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7.02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선택
  2. 2011.06.30 진보정당의 눈물…민중의 눈물

2012.06.28정태인/새사연 원장

 

6월 마지막 주에 통합진보당은 당대표 선거를 치른다. 내 보기에 이번 선거는 이 정당의 ‘마지막 선택’이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뻔한 죽음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만 남았다. 지난 3주간 통합진보당 사태를 다룬 ‘착한경제학’의 고통스러운 일탈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유일한 활로가 현재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꿔서 협동을 택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곧 현재의 ‘퇴행적 정파주의’를 ‘협동의 정파주의’로 바꾸는 일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부체크(Boucek)는 퇴행적 정파주의 구도에서 각 집단은 당 전체의 가치보다 개별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골몰하므로 당의 공유자원(무엇보다도 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을 파괴하고 결국 당은 분열과 붕괴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각 정파가 서로 적대하면서 퇴행적 정파주의로 치달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만일 선거의 승리가 물질적 이익(지대)과 당직 등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점점 심해진 고질적 병폐인 패권주의, 크고 작은 선거부정이 발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그런 전리품으로 인해 특정 정파의 조직이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면 소수정파는 2008년 분당과 같은 초강수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승자 독식의 현행 제도 아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우선 두 후보 모두 당 권력의 분점과 투명한 회계제도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세금과 당비가 특정 정파에 귀속되는 것부터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둘째는 아예 강령을 개정해서 당의 거버넌스를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내각제 형태로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두 번째 퇴행적 정파주의의 원인은 진보적 가치의 훼손이다. 예컨대 ‘혁명성’이나 ‘계급성’과 같은 선명한 낱말이 정파의 이익을 은폐하는 외피가 된 것은 비단 통합진보당이나 한국의 대중운동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현상은 각국 진보운동이 사멸하는 징후였다(발리바르). 두 후보는 2012년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자주성’이나 ‘노동중심성’, ‘당내 민주주의’와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는 당대표 선거가 단지 정파간의 숫자 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고 앞으로 협동의 정파주의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집단간의 퇴행적 경쟁은 협동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셰리던). 이것은 곧 협동의 보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파의 지도자와 이론가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정파간 경쟁이 퇴행적이지 않으려면 당원과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 억측을 집단 구성원에게 경쟁적으로 유포하는 퇴행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각 정파가 이런 초보적인 민주적 절차에 성실하게 응한다면 그 과정은 곧 정파간의 오해와 반목을 씻는 화해의 과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두 후보는 현재의 당 강령에 비춰 정파의 이념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며 소속원을 등록하는 ‘정파 및 정책 등록제’를 공약해야 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정파간 경쟁이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이고, 당원 전체의 합의와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높아지는 바로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칼날도 무뎌질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당 내외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국민들로부터 능력(competency)은 물론 성실성(integrity) 면에서도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당은 일반적인 신뢰 회복 절차인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프로그램 제시에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도 철저히 국민의 신뢰 회복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선거만은 정파라는 낡은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의 사활이 그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신고

'새사연 2014 > [칼럼] 정태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의 문’  (0) 2012.07.23
'줄푸세'는 경제민주화의 적  (0) 2012.07.13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선택  (0) 2012.07.02
부끄러운 세계 1위  (0) 2012.06.18
추락 이후  (0) 2012.06.14
통합진보당 사태, 착한 해법은  (0) 2012.06.14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6.30손석춘/새사연 이사장

권영길의 눈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그가 기자간담회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권영길이 회견문을 읽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한 순간은 앞으로 건설될 통합 진보정당에서 어떤 당직과 공직도 맡지 않겠다며 사실상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대목이 아니었다. 서울 “삼선교 쪽방의 국민승리21 시절부터, 2004년 총선승리의 영광, 분당의 상처까지 모든 고난과 영광의 세월동안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은 권영길의 영혼”이었다고 회고할 때였다.

왜 권영길은 그 대목에서 눈시울 적셨을까. 민주노동당과 더불어 걸어온 그 길이 가시밭이었고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기실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기자 출신의 정치인 권영길은 물론, 진보정당의 정치 활동이나 정책을 보도하는 데 내내 인색했다. 흔히 진보언론으로 꼽히는 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복지’ 쟁점화, 진보정당 없었다면…

단적인 보기가 최근 퍼져가고 있는 ‘복지’ 의제다. 권영길은 진보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백의종군을 밝힌 간담회에서 현재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은 한국사회 최대 쟁점”이라고 지적한 뒤 그 쟁점들은 “진보정당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랬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이후 줄기차게 ‘무상 의료’와 ‘무상 등록금’의 단계적 실현을 주창해왔다. 생활 현장에서 무상급식 운동을 애면글면 벌여온 사람들도 대체로 진보정당의 당원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신문도 방송도 진보정당의 정책이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진보정당의 복지정책 공약을 구색맞추기식으로 보도했을 때도 “비현실적”이라는 꼬리표를 살천스레 달았다. 가장 오랫동안 복지정책을 지며리 제기해온 원내 진보정당에 언제나 소홀했던 언론이 2010년 들어 ‘복지’를 의제로 설정하는 모습을 탓하자는 게 전혀 아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고 의미 있는 편집으로 마땅히 평가할 일이다. 다만 뒤늦게 복지를 의제로 부각하면서도 시민사회 중심으로 보도하는 반면, 진보정당의 정책을 보도하는 데 여전히 인색한 풍경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전혀 내키진 않지만 명토박아둔다. 미디어오늘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에도 정파적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윤똑똑이들을 위해서다. 심지어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사설과 칼럼을 쓸 때도 당시 논설주간은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 아니냐고 물었다. 사실 여부를 답하고 싶지 않아 웃어넘겨서일까. 그는 확신을 한 듯이 다른 사설을 썼을 때도 그 말을 불쑥 꺼냈다. 참으로 씁쓸했지만 그가 해직 기자로 걸어온 길에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고 싶어 사실이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미묘한 웃음을 보내며 “그럼 비밀당원이겠지”라고 혼잣말처럼 단정했다.

흘러간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럴 뜻은 전혀 없다. 다만 대한민국 언론계에서 진보적 생각을 표현하는 일조차 쉽지 않고 바로 그만큼 진보정당이 커나가기는 더 어렵다는 진실을 동시대의 언론인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권영길의 눈물은 민주·민중의 슬픔

물론, 이제 나는 더 이상 직업적 기자가 아니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기자직을 그만둔 뒤 제법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언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언론 보도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은 실현 불가능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짚고 싶다. 아울러 자신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편향의 칼럼을 노상 써가는 현직 언론인들이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편에 서서 시민정치운동이나 주권운동에 참여한 지식인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현실에 조금이라도 성찰을 권할 따름이다.

권영길은 간담회를 정리하는 발언에서 취재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은 진보진영만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읍소했다.

가만히 묻고 싶다. 진보대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한국 정치에 절실하다고 판단하는 언론이 대한민국에 있는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칭 보수든 진보든 한국 언론은 진보정당이 내부 갈등으로 쪼개질 때 비로소 돋보이게 편집했다. 권영길이 아픔을 들먹이며 울먹인 바로 그 시점이다. 진보언론의 지면조차 분당을 부추기는 칼럼들을 곰비임비 편집하지 않았던가.

두루 알다시피 40대 후반 나이에 언론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권영길은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에 이어 민주노동당 창당에 나섰다. 오랜 냉전으로 얼어붙은 박토에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렸다. 그 자신 지역구 당선을 비롯해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새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로 키워왔다. 그의 노고에, 어느새 일흔이 넘은 그의 서러움에 경의와 위로를 보내는 까닭이다.

아울러 현직 언론인들, 특히 진보언론의 현역들에게 쓴다. 권영길의 눈물은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눈물이다. 동시에 진보대통합의 눈물이다. 그 슬픔은 맞닿아 있다, 더 깊은 민주주의의 눈물, 지금 이 순간도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눈물과.

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