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에서 가장 애매한 대목은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다. 18대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했고 박근혜 당선자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자 자신은 물론이고 소속된 정당의 성격이 경제민주화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진정성 논쟁이 나왔고 집권 후에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지 의문도 많았다.

일단 첫 시작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가장 기초적인 경제민주화의 관문이라 할 대형 할인마트 규제를 크게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법안처리를 미뤄 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저녁 10시부터 영업시간을 규제하자는 안도, 월 3회 이상 휴무를 규정하자는 안도 모두 새누리당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자의 자발적 의지로 실현될 경제민주화는 거의 없을 것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그렇게 간단히 집권당에 의해 박물관 속에 다시 봉인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보편적 과제와 궤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난 30년 동안 무차별적인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 지속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공공부문의 약화와 민영화, 그리고 체계적인 노동권 약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해 왔다. 30년 동안 추구된 신자유주의 결과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였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장기침체에 빠진 경기회복을 위해서도 불평등 해소는 점점 긴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99% 운동’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거시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화도 바로 이와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 차원과 완전히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한국에 특수한 재벌 문제가 있으니 이를 서구와 같은 기준으로 맞추자는 따위의 97년 버전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은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계속 확대될 것이며 당연히 우리 국민들의 경제민주화 운동도 계속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완전한 시장의 자유경쟁과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의 최소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독점 대기업의 시장 독식과 경쟁 제한에 대해 신자유주의도 반대한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 어느 때보다 금융과 제조업 모두에서 독점 대기업의 시대였으며,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독점화 수준을 글로벌 차원에서 확대한 시대다.

즉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 실질적 경쟁과 많은 수의 경쟁이 필요하다던 이전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기업 편향 정책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자유로운 경쟁이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시킨다는 개념 역시 포기했다. 대신 인수합병 등을 통한 거대기업의 출현이 설령 경쟁이 줄어드는 결과가 생기고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더라도,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경제 전반의 부를 확대시킨다면 소비자의 선택은 줄지 모르지만 ‘소비자 복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색다른 주장을 펴기 시작한다. 한국의 재벌들이 급격히 몸집을 키워 왔던 97년 이후 역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급격히 확대된 과정이며, 이 두 과정은 아무런 모순 없이 진행됐다. 따라서 재벌개혁과 신자유주의 극복이 하나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의 독점 대기업은 선진국과는 약간 양상이 좀 다르다는 비판도 있다. 신흥국은 선진국을 추격하고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기꺼이 정부가 지원까지 하면서 독점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등이 얼마간 희생될 수 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제 삼성과 현대자동차와 같이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한국 재벌이 성장한 상황이라면 어떤가. 그러면 당연히 국제 경쟁력을 위한 국내 경제주체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내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지금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그런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독점 대기업의 권력 확대는 자본주의 시장을 파괴할 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또한 용인될 수 없다.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 영국 워릭대 교수는 20세기 전반기에 발전한 미국의 고전적인 반독점법이 기업 권력의 대규모 축적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독점 대기업의) 권력의 집중이 심해서 효과적인 경쟁이 사라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경제민주주의와 정치민주주의 모두에서 필수조건이었다. 보통사람들은 언제나 기업이나 정치인과 어느 정도 대등한 조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과 정치인에 의해 지배될 터였다.”(<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The Strange Non-Death of Neoliberalism)>, 84쪽)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1세기 초에도 거대 금융권력과 기업권력이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한국의 재벌이 선두에 서 있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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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4정태인/새사연 원장

역시 ‘다이내믹 한국’인가, 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의료민영화나 4대강 등 공공성 의제의 들불로 번져나갔던 것, 2010년 무상급식이 순식간에 보편복지 의제로 자리잡은 것처럼 이번엔 ‘경제민주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패배했고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김종인 박사 말마따나 새누리당 당선자 중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야권연대 쪽을 통틀어 당장 정책과 법안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당선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에서는 예의 ‘중도론’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대선에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김종인 조항)이 그 근거다. 즉 헌법은 소득재분배(복지), 그리고 독점규제(재벌개혁)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권’이 있었으니 우리 헌법은 유구한 ‘경제민주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간다는 뜻일텐데 경제민주주의라는 목표는 어떤 모습일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는 프리드만(Freedman, M)의 강변 이래 별 관심이 없었고 정치학자들만 띄엄띄엄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경제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학자는 정치학자 달(Dahl, R)이다. 그는 적어도 선진 사회의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규범인데, 경제에서는 왜 ‘기업 괴물(corporate leviathan)’의 전제주의가 규범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대칭적이기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0년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보울스(Bowls, S) 등의 ‘민주적 기업’이 그것이고 지난번에 소개한 프리먼(Feeman, R)은 30년 넘게 이 문제에 천착해서 ‘공유자본주의론’을 완성했다.
 
기업 내 민주주의를 넘어 롤스(Rawls, J)는 경제에도 자신의 정의론을 적용한 결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를 이상적 사회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또 하나의 대안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놀랍게도 롤스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복지국가가 자산 소유(‘생산 자산’, production assets)의 양극화를 용인해서 정의의 원칙인 ‘기회 평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유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롤스는 자산 및 자본재분배까지 주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실상 독점의 시정(즉 산업구조 상의 문제)을 중심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국가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과 프리먼은 기업의 민주화를, 그리고 롤스는 재산소유의 민주화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일반화한다면 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경제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착한 경제학’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볼까?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책 처방이 경제민주주의론자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 번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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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7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미친 기름값'은 누구의 책임인가?

어떤 신문이 아예 대놓고 ‘미친 기름값’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요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전국 평균 2,000원에 육박해서 사상 최고치를 위협하고 있다. 해당 기사가 나왔던 2월 13일에 ‘정유업계의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4대 정유업체의 작년 매출액을 다 합쳐 보니 무려 200조 원 가량이다. 이 두 기사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특히 차량으로 먹고 사시는 분들이 느낄 박탈감이 떠오른다.

얼핏 보면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기름값이 오르는 것은 마진이 줄어든 주유소의 자구책에서 비롯되었고 작년에 정유업계의 실적이 좋았던 것은 유례없는 수출 호황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소매업주인 주유소와 수출대기업인 정유업계가 각자 나름 노력해 온 자연스런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석유에 얽힌 가격과 수익결정 구조를 보면 우리는 정유업계의 책임을 보다 강화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사실을 되새겨 보자.

첫째, 정유업계는 담합을 통해 도매 가격을 독점적으로 결정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도매가가 떨어져야 소매가도 떨어질 수 있다. 정부가 폭등하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펼친 대표적인 정책은 이른바 ‘알뜰주유소’ 정책이다. 경쟁을 통해 기름값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정유업계에 대한 압박은 전제되지 않았다. 시장을 독점한 4대 정유업체가 매년 담합을 통해 도매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는 시늉을 보이긴 하지만 실효성은 없다. 정유업체는 돌아가면서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하는데 이른바 ‘자진신고자 감면제’를 이용해 과징금을 면제받는 수법을 사용한다.

둘째, 정유업계는 원유 가격이 상승해도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한국의 정유제품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수송용 연료는 세계 최고의 환경 기준을 자랑한다. 이런 경쟁력은 세계 6위의 설비능력과 수출규모로 증명된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진국들이 휘청하고 선진국들의 정유시설이 노후화됨에 따라 석유제품의 수출 전망은 한마디로 ‘장밋빛’ 그 자체이다. 원유 가격이 상승한다 해도 수출이 워낙 호황이다 보니 정유업계는 크게 걱정할 바가 아니다.

셋째, 원유 수입량의 상당 부분은 정유업계에 의해 그대로 수출된다.

원유 수입량의 약 1/4은 그대로 수출된다. (석유제품 수출금액은 원유 수입액의 약 1/2) 한국에서 원유 수입의 최대 큰 손이 정유업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유업체의 수출량은 한국의 원유 도입원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원유 도입원가 급등의 부담을 오로지 주유소와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유가 급등 시에는 충격을 일정하게 흡수해 주는 최소한의 책임 정도는 져 주어야 한다고 본다.

주유소와 국민들이 기름값 폭등에 근심이 늘어가도 정유업계는 언제나 국제유가에 그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대규모 원유도입은 최소 수 개월에서 최대 수 년의 장기거래가 기본이다. 정유업체는 거대 구매력을 바탕으로 유가 급등의 위험을 회피하는 한편, 주유소 운영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또 한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정유업계는 유가 급등의 부담을 사회에 전가시킬 수 있는 구조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엄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 이 글은 여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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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을 개혁해야 한국경제가 바뀐다.①

2011 / 06 / 14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대기업을 개혁해야 한국경제가 바뀐다.①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보고서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1. 양극화의 핵심 진원지 대기업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커다란 암적 병리 현상이 양극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고용 양극화, 소득 양극화, 자산 양극화로부터 출발하여 교육의 대물림과 양극화를 포함하는 온갖 사회적 현상의 양극화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민 생활 향상이나 사회통합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복지 담론이 부상하고 공정사회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도 모두 양극화 치유가 얼마나 절박해졌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극화의 원인을 추적해가다 보면 그 정점에는 극소수의 재벌그룹(대기업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5이상인 230조 원의 자산규모로 비대해진 삼성을 필두로 하여 현대차, SK, LG, 롯데 등 주요 그룹사들은 매년 국민소득 증가율을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하면서 성장을 해왔고 규모를 키워왔다. 특히 해고와 임금삭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대기업들의 실적은 지난해의 경우 60%가 넘는 당기 순이익 증가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그러나 가계의 소득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대기업 영업 이익 증가율의 10%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대기업 집단들은 수출경쟁력과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순수하게 자체 기술력과 경쟁력만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반이 되는 국내시장에서 높은 경제력 집중도를 매개로 독과점적 시장지배를 확대해 왔던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들의 국내적 독과점 구조는 이들에게 글로벌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국내 사회 양극화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 독과점이 도를 넘어서다.

구체적으로 사회 양극화 고리의 시작점의 하나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구조를 짚어보자. 지난 6월 9일 동반성장위원회 정운찬 위원장도 "대기업-중소기업간 양극화는 임계점에 다다랐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계층 간의 잠재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정과 통합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진다. 상호협력과 상생관계를 재정립해 동반성장의 기틀을 마련해야“한다고 역설할 정도로 대-중소기업 상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납품가격을 볼모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가 대기업의 절반에 불과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고 이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진입한 결과 중소기업 영업활동 위축으로 인한 후과가 더해진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 시간이 지나도 거의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없는 것이 한국 기업경영현실이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지난 5월 9일 “우리나라 중견 기업은 0.2%에 불과할 정도로 거의 전멸했다. 왜냐하면 대기업에서 약탈행위를 하는 것을 정부가 방조했기 때문”이라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던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는 곧바로 해당 기업 종사자들의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2009년 기준 전체 일자리의 87.7%가 중소기업에 몰려있는 우리 경제현실에서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2010년 기준 대기업에 비해 74.4%밖에 되지 않는다. 이 조차도 5인 이상 기업의 상용 근로자 기준이므로 실제로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소득 양극화가 왜 대기업에서 유래되는지를 잘 알려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 납품단가 인하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은 이들의 ‘수요 독점 현상’에서 발생한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특정 대기업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있고 이들 대기업이 아니면 달리 납품 처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납품단가 인하를 감내 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확대시키면서 사회 양극화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주요 산업에서의 엄청난 경제력 집중으로 이른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었고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이 구매하는 소비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에게는 납품 단가를 인하하여 수익률을 올리고 소비시장에서는 독과점 가격을 설정하여 이윤을 취하는 대기업 중심의 시장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가전, 휴대폰 등 주요 내구재 소비품 뿐 아니라 대형 마트와 정유, 이동통신 시장, 나아가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업(MRO)시장에 이르기까지 주요 대기업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산업, 업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대기업의 서민업종 싹쓸이‘ 논란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의 영업 이익률 고공행진과 갈수록 확장되어가고 있는 글로벌화의 배경에는 이처럼 압도적인 국내적 시장 독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독점이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대기업 집단, 또는 재벌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각 업종별로 전문화되고 특화된 다양한 대기업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진입을 규제하고 있는 은행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산업은 흔히들 말하는 5대, 10대 기업집단(재벌)의 계열사들이 전방위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그 영향력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3. 대기업이 지배하는 일상생활

그렇다면 이들 대기업 집단들이 실제로 우리 생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어느 정도의 독과점적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현행법으로도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하나의 준거 틀로 시장지배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공정거래법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1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100분의 50이상
2. 3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75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 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를 제외한다.

아침에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는 경우 자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를 포함하여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2/3이상은 현대 기아차이다. 2010년 기준으로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은 5.8%에 불과하고,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수 판매 대수 가운데 현대 기아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75%를 넘기 때문이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50%이상 점유율을 훨씬 넘어서 거의 완전한 독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 기아차는 신용카드 대란 이후인 2004년부터 경제위기로 휘청했던 2008년 잠시를 제외하면 시장 점유율이나 판매대수가 모두 증가하면서 최근 기록적인 수익률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현대 기아차가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노후차량 교체 시 취득세와 등록세를 70% 깎아줄 때인 2009년에도 자동차 판매 가격을 인상하는 등 주력 차종인 소나타와 아반떼, 산타페 가격을 최근 6년 동안 40~60%가량 인상했다는 점이다. 반면 최근 현대차 그룹이 하청기업의 납품가격을 부당하게 인하하려 했다고 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독점기업의 이윤이 어떻게 늘어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현대 기아차가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자동차 소비자 가격을 올려도 그대로 현대 기아차를 구매하는 것 외에 크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 반면 우리보다 더 막강한 자동차 왕국인 일본의 경우,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인 도요타는 일본 국내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48%로 현대 기아차 보다 훨씬 낮다. 혼다와 닛산이 합쳐서 3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등 우리보다 훨씬 자동차 시장구조가 분할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리 눈에 띄는 주유소와 해당 주유소에 석유를 공급하는 정유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어떨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유사가 독점적으로 석유를 공급하는 주유소 점유비율은 SK, GS, 현대오일뱅크, S-Oil을 합치면 95%를 넘고 있다. 주요 3사의 점유율도 가볍게 75%를 넘고 있으니 이른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

이들 정유사들은 모두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임은 물론이다. 정유시장은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국내 시장규모가 10조원 이상인 3대 업종이고 국민들의 매월 지출 부담이 가장 큰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더욱이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하고 있는 와중에, 정유사들이 석유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정부 압력 때문에 겨우 석유가격 100원을 한시적으로 인하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결국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효과가 사라져 버린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 가정에 거의 하나 이상씩 사용하는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주요 국내 가전제품 시장이 90%이상 LG와 삼성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오래된 이야기고, 이들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한창 확대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10가구 가운데 8가구가 보유하고 있고 삼성과 LG가 뒤늦게 뛰어들었던 김치냉장고 조차도, 처음으로 김치냉장고를 개발한 위니아 만도를 제치고 삼성이 시장 점유율 36%이상을 장악하면서 1위에 올라선 것이 이미 2008년이었다.

최근 스마트폰 수요증가로 시장이 급변동하고 있는 휴대폰 시장은 어떨까. 지난해 아이폰 열풍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8%정도 뺏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판매 대수 기준으로 70%를 넘고 있고 삼성 1개 기업이 50%를 넘고 있다. 휴대폰 제조사의 시장 점유율만이 문제가 아니다.

3개 독과점 기업에 의해 완전히 분할되어 있는 이동통신 시장 역시 4대 기업집단 안에 들어가는 SK텔레콤이 절반을 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석유가격과 함께 소비지출 부담이 상당히 큰 통신비에 담합과 독과점 가격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역시 정부 압력으로 매월 1000원의 통신비 인하 의향을 밝혔지만 국민들의 빈축을 샀던 것이 정유사의 그것을 완전히 재연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니면서도 몫 돈이 들어가는 내구성 소비재인 자동차나 가전, 휴대폰, 그리고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출해야만 하는 석유나 통신 등의 시장에는 예외 없이 삼성, 현대차, LG, SK 그룹과 같은 유력 대기업 집단들이 사실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서 독점가격을 설정하거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 국내 시장을 장악해버린 주요 제조업종과 일부 서비스 업종을 넘어서 지금도 새로운 영역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장 유력한 분야가 보건, 교육, 미디어와 같이 아직 공적 규제가 남아 있는 거대 서비스 분야일 것이다. 이미 삼성은 삼성 의료원을 기반으로 의료와 보건 규제완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며 대학 재단 인수를 한 바가 있고 중앙일보를 기반으로 미디어 업종의 시장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전형적인 중소업체들의 영역까지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진출하는 것이 한국의 대기업 집단이다. 기업형 수퍼(SSM)의 골목상권 잠식에 이어 최근 중소 영세 상인들의 영역이었던 ‘소모성자재구매 대행 사업(MRO)'에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면서 중소상공인들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MRO사업이란 제조업에서 공구나 베어링, 그리고 기업에서 각종 사무용품이나 복사지 같은 소모성 자재 구매를 대행해주는 영역으로 전통적으로 중소상인들이 맡았던 영역이었다. 전국 소상공인단체연합회에 따르면 LG서브원은 지난 2010년 매출액이 2조 5천억 원으로 1년 만에 29%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삼성 아이마켓 역시 지난해 매출이 1조 5천억 원이었고 한 해 동안 30% 규모가 커진 바 있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커피 전문점과 같은 중소형 도소매 음식업 시장까지 대기업이 장악할 것을 예견하는 것이 허황된 것만은 결코 아니다. 조만간에 우리 국민들의 일상은 주요 대기업집단의 제품 아니면 중국산으로 완전히 양분될 개연성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 집단은 글로벌하게 세계에 진출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4. 독과점 규제를 미룰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물론 딱 한군데 대기업을 벗어나서 살고 있는 생활현장이 있다. 바로 일터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을 모두 합쳐도 경제활동을 하는 2500만 우리 국민의 1/10이 훨씬 모자라는 일자리만이 있을 뿐이고 주요 대기업 집단으로 좁히면 다시 1/20 미만의 일자리만이 제공될 뿐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반대로 이들이 책임지고 있는 고용은 약 10%정도 줄어들었다는 것이 중소기업 중앙회의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일자리만큼은 대기업 집단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것이 오늘의 취업 현실이다.

대기업 집단은 고용 자체의 절대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용을 늘려도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투입되는 교육 훈련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력직 채용 비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 교수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중소기업에서 훈련 받은 인재를 스카우트하는데 몰두하고 있어 신입사원은 갈 곳이 없다”며 비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다시금 왜 양극화에 대기업이 책임이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이른바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 정책 등 대기업위주의 정책을 폈고 이들의 경제력 집중을 촉진시켰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와 국민생활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적하효과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뒤 늦게 다가올 선거를 의식해서 최근 부쩍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을 강조하고 부분적으로는 대기업에게 이를 압박하는 모양새까지 보이고 있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행위에 대해 정당한 ‘규제’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독과점이 만연된 우리의 현실은 이미 ‘자유로운 경쟁의 실패’ ‘시장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독점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은 30년 역사를 가진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은 1조 목적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방지, ▶과도한 경제력 집중 방지, ▶부당한 공동행동(담합행위) 규제를 통하여 1)창의적 기업 활동 보장, 2) 소비자의 보호, 3)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 도모를 실현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단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과거에 비해 더욱 비대해진 대기업 집단을 실효성 있게 규율할 새로운 규제의 틀과 제도 도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적하효과가 우리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근거와 기준을 찾아야 한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 4월 27일 “최근의 경쟁 양상은 개별 기업 간 경쟁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 경쟁으로 변화되고 있다”면서 “생태계 경쟁력 강화가 동반성장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에 대해 말의 성찬이라고 할 만한 언변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괴물로 등장한 대기업 집단을 반드시 규율해야 국내 산업 생태계가 다시 복원되고 그럴 때에만 글로벌하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주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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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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