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5 / 22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목  차]

 

1. 국회 앞에서 멈춘 경제 민주화
2. 다시 던지는 질문, “경제 민주화는 무엇인가”
3. 경제 개혁 없이 경제 민주화 없다.
4. 복지국가 대신 창업국가가 대안이 될 수 있나.
5. 한국경제 구조개혁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요 약 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경쟁적인 정책 좌클릭’ 시기였다고 한다면 2012년 양대 선거가 끝나자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국민에게서 표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좌 클릭했던 정책들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하더니이제 여당은 최악의 보수 정책인 ..에 근접해가고 있고 야당인 민주당도 중도라는 이름아래 실질적으로 2010년 지방선거 이전 버전의 정책으로 되돌아가려는 조짐인 것이다그리고 그 결과가 4월 임시국회가 만들어낸 초라한 경제 민주화 입법 실적이다.

 

물론 6월 임시국회가 남아있다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6월 국회는 모든 을()들을 위한 국회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던 만큼 4월 국회에서 미처리된 프랜차이즈법전속고발권 완화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포함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처리되어야 한다더 나아가 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법 개정집단소송제 도입사면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과 노동 관련법 개정을 최대한 포괄해야 한다그런데 6월 임시국회에서도 실적이 초라하면?

 

앞서 확인한 것처럼 경제 민주화는 지금까지 우리 경제구조와 성장의 동인이 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재벌독식 경제를 구조 개혁하고 새로운 경제체제와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일부 국회의원들의 헌신적인 경제 민주화 관련한 입법 활동이나 상황 대응적 정치행위 만으로는 달성되지 못한다시민사회와 정당이 조직적 차원에서 비전과 제도설계정책기획을 수행하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제는 경제 민주화가 경제적 불평등 해소 차원을 넘어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킨다는 인권문제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요한 지적이다하지만 불평등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권을 지키는 차원으로 확장하려면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사고를 해야 한다더 나아가 새로운 게임의 룰을 받아들일 우리사회의 가치를 완전히 바꾸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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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8김병권/새사연 원장

새 정부 임기 초반인데도 도대체 ‘비전’이 안 보인다. 취임 두 달이 가깝도록 장관 인선이 제대로 안 된 탓도 있을 것이다. 당 강령을 개정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던 경제민주화가 오리무중에 빠진 원인도 보태졌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제시된 ‘창조경제’의 실체가 더 불투명하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비전 실종’을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으로 가는 길이 미로가 돼 버린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IT와 과학기술을 지렛대로 한 ‘기술혁신’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자연 자원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 더 긴요하다는 사실은 수십 년 동안 반복됐던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난제를 기술혁신으로만 풀 수는 없다. 특히 지금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수요가 제약돼 있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창조경제’라고 명명하면서 비전을 제시했지만 국민에게 공감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혁신 이외에 지금까지 당연시 됐던 제도와 규칙을 바꾸려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당연시 됐던 관행들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였다. 발전이 지체되면 시장에 맡겨 경쟁을 촉진하자고 한다. 부실이 생기면 시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자고 한다. 고용이 문제가 되면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하자고 했다. 그것을 ‘구조개혁’이라고 하고 ‘경영혁신’이라고 했으며 선진화라고 불렀다.


그런데 십수 년 동안 의심 없이 추진됐던 일련의 ‘시장개혁’의 최종 도달점이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고 지금의 장기침체다. 이제는 시장에 모든 문제를 맡기는 개혁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의 실패를 통제하는 방향의 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시장이 초래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부채를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을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바로 시장을 향한 맹목적 개혁에서 벗어나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개혁이다.

 

과거에 이 과정은 오직 중앙권력을 지렛대로 해 국가적 수준의 사회구조와 제도를 전면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방식으로만 추진됐다. 진보세력이 사회변혁을 선호했던 것도 중앙권력에 의한 제도적 변화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지향이나 생활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은,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루기 어렵게 되었다.

 

21세기는 사람들의 일상 곁에서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이를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것이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과 결합되어야 한다. “생활 저변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고 사회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며 과거와 다른 해법으로 풀어내려는 실험과 시도”를 바로 ‘사회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기술 창안으로 이끄는 기술혁신이나, 경영과 관리 방법을 바꿔 기업의 능률과 생산성을 비약시켜내는 기업혁신과 비견된다. 다만 동기와 목표 추진 주체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영국의 유명한 사회혁신가 제프 멀건(Jeoff Mulgan)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동기로 유발되고, 1차 목표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런 조직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혁신적인 행동과 서비스”를 사회혁신으로 정의하고 있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실험됐던 참여예산제, 서민에 대한 소액 금융의 모델을 성공시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그라민은행 등이 대표적인 사회혁신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공정무역운동이나 오픈소스 운동 등도 사회혁신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혁신학교’ 확대 정책이 단연 사회혁신의 최고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공유 도시’ 개념도 사회혁신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모든 혁신이 그런 것처럼 혁신 양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혁신은 특히 ‘시장의 경쟁’을 대신해 ‘공동체’에 밀착되고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혁신이다. 특히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혁신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정점을 향해 달리던 지난해 10월에 박원순 시장이 던졌던 화두다. 기술혁신이나 경영혁신 등이 아니라 사회혁신을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혁신정책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하며 다산선생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민생을 돌보며 대안적 사회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 지금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만이 미래의 전망을 열어줄 시점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떤 혁신인가 하는 점이다. 기술혁신인가 사회혁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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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집권 한 달을 넘기고서야 박근혜 정부가 국정방향과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2013년 경제운영 방향을 발표한데 이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 그리고 부동산 시장 정상화(?) 대책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개념이 바로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대선 공약에서 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 ‘보편복지’, ‘일자리창출’이라는 3대 핵심의제를 내걸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여기에서 크게 후퇴했다. 특히 경제민주화는 마치 ‘계륵’처럼 형식적으로 끼어 넣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대신 집권 초기 각종 무리수까지 감수하면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행정부 구성이 한 달 동안 미뤄진 것이 그 사례다. 당초 미래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김종훈 전 내정자는 잘못된 인사 파동의 정점에 서 있기도 했다.

 

문제는 갈수록 박근혜 정부에서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창조경제’의 실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 안의 정책 책임자들도 정확히 맥을 짚지 못하고 있다. 유민봉 대통령 국정기획수석은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슨 말이냐”는 여당 의원 질문에 동어 반복성 답변만을 내놓아 질타를 받았다. 창조경제를 일선에서 이끌어가야 할 미래부 장관 내정자인 최문기 후보자 역시 창조경제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핵심개념에 대해 그 구체적 실체를 잡지 못한 채 정권이 시작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떠나서 창조경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몇 가지 맥락은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로 ‘일자리’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 난국을 돌파하고 특히 국정지표인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바다. 둘째로 창조경제는 주로 IT기술을 동심원으로 한 기술혁신과 그로 인한 혁신산업 지원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토건산업 지원이나 녹색성장과 구분되며, 최근 복지와 관련해 강조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강화와도 구분된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조해온 사회혁신과도 구분된다.

 

셋째로 창조경제의 대표적 참조모델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2000년 세계적인 벤처거품 붕괴에도 상대적으로 지속성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벤처창업과 기술혁신 추세를 벤치마킹해 만들어낸 개념이 ‘창조경제’인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최근 수 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던 복지국가(welfare state)와는 다른 이스라엘식의 창업국가(start-up nation)를 목표 모델로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대체로, “IT중심의 융합산업에서 벤처 창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주도해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국가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지금 시점이 “IT융합 부문을 중심으로 벤처창업 열풍을 만들어서 경기회복을 꾀하고 산업구조조정을 실현하며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을 짜야할 상황인가. 1990년대 말 벤처육성 붐의 재연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1990년대 말 시점은 비록 거품임이 드러났지만 세계적으로 ‘신경제’라고 불릴 정도의 수요확대가 있었던 시기다. 반면 지금은 '수요 부족'이 세계화되고 있는 국면, 즉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요 위축'이 상당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혁신적인 기술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면 무한히 수요가 따라주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최근 수 년 동안 스마트폰과 SNS가 급팽창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대기업 위주의 하드웨어 제품이 주도하거나 페이스북과 같은 몇 개의 외국 플랫폼 회사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크다. 많이 사례로 드는 모바일 앱 시장은 소문보다 큰 시장이 아니며, IT융합 산업도 대기업 주도로 제한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벤처 창업공간이 넓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두 번째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융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고 코스닥 시장은 2001년 수준에서 사실상 멈춰있는 상황이다. 민간 벤처 투자자금 역시 1990년대 말에 비하면 턱 없이 위축된 상황이며 정부에서 자금 공급을 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은 수요 측면이나 투자 자금측면에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데 자금도 영업 경험도 없는 젊은 청년들에게 모험적인 벤처 창업을 유도하는 행위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모델로 한다면서 내세우는 창업국가 비전은 대단히 불투명한 전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타산도 없고 계획도 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피해가기 위해서 창업국가와 창조경제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일자리는 창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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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소비자 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라는 것이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물가수준을 지표화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책적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 내는 통계지표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달 세 번씩 전국 32개 도시의 1만2천개 소매점포에서 거래되는 500여종의 상품과 서비스를 통계청이 현장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다. 적지 않은 인력과 장비가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많은 상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소매 판매액에서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처음으로 10%대를 넘어 10.5%를 기록했다. 앞으로도 계속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는 데이터로 기록되지 않지만 온라인 쇼핑은 모두 데이터로 저장된다. 누가 언제 어느 쇼핑몰에서 무슨 상품을 얼마 주고 샀는지, 결제수단은 무엇이었는지, 계좌는 어느 은행을 이용했는지 모조리 기록된다. 

그렇다면 단번에 이런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굳이 통계청 직원들이 매달 몇 번씩 전국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가를 조사하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해 소비자 물가지수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온라인에서 저장되는 데이터 분석으로 곧바로 소비자 물가지수(CPI)를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정답은 "그렇게 할 수 있다"이다. 세계적인 검색회사 구글의 ‘구글 가격지수(GPI; Google Price Index)’가 그것이다. 온라인 거래는 아직 소비자들의 부분적 구매행위이므로 제대로 가격변동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글측에 의하면 2008년 이후 각국의 인플레이션 조짐 등에 대해 구글 가격지수가 해당국보다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할 만큼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데이터 분석과 활용기술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빅 데이터(Big Data)’ 기술이다. 인터넷을 통해 쌓이는 엄청난 정형·비정형 데이터와 클릭 스트림·로그기록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분산처리 기법과 정교한 데이터 분석방법을 통해 과거에 불가능했던 의미 있는 결과를 유도해 내는 것이다. 구글이나 야후, 국내의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업체들이 이 분야에 먼저 뛰어들고 있는 중이다. 

분명히 중요한 기술적인 진보이며 우리의 삶을 더욱 개선시켜 줄 것이다. 구글 가격지수와 유사하게 구글 독감 트렌드(Google Flu & Dengue Trends)라는 것도 있다. 사용자들의 검색어에서 독감 관련 빈도가 증가하면 이를 분석해 독감발생 추이를 예측해 주는데, 미국 질병관리국(CDC)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예측하는 것과 거의 일치했다고 한다. 상업적인 회사인 구글이 자사의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비영리 서비스를 해 주고 있으니 이 역시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지만.




그런데 구글에게 이렇게 호의적인 뉴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난해 말 조세회피 논란이 그 사례다. 구글이 2011년 세전수익의 80%에 해당하는 98억달러를 법인세가 전혀 없는 버뮤다로 옮겨 세율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것이 밝혀져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구글을 포함해 명성 있는 많은 미국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다국적 기업은 소득의 원천지에 관계없이 전 세계 소득에 대해 미국 법인세 기준을 적용받는다. 

그런데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해당국가에 법인세를 내고 난 나머지 세금은 그 수익을 미국으로 반입하는 순간 납부하게 되기 때문에 해외에서 번 소득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2년 현재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해외 자회사들이 해외 취득소득을 본국에 돌려보내지 않아 1조7천억달러의 현금이 해외에서 보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적자와 증세 논란으로 수년째 미국 정치권이 극단의 대립을 하고 있고, 높은 실업 상황에서 사회보장 지출 감소로 수많은 미국 시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첨단기업들의 세금 회피는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구글이 세금을 내지 않는 공백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내야 하거나 공공서비스가 줄어든다는 것이 아닌가. 구글의 조세회피는 명백히 많은 미국 시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역행한 처사였다. 구글이라는 회사가 2013년 지금 시점에서 미국 시민의 삶에 기여하는 가장 긴급하고 우선하는 것을 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새 정부 출범 보름이 지나도록 행정부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국회의 최종 통과가 지연된 사정이 있다. IT와 기술 융합이 범정부적으로 추진되면 분명히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술이 모자라 세계가 경제위기에 빠졌고 기술혁신이 안 돼 세계 각국이 실업과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있는 중인가. 기술혁신은 대개의 경우 이로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때와 조건에 맞게 강조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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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이명박 정부 5년간 노동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규모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보건·복지서비스 노동자의 급팽창이다. 전체 종사자가 74만명에서 140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동안 4대강 사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은 7만명이 순감소했고, 제조업도 9만명 정도만 늘어나는 데 그쳤던 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폭발적 팽창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라고 부르는 21세기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 5년 만에 두 배의 일자리 증가라니.

과연 경제위기와 보편복지의 분출은 복지서비스 종사자, 특히 노동자를 거의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한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국민들의 복지서비스도 늘고 동시에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도 폭발했으니 말이다. 그동안 진보가 복지를 늘리라고 정부를 압박하면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이중의 효과(복지와 일자리 증가)가 액면 그대로 실행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복지서비스가 늘어나는 방식이 공적 인프라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보육이나 요양 등의 분야 민간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방치한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서비스 이용 시민들에게 바우처 형식으로 현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폈다. 통계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노인요양 복지시설은 2007년 900개에서 2011년 3천개 이상으로 3배 이상 팽창했다. 보육시설도 같은 기간 2만4천개에서 3만4천개로 급증했는데 대부분이 영세 민간업체였다. 이에 따라 노인요양 복지시설 종사자는 같은 기간 120% 증가했고, 보육시설 종사자는 52% 늘어났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양적인 복지인프라는 사적부문 중심으로 팽창했고 정부 재정지원도 늘어났지만, 복지서비스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은 1천700만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나쁜 노동환경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이 69%에서 55%로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 유일한 분야가 복지서비스 분야다. 이명박 집권기간 동안 비정규직의 임금 절대액수가 하락한 유일한 분야도 다름 아닌 보건·복지서비스 분야다. 신자유주의 유연 노동시장은 이렇게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주변 노동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노동시장 왜곡이 건설 분야가 아니라 보건·복지서비스 분야라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가장 진보적인 해법은 사적 복지서비스 업체의 난립을 억제하고 공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 복지정책도 현금지원 방식보다는 공적 인프라 확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적 인프라의 구체적 구현방법이 국공립인가 아니면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지역공동체 방식인가 정도의 고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도 공공어린이집을 선호하는 등 공적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지지는 높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난제가 있다. 이미 들어선 사적서비스 업체들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만 개의 사립 보육시설을 포함해 상황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계속 이들에게 현금지원을 할 것인지, 또는 경영이 쉽지 않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점차 공적소유 경영구조로 이전을 유도할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사적업체 난립을 억제하면서 공적 인프라 확충을 직접 시도할 것인지 현실적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복지서비스에서 급팽창하고, 대부분 여성·비정규직인 이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그들에 의해 불가피하게 공급될 낮은 복지서비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 그러면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복지를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에 의해 제공되는 복지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선순환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 열쇠는 복지서비스 노동자들 자신이 쥐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들이 스스로 노동권을 회복시켜 나가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가되, 그것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에게 좋은 복지서비스를 위하여’ 단결해 가는 것이다. 사업체당 평균 10명도 안 되는 복지서비스 산업구조의 특성상 사업장별 조직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청년유니온과 유사하게 사업장을 뛰어넘어 지역별로 노동자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지자체 및 지역단위 사용자집단과 노동권 및 좋은 복지서비스 제공에 대해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복지 발전은 복지서비스 노동자에게 상당부분 좌우될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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