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등 노동자와 서민들의 절망이 절벽 앞에 서게 됐다. 그런데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100% 국민행복 시대와 중산층 70%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당선자조차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노동자들은 아예 ‘장외 국민’이라는 말일까.

끝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대선 투표에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모든 유권자 국민에게 배포된 박근혜 후보의 공약 홍보자료에는 ‘70% 중산층 재건을 위한 10대 공약’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여섯 번째 공약이 바로 ‘고용불안으로부터 일자리 지키기’다. 거기에는 분명 정년 60세 연장 등과 함께 ‘해고요건 강화’ 등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 사회적 대타협 기구 구성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부당해고된 한진중공업 노동자에게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공약 내용이다.

또한 박근혜 당선자의 일자리 공약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상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포함하는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는 내용도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렇게 공약 내용이 국민 기억에 생생한데도 당선되자 휴지 조각처럼 무시하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지난 후라면 어떨까. 애초에 노동과 관련해 약속한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그나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고 강조해 온 박근혜 당선자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아니면 유독 서민·노동자에게 한 약속만 무시되는 것인가.

우리와 삶을 함께해 온 노동자들이 하나 둘씩 삶의 기대를 접는 올 겨울은 그래서 유난히 춥다. 도대체 기업에서 노동자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노동자 유권자는 어떤 존재일까. 진보에서는 ‘노동 존중’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노동만을 존중할 필요 없이 헌법에 보장된 인권과 노동권·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인정해 주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조차 기득권층에게는 그렇게 과도하게 보이는가.

여기서 잠시 마저리 캘리(Marjory Kelly)가 10년 전에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쓴 책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 of Capital)>의 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과연 일하는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노동자들이 기업가로부터 흔히 듣는 얘기가 있다. “종업원은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적어도 기업 회계장부에서 보면 거짓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리해고는 불요불급한 지출요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대량 파괴로 묘사돼야 할 것이 아닌가. 종업원이라는 자산의 대량파괴를 일삼는 정리해고를 하는 기업들은 거의 자살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한진중공업 기업가도 말로는 종업원을 가장 큰 회사의 자산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쌍용차를 포함해 정리해고를 일삼았던 적지 않은 기업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마저리 캘리는 냉정하게 우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기업 회계상으로 종업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도 가치가 있고, 물건도 가치가 있으며, 아이디어(지적재산권)도 가치가 있고, 심지어 영업권처럼 뜬구름 잡는 것들도 가치가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종업원들의 가치는 마이너스다. 그들은 손익계산서상의 비용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비용과 관련되는 목표는 언제나 단 한 가지, ‘절감’뿐이다.”(마저리 캘리,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64쪽)

한편 저자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과 정반대되는 사회를 상상하도록 해 준다. “노동법에 최고의 법적가치를 부여하면서, 주주의 소유권을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 놓는 자유시장을 머릿속에 그려 보라. 이는 모든 사람들이 ‘종업원들이 곧 기업’이라고 믿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종업원들은 기업이라는 곳을 움직이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므로 종업원들만이 이사를 선출할 수 있고, 기업의 목적은 종업원들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이론적으로 주주들은 협상과 계약을 통해 정해진 수익을 갖지만 실제로는 주주들은 계약조건을 수용하든가 그게 싫으면 그 기업을 떠날 수밖에 없다. (…) 신문지상에서 어떤 기업이 잘나간다고 할 때에는 곧 종업원이 잘나가는다는 것을 뜻한다. 주주들은 매년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부는 ‘자본해고’에 따라 수입이 종료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주주의 수익이 아니라 종업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최고 목표가 되는 그런 기업이 있는 사회, 그런 기업을 만드는 사회, 그것을 정치의 목적으로 하는 지도자를 꿈꾸고 그런 희망의 싹을 살리면서 다시 새해를 준비해 보자.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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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친기업 정부를 내걸고 등장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국경제가 가르쳐 준 교훈은 바로 “기업에 대한 자율규제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2012년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던 배경이기도 하다. 금융시장과 독과점 시장이 특히 그렇다. 규제 풀린 금융시장은 대개 투기와 거품으로 치달으면서 경제 전체를 거대한 시스템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생생하게 보여 줬다. 광범한 금융규제 논의가 다시 촉발된 이유다.

마찬가지로 규제체제가 사라진 독과점 시장은 대기업의 전횡과 이익의 편취,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뿐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없다. 재벌체제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정부가 기업규제와 시장규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경제민주화 여론이 형성된 배경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연말이 가까워오고 대선이 임박하면서 경제민주화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거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가 횡행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벌 대기업 규제의 칼날은 이미 무뎌졌으며, 그만큼 노동자와 상인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확대 법안들은 벌써 가로막히고 있다. (대)기업을 규제하고 기업의 핵심 구성원인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인가. ‘노동자와 사람이 먼저’이고 ‘기업은 사람들이 창조하고 통제하는 인위적 공동체’라는 기본적인 상식의 실현은 다시 먼 미래로 연기될 것인가.

지난달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 롬니 후보가 선거 기간 중에 “기업도 사람이다(Incorporations are people)”는 주장을 해 논쟁이 됐던 사례를 상기하게 된다. 로스쿨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교수는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면서 롬니의 주장에 이렇게 반박했다. “사람은 심장이 있고 아이가 있고 일을 하며, 아파하고 슬퍼하며 춤을 춘다. 사람은 살고 사랑하며 죽는다. 이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기업을 위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들이 왜 새삼 논쟁이 됐을까. 기업이 사람이라는 롬니의 주장은 단순히 기업이 영리 '법인(法人)'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본래 기업은 인간이 국가의 승인 아래 경제활동의 필요로 창조한 공동체다. 당연히 사람에 의해 조직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치 독립된 실존을 가진 자연인처럼 기업을 대해야 한다면서, 기업의 자유활동을 규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에 대해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을 부여하게 된다. 이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 ‘자유 시장’, ‘자유 무역’ 등이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신성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기업도 사람이다’라는 개념이 굳어지면 기업에 대한 규제나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통한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기업이 먼저’라는 완고한 주장이 버티고 있다. ‘노동자가 살기 위해 기업도 있다’는 논리가 아니라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있다’는 논리가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와 상인을 살리기 위한 기업규제는 수그러들고, 경제 살리기는 곧 기업 풀어주기로 통하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 아닌가. 나아가 기업이 사람이라는 논리는 곧 기업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강변되는 주주, 특히 대주주의 재산권과 자유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부자의 권리와 자유이고 여기에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10년 전에 출판된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 of Capital)’라는 책에서 마저리 켈리(Marjorie Kelly)는 기업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라고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므로 기업을 아우르는 더 큰 공동체가 그렇듯이 기업 또한 최선의 민주적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그는 또한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당연한 ‘민주적 상식’이 아닐까.

나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25년 전인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쟁취한 후 6번째 선거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공간을 넘어 경제공동체인 기업 내에서는 약간의 주식을 매입해 소액주주가 되는 것 말고는 어떤 민주적 권리도 가져 본 적이 없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대선의 구호조차 되지 못한다. 하물며 “기업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라는 주장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라는 지렛대가 있어야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조금이라도 더 경제민주화의 의지가 있는 후보를 뽑아야 경제민주화를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기업보다 사람이 먼저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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