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06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⑦>『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착한 경제학은 가능한가?-

 

추천도서 7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이정전, 2012, 토네이도)

대한민국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수요와 공급의 X 모양의 그래프. 우리가 공부하는 경제 교과서의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그래프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나타내지 못한다. 이제 우리가 따져야 할 좌표는 수요와 공급을 넘어 선 관계와 미래, 그리고 환경과 행복이다.

이런 사실을 경제학의 변방에서 홀로 개혁의 깃발을 흔드는 독립투사가 아닌, 서울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가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제 대한민국 경제학의 큰 방향이 바뀌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대 해 보며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를 추천한다.

 

곧 출간될 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신간 <협동의 경제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경제학이 싫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학자들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이와는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요즘은 사위나 며느리를 고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을 한다. 단 전공 학점이 나쁜 경우는 괜찮을 수도 있으므로 성적증명서를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경제학자들은 어쩌다가 저런 평을 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수능 선택과목으로 경제학을 선택했던 인연으로 어찌어찌 지금까지 경제학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다.  

고등학교 때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 한 점을 이루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그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칠판에 그려진 X자 모양의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가격이 오를 때도, 생산량이 줄어들 때도 결국은 한 점으로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몰랐던 진짜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래프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그리고 사실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래프를 따르자면 실업이 발생하는 건 순전히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 때문이며,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킬 뿐이었다. 또한 이기적 인간과 효율적 시장을 가정하는 탓에, 현실에서는 불법인 성 매매, 장기 매매, 마약 거래 등을 허용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적절하다는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학문이란 것이 결국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때, 현실의 많은 부분은 생략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진짜 답답한 것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와 그것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관한 논의가 경제학 수업 시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주류경제학의 논리들이 무너지는 한편, 경제학에 철학과 윤리학을 접목시키려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대학 밖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소모임에서야 접할 수 있다. 강단에서 그래프와 수식을 넘어서, 경제학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경제학이 발전해온 역사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해주는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가 반가웠던 첫 번째 이유는 경제학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 교수님이 직접 ‘실은 경제학에 이런 문제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니 뭔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저자 이정전 교수는 이전에도『시장은 정의로운가』, 『경제학을 리콜하라』 등의 저서를 통해 꾸준히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저자는 서문에서 “경제학 교수들이 현실에 대해 강의실에서는 말해주지 않는 내용들을” 담았다고 밝히며, 우선 경제학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시장과 현실의 시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다. 경제학에서 시장은 어떤 재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도구이다. 이 때 그 사람이 재화를 필요로 하는 정도는 그가 지불하는 금액, 즉 가격으로 표현된다. 결국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만 이야기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의 수요는 시장에서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은 시장의 근원적 한계이며, 모든 것을 시장의 방식으로 굴러가게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자는 경제학에 대한 이런 비판적 관점을 정부, 부동산, 환경 등으로 확대시키며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과 경제학 이론을 접목해서 설명한다. 특히 경제학이 비용편익분석을 통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실은 이 분석 방식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사업의 효과를 계산할 때, 간척사업 후 생산되는 쌀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쌀을 국제가격으로 계산하느냐, 국내가격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3배 정도 차이가 나며 쌀을 단순 재화가 아니라 안보재로 상정할 경우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식의 경제학적 손익 계산이 아닌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저자는 정치는 “사람들이 공익을 생각하면서 공적인 마음으로 행동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며, “평등의 원칙”을 으뜸으로 삼는 영역으로 시장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으로 ‘행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행복에 관한 경제학 연구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연구들에 의하면 행복의 가장 높은 영향을 주는 3가지 요인은 “가정의 화목, 좋은 인간관계,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소득 수준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인데, 평균적으로 소득 수준이 연간 1만 5000달러를 넘어가고 나면 소득증가가 행복지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행복의 역설’이라 한다. 우리나라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으니 이런 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또한 소득이 주는 만족감은 소득의 절대액수보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우리사회가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바는 더 높은 성장률, 더 많은 소득 수준이 아니다. 가정, 인간관계, 일을 통해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각종 자생적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타인과의 소득 수준 비교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구성원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는 <국부론>외에 또 다른 저서가 있다. <도덕감정론>이다. 이 책은 인간의 도덕심, 인간의 심리를 주제로 하는 책이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였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이 철저하게 인간의 일상행태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미래의 경제학의 아담 스미스의 정신을 온전히 살린 경제학이요, 철학이 앞에서 이끌고 심리학이 뒤에서 밀어주는 경제학이다.”고 말한다.  

이기심, 효율성, 경쟁,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경제학이 이제는 좀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행동경제학에서 진행된 여러 실험들에 의하면 경제학 전공자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이기적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었던 지난 30여 년 동안은 일반인들도 경제학 전공자만큼이나 경제학적 가치관들을 주입받았다. 이기심, 효율, 경쟁, 성장은 현실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기에는 좋은 도구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뢰를 좁히고, 공동체와 미래세대까지 포괄하는 경제학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그런 문제제기들이 국내에서도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저자 이정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 환경 경제 학회이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프레시안등에 행복경제학 및 세계 경제 위기, 부동산 정책, 환경정책 등을 망라한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활발한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 정진기 언론문화상 경제경영 도서 대상을 수상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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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 / 01 / 22 이수민/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 ④>『현시창』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추천도서 4 -현시창

(임지선, 2012, 알마)

청년 담론의 큰 출발이었던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 많은 청년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냈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여타 청년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르다. 위로도 격려도 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차분히 한 세대를 들여다본다.

뜨거웠던 청년 담론의 거품도 가라앉고, 청년들의 주먹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 시점에서 현직 기자이자 30대 청년이 쓴 이 책은 청년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 요즘 누구를 만나든 무작정 추천하는 책이다.

그 많던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나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늦둥이 외동아들 마냥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청년 세대’에 대한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호통치고 야단치면 정신 차릴까, 어르고 달래면 일어설까 기대했던 어른들은 이제 시들해졌다. 두 번의 선거를 마치고 그들의 헹가래에 보답하지 못한 청년들은 이제 작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대선 이후 찾지 않는 청년. 누군가는 역시 ‘젊은 것’들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변하지 않는 것은 청년들의 삶, 청년들을 둘러싼 지금의 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청년 담론’을 다시 시작할 새로운 그리고 고마운 책 한권이 우리 앞에 던져졌다. 임지선 저 『현시창』이 바로 그것이다. 제목이 이상하다 싶겠다. 사실 ‘현시창’이란 말은 저자가 처음 꺼낸 말이 아니다. 이는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로, 영화 ‘8마일’에서 가수 에미넴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노래한 데서 시작되어 인터넷 상에서 널리 퍼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 임지선은 시궁창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청년 현실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러나 너무 단단하게 그들을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룰’을 꺼내어 친절히 보여준다.

뜨거웠던 이전 세대에게는 불합리한 현실에 눈감는 개xx였던, 하지만 동정심 많은 자선가에 의해 ‘88만 원 세대’이라는 조금은 안쓰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던, 그래서 앞선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짱돌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를 강요받았던 청년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오늘의 대학을 거부하고, 명품빽 마냥 비싸면 좋은 줄로만 알았던 대학 등록금이 반 토막이 되는 것을 상식으로 만들고, 관성화 된 노동운동의 새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청률에 급급해 하는 막장드라마 피디처럼 구는 어른들의 장단까지 맞춰주기에 청년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학자금 대출 이자 상환일은 참 부지런히도 찾아온다.

노동, 경쟁, 여성, 돈이라는 네 가지 절벽에 가로막힌 세대

이 책은 현직 기자인 저자가 취재를 하던 중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다. 기자로서의 궁금증과 개인적 관심으로 다시 취재하여 기사에서는 차갑고 간결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미안함을 자신의 진짜 문체로 풀어냈다. 그 문체가 무척이나 섬세하고 따뜻하고, 때로는 날카로워 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단지 이 모든 이야기가 문학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눠져 있다. 누군가가 사는 세상이 ‘음, 양, 오, 행’의 네 가지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청년들의 세계는 ‘노동, 경쟁, 여성, 돈’의 네 가지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네 가지 주제에 해당하는 청년들의 ‘진짜’ 이야기가 지면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첫 장부터 무척 낯익다. 우연인가 했는데 그 다음 장도 낯익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다르다. 신문에서 뉴스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과는 많이 다르다.

고객님의 쾌적한 쇼핑을 위해 이마트 지하에서 냉방설비를 고치다 유독가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청년. 손님들의 비상식적인 요구에도 배꼽인사를 넙죽넙죽하는 대형마트는 자신의 매장에서 죽은 청년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어린 여동생은 오빠가 남긴 학자금 대출금이 걱정이다. 용광로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청년이 추락하여 뜨거운 불길에 타 죽어도 회사는 어떠한 안전장치 하나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회사는 매년 흑자를 내지만 죽은 청년에게는 본전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 청년은 다음 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계획이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삼성의 반도체 소녀는 다시 들어도 제왕적 대기업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이 동시에 차오른다. 한편 고작 ‘따뜻한 피자’ 때문에 다치고 죽어가는 어린 소년들은 오늘도 미끄러운 길을 질주하고 있고, 이번 주에는 또 눈 소식이 있다. 스물네 살의 어린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청년은 그 날이 마지막 근무였다고 한다.

이처럼 책의 처음은 가난한 청년들의 노동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가 가슴을 치게 한다. 이 책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기력하거나 혹은 대부분 무척이나 성실하다.

“군 복무 중에도 월급 5만 원을 집으로 부쳤다. 짧은 휴가를 나와서도 인력사무소를 찾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동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빈곤노동에 지친 어머니를 위로했다. 휴가 동안 쓰라며 어머니가 건넨 3만 원을 여동생의 책상 위에 남겨두고 부대에 복귀하는 사람이었다.”(p17, 1-1. 이마트에서 잠들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의 어린 노동자들은 대부분 100~13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가난해서 그 월급을 포기할 수 없었고, 순진해서 공장과 기숙사만 오가며 하라는 대로 일만 했으며, 너무 착해서 아픈데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 채 참고 살다 죽었다.”(p52, 1-2. 소녀와 백혈병, 그리고 삼성)

“ㅎ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이면 피자 배달원이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는 일이 위험하다고 걱정하실까봐 부모님께는 피자집 매장에서 서빙을 한다고 말해두었다. 그런 아들이 “오늘까지만 일한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혼수상태로 돌아왔다.”

듣고 있으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마저 나오게 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어른들이 주는 것이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과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 그리고 ‘네가 못나 이런 일 밖에 못 한다’는 자괴감이다. 식상한 레퍼토리 다시 한 번 읊어 보자.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대학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눈높이가 높다 타박하고, 끝끝내 생사의 기로까지 밀려나 120만 원 받으며 일을 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줄어들 줄 모르는 대출금뿐이다.

“힘들고 위험한 업무는 자연히 비정규직의 몫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라인이 돌아가듯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p36, 1-3. 비정한 세상, 비정규직)

“조합원 대부분이 30대 젊은이들입니다. 다들 불법 파견 노동자로서 6~7년씩 고용 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아왔다는 공감대가 바닥에 깔려 있죠. 현대자동차에서 공정이 없어져 회사에서 쫓겨나는 비정규직이 1년에 300명입니다. 그런 시기가 되면 노동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말을 안 하고 툭 하면 싸움이 벌어지죠.”(p40, 1-3. 비정한 세상, 비정규직) 

그렇다면 가난이 비껴간 청년들의 삶은 조금 나을까. 페이지를 넘겨보면 차라리 대놓고 탓할 가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세상에 냉소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옭아 메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홀로 우두커니 전쟁터에 서있는 청년들의 발밑에는 ‘경쟁’이라는 뿌리가 너무나도 깊다.

2006년 한국의 천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에 서남표 총장이 신자본주의의 검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100% 영어강의와 차등적 등록금제로 누군가는 꼭 죽어야 하는 그리고 죽여야 하는 새로운 전쟁터를 마련해 주었다. 학생들이 목을 매고, 옥상에서 뛰어 내려도 성장통이라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법대 4년 장학생으로 합격한 한 청년은 명문대가 아닌 이상 창피해서 대학을 다닐 수 없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부적응이 우울증과 대인기피, 그리고 게임중독을 나았고 몇 개월을 방안에서 게임만 하다 결국 어느 날 새벽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가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을 찔렀다. 일명 ‘묻지마 살인’. 알고 보니 피해자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 귀가하던 같은 또래의 청년이었다.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었던 소녀는 이제 자신이 공부를 잘 한 것을 후회한다. 더 이상 가난은 명문대 대학교 졸업장으로 극복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을 많이 벌어도 괴롭다. 보험 영업으로 월 천만 원 이상을 버는 청년은 미래를 준비 할수록 미래가 두렵다.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쫓기는 꿈을 꾼다.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경쟁’은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보다 훨씬 더 크고 깊게 청년들을 병들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끼리 싸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 시킬 뿐이다. 청년들은 서로 연대하여 기득권을 가진 세대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이 입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주입된 경쟁이며, 심지어 타인의 상처를 나의 자양분 삼아 살게 만든다.

각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동료들은 서로에게도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말 한마디 곱게 오가는 일이 없었다. 전화 안내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어 ‘홀드’를 걸어놓고 옆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면 “공지사항 뜬 것도 못 봤어?”라며 타박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새 상담원들은 고객에게 받은 상처를 동료들에게 되갚아주고 있었다.”(p146, 3-2. 그놈 목소리, 콜센터는 우울하다)

삼성 내의 성희롱 문제를 고발하며 홀로 오랜 싸움을 참아왔던 이인의 씨는 골리앗 같은 회사도 미웠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동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고 한다.

갈수록 바빠졌지만 이 모든 일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다. 싸움이 커지자 “문제 제기를 하면 도와주겠다”던 동료들도 증언을 기피했다. 회사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그를 보며 “선배를 응원하지만 선배처럼 살 수는 없다”고 말하는 후배도 있었다.”(p138, 3-1. 당신도 여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삼성맨’이 된 그녀. 그때까지는 경쟁의 먹이사슬에서 위쪽에 차지했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모두에게 가시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모든 싸움을 끝낸 뒤 그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드는 의문 중 하나가 사회생활의 진리인 양 회자되는 텍스트인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흔히, ‘여자들 사이에 서열이 더 엄격하다’느니 ‘여자들끼리 견제와 질투가 더 심하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외형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들 대부분은 그저 개개인의 성격문제나 여성성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여성은 대개 약자이기 마련이다. 이런 구조에서 발생하고 누적되는 억울함과 박탈감은(핵심적인 원인이나 근본적인 해결방향을 찾는 쪽으로 발현되기보다는) 외관상 비슷해서 상대적이니 처우 등 각종 차이가 쉽게 비교되는 동성의 여성들을 향해 발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이인의, 『삼성을 살다』, 사회평론, p50)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사회 구조가 왜 약자들에게 불리하며, 그것을 알면서도 왜 스스로 그 불합리함을 해결할 수 없는지를 경험으로부터 알려준다.

구조적 모순을 내제한 사회, 이곳에서 청년이라는 하위 계급에 여성이라는 결함까지 갖추면 그 시궁창의 깊이는 배가 된다. 여성을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 진부해서 거론하기도 피곤하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억지로 주입한 약하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쾌락의 대상을 넘어 착취의 대상으로 이용한다. 감정노동. 백화점, 대형마트, 콜센터 등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녀들의 시중으로 품위를 유지하고, 우리는 오늘도 그녀들의 전화를 받을 것이다.

책은 돈에 의해 일어난 반인륜적인 사건들로 마무리 된다. 만삭의 부인을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의대생, 본사에 ‘상납’해야 하는 리모델링 공사비용 때문에 쥐식빵을 만들어 낸 제빵사, 세 살배기 아이를 죽인 철없는 부모. 모두 ‘신문에나 날’ 이야기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내 이웃의 이야기다. 세상은 점점 화려해 지고 가난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대도시의 반지하와 옥탑 방 구석구석에 알차게 들어 차 있다.

‘청년 담론’ 다시, 그러나 새롭게 이야기 하자

앞에서 언급 했듯이 저자 임지선은 30대의 현직 기자다. 특히 그는 식당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여성 빈곤 노동을 생생하게 그려낸 ‘노동OTL’, 30주 연속으로 인권문제를 써나간 ‘인권OTL’, 영구임대 아파트 121가구를 심도 있게 그려낸 ‘영구빈곤 보고서’ 등과 같은 르포르타주로 꽤나 많은 상을 받았다. 그 와중에 책도 몇 권 썼다. 나이에 비에 화려한 스펙이다. 그런 그가 써 낸 『현시창』이 그저 같은 세대에 대한 동질감이나 기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가 말하는 ‘현시창’은 ‘현실은 시궁창’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창을 들어라’이며 또한 ‘지금, 노래 부르며, 창의적으로’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기 위한 시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누구도 해결 해 줄 수 없는 답 없는 세상사에 먹먹해 질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책 귀퉁이마다 작은 해답들이 숨어 있다.

로스쿨에 가서 다시 시작한 캠퍼스 생활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기숙사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는데 너무 행복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고 경계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더라.”(p140, 3-1. 당신도 여자라면)

“그래도 미연 씨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울시 한부모가족센터에서 피부 마사지와 발 마사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업을 듣고 있다. “아이를 낳고 전 더 건강해 졌어요. 더 이상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삶을 개척 해볼 거에요.” 미연 씨처럼 미혼모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한 해 6,500명을 넘어선다.“(p187, 3-6.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

솔직히 말해보자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지금까지 있어 온 적도 없고, 앞으로도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행복 대신 ‘평화, 즐거움, 재미, 건강, 안락함, 도전’ 등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고 각자가 원하는 가치는 다양하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일수도 있다.

청년 세대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이상 동정이나 다독임, 치유나 격려 같은 것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과 자립이다. 획일화된 일방통행의 사회가 아닌 가치의 다양성,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미약하지만 부모에게 기생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과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실패했을 때의 죽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이 정도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청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소개

70년대도 80년대도 아닌 듯한 1980년에 태어나 90년대도 2000년대도 아닌 듯한 99학번으로 어정쩡하게 살았다.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국어국문학을 부전공했다. 2006년 <한겨레>에 입사해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을 기자로 살았다. <한겨레21>에서 30주 연속으로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인권OTL’ 시리즈, 식당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여성 빈곤노동의 현실을 알린 ‘노동OTL’ 시리즈, 국내 최초로 영구임대아파트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영구빈곤 보고서’ 등을 취재하며 인권 보도에 눈을 떴다. 이 같은 기획으로 국제앰네스티언론상(2008), 한국기자상(2009), 민주언론상(2010)을 수상했다. 또한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산재 의혹과 관련한 보도로 국제앰네스티언론상(2010)을 다시 한 번 수상했다. <한겨레> 사회부에서는 신문기사의 틀을 벗어나 ‘사람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다.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통해 언론인권상(2012)을 수상했다. 《4천원 인생》《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를 공저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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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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