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4고병수/ 새사연 이사

 

오늘은 몽골에서 마지막 진료를 하게 된다. 항상 그렇듯이 떠날 때가 제일 서운한 법이다. 그런 만큼 오늘은 진료실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며 주민들을 맞았다.

우리가 진료실 일부를 빌려서 활동하게 된 헨티 아이막(도)의 중심도시인

운드르항에 있는 종합병원 모습. 건물이 낡고 여기저기 파손된 흔적들이 보이지만

재원 부족으로 손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몽골에서 떠올리는 기생충의 추억

이번 몽골진료에서는 다행히 피부연고를 비롯해서 알러지 분야나 위장약 계통은 많이 준비해서 끝까지 모자라지 않았지만, 기생충약은 오전 진료 하자마자부터 5상자에 담아온 것이 바닥을 드러냈다.

진료 첫날부터 주민들에게 요충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밤중에 항문이 가려워하는 아이들이 없는지, 혹시 대변을 보면 변에 간혹 회충과 같은 기생충이 보이지 않는지 꼭 물어보았다. 설사 내가 묻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도 교육을 잘 받아서 그러한 것들이 기생충 질환을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얘기를 해줬다. 가족 중에 아이들이 있으면 예방적으로라도 기생충약을 주고, 기생충 질환이 의심되면 가족 모두가 두 번에 걸쳐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약을 건네다 보니 진료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동이 나 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가까이 살던 아이들. 해가 저물어가는 중에도

누나(왼쪽)의 설명을 들으며 공부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어린시절 생각이 난다. 이도 많고, 기생충도 몸 속 가득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아버지가 내 별명을 ‘동물원’이라고 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었거나 오염된 식수를 먹다보니 기생충 감염은 일반사였고, 냇물이나 강물에서 놀다보니 전염되기도 쉬웠다. 그 당시 우리가 가졌던 기생충도 대부분 요충과 회충이었다.

그 때를 살던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학교에서 해마다 기생충 검사를 한다며 대변 봉투를 줬던 것을.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었던 것 같다. 기생충약을 먹는 게 질리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어느 날은 씹던 껌을 집어넣었는데도 유소견자라고 해서 약을 먹어야 했다. 그건 분명 검사하는 사람이 혼나보라고 일부러 양성이라 진단 했을 것이다. 우리가 집에 가져가서는 약을 안 먹을까봐 담임선생님은 주전자와 컵을 교탁에 두시고 본인이 보는 앞에서 일일이 먹는 것을 확인하셨다.

3-40년 전 서양에서는 심근경색, 뇌경색과 같은 질환들이 흔했고, 기생충 질환들은 실제 예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드물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몽골은 아직도 물이 깨끗하지 않은 곳이 많고, 초원에서는 고인 물을 걸러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기생충 질환에 걸리기 쉽다. 위생 관리뿐만 아니라 식수에 대한 관리가 보건 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수줍어하며 구경하던 몽골 의과대학생

진료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내가 사용하는 진료실에서 이것저것 지켜보던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 강바트 어융 에르딘(r. Oyun-Erdene)이라는 스물 한 살의 의대생이다. 몽골 국립대학교 의과대학(Health Science University of Mongolia)에 다닌다는 어융 에르딘은 의과대학 3학년(한국에서 의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 1학년인 셈)인데, 지방 병원인 운드르항 종합병원에서 2주일간 실습을 나오게 됐다고 했다.

환자들을 진찰할 때는 아예 내 옆에서 환자의 목구멍까지 같이 들여다보려고 어깨를 부딪히곤 했는데,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녀석이 기특해서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일일이 환자를 볼 때마다 상태를 얘기하고 필요한 진단 내용들을 설명해주었다. 어려운 질환들을 보는 것도 아닌데 몽골말로 공책에 적어가면서 내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예뻤다.

통역사(왼쪽), 의과대학생 어융 에르딘(가운데)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어융 에르딘 덕택에 나는 알기 힘든 몽골의 의과대학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몽골에는 10개의 의과대학이 있는데, 2개의 국립대학과 8개의 사립대학이 있다고 한다. 의과대학 과정은 예과 2년과 본과 4년으로 한국과 같은 6년제를 택하고 있으며, 의과대학 등록금은 다른 일반 대학 등록금 보다 비싸서 한 학기에 100만 투그릭이라고 했다. 다행히 각 학기마다 절반은 국가에서 보조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의과대학생들이 부담하는 금액은 50만 투그릭(한국 돈으로 45만 원 정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몽골 처자 어융 에르딘이 다니는 몽골 국립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에 자기와 같은 3학년의 학생 수가 400명이라고 말해서 나는 깜짝 놀라 여러 번 물어봐야 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서 보니 200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의사 수가 한의사 포함하여 인구 1,000명당 1.94명이고, 영국이 2.71명으로 통계에 나오는데, 몽골은 훨씬 그 이전인 2003년 통계로 인구 1,000명당 약 2.7명의 의사를 배출하고 있었다. 몽골 전체 인구가 280만 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의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어서 의과대학생 수가 많은 것도 이해가 갔다.

문제는 그들이 의사가 되고 나서 취직자리가 없어서 힘들어 한다는 것과 의사들 중 대부분이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있다 보니(2003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울란바타르 4.4명, 아이막 1.7명 분포) 의사의 지역적 불균형 분포가 또 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2005년 자료에는 323개의 솜(한국의 ‘군’에 해당)지역에 우리의 보건소와 같은 병원들이 있고, 다행히 의사들이 어느 정도 근무하고 있지만, 15개 솜에는 의사가 없이 간호사들이 지역의료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지방에는 의사들의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역적 의사 수 불균형 분포를 해결하고자 몽골에서는 2006년 이후로 의과대학 졸업을 앞둔 2년 동안 지방 병원에서 전문 의사의 지도 아래 근무하게 하는 정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의사들의 보편적인 수입은 30만 투그릭 정도로 보통 직장인보다 조금 많은 수준으로 한국의 의사들에 비해 적은 편이고, 경력 많은 의사는 60만 투그릭(한국 돈으로 50만 원 안팎)을 버는데 몽골에서 의사들은 그다지 인기 있는 직업은 아니라고 한다. 그나마 수련을 마친 의사들도 직장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마치 1950-70년대 당시, 한국의 의사들이 병원 취직이 어려워서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갔던 것과 지역마다 의료시설 부족을 겪었던 것 등 비슷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몽골을 떠나면서...

서둘러 출발을 해야 겨우 한밤중이라도 울란바타르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전 진료만 하고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이미 마을 전체에 공지를 한 영향인지 주민들도 오전이 지나자 더 오지를 않았다.

진료실의 짐을 정리하면서 어융 에르딘 학생과는 통역사를 통해서 인사를 나눴다. 열심히 배워서 몽골의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워서 한국에서부터 사용하던 청진기와 몇 가지 기구들을 선물로 주었다. 진료실에 함께 있으면서 눈여겨보니까 그 친구의 실습 가운에는 청진기나 펜 라이트 등 지금쯤이면 필요할 실습 도구들이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기념으로 주었던 것이다.

몽골 사람들은 손님이 올 때 마을 어귀에서 맞이하고, 갈 때는 다시 마을 어귀에 먼저 기다리면서 배웅을 하는 풍습이 있다. 우리 일행들도 아쉬움을 마지막으로 전하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후 버스를 타고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게 되었다.

6박 7일 중 오가는 시간을 빼면 며칠 안 되는 진료였지만, 올해와 같은 경우에는 몽골의 의료 현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로 자세히 파악할 수 있어서 보람이 더 컸다. 내년에는 아이들의 A형간염 예방접종에 대한 고민을 미리 해보려고 한다. 필요한 약품들을 더 챙겨서 오는 것도 잊지 말자.

이것저것 1년 후의 계획을 하면서 차창 밖을 보니 돌아가는 길의 절반도 안 왔는데, 해가 지고 억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몽고에서 비는 좋은 징조로 여기지만, 빗물에 길이 여기저기 파손되어 또 가는 여정이 평탄치 않겠구나 하는 걱정에 졸음이 싹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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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고병수/ 새사연 이사

 

몽골의 넓은 국토는 대부분이 초원이고 40% 정도가 사막이다. 아시아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일 년 내내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어서 늘 맑은 하늘을 보게 된다. 1년 중 260일 가량 구름이 없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몽골의 하늘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늘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도 8월인 요즘은 낮에는 24도 안팎, 밤에는 18도 정도이니 한국의 가을 날씨 같다. 지금쯤 서울이나 제주는 푹푹 찌는 폭염 소식을 연일 뉴스가 전하고 있을 거다.

몽골의 초원과 끝없는 지평선으로부터 퍼져가는 구름들.

가운데 점점이 보이는 것은 이동하는 수 백 마리 말들이다.

 

돌 하나씩은 지니고 다니는 몽골 주민들

각자 흩어져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아침 진료가 시작되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몽골 주민들은 거의 자기의 진단명을 붙이고 얘기가 시작한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고 ‘쓸개에 돌이 있어요.’라고 하든지, 허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신장에 돌이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다가 돌 하나씩은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처음 몽골에 왔을 때는 너무 황당하고 놀라서 문진도 자세히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이동식 초음파로 검사도 해봤지만 간이나 신장, 쓸개에 돌이 있다고 얘기하더라도 실제는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더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물이 귀해서 잘 걸러지지 않은 물이나 지하수를 먹기 때문에 석회수가 섞여서 몸속에 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콩팥에 만들어지는 신장결석이든 쓸개에 생기는 담석이든 석회수에 많이 섞인 칼슘 침착이 이유가 되며, 그들의 섭식 습관 중 육류 섭취에 의한 콜레스테롤 증가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문제는 허리가 아프면 당연히 콩팥이 나쁜 거고, 그 원인은 주로 신장결석 때문이다 라든가 배가 아프면 담석이 있어서라는 생각을 쉽게 해버린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종합병원에 초음파 기계가 한 대뿐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초음파나 요로검사를 통해 결석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보니 의사들마저 ‘돌이 있어서 아픈 거예요’라고 여겨버리는 것 같다. 일종의 관성적 진료이다.

진료중인 필자

 

알러지가 많은 주민들

또 몽골 주민들에게는 특징적인 질환군이 있다. 바로 알러지로 인한 비염과 피부염들이다. 그것들은 검사보다도 증상과 간단한 진찰만으로도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금새 알 수가 있다.

“알러지 비염이 있어요.”, “피부가 늘 간지러워요.” 찾아오는 많은 주민들이 이런 호소를 한다. 알러지(Allergy)란 말 자체가 과민반응을 뜻하므로 코가 민감하게 반응해서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을 나타내면 알러지 비염인 것이고, 피부가 어떤 자극에 자주 가려움증을 나타내면 알러지 피부염인 것이다. 몽골은 공기가 맑고 오염되지 않아서 우리와 같은 도시의 오염 때문에 생기는 자극은 적어도 초원의 풀에서 만들어지는 꽃가루나 관련된 물질들이 알러지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알러지 비염의 경우 증상을 물어보지 않아도 주민들마다 코 안을 들여다보면 알러지 비염 환자 특유의 점막 부종 현상을 심심치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피부는 햇볕에 타서 거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피부 가려움증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예상을 하고 충분히 가지고 온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연고류는 진료가 끝나기 전에 동이 나 버릴 정도다.

내가 제주도로 이사 와서 진료를 하다가 놀랐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서울보다 제주에서 알러지 비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알러지 비염이 공기의 오염보다는 알러지 유발 물질(‘알러젠’이라고 한다)이 더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다. 풀과 나무가 많아 여러 종류의 식물성 알러지 유발 물질에 노출될 영향이 크고, 특히 제주 산간 도로를 운치 있게 에워싸거나 감귤나무를 보호하려고 둘러친 방풍림인 삼나무들이 문제였다. 지금부터라도 방풍림으로 삼나무 대신 편백나무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제주와는 달리 몽골의 그 많은 초원을 다 바꿀 수도 없고…

밤이 되어 간단한 평가가 끝나고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대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을 벌리고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어디가 아파요? 또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
“아니요. 원래 알러지가 있는데, 너무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참아보려고 버티다가 어젯밤에는 한숨도 못 잤어요.”

이런 녀석을 미련 곰탱이라고 했던가? 간단히 약을 먹어서 증상을 줄여주면 될 것을 며칠 동안이나 참다니… 서울에 있을 때는 그래도 여름이라서 괜찮았는데, 몽골에 오면서부터 눈이 가렵고 코가 막혀 힘들었다고 했다.

남들은 차타고 오면서 몽골 초원의 푸른 기운을 예찬할 때 이 친구는 남몰래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하고, 진작 챙기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급한 대로 주사를 주고, 며칠 먹을 약을 싸주었다.

그 친구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멀리 개 짖는 소리, 잠 안자고 두런대는 자원봉사자 학생들 목소리도 조금씩 줄어들고… 시간이 잠시 흘러 풀벌레 우는 소리가 짙어질 때쯤, 내일은 마지막 진료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을 밤하늘에 전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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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4고병수/새사연 이사

 

아침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일행들과 모여서 밥에 깡통 통조림들을 꺼내서 맛있게 먹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도 해야 하는데, 앞서 얼굴을 씻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영 말이 아니다. 머리를 감고 나오던 봉사단 인솔자인 장석기씨는 물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공수부대 출신에 국방부장관 표창까지 받으며 군 생활을 화려하게 했다는 그가 입까지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감히 머리 감을 생각까지는 못하고 그냥 눈곱만 떼고 가야지 마음먹게 된다.


진료 시작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진료 장소에 도착해보니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점심밥 먹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팍 온다.

단장님, 오늘도 죽음의 진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고원장, 자기는 엉덩이에 땀띠 좀 나겠는데?”
“나야 땀띠로 족하지만, 단장님은 허리가 뽄질라지겠네요. 하하하…”
“이따가 파스 남은 거 있으면 좀 붙여줄 생각이나 해요. 아이고…”

아침 일찍부터 진료를 받기위해 몰려든 주민들


우리 일행을 책임지는 단장님은 여러 해 동안 알면서 지내온 박형선 한의원 원장이신데,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주민들에게 침을 놓으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진료를 하고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을 거다. 농담처럼 죽는 시늉을 하지만 박 단장님은 몽골 진료를 벌써 16년가량 해오신 분이라 몽골 오지에 가는 것이나 폭풍진료를 하는 것에는 이골이 났을 것이다.

진료는 가정의학과 2명, 산부인과 1명, 외과 1명, 성형외과 1명, 치과 2명으로 이루어진 의료진들이 맡고, 2명의 약사님들은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간호사는 주민들이 어느 진료실로 갈지 간단한 인터뷰를 하면서 교통정리를 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민들을 안내하거나 진료실과 약국에서 일손을 돕는다.

다른 진료과목들은 이 지역에서 각자 자기 역할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성형외과 원장님이신 조준현 선생님이다. 여름휴가 가는 대신 봉사를 오긴 왔지만 몽골 오지에서 성형수술을 하기도 만무하고, 진료 첫날인 오늘은 진료실에 앉아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내과 환자라도 보겠다며 진료를 하는데, 내과 계통 약을 처방해본지도 20년 가까이 지나서 쉽지는 않았다.


몽골 오지에서 성형 수술을

오전 11시가 넘어갈 때였다.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분이 성형외과 선생님 방에 수술 건이 생겼다고 귀띔을 해줘서 드디어 일거리를 찾으셨구나 마음이 놓였다.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입술이 찢어진 청년이라는데, 간단한 수술이니 금방 끝나서 또 할 일이 없나 찾으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손을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으로 향하는 중에 성형외과 선생님이 안 보인다.

“조 선생님은 왜 안 오시죠?”
“수술 하는 게 많이 늦어질 거라고 합니다.”
“어, 입술 봉합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죠? 시작한지 2시간이 넘었을 텐데…”
“그러게요. 나도 많이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점심도 못 먹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간단한 봉합은 많이 해봤기 때문에 부위 별로 대강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듣기로는 큰 손상이 아닌 것 같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 게 아무래도 미용 성형만 하시다가 간단하지만 손상된 상처 봉합을 하려니까 어려우신가 보다고 우리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갈 때쯤 성형외과 조 선생님이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고 계셨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 많이 힘든 수술이었나 봐요?”

우리들은 인사치레로 그렇게 물었지만, 조 선생님은 바짝 말라 있는 입술을 힘들게 떼며 말한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해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입술뿐만 아니라 아래턱 속살까지 다 다쳤더라고요. 상태가 안 좋아서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더니 현지 의사가 이런 수술은 울란바타르로 보내야 한다는데…”
“그 정도였어요? 우리는 가벼운 입술 상처인 줄 알았어요.”
“다행히 차가 정면이 아닌 옆으로 스쳤는지 골절 같은 것은 없고, 입술과 턱 부분 손상만 받았지만 이게 간단한 수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 몽골 청년은 입술부터 턱 살까지 찢어졌을 뿐만 아니라 안쪽으로 아래턱뼈에 붙은 살이 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안쪽 구조물과 조화를 시키고, 안에서부터 봉합을 하면서 동시에 겉 피부 봉합을 해야 되는데, 붓기가 빠지면서 입술선이 삐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조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우리 일행들은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야 상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수술 받기 전 상태(왼쪽)와 3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은 후의 모습(오른쪽)


“와, 선생님은 이제 몽골에서 할 일 다 하셨어요. 이젠 진료하지 말고 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그래도 역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밥 좀 먹어야겠습니다.”

그 몽골 청년은 비용도 문제였지만 생각지도 않게 힘든 수술을 멀리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받아야 할 뻔했는데 참 운이 좋았다. 이후 며칠 동안 조 선생님은 내과 환자들을 보면서도 드문드문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이 보게 되어서 결코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그 날 밤 평가를 위해 모인 우리는 밤늦도록 오늘 일에 대해서 얘기하며 조 선생님을 칭찬했다. 마치 우리가 겪은 일인 것처럼 보람 있어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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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고병수/새사연 이사

 

해마다 오는 몽골 의료봉사지만, 언제나 진료하는 것보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게 가장 힘들다. 올해는 인원이 많아서 3개 지역으로 나누어 봉사활동이 진행되는데, 우리 일행은 헨티 아이막(헨티道)의 운드르항이라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우리보다 3시간을 더 가야하는 일행들은 밤 10시가 되어야 도착할 것이다(하지만 그 팀은 밤중에 초원에서 버스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처음 몽골에 갔을 때는 드넓은 초원에 감격해서 버스가 쉴 때마다 사진도 찍고 초원의 풀냄새와 들꽃에 취해 감동을 하곤 했는데, 여러 번 오다보니 이제는 그저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잠만 자게 된다. 그것은 4년 전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와서 처음 산과 바다와 자연에 취해 감동받던 것이 이제는 심드렁해지는 무심한 적응 현상이다.


몽골의 보건의료 현황

몽골은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인구는 280만 명 정도라서 인구밀도가 아주 낮다. 징키스칸에 의해 부족이 통일 된 후 원나라를 통해 강국이 됐지만, 이후 내부 분열과 중국의 간섭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1920년대까지는 후진국으로 전락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1924년에는 당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지원 아래 몽골인민혁명당을 유일 정당으로 해서 몽골인민공화국이 성립되어 독립국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몽골도 처음에는 후진성을 벗고 경제적 발전과 국가의 안정을 이루었다. 가축 수가 증가하고, 공업도 이루어지는 한편 문화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직된 국가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경제발전이 답보되고, 언론?출판의 자유는 억압받게 된다. 더욱이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는 몽골에도 자유화 바람을 불게 했고, 여러 정당들이 생기면서 1990년 7월에 비로소 민주적 절차에 의한 첫 자유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몽골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몽골의 보건의료는 사회주의 정부 당시의 영향이 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자유주의 국가들처럼 인구가 많고 수입이 되는 지역에 가서 병원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 아래 각 아이막의 중심 도시에는 종합병원을 지어서 지역의 중심의료기관이 되게 하였고, 솜(한국에서는 군(郡)에 해당)에는 기본적인 일차의료기관(보건소 비슷)을 만들어서 지역 의료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장티푸스, 천연두, 파라티푸스 등 고질적인 전염병들을 퇴치하는데 앞장섰고, 질병 예방을 위한 기초 검진이 중요시 되었다.

주민들은 누구나 자신의 ‘건강수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들이 건강상황이나 이전 진료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몽골이 사용하는 키릴문자와 러시아 문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내가 볼 때는 비슷해 보여도 주민들이 내게 펼쳐보이는 건강수첩을 보면 가끔 러시아어로 쓴 글들이 있다. 의사들이 주로 러시아로 유학을 가거나 러시아어로 된 의학서적을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그들의 의학서적을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습관적으로 영어로 기록을 남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건강수첩 겉표지(왼쪽 그림)와 개인 의료기록이 자세히 정리된 내용(오른쪽 그림)

인구의 절반이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거주하고 있고, 각 아이막마다 중심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인구 2~5만 안팎의 도시들이다. 그 외의 국민들은 대다수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면서 드넓은 초원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회주의 정부 아래에서는 모든 병원 이용과 치료는 무료였지만, 1990년대 자유화 이후 국가가 책임지던 보건의료서비스는 일부 개인 책임으로 바뀌게 된다. 여전히 응급치료, 예방, 임신부와 산모, 전염병 및 자연재해로 인한 질병 등은 무료이지만, 그 외는 많은 경우 진료를 받을 때 본인부담이 늘었다. 경제 발전은 더디면서 국가 책임의 의료시스템을 오래도록 하다 보니 국가재정에 부담이 가중되었고, 병원 시설이나 의약품 공급이 상당히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모두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던 것이 개인병원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의료 재정을 보완하고자 1994년부터는 의료보험이 시작되었다.


진료 준비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목적지까지는 400km밖에 안 되어서 서울과 부산 거리이지만, 길이 워낙 안 좋아 운 좋으면 10시간이고, 중간에 길을 잃거나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새벽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몽골에 올 때는 몽골의 역사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차 안에서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건의료 자료도 조사해서 가지고 왔기 때문에 미리 몽골의 보건의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우리 팀을 이끄는 단장님인 박형선 원장은 자꾸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 갈 때 꼭 책을 읽는 척 하더라 하면서 방해를 놓았지만, 나는 꿋꿋이 책을 놓지 않았다.

몽골은 아직도 결핵이나 바이러스성 간염, 기생충 질환 등 전염병 유병률이 많다. 게다가 그들은 육식을 주로 하면서 채소 섭취가 부족하고, 운동이 부족하다보니 심혈관계 질환들이 많다. 고지혈증,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가 정말 많다. 거의 생활습관병들이다. 우리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초원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같이 가는 통역이나 안내원들도 같은 점심을 먹는데, 그들은 그 정도로 양이 안 차는지 비닐에 싸서 가져온 양고기나 다른 육류를 꼭 먹어야 했다. 그들이 자주 먹는 양고기는 기름도 엄청 많다.

목적지인 운드르항에 와서 짐을 풀고 내일부터 있을 진료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인다. 다행히도 헨티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일부 진료실을 이용하도록 허락 받았기 때문에 다소 편하게 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장비들은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진료실로 가져다 놓고는 병원을 죽 둘러보고는 저녁을 만들어 먹고, 진료 준비 회의까지 마치고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숙소는 근처 고등학생들이 학기 중에 묵는 기숙사였다.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지역이 사람들이 많던데, 내일 너무 많은 주민들이 몰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가지고 온 약품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움직여줘야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

그래도 구름 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면서 몽골의 이틀째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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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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