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8정태인/새사연 연구원

이제 곧 서울에서도 창밖에 벚꽃이 분분히 날릴 텐데 각 부처 공무원들은 휴일의 책상머리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처의 창조경제, 예컨대 농림축산부의 창조경제는 뭐라고 할까? 십중팔구 과거에 해왔던 부처의 역점 사업을 창조경제라는 낱말로 새롭게 분칠하는 데 그칠 것이다.

 

진심으로 얘기하건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공무원들의 이런 행동은 정권을 넘어선 장기 정책이 실행되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환경부 공무원들이 전 정권의 ‘녹색성장’을 ‘창조경제’로 포장하기 바란다.


최근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세계적인 저널에 성공사례로 오르내린다. 단언컨대 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4대강 사업과 핵발전 확대로 사실상 “녹색 반혁명”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세계에 내민 보고서는 녹색성장을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정의했으며, 이는 단순히 생태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를 양립시키는 것을 넘어서 생태적 목표의 달성을 통해 사회변혁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커다란 한 축은 이미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과 핵발전을 뺀 나머지 녹색성장을 실천하면 된다. 예컨대 재생가능 분산형 발전과 스마트 그리드 사업은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며, 그 첫 발걸음으로 당장 탄소세(탄소배출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를 부과할 수 있다. 물론 에너지 집중형 산업과 핵산업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크겠지만 창조적 미래를 위해 이들을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아버지 박 대통령에게 배울 일이 아닌가? 아버지는 군화에 의존했지만 이제 딸은 시민을 믿어야 한다.

 

도대체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각 부처 장관이나 비서관들의 설명이 가히 백화제방인데 이 또한 그리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정보기술과 기존 산업의 융합이든, 제2의 벤처 붐이든, 아니면 문화든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아니 국민들의 반짝거리는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 국회 합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무릇 패러다임의 변화, 시스템 차원의 변화는 그 목표가 미리 결정되어 있을 수 없다.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모름지기 상상력과 창의력은 빈 공간(니치)에서 나온다. 질식할 것처럼 꽉 짜인 구조, 특히 승패가 이미 결정된 뻔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컨대 현재의 재벌경제시스템 안에서는 벤처가 성공하기 어렵다. 20년 전쯤 삼성이 야심차게 실리콘 밸리처럼 일하는 젊은 부서를 만든 적이 있었지만 1년을 못 넘기고 문을 닫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벤처 붐이 재벌개혁의 틈바구니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곧 창조경제의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다.

 

더 나아가서 현재의 교육시스템 속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입시경쟁은 아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마저 체계적으로 말살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거의 암기력만으로 70만명의 등수를 매겨서 아이들이 갈 대학, 훗날 선택할 직업까지 결정하고 있다. “등수 없는 교육”을 교육부가 제시하지 못한다면 미래창조과학부에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라도 대통령 명령으로 중·고교의 일제고사를 없앤다면 우리는 교육분야에서도 창조경제의 첫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요컨대 진정 창조경제를 원한다면 정부는 기존의 모든 시스템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해서 시민과 기업들이 그 공간에서 할 일을 창조적으로 찾도록 해야 한다. 오직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수첩 속의 대한민국’은 결코 창조경제를 이룰 수 없다. 대통령이 수첩만 버려도 시민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용솟음칠 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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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01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유로존 위기를 경제 구조의 개혁과 함께 에너지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회로 삼으라는 글을 소개한다. 글을 쓴 로랑스 투비아나(Laurence Tubiana)는 지속개발국제관계연구소(IDDRI)의 소장이며 엠마뉴엘 게링(Laurence Tubiana)은 같은 연구소의 에너지기후분야 책임자이다.

이들 역시 유럽 위기의 문제는 불완전한 통합, 즉 통화는 단일화되었지만 재정은 단일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정책의 연대이며, 그 방안의 하나로 유럽 전체 차원에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반시설 건설이나 지식 및 교육 등 생산적인 부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생산적인 부문의 하나로 녹색 분야, 다시 말해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포루투갈의 경우 석유집중도(GDP 대비 석유소비량)가 60%로 유럽 전체 평균보다 높다. 이러한 에너지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사업에 자금을 투자한다면, 위기 국가들의 경제 회복에도 도움이 되며 전체 유럽 차원에서도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대비하는 장기적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우선 유럽재정안정기구나 유럽연합에서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이 100억 유로 정도를 기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마도 독일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기부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럽투자은행이 “녹색 채권”을 발행해서 민간의 자금도 흡수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투자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럽은 경기를 부양하겠다면서도 긴축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는 모순된 대응이었다. 이제 누가, 어디에 투자하여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경기부양을 가져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녹색 탈출을 준비하라
(Preparing for the Green Exit)

로랑스 투비아나(Laurence Tubiana)
엠마뉴엘 게링(Laurence Tubiana)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2012년 5월 30일

유럽 통합은 여러 국가의 단합하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혼란 대신 공동의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부채 위기는 유로존이 불충분한 통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근본적인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이 직면한 경제적 위기에 더해진 추가적인 위험 요인이며,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했을 때 유럽만이 가진 문제이다.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자면, 유럽 가족은 저마다 제 나름대로 불행하다. (역주 -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대로 불행하다."를 인용한 것이다.)

유럽 통합의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던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은 17개의 분화된 경제를 하나의 통화로 빠르게 단일화 시켰다. 하지만 긴축재정을 강화하거나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해 줄 기관을 설립하는 등의 재정연대는 수반되지 못했다. 이는 주변국 경제로 거대한 자본 유입과 정확한 경제상태를 숨겨진 채 가속화된 지속불가능한 대출을 가져왔으며 이는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와 포루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이다. 그리고 경쟁력 상실을 가져왔다.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유럽 단일통화라는 불안한 계획은 무너졌다.

위기에 처한 국가들은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해 부채 부담을 줄이고, 대외 경쟁력을 회복해야 하지만 통화 단일화로 인해 이 방법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유로존 국가들은 통화 주권을 포기했지만, 재정과 경제 정책을 공유하여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구조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유럽의 통합은 불완전했다.

기로에 놓인 단일 통화의 운명 앞에서 더 큰 규모의 재정적, 경제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는 조약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근본적 변화 이전에 지금 문제가 터진 곳에서의 재정적, 경제적 조정을 진행하기 위한 더 많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긴축과 구조적 개혁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대책은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위험을 가져온다.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이 극단주의적 정당을 선택하는 좋은 이유가 되고 있다. 실제 5년째 경기 침체 상태이며 실업률이 20%에 육박했던 그리스에서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있는 극단주의 정당이 최근 선거에서 실질적 승리를 거두었다. 마찬가지로 지난 달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도 우파와 좌파의 극단주의 정당이 3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다.

유럽이 지속가능한 공동의 번영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유로존 내부의 성장과 경쟁력 회복에 기반한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 최근 독일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는 등 좋은 조짐도 보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비에 기반한 회복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를 가진 국가들은 구조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물론 이는 하룻밤 사이에 가능한 일도 아니며,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재조정과 사회적 결과의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 유럽 전체 차원에서 공동으로 자본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녹색 분야는 그 규모와 장기적 성장 가능성 덕분에 향후 유럽의 중요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 특히 실제로 자원 가격은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며 스페인, 그리스, 포루투갈의 GDP 대비 석유집중도는 60%에 달해 유럽 평균보다 높은 상황이다. 녹색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유럽의 장기 생산성에 기여하며, 생산적인 자본의 흐름을 만들어서 위기국 내부에서 구조적 재조정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유럽투자은행(EIB)의 대규모 재자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 위기 동안 EIB는 대규모 기반시설 건설 프로젝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대출을 줄이고 있다. 민간 은행이 그 틈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투자를 위한 새로운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는 유럽재정안정기구(EFSM)으로부터 받은 120억 유로를 사용하거나 유럽연합 예산에서 100억 유로를 재배당 받는 것과 함께 유럽연합의 국가들로부터 100억 유로(130억 달러) 정도를 기부받아야 한다.

더불어 EIB가 “기반시설 건설 프로젝트 채권”이라 불리는 사채를 발행하여 민간의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제안 역시 실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럽 내에서 이 채권에 대한 수요가 아직은 그리 많지 않아서 초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때문에 유로존 국가들은 EIB를 통해서 “녹색 채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는 녹색 분야의 재생에너지와 같은 자산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 채권이다. 이 분야에서 만들어질 다양한 상품과 은행의 경험이 결합하면 실물 경제 속으로 자금이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다.

지금까지 부채 위기에 대한 유럽의 대응은 긴축과 부양이라는 모순된 정책의 혼합이었다. 기반시설이나 지식과 같은 곳에 들어가는 생산적인 투자는 단기적으로는 성장과 고용을 촉진시키며, 장기적 번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건이다.

경제 상황이 좋은 국가들은 현재 0%에 가까운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바로 지금이 장기적으로 주변국의 생산적인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적기이다. 이는 또한 유럽이 위기에서 나와 지속적이고 번영의 미래의 나갈 수 있도록 구조적 개혁을 촉진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의 위기는 유럽의 위기이다. 따라서 유럽 전체가 문제 해결의 부담을 공유해야 한다. 경제성장과 경쟁력을 회복하고, 내일의 도전에 준비하기 위해서 유럽은 함께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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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일본의 원자력 발전 사고가 점점 수습 불능의 상황으로 확대되고 있다.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일본 정부가 몰래(!)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고 원전 불안감 확산에 놀란 한국 정부는 연일 ‘우리는 문제 없다.’를 외치고 있다.

문제의 본질로 거슬러 올라가 원자력 발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나라가 왜 여전히 원자력 발전을 늘리려고 하는지, 전력 체제 전환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일인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전력의 50%는 산업계가 사용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효율이 낮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국민경제의 에너지 소비효율을 평가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에너지원단위’를 기준으로 할 때, 2005년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7위이다. 우리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6개국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중국, 쿠웨이트, 터키이다.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비교할 만한 경제는 없어 보인다. 에너지원단위는 부가가치, 즉 GDP를 생산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에너지의 규모를 측정하는 수치이다. 세계 4위의 에너지수입국인 한국은 역시 에너지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보다 약 3배가 높은 에너지원단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에너지 효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들이 에너지 절약을 솔선수범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최종에너지의 83%가 수송과 난방에너지인데 이는 가계의 에너지 소비행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전력을 놓고 보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력소비의 50%는 산업계이다. 특히 제조업이 압도적인 비율의 전력을 소비한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에너지집적도가 매우 높은 중화학공업 중심이기 때문이다. 수출의존형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는 산업계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것을 에너지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아 왔는데 원자력 발전이 급속히 확대된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8년에 나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도 이런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원전을 2030년까지 추가로 10기 건설하고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36%에서 59%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값싼 산업용 전력 요금

 

전력 수급정책이 산업계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은 가격 체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먼저, 전기에너지의 가격 자체가 매우 낮게 설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 가운데 전기의 가격이 가장 낮은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과 비교해 달러 기준 가격이 약 1/2에 불과하며, 반대로 (난방용) 등유는 약 2배에 이른다. 등유와는 달리 전기생산을 위한 에너지는 고도로 중앙집중화되어 소비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논리적으로 필연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자본이 고도로 집중되는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위해 한국의 에너지 종류별 가격이 설정되었다는 것은 현실에서 필연으로 보인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산업용 전기 요금을 낮게 설정하여 2차적인 혜택을 부여한다. 현재 산업용전력 요금은 주택용전력 요금의 약 70%에 불과하다. 값싼 경부하 요금만 내면 되기 때문에 산업계가 애써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필요가 별로 없다. 여기서 하나 더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의 전기 요금은 정부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휘발유, 가스 등과는 달리 사실상 동결되어 왔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전력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산업계에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린다.

 

다시 원자력 발전으로 돌아가자. 원자력 발전 중심의 전력 체계는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린다. 그 이유는 첫째, 발전과정에서의 에너지 손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최초 투입된 에너지 대비 최종 소비된 에너지의 비율이 약 75% 정도이다. 나머지 25%는 어떤 형태로든 손실된 것이다. 이 비율은 지난 1970년대에 90% 수준이었는데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손실되는 에너지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와 전력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가 일치하고 있다. 전력 발생 과정에서의 에너지 손실이 막대하고 특히 원자력 발전에서 그러하다.

 

둘째, 심야전력의 과잉소비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그 특성상 한번 발전을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가 대단히 어렵다. 하루 24시간 가동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심야 또는 저소비 계절의 전력 과잉을 발생시킨다. 정부는 이 때문에 심야전력 요금의 할인을 수차례 반복해 왔다. 그 결과 발전의 효율이 높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심야전력 요금의 할인은 심야전력 소비를 늘리고, 이는 다시 원자력 발전 설비 증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어느새 ‘녹색 성장의 에너지’로 둔갑해 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 소비를 더욱 늘리게 할 것이고 현재의 중앙집중식 산업구조에 더욱 의존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화석연료로부터 탈피하는 것의 답이 원자력에 있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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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원전 이슈, 안전성에서 발전 체제로

 

이제 원자력 발전의 전환을 이슈화하자. 일본 동북부의 참사가 방사능 공포로 이어지면서 원전의 ‘안전신화’가 산산이 깨지고 있으나 우리의 관심은 ‘안전 그 이상’에 있어야 함을 감히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가, 경제적으로 원전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평가와 경제적 평가의 내용이 틀렸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 자체가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본질은 거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위험사회’에 있으며, 경제 이해의 관성에 따라 가속화되는 ‘불평등 사회’에 있다. 위험사회, 불평등사회의 질적인 수준은 아무리 정교한 것일 지라도 수치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다.

보다 적절한 평가 방식은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는 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을 달성한 국가라 할 만하다. 발전규모가 세계 6위의 선진국이며 추가 건설 규모가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인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갈등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전이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은 왜일까? 그것은 현재의 에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이해당사자들이 있고 이러한 체제에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적응해 있기 때문이다. 원전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원전에 얽힌 이해(利害)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달리 갈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평가 방식은 문화적 가치, 제도적 조직 그리고 권력적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사회 과학’과 관련되어야 한다.

 

경성(hard) 에너지 체제의 황태자, 원자력 발전

 

모리슨과 라드윅(Morrison and Lodwick, 1981)은 사회과학의 (진정한) 과제는 에너지체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들에게 크게 영감을 준 라빈스(Lovins, 1976)는 일찍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의 세계 에너지체제는 ‘경성 에너지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경성 에너지 경로(hard energy path)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바탕으로 거대자본과 거대기술로 구성되는 공급위주의 대규모 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이용방식’을 말한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경제성장의 관건이라는 믿음 하에 에너지원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채택되고 통제권은 권위주의적 관료에 주어지며 운영 및 관리는 기술엘리트와 사적기업에 의존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의해 황당하게도 녹색성장의 에너지원으로 지목된 원자력은 이상의 경성 에너지 경로의 결정판이다.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은 환경친화성, 공급지속가능성, 형평성과 민주성 등에 커다란 한계를 가지게 된다. 예컨대 환경친화성의 문제점은 최근 일본 원전 사고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고 공급지속가능성은 자원의 고갈가능성에 의해 의심받고 있다. 에너지 과잉소비는 다음 세대의 선택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세대간 형평성을 훼손시키고 가격 부담의 차이는 동시대 저소득층에게도 생계비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에너지 빈곤층은 전력공급 인프라의 사각지대에서 구조화되고 값싼 공공전력 대신에 값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데로 내몰린다.

원자력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보다 훨씬 민주성이 결여되어 있다. 의사결정의 중앙집중, 생산 및 소비 공간집중 수준-우리나라는 이 수치에서 세계 1위이다-이 매우 높기 때문에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제한되는 것이다. 발전시설, 폐기물처리 시설은 지방의 일부 지역에 밀집되지만 전력소비는 대도시지역에 밀집된다. 이는 위험부담이 불평등하게 분배됨을 의미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투표권의 격차에 의해 무위로 돌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필자는 전력체제의 전환에 있어 가장 큰 산은 산업부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규모에 있어 그러하다. 최종 소비부문에 있어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약 60%로 가정용의 약 3배에 이른다. 둘째로, 산업부문이 현재 에너지경제체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원의 변화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산업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변화가 동반해야만 새로운 소비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전과 산업부문의 관련성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산업부문은 그 특성상 대규모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기초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데(전체 발전량의 약 40%) 이는 한번 가동하면 멈추지 않고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원자력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자력을 기초 전력으로써 대규모 산업전력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원전 확대에 현실적 정당성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원자력이 기초 전력이 됨에 따라 전력소비가 적은 시각이나 계절에 막대한 잉여전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성 경로를 벗어나 연성 경로로 진입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이른바 ‘자원 안보’의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문제는 한층 국내외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수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생활 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원자력의 공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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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얻은 논문 윤순진(2009), “한국의 에너지체제와 지속가능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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