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3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아베노믹스, 엔저현상 지속될 전망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이 무제한적(open-ended)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한 이후,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엔화는 지난 해 1078엔 대에서 현재 94엔을 넘어서 20% 가량 평가절하 되었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은 1160원까지 떨어져 원화가치는 엔화에 비해 25% 정도 평가절상 되었다 

이번 주 개최되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의 엔저 정책에 대해서 독일 등 유럽을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지겠지만, 정치적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 해 9월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이 각각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실시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한 물가안정목표치 상향(2%) 또한 통상적인 통화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나무랄 수도 없다. 따라서 유럽발 재정위기가 재발되지 않는 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엔화 약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엔화 약세는 긴축정책을 지속하면서 오직 수출증대에만 목을 매고 있는 유로지역의 경기회복에도 타격이지만,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과도한 수출의존의 우리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지난 해 4분기 국내 상장기업의 실적 쇼크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자본유출입 규제 강화하고 과도한 수출의존 성장전략 수정할 때 

한편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환건전성 부담금과 선물환 포지션 등 일련의 자본유출입 규제가 실시되었다. 그동안 국제적인 자본자유화를 설파했던 IMF도 최근 집행이사회에서 승인된 보고서를 통해 신흥국의 자본유출입 규제를 전향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급격한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대외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자본유출입 규제를 더욱 강화할 시점이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외환투기의 온상인 역외선물환(NDF) 시장에 대한 규제가 조속히 실시되어야 한다.

특히 파생상품과 외환거래에 적용되는 금융거래세는 거래비용 증가로 과도한 투기를 억제하고 생산적 투자활동으로 자원을 이전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자산 가격 및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고, 경제적 불확실성 해소로 금융 및 재정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주 낮은 세율에도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재정수입을 올려 복지지출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취임을 앞둔 박근혜 정부는 금융 및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로드맵을 향후 제출할 국정운영 청사진에 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부자 및 재벌증세에는 입을 닫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지출 재원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금융거래세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중심 성장전략 또한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주기적인 외환시장 불안은 원화 약세로 오히려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은 강화된다. 그러나 원화의 지나친 평가절상은 수출경쟁력 약화로 과도한 수출의존 경제체제에서 불가피하게 성장률 하락과 경기침체를 수반하게 된다 

즉 한국경제의 외환시장 불안은 수출대기업과 외환시장 투기세력에게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국민경제에 긍정적 효과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외환시장 불안 해소와 수출의존 성장전략 탈피,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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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정태인/새사연 원장

 

이 칼럼이 마지막이라니, 문득 언제 연재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2011년 9월 20일,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글로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년 하고도 4개월여 동안 2주에 한 번 썼으니 35번쯤 연재했을까? 

이제는 많이 깎이고 무뎌졌지만, 술 마시면 어른들에게도 막말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에게 감히 반기를 들었던 모난 이미지가 ‘착한 경제학자’로 환골탈태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횡재에 가깝다.

내가 ‘착한 경제학’의 이름으로 현실을 들여다볼 때 내 현미경의 태반은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이었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주류경제학의 인간관에 반기를 들었다. 거슬러 올러가자면 197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요, 경제학자이자 인공지능 창시자, 한마디로 현대의 마지막 백과전서파라 할 수 있는 사이먼(Simon)의 ‘제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이를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가정과 달리 사람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모든 걸 계산한다기보다 주먹구구(heuristics)로 일을 처리한다는 주장이 제한합리성이다. 그러니 사이먼을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후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카네만을 거쳐 최근에는 가장 인기있는 분과로 떠올랐다. 카네만은 인간의 제한합리성이란 완전한 비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편향을 보인다는 점을 제시했다. 예컨대 그와 티버스키(Tversky)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이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과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피자를 시킬 때 토핑을 모두 올려놓은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빼는 방식과 자신이 원하는 토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주문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면 어느 쪽에 더 많은 토핑이 올라갈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추가하는 주문방식의 토핑이 2분의 1가량 적었다. 즉 어떤 상태를 사고의 출발점(준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있던 데서 줄어드는 것을 더 싫어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00원을 벌 때에 비해 잃었을 때 심리적 상실감이 더 크다. 이를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등으로 부른다. 

이렇게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결합하거나 인류학의 결과에 주목해서 사회 현실을 맨눈으로 설명하려 한다. 내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으로서의 협동이었고. ‘인간은 어떤 경우에 협동을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기서는 진화생물학과 활발한 교류가 벌어졌고 전에 소개한 노박의 ‘인간 진화의 5가지 규칙’은 그 중간 정리였다. 최근에 노박의 책, <초협력자>가 번역 출판되었는데 노박은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협동하는 종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해서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특히 나는 노박의 규칙 중에 집단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분석한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집단 경쟁에 의한 협동과 집단 정체성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유발하여 사회적 대립상태로 치닫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탐구는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노동자는 기업이라는 집단에 속해서 다른 기업과 경쟁하는 동시에 노동자 계급에 속해서 자본가와 경쟁(투쟁)하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보통 여러 집단에 동시에 속해 있으므로 한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여럿이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지도 흥미로운 주제이다.

또한 집단선택에서는 개인 수준의 선택과 집단 수준의 선택이라는 공진화(coevolution)가 일어나므로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집단에 변화가 올 수도 있고, 되먹임 효과를 통해 집단 전체의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해묵은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다. ‘착한 경제학’은 이런 흥미로운 얘기를 가득 품고 있다. 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안녕”이라는 인사를 드린다.

* <착한 경제학>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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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2 / 12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2013 세계의 시선(6) 소득 불평등에 대한 미국 보수의 반격?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그래프가 포함 된 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지난해 치른 두 차례의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핵심 의제로 오른 데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 또는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 사회 또한 1970년대 이후 중산층의 실질소득 정체와 1% 상위소득 집중 등 불평등 문제가 지난 몇 년간 주요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었다. 그런데, 최근 우파 대변지인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소득이 아닌 소비 데이터를 활용하여, 불평등 이슈가 좌파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제기된 ‘신화’라고 반격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가계가 가처분소득에서 필수 소비재에 지출하는 비중이 1950년 53%에서 1970년 44%, 그리고 오늘날 32%로 감소했다. 또한 과거에 비해서 기대수명이 증가했고, 인종 간 기대수명의 차이 또한 감소했다. 즉 불평등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거나, 설령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중산층의 소비능력 또는 삶의 질은 개선되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을 비롯한 미국의 리버럴 경제학자들은 필수재와 불평등의 개념, 데이터 집계 등 방법론적인 오류 등을 통해 반박하면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주 새사연 ‘세계의 시선’에서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좌우 경제학자들의 불평등에 관한 논쟁을 소개한다. 뉴욕 타임즈 오피니언에(“The Hidden Prosperity of the Poor”, 2013.01.30) 매주 칼럼을 기고하는 객원 칼럼니스트 토머스 에드솔(Thomas Edsall)이 논쟁의 주요 논지들을 잘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활용하여 우파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알기 쉽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옮긴이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우파 경제학들의 요지는 “조선시대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여행도 다니고 핸드폰도 사고 살기 좋아졌으니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해라.”

 

  

푸어의 숨겨진 번영
(The Hidden Prosperity of the Poor)

 2013년 1월 31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토마스 에드솔(Thomas Edsall)
 

‘푸어(the Poor)의 숨겨진 번영’이라고 하는 최근 우파가 유포하고 있는 개념은 불평등 확대에 관한 논쟁에서 보수적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적 우파는 소득불평등 확대가 사회구조와 미국경제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는 좌파들의 주장을 약화시키기 위해 최근 이 개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2월 6일 캔자스 주 오사와토미(Osawatomie) 고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좌파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현재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은 미국 사회의 핵심인 다음과 같은 희망(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이 거짓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도, 열심히만 일하면 중산층에 들 수 있다. 우리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여러 곳의 이민자들이 우리 국경을 넘어오는 이유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하류층과 중산층의 삶은 생각보다 낫다는 우파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비록 소득이 정체되거나 미미하게 늘어났다 하더라도, 소득에서 필수 소비재에 지출해야 하는 비중이 안정적이거나 감소하고 있으며, 재량적 소비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과거보다 그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었다 하더라도, 소비불평등(상·하위 계층이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하는 금액의 격차)은 상대적으로 거의 변함이 없다. 우파 경제학자 마크 페리(Mark Perry)는 타임지에 아래와 같이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소비자 상품, 재화, 서비스는 주로 경쟁시장에서 민간이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식음료, 외식, 주거, 의복, 가전, 가구, 생활용품, 카메라, GPS, 컴퓨터, 자동차, 오토바이, 스포츠용품, 핸드폰, 통신, 라식수술, 성형수술, 악기, 보석, 여행가방, 장난감, 책, 정보, 케이블 TV, 인터넷, 세차, 엔진 오일 등. 현재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일반물가수준과 평균소득수준에 비해서 점점 좋아지고 다양해지고 저렴해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평균 가계는 과거보다 소비재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평균적인 소비자가 시장이 공급하는 상품에 가장 많은 이득을 얻고 만족하고 있다.  

올해 1월23일, 페리(Perry)와 Boudreaux, 두 우파 경제학자들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정체된 중산층이라는 신화”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두 경제학자는 중·저소득 계층의 소득정체라는 “유명한 진보적 수사”는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한다.  

(상무부 산하) 경제 분석국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적 삶에 필요한 기본재(식료품, 자동차, 의복, 가구,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에 가계가 지출하는 비중이 1950년 53%에서 1970년 44%, 오늘날 32%까지 하락했다.

미국기업연구소 경제정책 연구 책임자인 하셋(Hassett)과 동료 매튜(Mathur)는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을 통해 민주당 정치인들을 다음과 같이 공격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확대에 관한 그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좌파의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성장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 돌아가지 않는다. 19세기 중반, 다양한 조류의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점점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점점 가난해진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성장의 열매는 초고소득 계층에 집중되고, 중·하위 계층의 생계수준은 정체되고, 부자와 그들 간의 격차는 점점 확대고 있다는 주장을 또 다시 듣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그와 같은 묘사는 잘못되었다. 

대신에, 그들은 좌파들이 틀린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통계국 소비지출 조사 데이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세전소득에 따라 가계를 분류하면, 2010년에 하위20%는 총 소비의 8.7%, 중위20%는 17.1%, 상위20%는 38.6%를 차지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감세와 세계화의 지속적 확대가 일어나기 전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치는 거의 변함이 없다. 각각 8.9%, 17.3%, 37.3%를 차지했다.  

소비이론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우파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이는 소득불평등 확대를 완화하기 위한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임시 현금보조, 의료급여, 식품 보조금 등)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적 분석은 열띤 반론을 끌어내고 있다. 내 동료인 크루그먼은 두 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 완전히 그릇된 결론”이라 비판하고, ‘Dow 36,000'의 저자인 하셋(Hassett)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망가질 명성조차 없다”며 혹평을 가했다. 실제,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우파의 소비이론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1년 2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소비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명의 경제학자들은 “소비불평등은 1980~2007년 기간 소득불평등을 밀접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말로 하면, 계층 간 지출 격차 확대는 소득 격차 확대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1980~2010년, 미국에서 소득, 소비, 그리고 여가 불평등”이라는 논문에서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소득불평등 증가는 상당한 정도로 소비불평등 증가를 따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불평등의 측정에 관한 극단적 이견은 거의 1세기 동안 지속되고 있는 공공정책 논쟁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Boudreaux는 다음과 같이 열정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과거 수십 년 동안 소득과 소비 불평등이 확대되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중·저소득 계층의 절대적인 경제후생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소비불평등이 실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지적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부유한 미국인들의 후생과 어떻게 비교하던지 상관없이, 3~40년 전보다 중산층 미국인의 경제적 삶은 더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반대로, MIT 경제학자인 오토(Autor)는 타임지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게재했다.

나는 특정 시점의 불평등 자체에 관해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부유한 가계와 그렇지 못한 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삶의 기회에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이 미국사회가 선진국 기준으로 경제적으로 유동적인 사회가 아닌, 점점 더 봉건왕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리사회의 실질적인 위험이다. 이미 196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와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 간 가계소득과 대학입학 간 간극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교육성과가 생애소득의 주요 예측치 이므로, 이는 출생 당시 환경과 생애소득 간 연계가 이전 세대보다 현 세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Autor)는 불평등이 긍정적 인센티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불평등이 과도하면 파괴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 민간 종교가 있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노동에 기초하여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능력중시 사회라는 신념일 것이다. 가계 자원의 불평등이 더욱 왜곡되면, 하류층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상류층에 올라갈 가능성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물론, 어떠한 환경에서도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위 명문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그들 대다수는 상류층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미국식 이상을, 불평등이 결국에는 가로막을 것이라는 도덕적 스탠스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불평등이 적당한 범위 내에 머물러 있으면 좋은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평등이 공정경쟁을 왜곡하고 상·하위 계층 간 아이들의 기회를 차별하여 기회의 평등을 감소시킨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코 원치 않는 거래가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오바마의 대통령이 재선함으로써 오토(Autor)의 주장이 Boudreaux에 승리했다.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였던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 확대가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불평등 확대는 경제침체의 원인이면서,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환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다수 시민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경제, 정치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기존 제도와 양식에 대한 정당성 또한 의문시 될 것이다.  

그러면 ‘푸어의 숨겨진 번영’ 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우파의 주장을 들었다면, 이제 좌파의 주장을 들어보자. 여기 좌파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가 제시하는 차트 세 개가 있다. 다른 선진국과 미국의 빈곤률을 비교하면 예쁘지가 않다. 아동 빈곤율에 포커스를 맞추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면 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빈곤을 줄이기 위한 미국정부의 투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수석경제학자이자 1기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바이든의 경제자문을 역임했던, 베른슈타인(Bernstein)은 소비불평등에 관한 우파의 주장에 정면으로 공격하며 아래와 같은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냈다. 2010년 노동부 통계국이 작성한 “연구목적”의 보고서를 그가 재가공하여 만들어낸 차트들을 보자. 그는 주요 소비자 비용이 소득증가율을 훨씬 앞서고 있음을 발견해 냈다.


실제, 소득이 줄고 물가가 상승하여, 하위 계층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12년 9월,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간한 소득과 빈곤에 관한 보고서는 좌파의 주장에 한층 신뢰를 더하고 있다. 2011년에 가계소득은 16년 만에 최저치인 50,054달러로 떨어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상·하위 계층 간 소득격차의 확대가 과거 40년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분배 충돌은 정치의 본질이며, 궁극적으로는 실제 누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 가에 관한 데이터 논쟁이다. 이는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세제와 지출 정책의 방향과 형태가 결정될 앞으로 몇 년 동안, 치열한 좌우 전투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오직 공유성장(shared growth)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루한 싸움이다. 오바마는 1기 행정부 때 이 논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지금 재선이 된 다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방어적이고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2009~10년 반민주당, 반 오바마 정서가 갑자기 두드러진 것처럼, 양당 권력 투쟁의 균형은 매우 유동적이다.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한편, 미국에서 현재 4260만 명이 공식적으로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화약고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그래프가 포함 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문 사이트:
http://opinionator.blogs.nytimes.com/2013/01/30/the-hidden-prosperity-of-the-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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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8정태인/새사연 원장

 

2005년 2월 새벽 나는 대통령을 만났다. 비서관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일주일간 무단(?) 휴가를 낸 다음날이었다. ‘동북아 비서관’을 그만두고 ‘국민경제 비서관’으로 옮기라는 지시에 약간의 항명을 한 뒤, 결국 항복한 날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세 가지를 지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한·일 FTA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정 비서관이 답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2004년 겨울, 5년 넘게 진행돼온 한·일 FTA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일본이 김(해태) 수입에 소극적이라는 게 직접적 이유였다. 또다시 밝히는 진실이지만 이때만 해도 대통령의 머릿속에 한·미 FTA는 없었다. 김현종 본부장은 5년이 지나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자서전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놀라운 주장을 했다. 한·일 FTA를 맺으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될 것이 뻔해서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한·미 FTA를 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한·일 FTA를 하면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에 나라 전체가 끌려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의견을 말했다. “모든 FTA는 안으로 산업 구조조정입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산업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지, 또 어떻게 가는 게 좋을지 굵은 그림을 그린 뒤 거기에 맞춰서 어느 나라와 FTA를 할지, 어떤 정도의 수준으로 맺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한·미 FTA는 이 주장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현종은 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3월, 한·미 FTA 협상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다시 청와대에 갔을 때 대통령 역시 “제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니 금융 등 서비스 산업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재경부와 삼성의 ‘샌드위치론’을 거론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어마어마한 결정은 과연 누가 해야 하는 것일까? 한·미, 한·EU, 한·중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가 판단해야 하는 걸까? 한·미 FTA 때는 우리 경제나 사회에 대해 일반인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김현종이 단독으로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김현종이 정통 관료가 아니라 그렇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미 FTA 토론회, 청문회에서 수없이 만난 정통 외교부 관료인 김종훈 본부장도 김현종 못지않게 무지하고 미국 시스템을 맹신했다. 내 경험으로 보면 외교부는 대통령과 미국, 이 둘의 뜻대로 움직이는 부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외교부의 비밀주의는 매우 유명하다. 도대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책을 왜 무지한 관료가 비밀로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외교부가 학자들을 동원한 모양이다. 이 언론, 저 언론에서 외교부가 통상교섭본부를 계속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제조업 위주의 사고는 낡았다든가, 현대의 FTA는 국제정치를 고려해야 하므로 외교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에 관련되지 않은 부처는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다. 예컨대 최대 쟁점인 ‘투자자 국가 제소권’은 한 나라의 헌법 자체를 위협하고 의약품 분야는 건강보험제도를 뒤흔든다. 외교를 다뤄야 하므로 외교부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G2 체제에서 우리가 어떤 FTA를 맺어야 하는지, 동아시아 공동체처럼 완전히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하는지, 외교부가 그럴듯한 얘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할 주체는 국민이요, 그 방식은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만 명백하다. 모든 부처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의 위원회여야 할 테고 아예 감사원처럼 독립적인 기구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국회의 철저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G2 체제하에서의 외교, 그리고 우리 경제의 미래 모습에 대한 토론과 합의이다. 이런 사안이야말로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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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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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디플레이션의 늪을 헤매고 있는 일본경제의 물가가 2% 올라갈 때까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한 아베 신조가 가세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세계 자본주의 선진국 진영이 모두 강도 높은 통화 완화정책에 경제회생의 명줄을 걸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세 번째 양적완화를 시작했으며 최근 그 강도를 높인 바 있다. 양적완화에 미온적이던 유럽중앙은행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무제한 양적완화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양적완화는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8년부터 미국의 선도로 시작됐다. 선진국들은 급전직하 추락하는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다른 쪽에서는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재정적자 폭이 커지고 재정지출 여력에 한계를 보이게 되자, 점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의존도가 커지게 됐고 그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선진국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에 몰입하게 된 것은 세계경제가 비상적인 조치들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는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전혀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적완화는 과연 기대한 경기회복 효과를 만들어 내기는 하는 것일까. 최근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 내부에서조차 그 효과를 의문시하는 견해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가 회의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증권시장이 바닥이었던 1·2차 양적완화 시기와 달리 지금은 주식시장이 상당히 올라와 있기 때문에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통화정책이 실물로 전달되는 채널들인 채권시장·신용시장·통화시장, 그리고 주식시장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양적완화는 재정지출 정책과 함께 사용돼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재정긴축을 하면서 양적완화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양적완화 정책이 실물경제에 자금공급을 확대시켜 투자 활성화와 고용증대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해 자국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인 가운데 정작 신흥국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충격을 받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특히 미국의 달러공급 팽창은 달러 가치의 하락과 신흥국 통화가치의 팽창을 초래해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달러가치 하락은 석유와 원자재 등 국제상품의 가격상승을 동반한다. 양적완화가 부자들에게는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주지만, 상품가격 상승 부담으로 인해 빈곤층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결국 소득격차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정적으로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자국 실물경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그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자산가격 거품을 촉진시키게 된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통화절상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와 함께 외국자본 유입으로 인한 자본시장 변동성 증대, 추가적인 통화가치 절상압력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본시장 자유화를 옹호해 왔던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양적완화 정책이 의도하는 것은 각국의 수요촉진을 통한 국내수요 견인보다는 환율상승을 통한 국제시장에서의 상대적인 경쟁력 확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양적완화정책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2013.1)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 첫째는 자본 유출입 통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정책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본시장 개방의 전도사 역할을 한 국제통화기금(IMF)도 자본통제와 관련해 “분명한 대상에 대해, 투명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일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자본 이동 자유화가 항상 모든 국가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며 자본통제를 인정했다.

국내에서도 최종구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토빈세가 지향하는 단기 해외투기자본 규제 취지를 살려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한 외환거래과세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새 정부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의식이다.

둘째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가 환율전쟁과 수출경쟁으로 변질될 것이 명확한 만큼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개혁해 내수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수기반 확대의 핵심은 가계소득 성장에 의한 민간구매력 확장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기관들이 연이어 높은 기업소득 성장에 비해 정체된 가계소득 현황을 분석하면서 가계소득 성장정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취지와 맥락이 닿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경제민주화도 가계소득 성장을 통한 민간소비 활성화를 목표로 한 것이어야 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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