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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9.10.16 11:25

수능성적 공개로 인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시민단체는 학교별로 수능 성적을 공개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야당 의원들 역시 자료공개는 위법이며 학교서열화를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발뺌하던 교과부는 뒤늦게 각 대학의 고교등급제 도입 여부를 실사하겠다고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다.

학교별 수능성적 비교 결과는?

조 의원과 조선일보는 전국의 고교를 평균점수별, 1등급 학생비율별로 100위까지 표로 작성해 보도하는 친절함까지 보여줬다. 조선일보 기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별 평균점수와 1등급 학생비율 순위의 상위권은 모두 특목고가 독차지했다.
둘째, '사교육 특구'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구 등에 소재한 고교들이 1등급 학생비율은 높으나 평균점수는 낮다.
셋째, 중소도시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온 비평준화 지역 고교들의 수능 점수가 매우 높다.
넷째, 공립보다 사립학교의 성적이 높다.

수능점수 원자료를 이용해 도출된 점수별로 지역과 학교를 단순 나열해 비교한 결과다. 문제는 구체적인 학교 지명까지 순위별로 나열됐다는 점이다. 위의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사교육 특구'의 평균점수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 외에 특별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여기에 여러 가지 의미를 보탠다.

조선일보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첫째, 외고는 수능 평균점수 상위 30개교 중 21개교를 차지했다. 1등급을 받은 학생은 전체 학생의 절반이 넘었다(54.1퍼센트). 그러나 이 중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은 4.9퍼센트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서울대는 고교 내신을 중시하기 때문에 외고생이 합격하기 어려우며, 더구나 서울대가 정원의 20퍼센트 이상을 농어촌지역 출신 학생들로만 뽑는 '지역균형선발제도'를 실시하면서 외고 학생이 서울대를 갈 수 있는 폭은 더 줄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서울대의 내신 중시 정책과 농어촌 지역 출신 학생 우대 정책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공정한 경쟁'이라는 말을 꿀꺽 삼킨 모양새다.

둘째, '사교육 특구'의 고교들이 1등급 비율은 높으나 평균점수는 낮은 이유는 학교 내 학력차가 크기 때문이다. 상위권 학생들이 많은 만큼 하위권 학생도 많고, 중위권 학생은 거의 없는 'M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상위권 학생들의 치열한 입시경쟁과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업포기 현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교육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심각한 폐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서는 '의외'라는 말 뿐이다. 대신 평준화 지역의 학력차가 크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하향평준화'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는다.

셋째, 수능 평균점수 상으로는 특목고와 자사고 외에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가 선전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매 기사마다 '학교선택권, 학교 간 경쟁, 라이벌' 등의 단어를 반복 사용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평준화 지역은 학생이 학교를 선택해서 지원하기 때문에 우수학생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학교 간 경쟁으로 성적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는 이미 시ㆍ도 내의 성적우수자들이 모인 학교다. 중학생이 고교 진학 시 반에서 1~2등은 특목고를 지원하고 10등 이내는 명문고를, 나머지는 일반고를 지원하는 식이다. 극심한 학교 간 경쟁이 아니어도 평균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넷째, 조선일보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성적 차이는 교장과 교사의 책임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공립학교 교사는 3~5년 주기로 학교를 옮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속감이 떨어질 뿐 아니라 행정업무를 잘 하는 교사에게 유리한 평가제도 탓에 학생의 성적향상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반면 사립학교 교사는 '평생직장'인 학교에 남다른 애정과 소속감을 가진다고 말한다. 교장의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조선일보는 가르치는 실력을 중심으로 한 교원평가를 실시해 교사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능성적만으로 학교교육을 판단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종합해보자. 먼저 고교 평준화제도는 없애고 학교별 성적은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선택제의 범위를 늘려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또 교원평가를 통해 입시성적을 높여줄 교사를 늘려야 한다. 대입 시에는 그들식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고교등급제를 실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모두 이명박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고수하고 있는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과 방향이 똑같다.

그러나 조전혁 의원과 조선일보가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가정배경, 지역 특성 등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이다. 지난 3일, 한국교육개발원은 <고교별 대학진학률 차이와 그 의미>라는 제목의 정책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전국 189개 고교, 9300여명의 대학진학 실태를 분석한 결과, 학생들의 가정배경에 따라 진학률에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한 학생들의 평균 대학진학률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이 13퍼센트, 상위권 대학(서울의 명문대, 전국 의·치대 등)이 4퍼센트였다. 그러나 수입, 부모의 직업, 교육수준 등 학생들의 가정배경에 따라 다시 분석했을 때, 가정배경이 '상'인 경우 대학진학률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이 31퍼센트, 상위권 대학은 12퍼센트로 평균보다 3배 정도 높게 나왔다. 반면 가정배경이 '하'인 경우는 각각 2퍼센트, 0.2퍼센트로 대학진학률이 상당히 저조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5년간 지역별 수능성적을 통계청의 시군구 통계와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도 부모의 직업과 학력이 자녀의 수능성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능성적이 좋은 지역에는 부모가 전문직(기업 임원, 관리자, 의회 의원, 전문가 등)에 속하는 비율이 높았다. 수능 성적 상위 20개 시군구에서는 이 비율이 20퍼센트가 넘어 전국 평균인 16.8퍼센트보다 높게 나타났다. 부모가 전문대졸 이상인 비율도 전국 평균인 20.6퍼센트보다 5퍼센트 가량 높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수능 성적 격차에 대해서는 가정배경, 지역 특성, 학교 효과 등 종합적인 원인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성적이 높다고 학교 교육이 잘 이뤄졌다는 단순한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전혁 의원과 조선일보가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의 성공전략은 자세히 보도하면서도 평준화 지역에서 성적이 높게 나타난 학교들은 학교명만 나열한 것은 정치적인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1퍼센트를 위해 99퍼센트를 포기할 것인가

이제 학부모와 학생들은 공개된 수능성적을 기초로 진학할 고교를 선택할 것이다. 이는 특목고나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를 지망하던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올해 말부터 고교선택제를 실시하는 서울이나 이미 '선지원 후추첨'을 실시하고 있는 평준화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 학교명이 성적별로 공개된 마당에 지역 내 1위 학교로 지원이 쏠리고 꼴등학교는 기피하는 건 당연하다. 현재도 평준화 지역의 고교 간 선호도가 분명히 존재하고 지역별로 지원률이 50퍼센트가 채 안 되는 기피학교가 평균 2곳씩은 있다. 전남의 경우, 도교육청에 따르면 목포와 여수, 순천 등의 일반계 고교 배정 결과 목포 A고는 1지망 지원비율이 정원의 185퍼센트지만 여수 B고는 16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인 고교서열화는 학교 간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릴 뿐이다. 명문고와 시쳇말로 '똥통학교'가 명확히 갈리고 학업을 포기는 중하위권 학생들도 갈수록 늘어나게 된다. 지역별로 학력차가 심각한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능성적의 순위 공개가 아니라 성적 격차의 진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차이에 의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지역별 교육시스템의 차이라면 또 그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 문제는 소수의 1등급 학생이 아닌 대다수의 학생이다.

최민선/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