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의 [잇:북]2012.10.29 14:25

2012 / 10 / 26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테마북] 재벌개혁, 구체적으로 말하자.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시면 됩니다.

 

* 본 책자의 글들은 새사연이 <오마이뉴스>와 함께 기획하여 2012년 7월부터 9월까지 8회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기사입니다.

 

[여는 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요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명확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을 앞세운 재계는 헌법을 들먹이며 재벌개혁이 위헌이라고 반박합니다. 어떤 이들은 재벌개혁을 무조건 재벌해체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이제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토론해야 합니다. 무엇을 목표로 하여,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재벌개혁에 관한 전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가기에 적절하며, 또한 유력 대선후보들이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관련 내용을 입법화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에 새사연이 먼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재벌개혁은 재벌의 시장지배력 해소, 독점 해소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우선 재벌의 법적 실체를 인정하는 기업집단법(재벌규제법)을 제정하고, 사후적으로 독점을 해소할 수 있는 계열분리명령제 또는 기업분할명령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존재했던 재벌규제 방안인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키고, 순환출자를 금지해야 합니다. 또한 향후 재벌이 지주회사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합니다. 더불어 법인세를 인상해야 합니다. 재벌 감시기관으로서 공정거래위원회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재벌 이외의 경제주체들이 재벌과 동등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2012년 10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목 차]

◆ 여는 글
◆ 삼성, 현대, LG의 가지치기... 더 큰 공룡 만든다 (김병권)
◆ 삼성은 왜 멀쩡한 회사를 계열분리시켰나 (김병권)
◆ 옥스퍼드사전도 인정한 이 단어, 법적 실체가 없다니 (김병권)
◆ 새누리당도 싫어하는 '일감 몰아주기' 없애는 방법 (김병권)
◆ 회장님의 폭풍 질주, 누가 견제할 수 있을까 (김병권)
◆ 김종인 위원장, 경제민주화 기본을 놓치셨군요 (김병권)
◆ 삼성과 다른 엘지? 지주회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김병권)
◆ 이명박의 ‘재벌사랑’에 날아가버린 30조원 (김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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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4정태인/새사연 원장

 

경제위기의 해법과 대선 후보들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그럭저럭 암초를 피해가던 한국경제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수출증가율이 서너달 연이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건 이미 10년 이상 거짓으로 판명난 낙수효과(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아래로 돈이 흐를 것이다)에 이어 수출 신화도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의 경제를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경제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시민들은 구체적 해법까지 내 놓았다. 2010년 지자체 선거로부터 서울시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새누리당을 굴복시킨 보편복지, 지난 총선부터 이슈가 되어 박근혜후보가 김종인씨를 영입하게 만든 경제민주화, 그리고 전국을 몰아치고 있는 협동조합의 열기가 바로 그 답이다.  

문제는 누가 이런 시대적 요구를 수행할 것인가이다. 한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1974년 이미 “사법살인”으로 국제적 지탄을 받았지만 2007년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박근혜후보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는가? 어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경제민주화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김종인씨와 이한구 원내대표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어록에 나오는대로 ”내가 말했으니 끝“이니 토달지 말라는 투다. 결국 역사도 현실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진위가 결정되고 국민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자기 확신을 넘어 과대망상에 이른 것이다.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수용한다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 해석해서 실행할지는 박근혜후보만 알고 있다. 과연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이라는 한국의 지배계급의 뜻에 반하는 ‘최종 해석’을 할까?

문제는 나머지 유력 후보, 두 사람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안철수교수는 우유부단한 듯 하고  문재인후보는 참여정부의 실정을 되풀이할 것 같다. 안교수가, 모피아의 대부로 유명한 이헌재씨를 영입했다는 보도, 그리고 문재인후보가 “노무현과 이명박의 한미 FTA는 다르다”고 주장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바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시민들이 나서면 된다. 특히 “경제는 전문가가 알아서 하는 것”이란 생각이 문제다. 가령 아동수당을 얼마나 어떻게 주는 게 최선일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지는 분명 전문적인 지식과 정치적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답을 전문가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건 명백한 오류이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공통의 해법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진보개혁진영에 속하는 학자들마저 설왕설래 중이다. 최근에 장하준교수는, ‘재벌개혁론자들’의 주장이 “1주 1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주주자본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상조교수는 현재의 “1주 다표”(총수일가가 전체 주식의 1%에 불과한 의결권으로 계열 전체를 지배하는 것)를 “1주 1표”로 바꾸는 것도 개혁이라고 맞섰다.

분명 재벌개혁론자들의 당면 목표인 “1주 1표”가 글로벌 스탠다드는 아니다. 적어도 숫자로만 보면 세계적으로 가족기업이나 “1주 다표”가 더 일반적이다. 또한 외부 시장에 의한 통제(예컨대 주식시장에 의한 인수합병 위협)가 모든 나라에서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하준교수가 주장하는 “1주 다표”(재벌들에게 주당 더 많은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부여하자는 주장)가 민주주의에서 더 먼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재벌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면 그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가족기업집단이 더 효율적인지, 아니면 주식시장에 의해 통제되는 회사가 더 효율적인지 확실하지 않다.

세계 학계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이런 복잡한 논쟁에 보수적인 경제학자까지 가세하면 어느 한 쪽이 깨끗하게 ‘승리’하는 사건은 벌어질 수 없다. 즉 지극히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문제, 그러나 나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문제에도 시민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우리가 명백히 아는 사실들이 있다. 예들 들어 한국의 재벌은 너무 커서 “대마불사”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더욱이 관료는 물론, 정치와 사법부까지 장악했으니 큰 문제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재벌은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영원한 권력이 됐다. 자신의 경제권력을 이용해서 하청기업을 수탈하고 기업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보루인 노조마저 인정하지 않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매우 위험하며 장기적으로 경제적 효율성도 저해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시민연합정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시민 대다수가 합의하는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즉 경제문제에도 시민참여가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푸는 길이다. 내 청와대 근무 경험을 되새겨보면 시민들의 요구가 뒷받침 됐을 때만 정부는 지배동맹과 대결할 수 있다. 

2008년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는 무려 6개월을 넘게 매일 광장에 모였다. 여중생의 “살고 싶어요”라는 절규로 시작된 촛불은 “한반도 대운하”(4대강 사업), 공기업 민영화, 한미 FTA 반대 등 공공성 이슈로 진화했다. 하지만 당시 취임한 지 6개월도 안된 대통령에게 “물러가라”는 요구는 누가 봐도 무리였다.

글머리에 말했듯이 이번 대선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치르고 있으며 앞으로 수년간 우리 경제는 2% 내외의 성장률에 묶일 것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시민들의 경제해법은 무시되고 수출증대-낙수효과라는 구시대의 주문, 박근혜 후보가 5년 전에 정식화한 “줄푸세”를 다시 실행할 것이다. 바로 그 “줄푸세”가 현재의 위기를 만들었는데도 그는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다르지 않다”고, 자신 만의 ‘최종 해석’을 내놓았다. 2013년 5월, 촛불을 들고 일어나 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일 것이다.

왜 후회할 일을 지금 하면 안되는가? 이미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관철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고 협동조합 설립의 열기도 뜨겁다. “우리가 지지할테니, 국가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정책 목표가 확실해지면 그 임무를 수행할 내각 역시 윤곽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이헌재씨처럼 시장만능주의를 앞장서 실천해온 경제관료, 통상관료가 내각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삼성 장학생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사법부와 입법부를 장악해서도 안 된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는 정부가 곧 “시민연합정부”다.

낙선운동과 투표참여운동, 그리고 야권 단일화 협상을 넘어서 “시민정부 만들기”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하고 따뜻한 삶을 우리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2008년 촛불의 정신을 되살려 서울 광장에 모여야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고 우리 모두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밝힐 수 있다.

<안철수의 생각>은 훌륭하다. 평생 정책만 다룬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 물론 적잖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여러 사람의 의견 짜깁기한 것과 <안철수의 생각>은 다르다. 일관된 생각의 다발이 굵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놀랍게도 학계에서도 채 소화되지 않은 ‘이해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 재벌 문제를 진단하고 법조계에서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지만 방향이 뚜렷한 ‘기업집단법’을 대안으로 내세웠으며 그 생각의 틀은 ‘산업생태계’이다.

더구나 그는 종업원지주제나 이윤공유, 경영참가라는 미시적 실천 방안을 이미 실행해서 성공해본 사람이다. 그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 또한 정확히 지적한다. 당장 표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책<안철수의 생각>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높은 지지율도, 확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 국민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팬덤 현상으로 간주했다. 하여 간간히 보도되는 그의 ‘공자 말씀’도 곧 사라지려니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폭발적 매력이란 면에선 뒤처질지 몰라도, 정책에 관한 한 2001년 내가 처음 만난 노무현을 훨씬 능가한다. <안철수의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국민 안에 퍼질 것이고 현재까지의 대통령 후보 그 어느 누구도 마땅한 백신을 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가장 뛰어난 백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론은 안철수 교수를 중도로 분류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중간쯤이라는 뜻일테고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뒤에는 민주통합당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굳이 자리를 따지자면 이 책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쯤, 아니 진보파의 일부 그룹보다 더 왼쪽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연구원 6년의 연구와 내 뼈저린 실패의 경험이 결합되어 금년 초에 나온 <리셋 코리아>와 ‘싱크로율’ 거의 100%라는 게 그 증거다.

안 교수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의 생각이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색깔공세’에 시달릴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야 세가 불리하면 어떻게든 붉은 색을 덧칠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삶 어느 편린에도, 책 속의 어떤 낱말 하나에도 그럴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억지춘향은 역풍을 맞을 뿐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세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안 교수의 취약점이다. 갑자기 정당을 만들고 현재의 팬덤을 조직적인 정책지지 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실로 난감한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을 알고 싶은 분들에겐 오연호와 김헌태가 쓴 <안철수>를 권한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을 통해 ‘시민정부’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 정당도 환골탈태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내각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 그리고 안철수가 정책의 위치를 놓고 겨루는 것은 말다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같은 정책 목록 안에서 누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 놓는가, 어떻게 반대편 국민을 끌어들일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의 힘>에서 역설한대로 이제 증오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반대 쪽 후보에 표를 던진 국민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 놓고 소통과 타협으로 실천해야 한다. 물론 안철수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협동은 세계와 한국의 장기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날 길인 동시에 대선 승리의 유일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글은 작은책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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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5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그동안 학계 등에서 계속 제기돼 왔던 재벌집단에 대한 정의와 규제를 담은 별도의 법률, 즉 기업집단법 혹은 독일식 콘체른법을 새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독립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재벌집단을 독립된 법인격 실체로 인정해 주고 내부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양해해 주는 대신 실질적인 소유와 경영통제구조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규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새사연이 펴낸 <리셋 코리아>에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자는 제안의 도입부분이다.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맞춰 각종 개혁법안들도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 폐지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부활·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금산 분리 등이 거의 단골메뉴로 거론되고 있다. 각 제도의 실효성과 효과성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규제의 틀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규제도 없어진 시장에서 재벌이 공룡이 돼 이익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자·상인·중소기업·소비자 등 나머지 경제주체들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산업생태계의 파괴다. 다시 재벌이라는 공룡에게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미 한국의 재벌집단은 15년 전 외환위기를 일으킨 재벌집단에서 한참 진화해 왔다. 글로벌 경제환경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 출자총액제한 제도·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 과거식의 사전적 자본규제만으로는 실효적이지 않은 측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식 규제제도를 다시 부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후 미래까지를 감안해서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 기업집단법이 있다.

기업집단법은 “개별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실체라는 점을 상법적 각도에서 인정하고 그 존재와 구성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재벌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회사법인 상법의 범주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특수한 실체로서 기업집단을 규정하는 ‘상법의 특별법’으로서 기업집단법을 새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집단법 안에는 기존 공정거래법 안에서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기업집단, 즉 재벌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다만 기업집단법에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집단의 일반적 정의를 한 후 공정거래법에서 자산규모 5조원 이상과 같은 독점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집단을 지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기업들, 즉 계열사 관계 성립과 해지 요건, 계열사 편입의 법적 허용 범위 등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 현재 출자 지분율 요건 등에 대해 대통령에 정하도록 유보된 것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명목적인 출자지분에 의한 계열사 편입과 함께 실질적 지배개념을 적용해 위장 계열사 등의 논란을 가급적 축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순환출자 구조 등을 아예 합법적인 기업집단 구성요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나아가 기업집단 전체의 지휘통제 구조를 규정해야 한다. 지휘통제의 동일인이 재벌총수인지 지배기업인지 등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지휘통제 조직의 존재와 법적 지위를 규정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집단법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검토만 하고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재적 대권 후보인 안철수 교수가 기업집단법을 재벌개혁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주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안 교수는 최근 발간한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재벌그룹은 사실 현행 법규상 초법적인 존재”라며 “현행법에는 재벌체제에 대한 규정이 없고 주주 중심의 개별회사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제대로 규제하자는 논의가 있고, 저도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놔두지 말고 기업집단법을 만드는 게 옳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정당들도 더 이상 기업집단법을 서류뭉치 속에 던져 놓지 말고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 기회에 기업집단법 논의가 미래의 재벌체제를 개혁하는 중요한 대안으로 공론화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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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정태인/새사연 원장

 

<안철수의 생각>은 훌륭하다. 평생 정책만 다룬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 물론 적잖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여러 사람의 의견 짜깁기한 것과 <안철수의 생각>은 다르다. 일관된 생각의 다발이 굵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놀랍게도 학계에서도 채 소화되지 않은 ‘이해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 재벌 문제를 진단하고 법조계에서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지만 방향이 뚜렷한 ‘기업집단법’을 대안으로 내세웠으며 그 생각의 틀은 ‘산업생태계’이다.

더구나 그는 종업원지주제나 이윤공유, 경영참가라는 미시적 실천 방안을 이미 실행해서 성공해본 사람이다. 그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 또한 정확히 지적한다. 당장 표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책<안철수의 생각>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높은 지지율도, 확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 국민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팬덤 현상으로 간주했다. 하여 간간히 보도되는 그의 ‘공자 말씀’도 곧 사라지려니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폭발적 매력이란 면에선 뒤처질지 몰라도, 정책에 관한 한 2001년 내가 처음 만난 노무현을 훨씬 능가한다. <안철수의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국민 안에 퍼질 것이고 현재까지의 대통령 후보 그 어느 누구도 마땅한 백신을 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가장 뛰어난 백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론은 안철수 교수를 중도로 분류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중간쯤이라는 뜻일테고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뒤에는 민주통합당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굳이 자리를 따지자면 이 책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쯤, 아니 진보파의 일부 그룹보다 더 왼쪽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연구원 6년의 연구와 내 뼈저린 실패의 경험이 결합되어 금년 초에 나온 <리셋 코리아>와 ‘싱크로율’ 거의 100%라는 게 그 증거다.

안 교수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의 생각이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색깔공세’에 시달릴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야 세가 불리하면 어떻게든 붉은 색을 덧칠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삶 어느 편린에도, 책 속의 어떤 낱말 하나에도 그럴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억지춘향은 역풍을 맞을 뿐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세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안 교수의 취약점이다. 갑자기 정당을 만들고 현재의 팬덤을 조직적인 정책지지 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실로 난감한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을 알고 싶은 분들에겐 오연호와 김헌태가 쓴 <안철수>를 권한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을 통해 ‘시민정부’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 정당도 환골탈태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내각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 그리고 안철수가 정책의 위치를 놓고 겨루는 것은 말다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같은 정책 목록 안에서 누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 놓는가, 어떻게 반대편 국민을 끌어들일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의 힘>에서 역설한대로 이제 증오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반대 쪽 후보에 표를 던진 국민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 놓고 소통과 타협으로 실천해야 한다. 물론 안철수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협동은 세계와 한국의 장기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날 길인 동시에 대선 승리의 유일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글은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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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3.2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10년 동안 5대 재벌의 자산규모는 230조 원에서 620조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고 순이익은 4배 증가했다. 기업 일반으로 보아도 2000년에서 2010년까지 기업소득은 연평균 25.5%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5.7%에 불과했고, 수많은 집이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재벌을 필두로 기업은 나날이 살찌는데 왜 국민은 가난해질까?

분배 악화의 정점에 재벌이 있다. 일부 재벌은 관료와 검찰 및 사법부마저 장악해서 국민경제 전체를 '약탈적 공생관계'로 몰아넣었다. 이미 오래 전에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경지에 오른 재벌의 위기는 곧 시스템 위기를 불러오므로 약탈을 당하면서도 재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와 같이 재벌이 지배주주의 이익만 극대화한다면 사회의 양극화가 격심해지고 국가 전체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 경제개혁연대 등은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다)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tunnelling)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제, 이중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것은 분명 혁혁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이제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주주보다 훨씬 더 고통을 받는 노동자, 하청기업(공급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이해관계자이다.

주류경제학과 기업가들은 이익 극대화의 방정식이 복잡해지므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종업원지주제와 이윤공유가 경영참여와 결합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증거는 주주자본주의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프리먼의 공유자본주의론). 또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을 잇는 행동경제학은 이해관계자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롤즈의 정의론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현재 가장 손해를 보고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 해서 사회적으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주주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모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empowerment). 10%라는 미미한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건설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하며, 하청기업은 납품단가의 공동교섭권을 가져야 한다. 지역주민 역시 위원회의 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경영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도 강화해야 하는데, 특히 금융부문에서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가 절실하다.

둘째로는 이익공유의 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와 하청기업, 그리고 지역주민이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며 재벌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이윤공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주민과 기업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 기금은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서비스와 같은 친밀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지역특화산업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재벌의 비대화는 시스템 위기를 불러일으키므로 사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산분리, 2002년 수준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제한 등은 미숙한 3세 총수의 판단 오류로 빚어질 수 있는 시스템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범주의 정책을 모두 포괄하는 가칭 ‘기업집단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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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