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12.20 13:06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전체 유권자 3,765만 명 가운데 1,396만 명(37퍼센트)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1,149만 명(30.5퍼센트)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투표를 했다. 고작 617만 명(16퍼센트)만이 여당 후보인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중소기업 부흥과 비정규직 해소를 들고 정치 무대에 뛰어든 문국현 후보는 137만 표(유효 투표의 5.8퍼센트)를 얻는데 그쳤다. 전통적인 진보세력으로 자임해온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 당시의 97만 표(3.9퍼센트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71만 표(3.0퍼센트 득표율)에 머물렀다. 26만 표만큼의 절대적 수가 줄어든 것이다.


결국 37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유효 투표수 가운데 63.8퍼센트(이명박 + 이회창)가 보수 세력에게 투표를 하였으며, 34.9퍼센트(정동영 + 문국현 + 권영길)만이 범개혁진보세력에게 지지를 표시한 것이 이번 대통령선거의 최종 결과다.


현상적인 측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국민의 2/3가 보수화되었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노망든게 아닌가”하는 식으로 국민을 의심하는 것은 자족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털끝 만큼의 이익도 없다. 정작 국민은 개혁 진보세력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있는데, 반대로 그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불신하고 의심하고서는 어떤 민주주의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국민은 이번 대선 투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반독재 민주주의 시대는 종결되었다


사실 이번 선거결과는 우리 국민에게 이변이 아니다. 2004년 총선 이후 이어지는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1위였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이후, 같은 당 박근혜 후보와의 당내 경선이 실시되던 몇 달을 제외하면 지지율이 40퍼센트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여권은, 선거 국면이 가까워 오면 ‘반한나라당 세력’이 결집할 것이고 박빙의 승부가 재연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와 희망만을 키워왔다. 그러나 반한나라당 전선은 형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노무현정권 전선’만이 완고하게 굳어져 갔을 뿐이다. 우리 국민은 “한나라당 집권으로 그나마 이룬 민주화의 결실을 잃어버리겠는가”하는 과거 민주화세력의 협박성(?) 호소를 철저히 외면하고, “신자유주의 10년으로 사회 양극화와 경제생활의 어려움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고 하는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를 ‘노무현 정권 심판’으로 표현했다. 잃어버릴지 모르는 작은 민주화 성과보다 이미 잃어버린 경제적 어려움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컸던 것이다.


특히 그 욕구는 20대 젊은 층에서 컸다. 젊은 세대는 진보 개혁세력에게 지지를 몰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도대체 한나라당 통치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오직 자칭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한 정부 아래에서 힘겨운 대학생활과 취업난과 어려운 경제생활을 혹독하게 경험한 젊은 세대들에게 반한나라당 전선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실감이 나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젊은 층의 보수화’라고 하는 비아냥뿐이었다.


결국,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관통해 온 강력한 추진력이었던 반독재(반수구) 민주주의라는 동력은 17대 대통령 선거를 분기점으로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종결되었다. 더 이상 민주 대 독재, 민주 대 수구라는 구도는 한국정치에서 다수의 단결을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민주화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자


반독재 민주주의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욕구를 수렴하는 정치구도를 창출한 것은 불행하게도 진보개혁세력이 아니었다. 국민의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그들이 사분오열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 국민은 가혹한 심판과 외면을 통하여 새로운 상황을 강제하였다.


이제 과거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는 낡은 밑천을 내보이며 국민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는 압도적 다수 국민의 염원을 수렴하여 반신자유주의 민주화를 향한 새로운 변화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과거 민주화 세력 자신들이 주도하여 조성한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경제의 자주화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의제를 새로이 창출하고 이를 지향하고 실현할 수 있는 신진세력이 필요로 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의 계승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단절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사라져 가는 반수구 민주화의 전선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민주화 전선을 새로이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한국에 펼쳐진 신자유주의 시대야 말로 보수의 시대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진보의 시대다. 지금 남미에서 펼쳐지고 있는 진보정권의 득세가 그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기세등등하던 신자유주의가 종주국인 미국을 필두로 금융 불안 국면에 휩싸이고 경기 침체에 들어서는 등 그 어느 때 보다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이제 우리는 위장된 신자유주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진짜 신자유주의 정권을 보게 될 것이다. 진짜 신자유주의 정권 시대는 진짜 보수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진짜 진보의 시대로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신자유주의 정부시대에서는 더 이상 유약하고 절충적인 중간 세력이 설 자리는 없다. 그 만큼 국민의 생활은 절박하다. 사회의 양극화와 고용불안, 생계불안을 걱정하는 국민에게 온건한 대응은 ‘합리적 대응’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유약한 대응’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1970년대 이철승류의 유약한 야당이 유신독재의 엄혹한 상황에서 몰락하고 김대중, 김영삼 식의 강력한 야당이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았음을 상기해 보자. 특검에 행운을 기대하거나 시간의 촉박함을 이유로 다가올 총선에서 절충적인 대응을 한다면 오히려 더욱 엄중한 국민의 심판을 자초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천막 당사로 재기를 시작한 한나라당 수준의 힘겨운 가두정치를 다시 할 자세가 되지 않는다면 대통합 민주신당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질 것이다.


국민은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제문제의 해결을 이명박 정권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이를 더욱 확대된 신자유주의 해법으로 풀겠다고 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공약한 각종 규제완화는 사회 양극화와 경제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투표를 통해 표현된 국민의 의지는 다가올 이명박 정권에게 희망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새로이 거듭날 진보는 이 가운데에서 진정 우리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 수 있는 대안적 해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민의 삶의 현장과 생활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사회 변화의 주체를 형성해 내고 신진 주체가 신자유주의 대안을 실현할 중심으로 새로이 부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 국민 스스로가 경제 생활적 문제를 누구와 함께 풀어야 할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장된 신자유주의 세력을 대신하여 진정한 진보가 한국사회에서 새로이 탄생하게 될 것이며, 17대 대선이 국민의 패배가 아니라 진정한 국민 승리를 위한 토대가 될 여지가 여기서 만들어질 것이다. 희망의 씨앗은 의연히 국민 속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한국 경제의 구조변화에 주목하고 신자유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설립된 연구원이다. 새사연은 진짜 신자유주의 정권에 맞서 반신자유주의 민주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이명박식의 ‘개발주의 경제’가 결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진정으로 국민이 염원하는 신자유주의 대안을 찾아갈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반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연구원으로 오히려 뿌리를 탄탄히 내려가고자 한다.


김병권 / 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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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7.12.17 10:19
 

선거를 3일 앞두고 공개된 이명박 후보의 2000년 10월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대선 판도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검찰의 이 후보에 대한 면죄부 주기식 수사 발표로 해체된 듯이 보였던 BBK 뇌관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이 해체한 BBK뇌관, 동영상이 되살려


동영상에 대한 국민 반응이 심상치 않자 눈치 빠른 노무현 대통령은 BBK 사건 재수사 지휘권 검토를 지시했다. 이어 일요일 저녁 3차 대선후보 합동 TV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이명박 후보가 특검 수용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제 공은 특검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통합신당이 제출한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이 17일 또는 18일 중에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의 법안 공표에 최장 15일, 특검 임명 10일, 준비기간 10일, 수사기간 40일 등 길어도 75일 이내에 수사 결과가 나오게 된다. 차기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2월 25일 전에 수사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라는 변수는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BBK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보다는 연관된 각 정치세력들마다 철저한 정략적 이해타산 아래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검 둘러싼 정치권의 석연찮은 움직임


우선 통합신당을 비롯한 각 정당의 특검 추진 배경에는 특검법안을 내년 총선용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적 판단이 다분하다. 새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한달여 만에 치러질 총선 재료로 BBK사건을 써먹으려는 포석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정당은 없다.

노 대통령이 BBK 사건 재수사를 지시하면서 뒤늦게 특검을 수용하는 태도로 선회한 과정도 영 개운치 않다. 지난 5일 검찰 수사 발표 이후 국민 절반 이상이 수사결과를 불신하는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입을 굳게 다물어 왔다. 정동영 후보 측이 청와대에 검찰 직무감찰권 행사를 요구하자 청와대는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 논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을 회피했고 법무부장관은 "공정히 수사했다"며 일축해 버리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상황이다. 세간에 삼성특검의 수사 대상이 될 처지인 노 대통령과 BBK 사건으로 몰린 이명박 후보간에 ‘노명박’ 연대설이 나돈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우선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상황인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일요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 후보는 동영상 공개에 대해 ‘공작 정치’를 운운하며 ‘관련자 처벌’을 강하게 주문하는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투표율과 이명박 득표율, 향후 특검에 영향


이처럼 정치권이 제각각 당리당략에 급급한 상황에서 향후 특검 전개는 무엇보다 19일 선거 결과에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국민이 원하는 의제가 실종된 채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때보다 기권이 많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경우 낮은 투표율에 고정 지지층이 가장 확실한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 예상되던 상황이다.

물론 선거 막판의 동영상 변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보수화를 막을 확실한 대항 주자가 떠오르지 않은 탓에 당선자 윤곽이 달라질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 이명박 후보가 높은 득표율로 압승하면 특검은 이명박 시대 하에서의 각 정치세력간 이해득실에 따른 지분 싸움과 물밑 거래로 의미가 변질될 공산이 크다.

당장 특별검사의 추천권자는 대법원장이고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추천권자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간주되는 인물이자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사건의 1심 변호인이었다. 특별검사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스스로 주도적으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었고 광운대 동영상 공개 전까지 ‘노명박 연대’의 의혹을 받고 있던 당사자다.


19일 ‘선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결국 특검의 정략화나 정치적 야합 가능성을 봉쇄하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적극적 참여와 감시의 발동이다. 19일 투표율을 높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투표 참가율이 높을수록 그리고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이 적으면 적을수록 선거 후 진행될 특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감시의 눈길이 매서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는 사표 심리의 부담에서 가장 자유로운 선거라 할 수 있다.


투표는 19일에 끝나지만 대선 본선전은 이날부터 시작이다. 야합과 혼돈, 경제적 불평등과 국민 배제의 신자유주의식 정치를 심판하고 새시대 민주주의의 과제를 열어갈 국민의 참여는 이날부터 새로이 깃발을 올린다.


정희용 condol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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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7.12.13 14:36

 

지난 11월 29일 새사연은 <2007년 대선시기 국민주권 실현을 위한 언론의 의제 설정>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아래 글은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강택 KBS PD의 발제문이다.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이 대안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2007년 대선의 원인을 필자는 한국언론의 ‘퇴행’이라는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른바 조중동의 헤게모니가 붕괴된 신문영역과 적어도 기계적 중립의 수준을 유지하던 방송영역이 5년이 지난 현재 오히려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1. 들어가며 - 2007 대선국면의 가능성과 한계


올해 대통령 선거는 꽤 오래 전부터 진보진영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종언과 그에 따른 사회 정치세력의 전면적 재편을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권과 그 주위에 포진한 ‘386’들에 의해 지난 10년간 펼쳐진 ‘개혁’의 실체가 국민 대다수의 사회 경제적 처지를 극도로 악화시키는 종속적 신자유주의의 심화과정에 다름아니었음이 삼척동자의 눈에도 명확해짐으로써 범여권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급격한 몰락이 예고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정권 심판”의 기치 하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쫒겨난 빈 공간을 두고 수구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 일대격돌이 벌어지는 형세, 그 쟁투의 성공 여부에 따라 최소한 천하를 3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에 내재한 그 가능성은 적어도 현 시점까지는 조금도 현실로 전화되지 못했다. 여타 정치세력들이 돌아가며 엄청난 실수를 거듭해주지 않는 한 향후의 행로 역시 무망해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마땅히 다양한 각도와 측면에서, 그리고 다양한 심급에서 정밀하게 이루어져야할 것이다.(예를들어 최근 최장집 교수가 공개적으로 제기한 “정당없는 민주주의” 관점에서의 비판1), 민주노동당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정파적 리더십’ 문제, 주체역량의 한계와 갖가지 전술 차원에서의 오류...) 그러나 주지하듯이 자유주의자들이 몰락해 생긴 공간을 수구보수 정치세력이 오롯이 전유한 채, BBK 관련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명박 후보가 건재하고 범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60%를 넘나드는 작금의 판세는 매스미디어 영역의 현황과 그 퇴행적 작동 메카니즘을 포괄해볼 때에만 설명가능한 현상이다.

지난 2004년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명분 하에 정치관계법이 개정된 후 치러지는 첫 대통령 선거요, 한국판 미디어크러시 시대의 본격개막을 알리게 될 이번 대선에서 한국언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필자는 우선 2002 대선시기와 이번 대선국면에 있어서 언론의 보도 양상을 비교검토함으로써 한국사회에 갓 제도화된 미디어크러시가 그 출발부터 실패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에서 오히려 퇴행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아울러 그것이 우리사회의 진보정치세력에게 향후 어떠한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2. 퇴행의 메카니즘 - 2002년과 2007년의 사이

 

1) 신문영역


우리나라의 언론매체들에게는 지지후보 공표가 금지되어 있다. 더구나 선거법 8조는 모든 매체들에 대해 유례없이 강력하게 ‘공정보도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2) 하지만 주지하듯이 신문업계의 현실은 너무도 역설적이다. 특히 신문여론시장의 2/3 이상을 점하는 수구보수 색채의 이른바 ‘족벌신문’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한나라당의 선거전략과 맞물려 돌아가도록 의제설정력을 구사해왔다. 따라서 몇 개의 신문들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한나라당의 대선공학에 결합하는가와 여타 신문들이 어느 정도나 그 헤게모니를 견제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ㄱ) 2002년, 조중동 헤게모니 패턴의 붕괴

‘족벌신문’이 내보인 정파성의 압권은 12월 19일자 조선일보의 사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였다. 선거일을 불과 1시간 반 앞두고 발표된 공조파기에 대해 정몽준도 버렸으니 유권자들도 노무현을 버리라는 선동으로 일관한 이 사설은 조선일보가 사실상 한나라당의 기관지임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역시 <노 “차기 대통령 정몽준 힘들다” 발언> 등 사실과 다른 내용과 밀약설 등을 동원하며 일찌감치 공조파기를 유도하는데 전력투구했다. 그 외에도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한 흠집내기, 이회창 후보가 우세할 때는 지지도만 공표하다가 노무현 후보가 지지율을 역전시키자 ‘당선 가능성’을 부각시킨 여론조사 보도, 북한이 중유지원 중단에 따른 전력수급을 위해 핵시설 가동 의사를 밝히자 사실확인도 없이 대대적으로 북의 위협을 과장했던 북풍몰이, 지역별 판세분석을 가장한 지역감정 유발3)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하지만 노-정 공조를 계기로한 문화일보의 선회, 중앙일보의 일정한 거리두기,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대한매일 등의 효율적인 견제4) 등이 어우러지면서 신문영역 내에서조차 ‘조선일보의 의제설정 → 여타 신문의 따라가기’ 구도가 붕괴되는 양상을 보였다.


ㄴ) 2007년, 조중동 헤게모니 패턴의 부활

올해 대선보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양상은 정책검증보도가 일찌감치 실종된 반면 유난히 자주 실시되는 여론조사보도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필자조차도 어느새 그에 길들여져 매일 여론조사 수치를 확인하지 못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을 가지게 될 정도다. 다른 유권자들이 누구를 찍으려고 하는가 외에는 아무런 유용한 정보도 포함돼 있지 않으며 전형적인 경마 저널리즘 양태로 지목받는 여론조사의 홍수는 그 어느 매체보다도 빈번하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의해 실시되며, 큰 비중을 가진 기사로 부각되고 있다.5)

그 질은 더 더욱 문제의 소지가 많다. 이미 알려진대로 전체 가구의 60%도 안되는 가정전화를 통해서 가정주부 층의 의견이 30% 이상 반영되고, 그나마도 평균응답율이 20%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동일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아무런 단정도 내려서는 안 되는 오차범위 내의 변동에 대해서조차 무리하게 자의적 해석이 가해진다. 선진 대의제 국가에서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저널리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6)


왜 수구·보수 신문들은 2007년 대선에서 유독 여론조사보도에 올인하는가? 누구나 짐작하듯 그 배경은 한나라당의 대선전략과의 조응이라는 관점에서 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의지에 편승해 ‘유능한 보수’로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이명박 후보를 내세워 기선잡기 → 압승 전략을 펼치고 있는 한나라당의 공학에 부응 공조하려면 여론조사 수치를 통한 대세론의 유포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른바 승자편승효과(Bandwagon Effect)를 유도하기 위해 보도를 가장한 정치공작이 실행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김경준의 귀국으로 BBK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여론조사보도를 활용한 수구보수 신문들의 정치공학은 다음 사례에서 보듯 더욱 점입가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BBK 상관없다, 이명박 대세론 강조”

김경준씨가 귀국한 후, 일간지들에서 실시한 첫 여론조사.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1주일새 고학력층, 서울에서 10∼7%p 이탈하여 모든 여론조사에서 40%선이 무너진 상황 그리고 이 후보 지지층 가운데 BBK 주가조작 연루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지후보를 바꾸겠다고 밝힌 응답자가 3명 중 한 명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조선과 동아는 BBK와 관련된 여론조사 결과 보다는 이명박 후보의 여전한 지지율 1위에 초점을 맞춘다.

조선일보는 6면에 <1,2위 후보 격차 13.9%p에서 20.3%p로 벌어져>라는 기사를 통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여전히 2위와 두 배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동아일보도 <주요 후보 선호도 큰 변화 없어>에서 이명박 후보가 1위를 고수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며 김경준씨가 송환되었어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는 변화가 없음을 강조한다.

- 11/19 여론조사보도 관련 대선미디어연대 모니터 중에서 -


그뿐이 아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이 일병 구하기’는 “2002년 김대업 폭로=무혐의, 따라서, 2007년 김경준 증거=무혐의”라는 유치원생 차원의 등식을 제기하며 김경준의 범죄경력을 부각해 그의 증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려 검찰을 겁박하는 것도 모자라 그 동안 스스로 외면해왔던 정책검증의 실종을 우려하는 차마 웃지못할 촌극을 초래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들이 정책보도를 해왔다고...


“D-32 대선, ’BBK 늪’ 속으로”

대선 코앞인데 정책검증은 실종

...특히 반 이명박 진영이 이후보의 BBK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며 대선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대선게임은 진흙탕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대선을 32일 앞두고 유권자의 심판이 필요한 정책검증 등 다른 이슈들은 모두 ‘BBK 늪’에 빠져 실종된 상태다.

- 조선일보, 11월 17일 1면 -


“정책은 없고 ‘검찰’만 남은 대선 정국”

기자의 눈

…대선을 한 달 앞둔 지금도 정책적 쟁점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한 고참 검사는 “제발 유권자들이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나 피의자의 입이 아닌, 정책을 말하는 ‘후보의 입’을 바라보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11월 19일 34면 -


그러나 문제는 2002년과 달리 중앙일보와 문화일보 등 대부분의 일간지 역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맹목적 여론조사보도를 앞세운 대세론 유포와 BBK 등 검증 흐리기 프레임에 시종일관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국민일보의 행태도 예사롭지 않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의 고군분투가 외롭게 펼쳐지고 있을뿐 조중동 헤게모니 블록이 강고하게 복원된 것이다.


2) 방송영역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복무했던 과거사, 수상기 보급 1,800만 대로 상징되는 막대한 여론 전파력, 공영방송체제 하에서 강조되고 있는 정치적 중립의 의무 등의 조건 속에서 방송은 신문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제설정력의 발휘가 제한돼왔다. 하여 스트레이트 중심의 단편적 보도, 기계적 중립, 선거운동 스케치와 판세분석, 모든 논란을 정당간 공방과 정쟁으로 폄하하는 등 전형적인 경마식 보도의 관행이 뿌리깊게 배태돼있다. 하지만 설사 그러한 한계를 감안한다 해도 2002년과 2007년의 행태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ㄱ) 2002년 - 기계적 중립과 극복의 시동

KBS는 철저히 기계적 중립에 위치했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으되 과거 수구보수적 논조로 일관해온 이력을 감안하면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제법 큰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중동의 의제설정 → 방송에 의한 전파라는 구도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론사적 의미 또한 작지않다.7) 게다가 MBC의 경우는 부분적으로나마 조중동이 설정한 프레임을 넘어 적극적으로 의제설정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예를들어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MBC 뉴스데스크는 무력충돌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북한에 전가할 수 없으며 그 근본적 배경에 NLL의 문제가 잔존해 있음을 제기함으로써 수구세력의 북풍몰이를 차단하고 사회적 공론의 지형을 바꿔내는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기계적 중립을 넘는 적극적 의제설정 기능은 <PD수첩>을 필두로 한 PD저널리즘에 의해 지속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 인터넷 언론의 추적을 이어받아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의 진실을 전파, 새로이 사회적 의제를 설정했는가 하면 그 흐름을 한미행정협정 개정으로 이어가 대선정국에서의 미국변수를 묶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8) TV토론 역시 민주노동당 후보의 참여를 이뤄냄으로써 진보의 목소리가 당당히 직접 공론장에 진출하는 전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ㄴ) 2007년 - 기계적 중립으로의 회귀(?)와 선정주의 

방송영역에서 행해지는 올해 대선보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PD저널리즘의 현저한 위축이다. 비정규직 사태, 교육과 의료 양극화, 부동산 등 현재 한국사회의 핵심현안들에 대해 모든 프로그램들이 거의 침묵을 지켜왔다. BBK 문제가 제기된 지 1년이 다 돼가도 계속 외면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일부 신문의 보도를 전재하는 수준에서 뒤따르고 있을 뿐이다. 미국 대선에 대해서는 특집을 하면서도 국내 대선에 대해서는 아무 시도도 하지 않거나(KBS스페셜), 기껏 한다는 것이 여론조사를 중심으로한 흥미성 예측 프로그램이다(추적60분). 정책검증도, 후보검증도, 사회현안에 대한 진단도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9) TV토론 역시 사전에 질문이 조정된 ‘약속대련’에만 응하는 이명박 후보의 태도와 이회창 후보의 기피를 수수방관함으로써 최소한의 검증기능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자신의 역할을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토론회의 중계에 국한시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존 정치부나 정치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뉴스보도 역시 안전한 기계적 중립의 틀 내에서 정책검증 시리즈 몇 회 정도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수준에 그칠뿐 ‘유능한 보수’와 ‘무능한 중도우파’, ‘현실성 없는 진보’ 등 정치권 공방 속에서 만들어진 고정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표층보도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최근들어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에리카 김 인터뷰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의 “MBC 민영화” 협박이 이어지면서 그 충돌의 귀추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3) 인터넷 영역- 자율공간에서 박제화된 제도영역으로 


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은 자유와 창의의 신공간이었다. 형식적 공정성의 의무와 기계적 중립 관행으로 박제화된 제도권 언론을 넘어서는 주체와 자율의 신세계였다.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댓글과 UCC가 넘쳐난 참여의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애초부터 보수기득권층의 담론 헤게모니가 존재하지 않았고 능동적 여론형성, 전파의 역능은 당초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그러나 2007년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익 사이트의 대거진출과 포털의 장악, 제도영역으로의 편입에 따른 공정성의무 부여와 실명제 실시 등에 따라 이미 박제화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수익모델의 미비에 따른 운영난과 주체역량의 미숙, 일부 사이트의 눈에 띄는 정치적 행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격하게 대응력이 저하돼있다. 표현의 자유와 참여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실명제에 대해서도 일부 사이트들이 자진폐쇄라는 지극히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3. 미디어 선거의 실패, 그 실천적 함의 


결론적으로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 사이 진보진영의 정치적 위축의 배경에는 정치 사회운동적 차원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미디어 선거의 실패 내지는 미디어를 통한 실천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는 앞으로도 순항하기 어려울 것임이 분명하다.


우선, 첫 번 째로는 이른바 미디어 중심 선거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본질적 속성 상 숙의의 기능보다는 이미지의 재생산과 전파기능에 적합한 TV 등의 매체를 중심으로 할 때 과연 유권자 내지는 대중에게 충분한 정보가 전달될 수 있으며, 그들과 바람직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과연 얼마나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가?

더구나 정책의 내용과 자발적인 동원에 최대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운동에 있어서 대중과의 직접 대면접촉을 극도로 제약하고 대중의 자유로운 참정권을 봉쇄하는 현행 미디어 선거가 과연 유리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다. 최소한 과도한 규제를 푸는 정도에서라도 선거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언론미디어운동의 재조직화 필요성이다. 2007년 대선국면에서 미디어가 보여주는 갖가지 한계와 오류는 결국 현행 언론구도와 그 영역에 종사하는 성원들의 총체적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성향과 자질, 사주의 통제, 각종 제도적 통제장치와 상업적 구도, 현재까지 진행된 언론운동의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진보진영은 과연 충분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새로운 차원의 미디어운동은 이제 더 이상 언론영역 종사자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진보진영 전체의 차원에서 떠안아야할 과제로 제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삼아 덧붙이자면 대의제선거 전반에 대한 이해와 준비의 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져야한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미디어선거라 해도 언론의 의제설정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최장집 교수가 이야기하듯 근본적으로는 정당구조에 의한 공급의 제약을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과연 대의제적 정치실천을 위해 얼마나 정치적, 정책적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체계와 전술을 구비하고 있는가? 아니 대의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합의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은 진정한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한 도정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


이강택(KBS PD)


<각주>

1) 선거시장에서는 유권자들의 수요가 사전에 존재하는 것에 앞서 공급측면에서의 정당의 대안구도가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사회경제적 핵심이슈를 선거경쟁의 중심이슈로 삼는 선택의 구조로서 정당체제가 부재하며, 민주노동당도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최장집 교수 비판의 핵심내용이다.

2) 대부분의 서구 대의제국가에서는 한국처럼 언론기관의 공정보도 의무를 선거법에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다.(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경우가 예외이긴 하나, <허위사실을 기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기재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여 선거의 공정을 침해하여서는 안된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치고 있다.

3) 예를들어 12월 16일자 동아는 <광주, 그래도 민주당><무대 뒤의 지역감정> 등의 기사에서 일견 지역감정을 개탄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 호남지역에 지역감정에 대한 책임을 씌우는 수법을 보여주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은주,2003, <2002 대선보도 이대로 좋은가> 참조

4) 선거 막판 한겨레는 <미 중유 중단으로 전력차질, 원전 재가동 밝혀> <미국 협상탁자로 유인 노린 강수> <국제법도 아랑곳 않는 미국> 등 일련의 기사로 조선의 북풍공세를 무력화시키는데 기여했다.

5)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책검증보도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경향의 경우 여론조사와 관련된 기사는 지면에서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과연 어느 쪽이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 유용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가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경마식 보도와 검증보도는 취재 및 지면구성에 있어서 상호대체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

6)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하여 외국언론들은 매우 엄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BBC의 제작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 단순히 여론조사 결과로 뉴스 보도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서는 안된다.
- 조사결과를 머릿기사로 뽑아서는 안된다.
-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이나 그것을 발주한 신문, 잡지사가 제공하는 조사결과 해석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질문내용, 결과 그리고 추세에 주목해야 한다.
- 여론조사에 필요이상으로 신뢰도를 더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7) 물론 상업방송인 SBS의 경우 기계적 중립에도 못미치는 구태를 자주 반복한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추후 서술할 MBC의 적극적 보도태도를 감안할 때 2002년 대선에서 방송보도는 전반적으로 기계적 중립 정도는 넘어섰다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8) “방송 덕분에 당선될 수 있었다”던 노무현의 사후고백은 이런 견지에서 결코 과장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9) 그 배경에는 황우석 사태의 여파로 인한 탐사보도프로그램의 전반적 위축, 광고사정의 악화와 시청률 압박에 따른 방송사내 입지의 축소, 보수세력의 집권 가능성 증대에 따른 눈치보기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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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