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 두 번째 라운드로 진입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지던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시대정신이라고 떠받들던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취임 이전부터 경제 민주화 과제의 위상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박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대기업을 옥죄고 때리고 이런 것은 옳지 못하다"거나, "제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스스로 국민과 중소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여가는 것"이라면서 이른바 재벌의 '자율적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선 공약에 담겨 있었던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 완전히 일탈하는 내용들이었다.

 

여당의 정책적 후퇴가 이토록 심각하면 당연히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당제 정치일 터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5월 4일 개정한 당 강령에서 명백히 우클릭이라고 할 만한 행태를 보였다. 강령 전문에 "경제민주화와 함께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존중과 지원",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의 완성 추구 및 복지와 함께 선 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을 의도적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정국을 주도하는 정부 여당도, 이를 비판해야 할 야당도 시대를 바꾸기 위해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방향도 의지도 상실한 순간이었다.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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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경제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퍽퍽한 시민들이었다. 편의점 점주들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잇달아 발생하던 와중에 남양유업 대리점 폭언 사태까지 공개되면서, '슈퍼 갑'에 대항하는 '힘없는 을'을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민주당의 수장이 된 김한길 대표는 "자본과 노동의 문제라는 전통적인 갑을관계보다 훨씬 광범위한 갑을 문제가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 '을'을 위한 경제 민주화의 전의를 불태웠고 그 분위기는 6월 임시국회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20만 편의점과 80만 대리점 점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신규 대리점법이 과연 입법화될 것인지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재벌 내부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비생활적 경제 민주화가 주종이던 지난해와 달리 '생활 밀착형 경제 민주화'로 진입했다면서, 최근 부활된 경제 민주화의 차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경제 민주화가 이번에는 일정한 성과와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 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2011년 월가 점령운동을 전후로 세계적인 불평등 개혁운동과 긴축 반대운동, 복지축소 반대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세계 운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경제 민주주의'라는 높은 추상 수준의 담론 아래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여기에 매달린 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이미 10여 년 전에 주주자본주의 비판과 경제 민주화를 내용으로 한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를 써서 유명해진 미국의 마조리 켈리(Majorie Kelly)는, 최근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시대정신으로 격상된 경제 민주화 현상을 두고 "오늘날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강력한 구호가 내걸리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놀라워했다.

 

그런데 10년 전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면서 대단히 강력한 경제 민주화 의제를 제기했던 저자 자신이 10년 후인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지난해에 출간하고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된 신작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Owing Our Future: The Emerging Ownership Revolution)(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은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터무니없이 강도가 낮은 것이기는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 미국을 필두로 하여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융 규제를 검토하거나 실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세계 금융과 경제가 달라지고 있고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유럽위기에서 보이듯 글로벌 채권시장을 매개로 하여 금융 자본은 남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중이며, 초유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여전히 실물경제가 아닌 주식시장으로 몰려서 주가만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행태의 주범인 재벌에 대한 규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비록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재벌개혁만으로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국민들의 삶이 달라지는 조건이 형성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나치게 폭주하던 기존의 금융시스템과 기존의 독과점 시스템에 대한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윤리(Business Ethics)>라는 잡지의 대표이자 기업 컨설턴트로서 수십 년 동안 좋은 기업에 대해 연구하고 컨설팅하고 현장 조사를 해왔던 저자 마조리 켈리는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서 이렇게 운을 뗀다.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언제나 그럴 것이고, 지금은 보다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심오한 꿈을 꿀 때다. 공정성과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같은 이상을 중심에 둔 경제,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공정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경제,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유익한 경제, 번성하는 지구위에서 인류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하는 경제를 꿈꿔야 한다. 그런 세상은 가능하다. 신전의 파수꾼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는 이단의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대안은 있다."

 

새로운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

 

▲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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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는 경제학자 하먼 데일리를 빌어 현재의 세계경제가 한계상황에 도달했으며 과거의 규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리학에서처럼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고전적 이론은 한계에 가까운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경제가 실물경제의 4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여기에 더하여 파생상품시장이 세계 GDP의 10배까지 커진 한계상황이 오게 되면서 이제 시스템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한계를 깨고 어떤 대안 구조를 고려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 모든 진보적 사회세력의 고민이 멈춰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선뜻 '이것이다'라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는 대목 역시 여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세계의 진보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멈춰선 바로 그 장벽을 저자는 도대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마조리 켈리는 전통적인 경제학자가 아닌 현장 전문가로서의 자신만의 특유한 장점을 발휘한다. 경제학의 학술적 개념을 동원한 논리구조나 통계해석을 동원한 설명이 아니라, 잘 기획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문제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추적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흔히 국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원래의 핵심 문제의식에서 벗어나기가 일쑤이지만, 저자는 많은 경험과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핵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어느 마을 협동조합에서 영국의 거대 백화점, 시골의 작은 어촌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사례들을 어지럽게 좇아가면서도 일관된 맥락을 쥐려고 노력한다. 바로 '소유'의 문제다. 논리적 체계로만 대안을 설명하는데 익숙한 한국의 진보세력들도 이런 유형의 대안 고민 방법론은 그 자체로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저자가 대안을 설계하기 위해 넘나드는 영역의 반경이 엄청나게 크다. 저자는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나 소유주가 아니라,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우리가 창조하거나 건설한 모든 것은 지구위에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 속한 것"이라면서, 대안 경제 모델이 기본적으로 생태경제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동시에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대안 경제구조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른바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의 생태경제의 전제와 연동시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까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단선적 고속 성장은 최근 100~200년 산업사회에서만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일 뿐 절대 영원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정책연구소(IPS) 수석연구원 척 콜린스 역시 최근에 "우리는 가치를 바꾸지도 않고, 권력의 엄청난 불균형을 해소하지도 않은 채, 규칙(rule)만 바꿔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구조는 개인주의, 성장지향, 최대의 금전적 이익 추구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생태적 감수성은 새로운 핵심가치들을 형성해내고 있다. 지속 가능성, 공동체, 충족성 등이 그 가치다. 이러한 가치의 전환은 새로운 종류의 생성적 소유구조,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길러낼 온상을 창출해낸다."

 

대안 모델을 제시하기 이전에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직관적으로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진보 노선과 가치논쟁이 활발한 우리에게도 생각해볼 여지가 꽤 있기도 하다.

 

대안은 우리 곁에 있었으며 커질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주주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존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충족시켜줄 경제 모델은 무엇일까? 저자의 답은 여기서 의외로 너무 친숙한 해법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열풍(?)이 일고 있는 협동조합 모델이 저자가 중시하는 대안 모델의 하나인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과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면서 지역 공동체가 관리하는 다양한 소유구조를 수년 동안에 걸쳐서 탐색한다.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멕시코의 '마을산림', 일종의 무허가 이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뉴햄프셔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역은행에서 대출받아 살고 있는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한 '거주민 소유 공동체' 모델도 있다. 또한 덴마크와 독일, 미국에서 발견되는 협동조합 소유 풍력발전 모델도 있다. 공동체 풍력은 청정에너지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 거주민 소유 공동체는 부를 널리 확산하며, 마을 산림은 삼림파괴를 막는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2009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이 강조했던 공동체에 의한 성공적인 공유지 관리이론에 천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적 속성과 공적 속성을 가진 제도가 풍성하게 혼합되어 자연 친화적이고 공동체 밀착적인 다양한 소유 모델, 운영 모델, 성장 모델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로 고민을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저자는 또한 체계적인 논리구조와 법칙 규명 보다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과감한 개념화와 패턴 모델링을 주로 시도한다. 건축학이나 IT분야에서 주로 적용되었던 패턴 이론을 대안 사회모델링에 적용한 것은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네 가지 소유 모델을 제시한다. 우선 바다, 숲, 토지, 공원, 공공 발전소 등과 같은 공유자원에 대해 적용되는 '공동 소유와 공동관리' 모델이다. 둘째는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파트너십, 종업원소유기업 등을 모두 묶어서 '이해당사자 소유기업' 모델로 불렀다. 그리고 셋째로 사회적 기업을 따로 구분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사기업이지만 사회적 사명을 경영목표로 내걸고 있는 기업들, 북유럽에서 발견되는 재단경영기업 모델까지를 미래적 모델에 과감히(?) 포함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과 달리 이런 유형의 미래적 모델은 지금 현실에서도 의외로 많다는 점을 저자는 덧붙인다.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은 모든 다국적 기업을 합한 것보다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미국에서는 1만개가 넘는 종업원 소유 기업이 있고 총 참여인원이 1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경제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주장들이 너무 큰 얘기들을 넘나들면서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절충적으로 섞어놓은 대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판단해봐야 한다. 미래사회의 소유구조, 기업구조에 대한 기존 논리들은 대부분 폐기처분된 상태가 아닌가? 지금은 섣부른 논리의 재구성보다는 현실에서 맹아적으로 발견되고 있고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작은 경험들을 발로 뛰며 찾아내고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이를 기초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일지 모른다. 발로 뛰면서 새로운 싹을 조사하는 한편, 인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자의 노력은 평가 받을 만하다.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업 구조라는 단일 문화가 특정한 상황에만 들어맞고 다른 상황에서는 해로운, 산업화 시대만의 산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구조는 어디에나 산재해 있지만 나는 그 시대가 끝날 수도 있다는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시민이 깨어날 때 그 시대의 막이 내릴 것이다."

 

저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 민주화가 목표로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어떤 대안일까? 적어도 그 하나의 해법을 저자는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는 경제 민주화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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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4 / 1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 이슈진단(12) 한국 경제와 이스라엘 경제의 유사점과 차이점파일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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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국가(startup nation) 이스라엘

 

중동의 병영국가이며 유대교의 나라 정도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경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땅이 사막으로 덮여있는 영토에서 인공수로를 연결하여 농장을 운영하는데 성공한 <집단농장 키부츠>의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또는 60년대 이미 핵무기를 개발하여 100여기의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 정도로 군수산업이 고도로 발전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그런데 최근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의 군사나 종교가 아니라 경제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첫째는 지난 2011~2012년 사이에 이스라엘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와 이어진 정부의 재벌개혁 조치가 잠깐 국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둘째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모델 국가가 이스라엘이라는 진단들이 제기되면서 이스라엘의 IT벤처 산업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경제의 전체 면모와 구조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종합적인 차원에서 이스라엘 경제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더욱이 이스라엘이 IT산업 중심으로 ‘창업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지금도 벤처 창업이 활발하고 이것이 경제 성장 동력이 된다는 진단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국민 경제 전체에서 어떻게 IT벤처들이 형성되고 그 규모가 얼마인지를 제대로 분석한 글은 찾기 어렵다. 이토록 낯설기만 한 이스라엘 경제를 그나마 개략적으로 설명해주는 글이 2010년 출간되어 비교적 알려진 번역서인 『창업국가(startup nation)』, 그리고 KOTRA무역관으로 최근까지 이스라엘에서 근무했던 이영선이 2012년 말에 출간한 『경제기적의 비밀』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 중 이영선의 책이 좀 더 전체적인 개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중요 모토로 내걸고 있는 만큼, 그 모델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경제는 당분간 우리의 관심영역 안에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이스라엘 경제의 이해를 돕고자 OECD가 공개하고 있는 몇 가지 통계지표와 이영선의 『경제기적의 비밀』을 주로 참조하여 이스라엘 경제의 큰 그림을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창업국가(startup nation) 이스라엘 경제 살펴보기

 

이스라엘의 영토는 대한민국의 1/4이고, 인구는 2010년 현재 760만 명으로 우리의 1/7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스라엘 인구를 단선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이스라엘 땅에 있는 인구 750만 중에서 유대인은 600만 명이고 팔레스타인 아랍인 160만 명이 이스라엘 영토에 이스라엘 시민으로서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러시아에서 100만 명의 유대인이 이주해온 것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600만 유대인도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등 곳곳에서 이주해왔다는 점이다. 760만 명의 적은 인구지만 마치 미국처럼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갖는 이질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영토 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만 고려해서도 안 된다. 미국에 600만 명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유대인 인구가 1300만 명이라고 한다. 이들 중 특히 미국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의 ‘특별한’관계를 만들어주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 포함 해외 유대인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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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집권 한 달을 넘기고서야 박근혜 정부가 국정방향과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2013년 경제운영 방향을 발표한데 이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 그리고 부동산 시장 정상화(?) 대책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개념이 바로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대선 공약에서 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 ‘보편복지’, ‘일자리창출’이라는 3대 핵심의제를 내걸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여기에서 크게 후퇴했다. 특히 경제민주화는 마치 ‘계륵’처럼 형식적으로 끼어 넣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대신 집권 초기 각종 무리수까지 감수하면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행정부 구성이 한 달 동안 미뤄진 것이 그 사례다. 당초 미래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김종훈 전 내정자는 잘못된 인사 파동의 정점에 서 있기도 했다.

 

문제는 갈수록 박근혜 정부에서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창조경제’의 실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 안의 정책 책임자들도 정확히 맥을 짚지 못하고 있다. 유민봉 대통령 국정기획수석은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슨 말이냐”는 여당 의원 질문에 동어 반복성 답변만을 내놓아 질타를 받았다. 창조경제를 일선에서 이끌어가야 할 미래부 장관 내정자인 최문기 후보자 역시 창조경제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핵심개념에 대해 그 구체적 실체를 잡지 못한 채 정권이 시작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떠나서 창조경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몇 가지 맥락은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로 ‘일자리’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 난국을 돌파하고 특히 국정지표인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바다. 둘째로 창조경제는 주로 IT기술을 동심원으로 한 기술혁신과 그로 인한 혁신산업 지원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토건산업 지원이나 녹색성장과 구분되며, 최근 복지와 관련해 강조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강화와도 구분된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조해온 사회혁신과도 구분된다.

 

셋째로 창조경제의 대표적 참조모델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2000년 세계적인 벤처거품 붕괴에도 상대적으로 지속성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벤처창업과 기술혁신 추세를 벤치마킹해 만들어낸 개념이 ‘창조경제’인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최근 수 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던 복지국가(welfare state)와는 다른 이스라엘식의 창업국가(start-up nation)를 목표 모델로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대체로, “IT중심의 융합산업에서 벤처 창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주도해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국가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지금 시점이 “IT융합 부문을 중심으로 벤처창업 열풍을 만들어서 경기회복을 꾀하고 산업구조조정을 실현하며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을 짜야할 상황인가. 1990년대 말 벤처육성 붐의 재연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1990년대 말 시점은 비록 거품임이 드러났지만 세계적으로 ‘신경제’라고 불릴 정도의 수요확대가 있었던 시기다. 반면 지금은 '수요 부족'이 세계화되고 있는 국면, 즉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요 위축'이 상당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혁신적인 기술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면 무한히 수요가 따라주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최근 수 년 동안 스마트폰과 SNS가 급팽창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대기업 위주의 하드웨어 제품이 주도하거나 페이스북과 같은 몇 개의 외국 플랫폼 회사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크다. 많이 사례로 드는 모바일 앱 시장은 소문보다 큰 시장이 아니며, IT융합 산업도 대기업 주도로 제한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벤처 창업공간이 넓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두 번째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융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고 코스닥 시장은 2001년 수준에서 사실상 멈춰있는 상황이다. 민간 벤처 투자자금 역시 1990년대 말에 비하면 턱 없이 위축된 상황이며 정부에서 자금 공급을 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은 수요 측면이나 투자 자금측면에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데 자금도 영업 경험도 없는 젊은 청년들에게 모험적인 벤처 창업을 유도하는 행위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모델로 한다면서 내세우는 창업국가 비전은 대단히 불투명한 전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타산도 없고 계획도 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피해가기 위해서 창업국가와 창조경제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일자리는 창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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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3정태인/새사연 원장

 

다행이다.

부러 경제성장률을 낮춰서 추경예산을 확보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많지만 나는 그래도 객관을 인정한 박근혜 정부를 칭찬한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은 지금 박근혜 정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제관료들이다. 놀랍게도 2012년 9월, 4%의 경제성장을 전제로 예산을 짠 사람이나 지금 2.3%를 들고 나온 사람은 똑같다. 한 나라의 경제, 그것도 세계 10위권 GDP 규모의 경제 성장율이 불과 6개월 만에 1.7%p 수정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국은행이나 정부의 경제성장 예측 모형(이른바 동태확률일반균형(DSGE)모형으로 수천개의 방정식으로 구성돼 있다)의 전망치가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시에는 파라메터(방정식의 상수들)가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이나 정부가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그 수치들을 수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2년 경제성장률이 높은 이유, 모델이 잘못됐거나, 뻥튀기했거나

이번 발표에서 왜 갑자기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는지를 조목 조목 밝히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독자들은 위에서 인용한 새사연의 보고서를 읽으면 된다. 요악하자면 “대외 경제 여건의 호전”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정부가 기대를 건 수출은 플러스를 기록하면 다행이고 내수 부문은 저임금과 가계 부채 때문에 오히려 마이너스일 것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2% 정도의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게다. 결국 2012년 하반기 발표는 모델이 잘못 됐거나, 정부의 의도 때문에 성장률을 뻥튀기했다는 게 새사연의 주장이었다.

어쨌든 정부가 우리 예측대로 성장률 전망을 대폭 하향 수정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당연히 세입도 줄어든다. 하여 증세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도 주장했고, 심지어 부자증세가 아닌 국채에 의한 추경도 찬성한다고 썼다. 도토리 키재기인 여야가 어떤 수사를 동원해서 갑론을박한다 해도 10조 원 이상의 추경에 합의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경제성장 기조가 바뀌어야,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

그런데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무리하게 수출진작책을 쓴다면 국제적인 통화전쟁에 직면할 것이고 건설경기를 일으키면 내년이나 후년에 더 큰 보복을 당할 것이다. 결국 지난 50년간 지속된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의 성장’ 기조를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로 바꾸는 길 밖에 없다.”(정태인, 2013년, 한국경제 ‘국민 행복시대’로 갈 수 있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2013.1.9) 이것이 우리의 답이다. 다행히 정부도 수출 증가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러므로 내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 등 임금의 상승,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 그리고 사회적 경제의 확충 밖에는 없다. 나아가서 동아시아에 5조 달러 이상 쌓아 놓은 외환보유고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박근혜정부의 상상력이 여기까지 이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정확히 말해서 관료들은(박근혜 대통령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주위의 청와대 경제비서관들은 다 경제관료 출신들이다) 부동산 붐에서 내수 확대의 길을 찾았다. 맞다. 현재 내수의 걸림돌인 가계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또는 공포스러운 파국을 막기 위해 부동산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것은 아이큐가 두자리 이상이라면 자연스레 찾을 해법이긴 하다. 그 자체도 실현되기 어렵겠지만(모든 수단이 다 동원된 이번 정책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혹여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어찌 할 것인가? 새로운 거품으로 과거의 거품이 꺼진 자리를 채우는 방법은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것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폭탄 돌리기” 게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다. 새사연 <리셋 코리아>를 통해 주장했고, 앞으로 계속 제시할 대안인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 외에는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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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2 / 21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성장과 분배의 관계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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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박근혜 정부, 경제 민주화를 버리고 성장을 잡나?

2. 불평등이 성장의 지속성에 주는 영향은?

3. 불평등 완화와 성장을 함께 이끌 정책들

 

[본 문]


1. 박근혜 정부, 경제 민주화를 버리고 성장을 잡나?

  대표적인 시장주의자인 경제 부총리를 포함하여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이 면모를 드러내고 국정과제가 발표되면서 나오고 있는 공통적인 비판은 ‘시작부터 경제 민주화의 실종’이다. 이미 지난 대선 선거운동 후반기부터 ‘경제 민주화냐 성장이냐’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위기를 핑계로 경제 민주화를 버리고 성장으로 기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경제 민주화 없이 박근혜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부동산 경기부양을 통해서? 수출 대기업을 지원해서? 금융 규제완화로 신용창출을 통해서? 과거의 성장 기제로 작동하던 이런 방식들은 이제 불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그럼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하는 과제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사실 불평등 문제와 관련이 있다. 2011년 월가점령 운동이후 글로벌 이슈로 부각된 문제가 99%의 불평등 문제다. 더욱이 현재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는 핵심 요인이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수요제약이라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단지 불평의 심화 정도에 대한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불평등과 경제위기, 소득 불평등과 가계 부채의 관계, 불평등과 소비의 관계, 그리고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에 대한 의제로 넓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 문제는 불평등 문제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아서 오쿤( Arthur M. Okun) 같은 1960대의 경제학자들은 사회가 평등과 성장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 오랜 동안 고속 성장을 위해 일정한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한국의 선성장 후분배 논리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좀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 경제학자인 브랑코 밀라노빅(Branko Milanovic)은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인 고등교육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어왔는데, 사회가 상대적으로 균등한 소득분배를 이루어야 교육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그래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 불평등이 성장 지속성에 주는 영향은?

  그리고 2011년 국제통화기금(IMF)은 빈부격차를 좁히는 사회는 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 보고서의 저자이기도 한 국제통화기금 경제학자 오스트리(Jonathan D. Ostry)에 의하면, 현재 미국 소득격차 추세로 보면 앞으로 미국의 경제성장이 1960년대의 1/3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경기 활황은 4.8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는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기활황은 불평등이 큰 사회에서 금방 수그러드는데, 그것은 불평등한 사회가 금융위기와 정치적 불안정성 양쪽에서 모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국가들은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성장세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굵직한 정책들을 합의해내지 못하고 쉽게 교착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국제통화기금 전 수석경제학자 라잔(Raghuram G. Rajan)은, 경제적으로 격차가 큰 사회의 정치적 시스템은 극단화되며 지금 워싱턴이 그런 것처럼 일종의 제로섬 게임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를 점점 어렵게 하고, 다시 성장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제기되는 어떤 해법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2011년 국제통화기금 스탭 토론 노트인 “불평등과 지속 불가능한 성장: 동전의 양면인가?(Inequality and Unsustainable Growth: Two Sides of the Same Coin?)"는 불평등 완화가 경제 성장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논문이다.

 

우선 논문은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시작하기는 쉽지만 지속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고, 단기적인 성장과 침체를 불평등과 연계시키기 보다는 최소 8년 이상의 장기 지속적인 성장세에 불평등 정도가 주는 영향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림 1]이 예시하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보아도 불평등과 성장이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다시 말해 불평등 정도가 커질수록 경제 성장 지속기간이 짧아진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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