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차별과 위기를 극복한 퀘벡의 사회적 경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목 차]

1. 프랑스계의 역사를 간직한 퀘벡

2. 경제위기 앞에 뭉친 샹티에

3.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전방위 네트워크

4. 퀘벡의 다양한 협동조합

 

[본 문]

1. 프랑스계의 역사를 간직한 퀘벡

퀘벡은 캐나다 10개주 중 하나로 캐나다 남동부에 위치하며,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154만㎢로 서울의 2000배가 넘지만, 인구는 790만 명으로 서울보다 적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이다. 3000개의 협동조합이 존재하며, 조합원은 880만 명이 넘는다. 조합원 수가 퀘벡의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것은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해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7만8000개에 이르며, 연간 매출은 180억 달러(약 19조 8000억 원), 자산은 1000억 달러(약 110조 원)를 기록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는 퀘벡주 전체 경제의 8~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식적인 통계는 없고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탈리아의 에밀라로마냐가 르네상스의 인문학적 전통과 파시스트에 저항했던 빨치산의 역사와 같이 독특한 문화적 배경 덕에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퀘벡 역시 사회적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퀘벡은 프랑스 전통을 물려받은 곳이다. 캐나다는 150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700년대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간 역사를 갖고 있다.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300년 이상 함께 살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캐나다를 두고 벌인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영국이었고, 패자는 프랑스였다. 때문에 영국계가 사회의 주류세력이 된 반면 프랑스계는 많은 차별을 받게 된다. 영어 사용자가 프랑스어 사용자보다 2배 정도 많다. 프랑스계는 박해받는 소수민족이었던 셈이다.


원래 외부의 적이 있으면 내부의 집단정체성은 더 명확해지기 마련이다. 프랑스계가 모여 살던 퀘벡 역시 강한 독립성과 자치성을 갖게 된다. 퀘벡은 프랑스어만을 공식어로 인정하는 캐나다 유일의 주이다. 1980년과 1995년에 캐나다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국민투표가  진행되었고, 이 중 한 번은 0.3%의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최근에는 분리 독립에 대한 요구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지역정당인 퀘벡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만큼 프랑스계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의 역사가 깊은 것이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퀘벡은 캐나다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2. 경제위기 앞에 뭉친 샹티에

퀘벡의 변화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계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 개선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 개혁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1974년 프랑스어가 퀘벡의 공식어로 선포되었고, 1977년 퀘벡당이 프랑스 언어법을 선포했다. 프랑스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만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종교, 교육, 사회복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변화는 1980년대에 일어났다. 당시 서구 자본주의가 그랬듯이 캐나다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정부 주도 발전 전략도 한계에 부딪혔고 당연히 사회복지 지출도 줄어들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두 갈래의 대응책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도 익히 아는 민영화, 즉 시장에 맡겨서 효율성을 높이는 길과 또 하나는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경제를 활용하는 길이었다. 전자의 길은 값비싼 고급 서비스는 만들어냈을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는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후자의 길 끝에는 비용 감축과 동시에 만족도의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퀘벡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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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의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사회적 경제는 어느날 갑자기 ‘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쾌한 협동에 필수적인 신뢰란 오랫동안 서서히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운동’처럼, 또 참여정부의 ‘국가균형사업’처럼 중앙에서 하향식으로 만들려다가는 그나마 남아 있는 지역의 역량만 허공에 날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없는 걸까? 문재인 전 후보는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 경제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48%의 문 전 후보 지지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자신의 공약과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공약은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8월 말 주간경향 990호에 나는 ‘SEQ’(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에는 서울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이제 중앙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04년 캐나다의 폴 마틴 총리는 “사회경제를 캐나다의 사회정책 수단의 핵심 부분으로 삼겠다. 기업가가 강한 경제에 필수적이듯 사회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퀘벡의 경험이야말로 연방정부의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자산이었다.
 
따라서 지금 박근혜 당선인에게 가장 긴요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1년여 ‘마을 만들기’라든가, ‘중간조직 만들기’를 하면서 부딪힌 여러 장애, 특히 중앙정부 차원의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을 몸으로 느꼈을테니 말이다. 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을 만난다면 서울시는 그동안의 경험을 요약해서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대통령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부담된다면 주무부처를 명확히 지정해야 한다. 현재 협동조합법은 기획재정부, 사회적기업법은 노동부, 생협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무부처이고, 마을 만들기와 관련해선 거의 전 부처가 고유의 사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제대로 간파했듯이 사회적 경제는 시ㆍ군ㆍ구 단위의 지역공동체가 주도해야 한다. 서울과 같은 광역정부, 나아가서 중앙정부는 이런 실천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자금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협동조합은 돈과 사람의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주식회사처럼 돈을 모을 수 없고 조합 내 임금 격차가 보통 6배 이하로 억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히 협동조합을 신설하거나 확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사회적 경제가 막 움튼 우리나라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적으로 협동조합은 출자금과 비분리자산(협동조합의 내부유보로 회사를 청산할 때도 출자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연합조직이 조성한 협동조합 기금(레가의 경우 ‘coopfond’, 모든 단위 조합은 수익의 3%를 연합조직에 낸다), 그리고 협동조합 자체의 금융기관(예컨대 레가가 소유한 보험회사 ‘unipol’)에서 필요한 돈을 조달한다. 하지만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조성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공동체 기금’이다. 각 지역에서 먼저 돈을 모으고 중앙정부가 이에 맞춰 출자해서 상당한 규모의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정부가 ‘상호성’이라는 사회적 경제의 원리에 따라 엄격하게 운용하면서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쌓아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모든 정책에 사회적 경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정부 조달의 일정 비율을 사회적 경제에 배정하거나 가점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형 주택개량사업이나 지역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과 같은 국가 차원의 사업을 지역의 주택협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울스와 긴티스 말대로 “제도설계를 잘 하면 공동체, 시장, 그리고 국가는 서로 대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자마니 교수의 말대로 사회적 경제는 우리나라에서 ‘제2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부디 박근혜 당선인이 이 정책을 받아들여서 자마니 교수의 예언이 실현되기 바란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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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정태인/새사연 연구원

 

SEQ!!! 이번 호를 쓰면서 나는 ‘꿈꾸는 그대’로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의 활동가들, 그 중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떠올렸다. 8월 초 나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 다녀 왔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예컨대 1900년에 시작된 데자르댕 신협그룹은 현재 퀘벡지역뿐 아니라 캐나다 전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금융기관인데 설립의 역사나 현재의 사업방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협동조합 은행에 속한다.
 
이번 학습여행의 말미에 내 머리를 친 아이디어는 SEQ였다. 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을 연결하는 세 대륙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내 생각에 퀘벡은 불모지 한국의 사회적 경제 운동에 환하게 머리를 밝히는 영감을 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호의 얘기는 그저 즐거운 상상이라 해도 좋다.


 
우선 세 지역을 비교해보자. 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넓이와 인구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넓이에서 퀘벡주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7배가 넘고, 서울의 거의 300배(경기도에 비해서도 15배 정도)에 이르는 반면 인구는 서울이 제일 많다. 1인당 GDP는 에밀리아로마냐와 퀘벡이 엇비슷하고, 서울은 이 둘의 약 70% 수준이다. 소득수준을 제외하곤 이들 지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왜 퀘벡인가? 재작년 에밀리아로마냐를 둘러보고, 또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미 이 지면에서 몇 번 말했듯이 에밀리아로마냐는 영세 중소기업들과 협동조합으로 이뤄진 경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힘은 신뢰와 협동에서 나온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가능해졌는지 물을 때마다 내가 들은 답이었다.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야”. 한마디로 복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퀘벡에도 이런 문화의 뿌리가 상당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퀘벡에 분 사회연대경제의 열풍이다. 님탄(Nancy Neamtan)이라는 걸출한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시민운동 그룹은 퀘벡지역의 여성운동, 문화운동, 환경운동 등 각종 시민운동과 기존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을 연결해냈다. 주정부는 이들과 협정을 맺어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했는데, 그 수단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다. 즉 시민운동과의 결합이 이 지역 사회적 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실험에 드는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주정부가(그리고 2002년에서 2006년까지는 연방정부도) 이 실험에 적극 참여했기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었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은 각종 기금에서 나온다. 이 지역의 기금은 개발기금, 연대기금, 정부기금으로 나뉘는데 이 세 기금은 목적을 약간씩 달리하면서도 모두 사회적 경제를 지원한다. 스스로 돈을 모으고 스스로의 투자 결정에 의해서 사회적 경제에 돈을 대는 기금은 우리에게 그 얼마나 절실한가.
 
퀘벡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지역 노동운동의 역할이다. 님탄은 2010년 ‘인간중심 경제에 관한 캐나다 전국회의’에서 “노동조합과의 통합은 사회연대경제 성공의 열쇠”라고 단언했다. 노동조합은 1980년대 초에 노동자연대기금을 만들었는데 이 기금은 지금도 3대 개발기금 중 하나이다. 노동자 스스로의 노후 복지를 위해 연금을 만들어 이 기금의 60%를 일자리 창출과 보전에 쓰도록 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지도는 대충 이런 모습이 아닐까? 퀘벡을 거쳐 에밀리아로마냐로 가는 여정. 우리의 사회적 경제, 나아가서 민주적 경제를 이룰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서 맞추는 여행을 다 함께 떠나자. SEQ라는 지도를 따라….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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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라고 했다. 앞서 상호강제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신뢰의 네트워크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네트워크는 개인 간 관계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한 소통 채널 구조이다. 일종의 통로이다. 이 통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나누면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가족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부터 자발적 조직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한 채로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네트워크에 들어가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연결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집단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에는 사람과 시간을 비롯하여 다양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통로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늘어나지만 이익은 줄어든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친구의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의 외부성을 창출하여 유지비용을 상쇄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가 형성되고, 신뢰가 다시 신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이런 장점을 경제모델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생산함수는 노동(L)과 물적자본(K)을 투자하여 생산물(Y)을 만들어내는 함수인데, 여기서는 노동 대신에 인적자본(H)을 대입한다. 그리고 생산함수에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A)이 있다. 이는 지식이나 기술, 제도의 발전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Y=AF(K,H) (A>0)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이 늘어날수록 생산물의 양은 늘어난다. 이 때 네트워크를 통한 협동은 인적자본이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확대되는 범위가 좁아서 협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인적자본이 증가할 것이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경제전체로 확대된다면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결국 생산물의 증가로 이어진다. 늘어난 생산물을 다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에 투자하면 더 빠른 성장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실증연구로는 퍼트넘이 이탈리아 20개 행정구역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퍼트넘은 1900년대 초 시민참여지표와 1970년대 초 고용, 소득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시민사회라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의 나라얀(Narayan)과 프리체트(Pritchett)는 탄자니아의 50개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을의 사회조직에 많이 참여하는 곳일수록 가계의 평균 1인당 소득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네트워크의 문제점 : 배제성과 불평등

하지만 네트워크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네트워크에서의 활동은 구성원 사이에 유대, 애정을 형성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때로는 이런 정체성이 네트워크를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정 네트워크에서 편안함과 이익을 얻을수록 배타적이기 쉽다. 이를 잠김효과(Lock-in effect)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소속될 수밖에 없는 가족, 민족, 인종 등의 네트워크나 종교적 네트워크의 경우 특히 잠김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특수한 네트워크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협동의 네트워크에는 언제나 잠김효과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협동하는 네트워크라 해도 그 내부에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매킨(Mckean)은 지역 엘리트들이 공동체가 소유한 자원의 이익을 부적절하게 획득하고 있는 사례를 밝혔다. 이 외에도 많은 실증연구들에서 협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 상태일 때에 비하면 협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은 게 사실이지만, 공동체적 관계에서도 착취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네트워크와 시장

공동체적 제도인 네트워크와 달리 시장은 익명의 교환이다. 모든 사회는 비인격적 시장과 공동체적 제도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보완적이어서 함께 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적이어서 서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와 시장이 보완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네트워크를 통한 상품의 생산과 교환은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경제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왔던 지점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바로 내부의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비용 감소라는 것이다. 기업 내의 교환은 기업 간의 관계와는 달리 공동체적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공동체적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파월(Powell)과 브랜틀리(Brantley)는 바이오산업에서 경쟁기업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비밀로 유지하는 정보도 있었다. 공개와 비밀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존재했다. 만약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자는 배제당했다. 경영자들 역시 이런 정보 공유의 네트워크를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정보의 공유를 통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네트워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면 시장과 네트워크가 대체재라면 둘은 적대적이다. 시장이 공동체적 제도를 대체하는 경우 반드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네트워크가 시장의 원활한 작용이나 존재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혈연적 유대가 매우 강력한 전통사회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개인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기능이 있지만, 개인의 투자동기를 저하시킨다는 부정적 기능도 있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규범이며, 이 규범을 지키기로 구성원들끼리 상호강제하는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흔히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 동료애와 신뢰는 촉진되기 쉽다. 선거에서 승리한다거나 정부가 효과적으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뢰 형성 방식이다. 또한 퍼트넘이 강조한대로 자발적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일반적 신뢰와 협동을 제고한다. 특히 그 자체가 오랜 신뢰와 협동의 결정체인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일반적 신뢰를 높이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도자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신뢰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역사적 집단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신뢰와 협동을 이루어냈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험이 없다. 대신 폭발적 경험의 기억은 생생하다. 87년 민주항쟁, 97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2002년 월드컵과 그해 대선에서의 노풍, 이후 수많은 촛불집회 등을 겪었다.

이런 경험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제도가 모든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신뢰와 협동까지 제도에 의존하도록 되어서는 안 되지만, 무임승차를 막고 신뢰와 협동의 정체성을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네트워크가 배제성과 불평등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내부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내부의 이견을 억압하고, 외부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유발하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공동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사회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거나 진전된 남북관계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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