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10 / 17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목 차]


1. 들어가며

2. 40대 후반, 50대 전반이 설립하는 협동조합의 특징

3. 청년세대 협동조합의 몇 가지 특징

4. 서울시 지역별, 연령별 협동조합 설립의 특성




[요 약 문]


2013년 9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협동조합 설립 신고를 수리한 건수가 2,600건을 넘어가고 있는데, 지난 10개월 동안 매달 평균 260개의 협동조합 설립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3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3000개 이상의 설립신고 수리가 될 것이 확실하다.


현재의 협동조합 붐은 베이비 붐 세대의 남성들이 주로 은퇴전략으로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협동조합 방식을 다수 선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세대는 이미 13~16년 전, 벤처 창업을 경험했던 세대들이었기 때문에 창업이 낯설지 않은 세대들이다. 2000년 전후 당시 벤처 창업의 50%이상은 30대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자체 자금과 사업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사업자 협동조합 비중이 전체의 66%가 넘는 이유도 협동조합 설립 주체의 대분이 40~50대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협동조합이 청년세대들에게 아직은 사회진출의 새로운 선택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청년들에게 협동조합이 아직은 ‘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50대와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50대의 경우 기존 법인 기업 설립 비중은 25%에 불과했지만 협동조합 설립 비중은 무려 38%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서초/송파로 알려진 강남 3구가 협동조합 창업을 주도하고 있다. 서울시 전체 협동조합 설립의 1/4(24.8%)가 강남 3구에서 설립되었다. 인구수를 감안하면 종로/중구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위 그룹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업의 편의성을 감안한 사무실 소재지 선택에 의한 고려가 상당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역시 많은 수자다. 


둘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룹은 대체로 구 도심권에 해당하는 종로/중구/영등포(19.5%)이다. 이들 그룹은 인구를 감안할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비중이 높아지는데, 이는 오히려 이들 지역이 사무실 소재지의 편의성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개연성이 있다. 셋째로, 마포/서대문/은평구 지역이 협동조합 설립 분포(14.4%)가 높은 지역이다. 상대적으로 서민층 비중이 높은 이 지역의 경우 강남 3구와 여러모로 대조적일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조만간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1년이 다가온다. 이제부터는 설립신고 → 신고 수리 단계를 넘어서 구체적 사업개시 -→ 사업 운영 -→ 수익 발생 등 본격적인 사업이 전개될 것이다. 실제 사업을 어떤 정도로 개시하고 사업을 운영해 나가고 있는지 분석이 앞으로 필요한 과제다.



#본 보고서는 <서울시 청년일자리 허브>의 용역 프로젝트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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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창조경제가 창조한 것은 ‘창조경제'라는 용어뿐.

 

새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나 오랜 준비 끝에(?) 지난 6월 5일, 드디어 정부가 ‘창조경제 청사진'을 공식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벤처 활성화 정책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는 비판만 되돌아왔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중소 벤처 육성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추진한 신지식인 운동과 문구, 단어까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도, “지난 10년 전 정부와 현 창조경제의 차이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렇다. 오랜 공을 들여 정부가 정식화시킨 창조경제의 3대 목표-6대전략-24개 추진과제를 들여다 보면, IT중심의 벤처창업정책 말고는 기존에 있는 여러 가지 산업정책과 기술지원 정책을 짜깁기 한 것일 뿐이다. 과거의 추격형 전략에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지만, 이는 대기업 단위에서 이미 오래전에 실행하고 있는 구호를 뒤늦게 정부가 반복하고 있는 것일 뿐 큰 의미도 없다.

 

좋은 개념이니 내용을 채워 주자고? 버리는 편이 낫다.

 

일부에서는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존 홉킨스 교수의 2001년 저작『The Creative Economy』에서 근거를 찾으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이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 일부는 구체적 실체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의 ‘창업국가' 모델이나, 최근 핀란드에서 노키아 쇠퇴를 대체하는 벤처붐을 들여다보지만, 정부가 뚜렷이 이들 국가를 롤 모델로 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론적 근거도 구체적 사례도 없는 추상적 개념들만 계속 동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민간에서 ‘창조경제 연구회'까지 만들고 있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인 끼워 맞추기식 해석을 할 개연성이 높다. 결국 잘 평가해 본들, 창조경제 정책은 ‘창조경제'라는 용어만 창조한 채 사라질 운명이다.

 

그런데 개인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좋은 개념이니, 개념은 살리고 내용을 전진적으로 채워주자는 ‘선의(?)'의 주장도 있다. 그러다 보니 ‘창조 경제는 이런 것'이라는 개념정의가 말하는 사람들만큼 많아지게 되고, 결국 창조경제라는 개념으로는 전혀 국민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팍팍한 상황에서, 국민 전체의 지혜를 모아도 모자랄 판에 ‘창조경제'가 국민의 의사소통과 지혜의 수렴을 가로막고 있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지 않나? 이론적 근거도 없고, 설득력 있는 유사 사례도 없으며, 지금 경제 환경에도 맞지 않는 국적 불명의 창조경제는 폐기하는 것이 맞다.

 

‘세계 경쟁력'에 집착하기보다 ‘협동경제'로 내부를 다져야.

 

지금 우리 앞의 경제 환경은 글로벌 기술 경쟁력이 뒤처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드웨어적 스마트폰 경쟁력은 세계최고이며, 가격대비 자동차 경쟁력도 결코 낮지 않다. 그런데도 경제성장률은 2% 밑을 기고 있지 않나? 우리뿐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 역시 IT분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 중반대의 실업률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다른데 있다는 것이다. 고장난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 극단적으로 악화된 불평등 구조 등이 쉽게 치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나친 수출의존도를 줄이면서 국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여 내수기반을 키워야 한다. 승자 독식의 경쟁시스템을 완충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확장하는 한편, 공공부문의 역할을 회복하고, 특히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부분을 키워 신뢰하고 협동하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에너지 집중형 산업에서 에너지 저소비형으로의 산업 전환도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고 일자리도 필요하다. 특히 경제위기에서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사회가 함께 살기위해 필요하다. 이런 것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협동 경제라고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창조경제가 아니라 협동경제라는 말이다.

 

기술혁신과 함께 사회혁신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와 혁신이 긴요한 것 아닌가? 긴요하다. 물론 IT분야에서 필요하고 이미 민간에서 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정부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사회혁신'이다. 가난한 서민에게 과감하게 신용대출을 해주었던 그라민 은행과 같은 발상의 혁신, 느리더라도 시민들이 지자체 예산 결정에 참여하는 참여 예산제의 실험, 그리고 무한 경쟁교육에서 협동하는 교육으로의 전범을 이룬 혁신학교 등이 그런 사례다. 아직도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고착시킨 정글 자본주의의 폐해를 하나씩 전복해야 한다. 엄청난 창의적 상상력과 국민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경쟁을 위한 창의적 상상력이 아니라 협동을 위한 창의력, 상상력,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북돋워야 할 대목도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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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0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조세도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역외탈세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7차례에 걸쳐 대표적 조세도피처인 버진아일랜드의 한국인 소유 페이퍼컴퍼니를 폭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부 중견 재벌가 인사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국내 최대 재벌그룹인 삼성이나 현대자동차·SK·엘지 등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정말 우리나라 핵심 재벌들은 역외탈세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준법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다른 소식이 들린다. ‘사악하지 말라’는 사훈으로 유명할 정도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구글이나 애플·아마존 같은 IT회사들이 최근 역외탈세 등의 혐의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영국에서 32억파운드의 돈을 벌었으나 법인세는 600만파운드만 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애플 역시 2012년 아일랜드 자회사를 이용해 90억달러의 세금을 덜 낸 것으로 알려져 미국 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영국에서 43억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는데 법인세는 매출의 0.1%만 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 뭔가. 우리의 핵심 재벌기업들은 미국의 최고 IT회사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하나 유의할 것이 있다. 지금 뉴스타파가 폭로하고 있는 조세도피 행위는 대표적인 노골적 조세도피처 중 하나인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국한돼 있다. 이런 식으로는 대부분 개인적 수준의 조잡한(?) 역외탈세 행각들이 폭로되는 정도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대규모 역외탈세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글로벌 금융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이 바로 그들이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조세도피처를 포함해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수백 개의 자회사를 두고 다양하고 복잡하게 내부거래를 한다. 2008년 미국 연방 회계감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100대 기업 중 약 80%가 조세도피처에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 교역의 3분의 2는 다국적 기업 내부에서 발생한다. 음성적으로 조세도피처에 자산을 숨겨 두거나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일부 부유층은 몸통이 아닌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은 낮은 세금과 적은 규제, 비밀주의를 기업에게 보장하는 나라를 찾아 경쟁적으로 자회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각 국가에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협박도 한다. 세계화되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의 공세 앞에 국경에 갇힌 국민국가들은 무력했고, 결국 신자유주의 분위기에 휩쓸려 조세인하·규제완화·임금인하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역외탈세 수법은 바로 합법과 불법 기준이 모호한 ‘이전가격 시스템(transfer price system)'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 본사를 둔 자동차 회사가 프랑스에 법인을 세우고 자동차를 판매했다고 하자. 프랑스 법인이 직접 소매 판매하는 대신 세금이 낮은 아일랜드 법인에 원가보다 조금 높게 넘기고, 아일랜드 법인에서 이익을 크게 붙여 판매했다면 프랑스 법인은 이익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세금도 거의 안 낼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세금이 낮은 이웃 룩셈부르크에 금융법인 계열사를 설립한 뒤 프랑스 법인이 여기서 금융대출을 받게 하고 그나마 이익도 이자비용으로 룩셈부르크 금융법인에 돌려줬다면, 프랑스 법인은 매출이 아무리 많아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 이익은 없고 비용만 잔뜩 늘어났으므로. 

이런 식으로 소득은 저세율 국가로, 비용은 고세율 국가로 이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역외탈세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수많은 계열사와 자회사의 중개망을 통해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구글·애플·아마존이 했던 수법도 이렇게 이전가격 시스템을 통했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알다시피 우리나라 재벌은 엄청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총수가 있는 43개 재벌이 거느린 계열사는 1천500곳이 넘는다. 삼성도 76곳이나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외 계열사가 빠져 있다.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는 국내 규모의 두 배 가까이 되는 2천693곳이다. 삼성그룹은 440곳이 넘고, 현대차와 엘지·SK·롯데도 200여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함에 따라 전 세계 국가에 수백 개의 계열사와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각 국가별 세율 차이와 제도 차이를 악용해 역외탈세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국내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결코 무리한 예측이 아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정말 제대로 조세정의를 세우고 싶다면, 막대한 해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를 포함한 내부거래’를 주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우선 조세도피처에 있는 핵심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해외계열사 사이의 편법적인 내부거래를 통한 이전가격 조작으로 납세의 의무뿐 아니라 금융규제·형법 준수의무와 상속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감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규모·매출·고용 등을 감안해 이익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해외 계열사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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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6 / 1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우리는 그 동안 세계경제를 논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세계의 주요한 구성부분인 아프리카를 제외하는 너무나 확연한 실수를 반복적으로 해왔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 자체를 무시해온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프리카에 대한 기본 지표를 확인해보자. 세계 230여개 국가 가운데 54개 국가가 아프리카에 있으며 그 중 48개국이 아래 글에서 주로 다루는 사하라 사막 남쪽의 국가들이다(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모르코와 같은 사하라 사막 북쪽 국가들은 그나마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규모가 크고 발전된 나라들이다). 2010년 처음으로 아프리카 인구가 10억을 돌파했으니 인구 기준으로는 세계의 1/7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셈이다.(출처: UN, "African Statistical Yearbook 2012")

 

아프리카의 경제 규모는 어떨까? 2010년 기준 아프리카 전체의 GDP(시장가격기준)는 약 1.7조 달러로서 세계경제의 2%남짓에 불과하고, 그나마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는 1조 달러 남짓으로 한국경제 규모와 유사한 정도다. 인구대비 경제규모는 여전히 얼마나 낮은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작은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대 이래 아프리카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왔으며 지난해에도 4.5 %이상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한국의 2%보다 훨씬 높다. 더욱이 청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은 아프리카 인구구조는 향후 이들 국가들이 세계경제 성장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더 이상 세계경제에서 54개 아프리카 국가들을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다.

 

어쨌든 가장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적 경제학자이자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스티글리츠가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아프리카 관련 칼럼을 한편 기고했다. 그는 서방 경제학자 중에서도 특이하게 동아시아를 포함한 제 3세계 경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글리츠는 최근 아프리카 경제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지금 아프리카가 필요한 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 경험임을 강조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특히 현재 세계경제의 거대한 변화 물결 가운데 중국의 변화를 특정하고 있는 대목이 흥미롭다. 최근 20여 년 동안 세계의 공장으로서 장난감에서 부터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모든 공산품과 자원을 빨아들이던 중국경제에서 그 토대를 이루고 있던 저임금 구조와 유리한 환율 여건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인 중국 노동자 임금상승과 위안화 평가절상 등의 환경변화는 장차 중국이 빨아들였던 제조업 일부가 점차 더 낮은 임금비용이나 무역여건을 찾아 중국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제조업 등을 흡수할 수 있는 다른 지역은 아프리카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이제까지 제조업 쇠퇴와 투자할 산업 영역의 부족으로 경제발전이 지체되었던 아프리카에 중대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강조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아프리카가 중국의 제조업을 흡수하면서 발전과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호, 민영화, 작은 정부 같은 정책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이 해왔던 강력한 정부의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스티글리츠는 역설하고 있고, 바로 이 대목이 칼럼의 핵심이다.

 

이 글을 통해 엄연한 세계경제의 한 부분인 아프리카 경제에 대한 관심을 돌려보자. 동시에 이후 중국경제의 위상 변화에 따른 아프리카 경제의 기회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전망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의 산업정책 경험이 어떤 시사를 주고 있는지도 새삼스럽지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도 일종의 산업정책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관련하여 현재 우리 시점에서는 어떤 산업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줄 수 있겠다.

 

 

 

 

아프리카가 배워야 할 동아시아의 교훈
(East Asia’s Lessons for Africa)

 


2013년 6월 3일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프로젝트 신디케이트(http://www.project-syndicate.org)

 


6월 1~3일 사이에 일본은 TICAD(아프리카 개발 도쿄협력, the Tokyo International Cooperation on African Development) 5차 회의를 주최했다. 그 회의는 전 세계가 유럽의 경제적 고통과 미국의 정치적 마비상황, 그리고 중국과 다른 신흥시장의 경제적 부진에 몰두해 있는 동안에도,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빈곤이 예외가 아니라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199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사하라 사막 남쪽 아프리카에서는 하루 1.25달러의 빈곤선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300만 미만에서 거의 425만 명까지 늘어났고,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약 390만 명에서 거의 6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 동안 빈곤 비율은 57%에서 49%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다. ([그림 2] 참조)

 

선진국들은 반복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와 교역 약속을 파기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20년 동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으로 도덕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즉 형편이 나은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문자 그대로의 이유로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는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에서 2011년까지 가장 빠르게 성장한 10개국 중에서 다섯 나라는 인구 천만 명 이상을 가진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또한 그들 국가의 발전은 단지 천연자원에만 의존한 것도 아니었다.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였던 에티오피아는 2007~2011년까지 매년 거의 10%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르완다와 탄자니아, 우간다는 10년 이상 6%이상씩 성장해왔다. 그 결과 몇몇 자료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중산층(연 소득 2만 달러 이상) 비율이 인도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은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의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는 대륙이기도 하다.

 

다수 빈민들이 의지하고 있는 농업의 성장 역시 시원치 않았다. 헥타르 당 생산량은 정체되어 있다. 경작지의 4%정도만이 관개수로가 되어 있는데, 이는 남아시아의 39%, 동아시아의 29%와 비교가 된다. 남아프리아카에서의 헥타르 당 비료 사용량은 13킬로그램에 불과한데 이 역시 남아시아의 90킬로그램, 동아시아의 190킬로그램과 비교된다.

 

가장 큰 문제는 거시 경제적 안정도 달성하고 거버넌스의 진보도 이룬 국가들조차 천연자원 분야 이외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지원은 단순히 자금지원과 도덕적 지원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아프리카가 동아시아 발전 경험에서 배워야 할 점을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이점은 최근 중국의 임금 인상과 위안화 평가 절상 등이 글로벌 비교우위와 경쟁력 우위 등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앞으로 일부 제조업들이 중국 밖으로 빠져나오게 될 것인데, 아프리카가 이중 일부를 끌어들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에서 제조업 쇠퇴(de-industrialization)의 고통을 겪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점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말로 2000년대 말까지, 부분적으로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강요한 구조조정 정책 때문이기도 한데, 저개발 아프리카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당시보다도 낮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제조업 붐이 스스로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정부들이 자신의 경제를 재구조화시키기 위한 산업정책을 실시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와 같은 산업 정책이 올바른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상당히 논쟁적인 이슈다. 혹자는 정부라는 존재는 산업에서 어떤 기업이 승자인지를 가려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부류들은 어떤 국가가 감자 칩을 생산하든 컴퓨터 칩을 생산하든 하등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산업정책의 목적은 시장에서 잘 알려진 제한성을 해결하는 것인데, 한 산업에 관련된 기술이 다른 산업에 이익이 되는 경우와 같은 외부성 학습이 그런 사례다.

 

산업정책의 목적은 이와 같은 산업간 파급력을 식별해내는 것이고, 정부는 이런 국면에서 상당히 믿을 수 있는 역할을 해왔다. 미국에서 정부는 19세기에 농업을 촉진했고, 1844년에 발티모어에서 워싱턴까지 최초의 통신선 설치를 지원했으며 대륙 사이의 통신 라인도 정부가 지원했다. 그로 인해 통신 혁명을 촉발시킬 수 있었다. 또한 그런 식으로 인터넷 혁명도 육성해왔다. 이처럼 정부는 인프라와 (과세 제도를 포함한) 법과 제도, 그리고 교육시스템을 통하여 필연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주어왔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규제완화 정책과 결합된 조세와 파산관련 법은 비대한 금융 부분의 창조를 효과적으로 부추기기도 했다.

 

자원이 매우 부족한 개발도상국들은 사치스런 낭비를 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자국 경제가 역동적인 비교 이익을 얻도록 미래 방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발전을 이룩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바로 이렇게 했으며, 동아시아 경험에서 공유해야 할 교훈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오늘날 보유하고 있는 성숙되고 깊이 있는 기술력이 없었던, 시절에 그들 정부가 어떻게 산업정책을 펴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취약한 거버넌스가 산업정책의 구체적 수단들에 영향을 주기는 하겠지만 산업 정책 자체의 유용성을 해칠 수는 없다.

 

일본은 또한 다른 교훈도 가르쳐 줄 것이다. 교육과 평등, 토지개혁에 대한 중요성을 포함하여 동아시아를 발전시켰던 핵심 전략 요소들은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도 더욱 중요한 것들이다. 반세기 전 동아시가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한 이래, 세계도 큰 변화를 해왔다. 역사와 제도, 환경에서의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정책이 각 지역의 조건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가 권고한 것과 상당히 다른 경로를 따랐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책은 성공했지만 어이없게도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은 비참한 실패를 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들 성공과 실패를 돌아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아프리카 국가들 자신만의 발전 전략을 세우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원문 게재 사이트: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east-asia-s-lessons-for-african-economic-development-by-joseph-e--stig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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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3.06.1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 두 번째 라운드로 진입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지던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시대정신이라고 떠받들던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취임 이전부터 경제 민주화 과제의 위상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박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대기업을 옥죄고 때리고 이런 것은 옳지 못하다"거나, "제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스스로 국민과 중소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여가는 것"이라면서 이른바 재벌의 '자율적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선 공약에 담겨 있었던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 완전히 일탈하는 내용들이었다.

 

여당의 정책적 후퇴가 이토록 심각하면 당연히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당제 정치일 터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5월 4일 개정한 당 강령에서 명백히 우클릭이라고 할 만한 행태를 보였다. 강령 전문에 "경제민주화와 함께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존중과 지원",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의 완성 추구 및 복지와 함께 선 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을 의도적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정국을 주도하는 정부 여당도, 이를 비판해야 할 야당도 시대를 바꾸기 위해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방향도 의지도 상실한 순간이었다.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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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경제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퍽퍽한 시민들이었다. 편의점 점주들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잇달아 발생하던 와중에 남양유업 대리점 폭언 사태까지 공개되면서, '슈퍼 갑'에 대항하는 '힘없는 을'을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민주당의 수장이 된 김한길 대표는 "자본과 노동의 문제라는 전통적인 갑을관계보다 훨씬 광범위한 갑을 문제가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 '을'을 위한 경제 민주화의 전의를 불태웠고 그 분위기는 6월 임시국회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20만 편의점과 80만 대리점 점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신규 대리점법이 과연 입법화될 것인지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재벌 내부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비생활적 경제 민주화가 주종이던 지난해와 달리 '생활 밀착형 경제 민주화'로 진입했다면서, 최근 부활된 경제 민주화의 차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경제 민주화가 이번에는 일정한 성과와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 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2011년 월가 점령운동을 전후로 세계적인 불평등 개혁운동과 긴축 반대운동, 복지축소 반대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세계 운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경제 민주주의'라는 높은 추상 수준의 담론 아래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여기에 매달린 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이미 10여 년 전에 주주자본주의 비판과 경제 민주화를 내용으로 한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를 써서 유명해진 미국의 마조리 켈리(Majorie Kelly)는, 최근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시대정신으로 격상된 경제 민주화 현상을 두고 "오늘날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강력한 구호가 내걸리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놀라워했다.

 

그런데 10년 전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면서 대단히 강력한 경제 민주화 의제를 제기했던 저자 자신이 10년 후인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지난해에 출간하고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된 신작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Owing Our Future: The Emerging Ownership Revolution)(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은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터무니없이 강도가 낮은 것이기는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 미국을 필두로 하여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융 규제를 검토하거나 실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세계 금융과 경제가 달라지고 있고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유럽위기에서 보이듯 글로벌 채권시장을 매개로 하여 금융 자본은 남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중이며, 초유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여전히 실물경제가 아닌 주식시장으로 몰려서 주가만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행태의 주범인 재벌에 대한 규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비록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재벌개혁만으로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국민들의 삶이 달라지는 조건이 형성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나치게 폭주하던 기존의 금융시스템과 기존의 독과점 시스템에 대한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윤리(Business Ethics)>라는 잡지의 대표이자 기업 컨설턴트로서 수십 년 동안 좋은 기업에 대해 연구하고 컨설팅하고 현장 조사를 해왔던 저자 마조리 켈리는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서 이렇게 운을 뗀다.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언제나 그럴 것이고, 지금은 보다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심오한 꿈을 꿀 때다. 공정성과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같은 이상을 중심에 둔 경제,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공정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경제,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유익한 경제, 번성하는 지구위에서 인류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하는 경제를 꿈꿔야 한다. 그런 세상은 가능하다. 신전의 파수꾼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는 이단의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대안은 있다."

 

새로운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

 

▲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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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는 경제학자 하먼 데일리를 빌어 현재의 세계경제가 한계상황에 도달했으며 과거의 규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리학에서처럼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고전적 이론은 한계에 가까운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경제가 실물경제의 4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여기에 더하여 파생상품시장이 세계 GDP의 10배까지 커진 한계상황이 오게 되면서 이제 시스템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한계를 깨고 어떤 대안 구조를 고려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 모든 진보적 사회세력의 고민이 멈춰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선뜻 '이것이다'라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는 대목 역시 여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세계의 진보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멈춰선 바로 그 장벽을 저자는 도대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마조리 켈리는 전통적인 경제학자가 아닌 현장 전문가로서의 자신만의 특유한 장점을 발휘한다. 경제학의 학술적 개념을 동원한 논리구조나 통계해석을 동원한 설명이 아니라, 잘 기획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문제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추적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흔히 국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원래의 핵심 문제의식에서 벗어나기가 일쑤이지만, 저자는 많은 경험과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핵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어느 마을 협동조합에서 영국의 거대 백화점, 시골의 작은 어촌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사례들을 어지럽게 좇아가면서도 일관된 맥락을 쥐려고 노력한다. 바로 '소유'의 문제다. 논리적 체계로만 대안을 설명하는데 익숙한 한국의 진보세력들도 이런 유형의 대안 고민 방법론은 그 자체로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저자가 대안을 설계하기 위해 넘나드는 영역의 반경이 엄청나게 크다. 저자는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나 소유주가 아니라,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우리가 창조하거나 건설한 모든 것은 지구위에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 속한 것"이라면서, 대안 경제 모델이 기본적으로 생태경제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동시에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대안 경제구조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른바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의 생태경제의 전제와 연동시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까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단선적 고속 성장은 최근 100~200년 산업사회에서만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일 뿐 절대 영원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정책연구소(IPS) 수석연구원 척 콜린스 역시 최근에 "우리는 가치를 바꾸지도 않고, 권력의 엄청난 불균형을 해소하지도 않은 채, 규칙(rule)만 바꿔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구조는 개인주의, 성장지향, 최대의 금전적 이익 추구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생태적 감수성은 새로운 핵심가치들을 형성해내고 있다. 지속 가능성, 공동체, 충족성 등이 그 가치다. 이러한 가치의 전환은 새로운 종류의 생성적 소유구조,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길러낼 온상을 창출해낸다."

 

대안 모델을 제시하기 이전에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직관적으로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진보 노선과 가치논쟁이 활발한 우리에게도 생각해볼 여지가 꽤 있기도 하다.

 

대안은 우리 곁에 있었으며 커질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주주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존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충족시켜줄 경제 모델은 무엇일까? 저자의 답은 여기서 의외로 너무 친숙한 해법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열풍(?)이 일고 있는 협동조합 모델이 저자가 중시하는 대안 모델의 하나인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과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면서 지역 공동체가 관리하는 다양한 소유구조를 수년 동안에 걸쳐서 탐색한다.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멕시코의 '마을산림', 일종의 무허가 이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뉴햄프셔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역은행에서 대출받아 살고 있는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한 '거주민 소유 공동체' 모델도 있다. 또한 덴마크와 독일, 미국에서 발견되는 협동조합 소유 풍력발전 모델도 있다. 공동체 풍력은 청정에너지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 거주민 소유 공동체는 부를 널리 확산하며, 마을 산림은 삼림파괴를 막는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2009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이 강조했던 공동체에 의한 성공적인 공유지 관리이론에 천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적 속성과 공적 속성을 가진 제도가 풍성하게 혼합되어 자연 친화적이고 공동체 밀착적인 다양한 소유 모델, 운영 모델, 성장 모델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로 고민을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저자는 또한 체계적인 논리구조와 법칙 규명 보다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과감한 개념화와 패턴 모델링을 주로 시도한다. 건축학이나 IT분야에서 주로 적용되었던 패턴 이론을 대안 사회모델링에 적용한 것은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네 가지 소유 모델을 제시한다. 우선 바다, 숲, 토지, 공원, 공공 발전소 등과 같은 공유자원에 대해 적용되는 '공동 소유와 공동관리' 모델이다. 둘째는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파트너십, 종업원소유기업 등을 모두 묶어서 '이해당사자 소유기업' 모델로 불렀다. 그리고 셋째로 사회적 기업을 따로 구분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사기업이지만 사회적 사명을 경영목표로 내걸고 있는 기업들, 북유럽에서 발견되는 재단경영기업 모델까지를 미래적 모델에 과감히(?) 포함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과 달리 이런 유형의 미래적 모델은 지금 현실에서도 의외로 많다는 점을 저자는 덧붙인다.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은 모든 다국적 기업을 합한 것보다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미국에서는 1만개가 넘는 종업원 소유 기업이 있고 총 참여인원이 1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경제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주장들이 너무 큰 얘기들을 넘나들면서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절충적으로 섞어놓은 대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판단해봐야 한다. 미래사회의 소유구조, 기업구조에 대한 기존 논리들은 대부분 폐기처분된 상태가 아닌가? 지금은 섣부른 논리의 재구성보다는 현실에서 맹아적으로 발견되고 있고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작은 경험들을 발로 뛰며 찾아내고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이를 기초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일지 모른다. 발로 뛰면서 새로운 싹을 조사하는 한편, 인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자의 노력은 평가 받을 만하다.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업 구조라는 단일 문화가 특정한 상황에만 들어맞고 다른 상황에서는 해로운, 산업화 시대만의 산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구조는 어디에나 산재해 있지만 나는 그 시대가 끝날 수도 있다는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시민이 깨어날 때 그 시대의 막이 내릴 것이다."

 

저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 민주화가 목표로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어떤 대안일까? 적어도 그 하나의 해법을 저자는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는 경제 민주화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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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