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의 발전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 보고서에서 제시된 자연과학을 위한 프로그램은 시급한 문제입니다. (중략)

과학이 그 자체로 개인, 사회, 경제적 병폐를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전시던 평시던 간에 이 모든 분야들이 팀으로 기능할 때에만 과학은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진보가 없다면 다른 방향에서 이룩된 진보는 우리의 건강과 부의 창출, 국가 안보를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1]. 바네바 부시 <과학- 끝없는 미개척지> 중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는 반드시 보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기초과학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연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순수과학에 대한 19세기의 이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기초연구는 단기적 혹은 중장기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자들은 연구계획서의 대부분을 연구결과가 사회와 신약개발에 미칠 가능성에 대한 언급으로 채운다. 화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국가안보 혹은 산업발전에 자신들의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광고해야만 연구비를 충당할 수 있다.

한쪽에선 과학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아인슈타인과 다윈의 업적과 삶을 소개하고 있다. 과학영재교육은 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다윈, 왓슨, 크릭과 같은 기초과학자들을 본으로 삼아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주려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결국은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대학에 입학해서 아인슈타인의 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환경에서 낙담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꿀 것이라는 현실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인슈타인과 다윈이라는 과학자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숨긴다.

이 땅엔 과학정책이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근대과학의 초석이 대한민국에 다져지는 1960년대 말에도 과학기술정책만이 존재했을 뿐, 아인슈타인과 다윈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과학정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책의 초점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에 맞추어져 있었다. 개발독재 시대에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생존의 방법은 기술개발이지 과학이 아니었다. 역설적인 것은 그런 정책적 기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도 아이들에게는 '과학자'의 꿈을 불어넣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과학자가 어린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자란 세대들은 '사이언스 키즈'라고 불렸다. 아인슈타인과 다윈을 길러낼 수 없는 정책적 기조 속에서 아이들은 속았다. 과학자의 이상과 꿈을 포기하고 정부의 기조에 순응한 이들이 살아남아 대학과 연구소를 장악했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 자는 결국 실패한다. 1970년대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과학정책은 정체되어 있다. 여전히 아이들에겐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을 가르치면서, 정책 입안자들은 응용과학과 산업화가 가능한 기술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노벨상을 타야 한다는 국가적 강박관념은 정책의 모순을 볼 생각은 없이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고, 노벨상이 무슨 김연아의 우승처럼 달성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단추를 모두 풀고 다시 맞추기 시작해야 할 텐데도, 첫 단추는 그냥 둔 채 옷이 제대로 입혀지길 바라는 형국이다. 총체적 난국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바네바 부시의 꿈

뱁새는 황새를 따라갈 수 없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정책 기조는 순수과학에 대한 19세기 과학자들의 열망이 기초과학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 1940~50년대 미국의 정책을 무시하고, 점차 응용과학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 1960~70년대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당시 과학정책을 입안했던 이들 대부분은 공학자였고, 미국의 정책이야말로 박정희가 추구하는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의 과학기술정책 기조가 변하기 이전, 기초과학에 대한 처절한 강조를 외쳤던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라는 인물의 역할을 무시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 한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유소년 축구를 양성하고, 국내리그를 활성화시키는 기초적인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일단 월드컵을 유치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언제나 우리는 차범근이나 김연아, 박세리를 기대하는 못된 습관에 젖어 있다. 과학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학계엔 박세리나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과학은 스포츠처럼 개개인의 역량으로만 결정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철학의 변혁 없이 우리는 아인슈타인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바네바 부시는 19세기 말에 태어난 미국의 기술자였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하튼 계획을 관리했고, 메멕스(MEMEX)라는 개념을 주장하여 현재의 하이퍼텍스트의 발전에 선구자격인 인물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그보다 부시를 더욱 널리 알린 것은 그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 <과학, 끝 없는 미개척지>였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정책 입안자들은 이 보고서를 안 읽었거나, 읽었다 하더라도 그 보고서의 핵심을 공시적/통시적 맥락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루즈벨트는 부시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평화시기에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며, 왜 투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편지였다. 이 편지에 대한 답으로 부시는 1945년, <과학, 끝 없는 미개척지>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는 루즈벨트가 사망한 시점에서야 완성되었지만 부시의 보고서는 향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과학정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부시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과학지식은 국가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기초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은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둘째, 기초연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은 산업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부시는 여기에서 기초연구에서 응용연구와 산업화라는 '선형모델'을 제시한다. 셋째, 이처럼 국가에 도움이 되는 기초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학자 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연구자는 정부의 정책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도구가 아닌, 연구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부시의 보고서는 향후 미국의 과학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도 곧 등장했다. 주로 기술사가들에 의해 제기된 반박은 과학과 기술의 관계가 부시의 선형모델처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학이 기술에 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과학의 관계가 복합적이고 비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 되었다[2].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기술과 과학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부시의 보고서가 미국의 기초과학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시의 유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겐 부시의 철학을 공유한 과학정책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전시에 국가의 안보에 도움을 주었던 과학에 대한 투자가 평화시에도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통령에 맞서, 기초연구에 대한 이상을 수호하면서도 행정가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철학을 입안한 그런 과학기술자가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부시의 보고서는 과학과 기술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상당히 단순화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국가에 도움이 되는 기술적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역사적 분석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생산적인 결과들을 창출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내린다. 많은 기초연구들이 산업화되지 못한 채 사장되었고, 산업화된 연구들이 반드시 기초연구의 투자에 힘입은 것도 아니었다[3].

하지만 부시의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부시가 무리한 단순화를 통해서라도 달성하고자 했던 이상이다. 보고서에는 계속해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정당화하는 문구들이 등장한다. "정부가 산업적 연구를 증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이다[4]". 페니실린과 레이더의 예가 등장한다. 두 기술 모두가 기초연구가 산업화된, 선형모델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19세기 과학자들의 이상이었던 '순수과학'의 열정은 부시에게선 '기초연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이는 19세기 과학자들의 이상을 수호하면서, 정부의 지원과 사회의 요구라는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부시가 기초연구를 처절히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연구의 독립성을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채택한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연구자들은 국가의 채찍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가는 투자만을 담당할 뿐, 연구의 방향은 연구자들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그래야 창의적이고, 결국은 국가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결과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과학자도 아닌 공학자 출신이었던 부시가 기초과학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해 투쟁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선형모델이라는 상당히 단순하고 과감한 주장을 했지만, 그가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철학은 분명한 것이다. 돈이 되고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연구에만 투자하려는 정부를 설득하고, 그들에 맞서 19세기 과학자들의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과학에 대한 투자가 도움이 된다는 논증을 펼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단순성이 결국 비판을 받고 미국의 과학정책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1960~70년대는 이미 부시의 정책이 결실을 맺던 시기였다. 그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시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미국의 기초과학자들은 산업화에 대한 엄청난 부담이 없이도 과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얻었다. 그것이 여전히 미국이 주요 과학저널 출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노벨상의 대부분을 석권하는 이유다. 부시의 무리한 보고서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가 지키려 했던 철학은 옳은 것이었다. 기초연구는 당장에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될지도 알 수 없지만 인류지식의 향상이라는 철학 속에서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부시가 있었기 때문에 응용과학에 대한 투자로 정책기조가 변하는 20세기 중반에도 미국의 기초과학은 튼튼한 내실을 다진 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연어가 되어버린 한국의 과학자들

우리는 부시의 철학을 건너 뛰었다. 기초연구가 중요하다고 말로만 외치는 정치인들은 실제로는 부시처럼 처절하게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믿지 않는다. 19세기 과학자들의 이상을 물려받은 부시와 같은 인물이 우리에겐 없었다. 부시를 건너뛴 채 우리는 바로 응용과학에 대한 투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이제 우리는 노벨상이 없다고 투정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과학정책이 부시의 단계를 뛰어넘어 박정희의 방식으로 무리하게 진입했기 때문임을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선형모델은 분명히 틀렸다. 하지만 선형모델을 주장하면서 부시가 수호하고자 했던 철학은 옳았다. 그것이 지금 미국의 기초과학을 가능하게 한 주춧돌이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돈이 되어 돌아온다는 부시의 주장은 틀렸다. 하지만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미국의 기초과학에 대한 명예로 돌아왔다. 부시는 미국의 과학문화에 19세기 유럽의 과학문화를 심는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의 창의성, 호기심, 자연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같은 개인적 요소들은 부시에 의해 제도적 뒷받침을 얻게 되었다. 미국에 유럽의 과학문화가 정착한 것은 철저히 부시의 덕이다.

우리는 19세기 유럽에서 꽃피운 과학문화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부시에 의해 이루어진 철학적 수호를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미국의 과학정책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부시의 것이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국가적 이익과 무리하게 연결시키면서도 지키려 했던 부시의 철학이다. 하지만 그런 철학이 공유될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한민국의 과학은 뛰어난 인재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제도적/철학적 경박함에 밀려 그 잠재성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현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자마자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처음부터 과학비즈니스벨트란 일종의 떡밥이었던 것이다. 이는 박정희 이후 지속된 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한 철학적 부재를 의미한다. 과학은 반드시 추구해야만 하는 국가적 사업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정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가끔 선택되는 떡밥 같은 것이다. 만약 현정부에 진정 과학에 대한 철학적 비전이 있었다면, 과학비즈니스벨트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무식한 발상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과학은 달면 먹고 쓰면 뱉는 편리한 음식일 뿐이다.

나로호 발사의 실패는 부시가 그토록 주장했던 연구자들의 독립성을 훼손한 결과일 뿐이다. 현장의 연구자들이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연구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 월드컵에 앞서 국가적 쇼로 기획된 나로호 발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일 때부터 문제는 예견된 셈이다. 나로호 실패의 문제는 반드시 분석되어야 한다. 그 분석을 통해 연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존재했는지, 정부로부터의 압력은 없었는지가 도출되어야 한다. 그로부터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부시가 주장한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 우리는 배워야 한다[5].

최근 미국 하원에서는 미국 대학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이들에게 무조건 영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대한민국에선 세계적 대학을 육성한다는 취지 하에 외국과학자들을 국내 대학에 모셔오고 있다. 게다가 그 외국석학들은 1년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고 국내 대학에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고급두뇌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자는 과학정책 입안자들의 말은 모조리 거짓이다. 한 대학에서 미 하원의 법안에 대해 질문하는 학생에게 교과부의 담당자는 "한국인들은 연어와 같은 회귀습성이 있으므로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한다. 그런데 연어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산란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다면 그곳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그 연어들은 새로운 산란지를 찾아 떠날 것 같다. 그 곳에선 영주권을 보장해 준다니 말이다.


[1]
Vannevar Bush, Science-The Endless Frontier, Government Printing Office, Washinton, DC, 1945.
[2] 홍성욱, 20세기 과학연구의 지형도: 미국의 대학과 기업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2002: 이 논문의 말미에서 홍성욱은 정책 입안자들이 기초과학연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한다. 기술사가인 그가 부시의 철학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 도대체 왜 기술사가가 자연과학대학에 자리를 잡고 기초과학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3] R Pielke, R Byerly, Beyond basic and applied, Physics Today, 1998.
[4] Vannevar Bush (1945).
[5] 다음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하, <상황윤리: 현실세계 속의 공학담론>, 철학과현실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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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과 경제발전, 그리고 박정희의 유산
과학기술의 자율성을 위한 정책적 선택
2010-04-26 ㅣ 김우재

이때 경제개발은 과학기술 중심지대의 이동을 정당화해주는 핵심 이데올로기로 쓰였다.
-김근배, <과학기술입국의 해부도>중에서

과학의 이중적 의미

현대에 이르러 과학과 기술은 구분하기 어려운 용어가 되었다. 영어로는 'Science and Technology', 접속사로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말이 대한민국에서는 '과학기술'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진다. 과학과 기술, 혹은 과학과 공학은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하는 공동운명체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문화 속에는 '과학'이라는 단어에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한다.

먼저 우리는 과학에서 아인슈타인이나 다윈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해마다 노벨상 시상식이 다가오면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에겐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가 없다. 하지만 국가의 존망을 걸고 노벨상을 타야만 한다. 이미 노벨상은 국가적 강박관념이다.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분명해진 사실 중 하나는, 과학에 대한 대중과 언론 그리고 정부의 인식이다. 우리는 과학을 일종의 국가경쟁력으로 사고한다.
원천기술이라는 용어가 일상화 되었고, 새튼 교수는 산업스파이로 몰렸다. 황우석 사건이 터지기 전에 언론은 줄기세포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기사를 연일 터뜨렸고, 친히 대통령과 국무총리,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그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논문조작으로 물러나는 황우석 박사의 앞길에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흩뿌렸다. 그는 사기꾼으로 밝혀졌지만, 지지자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그가 사기를 당한 셈이었다. 국가경쟁력은 후퇴했다. 21세기 국가발전의 보고, 줄기세포는 황우석 박사의 추락과 함께 태평양 너머로 떠나갔다.

박정희의 유산

박정희의 유산 중 진보세력이 맞닥뜨려야 하는 가장 큰 과제는 '경제개발'에 관한 그의 업적이다.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 것이 당면과제였던 전후의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시대를 거치며 먹고 살만해졌다. 일본과의 비밀협약으로 받은 자금과 미국의 원조라는 변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더 나은 역사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해도, 상관관계에 불과할 뿐인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은 일반 대중들에게 여전히 인과관계로 인식될 뿐이다. 무능한 좌파정부라는 말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어려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말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박정희 시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국교는 불교도, 유교도 기독교도 아닌 자본주의가 되었다. 돈을 버는 것만이 신앙이 되었고, 이는 그 어느 종교도 감히 넘보지 못할 강력한 신념체계로 굳었다.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는 종교다.

박정희의 유산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1966년 미국의 원조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설립하면서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을 정치에 동원했다.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정책의 기저에는 박정희 시대의 철학이 그대로 배어 있다. 정치적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했던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과학기술 발전 없이는 경제성장이나 근대화가 이룩될 수 없다"라는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이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을 업고 재현된 것이다. 과학기술은 박정희 시대에 자본주의와 한 몸이 된다. 자본이 투입되면 반드시 이윤이 창출되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서 생각해보면 완전히 오류인 이런 생각이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박정희 시대는 한마디로 '정치권력의 전성기'였다. 김근배에 따르면, 박정희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과학기술 제도(과학기술의 내적 측면), 과학기술과 사회의 연결, 대중의 과학기술적 동원(과학기술의 외적 측면) 등의 한가운데 정치권력이 웅크리고 있었"으며, 당시의 정치권력은 "과학기술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뇌이자 과학기술의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을 독특하게 연결하는 신경망"이었다. 박정희 시대에 과학은 경제적으로 번역되었다.

초창기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대부분의 과학기술정책은 이승만 정권의 것을 계승한 것이었다. 1965년까지 박정희의 연설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당시 박정희 최대의 관심사는 경제발전이었다. 과학기술에 관한 5개년 계획은 '기술진흥5개년계획'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과학'은 경제적 유용성이 없는 순수학문분야로 여겨졌다. 애초에 박정희의 관심사는 '과학기술'이 아니었다. 경제적 유용성과 맞닿아 있는 '기술개발'이 정부의 최대현안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흐름은 박정희가 1965년 중순 미국을 방문하면서 완전히 뒤바뀐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참전과 한일수교의 대가로 연구소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박정희는 존슨의 제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소 설립에 관한 많은 과학기술자들의 성토가 있었지만 박정희는 무시했었다. 그리고 금속공학자인 최형섭을 주축으로 한 '파이클럽'이 정치권력과 손을 잡는다. 이제 박정희의 과학기술 정책은 '기술'에서 '과학기술'로 탈바꿈한다. 그는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미국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욱 큰 규모의 KIST를 설립한다. 그리고 박정희는 과학기술 대통령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유산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사로잡고 있다.

과학과 기술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계절이 오면, 대한민국은 들썩거린다. 올해는 그 명단에 한국 과학자의 이름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그냥 때가 되었기 때문에 뭔가 말을 해야 하는 것 뿐이다. 그런 기대를 하기엔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라는 명단도 해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주제다. 하지만 선정기준이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과연 대한민국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우리는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없이 노벨상은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리 노벨상이 기초적인 연구가 실용적인 결과로 연결되었을 때 시상된다고 해도, 기초연구와 실용연구의 상호관계는 그 둘을 고루 발전시킨 국가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엔 그 반쪽만이 존재한다. 반도체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기술계의 발전은 눈부시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계열사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결산보고서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다는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평가하기엔 구조적 상황이 열악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말하기 전에, 과학계는 과거의 유산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에서 하나라도 배운 것이 있다면, 박정희 시대로부터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과학기술행정의 모습을 직시해야만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기대할 수 없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념 속에 과학기술이 갇혀 있는 한,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민족은 망한다고 했다. 거창하게 민족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과학기술계는 과거를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우리의 과학기술은 여전히 박정희 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의 자율성

파이어아벤트는 그의 책 <방법에의 도전>에서 서구사회에서 정교분리가 진행되었던 것처럼 과학도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의 근원에는 그의 아나키즘적 정치철학이 녹아 있다. 비록 과학에 단 하나의 방법론은 없다는 주장을 했던 그였지만, 과학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권력에 맞서는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 과학을 정치와 동등한 위치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이어아벤트의 주장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조건 속에서, 나아가 과학기술이 정부의 지원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현대에 이르러 낭만주의적인 견해는 조금 양보해도 좋다. 우리가 박정희 시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은 과학을 정치와 동등한 반열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다른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과학기술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유산은 그런 것이다. 과학기술의 목표와 방향은 정부의 의지대로만 발전한다. 과학기술자들의 의견이 발 디딜 곳은 없다.

박정희와 철학을 공유하던 최형섭에 의해 과학기술정책이 짜여지던 1960년대 중반 이전에 이미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 적어도 과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진지하게 자신의 위치를 고민해본 학자라면, 과학이 정치에 이끌려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해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는 과학과 정치에 관한 심각한 고민이 공유되고 있었다. 나아가 과학자들은 천성적으로 반항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의 권영대 교수나, 동물학자 강영선을 비롯한 일본유학파 과학자들은 경제개발의 이념으로부터 독립적인 학문적 분위기의 '종합과학연구소'의 설립을 주장했었다. KIST가 설립된 이후에도 많은 이공계 대학 교수들은 대학과의 긴밀한 교류 및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었다. 그런 목소리들은 박정희의 비호 속에 모조리 묻혀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대학과 연구소의 학자들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외치고 있고, 경제논리에서 조금 자유로운 자율적 연구를 지원하라고 호소한다. 중장기적 안목을 가진 프로젝트를 더 늘리고, 쓸데 없는 분기별 연구보고서로 연구자들을 혹사시키지 말라는 말은 이제 연구자들 사이에선 일종의 농담이 되어버렸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노벨상을 위해서 국가의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모르는 것은 과학기술정책을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정신 속에서 기획하고 있는 정부관계자들 뿐이다.

노벨상인가 경제발전인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단기간에 실용적인 연구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초과학이 발전해야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한다는 단선적 논리는 신화에 불과하다. 산업혁명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것이라는 착각은 2차 산업혁명, 그것도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기술의 발전은 자체동력을 지니고 있다. 조지 바살라는 <기술의 진화>에서 이러한 기술과 과학의 상호작용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초대형가속기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은 현재에도 이러한 분석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박정희 시대에도 과학기술은 경제개발에 실질적으로 크게 기여하지 않았다. 그 효과는 몇 십 년 후에나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근배의 말처럼 오히려 "경제개발이 과학기술을 특정 방향으로 관심 기울이고 진흥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만약 아이폰과 같은 돈벌이를 원하는 것이라면 국가는 기초과학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의 공학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청년실업에도 불구하고 공학계열 졸업생의 진로는 순탄한 편이다. 물론 보수도 의학계열을 제외하곤 상위에 속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견인차는 공학기술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쳐와 사이언스에 한국과학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실제로 그런 논문이 산업과 연계되는 경우는 드물다. 연계가 된다고 해도 아마 수십 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 일이다. 어쩌면 과학자들은 공학자들에게 기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는 결정해야 한다. 노벨상인가 아니면 경제발전인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을 정리하는 철학적 성찰은 기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자들은 그러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되었다. 만약 경제발전을 원한다면 아이폰의 성공을 배우면 될 일이다. 아이폰은 엄청난 과학적 성과물이라기 보다는 나와 있는 기술들에 철학과 아이디어를 접목한 상품이다.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은 정부는 아이폰을 과학으로 포장하며 투자를 결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노벨상을 원하는 정부라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진다. 우선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기간 내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구조를 뜯어고치고 장기적인 투자를 집행하는 작업이 성과를 맺는 데에만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집권 기간 내에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정부가 이런 투자를 하겠는가. 노벨상은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과학이 없어도 대한민국은 그럭저럭 잘 먹고 잘살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 김우재 박사는 현재 UCSF 박사후 과정에 있으며, 인터넷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미르(miR)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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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