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1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 
 

올해도 우리경제의 국내적 위험 요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은 최근 시중은행들의 대출행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계의 신용 위험도가 카드사태 이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잔뜩 겁을 줬다. 1000조원의 양적인 부채 규모도 문제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이 더 문제다. 이미 각 가정의 가처분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은지 오래되었고, 2012년 기준 자영업자들의 원리금 상환비중은 23.1%에 이른다.

원리금 상환부담을 생각할 때 지적되는 문제가 바로 고율의 이자다. 현재 기준 금리는 2.75%로 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제 2금융권의 대출 이자는 10%를 훨씬 넘는다. 또한 양성화된 사채라고 할 수 있는 대부업 대출은 39%까지 이자를 받아도 법적으로 합법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대선에서 25%대 수준 이하로 이자율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박근혜 당선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박근혜 당선자는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서 300여 만 명의 서민 다중채무자의 부채를 경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서민들에게 저금리 조건으로 금융서비스를 해주는 구조는 여전히 부재한 형편이다.

기억하는가? 2011년 10월 월가 점령운동이 절정에 올랐을 때, 월가의 거대 은행 탐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2011년 11월 5일을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로 정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한 사실을. 그리고 실제로 캠페인 한 달 동안 65만 명이 45억 달러(약 5 조원)의 계좌를 옮겼고, 그 결과 당시에 직불카드 수수료를 인상하려는 월가의 거대은행(Bank of America)은 수수료 인상을 철회해야 했다. 그런데 과연 그 45억 달러는 어떤 계좌로 옮겨졌을까? 바로 미국 각 지역에 산재한 8000여개의 신용협동조합(Credit Union)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계좌 옮기기 운동을 한다면 어느 은행으로 옮겨야 할까?

신용협동조합은 금융 분야에서 조직되는 대표적인 협동조합 형태다. 우리는 이미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등의 사례에서 협동조합이 경제위기에 강한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고 시장 실패의 충격을 일정하게 흡수할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금융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2008년 월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금융 협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미국은 리먼 브라더스나 씨티은행 같은 거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외에 소규모 신용 협동조합의 존재 역시 상당하다는 것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 존재하는 엄청난 신용협동조합들이 금융위기 속에서 그나마 미국 시민들의 신용수요를 보완해주었던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금융과 실물 모두에서 최악의 바닥에 도달했던 시점이 바로 2009년 3월이었다. 이 시기에 월가 은행을 대변해온 월스트리트 저널이 신용협동조합에 관한 짧은 글을 실었다. 금융위기로 거대 은행들이 무너지는 와중에서 그나마 신용협동조합들이 위기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기사다. 비록 시일이 지난 기사지만 위기의 한 복판에서 전달해주고 있는 긴박감과 생생함이 장점이다. 가계부채로 올해도 씨름을 해야 할 우리나라 상황에서 서민금융 시스템 대안을 생각하면서 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하여 소개한다. 

 


위기의 복판에서 피난처가 되어준 신용협동조합
(Safe Havens: Credit Unions Earn Some Interest)

 

2009년 3월 15일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현금이 과거처럼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소규모 은행들이 일주일에 한 개씩 파산하고 있고 대형 은행들은 정부가 제공한 병실 신세를 지고 있다. 예금자들은 자신들의 돈을 예치한 은행을 걱정하고 있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출해줄 은행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계속되는 금융 위기 태풍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예금자와 대출자들이 금융의 세계에서 혼란스럽지 않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 있다. 그것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신용협동조합(Credit Union)이다.  

자금사정에 쪼들리는 노동자와 자동차 구매자, 크리스마스 저축 예금자들에게 오랫동안 피난처가 되어왔던, 전국적으로 8000개에 달하는 신용협동조합이 폭풍에 시달리는 신용시장에서 믿음직은 대출원으로서 새로운 위상을 획득해가고 있는 중이다. 신용협동조합은 대다수 은행들과 비교해서 예금자들에게는 더 높은 예금 이자를, 대출자들에게는 더 낮은 대출 금리를 제공하는 윈-윈 조합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해왔다.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의 금리를 분석하는 조사기관인 데이터 트랙(Datatrac)에 따르면, 현재 시점(2009년 3월 시점)에서 신용협동조합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2.29%인데 반해 일반 상업은행은 1.74%에 불과하다. 신용협동조합에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평균 4.41%이지만 은행은 4.77%이다. (하지만 30년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 대출은 상업은행들이 5.33%를 약간 밑도는데 비해 신용협동조합은 5.39%로 다소 높다.)  

신용협동조합 조합원은 2004년에 8,500만 명에서 2008년에 약 9천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대출 총액도 2007년 5,390억 달러에서 2008년에는 5,75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8300개의 미국 은행들은 2008년에 310억 달러라는 엄청난 대출자산 감소를 겪었는데 2007년 7조 9,070억 달러에서 2008년 7조 8,760억 달러로 줄었던 것이다.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신용협동조합 CFCU에 가입한 버클배치씨는 3년 전에 자동차를 구매했다. “단지 금리 조건이 좋다는 것뿐이 아닙니다.” 그는 카펫 세탁사업 계좌도 신용협동조합으로 옮겼다. “고객 서비스와 솔직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1년 뒤 그는 신용협동조합에서 빌려서 트럭도 구매했고 2009년 1월에는 주택모기지 대출을 신용협동조합으로 갈아탔다. 그는 신용협동조합에서 받는 4.25%대출 조건과 유사한  대출을 해줄 수 있는 다른 금융기관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금융기관들과 마찬가로 신용협동조합이 신용위축을 해소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신용협동조합은 안정성을 유지해주고 있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다른 은행들처럼 정부지원으로 겨우 지탱되는 그런 상태는 아니다. (다만, 소규모 ‘소매’ 신용협동조합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는 28개의 ‘대규모 도매’ 협동조합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 계획은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올해에 단 2개 정도의 소매 신용협동조합이 문을 닫았을 뿐이다. 전국신용협동조합감독청(National Credit Union Administration, NCUA)에 따르면, 2008년에 청산되었던 15개 신용협동조합 가운데에서 9개는 부동산 문제 때문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신용협동조합 업계는 견고합니다.”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을 분석하는 기업 바우어파이낸셜(BauerFinancial)의 대표인 도어웨이(Karen Dorway)의 말이다.  

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로부터 예금을 받아서 다시 조합원들에게 대출해주는 단순한 사업모델을 고수함으로써 금융계의 대 혼란을 피해갈 수 있었다. “신용협동조합은 업무기준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5년 전에 대출을 받았다면 지금도 비슷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의 신용협동조합의 업계분석가인 펜라드(Daniel Penrod) 의 말이다.

신용협동조합의 신용대출 신장률은 견고했다. 특히 제 1 모기지 대출(first mortgages)과 중고차 대출이 그렇다. 신용협동조합 전국협회 선임 이코노미스트 센크(Mike Schenk)에 따르면, 2007년 대출 신장률 2%보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 7%로 더 많은 대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게임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림1] 미국 신용협동조합의 유형별 대출 규모추이

그러나 신용협동조합이 경제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주택거품이 심했던 네바다,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플로리다 등지에서 신용협동조합의 대출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협동조합은 아직 대부분 은행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어려움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전국적으로 2009년 1월 기준 신용협동조합의 연체율은 1.45%인데 이는 2006년 연체율 0.68%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동시에 은행들의 연체율 2.93%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 원문 보러가기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12.04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사회적 경제가 오고 있다

최근 ‘사회적 경제’라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시민단체나 재야경제학자들의 입을 통해 간간히 듣긴 했지만, 근래엔 서울시 시장도,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도 ‘사회적 경제’가 경제를 살릴 거라 말한다. 도대체 사회적 경제의 정체가 무엇일까?

우리사회에 사회적 경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사실 그리 최근이 아니다. 1997년 이후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적 질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논리가 확장되고 실업과 빈곤이 날로 심화되면서 대안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이 사회적 경제였다. 1990년대 초반 빈민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의 맹아라 할 소규모 노동자협동조합이 등장하기도 했고, 1996년에는 정부 차원에서 5개의 ‘자활지원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노동부에서 드디어 ‘사회적’이라는 말을 정책용어로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실행하면서였다. 이 사업은 수익성은 낮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사회적 일’로 정의하고, 사회적 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하는 것과 함께 그것을 취약계층의 일자리로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이후 더욱 속도를 내더니 2007년에는 사회적 기업법이 만들어졌고, 2010년에는 행정안전부 차원에서 마을기업 육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는 정부 중심의 극심한 실업상태 해소를 위한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도입된 측면이 크다. 물론 그 전에 활동하던 민간 부문들이 있었고, 지역별로는 원주와 같이 자체적인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구성한 곳도 있지만, 사회적 경제가 '사회적' 차원에서 자리를 잡았던 건 아니었다. 사회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중앙 정부는 사회 서비스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의무를 민간에게 떠넘기기 위해 서두른다는 지적도 있고, 정부 주도로 하다 보니 과도한 성과주의와 수익 위주로 운영되어 사회적 경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전과는 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2011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올해 12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부터 협동조합의 바람, 사회적 경제의 바람이 불고 있다. 1997년 이후 시작된 양극화가 10년이 넘도록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소위 효율성을 추구하던 시장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 스스로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시장경제, 정말일까?


사회적 경제를 '착한 경제'라고도 한다. ‘착한 경제’라는 말은 시선을 잡는 구석이 있다. 경제와 착한 것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경제는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시장경제라 부른다. 시장경제는 인간이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임을 전제한다. 이기심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며, 각 개인의 이기심이 채워질수록 사회 전체적으로도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진다고 평가된다. 착한 것이 낄 틈이 없다.

그런데 인간은 정말 이기적일까? 여기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다. 이제 A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눠가지도록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주고 싶은 만큼 제시할 수 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다. 단, B가 A의 제안을 거절하면 두 사람은 모두 한 푼도 갖지 못한다.

당신이 A라면 얼마를 제시하겠는가? 당신이 B라면 A가 얼마를 제시했을 때 제안을 수용하겠는가? 만약 시장경제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라면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 A는 1원을 제시하고, B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A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소한의 금액인 1원만 주는 게 이기적인 행위이다. B의 입장에서는 A의 제안을 거부해서 한 푼도 못받는 것보다는 1원이라도 받는 게 이익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들이 위 실험을 수도 없이 반복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대체로 A는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하고, B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만약 A가 욕심을 부려 2000원 이하의 금액을 제시하면, B는 이를 거절하고 차라리 한 푼도 받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 결과는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인간은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남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반발한다. 협력과 응징을 통해 남이 나에게 하는 만큼 나도 베푼다는 것이다. 가장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이를 상호적 인간이라 한다.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으며 상호적이라는 사실에서 경제는 착해질 수 있다. 이 ‘착한 경제’가 바로 사회적 경제다.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시장경제가 개인의 이기심을 전제로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경제는 개인의 상호성을 전제로 협력을 통해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보다 더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해왔다. 원시부족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식량 공유의 습관이 대표적이다. 시장경제는 19세기에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야 우리 곁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제라고 하면 시장경제가 전부이며, 경제활동은 당연히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인간에게는, 그리고 사회 속에는 이기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터지며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욕심과 경쟁을 강요하는 시장경제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학문적이고 정책적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곳은 프랑스였다. 1800년대 후반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대규모 도시노동자가 양산되었고, 이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의 집단 대응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경제사상가 샤를 지드(Charels Gide)는 ‘시장경제를 더 사회적이고, 공평한 체제로 전환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제시했다. 이런 실용주의적 입장과 함께 생시몽(Saint Simon)이나 푸리에(Fourier)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사회, 경제적 목적을 지닌 협동조합을 정치적 도구로 삼아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01년에는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이 프랑스에서 법적 인정을 받았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기침체와 실업으로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위기에 처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가 유럽 전체에 퍼져나갔다. 시장과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개인들의 자발적 공동체가 나서게 된 것이다. 1989년에는 유럽위원회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사회적 경제의 정의와 범위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공통적으로 시장과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며, 자발적이고 민주적이며, 전체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지향하는 경제라는 점을 포함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경제 안에는 어떤 기구들이 포함될까? 대체로 경제적 목적(수익 창출)과 사회적 목적(구성원이 합의하는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구로서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포함된다. 나라에 따라 경제적 목적은 전혀 추구하지 않은 채 사회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자선단체나 비영리 단체까지도 사회적 경제 안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의 대표 주체이다. 협동조합의 기본은 모든 조합원이 출자금을 지출한다는데 있다. 이는 노동이 자본을 고용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일반적인 기업은 사장님이 자기 돈으로 회사를 차리고 직원을 고용한다.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반대다. 이 차이가 협동조합을 착한 기업, 올바른 기업으로 만들어 준다. 일반 기업에서는 고용주인 자본이 거두는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때로는 노동자를 해고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협동조합에서는 노동, 다시 말해 조합원이 고용주가 되고 이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수익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공동체 의식, 지역사회에의 기여도 추구하게 된다. 일반기업보다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이다. 주식회사가 1주 1표의 원리로 돌아간다면, 협동조합은 1인 1표의 원리로 돌아간다는 차이점도 여기서 나온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협동조합회사법인(Mondragon Cooperative Corporation, 이하 몬드라곤)은 끊임없이 일자리를 창출하며, 해고가 없기로 유명하다. 1956년 5명의 노동자들이 협동조합형태로 만든 난로공장에서 시작한 몬드라곤은 2010년 기준 스페인 7위의 기업이 되었다. 금융, 제조, 유통, 교육 부문에서 260여 개의 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8만 4천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8만 4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두 1인 1표를 행사하는 조합원으로 몬드라곤의 이사회를 선출하고 사업을 결정한다.

몬드라곤은 초기부터 바스크 지방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그 방안으로 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었다. 기술학교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치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한 창업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이를 꼼꼼히 검토하여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노동인민금고에서 자금을 지원해준다. 경영진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 제공된다. 노동자들에게는 자체 사회보험이 제공된다. 만약 한 기업이 망하거나 어려워져서 실직자가 생기면 다른 기업으로 이직된다. 이 모든 일이 몬드라곤이라는 거대한 협동조합 안에서 일어난다.

몬드라곤은 겉모습만 보기에는 마치 재벌기업 같다.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삼성과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합원이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 특히 해고 없는 직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삼성의 목적은 수익 증가와 주가 상승, 그리고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의 무난한 3세 승계일 것이다. 두 기업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조합원이 주인이냐, 주주가 주인이냐의 차이다.

착한 경제, 상상하는 만큼 가능하다


우리사회 시민들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올해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고,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에는 사회적 경제라는 기둥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을 개혁하고 규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까지 재벌이 차지해왔던 자리를 새로운 경제주체가 메워주어야 한다.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대안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가 그것을 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벌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 시장을 중소상인과 중소기업에 돌려주는 경제민주화 역시 협동조합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골목까지 들어오는 재벌들의 빵집이나 대형마트에 대항하기 위해 동네 슈퍼 협동조합이나 동네 빵집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복지국가 건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시장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복지를 수익성만 추구하는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정부의 복지체계를 지역 구석구석까지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조직은 지역에 뿌리박은 민간 조직이면서, 수익성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마지막 의료서비스 전달(1차 진료)을 의료생협이 맡는 것이다. 지역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국가의 관료조직을 타고 내려오는 의료서비스보다 지역 주민들이 만든 의료생협을 통한 의료서비스가 훨씬 더 적절하다.

꼭 이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우리 동네에서, 지금 나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협동조합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동네에 마을버스가 필요하다면 마을버스 협동조합을 만들자. 지역신문이 필요하다면 지역신문 협동조합을 만들자. 어린이집이나 대안학교를 만들 수도 있다.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가 많이 생길수록 우리사회 전반에 깔리는 운영원리 또한 경쟁이 아니라 협동으로 변화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의 권위자인 이탈리아 경제학자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상상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며, 때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세상은 바뀐다. 지금 당장 착한 경제를 상상해보자.


* 이 글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격월간 잡지 '민들레' (http://www.mindle.org)에 실린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9.19정태인/새사연 원장

 

2009년 2월, 유럽의회는 89%의 찬성으로 ‘사회적 경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은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모델을 요구”하는데 “사회적 경제는 산업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실제 성과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협동조합이 곧 경제민주주의라는 얘기다.

한국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 됐다. 박근혜 후보마저도 경제민주화와 재벌의 지배구조를 문제삼기에 이르렀고,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엉뚱하게도 장하준 교수와 나를 영입할 생각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새누리당 내에선 ‘헌법 119조의 김종인’과 ‘재벌 출신 이한구’의 설전이 벌어졌다. 결국 박 후보가 “김종인과 이한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최종 심판을 내렸는데도 김종인이 “동의할 수 없다”고 감히 반발하는 등 말 그대로 코미디 시리즈가 연출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시민들의 저력이다. 유권자들의 요구가 바야흐로 재벌-경제관료-보수언론 3자 동맹을 뒤흔들고 있다. 2010년부터 시민들은 보편복지,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이라고 차례로 선언했고, 지금 전국 각지에서는 협동조합 열풍이 일고 있다.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세계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급증한 바 있다. 그러면 협동조합은 왜 위기에 강한 것일까? <주간경향>의 독자들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사회적 경제라는 범주 자체가 사회적 딜레마 해결의 오랜 지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한다거나 품앗이로 모내기를 한다든가, 스스로 강물이나 공동 숲을 관리하는 규칙을 만들고 지켜온 것이 모두 사회적 경제에 속한다.

자본주의 단계의 사회적 경제인 협동조합은 주기적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특히 이 연재에서 여러 번 언급한 몬드라곤(스페인)과 에밀리아 로마냐(이탈리아)는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서 과연 온전할까?

양쪽 모두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 안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지극히 평온하다. 이 곳 협동조합 네트워크에는 실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몬드라곤은 2009년 600명의 노동자를 재배치했고 2000명은 신축 근로에 동의했다. 모든 부문이 똑같은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나은 부문에서 더 어려운 단위 조합의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전직에 필요한 교육훈련도 협동조합 네트워크 내부에서 이뤄진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가(Lega·협동조합 총연합)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데, 이 지역 인구가 440만명인 점을 생각해보면 핀란드나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에서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전략적 방침도 조합원 총회에서 1인 1표로 결정한다. 바로 신뢰와 협동의 힘이다.

또한 각 지역의 금융기관, 예컨대 몬드라곤의 ‘노동금고(Caja Laboral)’나 에밀리아 로마냐의 ‘조합기금(Coopfond)’ 등은 어려운 조합에 추가 대출을 해준다. 즉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여느 은행과 달리 이들은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제 막 ‘협동조합을 꿈꾸는 그대’들에겐 꿈 같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협동조합의 광범한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곳에서나 가능한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개별 협동조합이라도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여서 고용을 유지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관찰된다. 서로 신뢰하기만 한다면 다 같이 살아갈 방법은 언제나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협동조합은 지배적 범주가 되지 못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상황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더 많은 단기적 이익을 약속하는 자본주의 기업을 선택해 왔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유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고 자체의 금융기관이나 교육기관을 갖춘 곳에서는 따뜻한 공동체적 경제가 지배적이다. 각 지역이, 나아가서 한국 전체가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어느 후보가 사회적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렇게 저렇게 다 해주겠다’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네트워크를 건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겠다고 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대선이다.

이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