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3정태인/새사연 원장

철의 여인이 세상을 떴다. 한때,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국의 정치인은 그녀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영국 시민의 시선은 둘로 나뉜다. ‘역사로서의 현재’를 의식하면서 당대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는데, 특히 두 명의 켄은 신랄하다.  
 
먼저 그녀가 총리일 때 런던 시장을 지낸 켄 리빙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오늘날 주택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은행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녀는 실업수당의 위기를 만들어냈다. …실로 우리가 오늘날 맞고 있는 모든 현실적 문제는 그녀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일들의 유산이다.” 대처 스스로 최고의 초기 업적으로 꼽는 탄광노조 탄압을 소재로 한 영화, <케스>를 감독한 켄 로치는 더욱 독하다.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매에 올려 가장 싼 가격의 장례업체에 맡기자. 그게 그녀가 원했던 방식이니까.” 이 두 명의 켄은 죽은 자 앞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일까? 
  
마거릿 대처, 그녀는 지난 30년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그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그녀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일”은 지구 반대쪽, 한반도 남녘에서 재현되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겠다고 나섰다. 이유는 강성 노조 때문에 의료원이 “돈 먹는 하마”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영국민에게 남은 유일한 자존심, 국가의료체제(NHS)의 해체는 대처의 소원 중 하나였다. 
 
의료 부문에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은 케네스 애로의 논문 <불확실성과 의료의 후생경제학> 이래 경제학자들의 상식이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실패’가 다 관찰될 뿐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넘실대는 곳이 의료 부문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만리장성과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고 민간 의료보험 회사와 대형 병원은 ‘단물 빨아먹기(cream skimming)’로 돈을 벌 수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경우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MRI를 찍어야 하고 3일 입원해야 한다”라는 의사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가? 또한 치료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병원비를 미리 알 수 없으니 값싼 진료를 선택할 방법도 없다.  
 
반면 병원은 건강보험 비급여 부분(MRI나 초음파 촬영, 고급 병실처럼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 부분)을 늘려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민간 병원이 보통 병실의 장기 입원 환자를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시장 실패가 공공의료기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설령 시장이 훌륭하게 성공한다 해도 시장은 돈 없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예컨대 필수 약품 시장, 식량 시장은 시장 실패의 사례가 아니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에이즈 환자들은 약품을 살 돈이 없어서 죽어가고 북한 주민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시장의 ‘근본적 한계’다.  
 
대안이 있다면 내놓고 토론하라 
 
그러므로 시장 이전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필요를 정의해야 한다. 존 롤스가 기본재라고 부른 것, 아마르티아 센이 필수 능력이라고 부른 것, 바로 ‘공공성’이다. 공공성의 외연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사뭇 다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지금 정치적으로 합의해야 할 일인 것이다. 예컨대 “돈 없어서 굶어 죽으면 안 되고, 돈 없어서 치료를 못하면 안 된다”라는 합의는 시장보다 훨씬 앞선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는 평균 시청률 45%, 순간 시청률 75%를 기록했다. 홍준표 지사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 중 강우석 검사(박상원)의 모델이었다. 그는 1993년 슬롯머신을 수사하면서 카지노 업계의 대부 정덕진, 그리고 돈을 받고 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마저 구속시켰다.  
 
그의 눈에는 진주의료원의 노조가 조폭이고, 그를 말리는 보건복지부는 비리 상사로 보이는 것일까? 하지만 그가 지금 구속한 것은 국민이 합의한 공공성이요, 정치다. 물론 사회적 권리로서의 필요를 충족시킬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토론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정치를 시장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법도 능사가 아니다. 홍 지사는 이제 명백히 시대착오로 판명난 대처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 것일까? 의료 공공성을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충족시킬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것을 내놓고 의회와 토론하는 것이 바로 도지사가 할 일이다. 시장에 맡기면 그만이라는 건, 한 시대의 광신이었고, 그 우상은 이미 죽었다. 

* 이 글은 시사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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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4 / 3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3 세계의 시선(18) 자신의 국민과 싸운 '철의 여인' 대처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지금은 한 시대가 바뀌는 국면이다.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시대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정치가 마가렛 대처다. 지난 4월 8일 사망하면서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마가렛 대처는 1979년에서 1990년까지 연속 3선으로 영국총리를 역임하면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집권 시절에는 물론이고 사망 후인 지금도 사람들에게 지지와 비판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통화안정에 힘쓰고, 세금과 정부지출을 줄여야 한다. 법인세와 준조세를 줄이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기업이 활동하기에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민영화를 확대해야 하고,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며 노동 유연성을 늘려야 한다.”는 대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원형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계경제 침체는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시작된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온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케인스 전기를 써서 유명해진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대처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은 짧지만 종합적으로 대처 시대를 요약하고, 대처가 남긴 잘못된 유산들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내용을 제공해주고 있다. 

 

 

 

대처의 호전적인 영혼
(Thatcherism's Bellicose Soul)


2013년 4월 1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마가렛 대처는 20세기 평화의 시기에 영국의 가장 위대한 총리였다. 동유럽 공산주의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위기가 거의 동시에 도래했던 1980년대에 대처는 위대한 공적을 쌓을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큰 업적을 이루자면 강력한 리더가 필요했다.

 

소비에트 지도자 고르바쵸프와 대처의 우호적 관계는 냉전을 끝내는 길을 열게 된다. 그녀의 사유화 정책(privatization policies)은 어떻게 국가사회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부활은 언제나 레이건-대처 혁명으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대처는 또한 똑 같은 정책에 대해 찬사와 반대가 극명하게 나뉘는, 현대 영국 수상 가운데 가장 분열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정확히 표현한 것처럼 ‘신념의 정치인(conviction politician)'이었다. 확신이란 논쟁을 용납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다. 그녀는 일부러 타협하려 하지도 않고 대신에 정치적 세계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었다.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시스를 인용하면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실을 가져오면 된다”고 총리관저 앞에서 선언했다.

 

"승리에는 아량이 필요하다“ 윈스턴 처칠의 충고다. 대처는 용감하고 단호했지만 아량이라곤 없었다. 그녀는 유명한 승리자가 되었지만 말과 행동 모두에서 패자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 분쟁 속에서 화합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녀의 사명은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천성적으로 그녀는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추종자였다. 하이에크나 대처에게 있어서 20세기의 가장 큰 지적 오류는 국가가 개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국민의 상태를 증진시키는데 국가의 역할이 있다고 보았다면, 대처는 (국가의 개입이) 노예의 길로 서서히 빠져드는 것으로 인식했다. 대처의 이러한 메시지가 동유럽에 어떻게 퍼졌는지를 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처 방식의 역사해석에 따르면 영국의 경기침체를 초래했던 사회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노동조합의 수중으로부터 부의 창조를 위한 자극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착한 사마리아인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이전에 스스로를 돕기 때문에 칭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부흥을 위한 대처의 편협한 프로그램은 유럽대륙의 좀 더 규제적인 접근법과 그녀의 차이를 점점 더 벌어지게 했다. 1988년 벨기에 브루헤(Bruges)에서 ‘영국과 유럽’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며 그녀는 소리쳤다.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 초국가가 지배를 다시 강화하는 것을 보려고 영국에서 국가의 국경을 봉쇄한 것이 아니다”대처는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단일 시장 완성보다 초국가적인 연방주의적 방향으로 나간다고 확신하면서 이런 경향에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대처는 유럽 공동체의 초국가 기구가 점차 정책권한을 확대해 주권 국가들 대신 각국 정부들에게 간섭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처는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를 애매한 상태로 내버려두었고 이후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다.

 

물론, 여타의 약삭빠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대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 보류를 해야 하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재에 도달하기 위해서 항상 싸워 이기는 것을 선호했다. 그녀는 포클랜드 전쟁(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보여준 결정적 지도력 덕분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대처가 벌인 대부분의 싸움은 국내에서 자국민들과 벌인 것이다. 대처가 1984~1985년 광부파업을 분쇄하면서 자국의 광부가 적이 되었고, 1986년에 그녀가 폐지한 런던지방자치단체(Greater London Council)가 적이 되었다.

 

대처는 자신이 잡화상 딸이라는 초라한 신분임을 중시했고 영국의 도덕적 경제적 추락을 불러온 기득권층을 싫어했다. 그녀는 중. 서민층을 이해했고 그들과 물질적 열망이나 도덕적 편견을 공유했다. 임대주택을 싼 값에 매각하여 출세 지향적 노동자층에게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대처가 가장 성공적인 여성 정치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페미니즘을 ‘독’으로 간주했고 그녀를 추종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0년대의 점증하는 산업적 혼란에 대한 대처의 대답은 인플레이션을 끝장낼 ‘통화주의’이었고, 노동조합에 대한 법적 제제였으며, 비대한 공기업의 사유화였다.  이 세 가지 정책의 목표는 모두 국가의 권위와 경제적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북해유전 덕택에 대처는 영국의 상대적 경기하락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승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는데, 1984년에 실업률이 1930년대 이래 최고 수준인 12%(3백만 명)까지 올랐던 것이다. 선진국에서 성장세를 다시 만들어낸 대처주의는 사실 미래를 담보로 한 것이었다. 새로운 경제는 금융과 세대를 뛰어넘는 쇼핑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많은 영국인들이 대처를 존경하기는 했지만, 대처의 정책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세 번의 선거에서 연승했지만 보수당은 선거에서 43%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고 이는 보수당 지도자들인 처칠과 앤서니 이든, 그리고 맥밀리언이 1950년대에 받은 지지보다 낮은 것이다. 그녀의 재임기간 137개월 중에서 5개월 정도만 국정 지지율이 50%를 넘었을 뿐이다.

 

사실 경제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대처의 재임 기간 중  대처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나중에 그의 선교적 열정은 무시되었다. 대처의 권력은 야당의 분열과 소선거구제도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도 있었다.

 

대처는 자신이 정치적 프로젝트를 요약하여 제안했다. “경제학은 수단이다. 목적은 영혼을 바꾸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대처의 성과측정 기준이라면 그녀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처리즘은 실패했다.

 

대처가 촉진시켰던 경제의 금융화는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구매권(right to buy)' 정책(공공주택 입주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공주택을 매우 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일종의 주택 민영화 정책)은 주택가격의 상승적 악순환을 초래했고, 가계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빚을 지도록 부추겼다. 금융규제완화를 추진한 1986년 '빅뱅(Big Bang)'은  런던의 금융가 시티(the City)에 위험한 투자 행위들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개혁들은 모두 2008년 금융위기의 씨를 뿌린 셈이 되었다.

 

대처가 조성하려고 했던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가치“(근면, 자존, 검약, 이웃과의 친교 등 대처가 강조하고 보수당 강령에까지 집어넣은 가치들)는 대처 집권이 초래한 물질적 부에 대한 무제한 추구와 충돌했다. 대처가 건설하려고 했던 ’건전한 개인이익 추구에 기초한 도덕적 사회‘는 조악한 자존심에 기초한 탐욕스런 사회로 변질되었다.  
 

 

* 원문 게재 사이트: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margaret-thatcher-s-polarizing-politics-by-robert-skidel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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