 마침내 국가기간방송인 한국방송(KBS)이 독재자 이승만에 이어 백선엽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백선엽이 누구인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때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부일세력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방귀 깨나 뀌며 살고 있기에 이제는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도 대다수 사람들의 감성이 무디어졌다. 하지만 간도특설대 장교는 단순 부일세력이 아니다. 5년 전 <세계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조선의 건아들”을 “선구자”로 추켜세웠다. 독립운동 선구자가 아니다. 독립운동 벌이던 선구자들을 ‘토벌’하는 “천황의 뜻을 따르는 특설부대”로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에 따르면 “토벌하다 항일전사 2명을 포로한 놈들(간도특설대원)은 명월구 공동묘지로 그들을 끌고 가서 전체 대원을 집합시킨 다음 군도로 목을 자르고 시체 옆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악행의 증언은 곰비임비 이어진다.

1944년 5월에 마을을 습격한 “놈들은 녀자는 만나는 족족 강간하고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그래서다. 그 시절 만주에서 애면글면 살아가던 조선인 가운데는 일본이 패망한 뒤에 “남쪽으로 도망간 친일파를 잡기 위해 6·25 때 인민해방군으로 참전”한 사람이 많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활약’했던 백선엽은 그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지금 대한민국의 신문과 방송에 의해 ‘영웅’시 되고 있다.

어떤가. 모든 일에 붉은 색안경을 쓰고 덤비는 보수언론의 고위간부들에게 미리 밝혀두고 싶다. 나는 지금 백선엽이 한국전쟁에서 한 일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부일세력이 득세한 해방 뒤의 대한민국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지금 우리가 백선엽을 영웅화해도 좋은지 묻고 싶을 뿐이다.

두루 알다시피 백선엽을 중용한 사람은 이승만이다. 백선엽은 박정희를 중용했다. 박정희가 간도특설대에 참여했는지는 증언이 엇갈린다. 어쨌든 박정희 또한 만주군 장교로 일본 국왕에 자발적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친일파임엔 틀림없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총통’ 권력을 휘두를 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노상 찬양해온 ‘지식인’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칭 ‘주류 언론인’들이다. 이제 그들은 박정희 찬가에 만족하지 않는다. 민중이 피로 몰아낸 이승만을 다시 불러들인다. 마침내 독립군 학살에 앞장섰던 백선엽까지 온 국민에게 수신료를 받는 <한국방송>이 미화하고 나섰다. 자칭 보수를 자부하는 저들에게 차라리 연민을 느낀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은 존경할 한국인이 그렇게도 없는가?

일찍이 보수적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 역사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경고했다. 말끝마다 진보세력에게 ‘수구좌파’로 언구럭부리는 자칭 보수언론의 고위간부들에게 거듭 진지하게 묻는다. 정말이지 이대로 가다가 대한민국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정직하게 스스로 답하기 바란다.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학살한 경력이 분명하게 드러난 자까지 영웅화한다면, 대체 당신들의 보수는 무엇인가? 박정희의 딸이 차기 정권의 유력자로 떠오르는 상황이기에 눈이 더 침침해졌는가? 넌지시 다음 물음을 다시 던지는 까닭이다. 어떻게 될까? 방귀가 잦으면?

이 글은 주간 미디어오늘에 연재되는 기명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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