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6김병권/부원장

 

 

* 경제 민주화 국민운동본부가 9월 25일 출범식을 하면서 발표한 3대 분야 13대 과제입니다.

 

1. 첫째, (시장에서의 경제민주화) 시장경제의 전체운영의 측면에서 재벌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중소기업, 중소상인,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어 각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국가권력 전체의 민주적 운영을 실현해 나가듯이, 시장권력도 재벌대기업의 독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는 시장경제의 각 이해당사자인 중소상인, 중소기업, 소비자 등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에 의하여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약자인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담합행위로 인한 과도한 물가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제적약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켜 시장경제의 운영이 지나치게 재벌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만 운영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득분배, 고용창출, 소비자의 안정된 소비, 가계의 안정, 수출과 내수의 균형 등 시장경제 전체의 균형을 찾아 나가는 것이 경제민주화가 지향하는 목표일 것이다.

(1) 재벌대기업의 중소상인/중소기업 적합업종 진출규제를 위한 중소상인/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

(2)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제, 동네상권 진출규제를 위한 허가제 도입 등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상생법 개정

(3) 불공정한 납품단가 인하, 납품단가 원자재가격 연동제 도입 등을 위한 하도급법 개정과 중소기업 사업조합 단위의 공동행위 허용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4) 재벌대기업의 담합행위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

 

2. 둘째, (일자리에서의 경제민주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 비정규직 규제와 차별철폐로 일자리 안정화, 정리해고 남발규제 등으로 일자리 지키기 등으로 청년과 노동자 등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

재벌대기업의 노동의 유연화전략으로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등 불안정 일자리의 만연과 정규직의 임금, 근로조건에 비하여 지나친 차별, 수시로 벌어지는 대량해고로 인한 일자리의 불안 등으로 청년실업과 저임금근로자(Working Poor)가 양산, 상시적인 고용불안정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핵심적 원인이 되고 있다. 재벌대기업의 세계적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과잉 노동유연화는 재벌대기업의 수입이 낙수효과에 의하여 근로자, 중소기업 등의 수입증대로 이어져 사회경제 전체의 소득과 소비가 견실해져 내수도 증대된다는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재벌대기업 위주만의 성장은 고용없는 성장일 뿐이고 이에 따라 청년실업, 일을 해도 빈곤에서 못 벗어나는 근로빈곤층의 양산, 정규직도 상시적인 대량해고의 위험에 노출 등 일자리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제 일자리 측면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불완전 고용을 안정된 일자리로 전환하기 위한 비정규직 축소와 차별철폐, 정리해고 남용의 규제 등을 통한 일자리 지키기 등 일자리에서도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5)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창출 특별법” 제정

(6) 비정규직 및 여성노동자 차별철폐와 비정규직의 축소 및 여성노동권 확보를 통한 일자리 불안 해소

(7) 정리해고 남용으로부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8) 청년실업과 근로빈곤층 해소를 위한 대기업·공기업의 청년고용할당제 도입과 최저임금제도 전면 개선

(9)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로 농민생존권 보장 ·식량주권을 실현 및 경제민주화의 토대 구축

 

3. 셋째, (‘경제력 집중’과 ‘조세정의’에서의 경제민주화) 재벌의 지배구조와 경제력 집중을 개선하고 공평과세와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재벌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개선하기 위하여 재벌 기업집단의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순환출자를 규제해야 한다. 재벌 기업집단의 지배구조에서 재벌총수 등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소수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중대표소송 등 지배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재벌 기업집단을 총수일가가 전횡적으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사례인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하여 사전적으로 공정거래 측면에서의 행위규제뿐만 아니라 사후적으로 일감몰아주기로 얻은 이익을 증여세와 소득세를 통하여 환수해야 한다. 재벌대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감면을 폐지하여 공평과세를 실현하고 법인세 상위구간의 신설등을 통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하여 한다.

(10) 재벌기업집단의 문어발식 진출규제를 위한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금지 도입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11) 재벌기업집단 내부의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위한 공정거래법과 상속증여세법 및 소득세법 개정

(12) 노동자의 경영참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이중대표소송 등 경영민주화와 지주회사의 지배요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요건 강화 등을 통한 재벌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

(13) 재벌대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감면의 폐지를 통한 공평과세의 실현과 법인세 상위구간 신설 등 누진적 과세를 통한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과 법인세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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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0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와 경제성장도 양자택일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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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경제 민주화 없는 복지국가는 가능한가?

2. 사회 세력 간 힘의 균형이 중요

3. 장기침체 시대, 어떤 성장을 말해야 하나?

4. '민주적 성장'을 추구하자

 

[본 문]

1. 경제 민주화 없는 복지국가는 가능한가?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킬 때만 해도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담론과 성장 담론이 우리사회를 지배했다. 2008년 촛불시위로 민영화 담론에 금이 가고,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규제 완화나 감세 담론이 타당성을 잃어갔지만 결정적인 의제 전환의 분수령은 2010년 지방선거와 보편복지 의제의 확산이었다. 순식간에 신자유주의와 성장 의제 틀이 깨지고 복지 의제가 압도를 하게 된 것이다. 2011년 10월 보궐 선거는 그 정점이다.

보건, 보육, 교육, 주거, 소득 등 사회정책 차원에서 보편 복지는 여전히 진보의 중심 의제이어야 하며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보편 복지에 이어 경제 민주화 요구가 우리사회에서 급격히 확산된 것은 ‘시장에서의 불평등 개혁’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말할 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현실적인 힘의 관계, 사회세력 사이의 역학관계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롭고 참신한 정책의 여부도 아니고, 각 정당들의 정책수용 여부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이 시점에서 헌법 119조 2항 경제 민주화 조항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조항에서는 대략 4가지 ①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②적정한 소득 분배 유지, ③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그리고 ④ 경제 주체들 간의 조화를 경제 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명기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의 실현”이란 대목은 경제 민주화가 경제 주체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즉 경제 민주화란 원래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경제 주체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 복지와 함께 시장영역에서의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초래한 경제 주체들의 권력 불균형을 개혁하여 ‘경제 주체들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경제 민주화운동이다. 한국경제의 정점에 있는 재벌 대기업 집단의 과도한 권력을 억제하는 한편 노동자와 시민, 소비자의 무권리를 개혁하여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운동이고 또한 보편 복지운동인 것이다.

 

2.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경제 민주화도 복지도 무너진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형식으로 관철되지만 내용적으로는 경제 주체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서 복지 정책도 완전히 동일하다. 흔히들 선진국 경제사에서 복지국가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1950~60년대에는 사회의 권력 균형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노동자와 대중의 힘이 시장의 힘을 견제할 만한 상황이 되었던 시기다.

반면 자본의 파워는 제한을 받게 되었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통해 경쟁은 완화되었다. 자본 통제가 도입되고, 금융자본은 엄격히 규제되었다. 공공부문의 확대를 통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시장에서 떨어져나가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되었던 시기다. 이처럼 해당 사회에서의 사회세력(주로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힘의 관계에서 노동의 힘이 커지면서 복지 정책을 제대로 적용할 ‘정책 공간’이 열리고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성취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신속하고 체계적인 규제철폐에 이용되었다. 고정 환율제가 폐지되고, 자본통제가 해제되고, 시장에서 규제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에 따라 이번에는 아래서 위로의 부의 역 재분배가 이뤄졌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보편 복지의 실현이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한다면,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 세력 관계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우리 헌법에서도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의 실현” 이라고 되어 있다. 무슨 말인가. 경제 민주화란 원래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경제 주체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원천적인 불균형 관계를, 국가의 정책적 개입에 의해 최소한 ‘조화’가 가능한 균형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세계경제에서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랬다. 그 결과 경제 민주화도 심각한 후퇴를 맞게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금융자본과 재벌 대기업의 힘이 압도적으로 우리 경제 질서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출되지 않는 경제권력, 3세로 승계되고 있는 재벌권력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 되어야 할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복지의 확장을 위해서나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 노동자와 시민, 99%의 힘과 권한을 다시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키우고 대자본의 힘을 제약하는 각종 정책과 법률을 통해서 힘의 재 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복지이고 경제 민주화다.

 

3. 장기침체 시대, 어떤 성장을 말해야 하나.

이제 보편 복지와 함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일시적 구호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구조적 문제 누적과 시대적 전환의 산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2010년대 내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경제 민주화는 금융 민주화로, 노동 민주화로 그 내용을 더욱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우리사회가 경제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가 ‘정치 민주국가’이자 ‘경제 민주국가’, 그리고 ‘보편 복지국가’가 되려는 긴 도정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동안 불필요하게 이념적 갈등이 두드러진 경제정책 논쟁들이 있었다. 그 하나가 바로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이다. 또 하나는 시장이냐 국가냐 하는 논쟁이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는 성장과 분배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융합해주고 시장과 국가 역시 함께 수렴해주는 의제 틀을 가지고 있다. 경제 민주화 의제를 활용해 성장과 분배, 시장과 국가의 불필요한 대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이 ‘스스로’ 성장 담론을 부활시키려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든 ‘진보적 성장’이든, ‘사람이 성장 동력’이든 의제의 틀을 성장론으로 삼는 것보다는, 경제 민주화의 틀 안에서 성장론을 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 관점에서 성장론은 금융이 주도하는 부채 의존형 성장이나 재벌이 주도하는 수출 의존형 성장노선을 모두 반대한다. 그리고 이들 두 성장노선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미 파산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에서 작동하던 부채 의존 성장, 수출 의존 성장 모델이 모두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부채주도 성장모델이 이미 임계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가처분소득의 150%가 넘을 정도로 커진 가계부채 1000조 원은 가계의 소비여력을 제약할 뿐 아니라 현재 통화와 금리정책, 부동산 정책 등 모든 정책 수단들을 제약하고 있다. 불패 신화의 부동산 시장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4년 이상 실질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민간소비 성장률이 경제 성장률을 훨씬 밑돌고 있는 이유다. 부채 의존 성장은 고사하고 부채 폭탄 얘기가 연일 언론에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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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그리스 위기와 월가 금융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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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시장은 만족시켰지만, 그리스 국민도 만족시켰나
2. 그리스의 유로 존 가입과 파생금융상품
3. 위기국면에서 다시 엮인 그리스와 골드만삭스
4. 남유럽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5. 금융시장 뒤에 가려진 그리스 시민의 생활

 

[본 문]

2010년부터 각종 수습대책에도 불구하고 악화되어 온 유럽위기는 2012년 6월에 가장 중요한 시련을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 연구원은 좀 더 종합적으로 유럽위기를 조망해보고 이후 세계경제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점검해 보는 기획으로 [유로 2012]를 마련했다. 지금 유럽에서 한창인 축구 경기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유로화의 향방이 2012년에 분기점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을 담고 있다. - 편집자 주

 

1. 시장은 만족시켰지만, 그리스 국민도 만족시켰나?

유럽위기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며 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그리스 2차 총선이 6월 17일 치러졌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긴축을 지지했던 신민당이 29% 전후 지지율로 신승하고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가 27% 정도 지지율로 2위를 했다. 신민당은 3위의 사회당과 연합하여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 국민 여러분. 불안한 정치 상황을 떨쳐냅시다. 분노가 아닌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재정 개혁을 위해 표를 던집시다.” 이 내용은 그리스 안에서 나온 주장이 아니다. 독일 판 파이낸셜 타임지 6월 16일자 사설이다. 독일 신문이 그리스 국민들에게 노골적으로 시리자를 찍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유럽의 언론과 정치세력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리스 국민을 협박했고 그들은 결국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금융시장의 입장에선 신민당과 사회당의 연정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안도가 된다." 런던의 한 금융 관계자 말이다. 그렇다. 그리스 총선결과는 국제 금융시장을 일시적으로 만족시켰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원하는 ‘시장의 안정’이 과연 그리스 국민이 원하는 ‘생활의 안정’과 일치하는가.

신민당 승리로 귀결된 총선결과는 2001년 유로 존 가입이후 지금까지 사태가 전개되어 오던 방향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 위기가 발생하고, 그리스 국민의 분노가 쌓여서 총선에 이어 재총선까지 이르도록 한 긴축정책의 방향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과연 예전처럼 계속 긴축약속을 이행한다고 하면 시장의 안정은 가능한 것일까?

결국 지금 시장이 얻은 안정은 아주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잠시의 안정을 얻은 대신에 그리스는 지금까지의 국면을 전환시키고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시리자의 급격한 부상과 ‘재협상’ 요구 덕분에 독일과 유럽 연합이 그리스에 대한 재정긴축 압박 강도를 약간 늦출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당장의 급격한 뱅크 런은 완화될지 모르지만 성장능력 침식과 실업률 상승이라는 더 큰 문제는 더 심각하게 누적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위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야 진정한 위기 탈출이 가능할까. 과연 그리스 시민들이 부정직하고 게으르며, 그리스 정치인들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리스 국가체계는 탈세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위기가 왔다는 독일과 일부 보수 세력들의 원인 진단은 맞는 것일까.

물론 그리스 시민들과 정치, 조세제도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를 그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마디로 유치한 짓이라고 코스타스 라파비타스(Coastas Lapavitsas) 런던대 경제학 교수는 지적한다. 사실 이런 유형의 비판은 당연한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다. 지금 위기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겪고 있는 위기인데, 그들 국가들이 모두 그리스 사회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의 원인은 그리스 사회의 내부적 문제를 넘어서 다양하게 짚어볼 수 있다. 우선 재정동맹 없는 유로 통화동맹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위기가 현실화 된 이후 유럽연합이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에게 요구한 긴축정책이 위기를 오히려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와 아울러 이번 그리스 위기나 유럽위기 역시 철저히 글로벌 금융위기 반경 안에서 발생한 위기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2010년 그리스 1차 구제 금융이후의 시점에만 갇혀서, 마치 그리스와 남유럽 위기가 처음부터 국가채무위기였고 이것이 유럽 국채시장이라는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의 부실화를 초래해서 지금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그리스 국가채무위기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리스와 남유럽의 국가채무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유럽에도 예외 없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와 금융규제 완화, 그것이 초래한 투기적 거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품붕괴로 세계경제를 휩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유럽 국가들에서 국가채무위기로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 위기 해결은 그리스의 부패 척결이나 조세 징수제도 개혁과 같은 개별 국가적 문제로 환원될 수 없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의 일환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2. 그리스의 유로 존 가입과 파생금융상품

알려진 것처럼 그리스와 남유럽위기는 2009년 10월 4일 그리스 총선 직후 새로 집권한 사회당이 2009년 그리스 재정적자가 사실은 6%가 아니라 12.7%라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유럽 안정협약에 의하면 유로 회원국의 재정적자 한도는 3%인데 그 4배가 넘어가는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니 국가부도위기가 급격히 확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그 후 수개월 뒤인 2010년 2월,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통계 조작은 2001년 그리스가 유로 존에 가입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통계조작에 월가의 첨단 금융기법들이 또한 동원되었고 월가의 최대 금융회사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마이클 루이스는 자신의 책 『부메랑(Boomerang)』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2001년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정부의 실제 부채수준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혐오스런 일련의 거래에 가담했다. 언론은 이 거래와 관련해 골드만삭스가 수수료로 3억 달러를 챙겼다고 보도했다. 이때 그리스는 10억 달러를 대출받았다.”

“그리스가 마음대로 돈을 빌리고 지출할 수 있게 해준 방법은 미국 서브프라임 채무자의 신용을 세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 투자은행의 역할도 동일했다. 나아가 투자은행은 그리스의 정부 관리들에게 국가 운영 복권과 고속도로 통행료, 항공기 착륙료, 그리고 유럽 연합이 제공한 기금에 이르기까지 미래 수입을 증권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스 정부는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소득 흐름을 선불로 팔아 지출했다. 채권자들이 그리스에 대한 대출을 유럽연합이 보증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 외부에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그리스는 실제 재정 상태를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에 발표된 언론 보도 등의 내용을 종합해서 2001년 그리스가 어떻게 조작된 재정적자 통계를 가지고 유로 존에 가입할 수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자.   

그리스는 2001년 유로 통화동맹 가입당시 가입 허용 조건인 재정적자 3%보다 더 큰 적자규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금융파생상품을 동원하여 이를 인위적으로 축소했다. 이 때 사용된 파생상품은 그 자체로는 사실 별 문제가 없는 통화스왑(Currency swap)이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그리스로 하여금 달러와 엔화표시 국채를 발행하도록 하고 이를 유로화로 교환할 때 일종의 가상 환율을 설정함으로써, 스왑과정에서 실제 교환할 수 있는 금액보다 10억 달러 이상을 추가로 차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식의 파생상품 거래는 부채장부에는 기재되지 않았고, 그리스 정부는 나중에 스왑 청산시 상환해야 할 부담이 훨씬 더 클 지라도 당장은 실제보다 적은 재정적자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골드만삭스 이 거래의 수수료로 3억 달러를 받았다. 물론 이런 수법은 그리스뿐만이 아니었고, 이탈리아도 JP모건과 인위적인 환율 조건으로 유사한 스왑거래를 하여 재정적자를 장부에서 덜어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는 2001년 국가공항이 미래에 받을 공항수익을 담보로 현금을 끌어오기도 했는데, 그리스 신화의 이름을 빌러 아이올로스(Aeolos)라고 이 거래를 명명했다. 또한 2000년에는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드네(Ariadne)라는 이름의 차입을 감행 했는데, 이는 국가복권수익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통화스왑거래(swap transaction)'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모두 '차입(loan)'이 아니고 공항수익, 복권수익 등 미래수익의 선불 ‘판매(sales)'로 잡혔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의 공공부채 장부에서 빠져나갔던 것이다.

덕분에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유로 존에서 요구하는 3%미만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물론 미래 수익을 골드만삭스에게 판매해버렸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2019년까지 골드만삭스에게 거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전 그리스 재무장관이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리스와 금융회사, 금융파생상품은 유로 존 가입부터 얽혀있었고, 이들 덕분에(?) 그리스는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서 유로 통화동맹의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골드만삭스, JP모건, 그리고 다른 많은 은행들이 개발한 파생상품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아마도 그 외의 다른 나라들에서 정부가 부채를 늘리는 것을 은폐하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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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난 총선부터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였던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위험한 국면을 통과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어려움과 맞물리면서 경제 민주화는 가장 중요한 대선 의제가 될 것이다. 이를 예고하듯 전경련과 산하 연구원인 한국경제연구원이 19대 국회 개원에 맞춰 지난 4일 경제 민주화에 대한 대기업의 반론을 적극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전경련은 법·경제·철학이론을 모두 동원해 경제 민주화 논리를 반박하는 큰 스케일(?)을 보였다. 우리 헌법에 비춰 볼 때, 경제 자유화·자유시장경제가 원칙이고 경제 민주화는 극히 예외적인 국면에서 법률이 정하는 한도에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이론적으로는 소비자 선택 이론을 들고 나오면서 소비자 주권에 기초한 자유로운 소비자 선택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경제 민주주의에 접근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더니 경제 민주화를 예외적인 정책이라고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전경련이나 보수진영에서 복지와 경제 민주화 자체의 정당성과 지금 시점에서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대체할 대안 담론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 다만 제한하려고 할 뿐이다.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우리 현실에서 진보적인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는 우리 경제현실에서 매우 좁게 제한돼 해석돼 왔다. 해석과 적용 분야를 훨씬 확장시켜야 한다.

그런데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말할 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현실적인 힘의 관계, 사회세력 사이의 역학관계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롭고 참신한 정책의 여부도 아니고, 각 정당들의 정책수용 여부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흔히들 선진국 경제사에서 복지국가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50~60년대에는 사회의 권력균형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노동자와 대중의 힘이 시장의 힘을 견제할 만한 상황이 됐던 시기다. 반면 자본의 파워는 제한을 받게 됐다.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통해 경쟁은 완화됐다. 자본 통제가 도입되고, 금융자본은 엄격히 규제됐다. 공공부문 확대를 통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시장에서 떨어져 나가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됐던 시기다. 이처럼 해당 사회에서의 사회세력(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의 관계에서 노동의 힘이 커지면서 복지정책을 제대로 적용할 ‘정책 공간’이 열리고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됐다. 신자유주의가 성취한 정치·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신속하고 체계적인 규제철폐에 이용됐다. 고정 환율제가 폐지되고, 자본통제가 해제되고, 시장에서 규제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에 따라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로 부의 역재분배가 이뤄졌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보편복지의 실현이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한다면,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 세력관계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우리 헌법에서도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의 실현” 이라고 돼 있다. 무슨 말인가. 경제 민주화란 원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들 간의 원천적인 불균형 관계를 국가의 정책적 개입에 의해 최소한 ‘조화’가 가능한 균형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세계경제에서 “80년 이후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시장을 둘러싼 규제 틀이 모두 깨지고 이번에는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 전 영역으로 팽창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랬다. 그 결과 경제 민주화도 심각한 후퇴를 맞게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금융자본과 재벌 대기업의 힘이 압도적으로 우리 경제질서를 지배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선출되지 않는 경제권력, 3세로 승계되고 있는 재벌권력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돼야 할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경제 자유화가 원칙이고 경제 민주화는 예외라고 하는 전경련의 주장이나, 경제 민주화가 실상은 주주자본주의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는 진보 일각의 비판은 모두가 핵심을 비켜 간 것이다. 복지의 확장을 위해서나 경제 민주화를 위해 노동자와 시민 등 99%의 힘과 권한을 다시 키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키우고 대자본의 힘을 제약하는 각종 정책과 법률을 통해 힘의 재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복지고 경제 민주화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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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02.22 13:07
바다 건너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이 한국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값 인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면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까? 신종 나비효과라 부를 만한 이 두 가지 현상에도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라면값 100원 인상이 왜 그렇게 심각한가?


우리나라 라면시장 최대 점유율을 가진 농심이 20일부터 라면류와 새우깡을 100원(6.7%~15.4%) 인상하기로 했다. 신라면은 650원에서 750원, 짜파게티는 750원에서 850원, 큰사발면은 900원에서 1000원, 새우깡은 700원에서 800원으로 인상된다. 2007년 3월에 라면류와 새우깡 등을 15~20%씩 인상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인상을 결정한 것이다.

다른 라면업체와 우유업체, 청량음료업체들도 이미 가격인상을 했거나 계획 중에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사재기와 함께 관련주의 상승을 보도하고 있다. 도대체 라면가격 100원 인상에 왜 이리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 국민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로 다가오는 경제문제는 ‘물가’, 특히 ‘소비자 물가’다. 각 기관은 2008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물가상승률이 지난해의 2.5%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재정경제부와 삼성경제연구소는 3.0%, 한국은행은 3.3%로 올해 물가 상승률을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 2008년 1월 물가는 작년 동월 대비 3.9%의 상승률을 보여 4%에 육박하는 등 전망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통계청 2008년 2월, ‘1월 소비자물가 동향’ 참고) 이는 최근 수년간 지속된 물가상승률인 2% 수준을 크게 상회할 뿐만 아니라 올해 최대 전망치인 3.5%도 단숨에 뛰어넘는 수치다.

료품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구입하는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작년 동월과 비교해 무려 5.1%나 뛰었다. 3월 이후 부터는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가계 압박과 추가 물가 상승도 우려되고 있다. 라면가격 인상은 바로 이와 같은 총체적 물가상승 국면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 물가지수 ⓒ 통계청

원유가, 곡물가, 광물가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

그렇다면 라면가격 인상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농심 측은 “최근 일 년 동안 밀가루 가격이 50%, 팜유는 94%, 미강유는 55% 상승하는 등 기상이변과 수급 불균형 등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가부담이 커져 제품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유가 급등으로 인한 유통비 상승도 한몫을 하게 된다.

실제로 세계 곡물가격은 1996년 하반기 이후 급락하여 장기간 낮은 수준을 지속하다가 2006년 하반기부터 장기평균을 상회하며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한국은행 2007년12월, ‘세계 곡물시장 동향 및 전망’ 참고)

원인은 매우 복합적인데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 세계곡물 소비량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반면 생산량은 2005년 이후 대체로 정체되어 있다는 점 (2) 기상여건 악화에 따른 작황 부진 (3)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수요 증가 (4) 인구대국인 중국, 인도 등의 식량재고 급감 등이다.

이와 같은 요인으로 지난 1년간 밀은 79.9%, 옥수수는 25%, 대두는 95.8%의 가격 급등세를 보였고, 이에 따라 이미 2007년 12월 제분업계는 밀가루 가격을 24~34% 인상했다. 곡물가격의 상승이 식품가격 전반의 상승을 유발한다고 하여 애그플레이션(Agflation = Agriculture + Inflation)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높은 곡물가 기조는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1년~1년 반 안에 많은 상품 분야가 위기 국면에 진입할 수도 있다”며 “특히 농산물이 핵심 문제”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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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곡물가격 지수 추이 ⓒ 한국은행


덧붙여 둘 것은, 물가상승을 부채질 하는 것이 원유가격과 곡물가격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물자원 가격의 급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며 이는 곧 공업제품 가격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2월 18일 포스코는 세계 최대 철광석 회사인 브라질 발레와 올해 철광석 도입 가격을 전년 대비 65% 인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철광석 가격 상승은 철강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조선, 자동차, 건설, 가전의 원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원자재 가격은 왜 일제히 상승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 금융자본의 과잉유동성이 찾은 마지막 비상구 실물투자


2000년 IT 중심의 나스닥 버블이 붕괴하고 미국경제가 급격한 침체양상을 보이자 미국연방준비은행은 금리를 1% 내외로 내리는 등 초저금리 정책으로 선회했다. 이를 시작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으며, 금융자본의 글로벌 유동성은 엄청나게 팽창했다. 문제는 급팽창하고 있는 금융 유동성이 미국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연이어 거품붕괴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역시 이런 과정에서 등장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처를 잃은 금융자본은 본격적으로 원유나 곡물과 같은 실물투자로 옮겨갔다. 달러화 표시 가격 인상을 포함하여 가뜩이나 인상요인이 누적되었던 유가와 곡물가 등에 실수요가 아닌 금융자본의 투기적 수요가 가세하면서 가격이 폭등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현재 세계적으로 유가와 금뿐 아니라 구리, 납, 콩, 밀가루, 면, 커피, 코코아, 가축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발견되는 가격 상승의 원인을 단지 지정학적 이벤트나 바이오에탄올 생산증가 등에서만 찾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가격 폭등이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상품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새로운 투자 대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2007년 10월, ‘Oil is not the only commodity on a tear’ 중)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은 이런 경향을 크게 증폭시킨 데 불과했다. 하이일드 펀드와 구조화 채권시장에 머물러 있었던 투기 자금조차 주택담보시장이 붕괴하자 대거 상품시장(실물시장)으로 이동했고, 달러화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특히 금이 피난처로 각광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에서도 최근 중국펀드 등 해외펀드에서 적자가 발생하자 이른바 ‘원자재 펀드’라고 해서 원유를 포함한 에너지·금·구리 등의 금속과 옥수수·밀 등 농축산물에 투자하는 펀드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예 퀀텀 헤지펀드의 공동 창업자인 짐 로저스는 미국경기 침체에 대비해서 달러 자산을 매도하는 한편 곡물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거두라는 조언까지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경기 침체에도 밥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곡물투자는 경기침체에도 안정된 수익을 보장할 것”, “농산물에 투자한다면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중국발 인플레이션 발생할 경우, 국내 물가에도 큰 타격

즉 세계 금융자본의 팽창과 과잉 유동성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해 달러시장과 금융시장에서 탈출하여 실물시장으로 옮겨갔고, 그 자금들이 결국 전 세계 원자재 시장과 곡물 선물시장으로 몰리면서 투기적 수요를 만들어내 가격 폭등을 부채질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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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주요국 전년 대비 소비자 물가 상승률 ⓒ 새사연


히 2006년 기준 전 세계 수출의 8.1%를 차지하면서 세계 소비품 공급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채질 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2007년 상반기 2% 수준이던 물가상승률이 하반기에는 6% 이상까지 치솟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과 중국 등 세계 경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중국경제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발 인플레이션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중국 물가 상승 요인은 비용 압박 측면에서 (1) 원자재 가격 급등 (2) 임금 상승률 확대 (3)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이 있고, 수요 견인 측면에서는 (1) 통화 증가율 상승 (2) 대출 증가율 상승 등의 요인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물가상승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2008년 2월, ‘차이나 인플레이션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특히 현대경제연구원의 위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 수출물가 상승률이 한국 수입물가 상승률에 미치는 기여도가 28.4%나 된다. 즉 수입물가가 100원이 오르면 28원은 중국 수출물가 상승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농수산물의 수입량이 매우 큰 상황에서 소비자 물가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규제 없는 금융자본의 자유가 불러온 위협

다소의 비약을 감수하여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서브프라임 사태와 라면값 인상의 나비효과를 정리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 금리인하 → 금융자본의 달러 투자 회피 → 원자재, 곡물 등 상품 투자로 이동 → 투기수요 촉진 → 원자재, 곡물 가격 인상 촉진 → 글로벌 인플레이션 유발과 수입물가 상승 → 한국의 제분가격 및 유통 운반가격 상승 → 전반적 가공식품 가격 상승(애그플레이션) → 라면가격 인상

결국 금융자본의 무한한 자유화가 라면값을 비롯한 식료품 값 인상이라는 사소하지만 위협적인 결론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금융자본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규제의 필요성과 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식량 전쟁에 대비하여 국민경제에서 농업의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성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막히면 민중 폭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6% 성장과 대운하 운운하기 전에 물가

관리와 집권 5년간의 식량 대책 수립이 취임을 앞둔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민생 대책이다.


김병권 bkkim@cins.or.kr / 새사연 연구센터장



이 글은 이스트플랫폼에 실렸으며 새사연 뉴스레터 R통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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