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11 / 2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은 2012년 가장 중요한 화두로 ‘불평등(Inequality)’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각도로 이에 대해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들의 관점과 견해를 다양하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 폴 크루그만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그리고 로라 타이슨과 로버트 라이시 교수 등이 소득 불평등 문제를 현재 경제위기의 중심 문제로 지목하면서 각자의 견해를 밝혀왔다. 그 가운데 경제학자 케인스의 전기를 써서 유명해진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교수가 또 다시 불평등이 경제위기 발생의 원인이자 경제가 회복되지 않은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 저자는 금융과 소득 불평등 문제를 알기 쉽게 연결하면서 왜 금융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의 소득 불평등이 위기를 발생시키고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가 상대적 빈곤에 놓여있는 계층들에게 부채를 끌어 쓰려는 강력한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부채의 급증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득이 오르지 않아 이를 메우기 위한 ‘대출 수요’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자금을 공급해주는 은행들이 예금 규모를 뛰어넘어 무제한으로 대출을 해줄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규제완화’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또한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짧은 글이 마치 금융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을 충분히 단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칼럼의 핵심은 대출 수요를 만들어낸 소득의 정체를 강조하고 이것이 위기의 원인이자 회복지연의 원인임을 부각시키려는데 있다. 특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아니라 정부의 적절한 재정지출을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우리의 현재 상황은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중앙은행을 의미-역자)가 아니라 ‘최후의 소비자(spender of last resort; 결국 정부를 의미 -역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어 가장 불평등 정도가 심각했던 시점이 1928년과 2007년 이었고, 이 때 심각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던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불평등이 가장 줄어들었던 1950~60년대에 오히려 자본주의 황금기였음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자기 자신이며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selt-destructive)'성격에 있다는 점을 이 칼럼은 환기시켜주고 있다.


 

불평등이 자본주의를 죽인다.

(Inequality is Killing Capitalism)

 

2012년 11월 21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2008~2009년 위기가 발생한 것은 은행의 과잉대출 때문이고, 위기로부터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깨져버린’ 대차대조표로 인해서 은행들이 대출을 하지 않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추종자들과 오스트리아 학파들(신자유주의 경제학파 -역자)이 선호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위기로 치닫는 기간 동안에, 은행들은 예금 규모를 뛰어넘는 돈을 차입자들에게 대출해주었는데, 이는 특히 미국 연준(Fed) 같은 중앙은행이 공급해주는 엄청나게 싼 이자 덕분이었다는 설명이다. 중앙은행의 돈으로 자금을 두둑이 채운 상업은행들은 비합리적인 수많은 투자 프로젝트에 신용을 제공했고, 이 때 광란의 대출을 가능하게 해준 폭발적인 금융혁신(특히 파생상품)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채의 역 피라미드는 미국 연준(Fed)이 금리를 올리면서 흥청거리는 소비를 중단시켰을 때 붕괴되었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2004년 1%에서 2006년 5.25%가지 올렸다. 그리고 2007년 8월까지 유지시켰다.) 그 결과, 주택 가격이 붕괴하고, (자산을 훨씬 초과하는 채무를 보유한) 좀비 은행들을 양산시켰고, 채무자들을 파산시켰다. 

현재의 문제는 은행이 자금 대출을 재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출을 꺼리면서 제 기능을 못하는 은행들을 어떻게 하든지 ‘정상적으로’ 되돌려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규모의 은행 구제 금융을 해주고, 뒤이어서 중앙은행이 다양한 비정통적인 경로를 통해 돈을 찍어서 은행시스템으로 돈을 공급해주는, 수차례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을 한 것이다.(위기가 과잉 신용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하이에크 추종자들은 이런 조치에 반대한다.)

동시에, 다시는 은행이 금융시스템을 위태롭게 하지 못하도록 규제체제가 모든 곳에서 더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 물가안정 목표를 임무로 했던 것에 더해서, 영란은행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the stability of financial system)’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분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경제적 건강성에서 본질적인 것은 신용 공급이라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돈이 너무 많이 공급되어도, 너무 적게 공급되어도 경제적 건강성을 해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을 택할 수도 있다. 신용에 대한 공급 보다는 ‘신용에 대한 수요’가 결정적인 경제적 동인이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반드시 적절한 담보 아래에서만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위기를 향해 가는 기간 동안에는 상승하는 주택가격이 담보를 제공해주었다. 바꿔 말하면 신용 공급은 신용 수요의 결과였다.  

이것은 다소 다른 측면에서 위기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위기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때문이 아니라, 사려 깊지 못하거나 기만적인,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채무자(가계와 기업 - 역자)들 때문이라는 식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문이 제기된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차입을 했을까? 왜 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경기침체 이전 시기에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폭등하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탐욕스러워서 자신들의 분수보다 늘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왜 이러한 ‘탐욕’이 그렇게 미친 듯이 표출되게 되었을까?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소득분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아야만 한다. 세계는 지속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각 국가 안에서 소득 분배는 지속적으로 더 불균형하게 되어갔다. 지난 3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는 와중에도 중위 소득자들의 소득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하락하기조차 했다. 이것은 부자들이 생산성 향상의 더 많은 몫을 뽑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수준이 향상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상대적 빈곤층들이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한 것일까? 그들은 빈곤층이 늘 했던 것, 부채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전당포에서 돈을 빌렸고 지금은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돈을 빌린다. 그들의 빈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었고 (담보로 잡은- 역자) 주택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채권자인 금융회사는 그들을 점점 더 깊은 부채의 늪으로 빠뜨리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에서 가계의 저축률이 폭락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걸 문제 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 논문들 중 한 곳에서 밀턴 프리드먼은 저축이 지금은 주택의 형태를 띤다고 쓰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관점은, 중앙은행이 갖은 방법으로 양적완화를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왜 은행들이 대출을 재개하지 않고 있고, 왜 경기회복은 다시 흐지부지 되어 가는지에 대해서 정통적인 설명보다도 훨씬 더 잘 설명 해준다. 대출 은행들이 위기 이전에 대중들에게 대출을 강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역시 그들은 부채가 있는 가구들에게 돈을 빌릴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설비 확장 자금을 대출 받으라고 기업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약하면, 경기회복은 미국의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재정정책 결정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은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중앙은행을 의미-역자)가 아니라 ‘최후의 소비자(spender of last resort; 결국 정부를 의미 -역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다. 

만약에 정부가 이미 많은 부채를 짊어져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자금을 빌릴 수 없다면,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서 공공사업이나 인프라 프로젝트에 추가적으로 자금을 지출해야 한다. 이것이 거대 서구 경제권을 다시 움직이게 할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을 뛰어 넘어서, 우리는 국민소득과 자산의 대부분을 소수의 수중에 집중시키도록 하는 시스템을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다. 자산과 소득의 결연한 재분배야말로 대부분의 경우 자본주의 장기적 생존의 본질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이 교훈을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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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5.0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우리가 설명하는 금융시스템은 서로의 영역이 구분되고 살균처리까지 된, 그래서 재미없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은행은 엄밀한 의미의 진정한 은행이 돼야 한다. 예금으로 받은 돈을 안전하게 단기로 투자하는 데 있어 더 재미없고 지루한 곳이 돼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명해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경제위기 이후 은행시스템 개혁방향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고수익 추구라는 목적 아래 예금자의 돈으로 위험한 투자를 일삼았던 금융시스템을 엄격히 규제하고, 은행 본연의 자금 중개기능을 복원했을 때의 은행 모습이 혁신적(?)인 방법으로 투자를 감행하던 때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예시를 주고 있다.

그런데 어쩌랴. 은행시스템을 미처 개혁하기도 전에 문제는 계속 터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4개 주요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부동산과 엮인 저축은행의 부실한 대출, 그리고 부실한 경영자들이 위험을 보지 않고 오로지 높은 수익성만을 추구하면서 발생한 숱한 사례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 예금자들과 후순위채권 매입자들은 대량 예금인출 사태를 포함해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최근 정부가 사금융의 과도한 이자요구나 무리한 채권추심을 규제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저축은행 사태가 재발하면서 초점이 사금융과 제2 금융권으로 모아져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금융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은행이고, 은행을 축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다.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규정에 따라 재벌과 같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9%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전에는 4%였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완화한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 영토에서 재벌이 진입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성역이 바로 은행산업이다.

그러면 재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으므로 건전하게 발전했는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재벌 대신 외국 금융자본이 밀고 들어와 터를 잡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시중은행은 민영화 과정이 지연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하면 외국인 지분율이 100%인 씨티은행과 SC은행은 물론이고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지주 등이 모두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고 있어 우리나라 은행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은행의 지분을 쥐고 있는 글로벌 금융자본이 누구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고, ‘시장의 요구’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남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금융자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선진 경영기법도 아니고 건전한 자금중개기능 정착도 아니다. 오직 높은 수익이다. 국내 은행을 접수한 외국 금융자본 역시 철저히 수익논리에 따라 영업활동을 하고 은행을 경영해 나갔다.

그 결과 우리나라 7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외환은행·씨티은행·SC은행)은 2000년대 이후 각 은행별로 조 단위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면서 승승장구했다. 이 정도 규모의 이익은 제조업 기준으로 상위 10대 대기업 규모가 돼야 거둘 수 있는 성적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10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그 수익은 상당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벌어들인 것임이 2008년 금융위기에서 밝혀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은행이 다시 한국경제 위기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을 대거 동원해 대출을 늘린 결과 예대율(대출/예금)이 한때 140%를 상회할 정도로 위험해졌고, 단기외화 차입 규모도 급격히 팽창함에 따라 외환 조달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정부의 달러 지원과 자본확충펀드 조성 등 사실상 구제금융으로 다행히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자, 은행은 다시 수익추구에 집중한다. 그 결과 지난해 또 한 번 수익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게 됐던 것이다. 같은 시점에 가계대출도 개인부문 금융부채를 기준으로 보면 1천조원이 넘는다. 금융의 역할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주식회사 은행의 사적이익 극대화와 공적기능은 제대로 조화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공적 역할을 위해 사적이익에 대한 상당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한 기능 규제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때문에 일정하게 소유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 시점에서 글로벌 메가뱅크 시나리오와 같은 위기 이전의 금융 패러다임은 더 이상 통용되기가 쉽지 않게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은행의 공적기능 회복과 산업 밀착형 서비스에 대한 재정립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산업 재구성에 대해 전진적인 개혁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재벌개혁과 함께 은행개혁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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