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2정태인/새사연 원장

나이가 들다 보니 해가 바뀔 때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툭툭 끊는 것도 마뜩찮은데 그 단절에 의미까지 부여해야 하다니. 요 몇 해동안의 곤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건 지난 열흘, 8개월간 굶은 술을 한꺼번에 마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이하랴. 세월이 먹여 준 나이를 거부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패배했다. 새사연이 지난 2년간 줄기차게 쓴 것처럼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앙시앵레짐의 종말을 고했지만 새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긴 구체제란 그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후,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고 인정하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나 출간되었고 역사적 흐름을 추적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1944년에나 세상에 나왔다. 현실에서도 루즈벨트가 '뉴딜'을 내 건 시점은 1933년이었으니 이제 4년이 막 지난 시점의 한국에서 극적인 전기가 열릴 것을 기대한 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현실이 더딜지라도 시간은 흐르고 새 시대는 열린다. 그 방향 역시 분명하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개별 이익이 맞부딪히는 사회적 딜레마를 시장이 아름답게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붕괴했다. 그런 세상은 수학의 가정 속에나 존재하며 인간은 서로 협동할 때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최근 번역된 노박의 "초협력자"는 인간이라는 미미한 생물체를 강력한 종으로 만든 것은 바로 협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난 30년은 진화의 법칙을 무시한 시대였다. 하이예크의 '치명적 오류'는 오히려 시장만능론에 적용되어야 한다. 아니 백보 양보하더라도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가, 어느 나라가 더 빨리 새 시대를 여느냐에 운명이 갈린다. 아니 '기후온난화'라는 전 인류가 겪고 있는 '공유지의 비극'은 전 세계가 협동할 때만 해결할 수 있다. 내 옆의 '모르는 남'을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새 시대는 열린다. 물론 신뢰는 목숨을 건 도박일지도 모른다. 배반당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남을 불신하고 오로지 경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더 확실하게 세상은 붕괴한다.

어떻게 해야 서로를 믿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새사연이 앞으로 연구할 주제 중 하나에 틀림없다. 추상적인 방향을 정책과 제도로 만들고 어느 덧 사회규범이 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방향이 확실하다면 새로운 사회도 열릴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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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어떤 후보가 위기탈출을 시행할 진정한 뉴딜을 할 것인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8년 터지고 학자들이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부르는 위기가 계속된 지 만 4년이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 위기가 끝날 조짐은커녕 10년 이상 장기 불황이 예견된다는 발언들만 줄을 잇는다.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견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자영업푸어, 렌트푸어, 에듀푸어 등 갖가지 이유로 가난해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일시적인 부양책이나 임시 일자리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진짜 뉴딜’을 하여 불황을 탈출해야 한다. 과연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불황을 탈출할 강력한 뉴딜을 준비하고 있을까? 어떤 후보가 더 개혁적인 뉴딜을 할 수 있을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오바마보다 더 개혁적인 이유는?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서 뉴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어떻게 불황을 탈출했는지를 잠깐 살펴보자. 당초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취임하면서 내놓은 제 1단계 뉴딜 정책들은 그리 개혁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개혁 보다는 경기부양정책 쪽에 가까웠다. 대표적으로 1933년 입법된 전국산업부흥법(NIRA)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 협상”을 인정(제 7조)하는 개혁 내용도 포함했지만, 대부분은 대기업의 요구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토목사업국(CWA)등이 추진하는 고용촉진 프로그램 역시 대부분 임시직 일자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 5년차로 접어들어선 1934년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난다. 풀뿌리 대중운동과 노동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34년은 미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인 파업이 있었던 해로 기록되는데, 거의 150만 명의 노동자들이 1800여 건의 파업에 참여했다. 미니에폴리스에서는 수천 명의 트럭운전사들이 500여 명의 기업주 용역에 맞서 거리에서 유혈전투를 벌였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항만노동자들이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맞서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메인에서 알라바마에 이르기까지 미국 남부지방에서 약 35만 명의 섬유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노동자들의 저항과 대중들의 비판적 시선은 당초에 노동조합에 별 관심도 없었던 루즈벨트 정부로 하여금 강력한 개혁안을 담고 있는 두 번째 단계의 뉴딜정책을 착수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제 2단계 뉴딜은 노동대중의 소득과 구매력을 향상시켜 수요를 촉진시키는 정책 수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 대표적인 법안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협상권을 명문화시키고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히 금지하여 노동자의 협상력과 권한을 대폭 확장해주었던 전국노동관계법(NLRA; 일명 와그너법; Wargner Act)이다. 또한 공공사업촉진국(WPA)은 기존 임시 일자리를 지속적인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거의 50억 달러에 가까운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다. 또한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 처음으로 만들어져 노인연금과 실업보험, 그리고 아이들을 둔 빈곤여성지원등을 시작했다. 이렇게 전국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은 모두 1935년에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시민이 움직이야 진정한 뉴딜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1935년부터 제 2단계 뉴딜이 나오게 된 배경을 요약하면 무엇인가? 당시의 루스벨트가 지금의 미국 대통령 오바마 보다 훨씬 개혁적이라거나 노동 친화적이어서가 아니다. 1934년에 폭발했던 대규모 노동운동과 대중의 압력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개혁으로 끌고 간 것이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점령운동의 긍정적 압력을 받아 다시 슈퍼 부자 증세를 강력히 들고 나오면서 개혁방향을 다소 강화시킨 것과 유사하다. 다만 월가 점령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오바마에 대한 개혁 압력도 다시 풀어졌다. (Jacob Kramer(2012), "Occupy Wall Street and the Strikes of 1933-34")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1935년에 루스벨트가 추진한 전국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 입법을 우리 용어로 풀어보면, 경제민주화(노동권 강화)와 보편복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유력 세 후보 모두 경제 민주화와 보편복지를 하겠다고 하는데 진정성을 알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혁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시민의 힘, 노동자의 힘이 원천이다. 대통령 선거가 점점 다가 오는데, 시민의 실제적인 움직임은 없고 사회운동도 미약한 가운데 그저 어느 후보가 더 개혁적일지 답답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답답한 것은 대선 후보가 아니다. 지금의 현실이다. 시민이 움직여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뉴딜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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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6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미국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 롬니 후보의 감세 주장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세계경제가 다시 흔들리면서 그린스펀(Greenspan) 전 연준(Fed) 의장조차 “전 세계적 불황이 우려된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 전개되자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기회복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1% 부유층에게 집중되고 있는 부를 재분배하여 중산층에게 돌려줌으로써 중산층의 구매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요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1929년 대공황 이후에 공황 극복을 위해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정부가 시행했던 과감한 정책들, 1)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들, 2) 실업 보험을 포함한 사회 안전망 제정, 3) 공공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 4) 대형 사회 인프라 구축 계획, 5) 강화된 조세 제도, 6) 금융 규제 제도 등을 들고 있다.

어찌 보면 현재의 위기가 실질적으로 1929년의 대공황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1929년 당시와 달리 2008년 이후 신속하게 취해진 각종 구제 금융과 경기부양책이 단지 위기를 지연시킨데 머무른 것이었다면, 위기를 타개하는 해법들도 명실상부하게 1929년 이후에 실행되었던 대규모 조치와 견줄 수 있는 그런 혁신적인 해법들이 제시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약간의 경기 자극정책’ 이후 소란스런 ‘긴축’과 ‘통화 완화’정책이 사실상 전부였다.

특히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협상권을 명문화하여 보호하고 사용주들의 부당노동행위를 적극적으로 금지하여 ‘노동자 권리장전’이라고 불렀던 1935년의 ‘와그너법(Wagner Act)’을 위기 극복의 주요 대책으로 거명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립성을 가진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해주면 이들이 이윤의 적정한 분배를 요구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경제사정이 호전되어서 시장에서 높은 구매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와그너법은 기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임금 깎고 파업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결권을 보장해줘서 임금 올리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불황 타개책이라는 것이다.

아래 소개하는 로버트 라이시의 글은 1929년 대공황과 그를 극복해왔던 일련의 정책들에서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인 암시를 주고 있다.

 

경기회복 여부는 중산층의 구매력에 달렸다

(Recovery depends on middle-class spending power)


 

2012년 6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게이트(www.sfgate.com)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현재 미국 경기 회복세가 매우 부진한 원인은 단순히 유럽의 부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구나 우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업이나 부자들에게 물리는 세금이 너무 높다거나, 빈곤층에게 주는 사회 안전망이 너무 관대하다거나, 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심지어는 오바마 행정부가 케인즈주의적 경기 부양정책을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도 진정한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회복부진의 진짜 원인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그것은 미국 경제활동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소비자들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만큼 충분히 소비 할 현금이 없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2008년 위기 이전에 했던 것처럼 더 이상 부채를 동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시 의심스러우면, 연준에서 발표한 소비자 금융조사 결과를 보라. 중위 가구 소득이 2007년 49,600 달러에서 2010년에 45,800달러로 7.7%가 감소한 것으로 나와 있다.

경제성장에 따른 모든 소득은 1% 부유층에게로 집중되어왔고, 그래서 부자가 된 그들은 벌어들인 소득의 절반도 소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내에서 소비하지 않은 나머지 소득으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찾아서 투자한다.

2차 대전 후 30년 동안에는 미국 중산층의 소득 증가가 미국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최근 수십 년 동안 중산층의 상대적 소득 부진이 미국 경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세계화와 자동화는 중위 임금에 대한 하방 압력을 높였다. 사용주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파괴했다. 규제가 풀려간 금융시장은 실물경제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부분 가정에서 임금은 고통스럽도록 조금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가정 소득을 지탱하기 위해 임금 노동의 대열로 뛰어들었다. 실직을 하게 된 가정들은 주택 값이 올라가고 있었기에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부채를 늘려갔다. 그 때 주택거품이 터졌던 것이다. 연준의 가장 최근 보고서는 주택거품 붕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서 2010년 사이에 미국 중위 가구의 순자산 가치는 거의 40%가 떨어져서 1992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전형적인 가구의 자산은 주식이 아니라 주택인데, 2006년 이후 주택가치가 3분의 1 까지 떨어졌던 것이다.

미국경제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중인데, 그것은 미국 중산층들이 여전히 바닥에서 탈출할 만큼 충분한 소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단기적으로 보면 바닥에서 뒤로 미끄러지지 않기만 바랄 뿐 경기회복의 단순한 해법은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경제성장으로부터 발생하는 결과를 중산층들이 훨씬 더 많이 갖도록 하는 것이 해법이다.

어떻게?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1920년대에도 전 기간 내내 소득은 최상층에게 집중되었다. 1928년까지 1%부자들의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94%까지 올라갔다. (2007년에 다시 1% 소득 비중은 23.5%에 근접했다.) 바로 그 시점에서 거품이 터지고 대공황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미국은 사용자들에게 조직노동자들과 신뢰의 협약을 요구하는 와그너 법(Wagner Act)*을 만들었고 사회 안전망과 실업보험을 도입했다. 공공사업국(Works Projects Administration)과 시민보전단(Civil Conservation Corps)**을 만들었다. 최저 임금제도를 만들었다. 금융에서는 증권법과 글래스-스티걸법을 만들었다.

1941년에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신체 건강한 미국 성인들이 대규모 동원되었고 그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에 따라 퇴역하는 수백만의 군인들을 대학에 보냈다. 고등교육을 받은 거대한 층이 형성된 것이다. 1956년 전미주계간방위고속도로망법(National Interstate and Defense Highways Act)과 같은 법으로 인해 대규모 인프라투자가 시행되었다. 부자에 대한 세율은 1981년까지 최소 70% 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결과 1957년까지 1%부자의 소득비중은 전체 소득 가운데 10.1%로 떨어졌다. 세계사에서 가장 호황기를 누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던 중산층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소득이 분배되었다. 이제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생산성이 향상되는 수준 이상의 분배 몫을 주장하기위해, 2차 대전 이후 30년 동안 중산층이 보유했던 협상력 수준을 다시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기 바닥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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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와그너 법(Wagner Act): 정식명칭은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이다. 1933년에 제정된  노동권을 보장한 전국산업부흥법이 오히려 노동분쟁을 촉발하자 1935년 상원의원 R.F.와그너가 제안하여 만들어진 법이다.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였다. 이 법률로 말미암아 미국의 노동자 권리와 노동운동은 획기적인 발전을 보았다.

** 공공사업국(PWA; Works Projects Administration)과 시민보전단(Civil Conservation Corps): 1933년 6월 공공사업국이 발족되어 도로와 학교 건물과 같이 단순한 토목 건설 공사부터 댐, 전함, 잠수함과 같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을 담당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크타운(Yorktown)과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항공모함도 PWA 프로젝트였다. 또한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들로 시민보전단(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을 조직해 조림, 산불감시, 산림휴양 공간 조성 등 산림사업에 투입하여 3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오늘날 애팔래치안 트레일과 요세미티 옐로스톤 숲 등 아름다운 국립공원은 이러한 사업의 산물이다.

*** 제대군인원호법(GI bill): 미국의 퇴역군인들에게 교육, 주택, 보험, 의료 및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1944년에 개시한 제반 법률과 프로그램 등을 말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돌아온 퇴역군인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고 미국의 노동인구(work force)를 증가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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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12.12 14:35

2009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공방이 치열하다. 민주당은 대운하 의심사업으로 분류되는 예산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 관련 예산 삭감을 공언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제1야당답지 않게 12일까지 합의처리해 주겠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유선진당, 친박 연대와 공조해서 감세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모두 포함된 예산안 통과를 강행할 태세다. 소수 정당인 민주노동당만이 “감세 법안이 미치는 영향과 내년도 예산에 주는 피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급하게 처리하면 안 된다”며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마이너스 경제시대에 국가예산 함부로 처리하는 국회

예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국회의 예산처리과정을 보면 아직 정치인들이 경제의 심각성에 대해 말과는 달리 전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지금 고용, 소비, 수출, 경제 성장률이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질 정도로 경제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향후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시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구축된 경제시스템이 다시 한 번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시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 예정되어 있는 와중에 시장 메커니즘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상태다. 이미 외환시장에 시장은 없으며 자본시장과 채권시장도 사실상 멈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때문에 현재 실패한 시장을 대신해서 다시 국가가 경제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1970년대처럼 국가가 수출주도형 경제를 창출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 세계적인 소비위축으로 수출시장 자체 규모가 절대적으로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는 내수를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가용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불황으로부터 가장 빠르게 탈출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수출 못지않게 우리의 내수기반 역시 구조적으로 대단히 취약해져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내수를 살려야 할 절박성이 역사상 가장 크게 대두되는 시점이며 국민적 동의를 가장 폭넓게 얻을 수 있는 시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내수기반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구조전환의 기회일 수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는데 감세라니? 무모함의 극치

현재는 전 세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부채와 자산 축소과정이 진행되고 있고, 유동성 부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의존해서 경기회복을 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는 11월 수정예산안에서 2009년 예산을 283조 8,000억 원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동시에 감세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세금을 줄이면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빚을 내는 것이다. 당연히 정부는 2009년에 17조 6,000억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외환위기 시기의 발행된 적자국채 10조 원을 훨씬 넘는 금액이다.

그런데 여기 중대한 문제가 있다. 2009년 경제성장이 제로 성장에 접근할수록 감세를 하지 않아도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경제성장률을 5퍼센트로 가정하여 세금 수입을 179조 6,000억 원을 잡았다가 11월 3일 수정예산안에서 성장률을 4퍼센트로 하향 조정한 뒤 세금 수입을 177조 7,000억 원으로 변경했다(국회예산정책처, “2009년 수정예산안의 경제적 효과 분석”, 2008. 11).

단순한 산술 계산으로만 보면 성장률이 1퍼센트가 떨어지면 약 2조 원 정도 세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만약 경제 성장이 2퍼센트로 떨어지면 당초 세수보다 6조 원 이상이 줄어든다는 얘기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큰 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의 우려대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빠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거기다가 감세마저 추진해서 세율을 낮춰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명박 정권은 물론 국가라고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 뻔하다.

더욱이 그동안 수차례 지적된 것처럼, 내수를 진작시키는 데에는 감세보다 재정지출이 효과적이다. 재정지출 1조 원 확대는 1만 3,000명의 고용유발, 0.11퍼센트의 성장률을 가져오지만, 1조 원 법인세 감세는 2,322명의 고용유발과 0.013퍼센트의 성장률 상승을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 국가에서 감세를 보류하고 굳이 감세를 한다면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를 내려서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영국정부는 2008년 11월 24일 공개한 ‘사전예산보고서(Pre-Budget Report)’에서 부가세(VAT)를 현행 17.5퍼센트를 15퍼센트로 내리겠다고 발표했고, 아울러 집권 노동당이 차기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연소득 15만 파운드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40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인세나 재산세 감세를 고집하면서 재정지출 확대를 추구한다면 민주당 이용섭 의원의 주장처럼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이명박 정부 임기 말에는 심각한 재정위기가 올 수 있다는 예상이 현실화될 가능성마저 높아진다. 이처럼 법인세나 종부세 등 현재의 감세정책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살리는데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에도 원칙이 있다

감세 중단을 전제로 한다면 국가의 대대적인 재정지출은 누구에게 어디로 향해져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외환위기로 인해 파산상태에 빠진 은행들과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과거에 약 16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이들을 구제해준 경험이 있다. 국민들은 금모으기까지 해서 ‘대마불사’의 신화를 거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100조 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국민경제가 살 수 있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살려놓은 대기업과 은행들이 회생한 이후 고용을 다시 원상 복귀시키는 것은 아니다. 1996년에서 2006년 10년 동안 30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220만 명이 늘어난 반면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78만 명이 줄어들었다. 11년 전 환란으로 대기업이 인력을 대폭 줄인 후에 지금까지 거의 고용을 늘리지 않았음을 통계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해야 한다. 1) 은행이나 대기업을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다수 국민에게 혜택이 올 수 있도록 직접 지출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2) 불가피하게 은행과 대기업에 지출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주주의 책임과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3) 재정지출과 공적자금 투입의 제 1원칙은 고용 창출력이 높은 곳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볼 때, 현재 정부지출이 집중되어야 할 지점은 ‘토목 건설 분야’가 아니라 ‘사회서비스 분야’다. 세계 각국이 이른바 뉴딜정책을 벤치마킹 하고 있는데, 굳이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면 1930년대 미국이나 1970년대 한국의 토목건설 뉴딜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투자에 집중하는 21세기 방식의 뉴딜이 필요하다.

토목건설이 맞지 않는 것은 ▲ 최근 10~20년간 상당히 투자되어 있어 추가 투자를 해도 투입대비 효용이 높지 않다는 것이고, ▲ 과거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서비스 인프라 투자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투자’는 ▲ 향후 장기 불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육아,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효과적인 지원책이 될 수 있으며, ▲ 고용창출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날 수 있고, ▲ 선진국에 비해 절반 수준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 분야의 기반 확충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를 위한 공공지출을 늘리는 게 해법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은 전체 서비스 가운데 20.2퍼센트에 불과한데, 스웨덴의 43.9퍼센트나 미국의 32.4퍼센트에 비해 턱 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산업연구원, “서비스업 고용변화 요인과 시사점”, 2006. 10). 더욱이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 지출 비중은 선진국의 1/4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필요성 자체가 내재한다고 봐야 한다. 또한 도소매 위주의 서비스업과 자영업 초과잉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한 방법도 바로 사회서비스를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덧붙여 둘 것은 이들 사회서비스 확대와 이를 위한 공공지출 확대가 이 분야의 민간기업화 촉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회서비스 분야의 공공기관 창출과 사회적 기업 등 자치 사회단체의 자율적 운영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와 병진해서 민간 부문 활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고용창출 없는 내수회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 ‘고용창출 → 소득확대 → 소비촉진 → 구매력 창출 → 내수 확대 → 고용확대’의 순환구조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정부재정 지출이 필수적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 직업훈련 대대적 지원, ▲ 실업급여기간 연장, ▲ 사회서비스 공공지출 확대, ▲ 대기업 고통분담론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생존요구가 될 뿐 아니라 내수 기반확대와 경기회복을 위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이미 독일 정부는 이미 실업보험 수령기간을 현행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하기로 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기업도 2009년부터 불황의 늪을 피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가장 여력이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우량 대기업들이 몰려있는 유가증권시장의 12월 결산법인 경우 2008년 9월말 현재, 내부 유보율이 696퍼센트로서 2007년 말에 비해 37.94퍼센트나 증가했다(증권선물거래소, “12월 결산법인 2008년 3분기 유보율”, 2008. 11). 삼성 그룹은 유보율이 무려 1,488퍼센트를 넘고 현대 중공업도 1,398퍼센트를 넘는다. 11년 전 노동자의 고통분담을 현재 대기업이 되갚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2009년, ‘Again 1997’이 될 것인가?

2009년부터 장기불황과 고용대란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갈등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번에는 대기업과 거대금융이 아니라 다수 국민이 조속히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최우선하도록 되어야 한다. 즉, ‘Again 1997’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한국 국민은 이들 되풀이하지 않도록 지난 11년간 학습한 경험이 있다.

경제위기의 해법이 시장에서 국가로 넘어온 시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면 될수록, 그리고 국가의 경제 통제 강화가 필요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국가에 대한 국민통제 강화 필요성이 커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제적 요구가 정부에 대한 요구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올 겨울부터 고용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서 대기업 정규직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부터라도 살고 보자’가 불가능한 시점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연대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넓게는 케인주의까지 연대와 협력의 외연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 구조전환의 기회가 지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살아나야 구조전환의 기회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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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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