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게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1953년 GM 최고경영자였던 찰리 윌슨이 국방장관 임명 청문회에서, 기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행정부에 입성하는 것을 두고 반대에 직면하자 말했던 너무도 유명한 얘기다.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당시에 미국경제에서 GM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할 법도 하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GM의 파산과 국유화를 겪은 후로는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60년 전의 GM처럼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삼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해 쟁쟁한 일본기업들을 연이어 따돌리고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면서 애플과 세계시장을 놓고 겨루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가 만년 중하위 그룹의 자동차기업 이미지를 벗고 세계 5위로 도약해 품질경쟁력 등을 개선하면서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삼성과 현대차에 좋으면 우리 국민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 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글로벌 생산체제의 구축이 가속화하면서 유력 대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국민경제와 국민이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 성장→고용 확대→소득 증대→구매력 증가→수요 확대→생산 확대'라는 사이클이 한 국민경제 안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2007~2011년 경제위기 기간에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선방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그랬다.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1억대 가까이 팔려 나간 삼성의 스마트폰 10대 중 1대 정도만 삼성 구미공장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만든 것일 뿐이다. 나머지 9대는 중국·베트남·브라질·인도에 있는 삼성공장에서 해당 나라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삼성을 포함해 엘지·팬택 등 휴대폰 산업이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전인 2007년만 하더라도 휴대폰의 해외생산이 35.9%밖에 안 됐는데, 2011년 기준으로는 거의 80%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스마트폰이 선전했다고 박수쳤지만 그 대부분은 해외에 공장을 지어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대박을 낸다 한들 삼성 구미공장 생산노동자는 1만명 내외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체 휴대폰 관련 일자리도 2000년대 중반 이후 4만명 선에서 거의 고정돼 있다.

현대차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2007년 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170만대였고, 2011년에는 190만대로 20만대가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해외생산은 90만대에서 220만대로 무려 130만대나 증가했다. 중국·미국·인도·터키·러시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0년에 이르러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의 국내생산과 해외생산 비중이 역전됐다.

삼성과 현대차 등 자본의 세계화는 국내 일자리 감소를 넘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 줬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생산기지를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자국으로의 생산기지 유치를 위해 임금을 낮추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또는 자국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임금상승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런데 글로벌경제 전체로 보면 글로벌 총수요를 줄여 고용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와 국가 사이의 경제적 협력(Thomas Palley(2011))


 

‘나’ 국가

임금 인상(협력)

임금 삭감(배반)

‘가’ 국가

임금 인상(협력)

5, 5

-10, 10

임금 삭감(배반)

10, -10

-5, -5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임금상승을 기대하면서 자국의 임금은 삭감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모두가 임금을 삭각하게 되고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려면 모든 국가들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 간 정책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점점 더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국내 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를 걱정하느라 임금인상을 압박할 수도 없다. 결국 각 국가의 내수구매력과 글로벌 총수요를 약화시킬 것이지만 지금 세계는 수출경쟁과 통화가치 하락경쟁에 몰두하는 중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협력과 해법은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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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디플레이션의 늪을 헤매고 있는 일본경제의 물가가 2% 올라갈 때까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한 아베 신조가 가세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세계 자본주의 선진국 진영이 모두 강도 높은 통화 완화정책에 경제회생의 명줄을 걸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세 번째 양적완화를 시작했으며 최근 그 강도를 높인 바 있다. 양적완화에 미온적이던 유럽중앙은행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무제한 양적완화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양적완화는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8년부터 미국의 선도로 시작됐다. 선진국들은 급전직하 추락하는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다른 쪽에서는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재정적자 폭이 커지고 재정지출 여력에 한계를 보이게 되자, 점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의존도가 커지게 됐고 그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선진국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에 몰입하게 된 것은 세계경제가 비상적인 조치들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는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전혀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적완화는 과연 기대한 경기회복 효과를 만들어 내기는 하는 것일까. 최근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 내부에서조차 그 효과를 의문시하는 견해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가 회의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증권시장이 바닥이었던 1·2차 양적완화 시기와 달리 지금은 주식시장이 상당히 올라와 있기 때문에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통화정책이 실물로 전달되는 채널들인 채권시장·신용시장·통화시장, 그리고 주식시장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양적완화는 재정지출 정책과 함께 사용돼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재정긴축을 하면서 양적완화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양적완화 정책이 실물경제에 자금공급을 확대시켜 투자 활성화와 고용증대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해 자국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인 가운데 정작 신흥국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충격을 받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특히 미국의 달러공급 팽창은 달러 가치의 하락과 신흥국 통화가치의 팽창을 초래해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달러가치 하락은 석유와 원자재 등 국제상품의 가격상승을 동반한다. 양적완화가 부자들에게는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주지만, 상품가격 상승 부담으로 인해 빈곤층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결국 소득격차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정적으로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자국 실물경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그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자산가격 거품을 촉진시키게 된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통화절상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와 함께 외국자본 유입으로 인한 자본시장 변동성 증대, 추가적인 통화가치 절상압력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본시장 자유화를 옹호해 왔던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양적완화 정책이 의도하는 것은 각국의 수요촉진을 통한 국내수요 견인보다는 환율상승을 통한 국제시장에서의 상대적인 경쟁력 확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양적완화정책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2013.1)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 첫째는 자본 유출입 통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정책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본시장 개방의 전도사 역할을 한 국제통화기금(IMF)도 자본통제와 관련해 “분명한 대상에 대해, 투명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일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자본 이동 자유화가 항상 모든 국가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며 자본통제를 인정했다.

국내에서도 최종구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토빈세가 지향하는 단기 해외투기자본 규제 취지를 살려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한 외환거래과세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새 정부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의식이다.

둘째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가 환율전쟁과 수출경쟁으로 변질될 것이 명확한 만큼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개혁해 내수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수기반 확대의 핵심은 가계소득 성장에 의한 민간구매력 확장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기관들이 연이어 높은 기업소득 성장에 비해 정체된 가계소득 현황을 분석하면서 가계소득 성장정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취지와 맥락이 닿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경제민주화도 가계소득 성장을 통한 민간소비 활성화를 목표로 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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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신자유주의는 사적 재산권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해 극단적인 재산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다. 기업의 소유자를 주주로 한정하고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은 기업 지분의 소유자인 주주의 이익에 맞추고자 했다. 통상 이를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고 불렀다. 주주들의 재산은 주가로 표현됐다.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고 장기적으로 어떤 전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앞서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오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기업이 평가될 정도였다.

‘잔여 청구권’이라고 하는 그럴듯한 이론적 명분을 업고, 기업은 오직 지분을 소유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므로 당연히 기업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업이라는 존재 안에 파묻히게 된다. 주주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의 비용은 최소화돼야 했다. 그리고 노동자는 최소화시켜야 할 비용의 하나에 불과했다. 이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비용 최소화에 저항하려는 노동자의 모든 권리는 철폐됐다. 노동자에게 신자유주의 규제철폐는 노동권 자체의 철폐였던 것이다.

이처럼 노동권을 철폐하고 최상의 지위를 누리게 된 신자유주의 소유권과 재산권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또 다른 권리인 주거권 역시 희생시키게 된다.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가치보다는 기업의 재산청구권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주택에 대해서도 ‘주거’라고 하는 본래의 사용가치를 종종 무시하고 ‘자산가치’만을 중시하게 된다. 살기(Living) 위해서가 아니라 자산을 불리기 위해 사는(buying) 것이 주택이 됐다.

주가가 끝없이 올라 줘야 하는 것처럼 주택가격도 끝없이 올라야 했다. 주택이 끊임없이 스스로 가치가 불어나는 자산이 되면서 한 번도 살지 않은 주택을 구매하고 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전체 가구의 8%에 달하는 140만 다주택 가구들은 그렇게 형성됐다. 심지어는 부동산 펀드를 통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집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입했다가 또 매도하는 일까지 흔하게 벌어졌다. 이런 주택거래를 방해하는 모든 규제들은 역시 철폐돼야 했다. 세금도 낮아져야 했고 거래제한도 완화돼야 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어야 할 주택을 가지고 이처럼 거대한 자산시장이 형성되고 자산증식을 위한 매매거래가 복잡하게 진행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더욱이 이러한 시장의 규모를 끝없이 키우기 위해 금융시장의 막대한 자금까지 동원한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다름 아닌 주택가격의 급등과 거품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99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까지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은 평균 2.5배 이상 폭등했다. 그리고 주지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 거품이 붕괴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한국은 급격한 거품붕괴 수준은 아니지만 2008년 이후 수도권 주택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투자한 자산이 하릴없이 줄어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자 재산권을 가진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자산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를 압박해 세금·금융·건축 등에 남아 있는 규제를 풀어 왔고, 지금도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오직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물론 국민에게는 실수요자의 거래 활성화나 경기회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을까. 지난 10여년 동안 주택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서울시민들은 8~10년 정도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소득 대비 집값 격차가 커졌다.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는 주택이라는 자산구입은 진작에 포기한 꿈이 됐다. 턱없는 소득에도 불구하고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아 주택소유자가 된 서민과 중산층 일부 가정들은 지금 ‘하우스푸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자산가치 증식을 위한 주택 소유자들의 무모한 질주로 인해 집 없는 45% 국민의 주거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무리하게 빚을 얻어 집을 소유한 10% 정도의 하우스푸어에게도 주거권은 은행에 빼앗길 처지 직전에 와 있게 됐다.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주택가격이 소득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더 내려야 하건만, 주택소유자들의 가격상승 요구에 아직도 밀리고 있는 중이다.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정부는 부동산 경기부양 이전에 공공임대주택 등의 정책에 집중해야 하지만, 아직 5% 남짓에 그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무제한으로 풀린 재산권이 노동권뿐만 아니라 주거권까지 국민에게서 빼앗아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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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우리 국민경제에서 가계부채가 문제라고 하던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년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가계부채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해 봄 주택건설과 연동한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이 터지면서 국지적으로 충격이 가해진 것이 전부다. 가계부채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경제위험이 커진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가계부채 위험성 수치가 점점 더 높아지는데도 일종의 면역효과가 생겨서 “위험한 수준이 한두 해 지속된 것도 아닌데,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하는 안이한 발상까지 자라나고 있다.

정부가 한몫을 했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가계부채의 양적규모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1천조원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물론 경제규모가 커지면 소득규모나 자산규모도 커지기 때문에 그만큼 부채의 절대규모가 커지는 것 자체가 위험도를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민경제가 성장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뛰어넘어 가계 빚이 늘어나고 있다면 확실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개인부문 금융부채 기준으로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1천100조원은 91년 말 111조원에 비해 10배가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가계의 소득은 4.3배 증가에 그쳤고, 국민총생산도 5.3배 증가에 머물렀다. 가계부채가 성장률이나 소득증가율에 비해 최소 두 배 이상 빠르게 늘어났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결과 우리나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4.1%보다 더 높은 154%였고, GDP 대비 가계부채도 OECD 평균 77%보다 10% 이상 높은 87.4%였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89%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번에 무디스에서 국가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면서도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을 다시 지목할 정도로 타국에 비해 악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대부분 국가들에서 가계부채 축소과정이 진행됐음에도 유독 한국만이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위험성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9~2001년 연평균 24%라는 기록적인 부채 증가율을 보였다. 2005년~2007년에 기록한 10.7%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2008년~2010년에도 8%의 부채 증가율을 기록한 바 있다. 우리 가계의 소득증가율·성장률을 압도하는 부채 증가율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가계부채 70조~80조원이 금융위기 시기에도 늘어난 셈이다. 그 결과 2007년 800조원이던 가계부채가 이명박 정부 집권 4년 동안 1천100조원으로 약 300조원이 증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오면서 주목할 만한 새로운 변화조짐이 발견된다.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올해 1분기에 가계 신용기준 부채의 절대규모가 줄어들었던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전 분기 대비 판매신용의 축소(현실적인 소비축소)가 1조원 발생한 것이고 가계대출 자체는 4천억원이 늘었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대출은 2조7천억원 줄었는데 이는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처음이다. 가계신용 기준이 아니라 자금순환표상의 개인 금융부채 기준으로도 3조4천억원 증가했는데 이 역시 2009년 1분기 2천억원 증가 이후 최소 증가다.

물론 다시 2분기가 되면서 가계부채가 4조8천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에 성급한 판단을 할 일은 아니다. 한 가지 짚어 둘 것은 가계부채를 전 분기가 아니라 전년 동기 대비로 재확인해 보면, 2분기 가계신용 증가율 5.6%는 오히려 1분기 증가율 7%보다 낮은 것이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일단 올해 들어 가계부채의 팽창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당히 유력한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왜 새로운 조짐이 보이고 있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위험천만하게 질주하던 가계부채가 드디어 줄어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과정이 가계의 소득과 재무 건전화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걱정이다. 한마디로 부채를 뛰어넘어 소득이 늘어나고 가계생활이 유지되는 가운데 부채상환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이 오르지 않는 가운데 더 이상 빚을 낼 수 있는 여력도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앞으로의 경기전망이 상당히 비관적으로 바뀌고 경기침체가 확실시 되면서 대출을 해 주는 금융기관이나 빌리는 가계나 모두 위험신호를 느끼면서 대출을 줄이고 있다.

더욱이 가계부채와 직접적으로 연동된 부동산가격 하락세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담보가치 하락으로 인해 담보 여력이 소진될 뿐 아니라 대출에 대한 부분 상환압력 조짐이 발생하고, 심지어 연체와 압류 위험까지 진행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 무려 90곳 이상에서 분쟁이 되고 있는 집단대출이 단적인 예다. 가계부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시점까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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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의미 있는 이슈페이퍼를 발표했다. ‘자본 자유화 이후 한국의 자본이동 행태’라는 제목 그대로 자본시장 개방 이후 국내외의 자본 유출입 특징을 진단한 글이다. 한국은행이 금융 관련 진단을 한 것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심하고, 특히 경제위기시에 증폭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정한 정책적 제어장치(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여타 신흥국에 비해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입자본의 구성상 우리나라는 수시유출입성 자본의 비중이 2000년대의 경우 83%에 달해 신흥국 평균인 49%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수시유출입성 자본 유입속도가 신흥국 평균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차입이나 채권투자의 경우 유입자본의 지속성이 짧은 점이, 그리고 주식투자의 경우에는 유출입 규모가 큰 것이 변동성을 높이는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자본시장은 실물경기 변동에 따라 변동을 증폭시키는 속성이 있다는 점도 덧붙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수시유출입성 자본의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유입속도도 신흥국 평균보다 빠르므로 이러한 변동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건전성 정책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정책수단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히 의미 있는 결론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본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자본시장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낙후한 발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유럽이 긴축일변도의 정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금 위기에 빠지려는 조짐이 확연하다. 중국을 포함해 브릭스(BRICs)의 실물경제 회복력이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환기시키고 정책적 방안의 필요성을 한국은행이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권인 듯싶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수 확보로 4·11 총선이 끝나고 대선을 불과 7개월 정도 남겨 두고 있다.

사실 이번 총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총선이었고 12월의 대선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아시아 금융허브’,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금융산업 육성’, ‘글로벌 메가뱅크 육성’ 등을 내걸었던 한국에서도 당연히 금융규제와 금융산업의 재구성에 대해 상당한 문제제기가 던져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이 선거공약에 수렴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원래 정책경쟁 자체가 부실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금융규제와 금융개혁’ 관련 내용은 더욱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불과 몇 년 전에 세계경제를 뒤흔들었고 지난해에는 유럽 채권시장이 흔들리면서 재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게다가 여당인 새누리당은 주요 10대 공약 안에 금융개혁에 관한 항목이 아예 없다. 다만 일자리 창출 관련 재원조달 항목에서 파생상품시장의 거래세 신설 등 일부 조항이 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각 당들이 금융거래 과세, 가계부채 경감을 위한 이자율 제한이나 채무자 보호,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제한, 그리고 은행 공공성 회복까지를 포함한 주요 의제들을 다루고는 있다. 하지만 그 중요도나 구체성, 그리고 전략적 개혁방향 등은 매우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확인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파급력, 세계가 금융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현실 등이 국내적으로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7개월 뒤 대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이라도 금융부문에 대해 더욱 전진된 개혁방안이 검토되고 토론돼야 할 필요가 절박하다. 당면한 시점에서 금융개혁은 첫째,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한 금융 불안정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은행을 중심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사적 금융회사가 된 금융산업에 대한 재편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소비자와 서민의 입장에서 금융상품 피해를 막고 건전한 금융 접근성을 확보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가운데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한 대책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위 한국은행 보고서가 말해 주고 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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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