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1 / 0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현 시점에 꼭 필요한 고민이 담긴 책들을 함께 읽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①>『날아라. 노동』
-‘재산권’을 규제하고 ‘노동권’을 되살려야 대안사회가 열린다-

날아라. 노동(은수미, 2012, 부키)

미래지향적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주변이 중심이 되어버린 노동시장의 현실위에서, ‘노동권의 회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날아라. 노동은 이를 깨닫게 해주고 확인시켜주는 최고의 책이 아닐까. 새로운 노동운동의 교과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에 새해, 새 회원 캠페인의 첫 번째 책으로 자신 있게 추천한다.


18대 대통령 선거 공약, ‘노동’ 아닌 ‘일자리’였지만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자리 혁명의 문입니다. 복지국가의 문입니다. 경제민주화의 문입니다. 새로운 정치의 문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공존의 문입니다.” 야당 단일후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공약이 바로 일자리 혁명이었다. 그리고 일자리 혁명의 방안으로 ‘만.나.바(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고, 기존의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꾼다.)’를 제안했다.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2012년 7월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말한 대목이다. 경제 민주화, 복지와 함께 일자리 문제가 역시 공약의 최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의 일자리 공약은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올린다.)’이다. 틀 자체에서는 야당의 문재인 후보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두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노동’이 아니라 ‘고용(일자리)’을 기본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개념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양적으로 일자리 몇 개를 늘리겠다는 숫자 논쟁(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5년 동안 일자리 300만개 늘리겠다는 것이 공약이었다. 실제로는 절반도 늘지 않았지만.)을 했던 과거와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일자리의 ‘질’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과 격차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일자리 질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차별과 격차의 해소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해고요건 강화 등을 포함하여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최소한의 일련의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단초이지만 ‘노동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 최고의 책 한권, ‘노동권’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일자리, 고용불안, 비정규직, 고용 차별, 노동시장 유연화, 각종 불법적 고용행태, 정리해고와 직장폐쇄 등 정말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고용과 노동문제의 중심부에는 다름 아닌 ‘노동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논리에 따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압박이 진행되었다. 그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무너져갔으며 노동자들의 협상력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 결과,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협상력이 상실된 노동자들에게 자본이 대대적으로 강요한 정리해고와 임금압박, 수많은 유형의 비정규직, 아웃소싱과 파견, 근로 빈곤, 저임금 노동은 노동시장을 교란시켰고 1700만 노동자 내부를 차별과 격차로 가득 차게 했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노동권’의 와해가 있다.

‘노동권이 비용 앞에서 맥을 못 추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노동권’이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주장한 책이 2012년에 출간되었다. 19대 국회의원이 된 은수미 박사의 『날아라. 노동』이 바로 그 책이다. “노동권은 헌법상의 자유권이고 사회권이라는 점에서 생존권을 넘어선다.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되는 게 자유권이고, 정부가 존중하고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 사회권이며, 노동권은 그 두 영역에 걸쳐 있는 권리다.”(65쪽)

신자유주의는 ‘재산권’ 특히 ‘주주권’을 마치 ‘자연권’의 범주인 것처럼 끝없이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확장해왔다. 반면에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려왔다. 이제는 헌법 23조에 따라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다시 자기 자리를 찾게 해야 한다. 반면 헌법 32조~35조에 명시된 바에 따라 노동권을 복원하고 확장시켜야 한다. 이런 맥락을 가장 정확히 짚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고 노동권에 민감해져야 한다. 노동권이 시민권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함께 지켜야”한다고 호소한다.

 

주변이 중심을 압도하는 현실, 지금 우리의 일터다.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별 문제, 저임금과 근로 빈곤 문제의 해결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 바로 ‘노동권’ 회복임을 가장 정확히 짚어낸 저자의 통찰력은 정확한 현실 이해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1997년을 전후하여 중심 - 주변 노동시장으로의 분리는 더욱 뚜렷해져 전체 노동자의 20퍼센트 정도만 중심부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주변부에서 일한다.”(184 쪽)고 진단한다. 그리고 저자는 20퍼센트 속에서가 아니라 80퍼센트의 현실에 더 많은 주목을 하면서, 주변이 중심을 압도하게 된 이유를 ‘노동권 붕괴’로부터 찾는 것이다. 이미 비정규직이 절반이 된 노동시장 현실이나, 이를 ‘이중 노동시장’으로 표현했던 사례들이 있지만, 오랜 기간 실제 주변노동에 대한 면담과 사례조사를 통해 주변이 중심이 된 현실을 설명해준 글들은 없다.

이러한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저자는 ‘가장 최신의 현실 모습으로 노동의 개념’을 부활시켜내고 있다. 사실 지금 진보 안에서는 전통적인 노동해방이나 노동계급 지도성 등의 개념을 다소 바꿔서 노동존중, 노동중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것이 진보의 기준점인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존중과 노동중심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는 설득력 있게 말해주지 않는다. 추상적인 당위이거나 아니면 현실 형태로서 ‘민주노총 주도’와 등치시키는 정도다.

그러나 저자는 전체 취업자의 70%가 생활하는 현장, 다시 그 중 80%가 생활하는 현장에서 ‘노동권의 와해’를 목도하고, 그곳에서 인권과 시민권, 사회권을 되살리는 것, 바로 ‘노동권의 회복’이 사회개혁의 최고 과제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이며, 경제 민주화의 시작점이며, 사회통합의 기반임을 확인해준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접 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한 원청이든 하청이든,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동일 지역이나 업종에 종사할 경우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186 쪽)

미래지향적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면 바로 ‘주변이 중심이 된 노동시장 현실’위에서 ‘노동권 회복’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깨닫게 해주고, 확인해주는 최고의 책이 바로 『날아라. 노동』이다. 새로운 노동운동의 교과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을 듯싶어 추천한다.

저자 은수미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된 1984년부터 현재까지 '노동'을 화두처럼 붙들고 있다. 6년간 옥고를 치른 뒤 1998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단독 저서나 공저, 수많은 논문을 통해 노동문제와 노동 정책을 제기해 왔으며 2012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불합리한 노동 현안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면서 그녀의 화두인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28년간 노동문제에 천착해 온 그녀는 특히 지난 10년 가까이 현장 인터뷰를 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를 만났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데 왜 열심히 일해도 봄을 맞을 수 없을까, 회사에서 성실한 근무자라는 평가를 받아도 1년이나 2년 후에 해고되어야 한다면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이고 대안은 없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고민을 한번쯤 매듭짓고 싶었으며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존엄성과 권리를 찾는 실마리로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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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진보운동의 노선이나 전략은 다양하게 바뀌어 왔다. 하지만 변치 않은 것도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압도적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열망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로 힘을 모을 때 비로소 현실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된 힘을 계급이라 부르기도 하고 인민이나 민중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중이라고 불러도 좋다. 엘리트들이 그들을 각성시키거나 지도하거나, 또는 순전히 자연발생적이어도 좋다. 어쨌든 그들이 열망하고 분노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사회운동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된 이후로 민중의 중심에는 늘 노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농민이 있었다. 특히 후발 자본주의나 제3세계에서의 광범한 농민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어려움은 일찍이 노동자와 함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의 동력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들은 언제나 ‘노동자·농민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도시의 자영업자, 즉 ‘중소상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자 다음으로 많은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이 된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농민과 서민이라고 부르면서 대략 서민 안에 묻어가는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 처지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할까. 물론 실제론 노동자인데 자영업자로 위장돼 있는 잘못을 바로잡자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3권이나 사회보험 혜택을  자영업자로 취급받으면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소상인들이 우리경제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함에도 사회적·법적으로 인정된 권리나 사회운동적 위치 등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약간의 고려를 해 주는 정도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사회진보운동은 중소상인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현재 사회운동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재벌’이라고 하는 대자본에 맞서 경제민주화와 노동권을 확보해 내는 것임은 명확하다.

그런데 재벌 대자본과 맞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가장 집요하고 성실하게 싸우는 민중은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도 있지만,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하려는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수년째 대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확보한 것은 많지 않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의무휴업 확대 등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는 작업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와 민주통합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상인들에 대한 실업보험 지원도 거의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부담이다.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헌신적인 싸움에 대해 국민의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자 정부와 대형마트 대표들은 상인들을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을 내세워 이른바 ‘대형마트의 자발적 출점 자제와 자율휴무’ 협약이라는 것을 맺기도 했다.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앞세워 노사타협을 하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럼에도 이런 행태를 막을 마땅한 방법과 수단이 상인들에게 없다. 노동자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엄격한 법적 보호아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해 자주적인 노조를 만들고 사용자와 단체협상을 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자와 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상인들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적인 조직을 만들 법적 틀도 없다. 대형 유통재벌이나 정부를 상대로 단체협상을 하도록 보장받은 것도 없다. 점포 매출이 시원치 않아 문을 닫아도 실업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아도, 상가 임대료가 폭등을 해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 노동자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중이 큰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인 중소상인들에게 노동3권과 자영을 할 기본권, 대기업의 부당한 상행위를 제재할 대책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가. 중소상인을 위한 노동3권·자영 기본권·대기업의 부당상행위를 처벌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은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중소상인 기본권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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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어떤 후보가 위기탈출을 시행할 진정한 뉴딜을 할 것인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8년 터지고 학자들이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부르는 위기가 계속된 지 만 4년이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 위기가 끝날 조짐은커녕 10년 이상 장기 불황이 예견된다는 발언들만 줄을 잇는다.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견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자영업푸어, 렌트푸어, 에듀푸어 등 갖가지 이유로 가난해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일시적인 부양책이나 임시 일자리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진짜 뉴딜’을 하여 불황을 탈출해야 한다. 과연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불황을 탈출할 강력한 뉴딜을 준비하고 있을까? 어떤 후보가 더 개혁적인 뉴딜을 할 수 있을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오바마보다 더 개혁적인 이유는?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서 뉴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어떻게 불황을 탈출했는지를 잠깐 살펴보자. 당초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취임하면서 내놓은 제 1단계 뉴딜 정책들은 그리 개혁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개혁 보다는 경기부양정책 쪽에 가까웠다. 대표적으로 1933년 입법된 전국산업부흥법(NIRA)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 협상”을 인정(제 7조)하는 개혁 내용도 포함했지만, 대부분은 대기업의 요구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토목사업국(CWA)등이 추진하는 고용촉진 프로그램 역시 대부분 임시직 일자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 5년차로 접어들어선 1934년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난다. 풀뿌리 대중운동과 노동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34년은 미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인 파업이 있었던 해로 기록되는데, 거의 150만 명의 노동자들이 1800여 건의 파업에 참여했다. 미니에폴리스에서는 수천 명의 트럭운전사들이 500여 명의 기업주 용역에 맞서 거리에서 유혈전투를 벌였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항만노동자들이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맞서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메인에서 알라바마에 이르기까지 미국 남부지방에서 약 35만 명의 섬유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노동자들의 저항과 대중들의 비판적 시선은 당초에 노동조합에 별 관심도 없었던 루즈벨트 정부로 하여금 강력한 개혁안을 담고 있는 두 번째 단계의 뉴딜정책을 착수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제 2단계 뉴딜은 노동대중의 소득과 구매력을 향상시켜 수요를 촉진시키는 정책 수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 대표적인 법안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협상권을 명문화시키고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히 금지하여 노동자의 협상력과 권한을 대폭 확장해주었던 전국노동관계법(NLRA; 일명 와그너법; Wargner Act)이다. 또한 공공사업촉진국(WPA)은 기존 임시 일자리를 지속적인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거의 50억 달러에 가까운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다. 또한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 처음으로 만들어져 노인연금과 실업보험, 그리고 아이들을 둔 빈곤여성지원등을 시작했다. 이렇게 전국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은 모두 1935년에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시민이 움직이야 진정한 뉴딜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1935년부터 제 2단계 뉴딜이 나오게 된 배경을 요약하면 무엇인가? 당시의 루스벨트가 지금의 미국 대통령 오바마 보다 훨씬 개혁적이라거나 노동 친화적이어서가 아니다. 1934년에 폭발했던 대규모 노동운동과 대중의 압력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개혁으로 끌고 간 것이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점령운동의 긍정적 압력을 받아 다시 슈퍼 부자 증세를 강력히 들고 나오면서 개혁방향을 다소 강화시킨 것과 유사하다. 다만 월가 점령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오바마에 대한 개혁 압력도 다시 풀어졌다. (Jacob Kramer(2012), "Occupy Wall Street and the Strikes of 1933-34")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1935년에 루스벨트가 추진한 전국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 입법을 우리 용어로 풀어보면, 경제민주화(노동권 강화)와 보편복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유력 세 후보 모두 경제 민주화와 보편복지를 하겠다고 하는데 진정성을 알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혁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시민의 힘, 노동자의 힘이 원천이다. 대통령 선거가 점점 다가 오는데, 시민의 실제적인 움직임은 없고 사회운동도 미약한 가운데 그저 어느 후보가 더 개혁적일지 답답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답답한 것은 대선 후보가 아니다. 지금의 현실이다. 시민이 움직여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뉴딜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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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정태인/새사연 연구원

 

SEQ!!! 이번 호를 쓰면서 나는 ‘꿈꾸는 그대’로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의 활동가들, 그 중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떠올렸다. 8월 초 나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 다녀 왔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예컨대 1900년에 시작된 데자르댕 신협그룹은 현재 퀘벡지역뿐 아니라 캐나다 전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금융기관인데 설립의 역사나 현재의 사업방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협동조합 은행에 속한다.
 
이번 학습여행의 말미에 내 머리를 친 아이디어는 SEQ였다. 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을 연결하는 세 대륙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내 생각에 퀘벡은 불모지 한국의 사회적 경제 운동에 환하게 머리를 밝히는 영감을 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호의 얘기는 그저 즐거운 상상이라 해도 좋다.


 
우선 세 지역을 비교해보자. 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넓이와 인구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넓이에서 퀘벡주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7배가 넘고, 서울의 거의 300배(경기도에 비해서도 15배 정도)에 이르는 반면 인구는 서울이 제일 많다. 1인당 GDP는 에밀리아로마냐와 퀘벡이 엇비슷하고, 서울은 이 둘의 약 70% 수준이다. 소득수준을 제외하곤 이들 지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왜 퀘벡인가? 재작년 에밀리아로마냐를 둘러보고, 또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미 이 지면에서 몇 번 말했듯이 에밀리아로마냐는 영세 중소기업들과 협동조합으로 이뤄진 경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힘은 신뢰와 협동에서 나온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가능해졌는지 물을 때마다 내가 들은 답이었다.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야”. 한마디로 복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퀘벡에도 이런 문화의 뿌리가 상당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퀘벡에 분 사회연대경제의 열풍이다. 님탄(Nancy Neamtan)이라는 걸출한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시민운동 그룹은 퀘벡지역의 여성운동, 문화운동, 환경운동 등 각종 시민운동과 기존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을 연결해냈다. 주정부는 이들과 협정을 맺어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했는데, 그 수단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다. 즉 시민운동과의 결합이 이 지역 사회적 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실험에 드는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주정부가(그리고 2002년에서 2006년까지는 연방정부도) 이 실험에 적극 참여했기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었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은 각종 기금에서 나온다. 이 지역의 기금은 개발기금, 연대기금, 정부기금으로 나뉘는데 이 세 기금은 목적을 약간씩 달리하면서도 모두 사회적 경제를 지원한다. 스스로 돈을 모으고 스스로의 투자 결정에 의해서 사회적 경제에 돈을 대는 기금은 우리에게 그 얼마나 절실한가.
 
퀘벡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지역 노동운동의 역할이다. 님탄은 2010년 ‘인간중심 경제에 관한 캐나다 전국회의’에서 “노동조합과의 통합은 사회연대경제 성공의 열쇠”라고 단언했다. 노동조합은 1980년대 초에 노동자연대기금을 만들었는데 이 기금은 지금도 3대 개발기금 중 하나이다. 노동자 스스로의 노후 복지를 위해 연금을 만들어 이 기금의 60%를 일자리 창출과 보전에 쓰도록 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지도는 대충 이런 모습이 아닐까? 퀘벡을 거쳐 에밀리아로마냐로 가는 여정. 우리의 사회적 경제, 나아가서 민주적 경제를 이룰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서 맞추는 여행을 다 함께 떠나자. SEQ라는 지도를 따라….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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